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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반기문, '대통령 노무현' 인정하지 않았다
 
2016.06.07 01:21:50
美 국무장관 대화 '보고 누락'…盧 "왜 혼자만 알고 있었나?"
 
방미 중인 이해찬 의원(전 국무총리)이 오는 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회동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다시 반 총장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 총장을 만날 예정인 이 의원이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의원은 지난 5일(미국 현지 시각) 동포 간담회에서 "외교관은 국내 정치와 캐릭터가 안 맞는다"며 "그 동안 외교관을 많이 봤지만, 정치적으로 대선 후보까지 간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이해찬, 반기문 겨냥 "외교관은 정치와 안 맞아")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인 이 이사장이 반 총장에 대해 이렇게까지 딱 잘라 말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친노 대선후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존재, 최근 반 총장이 박근혜 대통령 등 여권 핵심부와 소통이 잦은 상황 등이 이유로 꼽힐 수 있겠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부터 엘리트 외교 관료인 반 총장과 이른바 '친노' 그룹은 지향하는 가치 등의 면에서 대척점에 서 왔던 것 역시 이유의 하나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친미 장관 반기문'과 '자주 대통령 노무현' 대립?

반 총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외교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렸다. '친미적'이라는 말도 그래서 늘 그를 따라다녔다. 주요 경력도 주미 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미주국장(현재의 북미국장) 등이었다. (이 대목은 이어지는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미 국무부 외교 전문(電文)에 언급된 '반기문의 친미 성향'(☞관련 기사 : 美 "반기문, 천성적 미국 동조자")은 미국 외교관의 과장된 보고라고 치부하더라도, 대통령이 "미국에 사진이나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만큼 대미 외교에서의 '자주성'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반 총장이 실제로 마찰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2005년 봄의 '대통령 보고 누락' 사건이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 국무장관과 주고받은 중요한 얘기를 한국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이 일화는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 정의당 김종대 의원(노무현 정부 NSC 행정관) 등의 회고록에 공통으로 나온다. 

2005년 3월, 청와대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이전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도 말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있다"며 "향후 한반도에서 평화 체제가 구축되는 데 한국 정부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당황스러웠다. 6자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타결하는 게 우선이고, 평화 체제 문제는 핵 문제 해결의 경과를 보아 가면서 6자회담의 틀을 통해 풀어 간다는 것이 당시까지 알려진 미국의 기존 입장이었기 때문.

이에 노 대통령은 반기문 장관에게 "라이스가 말한 평화 체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반 장관은 "사실은 얼마 전에 미국에서 라이스를 만났는데 그때 한 말"이라고 털어놓았다. 황당해진 노 대통령은 "왜 지금까지 그것을 당신 혼자만 알고 있었느냐"고 반 장관을 질책했다는 이야기다. 반 총장이 당시 장관으로서 보인 이같은 행동은 마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기에 논란이 됐다. 

이 사건 한 번이 아니었다. 북한·한반도 문제에 대해 반 장관과 외교통상부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NSC(국가안전보장회의)·통일부와 지속적 갈등 양상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안의 야당'이었던 셈이다. 2005년 2월 라이스 국무장관의 말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 역시 평화 체제 수립은 북핵 문제 해결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반 총장의 정치적 소견, 또는 외교부 내 미국 전문가 집단의 '집단 사고(Group Thinking)'가 작용했을 여지가 크다. 

실제로 반 총장은 계속해서 북미 평화 협정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보이다가, 노무현 정부 당시 '황태자'로 불리는 등 대선 주자급 실세였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런 냉전적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있느냐"는 호통을 듣는 수모까지 겪었다. 

靑·NSC에 보고 않고 美와 각서 교환한 위성락을 주미공사 영전시킨 반기문

노무현 정부 말기 외교 안보 이슈였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외교부가 청와대와 NSC를 따돌리고 미국과 합을 맞춘 사례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때 6자 회담 수석대표와 주러시아 대사를 지내게 되는 위성락 당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외교 각서 초안을 미국 측에 보낸다.

하지만 외교통상부가 이런 각서를 미국에 보낸 사실은 외교 안보 '컨트롤 타워'였던 NSC도 몰랐고, 청와대도 몰랐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 이종석 NSC 사무차장 등은 모두 바보가 됐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가서 "최근 일부에서 주한 미군의 역할 확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문제"라며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할 당시까지도 외교부가 미국과 각서를 교환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사실은 2006년 2월 2일,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NSC가 작성한 비공개 문서를 입수해 공개하면서 최초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2월 3일에는 <프레시안>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작성한 다른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관련 기사 : '전략적 유연성' 외교 각서…대통령은 몰랐다) 'NSC 문건'과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은 작성자는 달랐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은 2005년 4월 8일 작성된 이 문건에서 "양국 간 외교 각서 문안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환"되었다고 지적하며 "(NSC의) 문안 교환 사실 인지 시점이 2004년 3월이라 하더라도 이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사후 보고되지 않았다"고 외교부를 넘어 NSC까지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과 각서를 교환한 당사자인 위성락 국장은 오히려 이듬해에 주미 대사관 정무 담당 공사로 영전했다. 상부 보고 없이 각서를 교환했을 당시(2003년 10월)의 외교장관은 윤영관 장관이었으나, 2004년 8월 위성락 국장에게 주미 공사 발령을 낸 사람은 그해 1월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맡은 반기문 장관이었다. 

문재인의 靑 민정수석실 "외교부,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라며 '개입 최소화' 전제"

반 장관을 위시한 외교통상부 내 주류, 이른바 '워싱턴 스쿨'이라고도 불리는 미국 전문가 관료 그룹이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와 어떤 관계였는지는 2003년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보고서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외교-국방 "盧와 NSC는 '반미'…협상서 배제해야")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이석태 현 세월호 특조위 위원장(전 민변 회장)이었고, 민정수석은 바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였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용산 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 보고' 제하 보고서를 보면, 청와대는 "외교부 북미국(북미3과)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맹종적 자세와 현상 유지적 속성으로 당당하고 합리적인 협상 외교를 전개하지 못했다"며 "외교부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이 문제의 개입은 최소화시킨다'는 전제를 기초로 협상을 진행했다"고 적고 있다. 이 보고서는 작성 이듬해인 2004년 9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현 정의당 원내대표)이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반기문 총장은 문재인 수석이 '외교부가 대통령을 무시한다'는 내용의 이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의 외교장관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에는 문 수석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에 몸담고 있었다. 그러나 반 총장이 외교부 내 주류 그룹의 일원이었고, 지금도 그 일원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 총장 본인이 미주국장 출신이고, 특히 미주국장일 당시 용산 기지 이전 협정에 서명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현재 반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김숙 전 유엔 대사도 북미국장 출신이다. 

이런 과거사를 보면, 재야 민주화 운동가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해찬 이사장이 반 총장을 믿음직하다고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 등이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한 것 역시, 반 총장에 대한 인간적 신임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무현 정부와 반 총장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노무현 외교의 '마지막 구원투수') 이 이사장이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외교 이외의 영역에서는 인식이 그렇게 깊지 않다", "반 총장을 야권 후보로 생각하는 야당은 없다"는 등의 말을 한 것도 이와 겹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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