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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알리려, 자전거로 미국 횡단합니다"

 

[인터뷰] '트리플A 프로젝트' 시작하는 심용석·백덕열씨

15.06.26 21:15l최종 업데이트 15.06.26 21:15l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두 젊은이가 있다. 14개 주를 지나가는 5천여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페달을 돌려야 하는 약 80일간의 길고 힘든 여정이다. 이들의 이 여행에는 'Triple A Project : Bike for Comfort Women'이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갑내기 두 청년은 인천대에 재학 중인 심용석(22)씨와 경희대에 재학 중인 백덕열(22)씨다. 두 사람은 독도경비대에서 선후임으로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로 의기투합했다.

27일(미국 서부시간)  출발하는 이 긴 여정의 시작점인 미국 LA에서 두 청년을 만나 어떤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준비를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위해 미국 횡단하는 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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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 80일 간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심용석씨 (22. 인천대 중어중국학과/왼쪽)와 백덕열 (22. 경희대 체육학과/오른쪽)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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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Triple A'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백덕열(아래 백) : "인정 (Admit), 사죄 (Apology), 그리고 함께 (Accompany) 세 영어 단어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께 대한 우리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이 이슈를 미국에 알리고자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였다.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하며, 많은 한국인, 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해줄 것을 요청하는 의도에서 3-A 프로젝트라 이름짓게 되었다."

심용석(아래 심) : "우리가 야구를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미국 메이저리그 밑에는 마이너리그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AAA 리그가 있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선 당연히 주요 이슈(메이저)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는데 우리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 두 사람은 독도경비대에서 같이 근무를 하며 만났다고 들었다.
심 : "아다시피 독도경비대는 의무경찰의 신분이다. 우리가 군대를 갔던 2013년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다. 그래서인지 독도경비대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독도에 근무하게 되었다."

백 :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남자축구팀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박종우 선수가 관중이 건네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들고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박종우 선수가 징계를 받고 메달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사건이 있었다. 

후에 메달은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어쨌든 당시 그 사건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스포츠를 통해 세상에 말한다, 이런 생각. 그래서 독도경비대에 지원했다. 심용석씨보다 두 달 후에 입대를 해서 내가 후임이다."

- 군대에서의 만남이 제대 후 사회에서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제대 후에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나?
심 : "평소에 사이클을 좋아했고,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게 꿈이었다. 복무 중에 같이 휴가를 나온 적이 있었다. 백덕열씨한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가보자는 제안을 했고, 백덕열씨도 흔쾌히 찬성했다."

백 : "당시엔 선임이 하는 얘기라 거절할 수 없었다(웃음)."

심 : "독도에 근무하면서 늘 우리는 외교와 국방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왕 미국 횡단 여행을 한다면, 그저 개인적인 희망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적인 이슈를 알리면서 하면 더 의미있는 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했다. 그 즈음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독도경비대에 지원하던 당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여행으로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 : "심용석씨는 작년 말에 제대를 했고, 나는 올 2월에 제대를 했다. 제대 후 만나서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게 되었다."

- 준비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평소 사이클을 전문적으로 했었나?
심 :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고 생활 속에서 매일 사이클을 즐겨왔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사이클링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는 부족함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서 지난 3~4개월 동안 꾸준히 준비를 했다."

백 : "내 전공이 체육학과이고 평소 마라톤을 했던 터라, 내가 사이클을 타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심용석씨보다는 체력적으로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첫 라이딩에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처음엔 자전거에 몇 시간씩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고 심용석씨를 따라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난 3~4개월 동안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은 자신이 있다."

심 : "미국에 오기 전 점검 차 자전거로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갑을 빠뜨려서 손만 시커멓게 타기도 했고, 튜브패치를 준비하지 않아 타이어 펑크가 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실수도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들르는 도시마다 작은 집회 열어 위안부 문제 알릴 것"

- 이번 미국 횡단거리는 서울-부산을 5번 이상 왕복하는 거리이고, 수 개월이 걸릴 것 같다.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장비구입, 여행 경비 등 자금은 어떻게 구했나?
심 : "후원해 준 회사도 있고, 크라우드펀딩도 받았으며, 개인적으로 일을 해서도 돈을 모았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을 세운 후 기획안을 만들어 자전거 관련 회사들에 보내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이 프로젝트가 한일 간의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어서 일본시장의 축소를 우려한 회사들이 많았다. 다행히 한 회사(Trek)가 흔쾌히 자전거 관련 장비를 지원해줬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을 가능하게 해줬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지원을 해줬고, 총 6천여 달러 정도 모았다. 비행기 값은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았다. 지인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오랫동안 연락없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다며 지갑에 있던 돈을 다 꺼내 준 적도 있다."

백 : "부산까지 자전거로 가서 부산역 앞에서 이 프로젝트를 홍보했다. 당시에 우리는 '독도지킴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 계획을 듣고 흔쾌히 지원을 해주셨다."

- 미국에서 위안부 이슈를 알리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다.
백 : "자료를 찾아서 공부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말씀도 직접 들었다. 용인 요양원에 계신 한 할머니를 찾아 뵈었고, 나눔의 집을 방문해서 여러분을 뵙고 말씀을 들었다. 수요집회에도 몇 차례 참석했다."

심 : "자료를 찾고 할머니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미국에 전해야 할지 어느 정도 계획은 세워졌지만 영문으로 자료를 만들고 홍보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 때 독도경비대 시절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김예훈씨를 소개해줘서 알게 되었다. 듀크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김예훈씨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 구체적인 일정은 어떻게 되나?
심 : "이번 토요일(27일, 미국 서부시간)에 LA를 출발하여 덴버, 시카고, 워싱턴 DC를 거쳐 9월 초에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다. 80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백 : "개학 전에 귀국을 해야 하니까 부지런히 달릴 예정이다. 들르는 도시마다 작은 집회를 만들어 위안부 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알려나갈 생각이다."

심 : "이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15초 분량의 춤을 만들었다. 나비를 형상화 한 춤이다. 집회 때마다 보여줄 생각이다. 각 지역마다 자전거 동호회와 연락을 취해서 짧은 거리라도 같이 달리는 기회도 계속 만들려고 한다. LA 출발 때는 한인 동호회 분들이 같이 달려줄 예정이다."

- 아무쪼록 다치지 않고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기 바란다.
심 : "나는 성격이 진취적이고 일을 벌이는 반면, 백덕열씨는 세심하고 꼼꼼하게 일을 챙기는 성격이다. 둘의 성격이 백덕열씨 같았으면 아마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나 같았다면 오자마자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망했을 것이다. 서로 도와 가면서, 그리고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꼭 잘 해내겠다."

백 : "한국에서는 물론 이곳에 와서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가주한미포럼과 여러 날 숙식을 제공해주신 성공회 김요한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두 사람은 24일 수요일, LA 일본 영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열었다. 한국 시간으로 24일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김연희 할머니를 애도하고 일본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어 준비한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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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용석씨와 백덕열씨가 24일 (미국 LA 시간), LA 일본영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열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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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25일에는 LA인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시립 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김연희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추모식을 올리고 긴 여정의 출정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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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가주한미포럼 회원들과 함께 추모식과 출정식을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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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A는 '함께하기'(Accompany)이다. 두 젊은이들의 뜻에 같이 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하여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길 바란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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