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죽음의 공장’ 현대제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만나다

[르포]‘죽음의 공장’ 현대제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만나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 우선돼야"

 

윤정헌 기자 yjh@vop.co.kr
입력 2014-02-14 13:28:37l수정 2014-02-16 12:26:12
 
현대제철 공장

현대제철 공장ⓒ민중의소리

 

당진 현대제철에서는 지난 2012년 9월 철 구조물을 해체하던 작업자가 사망한데 이어 10월에는 크레인 위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감전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3월에는 고로3기에서 작업하던 직원이, 5월에는 보수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직원 5명이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11월에는 제철소 내 발전소에서 가스 누출로 1명이 숨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안전사고에 현대제철과 정부가 지난해 12월 안전사고 방지 종합 대책을 내놨지만 이를 비웃듯 다음 달인 1월 23일 협력업체 노동자가 고온의 냉각수 웅덩이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이어졌다.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당진 현대제철에서 죽어간 노동자가 13명에 달한다. '죽음의 공장'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도를 넘어선 사망사고가 이어져서일까. 이제 당진 현대제철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는 국민들의 기억에서조차 쉽게 잊힐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크게 A지구와 B지구, 그리고 제철소 건설을 위한 C지구로 나눠진다. A지구는 연산 120만톤 철근공장과 철 스크랩을 원료로 해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A열연공장으로, B지구는 연산 300만톤의 B열연공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C지구는 고로를 포함한 일관제철소가 위치해 있다.

현대제철은 1997년 투자규모 5조원대의 거대 철강회사 한보철강이 차입경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도나자 2004년 이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이후에는 H형강과 철근, 열연강판, 냉연강판, 후판, 일반형강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며 ‘10억불 수출 탑’상을 수상하는 등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당진공장은 내부에 위치한 하청업체만 90여개에 달한다.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7천여명, 원청인 현대제철의 정규직이 4천여명 등 총 1만 1천여명의 노동자가 24시간 공장을 가동한다.
 

오전 근무교대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는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오전 근무교대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는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민중의소리

 

현대제철 현장 노동자들과의 만남

날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찾은 현대제철은 차로 한참을 달려야 할 거리가 남았음에도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여의도 크기의 2.5배, 총면적 635만㎡라는 거대한 공단은 보는 이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멀리 보이는 7~8개의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3일 오전 8시께 취재원들을 만나기 위해 현대제철 공단 근처에 위치한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온 비정규직 노동자 10여 명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야간 근무의 피곤함이 노동자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힘든 일을 마친 뒤 소주라도 한 잔 마실 법도 하지만 차를 몰고 집까지 돌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은 묵묵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친 노동자들은 다 함께 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부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사무실은 내내 비어있었던 듯 한기가 돌았지만 15평 남짓한 사무실은 금세 노동자들의 온기와 활기로 가득 찼다. 

사무실에 도착한 사람들은 종이컵에 스틱커피를 한 잔씩 타고 회의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서로의 집안 문제, 회사 일 등 사담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 것도 잠시 현대제철의 '안전 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담소를 나누던 표정들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곳에 모인 노동자들은 대양기업, (주)EHD, PJ로익스 등 90여개에 달하는 현대제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근로환경 개선과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0~40m 높이 안전점검...일부 난간도 없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신이 일하는 업무환경에 대한 문제를 쏟아냈다. 현대제철 장비를 담당하는 이레산업의 공민호(43)씨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고충을 털어놨다. 

"저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장비를 운전합니다. 쉴 새 없이 일하다보니 쌓이는 피로감이 상상 이상이죠. 이런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제철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운행하는 장비마다 다르긴 하지만 굴삭기나 로다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뻘건 쇳물을 퍼 올리던지 밀어 넣어야 하죠. 가끔 그 쇳물이 터지면서 차 유리로 튈 때가 있어요. 쇳물의 온도가 엄청나기 때문에 차 유리를 뚫고 운전자에게 화상을 입히기도 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대제철에서 일명 '삽질(낙광처리)'을 한다는 대양기업 안기호(44)씨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하루 종일 삽질과 곡괭이질을 합니다. 막노동보다 더한 강도를 자랑하죠. 한 삽에 퍼올리는 쇳가루 무게가 10kg 정도는 되거든요.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요. 작업하는 곳은 컨베이어벨트가 24시간 돌아가고, 철광석 등이 지나가며 떨어지는 분진에 앞도 안 보일 정도죠. 자칫 잘못하면 바로 옆에서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힘에 부쳐 비틀 거리기라도 하면 아찔한 상황이 발생해요."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정재욱(41)씨가 말을 이었다. 정씨는 'S드림'이라는 코일야드 출하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에서 4년을 일하다 해고를 당했다. 

"S드림은 천정크레인을 통해 코일을 출하하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생산된 코일야드를 옮기는 일을 하는데 작업 자체는 위험하지 않지만 장비를 점검할 때는 정말 위험천만하죠. 내가 운전하는 크레인에 이상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안전 점검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천장크레인이다 보니 지상에서 30~40m 정도 높이에 있는데다 생산에 지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장비는 계속 가동 중이고 어둡기까지 해요. 가장 위험한 건 크레인이 움직이는데 방해되는 부분에는 난간이 없다는 거예요. 조심히 작업한다고 해도 자칫 추락할 수도 있는 거죠."

안전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화를 나누던 노동자들은 하나 둘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깊게 담배 한 모금을 빨고 한숨 섞인 연기를 내뿜던 현우태크 해고자 백승배 씨가 입을 열었다. 

"현대제철 안에서 비정규직은 아무런 힘도 없어요. 사무실은 물론이거니와 의자, 책상 등 사무기구들조차 원청인 현대제철의 소유죠. 돌아가신 분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죽어라 일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위험이 뻔히 보이는 일임에도 지시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 속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백씨의 말이 끝나자 'PJ로익스'라는 하청업체에서 출하를 검수하는 박성재(28)씨가 말을 이었다.

"죽어가는 하청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임금도 환경도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또 다른 의미로 안타깝죠.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 일한 만큼의 대가조차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온 이들의 죽음이기에 더욱 안타까운거죠."

"미리 통보하고 오는 안전 관리가 무슨 소용?"

대화는 안전사고에 대한 정부와 현대 기업의 대처 문제로 옮겨갔다. 이들은 그동안 쌓인 불만이 많았는지 모두들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현대제철에서 잇다른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지난달 3일 노동부는 해당 공장을 '안전관리 위기사업장'으로 특별관리하기로 정하고 근로감독관 3명과 안전보건공단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상설감독팀을 꾸렸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도 올해 안전관리 투자 예산을 1천200억원에서 5천억원으로 증액하고 안전 관리 인력도 외부전문가 영입 등을 통해 기존에 발표했던 150명에서 200명으로 확대 충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현대제철은 당진공장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제철소에 300명에 이르는 상설순회점검반도 편성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신경질적으로 피우던 담배를 끄고 식은 커피를 다 들이킨 공씨는 "노동부가 직접 현장 안전에 대해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현장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감독관이 현장 안전점검 사실을 관리관들에게 미리 통보하고 찾아오기 때문에 공장문을 닫거나 위험한 작업들을 모두 중단해 버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진짜 노동부가 현장 점검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온 것이라면 불시 점검을 통해 현장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더 할 말이 남은 듯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박성재씨는 "현대제철에서도 300여명의 상설순회점검반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쓸데없는 짓"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위험한 부분에 대해서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기보다 돌아다니며 지적하고 징계하기에 바쁘다"면서 "이는 오히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감시 받고 있다는 느낌만 줄 뿐 안전사고를 막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처음부터 옆에서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민구 지회장은 "현대제철 안에는 정규직이 착용하는 하얀 안전모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착용하는 노란 안전모가 있다. 이들의 처우와 근무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비정규직에게는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조차 없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 사항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현대제철과 노동부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담당자들이 자리에 없어 '통화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걱정하는 가족에게 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 괜찮다고 안심시켜요"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이들은 한결같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다면 이곳에 남아 있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정재욱씨는 "그나마 연로하신 부모님이 제가 일하던 곳에 대해 잘 모르셨기에 망정이지"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자 이 자리에서 가장 젊은 박씨도 "나는 가족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전사고로 인명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부모님과 아내 심지어 처가에서까지 전화가 온다"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니 걱정 없다'는 말로 안심시킨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해 두 살 배기 딸이 하나 있다. 사정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지금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올해 4월 그동안 미뤄왔던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인력이 부족해 휴일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밤늦게 퇴근해 집으로 향하던 중 피로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전봇대를 들이 받아 차를 폐차시키는 아찔한 경험을 한 적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진 현대제철에서 만난 하청업체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소박한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그저 자신이 일한만큼 대가를 받고 처우에 있어서도 차별받지 않는 것. 지극히 당연해야 할 것들이 이들에겐 한없이 멀고 힘든 현실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