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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세운 고교생들.. “위안부 문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냐”

 

[인터뷰]이화여고 교사 성환철 씨 “마음에 품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건 큰 차이”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일본이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 비난을 자초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성당 앞에서는 학생들 주최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 도끼’ 학생들의 주도로 전국 53개 고교생 1만여 명이 힘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게 된 것.

기금 마련에서부터 건립부지 문제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53개 고교의 학생들은 어른들이 아닌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연대했다.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담당 교사 성환철 씨는 “이번 프로젝트는 개별 학교가 실행한 게 아닌 고등학교들의 연대 활동이었다”면서 “학생들 스스로 ‘이런 일에 우리학교가 나서야 한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성환철 교사는 11일 ‘go발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등 사회 문제에 대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면서 “행동한 것이 눈에 보이는 결실로 나타났을 때 아이들에게 ‘하면 되는 구나’ 하는 확신이 생긴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등학생들이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은 기존의 소녀상과는 차이가 있다. 성환철 씨는 “아이들은 과거를 생각하기보다 평화로운 미래에서 과거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아이들이 직접 아이디어도 내고 포즈도 잡아보고 하면서 지금의 소녀상 모습이 완성됐다”고 전했다.

   
▲ <사진제공=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 도끼’>

‘평화의 소녀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학생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직면했다.

성씨에 따르면,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는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 97%의 학생들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화여고 학생들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당일 ‘국정화는 박물관에 있어야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내걸기도 했다.

성환철 씨는 “행사장에 모인 53개 고교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정서는 똑같은 것 같다”고 전했다.

다음은 ‘go발뉴스’가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담당 교사 성환철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1년간 진행해온 ‘평화의 소녀상 건립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사실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솔직히 안 될 줄 알았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학교들끼리 연대 경험도 없었고,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낙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다른 학교에서 반대로 이화여고에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했었더라도 참여 의사를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Q.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성공할거라고 예상했나.

“당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하니 기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학생들로부터 기금을 모아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다른 학교의 참여를 이끌어내 함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그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아이들도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 못했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예산도 없이 시작한 거라 종잣돈 모금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주주 개념으로 5천원씩 종잣돈을 모아달라고 했다. 그때 선뜻 종잣돈을 모아준 친구들이 300명 정도 된다. 아이들에게 5천원은 큰돈이다. 이를 토대로 학교 선생님들, 졸업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400만 원 정도 모았다. 우리학교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건 다 긁어모은 상태였다. 건립기금이 3천300만원 정도였는데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다.

그 때 김운성, 김서경 조각가님을 만났다. 학생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려고 한다고 전하고 상황을 설명 드렸더니, 기금이 얼마나 모였든 간에 흔쾌히 참여해주시겠다고 하더라. 그 후 작가님이 아이들을 일본대사관 앞에서 보자고 했다. 거기에서 아이들에게 소녀상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시고, 뜻을 전달한 다음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봐라. 나머지는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기금이 더 많이 모이긴 했지만 그 때 이후로 금전적인 고민을 털고 갈 수 있었다.”

Q. 기존 소녀상과는 차이가 있던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기존의 소녀상은 주먹을 쥐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의 의견은 과거를 생각한다기보다 평화로운 미래에서 과거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화로운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면 서 있어야 한다는 게 아이들의 생각이었고, 조각가님들도 동의했다.

그리고 나비가 평화로운 미래로 날아갈 수 있도록 손 위에 얹어 놓은 게 특징이다. 기존의 소녀상이 주먹을 쥐고 있다면 이 소녀상은 손을 펴고 있다. 한 손에는 나비를 손등에 달고 있고, 또 다른 손은 악수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녀상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겠다는 의미다.”

Q. ‘평화의 소녀상 건립 프로젝트’ 전과 후의 아이들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행동한 것이 결실로 눈에 보이게 나타났을 때 ‘하면 되는구나’ 하는 확신을 아이들 스스로 갖게 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작은 실수들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되는’ 경험들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도움을 받고, 그게 해결이 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다.”

Q. 53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어른들의 주도가 아닌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게 놀랍다.

“‘이런 일에 우리학교가 나서야 한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결행 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1년 동안 왜 어려움이 없었겠나.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참했다.

53개 학교가 참여했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공적으로 교육청이 주도하는 것 말고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서 이런 사업을 진행한다는 게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또 가능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 <사진제공=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 도끼’>

Q. 평화의 소녀상 건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터졌다. 학생들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역사동아리에서 설문조사를 학교 자체에서 한 적이 있다. 97%가 반대했고, 1%가 찬성했다. 다수가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당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물관에 있어야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내걸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53개 학교가 공식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정서는 똑같은 것 같다.”

Q. 제막식 분위기는 어땠나. 학생들이 주도한 프로젝트인 만큼 마지막 행사도 특별했을 것 같다.

“제막식 행사 또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게 맞겠다 싶어 모든 걸 아이들에게 맡겼다. 아이들이 춤과 풍물 등 공연을 준비했는데 특별한 의상을 준비했다. 예전에 고발뉴스가 나비프로젝트를 했을 때 판매했던 나비티가 생각나서 담당자분께 연락을 드렸다. 2년 전에 판매가 종료됐다고 하시면서 창고에서 나비티를 찾아 주셨다. 아이들이 이 나비티를 입고 수요집회 시작할 때 부르는 ‘바위처럼’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 <사진제공=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 도끼’>
   
▲ <사진제공=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 도끼’>

Q. 앞으로도 이런 활동들을 이어나갈 계획인가.

“아이들도 그렇고 계속 해야 된다는 그런 마음이 있다. 아이들이 제막식 때 클로징 멘트는 자신들한테 맡겨달라고 해서 맡겼다. 아이들이 ‘앞으로 계속 무언가를 할 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더라. 소녀상 건립 때도 작은 생각이 단초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 뭘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개별학교가 실행한 게 아니라 고등학교들의 연대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소녀상을 건립했다는 의미도 있고, 여러 고등학교가 연대해 하나의 목표를 이루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런 형태가 보존되는 방향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활동들을 꾸준히 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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