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반값등록금' 뒤집은 박근혜, 등록금 '0' 독일 비결은…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 독일 교육복지, 큰 복지와 어우러진 작은 복지들

장보문 독일 보훔대학교 의과대학 본과과정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22 07:16:29

 

 

'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필자 주

 

 

‘독일 대학등록금 완전폐지, 등록금 0원 시대 개막’

 

지난해 12월 12일 독일 인터넷 포털에 등장한 기사다. 마지막으로 등록금을 받았던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의 폐지결정으로, 독일은 2014년부터 ‘무료 등록금 시대’를 열게 됐다는 내용이다. 복지공약을 줄줄이 후퇴시키던 박근혜 정부가 반값등록금마저 연기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라, 이 소식은 더욱 대조적이었다.

 

독일은 그나마 대학생들이 지고 있던 짐마저 덜어주는데, 한국은 ‘조금’ 덜어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복지가계부, 대학생 한 명이 받는 복지는 얼마일까

 

독일의 교육복지, 그중에서 대학교육 부분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독일 복지의 실상을 느끼고, 한국이 독일 수준의 복지정책을 펼칠 때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개인이 받는 복지혜택을 월 단위 가계부 형식으로 만든 '복지가계부'를 만들었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부분은 수입으로, 학업에 써야 하는 부분은 지출로 구성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에 있는 보훔대학(Ruhr University Bochum, 이하 RUB)에 재학 중인 스무 살 학생의 복지가계부는 다음과 같다.

 

 

 


 

* 바푀크(BAfög) : 모든 학생에게 ‘교육기회의 평등’을 목적으로 1971년 처음 도입됐다. 학생들이 별도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서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이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약 67만 명의 대학생이 지원을 받았으며, 지원액은 학생 1인당 월평균 약 450유로(약 68만 원)였다. 전문학교 학생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 31만 명의 학생이 월평균 약 400유로(약 60만 원)를 지원받았다. 원칙적으로 학업기간 내내 지원받을 수 있으나, 학업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해놓은 ‘학업기간(Regelstudienzeit)’이 따로 있으며 이 기간에 한해서 지원한다.

 

** 자녀수당(Kindergeld) :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 시기인 1935년 ‘아동보조금(Kinderbeihilfe)’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다. 도입 당시에는 일정 수입 이하의 가족에게만 지원됐다. 그러나 셋째 아이를 시작으로, 1961년에는 둘째 아이, 1975년에는 첫째 아이까지 사실상 가정의 모든 아이를 지원했다. 이 제도는 자녀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지원하며, 2013년 현재 첫째·둘째 아이는 184유로(약 27만 원)씩, 셋째 아이는 190유로(약 28만 원), 넷째 아이는 215유로(약 32만 원)를 매월 지원한다. 예를 들어, 아들(윤후)이 있는 만 24세의 윤민수 학생은 두 사람 이름으로 자녀수당을 받는다. 윤민수의 자녀수당은 윤민수의 부모에게, 윤후의 자녀수당은 윤민수에게 지급된다.

 

일단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 등록금은 없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생은 다만, 학기등록을 위해 매학기 의무적으로 사회적분담금(Sozialbeitrag)을 내야 한다. 사회적분담금은 대학에서 수행하는 교육 이외의 사업들, 예를 들면 기숙사, 대학 내 유치원, 학생식당 및 카페, 학생회, 문화프로그램 등 학생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한국에서 Sozialbeitrag을 ‘학생복지회비’라고도 번역하는데, 학교가 학생들에게 복지를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연대를 통해 서로의 복지를 지원한다는 취지를 살려 ‘사회적분담금’으로 번역했다. 필자 주)

 

RUB의 사회적분담금은 학기당 260유로(39만 원, 2013년 가을학기 기준)이다. 이 가운데 95유로(14만 원)는 학생식당, 교내 유치원, 장애학우 지원, 기숙사 지원 등으로 사용되며, 15유로(2만 원)는 학생회에, 150유로(23만 원)는 교통비(NRW-Semester-Ticket)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생활비는 어떨까. 우선 학생 부모는 자녀수당(Kindergeld)으로 매월 약 200유로(약30만 원)를 받는다. 이는 자녀가 25세 될 때까지 지원된다.

 

자녀수당 이외에 생활비를 감당할 다른 방법도 있다. 바로 ‘바푀크(BAfög)’이다. 여기에 학자금대출을 신청하면 된다. 바푀크는 '연방교육촉진법(Bundes ausbildungs förderungsgeset)'의 줄임말인데, 독일에서는 그냥 ‘바푀크’라고 부른다. 부모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 1971년 처음 도입됐다. 최대 월 670유로(약1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정해진 학업기간 내내 지급되며, 부모 수입에 따라 결정된다.

 

바푀크는 100% 지원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취업 이후에 갚아야 할 대출금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해 주기 때문에 50%만 상환하면 된다. 갚아야 할 50%는 취업 이후 이자 없이 원금만 상환하면 된다.

 

등록금과 교통비는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나, 학자금대출은 독일 국적 학생에게만 해당된다. 자녀수당은 유학생 가족에게는 제한적으로 지원된다.

 

복지의 진정한 힘은 디테일, 큰 복지와 어우러진 작은 복지들

 

독일 대학복지의 큰 축이 무상등록금과 학자금 대출이라고 한다면, 이외에도 작지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세부적인 것도 있다. 이를테면 교통비나 교재비·외국어 학습 같은 부분인데 학생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이는 바푀크처럼 독일 전역이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의 학교 RUB의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교통비다. 독일의 학생증은 교통카드(NRW-Semester-Ticket)이기도 한데, 학기당 지불하는 260유로(39만 원)의 사회적분담금 안에 150유로(약 23만 원)의 교통비가 포함돼 있다. 대략 월 4만 원이면, 교통비가 해결되는 셈이다. 이 학생증만 가지고 있으면, 고속열차(ICE)와 기차 1등석을 제외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모든 지하철과 기차·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원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경기도 전역의 버스·지하철·기차를 제한 없이 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증을 가지고 주말과 공휴일은 종일, 평일은 오후 7시 이후부터 일행 한 명을 동행할 수도 있다. 학생 혜택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최소 두 배 이상의 교통비가 든다. 보훔 시의 경우 경전철 또는 버스승차권은 2.5유로(3750원)로, 월 60유로(약 9만 원)의 정기할인권을 구입해도 다닐 수 있는 지역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월 4만 원으로 주 전역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다. 그럼에도 자전거나 자동차로 통학하는 학생처럼 교통카드가 필요하지 않으면, 사회적분담금에서 교통비를 제외하고 납부할 수 있다.

 

 

▲ RUB 학생증 뒷면 하단에는 2018년 9월 30일까지 유효하다는 것과 본 학생증을 소지하면 특정구간(D)까지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2013년 상반기까지는 매 학기 교통카드 유효기간을 연장했으나, 하반기부터는 매번 갱신할 필요 없이 5년 단위로 바뀌었다. ⓒ장보문

▲ RUB 학생증 뒷면 하단에는 2018년 9월 30일까지 유효하다는 것과 본 학생증을 소지하면 특정구간(D)까지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2013년 상반기까지는 매 학기 교통카드 유효기간을 연장했으나, 하반기부터는 매번 갱신할 필요 없이 5년 단위로 바뀌었다. ⓒ장보문

 

 

RUB의 경우에는 교통카드와는 별개로, 2013년 봄부터 메트로폴라트(Metropol-Rad)라고 하는 이른바 ‘자전거공유시스템(Bikesharingsystem)’을 지원한다. 메트로폴라트는 버스정류장처럼 도시 구석구석에 자전거정류장을 설치해 자전거를 비치해 놓고, 전용카드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빌린 다음, 다른 정류장에 반납하는 시스템이다. 도심 내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편인데, 일반인이 이용할 경우 30분에 대여비가 1유로(약 1500원)이다.  RUB 학생의 경우에는 한 시간 이내에 반납하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 통학 지원서비스인 셈이다.

 

이 시스템은 자전거정류장과 자전거가 얼마나 많이 설치되어 있는지가 관건이다. 2013년 현재 보훔(Bochum) 시내에는 37개 자전거정류장에 300대의 자전거, 캠퍼스 내에는 180대의 자전거를 비치되어 있으며, 향후 72개 정류장과 760대의 자전거를 구비할 예정이다. 학교는 이 자전거공유시스템을 위해 학생 1인당 매 학기 1.5유로, 총 약 6만 유로(약 9000만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캠퍼스 내에 설치된 자전거정류장(위쪽)과 캠퍼스 자전거길 지도(아래쪽).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전거 정류장(동그란 오렌지색 M자 마크)을 확인할 수 있다. ⓒ장보문

▲ 캠퍼스 내에 설치된 자전거정류장(위쪽)과 캠퍼스 자전거길 지도(아래쪽).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전거 정류장(동그란 오렌지색 M자 마크)을 확인할 수 있다. ⓒ장보문

 

 

둘째는 교재비다. 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책은 물론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한 책 모두를 구입할 수는 없다. 특히 요즘처럼 거의 모든 강의가 PPT로 이루어지며, 교재 한 권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시대는 더욱 그렇다. 더욱이 독일은 한국보다 책값도 비싸다. 그렇지만 실제 교재비 지출은 한국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학교도서관 시스템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학교 도서관은 전공학과 책을 충분히 준비한다. 학생들은 관련 책을 권수 제한 없이 빌릴 수 있다. 게다가 대출한 책은 다른 학생의 대출예약이 없는 한, 연장해서 빌려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시스템으로 약 100여 권의 전공도서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공부하고 있다.

 

 

▲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공서적 ⓒ장보문

▲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공서적 ⓒ장보문

 

 

도서관시스템은 학생들이 최대한 책을 빌려서 공부하도록 지원한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는데, 학생들이 막상 열람실에서 공부하려 할 때 책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열람만 가능한 책을 따로 지정, 서가에서만 볼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외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이다. RUB의 경우 외국어교육원(Zentrums für Fremdsprachenausbildung)에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등 총 14개의 언어교육을 지원한다. 학생들은 레벨테스트 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독일의 대학복지를 체험하면서 한국의 대학교육은 거의 모든 비용을 학생 개인이 부담하는 구조라는 것을 느꼈다. 반면, 독일은 등록금·학자금대출뿐 아니라, 교통비·교재비와 외국어 교육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학교의 지원책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어쩌면, 독일 복지의 진정한 면은 큰 복지와 함께 어우러진 이런 디테일일지도 모르겠다.

 

교육복지가 게으른 대학생을 양산할 거라고?

 

교육복지를 늘리자고 하면, 당연히 반론도 따라온다. 등록금을 낮추고, 학자금대출도 충분히 제공하는 등 혜택을 주다 보면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혜택만 누리기 위해 학교를 오래 다니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충분히 가능한 반론이다.

 

독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학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전공에 따라 횟수의 차이는 있으나, 과목당 보통 세 번에서 네 번 정도의 전공시험 기회를 준다. 제한된 기회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전공을 계속 공부할 수 없다.

 

의대도 마찬가지인데, 전공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그만두거나 전공을 옮겨야 된다. 제도적으로 학생들이 공부를 등한시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 제도는 학생 본인이 대학교 1·2학년 때 학과 전공을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대의 경우, 예과 2년 동안 화학·물리·생물·생화학·생리학·해부학·의학심리학 및 사회학 등을 배우는데, 이 모든 과목마다 네 번의 시험기회만 준다. 첫 학기부터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본과 기간에는 시험기회가 세 번으로 줄어든다. 시험은 물론 절대평가다.

 

유럽을 참고로 복지정책의 상상력을 넓혀보자

 

복지사회를 향해 가는 길이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방법은 상상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정책적 상상력은 현장에서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서도 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반값등록금 논의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 사례는 교육복지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을 넓히는데 여러 도움을 준다.

     

장보문 독일 보훔대학교 의과대학 본과과정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