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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석기 무죄'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

[주장] '내란음모 사건' 무죄 판결 나면 국정원·검찰 개혁 가능하다

14.02.16 15:32l최종 업데이트 14.02.16 15:32l

 

 

설 연휴가 끝난 지난 3일,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충격파가 몰려왔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의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내란음모·내란선동죄 혐의로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 등 7명의 구속자들에게 총 105년의 징역을 구형했다. 

오는 17일에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내란음모·내란선동죄에 대해 중형 선고를 내릴까? 중형 선고를 내려도 충격일 것이고, 무죄 선고를 내려도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재판 과정을 지켜본 바, 무죄 선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만약 무죄 선고가 난다면 우리 사회는 또 어떤 논란에 휩싸일까?
 
관권 부정선거가 확인되자 터뜨린 초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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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지난해 8월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국정원 직원들과 통합진보당 지도부간의 대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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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8일, 내란음모 사건이 갑자기 터졌다. 정부와 국정원은 국회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면서 위기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한 조직적인 관권 부정선거가 법정에서 확인되자 시민들은 더욱 거세게 항의했다. 애써서 만들었던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도 조작이었음이 확인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버렸다. 그러자 대대적인 수술을 당할 처지에 놓인 국정원은 초강수의 사건을 터트렸다. 위기 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조작극일 가능성이 짙은, 현역 국회의원이 중심에 있는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린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국정원이 만들어낸 가상의 '적'인 통합진보당과 경기동부연합, 그 핵심에 있는 이석기 의원을 향한 가혹한 돌팔매질이 이어졌다. 언론들은 미확인 보도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그중 결정판은 지금은 누더기가 돼버린 <한국일보>의 RO 녹취록 보도였다.

이 녹취록이 공개된 뒤에 면책특권을 가진 현역 의원의 체포 동의안이 국회에서 너무 쉽게 통과됐고, 현역의원이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국회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피의사실공표를 금하는 형법은 무력화됐고, 무죄추정 원칙을 규정한 헌법마저도 무시됐다. 

냉전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1950년대의 매카시즘을 연상케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순간에 조성됐다. 우리는 그 뒤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기억한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찍어내기'를 통해 강제로 물러났고, 윤석열 국정원 사건수사팀장이 수사 일선에서 배제돼 수사팀이 해체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사건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고 나면 더욱 커졌다. 그러자 정부는 이번에 '통합진보당이 위헌 정당'이라며 정당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이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50년대 분단 독일에서 나치 부역자들이 했던 짓이 2010년대 한국에서 되살아났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종복몰이'라는 지독한 홍역을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다. 홍역은 유아들이 앓는 전염병이다. 고열과 발열에 의한 발진, 그러다가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병이다. 이제 홍역은 제때 예방주사 한 방만 맞으면 끝나는 병이 됐지만, 우리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는 백신조차 맞지 않은 유아기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구속자의 가족들에게까지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연좌제가 부활했고, 대학 강의실까지 '종북'이라는 유령이 점령했다. 아직도 한국은 '명예살인'이 가능한 미개사회인 것이다. 한 사회가 미워하는 사상이나 의견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 삼아 탄압을 가하는 세력들이 더 위험하다는 역사적인 경험을 한순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예방주사가 없었기에 앓는 지독한 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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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공개된 '내란음모' 결심공판 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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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인 나는 누구보다 이 사건의 무죄 선고를 기다린다. 그래야 우리는 이른바 위험한 사상 혹은 의견 때문에 감옥에 가는 사회적 유아기를 벗어나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이나 의견이 있다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고,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수 있고, 그 토론과정을 거쳐 대중적인 검증을 받는 게 민주주의다. 

이번 사건에서 1심 재판부가 검찰의 억지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석기 의원 등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면 관권 부정선거를 덮고 위기를 탈출하려는 정부와 국정원·검찰 등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이런 판결이 난 것을 기회 삼아 위헌정당해산 결정을 서둘러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종북몰이'가 횡행하는 겨울공화국이 될 것이다.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겨울공화국에서는 사상의 자유는커녕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는 과거의 일이 돼버린다. 엄혹한 독재의 칼바람 앞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무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정치 검찰과 정치 개입을 한 국정원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원래 이 사건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니던가.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의 토론과 표현은 사법처리의 대상이 아니라는 상식적인 결론이 내려진다면, 마녀사냥에 위축된 우리 사회가 비로소 기를 좀 펼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있지도 않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지독한 홍역을 앓아왔다. 언제까지 사상적 유아기에 우리 사회를 놔둘 것인가. 오는 17일의 재판에서 무죄 선고가 나길 절실히 기다리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래군님은 인권중심 '사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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