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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978년 경기도로부터 수의계약으로 불하받아 1979~1980년에 매각
13.01.23 19:43l최종 업데이트 13.01.23 21:1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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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대장 지난 1978년 10월 구국여성봉사단이 경기도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은 안양시 일대 42필지 부동산 중 일부의 토지대장. |
ⓒ 김도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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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과거에 총재로 있었던 사단법인 구국여성봉사단(고문 고 최태민 목사)이 지난 1978년 경기도로부터 수의계약으로 토지 14만3028㎡(약 4만3천 평)를 불하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관련 토지대장들을 찾아 확인한 결과다.
이렇게 구국봉사단이 불하받은 토지는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과 박달동 일대 42필지로 옛 경기도 종축장 부지다. 한 감정평가 법인이 지가변동률을 고려해서 평가한 결과, 이 땅의 당시 가치는 약 40억 원, 광명 KTX 역세권에 포함된 현재 가치로는 1500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이 토지의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옛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이른바 '최태민 관련 자료'에 등장하는 기업인이 연루된 증거가 포착돼 그동안 의혹으로만 떠돌던 최태민 목사 일가의 부정축재 혐의를 밝히는 데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국여성봉사단이 이 땅들을 매각한 뒤 그 매각자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최태민 목사의 딸과 사위들이 서울 강남과 강원도 평창 등지에 수백억 원 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고(관련기사 : 최태민 목사 딸 부부 소유 평창 땅 더 있다), 연 매출이 1000억 원대가 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관련기사 : 박근혜 올케는 '폐업', 최태민 사위는 '매각'... 왜?) 더욱 눈길을 끈다.
박 당선인은 1976년 4월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여성봉사단에 명예총재로 참가하면서 최 목사와 중요한 활동들을 펼쳐 나갔다. 임의단체였던 구국여성봉사단은 1977년 3월 사단법인으로 전환했고, 이듬해 2월 박 당선인은 총재로 취임했다. 1979년 5월 구국여성봉사단은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정렴·김계원씨와 박승규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은 과거 최태민 목사의 비위사실을 증언한 바 있지만, 그동안 박근혜 당선인은 이를 모두 부인해왔다.
구국여성봉사단 소유 땅 매입자 주소지는 '청와대'
<오마이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토지대장에 따르면 안양시 석수동·박달동 일대 토지 42필지 14만3028㎡의 소유권은 지난 1978년 10월 21일 경기도에서 구국여성봉사단으로 이전됐다. 관할 등기소에서 폐쇄등기부 증명서를 떼어 확인해보니 이들 토지는 1977년 2월 21일 구국여성봉사단이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 초 경기도에 이들 토지 매각방법과 매각가격을 알려 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경기도청 회계과는 "일반공개경쟁 2회 유찰에 따른 수의계약"이었으며 "매각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구국여성봉사단이 경기도로부터 적지 않은 땅을 특혜나 다름없는 수의계약으로 넘겨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 당선인이 이 단체의 총재로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앙정보부가 1970년대 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최태민 관련 자료'에는 경기도 종축장 부지에 대한 언급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77. 2. 21 金OO에게 경기도로부터 안양종축장(토지 70,788평, 건물 36동)을 奉仕團(봉사단)명의로 수의계약, 매수하여 준다는 댓가로 동 토지 7,000평과 동 지상건물 36동을 받기로 約束(약속).
구국여성봉사단과 그 후신인 새마음봉사단은 이들 부동산을 1979~1980년 사이 모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거래가 포착된다. 1979년 9월 19일 부로 '아세아 농산주식회사'로 소유권이 이전된 2필지와 같은 날 '아세아 농산주식회사 外(외) 1인'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2필지다. 이들 4필지의 토지대장에는 소유주의 주소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로 기록돼 있는데, 이 주소는 청와대의 주소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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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세아농산의 주소는 청와대? 토지대장에 따르면 1979년 9월 19일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 받은 아세아 농산주식회사의 주소지는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로 청와대의 주소와 일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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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폐쇄등기부 증명서에는 아세아농산주식회사의 소재지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555-7번지로 나와 있다. 소유권을 넘긴 구국여성봉사단이나 새마음봉사단 모두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775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오기(誤記)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떤 이유로 이들 4필지의 소유주 주소가 청와대의 주소와 일치할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세아 농산주식회사 사장 이아무개씨는 '최태민 관련 자료'에 등장하는 ㈜아시아중석 회장과 동일 인물이다.
'최태민 관련 자료'는 최태민 목사와 경북 울진에서 중석광산을 경영하던 이아무개 회장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78. 1 초순 부실 금융실업인 조치대상자 李OO이 경영하는 (주)아시아중석에 은행융자 알선 및 해외여행 제한조치 해제주선을 조건으로 동사 회장직 취임을 내락하고 78.12.18 朴槿惠비서관 金OO으로 하여금 재무부 등 관계관에게 請託(청탁), 李OO의 서독 헬텔사와의 중석가공 합작회사 설립추진을 위해 동인의 출국을 주선.
최 목사가 이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것을 조건으로 박 당선인의 비서관을 통해 재무부 관계관에게 청탁, 이 회장의 출국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증언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아, 박정희>를 통해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기업들의 현안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탁을 박 당선인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관련기사 : "영애 박근혜, 기부금 낸 기업 민원해결 요청").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큰따님 근혜씨가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최모(최태민)라는 목사가 '구국선교단'을 조직해서 가세하였다. 하루는 큰따님으로부터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어느 '건설회사'와 '섬유공업회사'의 현안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아버지 박 대통령을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 선양운동을 시작한 큰따님이 구국선교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되어 즉각 박 대통령에 보고했다." (김정렴 회고록 <아, 박정희>)
김 전 실장의 회고록은 최 목사가 '대통령의 큰 영애' 박 당선인을 내세워 각종 부정부패를 저질렀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1991년 1월 1일 치 시사월간지 <인사이더 월드>는 "최태민은 변호사법 위반사건으로 총 1억여 원을 갈취했으며 14만 평의 땅을 빼앗았다, 경기도 안양 근처·부산 근교·서울 노량진 쪽에 있는 토지 15만 평은 그의 수중에 넣었다"며 "그러나 수사기관이 그러한 소리를 듣고 철저히 조사했으나 너무도 교묘히 처리해 놓아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새마음봉사단 땅 매입한 신씨는 새마을운동 충남도지부장 출신
42필지 중 26필지(그 중 2필지는 아세아농산주식회사와 공유)를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사들였던 신아무개씨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충남 보령의 광산업자였던 신씨는 자신이 산 땅을 1980년 6월 대부분 매각했다. 이후 도시가스·부동산·종합 건설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그는 전성기에 10여 개의 기업을 거느렸으며 1989년에는 고액소득세 납부자 28위에 이름을 올렸다.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두 차례 지냈던 신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충남도지부장과 자유총연맹 충남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 민정당 충남도당 후원회장, 민자당 대천·보령지구당 의원장을 거쳐 1991년 지방선거에는 민자당 공천으로 도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금융업에 진출했던 신씨는 1994년 일반예금자들이 예금한 돈을 법정한도를 150배나 초과해 같은 계열기업에 대출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경영권을 빼앗겼던 그는 1997년 재기를 노렸지만, IMF 사태의 여파로 파산했다.
1998년 6월 한 경제신문에 실렸던 당좌거래 중지자 명단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신씨의 이름은 언론보도에서 사라졌다. <오마이뉴스>는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토지를 사들인 경위를 듣기 위해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이미 10여 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신씨가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사들였다가 8개월 만에 판 안양시 석수동 땅은 두고두고 분란거리가 됐다. 토지대장에 따르면 1979년 9월 11일 이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했던 신씨는 이듬해 6월 22일 소유권을 넘겼다. 그런데 신씨로부터 이 땅을 산 사람은 무려 1628명이나 된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77년 구국여성봉사단 소유 땅에 청계천 공구·자동차 부품상가 이전 계획
지난 1977년 당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은 인구 분산과 환경 정화를 위해 청계천 인근 공구 및 자동차 부품상가들을 교외로 이전시킨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전 대상이 된 업종을 중심으로 한국기계공구상연합회 등 4개 단체는 상가이전합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구국여성봉사단 소유의 안양시 석수동 토지를 이전 대상지로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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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 KTX 역세권 토지 1978년 구국여성봉사단이 경기도로부터 수의계약으로 불하 받았던 석수동 일대 옛 경기도 종축장 부지. 사진 중앙 멀리 보이는 건물이 KTX 광명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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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9년 9월 11일 20평 정도를 한 계좌로 만들어 상인들에게 분양했지만, 상가개발사업은 분양 후 한 달 만에 10·26이 터지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사업은 이듬해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상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재개를 요구했으나 1992년부터는 제2경인고속도로 건설 등 공공사업 집행으로 2만5000여 평 정도의 부지가 수용 당했다. 이후 지주들은 석수토지개발조합을 설립해 나머지 토지를 대상으로 주택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2003년 광명역세권 택지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2만3000여 평이 추가로 수용돼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2005년 12월 26일 치 <한국경제>에 따르면 계좌당 935만 원이 보상가로 책정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보상대상자 1700여 명 중 연락이 닿아 보상액을 받은 사람은 당시까지 300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과거 새마음봉사단이 소유했던 토지 중 석수동 570-2, 575번지 일원 58,936㎡(1만7828평)은 현재 석수스마트타운 부지로 수용돼 올해 안에 17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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