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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민족.통일 열사 전무배 선생 영결식 열려

“자유언론보다 높은 민족언론 입장에서 살았다”민주.민족.통일 열사 전무배 선생 영결식 열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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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5  23: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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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민족.통일 열사 전무배 선생 영결식’이 15일 저녁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선생의 지론은 간단명료하다. 오늘의 한국신문 수준으로는 통일을 준비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미 존재했던 민족일보의 정신만이 이 문제를 충족시킬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15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6호에서 진행된 ‘민주.민족.통일 열사 전무배 선생 영결식’에서 사회자로서 고인의 민족일보 복간 의지를 이같이 요약했다.

4.19혁명을 계기로 창간된 <민족일보>는 5.16군사쿠데타로 3개월 만에 폐간당했고, 조용수 사장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민족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전무배 선생은 이후 민족일보와 조용수 사건의 진상규명과 민족일보 복간을 위해 진력했고, 지난 14일 유명을 달리했다.

   
▲ 동갑내기 친구 성대경 전 성균관대 교수가 고인과의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고인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성대경 전 성균관대 교수는 “나이가 동갑인 관계로 각별히 친하게 지냈다”며 “이 세상의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만나서 그 사람과 내 개인의 얘기와 세상의 얘기를 마음 터놓고 섞으면서 지냈다는 것이 정말 잊을 수 없이 고맙게 생각된다”고 추모했다.

성대경 전 교수는 고인과의 일화를 소개한 뒤 “전무배 형은 성질이 매우 직설적이다. 옳고 그른 것의 중간에 적당한 말이 없다. 옳은 건 옳은 거고, 그른 건 그른 거고 분명했다”며 “그러한 분명한 친구가 먼저 훌쩍 떠나고 나니 이제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심경을 누구한테 토로할 지 마음이 허전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으로 함께 고초를 치른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전 선배님과 처음 만난 것은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모진 고문과 취조로 모두가 지쳐있던 때였다”며 “그럼에도 스스로 의연하셨고, 선배로서의 품격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이 고인의 일생을 회고하며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박중기 명예의장은 “우리 동료 중 복직을 하거나 옳은 일자리를 가진 이는 한두 사람에 불과했다. 그 후 지금까지 궁색한 생활의 편력은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우리의 만남은 이어져 왔고, 선배로서 많은 가르침과 모범을 남기셨다”고 기렸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을 역임한 이부영 전 의원은 “선생님이 민족일보 복간을 위해서 거의 평생을 애써 오신 것을 알고, 언론계에 종사했던 후배로서 저희들보다 먼저 곤경을 당하셨던 것으로 안다”며 “저희들이 추구했던 자유언론보다 더 높은 민족언론 입장에서 살아오신 것으로 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부영 전 의원은 “지금 한국 언론의 상태는 분단시대에 최악의 상태에 머물러 있고 선배님의 뜻을 이어받은 현역 젊은 언론인들이 지금도 분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배님이 닦아 놓으신 길로 저희 후배들이 쉬지 않고 따르겠다. 이어주신 뜻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은 <통일뉴스>의 이계환 대표가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는 “돌이켜 보면, 선생님이 계셨기에 민족일보 영인본이 나올 수 있었고, 선생님이 계셨기에 『조용수 평전』이 나올 수 있었고, 선생님이 계셨기에 통일뉴스가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민족일보의 얼을 변함없이 통일뉴스가 이어받고, 선생님의 민족일보 복간의 꿈도 통일뉴스가 이어받겠다”고 약속했다.

이계환 대표는 “2007년 통일뉴스가 7회 창간기념식에서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겠다’고 선언한 것을 잊지 못하고 있다”며 “민족일보의 4대 사시(社是)는 곧 통일뉴스의 사시가 되었고, 선생님의 민족일보 복간의 꿈은 통일뉴스가 그 정신을 이어받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통일뉴스>는 2007년 10월 창간 7주년 기념식에서 전무배, 조용준, 김자동 선생 등으로부터 민족일보 영인본을 인계받고 민족일보를 계승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민족일보 4대 사시는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근로 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이다.

   
▲ 유족을 대표해 아들 지하 씨가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유가족을 대표해 아들 지하 씨는 “제가 아버지의 사상이나 생각을 깊이 알지 못하지만 아들로서 아버지를 쭉 봐왔을 때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저희 아버지의 뜻과 행동, 많은 것들을 같이 하셨던 분들이 오셔서 가족을 위로하고 아버님이 갖고 계셨던 생각들을 기억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날 영결식은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김정남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 등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거행됐으며, 고인과 관련된 사월혁명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경희대총민주동문회, 거시기산악회 관계자 등도 함께했다.

   
▲ 영결식은 헌화로 마무리됐다. 왼쪽부터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부영 전 의원,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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