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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한민국 인권 안녕한가!

[연재140]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유태영 목사
기사입력: 2014/02/17 [15: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내란은 주로 부도덕한 세력이 정권을 가로채려 할 때,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어김없이 등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0년 내란음모 등 혐의로 계엄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무리한 내란음모조작사건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 자주민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빼았긴 인권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인권말살은 부자들의 풍요로움 때문
오늘의 대한민국 인권 안녕한가?


오 늘의 대한민국에서 돈은 하나의 권력이다.  아니 권력은 돈이다. 대학에서 정치학이나 사회학의 논문에서 인권 (Human Rights) 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온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휘에 나오면 한국 사회의 일상 생활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는 쓸모 없는 단어가 되고 만다.

서구 계몽주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권을 누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서구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권은 자본에 종속된다. 그리고 더욱이 서구제국주의에 종속된 제3세계 나라들에서 <인권>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17-18세기에 서구 사회에서 형성된 인권이라는 개념은 본래 자연법에서 나왔다. 하지만 자연법 이론은 기본적으로 실정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자연법과 실정법은 서로 대립되는 투쟁의 관계로 발전했다.
1919년에 독일에서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지 계급이 서로 타협하여 바이마르 헌법을 탄생시켰다.

바 이마르 헌법에 의하면 첫째,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위해 인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둘째, 약자의 경제적 안전과 사회적 권리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 세째, 법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법 이전에 있는 자연법과 도덕적 윤리를 포함한다.

물 론 바이마르헌법 이후에 여러 차레 민주주의와 인권혁명이 계속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서구문명권에서 독특한 실정법이 되지 못했다. 21세기에 있어서 서구문명은 정치적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의 기독교적 전통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오늘 한국에서 정치와 사회, 정권과 민중, 그리고 대기업과 노동조합 등 모든 분야에서 양편으로 갈라지고 대립하여 서로 투쟁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권의 침해는 한국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사회악이 되고 있다. 권력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인권이 붕괴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검찰이 이석기 의원에 대하여 내란음모와 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재판을 했는데 지난 2월 4일에 20년 구형을 내렸다. 대한민국이 정말 법치국가라면 법적 판결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한국 헌법 제87조에 의하면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중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는 2013년 대선에서 불법적으로 국가 기관들을 총동원하여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큰 범죄를 저질렀다. 박근혜가 저질은 범죄 행위는 국가의 질서를 파괴 한 내란죄에 적용되는 중대한 범죄행위였다.

그런데 대통령이라 해서, 또 집권당의 국회의원이라 해서, 친정부적인 법관이나 판사라고 해서 또 대기업 총수도 국가 헌법의 대원칙은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법칙이기 때문에 아무도 어길 수 없다.

< 이석기 의원의 인권>과 <박근혜의 인권>은 법 앞에서 만민은 평등하다고 하는 법칙 하에 조금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 누구든 헌법 제 87조를 어기고 국가의 안보를 해치는 큰 죄를 범했으면 그 범죄행위에 적용되는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다 잘 알다시피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진압을 주도하여 수백명을 죽인 중범죄자이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수천억원의 부정축재를 쌓은 민족 반역자이다. 그러므로 전두환은 중형에 처해야 마땅한 중범죄자이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불법적으로 전두환을 사면했으며 그는 지금까지 평안히 살고 있다. 박근혜는 전두환에게 요란스럽게 솜방방이를 높이 들어 법치국가의 행세를 과시하는 처벌을 하는 듯 했으나 결국 예측한 바대로 일장의 연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기이한 범죄행위들이 70년 동안 한국의 군부의 정권 안에서 줄곧 계속되고 있었으며 오늘 박근혜 정권하에서도 여전히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런데 이와 같은 불법적인 정권이 한국에서 그토록 오래 동안 지속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력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국 CIA의 절대적인 큰 손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미국이 지원해 주고 있는 모든 제3세계 나라들에게 있어서 <정권>은 있으나 <인권>은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1948년에 이승만 독재정권이 처음 창설될 때부터 시작된 <인권말살> 정치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친미친일 정치적 맥락을 통하여 계승됐다. 그 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이명박근혜로 연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은 냉전시기에 제3세계에서 친미 독재만능주의와 <인권말살> 정책을 장려하고 강요했는데 제3세계 나라들 중에서 한국은 가장 성공한 나라이라고 했다.
질병은 치료해 주고 <인권>은 고쳐주지 말라.  이것이 이승만 독재정권 시대부터 오늘 이명박근혜 정권에 이르기 까지 줄곧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숨길 수 없는 대외정책이다.
우 리가 다 알지 못했던 과거의 미국의 인권말살 제3세계 대외 정책과 이제는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의 <하수구>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의 역대 정권들과 오늘의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인권말살>에 대하여 침묵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민중의 인권말살은 부자들의 풍요를 위함이다.

1948년 5월 10일에 한국 역사상 최초로 한국의 선거가 실시되어 이승만을 초대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의 자유 그리고 민권의 신장 등을 주장했다. 순진한 민중들은 온 나라가 하나 되어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하여 열정적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 선서와는 정반대의 독재자가 되여 1960년 4월 19일에 이른바 <4월 학생의거>에 의하여 집권 1년간의 독재정권의 몰락을 당했다.

이승만은 집권 초기부터 친일파 세력을 등용하여 민족분열을 야기했으며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을 암살하고 탄압하여 반민족적 통치를 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자유당을 이승만 개인숭배를 위한 개인의 사당으로 전락시켰으며 그 누구든 자유당을 반대하면 공사주의자 빨갱이로 몰아 투옥과 사형을 감행하는 독재를 하였으며 3선 부정선거를 통하여 장기집권을 꿈꾸었다.

이 승만의 기본 정치전략은 미국을 등에 업고 주창한 무력 북진통일이었다. 그리하여 민족화합 평화통일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이 민중의 지지 35%로 유박하는 것에 대하여 위협을 느껴 조봉암을 암살했다. 여운형의 암살도 같은 맥락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1960년 4월 19일에 발생한 학생의거인 4.19혁명에 의하여 집권 12년 만에 몰락했다.

1961 년 5월 16일에 박정희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여 1972년까지 18년간 군부독재 정치를 했다. 박정희는 경제후진을 면하기 위해서 개발독재 필수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경제개발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발이며 부익부 빈익빈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없다는 말인가?

1975년에 박정희는 인혁당 정치조작으로 8명을 사형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법으로 투옥했다. 하지만 이후 이들에 대한 재심 소송에서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나와 국가가 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거액을 배상하는 일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한국의 역사는 경제발전 뒤에서 <민중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피눈물의 역사이다.
박정희식 정경유착, 노동착취, 저임금, 인권말살 등 최악의 악법들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어처구니없이 오늘 한국의 대기업의 업주들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심으로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박정희를 찬양하고 있다.

그 런데 또 놀라운 것은 오늘 한국의 대기업의 총수들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박근혜를 유력한 지도자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들의 기득권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토록 지키려는 야망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권이 계속되는 한 노동착취와 저임금정책 등 인권말살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승인받은 12.12 반란과 5.18 사건

전 두환 대위는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하여 육군사관학교 생도 800명과 육사 졸업생 200명을 긴급히 동원하여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종로와 남대문을 지나 서울 시청광장까지 행진하여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를 지지하는 군인들의 시위행진을 하여 서울시민들에게 과시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두환 대위는 박정희와 김종필의 두터운 신임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전두환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일약 충성군인으로서 명사(Star)가 됐다.

전 두환의 진급은 급행열차를 타고 곧 소령, 대령, 준장,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1980년에는 드디어 3성장군 중장이 되기까지 진급됐다.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부장과 국가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등 국가의 최고 요직들을 두루두루 다 맡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가 김제규의 총탄에 맞아 죽은 후에 전두환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와의 공모자라고 모략하여 축출하였으며 최규하 임시대통령 대행자를 공갈 협박하여 무엇이든 군부의 지시를 받도록 압력을 행했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하나회>를 조직하여 육사 제11기 동기생인 노태우를 비롯하여 경상도 출신 고급장교들을 포섭하여 정치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때 당시 주한미국대사 글라이스틴과 CIA 한국지부장 그리고 주한미군사령관 매그루터 장군 등 3인은 미국 본국 정부에게 전두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박정희의 5.16 군부 쿠데타 때는 사회주의에 대하여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두환에 대하여는 사회주의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저 방관하는 입장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인가? 전두환은 미국을 안심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자신만만하게 12.12 반란을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 대행자를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려고 만용을 부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두환은 <북한의 남침설>을 조작 발표하여 군부세력을 강화했다.
전두환은 김대중을 체포했으며 기회를 이용하여 죽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로 감히 김대중을 죽일 수는 없었다. 전두환의 군부세력에 대하여 학생들의 데모는 10-20만명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 러한 상황에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으며 전두한은 미국의 묵인 하에서 7공수여단 33대대를 광주에 투입시켰다. 하지만 사태가 격화되자 전두환은 5월 27일에 계엄병 25,000명을 추가로 투입시켰다.
5.18 광주사건으로 사망자 600명과 부상자 3,200명이 발생했다.

미국은 이 광주사태에 대하여 어떻했는가? 모르쇠로 침묵하다가 추후에 형식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광주의 시민분쟁에 대하여 경악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관련자들이 극도로 자제심을 발휘하여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를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5.18 광주사건을 강제진압 하는데 성공한 전두환은 대통령 출마승인을 받기 위하여 미국에게 각서를 제출했는데 그 각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거리 180 km, 탄두 무계 453 kg 이상의 미사일은 절대로 개발하지 않겠다>

전두환의 각서를 받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전두환의 대통령 출마를 승인했다.
전 두환은 1980년 8월 6일에 4성장군 대장으로 승진하고 8월29일에는 대장에서 예편하여 민간인이 되는 연극을 연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장춘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해서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행한 것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박정희 집권 당시에 개발 중에 있던 핵미사일 개발 시설을 완전히 폐기시키는 것이었다.
전두환은 미국의 요구대로 <핵>이라는 단어까지 빼버리고 <에너지 연구소>라고 새로운 명칭을 사용했다. 전두환은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충성하는 하나의 고급 장교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 두환은 1981년 2월 28일에 개정한 새 헌법에 따라 5년 임기로 제12대 대통령이 되어 1987년 7월 10일까지 집권했다. 박정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1961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은 총 26년간 미국에 충성하는 고급 장교의 역할과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친미적 어용 대통령 노릇만을 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두환은 미국의 튼튼한 배경을 믿고 의지하면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였으며 순진한 민중의 인권을 말살시켰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전두환은 인권말살에 있어서 박정희 보다 오히려 더 한 수 높은 깡패적인 군인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전두환은 대통령직과 부패한 민정당의 총재직을 1987년7월 10일에 노태우에게 넘겨주고 퇴임했다.


노태우와 김영삼의 동상동몽 인권말살 정치

노 태우는 전두환과 유군사관 학교 제11기 동기생으로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연결되는 군인 출신 대통령이 됐다. 노태우를 물태우라고 했다. 그 이유는 노태우의 정치력이 확실하게 맺고 끊는 결단성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사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노태우는 이중인격자이다.

노태우는 전두환의 12.12사태와 5.18 범죄 등 태산 같은 5공 비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두환을 사형에 처하거나 감옥에 보내지 아니하고 백담사로 보냈다.
노태우는 결단력이 약한 물태우로 보이는 척 하면서 내막적으로는 계산된 흉칙한 이중인격의 행위이었다.

노태우는 겉으로는 소련과 우방외교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독한 친미친일 일변도 정치를 하여 전두환과 근본적으로 하나도 다른 점이 없었다. 또 노태우는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박정희 전두환과 동등한 범죄 행위를 했다.

노 태우는 김종필과 김영삼을 함께 묶어 3당합당을 성사시킨 이중 플레이를 하여 죽어가는 유신을 되살아나게 하여 민주화운동을 시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3당합당은 노테우 단독의 작품이 결코 아니라 미국 CIA와 합동작전이었다. 김종필과 김영삼 그리고 노태우 3인이 모두 다 미국의 대 한국 작전계회에 포섭이 됐던 것이다.

노태우은 김종필과 함께 민자당을 창당하여 <하나회>를 중심하여 경상도 정치력을 강화했다. 여기에 김영삼을 알면서도 합세했다. 그 이유는 김대중을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다. 노태우는 물태우와 보통사람이라는 인상은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인권말살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시켰다.
노태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퍼뜨렸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의 씨를 말리려 했다> 그리고 이런 유언비어는 좌경 빨갱이들이 퍼뜨렸다고 노태우는 주장했다. 노태우는 유언비어 작전을 이용하여 5.18사건을 광주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연막작전을 펴고 있었다.

전두환이 가발을 쓰고 자기의 정체를 감춘 것처럼 노태우는 물태우라는 가발을 쓰고 김영삼과 동상동몽의 이중인격적인 통치력을 과시하면서 인권말살 정치를 했다.

김 영삼은 노태우와 동상동몽의 꿈을 꾸면서 3당합당의 덕분으로 문민정부라는 명분을 과시하면서 대통령으로 등장했다. 군부의 독재를 반대하여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은 모습은 어디론가 증발해 살아져 없어지고 말았다. 사람이 변해도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하고 민중들은 실망과 분노를 터뜨렸다.

문민정부의 명칭을 내세우면서 등장한 김영삼 대통령은 개혁의 칼을 드는 척 하면서 사실은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했다. 김영삼의 3당합당을 보고 실망과 분노를 품고 있는 민중들에게 김영삼 대통령은 또 다시 절망적 모습을 내 보였다.

그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범죄에 대하여 어떻게 처벌을 했는가를 간단히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것은 재판이 아니라 사기극이었다.

    1995년 11월  전두화 노태우 구속수감
    1996년 8월 26일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 6개월
    1996년 12월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17년 징역
    1997년  전두환, 노태우 모두 특별사면과 석방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영삼은 3당합당의 원죄를 마음 속게 품고 있기 때문에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하여 처벌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었으며 또 사실은 처벌할 자격도 없었다.

김 영삼에게 또 한 가지 경악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997년 12월 18일에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12월 30일에 급하게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23명을 사형에 처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도대체 어찌하여 23명을 급하게 사형에 처했을까? 

그 이유는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면 곧 이들 23명을 사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김대중에 대한 정치적 시기심으로 김영삼은 이러한 잔인하고 악독한 조치를 시급하게 취했던 것이다. 김영삼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인권말살정책에 있어서 유독 보수주의 교회의 장로라는 입장에 대하여 하등의 차이점이 없었다.


이명박근혜 굴레에 매여 있는 인권

2007 년에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명박과 정동영이 치열하게 선거전을 치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에게 놀라운 선거전의 작전계획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놀라운 작전계획은 이명박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미국 CIA 한국지부가 제공해준 선거 작전계획이었다.

정 동영의 전라도 표를 이명박이 흡수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명박이 서울 S교회의 장로라는 것과 그리고 S교회가 한국의 최대 교단인 장로교 교단에 속해 있는 사실들을 유리한 자료로 삼아서 이명박을 위한 선거작전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선거작전계회이 성공하여 전라도에 있는 모든 장로교 교단에 속한 교회들뿐만 아니라 서울 S교회의 명성 때문에 이명박이 전라도 표를 획득하는데 있어서 크게 성공했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이명박은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라고 발언한 종교적 영향에 의하여 막대한 기독교인들의 기본적 지지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이명박의 5년 간 집권한 통치행태는 그 어느 하나 기독교 장로로서의 품성이나 자질같은 것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지면상 제한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5년간 집권에 대한 언론의 평가들을 간추려 제목들만을 살펴본다.

< 병역기피, 선거법 위반, 탈세, BBK 관련의혹, 4대강 피해사건, 수없이 많은 공약 불이행, 재산환원 약속 불이행, 반값등록 공약 불이행, 노조설립 방해, 위장전입, 뉴타운 의혹, 건강보험 편법, 세종시 공약 백지화, 작은정부 공약 불이행, 전교조 해임논란, 노동자 탄압정치, 비핵개방 3000 허위공약, 건강보험 편법, 불공정한 사면 특혜, 종북마녀사냥 등>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5년 간의 통치였다.

이명박의 5년간 집권은 외세의존을 보다 더 심화시켰으며 외세를 등에 업고 반민족적이며 반인권적인 독재와 허무맹랑한 공약 불이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남긴 것은 오직 <종북마녀사냥>과 <인권말살>이 사실적 역사기록 뿐이다.

박는혜 정권은 어떠한가?

2013 년 1년 동안에 국가 보안법으로 102명이 기소되었으며 62명이 부당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노무현 시대와 비교하면 3배나 증가한 수이다. 박정희 정권의 전통을 이어 받은 박근혜 정권은 군부출신들로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행정부의 오직들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의 <종북마녀사냥>을 그대로 이어 받은 연속선상에서 더욱더 가속화하고 있으며 진보진영을 무조건 반국가 단체로 낙인을 찍는 정치행태로 집권을 시작했다.
박 근혜식 유신정치 체제에는 정권을 옹호유지하는 군인 출신 김기춘과 남재준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고급 장교 군부출신들이 진을 치고 정권의 방패로 삼고 있으며 반일 조금이라도 박근혜의 어명에 대하여 반대 이견을 내비치기만하면 당장 채동욱 찍어내기처럼 목이 잘린다.
박근혜의 기초연금 20만원 공약이 거짓말로 드러났는데도 아무도 말을 못한다.

이와 같은 박근혜 정권이 귀태로 태어나 불법적으로 정권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하여 <가짜 대통령 물러나라>라고 항의하는 외침이 끝임 없이 계속되고 있다.

장 하나 의원을 비롯하여 양승조 위원, 전청배 의원, 박창신 신부, 이남종 사건, 대자보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천주교 사제들의 <비정상의 정상화 위해 대통령사퇴> 항의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도권 언론에서 일절 보도하지 않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항의의 함성들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요상한 사건들이 박근혜 정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박근혜 정권이 여러 많은 함성에는 굳게 침묵하면서 오직 이석기 의원에게만 대항하여 집중적으로 무섭게 반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박근헤 대통령 당선을 위하여 저지른 <국정원부정선거음모개입> 사건 방어하기에 너무나도 <큰 사건>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정원 사건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역시 야당 편에서도 대등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박근혜 정권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정부>와 <야당>이 서로 맞대항 할 수 있는 <큰 사건>들을 서로 대치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빠져 나오고 야당은 <블랙홀>에 빠져서 나오지 못 하도록 하는 수법인 것이다.

              <국가기관 총체적 불법선거개입사건>=<이석기좌내란음모사건>

이와 같이 두개의 사건을 서로 대치시켜 부각시켜 놓음으로서 우선 반공주의에 익숙하여 박근혜 편으로 치우치기 쉬운 대중의 심리작용을 교묘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국민들이 박근혜의 부정선거 당선을 뻔히 알면서도 반공주의 때문에 두려워 감히 저항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제도권 언론들이 가담하여 <국가보안법>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면서 부정선거에 대한 논란을 재2차적인 문제로 여기도록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리 민족이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박근혜 정권 뒤에서 모든 것을 와주고 작전계획을 제공해 주고 있는 미국 CIA가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없으면 한국의 국정원도 없다. 
이점에 있어서는 민주당의 김한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요새 특별히 안철수 이름이 언론마다에 왜 떠오르고 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명한 독자들의 몫이다.

1950년-1954년에 미국에서 매카시즘 (McCarthism) 반공주의 열풍이 일어 났는데 박정희는 그 열풍을 그대로 모방하여 18년 동안 유신 독재정권을 집권했다.
그 매카시즘을 전두환이 계승받아 이용했는데 미국에서는 임이 70년이 지나간 매카시즘을 오늘 박근혜 정권이 여전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박는혜 정권은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가짜 대통령 박근혜 정권에서 <인권>을 생각하는 것은 사막에서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허망한 생각일 뿐이다.


이 글을 맺으며...

한국에서 인권이 내동댕이쳐진 70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인권이 말살된 반민족적인 독재정권이 자리잡고 있다. 그 독재정권이 민중의 손과 발을 얽어매고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오 늘도 용산 참사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으며, 쌍용차 노조의 피투성이 싸움, 강정 마을의 문정현 신부의 생명평화 지키기 투쟁, 밀양 민중들의 송전탑 문제 투쟁, 철도 노조 민영화 반대투쟁,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등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민중들의 인권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고 있던 가톨릭 수녀들까지도 양심적 사회참여에 나서면서 박근혜 가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불의 앞에서 무력을 느끼던 70년간의 세월은 지나갔다.

박 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다> 라는 허황한 헛소리를 말한데 대하여 오늘 한국 민중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냉소적이며 또 성숙해졌다. 한국 민중들의 시야와 관점은 70년 동안의 남북, 북남 대결의 차원의 좁은 관점에서 부터 벗어나 이제는 시야를 돌리여 넓은 동남아와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에서 미국의 핵잠수함이 제아무리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해진 위치에 빙빙 돌고 있을 뿐이고 함부로 그 누군가의 강력한 견제력에 대하여 적대적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국의 상습적인 키리졸브와 독수리 군사연습 따위가 이제는 있으나마 하등의 관계없이 오직 우리민족끼리의 힘으로 민족의 대단결평화통일 성취하는 길만이 한반도 문제 근본 해결의 길이라는 말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 애국 민중들은 통일을 위한 정의로운 애국심과 두둑한 배짱, 열열한 단결과 단합으로 통일선봉대의 역할을 해야 하겠다. <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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