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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돈의 힘에 짓눌리다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4 오전 7:53:57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태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 고(故)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이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은 이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의 죽음을 계기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도마에 올랐다.

노동계는 재작년에 이어, 다시금 '희망버스' 등을 조직하며,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각계각층의 2만3000여 명은 최근 부산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문제가 되는 158억 원의 손배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손배는 파업 기간에 발생한 각종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란 게 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26일에는 최 씨의 자살을 두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라며 노조의 교섭 요청을 거부했다.

과연 그럴까. 최 씨의 죽음을 단지 '사적인 선택'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그러기엔 손배·가압류 문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너무나 많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실제 죽음이 아니더라도, 일상 경제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사실상 사회·경제적 죽음 상태로 몰아넣은 사례도 많다.

 

▲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앞에서 민주노총과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집결했다. 이들은 해고된 뒤 재취업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씨를 추모하며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가 끝난 뒤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사회 단체 단원들이 한진중공업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잊을 수 없는 죽음"…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등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사측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는 최 씨만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람이 이 문제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는 사실상 '연쇄 살인 무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지난 9일 10주기를 맞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죽음이다. 노동계가 '손배·가압류'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바로 배 씨, 그리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이다.

고 배달호 씨는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65억 원 규모의 손배와 가압류를 청구·신청했다. 배 씨는 2003년 1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하며 사측이 제기한 손배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일이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졌다. 김주익 당시 노조 위원장은 구조조정손해배상 청구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6월부터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재작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올랐던 그 크레인이다. 그러다 그해 10월 17일, 김 위원장은 농성 129일 만에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3일 후,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를 사측은 취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9년 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같은 이유로 동료를 또 한 번 떠나보냈다.

생사람 잡는 손배·가압류…"내 권리 요구하다 '패가망신' 한순간"

최강서,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외에도 손배·가압류가 '(사회·경제적) 사망 선고'를 내린 노동자들은 많다. 경우에 따라, 임금·노조통장이 가압류돼 생활이 불가능해짐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까지 경매에 부쳐진 사례도 있다.

6년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딱 그런 경우다. 재능교육은 지난 2008년 노조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냈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항의 농성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를 통해 사측은 노조원 8명의 급여와 통장을 가압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중앙지법에 강제 압류를 신청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재능교육 직원 6명이 법원 집행관과 함께 오수영 전 노조 사무국장 집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오 전 사무국장의 시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서 세탁기, 김치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등 총 127만 원어치의 가전 제품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이 일에 대해, 오수영 전 사무국장의 남편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저희 집에 법원 집행관과 자칭 채권자 교육기업 재능교육에서 와서 집안 집기들에 빨간딱지들을 붙이고 갔습니다. 육아 때문에 2년 전에 합가해 모시고 있는 어머님 혼자 계실 때, 장정 6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와 제대로 설명도 없이 왜 함부로 들어오냐니까 우리는 그냥 문 따고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집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딱지를 붙였다는군요."

"집사람이 노조일 한다고 애 돌볼 여력이 안 돼서 곧 칠순인 어머니하고 합쳤습니다. 몇 년 전에 세 아들네가 주는 용돈들 모아서 사신 김치냉장고에 딱지가 붙었습니다. 당신이 드시려는 생각보다는 김치 담글 줄 모르는 며느리들 생각에 많이씩 담가서 나눠 먹이려고 당신 용돈 모아서 사신 거지요. 그 김치냉장고에 붙어 있는 딱지. 보니까 참 거시기합니다."

 

▲ 오수영 전 사무국장 집에 붙은 빨간 압류 딱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제공


이것만이 아니었다. 사측은 오 전 사무국장의 집안 집기를 압류하고 두 달 후인 2010년 12월, 유득규 재능지부 조합원의 자택을 실제로 경매에 넘겼다. 강제 경매 통보를 받은 집은 유 씨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었다. 당시 유 씨와 유 씨의 오빠 식구까지 총 다섯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노조원 재산 압류는 당시 시민사회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측이 실제 빨간 압류 딱지를 들고 자택에 들이닥치거나, 집을 경매에 부쳐버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 사건이 노조 탄압의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유 조합원 자택에 대한 강제 경매는 재작년 법원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또 오 씨에게서 압류한 재산에 대해서도 재작년 사측은 경매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그 외에 사측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벌였던 20억 원 규모의 손배와 여타 경제적 압박도 현재는 일부 해제된 상태다. 단, 강종숙 학습지 노조위원장의 급여는 재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100% 압류되고 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손배·압류 사례는,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노동자들의 경제생활을 얼마든지 파탄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또 그에 따른 고통은 노사갈등 당사자인 노조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겪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이와 관련,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조 활동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인식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도"라며 "손배·(가)압류는 매우 반인권적인 신종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힘들게 지켜온 노조, 사측의 가압류 협박으로 '산산조각'

또 하나 눈여겨볼 사례는, 반도체 공장 KEC가 노조를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사용한 방식과 목적이다.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청구액을 노조로부터 전부 받아내려는 게 손배를 청구하는 사측의 진짜 목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KEC 등 많은 사례에서 손배·가압류는 사측이 자신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노조를 파괴하거나, 집단행동을 조기에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KEC 노조는 지난 2010년 6월 '노사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14일간 옥쇄 파업(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러다 노사 양측은 '즉시 교섭, 징계·고소·고발·손해배상 등의 최소화' 원칙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당시 야 5당도 참여해 '사회적 합의'라 불렸다.

하지만 막상 파업이 끝나자, KEC는 노조 간부 및 조합원 88명(점거 농성자)을 대상으로 무려 30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KEC 지회 김성훈 지회장은 "사측에서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손배 안 걸고 희망퇴직금 몰아줄 테니 퇴사하라고 설득했다"며 "이런 노조 파괴 작업을 통해 당시 조합원 150여 명이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150여 명이 떠났으니 노조의 기세가 기우는 건 당연했다. 김 씨는 "한번 노조가 꺾였다는 소문, 회사가 사표 내면 손배를 안 건다는 소문이 현장에 퍼지기 시작하자 퇴직이 줄줄 이어졌다"며 "조직이 무너지니 정말 답답했다. 힘들게 공장을 점거해서 교섭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가 해고와 구속, 그리고 손배였다"고 말했다.

현재 KEC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56억 원으로 줄었다. 재판 과정에서 입증이 어려운 부분을 사측 스스로 취하하면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커다란 심리·경제적 압박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 지회장은 "손배를 빌미로 한 사측의 노조 탈퇴 작업으로 빠져나간 많은 사람의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정말 간신히, 간신히 지켜가고 있다"며 "사측은 지금도 손배 1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집행을 하겠다는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고(故) 최강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도 남다르다. 김 지회장은 "최강서 열사를 보면, '저게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며 "그래서인지 최근 노조 분위기가 부쩍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가진 걸 다 뜯어가도 156억 원이 나올 리 만무하다. 사측도 이를 당연히 알고 있다"며 "회사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느낄 불안이나 공포, 절망감"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까지 밀어 넣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 싶은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앞에서 민주노총과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집결,했다. 이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를 추모하며, 사측에 손배 철회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 사업장만 해도 총 709억6000만 원 손배, 20억8000만 원 가압류

2013년 1월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총 12곳에 이른다.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만 총액 약 709억6000만 원이고 가압류 금액도 20억8000만 원에 이른다. 이 밖의 다른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까지 생각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와 금속노조에는 약 430억9000만 원 규모의 손배 및 구상권 청구가 걸려 있다. 이와 함께, 일부 노조 간부들의 임금 및 퇴직금, 부동산 등(28억9000여만 원 규모)이 가압류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는 전주 지회 소속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22억6000만 원, 아산 지회에는 16억7000만 원대 손배가 청구됐다. 발레오만도 노조에는 26억4800만 원, 포항 DKC 노조에는 26억 원, 유성기업 노조에는 58억6400만 원의 손배가 걸려 있다.

이 같은 수십 억, 수백 억대 손배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무색해졌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더라도, 사측이 제기하는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소송)은 쉽사리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양형근 쌍용자동차 지부 조직실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압박하는 것만큼 잔인한 압박 방법이 어디 있겠나"라며 "자신의 일자리, 노조, 가족 등을 지키기 위해 벌인 투쟁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손배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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