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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호 받지 못한 국민…”

 

등록 : 2014.02.28 19:58수정 : 2014.02.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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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가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반지하 집은 33㎡(10평) 남짓한 크기다. 28일 폐기물 처리업체가 살림살이를 모두 들어냈다. 방준호 기자

반지하방 세간살이 모두 치워

반지하 작은 집에서 세간이 하나씩 들려 나왔다. 쌀가마니만한 포대에 담긴 옷더미 3개도 빠져나왔다. 주인 잃은 옷들이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몸을 뉘었던 자그마한 침대는 부서진 채 밖으로 옮겨졌다. 이 생의 끝을 포근하게 해줬을 이불 보따리도 집 밖으로 치워졌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세 모녀(<한겨레> 2월28일치 1면 참조)가 버틴 삶의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박아무개(61)씨와 큰딸 김아무개(36)씨, 작은딸(33)의 자취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28일 오전 9시부터 세 모녀가 살았던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 집을 폐기물 업체 직원 2명이 치우기 시작했다. 남루한 짐들 사이로 해묵은 만화책들이 쏟아졌다. 만화책 사이로 스케치북 크기의 도화지 몇장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박씨의 딸들이 그렸을 것이다. 짐 속에는 ‘만화 원고용지’ 한 묶음이 딸려 나왔고 전문 미술용품 매장의 할인쿠폰도 섞여 있었다. 만화가를 꿈꿨던 것일까. 토익시험 참고서도 트럭에 실렸다. 두 딸이 병마와 절망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꿈의 흔적일 터다.

 

 

만화원고 용지·토익참고서…구겨진채 버려진 꿈

 

 

세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날인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반지하 집에서 폐기물 처리업체 직원들이 이들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였던 가구 등 살림살이를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세 모녀의 삶의 흔적 일부는 고철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질 예정이다. 방준호 기자

 

 

“국가 보호 받지 못한 국민…” 
누리꾼 애도 이어져

 

 

사진들도 어두운 집을 빠져나왔다. 두 자매는 사진 속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축하받았고, 마이크를 쥐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여중생이었다. 1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함께 미소짓고 있는 사진들이 담긴 사진첩은 트럭 위로 흩어져 떨어졌다. 사진은 그들의 행복했을 옛날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었다. 곤궁 속에서 절망했을 마지막 순간을 가늠할 만한 것은 없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의 생애 마지막 월세를 받은 집주인 임아무개(73)씨는 슬퍼 보였다. “밖이랑 왕래가 거의 없던 사람들이에요. 나도, 1년에 한번 제대로 볼까 말까 했는데…. 두 딸은 집에만 있었죠. 9년 동안 말썽 한번 일으킨 적이 없는 착한 사람들이….” 동네 주민 서너명이 기웃거리자 임씨는 “우리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잖냐”며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날 오후 1시께 반지하 집 안엔 텔레비전만 남았다. 낡디낡은 물건이지만 누군가 가져가겠다고 했단다. 1t 트럭 한대에 실린 세 모녀의 유품은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으로 옮겨졌다. 쓸 만한 고철만 내린 트럭은 나머지 짐을 고양시 화전동으로 날랐다. 곧 태워질 것이다. 박씨가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고 적은 편지봉투는 경찰이 보관하고 있고, 봉투에 들어 있던 70만원은 집주인에게 전달됐다. 박씨의 전재산인 보증금 500만원은 집 정리 비용 등을 빼고 박씨의 남동생에게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식당일을 하며 한달에 150만원가량을 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 모녀의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애도하는 마음은 길게 줄을 이었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울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죽음” 등의 글을 <인터넷 한겨레> 등에 적은 누리꾼들이 많았다. 세 모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na*****)이라며 공분하는 이들도 있다. 한 누리꾼은 “시기만 다를 뿐 우리의 미래 모습”이라고 탄식했다. 주검이 안치된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 조문을 하러 직접 찾아오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세 모녀의 주검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됐다. 박씨의 남동생과 여동생 둘, 그리고 그 가족들 10여명이 세 모녀의 마지막을 지켰다. 유족들은 화장이 끝나고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박씨의 남동생은 “(누나는) 의연하고 꿋꿋했다. 매번 연락하면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고생 끝나고 좋은 데로 간 거다”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이제 세 모녀는 한 줌 재로 흩어졌다. 그들이 살다 간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애도의 뜻을 전하는 시민들의 가슴에 아픔과 염원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난과 병이 없는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빈다.” “좋은 데로 가서 편히 쉬시기를….”

 

정환봉 방준호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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