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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미래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박근혜 정부

 
지금이야말로 우리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
 
이진우  | 등록:2014-02-10 09:19:55 | 최종:2014-02-10 09:53: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주 제가 가입한 자동차보험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3월초에 자동차보험이 만기가 되니 미리 보험료를 산정해주겠다는 내용이었지요. 작년과 동일하게 견적을 뽑아보았더니 몇 만원 더 싸게 나오더군요. 그래서 계약을 갱신하겠다고 했더니 만기일에 맞춰 자동 결제를 신청하고 청약서, 약관과 보험가입 확인서를 보내주기 위해 필요하니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아직 계약이 한 달 가까이 남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냐고 화를 내며 끊어버렸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냥 알려줬을 내용인데, 혹시라도 그 몇 주 동안이라도 저의 개인정보를 누군가가 갖고 있을 거고, 그것이 유출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애꿎은 보험회사 안내 직원에게 화를 낸 셈이지요. 그러면서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한국이 IT강국으로 급성장하고, 전자상거래, 게임, 모바일 콘텐츠 등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라간 데에는 금융회사, 통신회사… 전자상거래 회사 등을 믿고 아낌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해준 고객들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거지요.

지난 1995년 대우자동차는 국내 자동차업계 최초로 ‘고객 품질 평가단’이라는 획기적인 마케팅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총 100명의 품질평가단에게 1년간 에스페로 승용차를 제공하고 직접 사용하게 하면서 월 1회 품질평가 보고서를 제출받고 연 2-4회 지역본부별로 평가단 간담회를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거였지요. 결과는 ‘초대박’이었습니다. 약 3주간 품질평가단을 공개 모집한 결과, 영업소 방문접수 26만여명, 우편접수 12만여명, PC통신 접수 2만여명 등 모두 43만 5천명이 신청했습니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자동차가 한 대씩 있던 시절이 아니라, 마이카 붐이 불기 시작했던 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자동차를 1년간 공짜로 탄다는 것은 대단한 인센티브였던 것이죠. 저도 공짜 심리가 발동하여 응모하겠다는 야무진 마음을 먹었는데, 접수 신청서를 읽어보고는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총 15~6페이지 정도가 되었던 것 같은데, 신청자가 선호하는 차량 색상, 배기량, 옵션 등은 물론, 차를 바꾸는 주기는 몇 년인지, 차를 바꿀 때 고려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채워야 할 빈칸이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자동차를 공짜로 타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수백 대 일이 될게 빤한데 굳이 그런 수고로움까지 할 건 없다고 생각했죠.

결론적으로, 그 당시 고객평가단에 응모했던 40만 명이 넘는 고객들은 기꺼이 그와 같은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대우자동차 입장에서 보자면 돈 주고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객정보를 아낌없이 준 거였지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당시 해외언론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파격적인 마케팅 기법을 도입한 대우자동차도 대단하지만, 정확히 그들이 원하는 성과(최고급 고객정보 입수, 기업 이미지 제고, CRM 시스템 구축)를 올릴 수 있도록 충성도를 보여준 한국 고객들에 대해 경악했던 거죠.

당시만 하더라도 CRM(고객관계관리) 개념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대우자동차의 발 빠른 마케팅도 눈부셨습니다. 대우자동차는 품질 평가단에 응모했으나 탈락한 사람 전원에게 사장 명의의 감사편지와 함께 대우차를 살 때 10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제공했으며, 전국 지역본부별로 이들을 초청, 간담회와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여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평가단 응모 고객들로부터 “응모단에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감사편지 및 선물에 감사한다”는 편지가 쇄도하는 등 적극적인 사후 관리가 회사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자동차 판매대수에 있어서는 국내 1위 현대자동차에게 크게 뒤지고 있었지만 자동차 CRM의 신기원을 열은 것이지요.

비록 대우자동차는 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주인이 바뀌었지만, 대우가 20년 전에 도입한 마케팅 기법은 훗날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도 감탄할 만큼 엄청난 성과였습니다. (GM도 그 후 몇 차례 동일한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여 성과를 거두었지요.) 이처럼 우리 IT기업들이 짧은 시간 내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우자동차를 시작으로 네이버, YES24, 옥션, G마켓, 인터파크, 벅스뮤직 등에게 원하는 고객정보를 제공해준 한국 국민들의 놀라운 충성도가 한 몫 했지요.

그런데 이제 그 충성도가 도리어 IT기업을 옥죄는 부메랑이 되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충성도가 높았던 한국 국민들이 돌연 차갑고 깐깐한 고객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방대한 고객정보를 갖고 있는 IT 공룡들이야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새로운 콘텐츠와 서비스로 시장에 진입한 후발 기업들은 앞길이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비스 회사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상황에서는 약간의 혜택과 인센티브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불신이 깊어지면 CRM 자체가 불가능해지지요. 예전 같으면 3억원이면 얻을 수 있었던 고객정보를 이제는 300억원을 들여도 얻을 수 없게 된 거지요. 그 어마어마한 비용과 손실에 대해 과연 한국경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현재, 박근혜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해결 방향을 온통 ‘2차 피해 확산 방지’에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소극적이면서도 최소한의 대책에 불과합니다. IT강국 코리아의 기초체력이 약화되고 소멸되어 가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문제의식이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으로 인해 이제는 OECD 가입국 평균보다도 더욱 소극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한 고객들에 대해 어떻게 신뢰를 회복시키고 충성도를 높일 것인지 대책은 있는 걸까요?

창조경제의 핵심은 업종 및 기술 간 융·복합을 통해 정보와 노하우가 공유됨으로써 기존과 다른 제품 또는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세혈관이 바로 ‘신뢰’입니다. 상대방이 나의 정보를 빼가고 활용함으로써 나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융·복합과 정보와 노하우의 공유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창조경제의 심장 박동이 멈춤으로써 혈액 공급이 중단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이처럼 사안이 중대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산업별 창조경제 점검’이라는 한심한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심장 박동 수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고, 혈관이 막히고 있는데, 언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좋은지, 다이어트 및 체력 보강을 위한 계획을 세우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떤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3가지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 개인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옮기고 담당 의사도 바꿔야지요. 둘째, 보호자와 가족이 모여 응급조치 이후의 상황(입원, 수술 등)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셋째, 응급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그간 벌어졌던 모든 일들에 대해 숨김없이 의사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올바른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이와 같은 3가지 조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현오석 경제팀을 경질하지 않겠다는 것은 종합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의 민간요법을 계속 고집하겠다는 이야기지요. 여야가 대립하고 여당 내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는다는 건 가족 간 논의도 안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국민 그 누구도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 된 정확한 원인 및 이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그간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감추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이래서야 응급실로 실려 간 환자를 소생시킬 수 있습니까?

박근혜 정부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관심하다면 우리 국민이라도 솔로몬 왕 앞에 나온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한국경제를 구하는 데에 앞장서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 합니다.

이진우 (창조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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