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공장 굴뚝에 오른 지도 벌써 223일째다. 가동이 멈춰져 있는 공장은 밤이 되면 무척이나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까마득한 무인도에라도 버려진 듯 아득할 때가 많다. 가끔 쌍차 공장 굴뚝에 오른 김정욱과 이창근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낮밤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라도 나니 말이다. 가끔 혼자 노래도 불러보고, 아아 하고 말도 해본다. 결코 지지 않으리라는 불길이 가슴에 타고 있어 추위를 견뎌본다. 저 아래 세상이 조금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엔 사회 여기저기 아픔이 많았는데, 올해는 모두에게 조금씩은 희망이 다시 움트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5년 새해의 첫 희망을 만들겠다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기륭전자분회원들, 콜트-콜텍 해고자들, 스타케미칼 해고자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씨엔엠을 이어 투쟁 중인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들, 학교비정규 노동자들, 알바연대 청년들 등이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1월 7일 아침 9시, 서울 쌍용자동차 구로정비공장 앞에서 오체투지로 다시 국회와 청와대를 향해 간다고 한다. 대개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투쟁해오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1차가 ‘비정규 법제도 전면폐기’ 선포였다면, 2차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원직복직과 정리해고제 폐지를 위한 오체투지’라고 한다. 

쌍용자동차 지부는 잘 알려진 데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시작으로 대한문 분향소 투쟁과 몇 번의 단식과 2번의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회계조작이 밝혀져 정리해고가 잘못 되었다는 고등법원 판결도 받았었다. 대법원은 해당 법리의 오해가 있는지 정도를 판단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명확치 않은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기환송이라는 형식으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 찬물을 끼얹었다. ‘해고는 살인이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다 죽어간 26명의 목숨도 부족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에게 죽어라 한다. 김정욱과 이창근을 다시 저 하늘굴뚝으로 밀어 올린 것은 그런 대법원의 살인적인 판결이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2008년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기륭전자 정문 경비실 옥상에 올라 94일 동안을 굶어야 했다. 세 번의 고공농성과 두 번이나 국회의사당 점거를 했다가 끌려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고도 해결이 안되다 2010년 겨울에야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투쟁을 마무리 했다. 간만에 반가운 소식, 정규직화였다. 온 사회가 내일인양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뿐 2013년 12월 30일 기륭 최동열 회장은 회사를 통째로 야반도주 한 후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인수 당시 1000억대에 달하던 회사 자산은 모두 빼돌려 6천만 원짜리 껍데기 회사를 만들어 놓았다. 텅빈 사무실을 350일 동안 지키다 지난 연말 5일간의 오체투지로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 방법뿐임을 가르쳐 주었다. 

콜트-콜텍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박영호 사장은 기술과 물량을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우곤 빼돌렸다. 조삼모사도 이런 조삼모사가 있을까. 국내 법인은 ‘경영상의 위기’였다. 한진중공업 조남호가 그렇게 필리핀 수빅에 2조원대 조선소를 지어 수주 물량을 빼돌리곤 국내 조선소는 ‘경영상의 위기’로 만들어 정리해고 명분을 삼았다. 2007년이었다. 그후 법정투쟁을 비롯해 공장 앞 천막농성, 15만 4000볼트가 흐르는 송전탑 고공 단식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왔다. 박영호 사장 자택, 낙원상가, 국회, 노동청 등에서 항의 집회와 문화제 등을 열어 실태를 알리기 위해 애썼고 미국, 일본,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악기 박람회에 총 여섯 번에 이르는 해외 원정투쟁까지 다녀와야 했다. 투쟁 과정에서 한 조합원이 분신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4년 6월 12일, 대법원은 더 나아가 ‘현재의 경영상의 위기’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를 까닭으로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만으로도 언제든지 쫒겨나야 한다. 

한때는 기륭전자 분회원들처럼 우리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조그마한 희망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스타케미칼 전신인 구 한국합섬이 파산한 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명백한 경영상의 위기’에도 우리는 어떤 회사로 인수 합병이 되더라도 ‘고용승계’와 ‘노조 승계’와 ‘단체협약 승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 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과 싸웠다. 산업은행의 대주주가 정부이니 정부와 맞서 싸웠던 셈이다. 5년이 걸렸다. 그 5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다시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온몸으로 밀고가고 있는 기륭전자 분회원들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따내고 스타케미칼로 복직했었다. 그렇게 복직할 수도 있다는 꿈과 가능성을 이 사회에 남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다.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은 1년 8개월 동안 공장을 돌리는 시늉을 하더니 금세 먹튀 자본의 본색을 드러내 공장의 자산을 분할매각하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우리들의 목에 다시 칼을 들이대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언제 우리가 이 높고 가파르고 외로운 공장 굴뚝 위로 오르고 싶다 했는가. 언제 우리가 이 추운 겨울 땅바닥을 기고 싶다고 했는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일자리 하나를 위해 몇 번이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 못된 세상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결론이 우리가 오늘 도달한 결론이다. 근본적으로 사회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제2의 쌍차, 제3의 스타케미칼, 제4의 기륭, 제5의 정리해고자들, 제6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끝없이 양산되고, 그 고통과 아픔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싸움을 못해서, 싸움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각 단위사업장의 투쟁만으론 이긴다 하더라도 언제나 불안정한 삶의 자리일 뿐이다. 이 모든 불안정을 합법화시키고 있는 비정규 악법과 정리해고 악법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누구나 다시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박근혜 정부와 자본가들은 선거가 없는 올해를 기회로 자본에게 유리한 법들을 만들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정규직은 더 해고하기 편하게 하고, 비정규직의 합법 사용 기간은 늘리는 내용이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이 법을 만드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듯도 하다. 

이 굴뚝 위의 차광호만 김정욱만 이창근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현재가 위험하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위험하다. 우리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안전한 삶의 자리를 줄 수 없는 세상이다. 먼저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 오체투지에 같이 하면서 선전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임금 조금 올리는데 한 눈 팔려 있는 그 사이에 당신의 일자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칼자루를 자본에게 쥐어주는 법이 저항 없이 통과될 수 있다. 소탐대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굴뚝은 우리가 잘 지킬 수 있다. 오히려 모두가 이 오체투지 지상군들로 함께 나서주기를 바래본다. 박근혜 정부의 정리해고-비정규직 확대 양산은 오늘보다 수만배는 더 많은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진에 함께해서 저들만의 안식처인 국회와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를 향해 느리지만 거대한 존엄으로 나아갈 때, 우리 굴뚝사람들 역시 안전하게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 오체투지에 나선 노동자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다시 선전하고 조직하고 연대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