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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판 깬 핵폭격기, 미국은 왜?

[정욱식 칼럼] 살얼음판에 돌 던진 오바마, 노벨평화상의 의미를 되묻는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2.07 14:53:38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어제(6일) 오후에 회의를 마치고 동료들과 식당에 들어섰을 때, 방송 뉴스를 보고 절로 나온 탄식이다. 미국이 5일 B-52 전략 폭격기를 출격시켜 군산 직도 상공에서 훈련을 실시했다는 보도에 대한 반응이었다.

 

동료들은 이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태도에 강한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었다. 북한은 5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해놓고 6일에는 또다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남측 일부 언론의 대북 보도를 문제 삼으면서 “합의 이행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변덕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좀 이상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미 양국이 예정대로 군사훈련을 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상태에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했고,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의 반북 보도 역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북한은 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날 이산가족 상봉 합의 이행의 재고를 시사하며 한미합동군사연습과 비방중상의 중지를 요구했다.ⓒ조선중앙TV=연합뉴스

▲ 북한은 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날 이산가족 상봉 합의 이행의 재고를 시사하며 한미합동군사연습과 비방중상의 중지를 요구했다.ⓒ조선중앙TV=연합뉴스

 

 

그런데 ‘북한이 왜 이럴까’라는 궁금증은 미국이 전략 폭격기 훈련을 실시했다는 보도를 접하곤 풀리게 되었다. 북한이 예정대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는 통보를 받고도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로우키(low key)'를 유지하겠다는 남측의 시그널이 이었던 것이 주효했다. 그런데 미국은 뒤통수를 치듯이 남북한이 이산가족 실무 회담을 하던 날에 전략 폭격기 훈련을 강행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미국

 

북한이 이 사안을 또다시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려고 하는 것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 역시 매우 실망스럽다. 남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관계 개선을 향해 살얼음판을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그 위에 큰 돌을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전략 폭격기 동원 훈련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 합의 소식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도대체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의구심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B-52 편대가 소속된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는 “미 태평양사령부는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태평양 지역에 전략 폭격기를 순환 출격시켜왔다"고 밝혔다. 통상적인 것이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해명은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는 격’이다. B-52는 최대 12기까지 핵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고, 개당 폭발력은 170~200kt 수준이다. 1기의 전폭기만으로도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보다 100배 이상 강력한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전폭기로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훈련해왔다면, 이는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던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위반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10년 이전부터라면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기 이전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아마도 태평양 사령부 등 미국 펜타곤과 군부는 남북한의 화해협력이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펜타곤은 10년간 5천억 달러 안팎의 군사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군비 삭감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다. 특히 매년 봄이면 미국 의회가 국방예산 심의에 착수하기 때문에 펜타곤이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음모론적 해석일 수 있지만, 이러한 해석이 아니고선 미국의 행태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작년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 북한의 위협과 남한 내에서 부상하는 핵무장론을 동시에 억제하기 위해 B-52와 B-2 등 전폭기를 공개적으로 동원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러한 사유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B-52 뚫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덕분에 노벨 평화상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서 오바마의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전략적 인내’라는 모호한 이름 하에 대북 협상에는 몸을 사리고, 핵무력 시위는 수시로 벌이고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세계 최강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이면서 다른 나라도 이 길로 유도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바마 행정부는 조지 H.W 부시 행정부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 23년 전 미국은 한반도 전술 핵무기를 모두 철수시키고 핵공격 훈련이 포함된 ‘팀 스피릿’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기여한 바 있다. 비록 93년에 한미 양국이 ‘팀 스피릿’을 재개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 그 성과는 유실됐지만, 미국이 자제할 때 북한도 호응할 수 있다는 교훈을 찾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끝으로 북한에도 당부하고 싶다. 미국의 B-52 동원 훈련에 분개할 수는 있지만, 이걸 이유로 남한과의 합의를 번복하거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 미국 내 매파들을 돕는 것이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기조를 확고히 다져야 한다.

 

다행히 남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상봉자 명단을 교환하고 금강산 시설 점검차 남측 인원의 방북은 이뤄졌고 한다. 모쪼록 안팎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화해협력과 평화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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