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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찬문화연구소를 열며

이남곡 2013. 02. 05
조회수 277추천수 0
 

 

 

<연찬문화연구소>를 시작하면서

 

 

연찬회-.jpg

지난 2000년 경기도 화성 산안(야마기시)공동체마을에서 야마기시즘 연찬회를 진행하는 필자(맨왼쪽 정면) 사진 조현

 

 

우리는 2011년 1월부터 장수군(長水郡)으로부터 임대한 논실마을학교(구(舊) 대론초등학교)에서 인문운동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18여회의 인문학 강좌, 독서회, 워크샵, 연찬프로그램 등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인문운동을 제안했던 것은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이제 사회제도나 물질적 조건의 개선만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물신(物神)의 지배로부터 인간의 해방’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의식의 진화’야말로 우리가 인문운동의 내용으로 담으려한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의 수단적 가치나 개인의 해방을 경시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나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가 아니라 넘어서려는 것입니다.

 

수단과 목적의 전도(顚倒)와 인간의 엄청난 행위능력과 자기중심적 의식 사이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려는 것입니다.

물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되어버린 의식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두고는 어떤 진보적 정치구호나 경제민주화 방안도 지속가능한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개인주의와 결합되는 과도한 이기주의의 바탕에서는 아무리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도 차가운 사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유와 소비중심의 생활문화를 바꾸고,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고 베푸는 의식과 삶은 자발성에 바탕을 두어야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보람과 기쁨으로 되는 문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 ·평등·정의를 향한 정치 경제 사회의 제도를 개선 개혁하는 것과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이러한 문화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도처에 그런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이래 그토록 그려온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그 역(逆)도 중요하게 된 시점, 어떤 의미에서는 큰 전환점(轉換點)을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새로운 의식과 생활문화가 새로운 제도를 가능케 하는 토대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과거의 틀은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절대빈곤과 독재를 넘어선 중견국가로서, 이제 우리는 인류적 범위에서 전쟁·양극화·지구생태계의 위기에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력하나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인문운동의 결합을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마을공동체운동이나 협동조합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과 열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지금 그런 운동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인문운동이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고 합니다.

 

마침 논실마을학교가 마을권역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에 들어가 당분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제에 구체적인 분야로 전문화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연찬문화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대긍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인류사는 자유확대의 과정입니다.

평화적인 발전은 물론이지만, 대립과 투쟁으로 점철되어 보이는 것마저 어떻게 보면 거칠게 정(正)반(反)합(合)으로 진행되는, 끝이 열려 있는 나선형 진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거칠게 나아가는 과정은 인류라는 종(種)의 멸망까지를 내다보게 합니다. 그것은 인류의 엄청난 행위능력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과거 성인에게나 가능했던 대화, 소통, 진리탐구와 실천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 속에,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적 실천 속에 현현(顯現)되어야하는 시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물질적 진보는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인간의 최고의 의식을 무아(無我;에고로부터의 해방)에서 찾고, 그것이 모든 고등종교의 목표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제는 그것을 사회화해야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무어라 이름 붙이기가 어려워 연찬(硏鑽)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연찬이라하면 무슨 무슨 연찬회라는 이름의 모임들도 많지만, 아마도 우리가 사용하려는 의미는 20세기의 걸출한 인물인 일본의 야마기시에 의해서 정의(定義)된 연찬과 가장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위(零位)에서의 철저(徹底)구명(究明)”을 말합니다. 어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 그리고 단정(斷定)이 없는 가운데, 진리를 철저히 밝혀 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 야마기시 사후(死後)에 많은 사회적 물의마저 일으킨 실현지 중심의 실천 방법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권하기 힘든 특수한 소통 내지 의사결정 그리고 탐구와 실천의 방법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연찬(硏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연찬방식이라는 것은 야마기시의 독창적 창조물이 아니고, 이미 저 빛나던 축(軸)의 시대 모든 성인들에 의해 창시된 이래 계속 진화해 온 인류 지혜의 축적된 소산이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내용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명칭을 그냥 사용하기로 했습니다.(더 좋은 이름이 있다면 언제든 바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원효, 야마기시와 최근의 일본 스즈카에서의 실험들 그리고 제가 접한 것만 해도 파커 파머, 에크하르트 톨레, 바이런 케이티 같은 서양 사람들에 의해서도 끊임 없이 발전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누가 옳은가?’하고 서로 따지는 지금의 토론문화로부터 ‘무엇이 옳은가?’하고 함께 탐구하는 연찬문화로의 진보는 평화롭게 새로운 세상으로 이행하는 중요한 초석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회를 넘어서려는 마을공동체운동이나 협동운동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것에서도 여실히 보여지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이른바 진보 운동이 그 고질적인 분파주의를 넘어서 진정으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그 바탕이 ‘내(우리)가 옳다’는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근거없는 확신에 바탕을 둔 토론 문화가 아니라, ‘내(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나(우리)의 감각기관에 의해 파악된 것을 나(우리)의 뇌가 저장하고 있는 정보에 의해 판단한 것일 뿐으로, 진실 그 자체와는 별개“라는 자각을 바탕으로 한 연찬 문화에 의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찬이라는 방식을 여러 운동 나아가 삶 속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미미할지 몰라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욕구가 커지는 것만큼 점점 더 넓고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연찬문화의 보편화를 위해 본 연구소는 최선을 다 하려고 합니다.

 

우선 재정이 넉넉치 못한 관계로 자원봉사의 연구위원을 위촉하려고 합니다. 우선 온라인 상에서 다방면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서로 연찬하는 장(場)을 꾸며볼까 합니다. 그리고 6개월에 한 번 정도 2박 3일 내외로 직접 만나 심층적 연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연구 결과를 실질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특히 이런 프로그램을 자신의 실제적인 영역에서 맞춤형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연찬진행자를 양성하는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저희들의 능력은 미미하지만, 우리 시대의 요구라는 자각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고 그 실행 방법을 탐구하며, 그것을 실천과 접목하는 그런 모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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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서울대 법대 재학 때부터 민주화에 투신 4년간 징역을 살고 나온 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으로 진리를 향한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토회 불교사회연구소장을 거쳐 경기도 화성 야마기기마을공동체에 살았으며, 2004년부터 전북 장수의 산골로 이주해 농사를 짓고 된장·고추장 등을 담그며 산다. 서울에서 매주 ‘논어 읽기’ 모임을 이끈다.
이메일 : namgo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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