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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문’을 다시 열려는 북한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55)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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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26  08: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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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북한이 9월에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파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날 북한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군축연구소 자문역 자격으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트랙 2’(민간채널) 차원의 북미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토론회에는 미국 측에서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초빙교수와 밥 칼린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연구원, 전직 관료출신 전문가 등 3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8개월만에 열린 북.미 민간 대화

이러한 행보에 대해 북한이 다시 국면 전환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5월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에 참여하고,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육자 살림집(아파트) 건설장을 시찰하는 등 ‘경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모든 힘을 당면한 모내기전투에 총집중, 총동원해야 한다”며 시작된 ‘모내기전투’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4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는 이미 오래 전에 확정된 사안을 공식화했을 뿐이다. 북.미간 전문가 토론회도 지난해 독일 베를린과 중국 베이징에서 유사한 성격의 행사가 열렸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사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4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 사이에 오고간 최악의 ‘막말 공방’과 서해안 NLL에서의 남과 북의 훈련과 포격을 고려한다면 눈여겨봐야 할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8월로 예정된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전에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가지 변수가 첨가될 예정이다.

새로운 두 가지 변수

   
▲ 23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장관 회의에는 하루 전 사표가 수리된 김장수 안보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을 대신해 차석들이 참석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

하나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전면적으로 변화된다는 점이다. 그 동안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속적으로 갈등관계를 보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일관된 대북정책을 펴는데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두 사람이 모두 물러나면서 새로운 외교안보라인이 어떻게 짜여질 지가 주목된다. 통일부 장관의 교체여부도 관심거리다.

현재 국가안보실장에는 군 출신 인사가, 국정원장에는 국정원 출신의 인사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인사로 알려져 있다. 세월호 참사로 미뤄진 통일준비위원회도 6.4지방선거가 끝나면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외교안보라인과 통일준비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직할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인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난해 5월과 올해 4월 25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번씩이나 독자적인 남북대화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특히 2월 14일 남북 고위급접촉에서 이산가족상봉과 비방금지에 합의했지만 로우키(low-key)로 전개하기로 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미국의 강력한 ‘공세’로 인해 사상 최대 규모로 공개적으로 추진되면서 북한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3월 25일 헤이그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불용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및 미국의 한.일 안보보장문제가 논의됐고, 드레스덴선언에는 북한을 자극하는 내용이 포함돼 역시 북한의 반발을 불러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대화 재개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고, 4월 7일(현지시간)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때 박근혜 정부는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에 요구해온 비핵화 사전조치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지만 미국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남북대화 진전을 위해 6자회담 재개를 모색했던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확인한 후 외교부를 중심으로 미국의 정책방향에 맞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4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새로운 형태 도발은 새로운 강도의 국제적 압박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 통일 지지”와 “인권침해에 대한 북한당국의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구상이 좌초된 것이다. 6자회담 재개의 키를 한국 정부가 쥐고 있다는 주장이 허구인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한 후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어떤 대안을 내놓을 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 지난해 6월 28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오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오른쪽은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 [사진출처 - 청와대]

다른 하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이뤄질 가능성이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 여부와 시점은 5월 26일 방한하는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논의에서 결정될 것이다. 중국은 이번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방한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표방했던 박근혜 정부가 급속히 한.미.일 군사동맹체제로 편입되는 것으로 견제하고,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시진핑 주석의 방한 시기가 결정되면, 시 주석의 방한 전에 북한에 고위급 인사를 사전에 파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 고위층 간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잇는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평양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5월초 미국을 방문했던 왕자루이 부장은 방북이 이뤄지면 미국과 협의한 내용을 북한과도 논의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 주석이 방한할 경우 북핵 불용 입장과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반대 입장을 거듭 표명하며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겠지만 중국이 한반도 안정 차원에서 남북 및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을 강하게 주문할 경우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질 수도 있다.

이외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8월 14~18일)도 남북관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평화.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교황의 방한을 남북관계 전환의 전기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교황 방한에 맞춰 남측 가톨릭(천주교)계가 북측 가톨릭 관계자들을 초청했고, 북측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통일부도 승인할 뜻을 내비쳤다.

몇 달 간 대화 여지 남겨 두고 관망할 듯

그러나 북한은 쉽게 호응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의 향후 행보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박근혜 정부의 독자적인 행보가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북한으로서는 5.24조치의 해제, 북방한계선(NLL) 긴장 완화 방안 등 남측의 전향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남북대화에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입지가 좁아진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도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남북 간의 직.간접적인 물밑 접촉도 현재로서는 통일준비위원회 출범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4월 25일 아시아 순방차 한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발표 후 일각에서는 북한이 전격적으로 고위급 접촉을 다시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지만 가능성이 크지 않다. 4월 한.미 정상회담의 파장이 여전히 정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해 NLL 인근에서의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8일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주관으로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국제 토론회’에 참석한 쉬부(徐步) 중국 6자회담 차석대표는 “북.미 양자 모두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9.19 성명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하고 미국도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주고 북한의 정치체제를 존중해줘야 한다. 호혜평등원칙이 존중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지혜와 전략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지금도 견지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게 대북 영향력을 이용해 북한의 핵을 강제로 포기시키라고 압박하며 ‘중국 역할론’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원하지 않으면 중국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는 중국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해 ‘6자회담 10주년 기념 국제 토론회’에 참석한 리용호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는 “우리가 체제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리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의 협의가 무산된 후 북한 내부에서는 ‘미국의 태도를 볼 때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외무성이 4월 말 ‘핵실험에 시효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당장 핵실험 가능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핵실험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향후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우회적으로 국정원장과 국가안보실장의 인선을 통해 어떤 대북 메시지를 보여줄 것인지, 오바마 대통령이 제재 일변도의 기존 대북정책에도 북한의 핵능력이 계속 증강돼온 점을 지적하며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행정부 내 ‘대화파’의 목소리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 것인지 주시하며 대화 가능성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5월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두 달여 만에 열리는 북.일 국장급 회담이 대화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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