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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 보험사와 박근혜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죽이기

 
2016.06.30 07:27:41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실손 의료 보험의 진실
 
근래 실손 의료 보험 개편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보험사들은 과잉 진료로 실손 의료 보험 손해율이 높다며 대책을 주문한다. 일부 과도한 도덕적 해이 사례를 언론에 유포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금융 당국은 준비되었다는 듯이 실손 의료 보험 개편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실손 의료 보험 논란과 대책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일방적으로 보험사의 입장에서만 논의하고 있기에 그렇다. 보험사는 과잉 진료 의료 기관과 환자의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하다. 과연 그러한가? 

취약한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국민을 실손 의료 보험으로 몰아넣어

2007년부터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개인 실손 의료 보험의 가입자 수는 32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개인 대상이니, 단체로 가입한 실손 가입자 수 500만 명을 합치면 3700만 명에 이를 것이다. 출시된 지 10년도 안 되어 전 국민의 70% 이상이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실손 의료 보험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보험이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건 다름 아닌 취약한 국민건강보험 제도이다. 아직도 본인 부담 비중이 높고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가 많다. 그러다보니 실손 의료 보험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실손 의료 보험료는 나이가 들수록 폭등해, 80세가 되면 월 60만 원에 이르리라는 것은 정부조차 인정한 사실이다. 젊고 소득이 있는 청장년은 당장 월 몇 만 원의 보험료가 크게 부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노후에는 실손 의료 보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도덕적 해이? 실손 의료 보험 자체가 문제다 

보험사는 실손 의료 보험 인상 원인을 대부분 과잉 진료로 돌린다. 의료 기관이나 환자의 무분별한 진료가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실손 의료 보험이 갖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환자나 의료 기관 탓이 아니라 실손 의료 보험 자체에서 기인한다.

우리 사회는 도덕적 해이를 흔히 부도덕한 현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도덕적 해이란 치료 가격에 대한 수요 탄력성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인센티브에 대한 합리적 반응으로 규정한다. 도덕적 해이는 부도덕한 현상이 아니라 합리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보험으로 인해 서비스의 한계 가격이 낮아지면 서비스의 이용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갑자기 허리를 삐끗하여 심한 통증이 발생하였다고 하자. 간단한 검사비조차 낼 능력이 없는 사람라면 그냥 약국에서 2000원짜리 파스를 붙이고 누워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지불 능력이 있다면 병원에서 엑스레이 등 여러 검사와 함께 약물 치료나 물리 치료를 받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보험이 적용되는 CT도 촬영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실손 의료 보험을 갖고 있다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하지 않는 고가의 MRI도 찍을 것이고, 역시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도수 치료(제자리를 이탈한 관절의 위치를 바로잡는 치료)도 받을 것이다. 합리적인 보험 가입자라면 파스만 붙이고 누워 있진 않을 것이다. 의사가 권유하든 그렇지 않든 MRI까지 찍어보고자 하는 심리는 자연히 발생한다.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해 놨으니까.

또한 선뜻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진료고 어디까지가 과잉 진료인지를 구별하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 단지 실손 의료 보험이 MRI, 도수 치료 등 비급여 치료를 보장해주므로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보험의 기능은 의료 이용의 가격을 낮추어 의료 이용을 증가시키는 데 있기에 그렇다. 

더욱이 실손 의료 보험은 보험료에 대한 비용 의식을 유발한다. 비급여에 대한 혜택을 누리고자 비싼 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비급여 진료를 받으려는 심리는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해놓고 아픈데 의료 이용을 하지 않는다면 손해라는 생각을 할 것이기에 그렇다. 실손 의료 보험 자체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고 보는 이유다.

이는 그간 보험사가 보인 행태로도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 보험회사는 실손 의료 보험 절판 마케팅을 벌였다. 2009년 정부는 그간 실손 의료 보험이 본인 부담의 100%를 보장해주는 것이 과잉 진료를 유발한다며 90%까지만 보장할 수 있도록 규제했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일제히 100% 보장해주는 상품은 더 이상 출시되지 않는다며 막차를 타라는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2008년, 2009년 2년 동안 100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도덕적 해이를 더욱 유발하는 상품을 절판 마케팅으로 권유했다. 보험사가 앞장서서 도덕적 해이를 더 크게 유발하는 상품이 더 좋다고 홍보해온 것이다. 

보험사가 주장하는 손해율 검증 장치 없어 

보험사들은 실손 의료 보험의 손해율이 100%를 넘어서 보험사가 손해를 보고 있으니 보험료를 올리고, 선량한 가입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과잉 진료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보험사의 손해율에 대한 검증 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몇 년째 손해보고 판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험사들은 실손 의료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보험사가 손해보면서 팔아야 할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백 번 양보해, 실손 의료 보험의 손해율(정확히는 '위험 손해율'*)이 100%를 넘어 손해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보험사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실손 특약에서이지, 실손 의료 보험 전체에서 손해를 보고 있진 않다. 여전히 실손 의료 보험 마케팅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위험 손해율 : 흔히 보험사는 손해율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나 정확한 표현은 위험 손해율이다. 위험 손해율이란 보험료 중 사업비는 제외한 보험료-위험 보험료-에서 실제 지급된 보험료의 비율을 말한다. 보험의 원리상 위험 손해율은 100%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실손 의료 보험 가입자는 월 5만~10만 원 내외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그게 모두 실손 특약 보험료는 아니다. 실제로 그중 실손 특약 보험료는 1만~3만 원 정도뿐이다. 실손 특약 외에도 각종 특약으로 구성되어 있는 통합형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 실손 특약에서 손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다른 수많은 특약에서는 이익을 보고 있다. 보험사가 여전히 통합형 실손 의료 보험을 판매하는 이유이다.

만일 보험사의 논리대로 위험 손해율이 100%를 넘은 실손 특약의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위험 손해율이 100%가 안 되는 다른 특약 보험료는 인하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보험사는 일방적으로 실손 특약 보험만을 언급한다. 현재의 논의가 가입자의 입장이 아닌 보험사의 입장에서만 논의되고 있기에 그렇다. 

최근에 암 보험의 손해율 주장은 쏙 들어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험사는 암 보험의 손해율 역시 100%를 넘었다며 문제를 삼았다. 이후 암 보험 보험료는 대폭 인상하고 보장 내용은 대폭 축소됨에 따라 위험 손해율이 대폭 하락하였다. 지금 암 보험은 보험사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는 효자 상품이다. 보험사가 암 보험에 대해 더 이상 이슈화하지 않는 이유이다.

실손 의료 보험의 기본형, 특약형 개편?  

실손 의료 보험의 손해율이 대폭 증가하자, 금융 당국이 제시한 방안이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손 의료 보험 중 과잉 진료가 큰 비급여 항목을 제외해 보험료를 줄인 기본형과 비급여 항목을 선택적으로 구성한 특약형으로 나누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보험사의 입장에서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나누어 판다면 어느 보험 상품의 가입을 유도할까? 당연히 특약형이다. 소위 도덕적 해이를 더 유발하는 특약형 상품을 가입자에게 권유할 것이다. 보험사는 당연히 보험료가 더 비싼 보험을 더 선호한다. 그만큼 매출이 더 늘어나기에 그렇다. 

또한 보험사는 특약형 상품을 판매하면서 지금의 실손 보험 상품보다 보험료를 인상하여 판매할 것이다. 새로운 상품이니만큼 보험료 인상의 부담이 없을 것이다. 결국 기본형, 특약형 개편은 지금의 실손 의료 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수 있는 꼼수를 만들어주는 꼴이다.

보험사들은 그간 실손 의료 보험의 손해율 증가의 원인을 비급여의 팽창으로 돌리며 비급여에 대한 평가와 심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금융 당국도 이젠 실손 의료 보험을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며 군불을 뗀다. 

비급여는 그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하락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 통제되지 않다보니,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의료 기관은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급여 항목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에 비급여 비중을 늘리고 가격을 높게 매김으로써 수익을 보전하는 것으로 대응해왔다. 여기에 실손 보험이 등장하여 비급여를 보상해주면서부터 비급여 진료는 더욱 팽창하고 있다. 

보험사는 손해율과 과잉 진료를 문제 삼아 비급여에 대해 통제 권한을 가지려 한다. 비급여 진료에 대한 심사와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주장일 수 있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비급여의 팽창은 실손 의료 보험 자체가 유발하고 있으므로 설령 실손 보험사가 비급여를 통제할 수 있더라도 본질적으로 비급여 팽창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일부 억제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 보험 급여 영역은 국민건강보험이, 비급여 영역은 실손 의료 보험으로 양분되어 국민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둘로 쪼개질 위험이 있다. 국민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실손 의료 보험 제도 개선하려면, 국민건강보험 정상화해야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실손 의료 보험과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험사의 입김에 좌우되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정말로 실손 의료 보험을 제2의 국민건강보험 제도로 인정해주는 꼴이 되어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분명히 하자. 보험사가 문제삼는 과잉 진료의 문제는 의료 기관이나 환자의 탓이 아니라, 보험사가 출시한 실손 의료 보험 자체에 있다. 실손 의료 보험 자체가 국민의 사보험료 부담을 높이고 국민 의료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실손 의료 보험이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 40세 기준으로 실손 특약 보험료는 월 8000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1만5000원이다. 10년도 안 되어 2배가 올랐다. 반면 2007년 40~44세의 1인당 국민건강보험 진료비(비급여는 제외)는 월 4만1200원었고, 2014년에는 월 5만4900원이었다. 대략 33% 올랐을 뿐이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 증가율보다 실손 의료 보험료 증가율이 2~3배 더 높다. 이는 실손 의료 보험이 비급여를 보장해주면 비급여가 그만큼 팽창한 결과다. 실손 의료 보험 자체가 의료비 부담을 높이고 있다. 민간 의료 보험 제도를 갖춘 미국의 국민 의료비가 탄탄한 공보험을 운영하는 나라보다 훨씬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실손 의료 보험의 문제점을 단순히 과잉 진료 탓으로만 돌릴게 아니라, 실손 의료 보험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실손 의료 보험이 지닌 문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면 해결될 일이다. 실손 의료 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는 서로 풍선 효과를 갖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줄어들면, 실손 의료 보험의 보상 영역이 커져 실손 의료 보험료는 더욱 올라간다. 반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면 실손 의료 보험이 보상해주는 영역이 줄어든다. 지금 실손 의료 보험의 문제는 실손 의료 보험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의 70% 이상이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실손 의료 보험이 없으면 제대로 병원 진료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을 해결해야 한다. 실손 의료 보험이 없더라도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아무런 장벽이 없도록 국민건강보험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실손 의료 보험의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대신 실손 의료 보험의 영역은 필수적인 의료가 아니라 비필수적인 의료 서비스 영역에 한정하면 된다. 실손 의료 보험 논란은 국민건강보험을 정상화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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