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여왕 폐하’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전반적 대응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다. ‘총체적 부실’로 일컬어지는 구난대응을 탓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뒤늦은 형식적 사과를 꼬집으려는 것만도 아니다. 부하들의 잘못만 꾸짖으며 자신은 ‘심판자’로 군림하려는 자세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독재시절 ‘유신공주’로만 살아온 인식구조의 반영일 것이다. 그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독재자’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여왕폐하는 ‘반신반인’ 아버지를 뛰어넘는 ‘무오류의 절대신’과 같은 존재로 부상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오로지 그의 심기만을 살핀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여왕폐하 옹위’가 지고지존의 가치이다. 문득 북한의 ‘최고 존엄’을 떠올린다. 

박 대통령은 사고발생 14일만에야 사과했다. 그것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사죄’란 말을 입에 올렸다. 그래서 ‘착석사과’나 ‘간접사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300명이상의 귀중한 생명을, 그것도 못다핀 꽃송이들을 차디찬 바다 속에 몰아넣은 지도자의 참회어린 사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진정성 없는 형식적 사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유가족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울부짖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은 국무위원뿐인가? 5,000만 국민이 있는데, 몇몇 국무위원 앞에서 비공개로 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분향소에 온 것도 무슨 광고 찍으러 온 것 같았다.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유가족의 지적이 가슴을 때린다. 

사과 내용도 문제이다. 자신의 책임은 회피한 채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유체이탈 화법’은 여전하다. “국무위원들도 가족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헌신과 노력으로 소명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얼음공주’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박 대통령은 실종자 구조와 수색을 남에게 떠맡기는 태도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네 탓’으로 돌리는 태도이다.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원인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포장하기조차 한다. ‘너무도 한스럽다’는 말이 그렇다. 그래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우리 사회의 적폐”라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적폐'가 '적폐'를 척결해야 한다고,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고 물타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는다.
   
▲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박 대통령은 ‘과거의 적폐’를 거론하면서 아마도 아버지 박정희를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 현재까지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록된 남영호 침몰 참사가 일어났다. 1970년 12월15일 새벽 2시5분 338명의 승객과 209톤의 화물을 싣고 서귀포항을 출항한 여객선 남영호가 여수 소리도 26마일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323여명이 차디찬 겨울바다에서 동사했다. 남영호는 선체가 갑자기 기울어져 전복됐다. 적재량을 초과한 과적과 항해 부주의, 신속하지 못한 대처 등 전형적 인재로 기록돼 있다. 해경은 남영호가 보낸 긴급구조신호를 수신하지 못했다고 잡아뗐다. 해경은 일본 순시선보다 네 시간 늦게 겨우 출동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도 남영호를 빼닮았다. 인재로 판명날 것이 거의 분명하다. 44년 전의 악몽이 데자뷰되는 것 같다. 당시 박정희는 현장에 찾아갔을까. 대국민 사과는 어떻게 했을까. 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남영호 침몰사고를 떠올리면서 아버지처럼 ‘제왕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잠시 헛된 망상을 해본다. 

당시 남영호 침몰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사업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추진중이다. 그것도 43년이 지나서야 겨우 닻을 올렸다. 서귀포시와 남영호 조난자 추모위원회는 조난자들의 유족을 찾고 있다. 추모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12월15일 위령제를 개최했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흘러 유가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추모위원회는 “남영호 조난자 위령사업은 잊혀져가는 서귀포 시민의 한이 맺힌 사건을 위로하고 늦게나마 희생자들의 혼을 달래 편안히 영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시절 일어난 참사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사업은 이 보다 빨리 성사될 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추모공원 건립이나 국민성금 모금 등이 논의되는 걸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100명에 가까운 실종자들이 아직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애끊는 유가족의 피울음도 박 대통령은 국민을 통치대상인 ‘백성’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봉건왕조시대의 군주처럼 ‘무지렁이 백성’이 당한 사고는 가엽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냄새나는 우매한 백성’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시인 김지하가 담시 ‘오적’에서 쓴 표현이다. “국민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를 책임질 직원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 돈을 주고 윗사람을 고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인터넷 매체의 촌철살인 경구가 등골을 찌른다. 그래선가. 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정부는 ‘여왕폐하 옹위’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유가족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에 대해 “유감이다. 안타깝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뒤늦게 ‘사견일 뿐’이라고 변명하고 나섰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전히 청와대는 ‘국민 심기’보다는 ‘대통령 심기’, 다시 말해 ‘여왕폐하의 심기’를 살피는 데 골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심한 풍경이다. 

박 대통령의 ‘착석 사과’에 앞서 일어난 ‘분향소 논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박 대통령이 한 할머니를 만나 어깨를 감싸 안은 장면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이 ‘유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는 즉각 청와대에서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조문 영상이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결국 이 할머니는 유가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논란은 심회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연출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아직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유가족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누구한테 아이를 맡겨야 하느냐”며 박 대통령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방송 에서는 조용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인 것처럼 보도됐다. 유가족의 울부짖음을 ‘소음’이라며 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분향소 밖으로 치워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청와대의 황당한 태도는 유가족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아니 국민적 분노를 부추긴 셈이다. 

사고대응에는 철저한 ‘등신’이면서도 언론 등의 의혹제기에는 신속한 ‘귀신’인 정부의 태도도 똑같이 닮았다. 박 대통령의 ‘신속한 구조’ 지시는 외면한 채 ‘유언비어 엄단’ 지시는 철저하게 수행한 결과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를 ‘조정통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사업자에게 ‘삭제’를 신고하는 등 전방위로 방송보도와 인터넷의 의혹제기를 통제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방통위 내부문건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계획’에 나타나 있다. 방심위가 방통위에 보고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대응보고’ 문건도 비슷하다. 모니터링을 실시해 “자정 권유 및 ’삭제‘ 신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방심위는 100여건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고 경찰청 수사를 의뢰한 것도 10건을 넘는다. 방통위는 ‘조정통제’를 ‘협조요청’으로 수정했다고 해명했으나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전두환 정권 시절 악명높은 ‘보도지침’도 정부에서는 단순한 ‘협조요청’이라고 변명했으니까. 

박근혜 정부는 17개 부와 3개 처, 18개 청, 13개 원, 실, 위원회를 총동원해 ‘여왕폐하 옹위’를 위한 해명에는 여념이 없었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는 아닐지언정 정부의 소셜 계정을 일사불란하게 조종하는 ‘SNS 컨트롤 타워’는 존재한 셈이다. 자기소관의 일도 아닌데 해명성 트윗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해경이나 해수부, 안행부 등의 해명은 고용노동부, 교육부, 국방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미래창조과학부,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여성가족부, 외교부, 통일부, 환경부 등 13개 부의 트위터에 그대로 올랐다. 법제처, 국가보훈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3개 처와 경찰청, 관세청, 기상청, 농촌진흥청, 문화재청, 방위사업청, 병무청, 산림청, 소방방재청, 중소기업청, 특허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등 12개 청도 물론이다.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역시나’였다. 박근혜 정부가 위험에 빠졌을 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국민이 위험에 빠졌을 때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제 국민의 분노는 자발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타까움에 눈물만 흘리던 시민이 “이제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며 행동에 나섰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자발적인 모임도 생겼다. 연일 확산되는 추모 촛불집회에 더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행진과 1인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에서는 추모 횃불집회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는 평일에는 동네에서 촛불을 밝히고 5월3일과 10일 청계광장에서 10만 서울시민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원탁회의는 “비탄과 추모를 넘어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자”며 시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원탁회의는 “이것은 선동도 유언비어 유포도 아닌 바로 민심이며, 대한민국 주권자들에게 보내는 호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