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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과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그루터기추억

이 나라는 과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독재인가 혁명인가?
(다음아고라 / 그루터기추억 / 2013-01-15)


이곳 아고라에, 이번 대선의 부정개표 의혹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혁명’에 대한 발언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잠시 이런 발언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 과연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보고 혁명이라고 부르는지, 혁명의 개념부터 정확하게 알아야만 된다. 왜냐하면, 혁명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파악하고, 혁명의 정의를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써, 현재 전개되고 있는 부정개표 논란으로 인한,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정국이, 장차 시민혁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과거 박정희가 일으켰던 5.16이 군사쿠데타인지 아니면 혁명인지도,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5.16의 명칭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들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양심과 학문에 대하여, 정직하고 그 의식이 깨어있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은, 박정희가 일으킨 5.16이 군사쿠데타가 분명하다고 얘기한다. 반면에 그의 딸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가 일으켰던 5.16에 대하여, 쿠데타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이 사건을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양심적인 학자들이 5.16을 군사쿠데타로 부르는 것에 대해 반발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자기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말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안병욱(65) 가톨릭대 교수는 ‘프레시안’의 최형락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과거사와 관련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역사 전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녀가 과거사 문제를 ‘박정희 명예 회복’이라는 기준에서 다룰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박정희의 5.16이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이었다는 박근혜의 주장을, 그녀 자신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그녀의 생각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의 연장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박정희의 5.16을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5.16이 ‘성공한 쿠데타’라는 것이다. 그리고 5.16 군사쿠데타가 성공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 '기간'이 매우 길었다는 점이다. 마치 고려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역성(易姓)혁명’처럼,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동일한 혁명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둘 다 성공의 기간이 매우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생각은, 박정희를 이성계처럼 왕으로 간주할 때만 타당할 뿐이다.

누구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일단 왕이 되고 나면, 왕은 권좌에 앉아서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신에게 반역하는 모든 자들을 역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린다. 왕은 역도들을 토벌하기 위해, 나라의 군대를 동원한다. 그렇다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대한민국 공화국’이 아니라 ‘박씨 왕조’를 창건한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역성혁명을 통해 ‘이씨 왕조’를 창건한 이성계처럼, 박정희가 일으킨 5.16도 혁명이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의 대한민국을 '박씨 왕조'라고 기꺼이 부를 수만 있다면,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성계의 역성혁명처럼,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단지 대한민국의 국명을 ‘박씨 왕조’로 바꾸지만 않았을 뿐이지, 마치 한 나라의 왕이 반역자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했던 것처럼, 쿠데타를 일으킨 자신의 군대를 지속적으로 동원해, 대한민국을 강압적으로 통치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세운 자신의 군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군대를 동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계엄령과 위수령 및 긴급조치 등을 선포하면서 언론을 통제하고, 모든 반대파 정치세력들을 탄압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통치에 반발하는 대학교에는 휴교령까지 내렸다. 마치 왕이 자기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듯이, 독재자 박정희는 스스로를 ‘박씨 왕조’의 왕인 것처럼 여기고, 대한민국을 강압적으로 통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독재자였을 뿐이지, 결코 왕이 아니었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현재 부정개표 논란이 일고 있는 선거쿠데타와 같은 방법으로, 그 부친의 대를 이어서 또 다시 정권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왕조가 대를 이어 자기 자식들에게 왕좌를 물려주듯이, 그 딸이 대를 이어 대통령 당선자로 발표되었으니까, 드디어 박정희가 창건한 ‘박씨 왕조’가 완성되었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다.

앞서 언급한 ‘프레시안’과 인터뷰했던 안병욱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의 90% 이상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때문 아닌가. 한국 정치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의 지형에서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50년 넘게 그 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으니까, ‘이씨 왕조’를 창건한 이성계의 역성혁명처럼,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도, 이제는 5.16 혁명으로 바뀌어야만 한다는 논리인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고 치졸한 발상이다.

쿠데타(coup d'Etat)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국가에 대한 일격' 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뜻 그대로, 쿠데타는 무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정권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쿠데타는, 특정 분야의 지배 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더 강화하고 더 확대시키기 위해서 일으키는 국가적인 변란이다. 즉, 쿠데타는,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배계층에 속한 자들이 일으키는, 정권찬탈 행위인 것이다.

쿠데타 주동세력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 권력의 강화나 확대 및 또 다른 권력의 전복을 도모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을 강제로 빼앗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쿠데타 주동세력은, 기존의 법과 질서를 따르지 않은 채, 합법적인 지휘계통 상에 있는 권력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

이런 쿠데타는, 쿠데타를 일으킨 주체와 쿠데타를 시행한 방법에 따라서, 군사쿠데타, 정치쿠데타, 선거쿠데타 등으로 나눠진다. 군인들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일으킨 것이 군사쿠데타이고, 정치인이나 통치자가 정치력을 이용해서 일으킨 것이 정치쿠데타다. 그리고 부정개표 논란이 야기되고 있는 이번 선거처럼, 불법과 거짓 및 조작선거 등의 방법으로, 기존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려 하거나, 보다 더 강화하고 확대시키려는 것이 바로 선거쿠데타다. 그러므로 쿠데타에 의한 권력이동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기존의 지배계층 내부에서 전개되는 권력투쟁이다. 이런 쿠데타는 단지 권력의 수평이동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처럼 지배계층 내부의 수평적인 권력이동에 불과한 쿠데타와는 달리, 혁명은, 억압받고 있던 피지배계층 사람들이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지배계층에 대하여 반란이나 폭동을 일으켜서, 이를 성공시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런 혁명이 발생할 경우에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위치가 수직적으로 급반전하게 된다. 즉, 지배계층은 몰락하여 피지배계층이 되고, 피지배계층은 혁명을 통해 권력을 쟁취함으로써,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등장하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어부지리를 얻어서, 혁명을 일으킨 계층과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계층이 불일치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프랑스혁명 때는 지배계층이 단두대로 보내져, 그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었다. 이제 ‘쿠데타’라는 말이 유래된 프랑스 정치와, 반복적인 혁명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정립시켰던 프랑스 정치사를 이 자리에서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혁명이 성공하자, 혁명을 주도한 ‘공화파’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당시 왕이었던 루이 16세를 처형시켜 버린다. 권력을 잡은 공화파는 ‘국민공회’를 설립한 후, ‘프랑스 제1공화국’을 출범시킨다. 하지만 이들 공화파는 나중에, 의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우익 지롱드파’와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좌익 자코뱅파’로 나뉘어서, 서로 갈등과 대립을 계속하게 된다. 이러한 상호 대립의 결과, 마침내 좌익인 자코뱅 당이 승리하면서, 우익인 지롱드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게 된다.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을 움켜쥐게 된, 자코뱅 당의 총수 “로베스피에르”는, 이후 무소불위의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프랑스의 이런 정치적 상황아래서, 그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등장한다. 당시 군인이었던 나폴레옹은 로베스피에르의 독재통치 아래서, 출세의 과정을 한 단계씩 밟아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중에서, 독재자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그의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때 독재자 로베스피에르 일당으로 간주되었던 나폴레옹은, 매우 힘든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공화정에 대한 ‘역 반란’이 일어나,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국민공회’가 매우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을 무력화시키려는, 극우 보수 및 왕당파 폭도들을 모두 진압하고,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이처럼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도 계속 승리를 쟁취하면서, 프랑스의 국가영토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러자 국민들은 이런 나폴레옹을 폭발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공화정부는, 나폴레옹의 이런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몹시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프랑스정부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나폴레옹을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이집트 지역으로, 원정 보내 버린다. 그런데 이런 원정 명령을 받은 나폴레옹은, 고려왕조의 장군으로 왕의 명령에 의해 멀리 중국 땅으로 나아가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갑자기 회군하여 조선왕조를 세운 것처럼, 이집트로 원정을 가는 도중에 프랑스로 되돌아와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해 버린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쿠데타(coup d'Etat)’라는 말은 바로 이 때 생겨난 것이다.

아무튼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3년 뒤인, 1792년에 군사쿠데타를 일으켜서, 당시 의회역할을 하던 500인회를 해산시키고, 제1통령이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법을 고쳐서 종신통령이 된다. 이런 나폴레옹의 모습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유신헌법을 만들어서 끝까지 권좌에 남아 있으려 했던, 독재자 박정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종신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킨 지 12년째 되던 해인, 1804년에 마침내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해 버린다. 프랑스 민중들이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왕정을 폐지했지만, 왕정을 대신했던 공화정 출신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면서, 왕정을 폐지시킨 지 15년 만에, 다시 왕정을 부활시킨 것이다. 당시 프랑스혁명 이후에 전개되던, 매우 혼란스러운 정국에 불안을 느끼던 민중들은, 단지 정치적으로 안정을 얻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자기들의 손으로 폐지해 버린 왕정과 왕좌를, 나폴레옹이 다시 차지하도록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여 다시 왕정으로 되돌아갔지만, 역사적으로 그 유명한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영국 연합군에 패배함으로써, 황제의 자리에서 폐위되게 된다. 나폴레옹이 폐위된 이후에는, 프랑스혁명 때 처형됐던 “루이 16세”의 동생들이 다시 프랑스 왕궁으로 돌아와서, “루이 18세”와 “샤를 10세”라는 이름을 가지고 차례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들은 비록,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처형된 루이 16세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귀족과 부유층과 같은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한 정책들을 펼치면서, 프랑스혁명을 일으켰던 일반 민중들을, 또 다시 왕과 귀족의 노예와도 같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하지만 한번 혁명을 일으킨 경험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 민중들은, 1830년에 또 다시 들고 일어나서 “7월 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으로 “샤를 10세”는 폐위되고, 그의 친척인 “루이 필립”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프랑스 민중의 혁명에 의해서 왕으로 옹립된 루이 필립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평민들의 왕”이며 “민중의 친구”라고 불렀다. 루이 필립이,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해 있다가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 민중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루이 필립도 나중에는, 역시 지배계층의 본색을 드러냈다.

루이 필립은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보수파들에게 자신이 가진 권력의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 동시에 루이 필립은 또 다시, 가진 자들만을 위한 ‘기득권 옹호정책’을 시행했다. 루이 필립 왕에 의해서 지명된 보수파의 수상은, “부자가 되라. 부유해지면, 투표권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서슴없이 하고 다닐 정도로 ‘기득권 옹호정책’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유권자는, 단지 성인남자의 3%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로 인해서, 돈이 없이 가난했던 민중과 농민과 노동자들은, 기득권 옹호정책을 펼치는 루이 필립과 보수파 세력들에게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사회적인 평등’과 ‘차별 없는 투표권’을 주장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던 ‘공화파’와 ‘사회주의자’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 공화파와 사회주의자들 및 민중의 주도로, 1832년에 재차 “6월 항쟁”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 항쟁은, 루이 필립 왕을 지지하던 왕당파의 진압으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굴복하지 않은 프랑스 민중들은, 그 이후 16년의 세월이 지난 뒤인 1848년에, 공화파의 주도로 또 다시 “2월 혁명”을 일으킨다. 이 2월 혁명이 성공하면서, 루이 필립 왕은 결국 폐위되고 만다. 또 다시 왕정이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세워진 것이다. 이른 바 ‘프랑스 제2공화국’이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컬한 것은, 새로 탄생한 제2공화정이, 2월 혁명 당시에 공화파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파리의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이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해 버린 것이었다. 정말로 아이러니컬하게도, 2월 혁명에 주도적으로 동참했었던 노동자와 민중들이, 혁명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왕정일 때는 왕족과 귀족들이 그들의 지배계층이었다. 그리고 혁명을 통해서 공화정이 들어서게 되자, 돈 많은 자산가 계층인 이른 바, “브르조아” 계층이 지배계층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가난한 노동자들인 이들 “프로레타리아” 계층은, 또 다시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폐위 된 나폴레옹 황제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망명 중에 있다가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제2공화정의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루이 나폴레옹은 나중에 자신의 삼촌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후광을 등에 업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다. 마치 독재자 박정희의 후광으로,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자로 발표된, 작금의 상황과 아주 유사하다.

당시 피지배계층이었던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는, 자코뱅파와 같은 ‘좌익’도 공포의 대상이었고, 왕당파와 같은 ‘우익’도 역시 공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좌익과 우익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통치자로, 루이 나폴레옹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루이 나폴레옹은, 이런 민중들의 희망과는 달리, 자신의 숙부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바라보면서, 자기도 자신의 숙부처럼, 절대 권력을 지닌 황제가 되려는 욕심을, 이미 그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결국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은 자신의 손아귀에 프랑스 군대를 완전히 장악하고서, 자신이 꿈꾸고 있던 왕정에 반대하면서, 공화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탄압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선거에 의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국민들의 희망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면서 독재통치를 일삼고 있는, 문민독재자 이명박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아무튼 루이 나폴레옹은 공화정치를 가능하게 해주던 보통선거를 모두 중지시켜 버렸다. 그리고 선거집회 역시 그 자신이 철저히 통제했다. 또한 루이 나폴레옹은 자신이 계속해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헌법상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대통령에 대한 ‘재선금지조항’의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에 프랑스 제2공화정 의회를 해산하고, 이른바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리석은 프랑스 민중들이, 과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당시처럼, 이번에도 역시 “나폴레옹 만세”를 외치면서, 이런 루이 나폴레옹을 또 다시 “나폴레옹 3세”라는 이름의 황제로 등극시킨 것이다. 이런 모습은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계속해서 지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리석은 민중들의 모습과 완전히 오버랩 된다.

숙부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서, ‘쿠데타’라는 용어가 만들어 졌다면, 그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에 의해서 ‘친위 쿠데타’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고, ‘자본론’이라는 책을 써서 공산주의 이론의 토대를 놓은 칼 마르크스가, “역사는 반복 된다”고 그렇게 말했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반복을 이야기 하면서,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역사가 반복 된다"고 했다. 그가 ‘또 한 번’의 역사를 희극이라고 말했던 것은, ‘비극을 한 번 체험하고서도, 나중에 동일한 비극을 또 다시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가장 비참한 희극과도 같은 아이러니컬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국의 역사를 바라보던, 프랑스의 한 정치학자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수준에 꼭 맞는 그런 정부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결코 가볍게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그런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역시, 그 국민들의 수준에 꼭 맞는 그런 정부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자기 아버지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하면서, 독재적인 사고방식과 천박한 역사의식을 드러냈는데도, 이런 여성을 국민들의 거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의 발언이 생각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처칠은 한국을 향하여 거의 조롱조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이런 말들을 생각해 보면, 칼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독재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또 다시 독재통치의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비극으로 점철된 가슴 아픈 역사를 겪고서도, 이런 역사로부터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똑 같은 비극을 또 다시 되풀이 하는 것만큼 비참한 희극”이, 과연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쿠데타와 혁명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서, 박정희가 일으켰던 5.16을 살펴보면, 이미 군대 안에서 장성으로서 군사 권력을 지니고 있었던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은, 두 명의 나폴레옹이 일으켰던 그 일들처럼, 혁명이 아니라 분명한 군사쿠데타인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51.6%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이, 득표율 추정 프로그램에 의해서 사전 조작된 것이 확실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자 발표는, 이미 모든 권력을 손 안에 틀어쥔 여당에 의해서 저질러진, 분명한 선거쿠데타로 명확하게 ‘판명’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쿠데타는 군대에 의해, 그 계획이 매우 은밀하게 계획되고 추진되다가, 불시에 기습적인 방법으로 전격 감행되어 정권을 탈취하게 된다. 그리고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의 군사력을 가지고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국회의 활동을 정지시키거나, 기존의 헌법을 개정 또는 폐지시켜 버린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서 쿠데타 세력은, 자신의 반대파 세력들의 활동을 일단 억압한 후, 나중에 이들을 전부 숙청시켜 버리는 것이다.

박정희는, 당시 제 6군단에 속한 포병대, 해병대, 제1공수 특전단 등을 동원하여,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5월16일 오전 9시에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에 즉각적인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그 즉시 모든 언론들을 통제했으며, 헌법을 정지시키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등의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박정희는 원래 1960년 5월 8일을 쿠데타 거사일로 정했었지만, 그해 발생한 4.19 혁명으로 인해서 이 계획이 좌절되자, 한 해 뒤인 1961년 5월16일에, 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박정희의 ’권력에 대한 야심‘은 아주 집요했었다.

당시에 박정희가 일으킨 5.16은 너무나도 명백한 '군사쿠데타'였다. 따라서 당시 모든 신문들은 헤드라인에 '쿠데타 발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물론 당시 신문에서도 '혁명군'이라는 말을 기사에 사용하기도 했었는데, 이는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대가, 자신들을 가리켜서 자칭 '혁명군'이라는 말을 구호로 내걸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사에 사용되어진 것뿐이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기사를 보고서, 5.16을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이, 자신을 스스로 혁명군이라고 주장했던 사실을 보도한 그런 기사를 보고서, 아주 분명한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당시에 모든 외신들 역시,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었다. 이처럼 박정희가 일으킨 5.16은, 당시 지배계층에 의해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던 피지배계층에 속한 어떤 민중이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이 결코 아닌 것이다. 앞서 살펴 본 프랑스 정치사에 비추어보거나, 쿠데타라는 단어를 정의해 놓은 ‘백과사전적인 개념’에 비추어 볼 때도, 5.16은 아주 명백한 ‘군사쿠데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포털 등에서 5.16을 검색해 보면, ‘쿠데타’와 ‘혁명’이라는 말이 모두 다 5.16 뒤에 붙어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독재자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분명한 개념정리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그 독재자의 딸이 당선자로 발표되었으니, 역사적 개념의 혼동은 더욱 더 가속화되어질 것 같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 박정희가 일으킨 것과 같은 군사쿠데타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전국적인 대규모의 위기상황이 초래되거나, 야당이나 여당을 포함한 기존 정치권의 무능으로 인해서, 의회의 정상적인 기능이 중지되거나 마비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될 때, 보다 쉽게 발생한다. 동시에, 이런 정치경제 및 사회적인 상황들과 맞물려서, 군대 내부에 ‘권력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는 군부 지배세력이 존재할 때, 군사쿠데타는 매우 쉽게 일어난다. 독재자 전두환도 역시, 권력에 대한 이런 엄청난 야심을 가지고서, 또 다른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형적인 인물인 것이다.

앞서 쿠데타는, 쿠데타를 일으킨 주체와 쿠데타를 시행한 방법에 따라서, 군사쿠데타, 정치쿠데타, 선거쿠데타 등으로 나눠진다고 했었다. 군사쿠데타는 군인들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일으킨 것이고, 정치쿠데타는 정치인이나 통치자가 정치력을 이용해서 일으킨 것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일으킨 것이 군사쿠데타라면, 그 조카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쿠데타가 바로 정치쿠데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승만 자유당 정권시절에 발생했던 3.15 부정선거가 바로, 실패한 선거쿠데타인 것이다. 이번 대선의 개표부정에 대한 것도 역시, 독재자 이명박에 의해서 자행된 선거쿠데타로 현재 규정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되면 실패한 선거쿠데타가 될 것이지만, 이대로 덮여서 모두 그냥 넘어가버리고 말면, 성공한 선거쿠데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3·15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의 1인 장기집권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고,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이 자체 조직과 경찰 및 관료조직, 그리고 ‘반공단체’ 등을 모두 동원해서 저지른, 엄청난 부정선거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자였던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서 그의 측근들이, 내무부 관료들 및 자유당소속의 정치폭력배 등을 동원하여, 부정 선거와 개표 조작을 감행한 선거쿠데타 사건이었다.

이런 3.15 부정선거는 결국 전국적으로 범국민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켜서, 마침내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 혁명을 촉발하게 되었다. 부정 선거가 폭로되자,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거센 항의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도중 마산 앞바다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이, 1960년 4월에 그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이 결국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마침내 국회에서는 모든 선거를 무효로 처리해 버렸다.

그 후,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거를 약속했지만, 자유당 독재를 펼쳐오던 대한민국 제1공화국은, 4월 27일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이때 당시에는 부정선거가 모두 폭로되고, 이로 인해 독재자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 혁명이 발생했었는데, 왜 지금은 모두들 이렇게 조용한 것인가? 그것은 언론이 독재자 이명박의 손아귀에 모두 장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언론은 모두 죽어있다고 보아도 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과거 4.19혁명과는 또 다른 그런 혁명을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4.19 혁명은, 당시 권력의 지배계층에서 소외되어 있던 피지배계층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통치자인 이승만 대통령을 그 권좌에서 쫓아내고, 지배계층인 자유당을 붕괴시킨 ‘전형적인 혁명구도’로 진행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들에 의해서 촉발된 이 4.19 혁명은, 나중에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서 무참하게 짓밟혀 버렸다. 나중에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독재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의해서 제거되었고, 박정희가 만든 유신체제는 모두 붕괴되었다.

그 이후에, 또 다시 민주화를 향한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이 역시, 독재자 전두환이 일으킨 군사쿠데타에 의해서 철저하게 유린되고 말았다. 학생들과 국민들이 흘린 뜨거운 피로써 일어난 민주주의가, 군인들의 군홧발에 의해서 참혹하게 짓밟히고 유린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슬픈 대한민국의 역사는, 비록 지난 선거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되긴 했지만, 문민독재 통치를 펼친 독재자 이명박에 의해서, 그 가슴 아픈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끈질긴 독재의 역사가, 이제 독재자의 딸에게까지 이어질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명박 독재정권은,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인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실과 실체를 모두 외면한 채, ‘5.18 광주항쟁’을, 단지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인 소수의 ‘폭동’으로 몰고 가려는, 아주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것은 역사의 진실을 뒤집어엎으려는, 가증스런 범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일으킨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역시, 역사의 진실을 뒤집어엎으려는 더러운 작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억지주장을 하는 반면에,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군홧발을 동원해서 짓밟아버린 4.19 혁명은, 그 혁명성이 너무나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좀처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완전한 자가당착이요 적반하장의 논리인 것이다.

이처럼, 독재자의 세뇌를 통해서 끊임없이 독재의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4.19 혁명의 그 선명한 혁명성마저 모두 부정한 채, 적반하장으로 명백한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5.16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이라는 아주 선명한 키워드를 사용해서, ‘국가기록원’ 이라는 국가기록포털( http://contents.archives.go.kr )을 통해, 3.15와 4.19에 관한 기록들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포함해서,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부족한 역사의식과 역사에 관한 일천한 지식들을, 다시 한 번 더 깊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5.16 혁명으로 바꾸어 부르면서, ‘박씨 왕조’를 재건하려는 독재자의 딸 박근혜에 의해서, 지난 세월들 동안 가슴 저미도록 고통스럽게 전개되어 온 대한민국의 역사는 ... 이제 과연, 어디를 향해서 흘러갈 것인가? 독재자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가 4.19 혁명을 불러왔듯이, 현 부정개표 시국이 또 다른 혁명을 부르는 그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4.19 혁명의 꽃을 꺾어 버린 박정희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린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득세하는, 또 다른 독재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앞에서도 계속해서 말씀드린 것처럼, 쿠데타란 지배계층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인 반면에, 혁명이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19세기에 지배계층 사람들은 피지배계층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다윈의 진화론과 관련된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생학’ 등의 개념을 사용해서 사람들 상호간의 치열한 ‘경쟁체제’를 끊임없이 조성해 왔다.

지배계층에 의해서 널리 이용된 이 같은 ‘사회적 다윈주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동서양의 온 세계를 넘나들면서, 지배계층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 마침내, 이들 지배계층을 위한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살인적인 ‘경쟁’을 가장 효율적인 도구라고 주장하는 ‘사회적 다윈주의’나 ‘경제적 신자유주의’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진화론의 체계에 그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이데올로기는, 모든 인간을 도덕적인 ‘선’이나 ‘덕’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천박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렸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짐승세계의 원리에 의해서, 내가 살아남고 또 내가 더 즐기기 위해서, 남들에게 온갖 못된 짓과 패악을 자행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배계층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정치철학적 이론을 가지고서, 피지배계층을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는 온갖 방법과 계략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으로도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부작용을 끊임없이 야기 시키고 있다.

오직 ‘경쟁’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계층의 사람들을, 마치 자신의 노예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하지만 짐승이 아닌 인간은, 비록 노동할 수 없는 경우에 처하더라도, 최소한 인간답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생존에 필요한 기본 식량과 의료혜택을 반드시 공급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약자와 힘없는 노동자들, 신체적 장애자들에 대한 배려를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산성과 경쟁의 측면에서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매우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이들을 간주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독재정권이 수많은 서민과 장애자 극빈자들의 복지혜택을 과감하게 축소시켜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의 금융위기 이래로 한국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정치철학적 개념은( 여기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것은 깊이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수 지배계층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음과 동시에, 대다수 피지배계층인 국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를 가능하게 만드는 거대한 사상적 매트릭스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대선도 지배계층의 이런 견고한 매트릭스 체계 안에서 치러진 것이다. 따라서 비록 지배계층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다양한 선거조작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배계층이 만들어 놓은 온갖 매트릭스에 갇혀서 지내는 피지배계층의 대부분은, 이런 부정과 거짓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또 운 좋게 이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이들은 지배계층이 만들어 놓은 이런 억압과 착취의 매트릭스를 무너뜨릴 만한,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황들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가속화되면, 마침내 자포자기 해 버린 일단의 군중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시에 이들에게 힘을 싫어주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이들로 하여금 일어나서 행동하게 만드는 깨어있는 지식인들도 역시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인류 역사가 지금까지 그렇게 전개되어 왔다.

절망한 군중과 지식인들은 힘을 합쳐서, 자신들의 삶에서 희망을 빼앗아간 지배계층의 각종 매트릭스를 파괴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사력(死力)을 다하게 된다. 삶에 대한 전혀 새로운 동기부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힘이 ‘혁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다.

때문에 세간에서는, 피지배계층을 ‘철저하게 절망하도록 만드는 일’을 일컬어,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더욱 더 모질게 탄압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부른다. 현재 이 땅,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정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지배세력의 기득권에 의해서, 끊임없는 억압과 착취의 매트릭스 속에 갇혀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야말로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모질게 탄압받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미국산 수입쇠고기 개방이나 한미 FTA, 4대강 사업, 온갖 레버리지를 동원한 부동산거품들, 각종 민영화 정책 등도 모두 다, 소수의 지배계층이 만들어 놓은 억압과 착취의 매트릭스 안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에 불과할 뿐이다.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의 온갖 반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계획한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계획한대로 하나씩 하나씩 고집스럽게 추진해 나가면서, 이를 자신들의 승리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섣부른 자축의 샴페인 뚜껑을 열심히 터트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곳 아고라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부정개표와 선거조작에 관한 온갖 항의에 대해서도, 모든 언론들을 통제한 지배계층이 이를 철저히 억압하고 무시함으로써 무력화시키려는 것도 역시, 동일한 억압과 착취의 매트릭스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은 국민들이 ‘수개표’와 선거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을 요구하는 모든 항의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매트릭스 시스템 안에서, 모두 묵살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승리의 나팔을 불어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들 지배계층이 이런 행동들을 취함으로써, 더욱 더 절망의 끝으로 내몰리는 국민들과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마침내는 행동을 개시하게 될 것임을, 이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거대한 ‘혁명’의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혁명의 폭탄이 터져버리면, 지배계층이 만들어 놓은 온갖 억압과 착취의 매트릭스는 모두 다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지배계층의 운명은 일순간에 급 전락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혁명의 도화선에 불이 붙기 전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불은, 수많은 억압과 착취를 지속적으로 당해온 피지배계층이, 마침내 자포자기(自暴自棄) 하여 사즉생(死卽生)의 상태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타오르기 때문이다.

쿠데타와 혁명에 대한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쿠데타를 통해서 만들진 독재와 이에 저항하는 혁명도 역시, 그 상호연관성이 매우 높다. 독재의 지난(至難)한 끝에는 반드시 혁명의 그림자가 너울대는 것이다. 이제 이명박 문민독재에 이어서, 군사독재와 유신독재를 시행했던 독재자의 딸이, 자기 아버지가 일으킨 군사쿠데타를, 감히 혁명으로 미화하려는 역사의식을 가지고서 또 다른 문민독재를 꿈꾸고 있다.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잘못된 역사인식과 의식구조 아래서는, 반드시 독재적인 사고방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지배자는 이에 반발하는 피지배계층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독재자 자신의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따라서 행해지는 독재 통치는, 필연적인 수순이며 당연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독재 통치는, 좀처럼 중간에서 끝이 나는 법이 없다. 자기 부하의 총에 의해서 비명에 간 그녀의 아버지처럼, 반드시 극단의 끝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극단의 끝에서, ‘혁명’의 거대한 폭탄에 연결되어 있는 도화선에 불이 붙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폭탄은 터지게 된다. ‘이명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앞서 언급했던 ‘프랑스혁명’ 때, 지배계층이 단두대로 보내져, 그곳에서 그들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던 그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이를 붙들지 못하면, 기회는 비극을 이끌어 오게 된다. >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루터기추억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26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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