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분신을 시도했다’고 알려진 화재 사고에 대해 당사자인 김창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분신의 의도가 없었으며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의해 일어난 사고”라고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분신을 위한 퍼포먼스는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씀 드린다”며 “이남종 열사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부정선거에 대해 분연히 일어나라고 유언했지만 그 뜻이 희석되고 잊혀 간다는 현실을 질타하려는 생각에, 2박 3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러 (고가도로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당일 날 고가도로에 ‘관건개입 부정선거’ ‘이명박을 구속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었다.

김 사무총장은 “3일간만 고가도로를 점거하고 플랜카드 내용을 알리기만 하면 방송3사에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15일은 지난해 12월 31일 같은 장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 특검실시’를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숨진 고 이남종(41)씨의 49재를 앞둔 추모제가 열린 날이다. 
 
   
▲ 김창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분신의 의도가 없었으며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의해 일어난 사고”라고 밝혔다.
@이치열 기자
 

 

김 사무총장은 “분신할 생각이 없었다면 왜 등유를 가지고 갔냐”는 물음에 “경찰이 본인의 의도와 달리 조기에 강제로 진압을 시도한다면, 저항하기 위해 인화물질을 가지고 갔다”며 “그러다 불이 붙는다면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결연한 각오였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막상 올라가니 흥분되고 너무 두려웠다”고 덧붙였다.

김 사무총장은 그런 와중에 경찰 진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잠시 주저앉아 있을 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경찰이 설득하고 잘 다독여 주었으면 진정이 됐을 것”이라며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고 들어오니 저도 모르게 라이터를 당겼다.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사무총장이 몸에 뿌린 물질은 신나가 아닌 등유였기 때문에 라이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김 사무총장은 “경찰이 진압하는 순간에 ‘들어오지 마, 나가’라며 옆에 있던 번개탄에 등유를 부었다. 그게 터진 것 같다”라며 “‘'빵’하고 터지던 순간에 경찰이 저를 당겨서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차분한 설득단계가 없었던 점, 고가도로 아래에 안전 매트리스가 없었던 점, 화상 부위에 수갑을 채워 병원까지 이동한 점을 들어 경찰의 진압 행태를 비판했다.



 

김 사무총장은 “이남종 열사도 경찰이 다그치지 않았다면 분신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충분히 시간을 줬다면 분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올라가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 상황에서는 혼동과 두려움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 대비한 경찰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김창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분신의 의도가 없었으며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의해 일어난 사고”라고 밝혔다.
@이치열 기자
김 사무총장은 언론의 보도행태도 비판했다. 그는 “일부 언론이 현장을 목격지도 않고 불의와 부정을 외친 본인에게 '퍼포먼스'니 '상황재현'이라고 호도, 폄훼, 매도 왜곡까지 자행하는 행테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사고 직후 언론들은 “김씨는 이 날 이씨가 분신한 장소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는 기자회견 후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도 "고가도로에 올라간 것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며 "이남종 열사가 목숨을 던졌음에도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언론이 제대로 보도했더라면 도로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죽어버린 민주주의, 죽어버린 언론, 죽어버린 시민사회를 깨우기 위해 앞으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김 사무총장은 왼쪽 팔과 발목에 2도 화상을 입어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