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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을 건 박근혜의 '도박', 성공할까?

 
2016.05.28 06:39:31
[분석] 협치 거부하고 정쟁 유발로 내부 단속, 반기문 카드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상시 청문회법)에 거부권을 던지면서 정국은 '시계 제로'가 됐다. 
 
27일 임시국무회의는 전격적으로 열렸다. 총리실 출입기자들도 이날 오전에 임시 국무회의 예정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별다른 공지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이 31일, 혹은 7일에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보란듯이 틀렸다. 이날 오전 총리실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결국 20대 국회 개원일(30일)을 사흘 앞두고 19대 국회에 이 법안을 폐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거부권 행사 날짜를 급히 앞당겼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는 이미 19대 국회 폐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법적 검토를 통해 나름의 논리를 세워놓았을 터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위헌 소지'까지 언급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만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됐다. 국회의 권한 강화, 특히 야당의 권한 강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총선 패배로 레임덕 국면으로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국회를 묶어 두려 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도에 대한 분석과 함께, '친박계 주연'의 몇몇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근혜 대통령(청와대 제공)

'기름 뱀장어'를 건 박근혜의 '도박'은 성공할까?  
 
먼저 거부권 행사의 성격은 박 대통령의 '정쟁 유발'로 볼 수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주도한데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이 동조해서 처리한 법안인데, 굳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의도적으로 정국을 뒤흔든 형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6월 국회의 정부 시행령 견제 방안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초라한 정략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박 대통령은 원내대표까지 강제로 밀어낼 수 있는 힘을 쥐고 있었다. 반면, 지금은 단순한 법리 싸움에, 숫자 싸움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정면 돌파가 아니라 소심한 도발이다. 물론 정면돌파를 감행할 힘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격세지감이다.  
 
거부권 행사의 충격파는 여러 현상을 낳게 될 전망이다. 친박계와 비박계는 좋으나 싫으나 힘을 합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친박)과 함께, 야당에 밀리면 안된다는 위기감(비박)을 결합시켜 하나의 목표(거부권 재의결 저지)를 향해 채찍질하는 형국이다. 양 계파는 각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야당의 재의결 추진을 무조건 거부해야만 한다. 그게 대통령과 자신들이 사는 길이다. 적과의 전투를 앞두고 정쟁을 유발해 여당 내부를 단속하는 방식의 전형이다.   
 
야당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분석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대통령의 정쟁 유발에 말려들기보다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규탄' 액션을 한번 하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틱한 액션을 취하지 않고 '실력 과시' 수준에서 공세를 마감할 것이라는 얘기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 스스로 지도록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만약 19대 국회에서 이 법안이 폐기되더라도,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재추진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적다. 역풍이 우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당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민의당 일각에서 제기됐던 새누리당과 연정론은 명분을 완전히 잃게 됐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국민의당의 야성(野性)을 이끌어 낸 셈인데, 이는 결국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 역할' 축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의 입지를 약화시킨 것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캐스팅보트 이용권 마저 폐기시킨 것이다.  
 
결국 여야 구분은 더 확실해졌다. 친박과 비박, 제3의 보수 세력, 제3 교섭단체 등, 어지럽게 펼쳐진 정치 구도역시 단순화됐다. 정계 개편 가능성에도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국정 운영 차원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가 극한 대립으로 가면, 집권 여당의 경제 정책 구상 등이 벽에 부딛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도대체 국정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이냐"는 탄식들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협치가 아니라 정쟁을 택했다. 민생을 내던지고, 권력 유지에 발 벗고 나선 셈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강력한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주자 부상과 현 정국은 묘하게 맞물린다.  
 
실제 반 총장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그의 이미지는 중도 확장형이다. 국민의당의 이미지와 겹친다. 그가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면, 야권에 만만치 않은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 따져봐도 최소한 인물난을 겪고 있는 새누리당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큰 틀에서 정무 기획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시나리오가 급속도로 힘이 빠지고 있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을 막을 수 있느냐 여부다. 반 총장의 지지율은 향후 추이를 봐야 하겠지만, 본격적인 검증 국면에 들어서면 어떤 상황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거품이 빠지게 되면 박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반 총장은 아직 새누리당행을 결정하지도 않았다. 그의 별명은 '기름 뱀장어'다. 이번 거부권 행사가 박 대통령에게 반기문을 건 일종의 '도박'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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