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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작은예수들

촛불 든 작은예수들

 
조현 2013. 01. 24
조회수 111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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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용산참사 뒤 목요일마다
투쟁현장 찾아 159번 촛불예배
벼랑 끝 철거민·해고자 등 위로
촛불교회 “벼랑 내몰린 사람들
현장 목소리가 성서의 메시지”

추웠다. 용산 재개발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 남일당 일대는 벌판으로 남아 있었다. 4년 전 건물들이 철거된 뒤 분초를 다투듯 성급히 추진되던 재개발은 이뤄지지 않은 채였다.

 

그 한편 주차장으로 쓰이는 남일당 앞터에 17일 저녁 7시 100여명이 모였다.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을 찾아와 예배를 하는 ‘촛불교회’ 동참자들이었다.

 

재개발을 이유로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숨지고, 검거된 27명의 철거민에 대한 기소와 투옥이 이어진 그 현장은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살려고 살아보려고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친 곳이 벼랑 끝이었습니다. 가공할 방법으로 자행된 공권력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 짓밟고, 관계는 금이 가고 공동체는 파괴된 괴물 같은 바벨탑, 너도나도 그 위에 서고자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야외 간이의자에 앉은 이들이 입을 모아 중보기도를 낭송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어둠을 살랐다. 그들은 손에 손에 촛불 하나씩을 쥐고 있었다. 멀리 바벨탑처럼 솟구친 용산시티파크를 돌아 바람이 휘몰아쳤다. 4년 전 공권력 앞에서 떨던 용산의 철거민들과 죽음을 택한 23명의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들, 지금도 고공에서 황소바람을 뼛속으로 받아들이는 평택 쌍용자동차, 울산 현대자동차, 유성기업 노동자들처럼 촛불이 떨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대중은 물론 제자들까지 떠나버린 예수의 무덤을 마지막까지 지킨 세 여자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인 양, 몇몇 여성들의 눈망울이 유난히 컸다. 사회를 본 서울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와 용산참사 유족 대표로 눈물을 토해낸 전재숙 집사, 설교를 한 한백교회 양미강 목사도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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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사는 “예수가 처형당하자 분노는 절망을 낳고 절망은 포기로 이어져 하나둘 십자가 현장을 떠난 뒤 여인들만 남아 무덤을 막은 커다란 돌을 치워야 했지만, 경비병은 말할 것도 없고 군중과 제자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도 그랬다. 그러나 무관심과 절망, 포기만 있었다면 빈 무덤의 부활 사건은 없었다. 희망이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꽃핀 게 예수의 부활이다”라고 설교했다.

 

촛불교회는 용산참사가 발생한 그달부터 매주 목요일 절망의 현장들을 찾아갔다. 재능교육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현장, 제주 강정마을과 4대강 공사 현장 등이었다. 예배 뒤엔 헌금을 모아 현장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이번 남일당 예배가 159번째다.

 

이 촛불예배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구속자 석방을 위해 이해동·문동환 목사 등이 주축이 돼 매주 목요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모여 열었던 목요기도회의 정신을 이은 것이다.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던 목요기도회를 잇기 위해 모인 ‘예수살기’ 회원 60여명이 켜기 시작한 촛불은 꺼지지 않고 4년을 달려왔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몰리면서 고립무원의 절망 속에 있던 철거민과 해고자와 유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서울 동교동에서 철거당한 두리반 철거민은 촛불교인들의 성원과 공동투쟁에 힘입어 건설사로부터 보상을 받아 홍대 앞에 새로 칼국수집을 내기도 했다.

 

촛불교회 총무로 예배를 준비하는 데서 나아가 철거반이 들이닥칠 때면 예수살기 회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던 최헌국 목사는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성서의 메시지가 아닌가. 살아 있는 현장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과연 목회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책임과 사명을 새롭게 깨닫게 되고, 예전 건물 안에서 목회할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족이나 철거민들만큼이나 위로받고 변화한 것은 바로 ‘고난에 동참하는 이들’ 자신이었다. 함께하는교회 담임으로 촛불교회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방인성 목사는 “현장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했음을 자성하고, 깨어 있는 영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아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면서 정작 영적인 힘을 얻은 것은 나였다”고 고백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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