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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과 5.18

한명숙과 5.18
 
옥중에서 온 편지…
 
강기석 | 2016-05-23 08:11: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20일) 아침, 의정부 교도소에서 9개월째 징역살이하고 있는 한명숙 총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5.18 새벽에 쓴 편지다. 편지지 앞뒤를 꽉 채워 8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이었다. 그동안 한 총리와 몇 번의 서신 왕래가 있었지만 이번 편지의 의미는 각별했다.

5.18 광주항쟁이 한 총리의 공적인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민중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됐다.

비록 사신(私信)이지만, 편지 내용 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빼고 일부만이라고 공개하고 싶다. 한 총리가 편지에서 “당분간 제 소식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라고 당부했음에도 그리 하고 싶다.
 
5.18을 맞아 누군가에게라도 간절하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이고 그 상대로 내가 선택됐지만, 한 총리를 아끼고 존경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할 만한, 공유해야 할 이야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총리같은 인물이 추잡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에 연루됐을 리 없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정치검찰을 앞세운 수구 기득권세력이 왜 눈에 불을 켜고 그를 핍박하고 있는지를 짐작하는 단서가 됐으면 더 좋겠다.

“오늘은 5.18, 새벽 4시 30분입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잠을 청하지 않고 펜을 들었습니다. 
제 방은 밤이나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광명의 세계인지라 조용한 5.18 아침에 편지쓰기가 안성맞춤입니다. (...)

강 선생님은 아실지 모르지만 1980년 5.18 당시 저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투옥된 후 서울에서 광주로 이송가 바로 그 역사적 순간에 광주교도소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민군과 전두환 사단의 격투가 벌어지면서 교도소 수형자들은 일체 출력을 못 나가고 꼼짝없이 비상식량인 건빵만으로 2주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재소자들은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끊어진 상태에서 5.18 민주항쟁은 상상도 못하고 전쟁이 일어났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총소리가 울리면 방안의 우리들은 두툼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냈습니다.
같은 방에 있던 한 60대의 아주머니가 창문을 보더니 ‘삐라다!’라며 절망과 공포의 외마디를 질렀습니다. 
쇠창살 사이로 뭔가 붉은 것이 펄럭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총소리와 붉은 삐라’, 전쟁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사(女舍)의 유일한 정치범인 나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곧 독방으로 옮겨져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다. 
시민군이 퇴각한 후 한 수형자가 출력을 나갔다가 삐라 한 장을 주어다 줬습니다. 
그것은 최규하 대통령의 담화문이었고 그것을 통해 전 처음으로 공포에 휩싸였던 그 일의 전모를 알게 됐습니다. 
5.18 항쟁 때 광주교도소는 전두환 사단의 후방기지였습니다.
이 안의 인쇄공장에서 삐라를 만들고, 운동장은 헬리콥터 기착지였으며, 시민군을 잡아다 굴비처럼 엮어 가두기도 했습니다. 
붉은 삐라는 헬리콥터가 뜰 때 일으키는 강한 바람에 휘말려 하늘 높이 떴다가 헬리콥터가 멀리 사라지면 다시 펄럭이며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비 같았습니다.
5월에 흩날리는 꽃비는 처절합니다. (...)

전 항상 1980년 봄 스러져간 광주민주영령들과 같은 곳에서 함께 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면서 그 민중의 힘을 오늘도 교도소 안에서 가슴깊이 담고자 합니다. 
얼마 전 비바람이 몰아쳐 개나리 진달래 철쭉 라일락꽃들이 속절없이 떨어져 하룻밤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비바람에 약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이곳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향연이 한창입니다.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이 이렇게 강인하게 자신의 꽃을 피우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너무나 작아 앉은 자세로 가까이 들여다 봐야 할 정도의 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봄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잡초 대신 야생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징역살이 12년 동안 ‘야생초 편지’를 쓰신 황대곤 선생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야생초는 시멘트벽을 뚫고 나와 싱그러운 잎을 뻗기도 하고, 벽돌 사이사이에서도 빼꼼히 푸른 얼굴을 내밉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야생초 꽃들은 신이 나서 춤 출 뿐 속절없이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강해지는 민중과 꼭 닮았습니다. 
그들은 맘껏 꽃을 피우고 즐기다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들은 봄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치 함박눈처럼 훨훨 날며 짝짓기를 하고 나서 땅위에 납작 엎드립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땅 속 깊은 곳에 튼튼히 뿌리박고 생명을 모아 숨쉬고 있다가 다시 새봄이 오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번식으로 땅을 뚫고 나옵니다. 
요즘은 운동시간 절반은 야생초들과 마음을 나누며 생명의 기(氣)를 받습니다.
제 마음 속으로 조용히 염원합니다.
‘야생초들아, 계속 뻗어나가 교도소 높은 벽까지 타고 넘어 다 점령하리라!’ (...)

수락산 자락 큰집은 지금도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난방이 끊어진 4월부터는 봄 추위가 영하 23도의 한겨울보다 더 냉혹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동 청소도우미들이 가르쳐 준 ‘신문지 비법’ 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냉골 바닥에 신문지를 두텁게 깔면 시멘트 바닥의 냉기도 막아주고 냉기와 온기가 부딪쳐 생기는 습기를 흡수해 주는 이치입니다. 
오늘도 신문지를 깔면서 예쁜 사진이 나오면 눈 맞추기도 하고, 보기 싫은 사진이 나오면 휘~익 뒤집어 깔기도 하면서 신문지 비법을 즐기며 두 다리 쭈욱 뻗고 잤습니다. 
걱정 마소서. (...)

2016년 5.18 아침
5.18 영령들의 영혼을 마음에 담아
한 명 숙 ”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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