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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원들, 골든타임에 왜 캔맥주만 홀짝였나?

 
2016.06.10 09:32:05
[세월호 의혹의 확정 ⑨] 해경 123정 2
 
9시 35분경 123정은 사고 현장에 도착합니다. 당시 세월호는 50도 정도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계속해서 침몰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었고 시급하게 승객들을 퇴선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지휘함인 123정은 세월호에 교신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세월호의 상황을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승객에 대한 퇴선 지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123정은 현장에 도착하여 세월호를 향해 접근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어 서고,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8인승 고무 단정을 바다에 내립니다. 
 
지난 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123정이 교신을 통해서든 사람을 보내서든 세월호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후에 123정이 행하는 모든 일들은 어떤 근거로, 어떤 판단 하에 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후의 123정의 행위들은 대부분 의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무 단정을 내린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만약 123정 승조원 일부가 고무 단정을 타고 세월호로 가서 선내에 진입하여 선원이나 승객들을 통해 세월호의 상황을 파악하였거나 승객의 퇴선을 유도하였다면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고무 단정에 탑승한 승조원은 세월호 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애초에 단정을 내릴 때 단정을 내리는 목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123정이 세월호 근처에 접근하였을 때 누군가 '단정을 내려라'는 말을 하여 저와 박○○ 경사가 함께 단정을 내리고, 단정을 내리라는 말은 당연히 단정을 내려서 세월호에 접근하라는 내용까지 포함한 말로 알아듣고 단정을 내리자마자 저와 경사 박○○ 2명이 단정에 올라타 세월호로 접근을 한 것입니다." (김모 경장 참고인 진술조서 3회)
 
당시 단정을 내리고 조정했던 김모 경장의 진술입니다. 경찰이라는 계급사회에서, 그리고 구조 활동을 펼치는 엄중한 상황에, 누가 말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누군가 내리라니까 단정을 내렸고, 또 세월호로 접근을 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내리라는 말은 가라는 말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세월호로 접근하였다고 합니다. 납득이 되시나요? 
 
당시 123정이 상식적으로 취해야 했던 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크게 3가지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해군함정이든 해경 함정이든 선교 위 마스터에 고성능 대공 마이크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외부로 방송이 나가고 있습니다. 대공 마이크를 통해서 (퇴선)방송을 하면 됩니다. 두 번째로는 123정이 세월호 선체로 접근하여 세월호 내로 구역을 나누어 123정 대원들을 선체로 진입시켜 퇴선을 유도하고, 세 번째로 조타실 쪽으로 1개 팀을 보내 그 곳에 있는 방송설비를 이용해 퇴선안내방송을 했어야 합니다." (심모 전 제독 참고인 진술) 
 
고무 단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123정 자체를 세월호에 접안시키고 일부는 조타실로 보내 퇴선 방송을 하고 나머지는 분산하여 승객 퇴선을 유도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23정 자체적으로 퇴선 방송도 하여야 했던 것이고요. 설령 고무 단정을 내리더라도 위와 같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렸어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배가 침몰하고 있으니까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오라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거나,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123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고무 단정은 아무런 목적 없이 내려져 세월호를 향해 다가갑니다. 
 
고무 단정이 첫 번째로 출발한 시각은 9시 38분경입니다. 세월호를 향해 출발한 고무 단정은 세월호를 향해 곧장 직진하여 9시 39분경 세월호 3층 좌현 갑판에 있던 5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123정으로 돌아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모두 세월호의 기관실 선원이었습니다. 
 

▲세월호 기관실 선원 명단

이 표는 세월호 기관실 선원 명단입니다. 이 명단에서 1번부터 5번까지의 5명이 처음으로 고무 단정에 의해 구조된 사람들입니다. 나머지 두 사람도 고무 단정이 두 번째 출발하였을 때마저 구조해 오게 됩니다.
 
여기서 이 기관실 선원들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최초에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기관실 선원 7명은 세 군데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기관장 박모 씨는 5층 조타실에 있었고, 1등 기관사 손모 씨, 조기장 전모 씨, 조기수 김모 씨 등 3명은 3층 기관실선원 선실에 있었으며,  3등 기관사 이모 씨와 조기수 박모 씨, 이모 씨 등 3명은 지하 1층 기관실에 있었습니다. 
 
사고 직후 기관장 박 씨가 기관실에 전화를 두 번 걸어서 기관실에 있던 3명에게 위로 올라오라고 지시하였고 자신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기관실 선원 7명은 3층 기관실 선원 선실 앞 복도에 집결하게 됩니다.
 

▲세월호 기관실 계단 구조도. ⓒ선장 선원 재판 1심 제13회 공판조서

 
하 1층에 있던 3명이 3층까지 올라온 길을 나타낸 것입니다. 선미 쪽에서 선수 쪽을 바라본 그림이므로 왼쪽이 좌현, 오른쪽이 우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초기에 세월호는 왼쪽으로 약 30도가량 기울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기관실에 있던 3명은 그림의 엔진컨트롤룸에서 나와서 아래로 조금 내려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선미 쪽으로 조금 걸어가 또 다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갑니다. 1층에서 3층까지 연결된 이 계단의 각도는 62도인데, 당시 세월호가 좌현으로 30도 정도 기울었으므로, 처음 올라가는 계단은 90도 정도의 각도가 되었을 것이고 그 다음 계단은 다소 평평한 수준의 각도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세월호가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지하 1층에서부터 3층까지의 이동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3등 기관사 이모 씨는 여성임에도 다른 선원들이 도와주어 이동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렇게 기관실 선원 7명이 3층 복도에 집결했던 시간은 9시 6분경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무 단정에 의해 구조되는 시간은 9시 39분경입니다. 이 7명의 선원들은 30여 분의 시간동안 무엇을 하였을까요? 놀랍게도 이들은 3층 복도에서 무작정 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구명조끼를 가지고 나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기관장과 1등 기관사는 3등 기관사 방에서 가지고 나온 캔맥주를 한 캔씩 마십니다. 3등 기관사도 한 모금. 기관장 박모 씨가 담배를 피웠다고 진술하는 선원도 있습니다만, 박 씨는 맥주는 마셨지만 담배는 안 피웠다는 입장입니다. 그 입장을 존중하여 맥주만 마신 것으로 하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들이 했어야 하는 행위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선장이 있는 조타실에 연락하여 사고가 왜 발생하였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치 123정이 세월호에 교신을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 기관실 선원들은 조타실에 연락하지 않습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선원도 있었고, 각 선실에는 선내전화도 있었습니다. 구명조끼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으므로 전화를 하러 들어가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들은 '기관실' 선원이므로 발전기나 엔진의 상태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다면 일정한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발전기나 엔진과 관련한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층간 이동이 가능했음에도 이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이들은 '선원'이므로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일정한 행동을 했었어야 합니다. 구명벌(구명뗏목)이나 슈터(팽창식 미끄럼틀) 등을 터트리거나 아니면 적어도 승객들의 상황이라도 파악하고자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냥 무작정 30여 분을 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러한 기관실 선원들의 행태는 명백한 의혹 사항입니다. 자신이 구조되리라는 확신이 있지 않는한 침몰하는 배 안에서 연락 한 번 취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관실 선원들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작정 대기만 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는 어떤 행위를 했는데 숨기고 있는 경우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자신이 구조되리라는 확신을 어딘가에서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확신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 밝혀져야 합니다. 만약 이들이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데 숨기고 있는 경우라면 이 역시 숨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진상규명이 필요합니다. (계속)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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