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나리, 지금껏 어떻게 교육부에 계셨습니까

 

개·돼지 아닌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육이 좋습니다

16.07.09 20:48l최종 업데이트 16.07.09 20:48l

 

이 기사는 '오마이베스트' 글입니다. 오마이베스트란 '실시간글' 중 독자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글입니다. 

☞ '실시간글' 보기(http://omn.kr/realtime) [편집자말]

안녕하세요. "나리". 나리는 지체가 높거나 권세가 높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죠. 나향욱 정책기획관님은 높은 자리에 있으니, 충분히 "나리"라고 부를만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양반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책기획관님이 하신 말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더 신분을 공고화해야 된다고 하는데 '양반'이야말로 그 신분계급의 상위 계층이니까요. '양반'이 되는 것을 좋아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허나 아직 여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헌법 11조가 지배하는 땅이니까, 정책기획관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제가 아직 정책기획관님이라고 부를 수 있고, 발언에 대해서 이렇게 뭐라도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도 헌법 11조에서 정책기획관님과 저를 "법 앞에 평등한" 사람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니까요.

 

기획관님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회적 간극을 줄이는 것이 좋다는 기자의 발언에 "아이고...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라고 하셨죠. 그렇게 "민중은 개, 돼지 취급하면 된다"라는 생각도 보이셨고요. 

맞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확실히 출발선상이 다릅니다. 정책기획관님의 출발선이 어디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굵직굵직한 요직을 맡아오셨으니 이제는 어쨌거나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나향욱 정책기획관에게 묻고 싶은 세가지
 

기사 관련 사진
▲  영화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속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 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을 쓰시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 쇼박스

관련사진보기


제가 궁금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런데 왜 교육부에 계십니까?"입니다. 교육은 옛날부터 신분의 간극을 줄이는 장치였습니다. 그렇기에 옛 사람들은 글을 민중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지식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은 미성숙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기르는 것으로 저는 배웠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교육이 없으면 짐승에 불과하지만 교육은 인간으로 만든다고 배웠습니다. 민중을 개돼지에서 인간으로 만드는 건 교육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라고 배웠습니다. 각자가 평등한 주권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고요.

이 땅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을 개·돼지가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교육부에 긴 시간 동안 계시면서 "민중을 개·돼지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니 참 놀랍습니다. 생각하신대로 사회를 바꾸고 싶으셨다면 교육부에 계시면 안 되는 것이 맞지 않은가요? 제가 개·돼지라서 기획관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것일까요? 기획관님은 요새 말로 "츤데레"가 아니라 "설계"중이셨던 걸까요? 교육부의 심장에서 교육부를 무너뜨리거나 혹은 교육부의 원래 목적을 잃도록 하고자 인생의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셨나요?

제가 개·돼지여서, 아니면 기획관님의 '설계'가 실행되어 교육부가 더 이상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인가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제가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쨌거나 둘 중 하나겠죠. 

우리나라는 엄청난 교육에 대한 투자로 경제성장을 했다고 배웠고, 자원이 없어 인적자원이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면 민중에게 교육을 시키는 일은 나라 발전에 좋은 일일 것 같은데, 민중을 인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돼지 취급해야 한다고 하시니 이 나라가 어떻게 되길 바라시는 것인지 그 뜻을 명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개·돼지처럼 살면 양반이자 '나리'이신 기획관님이 저희를 먹여 살리시나요? 아니면 나라가 경제발전을 하든 말든, 국민이 다 개돼지라 망하든 말든 기획관님이 양반이 되시면 좋으신 걸까요?

두 번째로 궁금한 것은 우리나라가 신분제가 공고한 사회라면 기획관님은 그 자리에 어떻게 가실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입니다. 행정고시는 재산이 얼마 이상인 집안이나 명시된 계급의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라 전 국민이 응시에 자격이 있는 시험이지 않은가요? 

만약 우리나라가 계급이 공고화된 사회라면 기획관님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르실 생각이신지요? 제가 모르는 기획관님의 가문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이겠죠. 저는 안 되더라도 기획관님은 가능하신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기획관님이 "99%가 될 리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셨다는 것처럼, 기획관님의 자제분들도 계급제가 공고한 사회일지라 한들 양반이 되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시겠죠. 
 

기사 관련 사진
▲  영화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속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 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을 쓰시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 쇼박스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예시로 드신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면서 미국은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하셨죠. 그런데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아닌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 중 흑인들도 많지 않은가요? 

이러한 인종차별적 발언들은 일단은 제쳐두겠습니다. 궁금한 것은 결국 대중들은 "흑인처럼 높은 데를 올라가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시라면, 우리나라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인 행정고시는 왜 치셨던 것인지요? 아, 제가 또 까먹을 뻔했네요. 기획관님은 흑인이나 일반 대중과 다른,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나셨던 것이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행정고시를 보시고, 끊임없이 노력하실 리가 없겠죠. 그 노력이 싫어서 공고화를 하겠다고 하신 거라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애초에 공고화되어 있었다면 행정고시를 칠 필요도 없으셨을 테니 말입니다.

기획관님은 1%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라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으셨겠죠. 그런데 "모두가 평등할 수 없으니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현실을 인정하는 건 어떠신지 감히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아직 1%가 아닌 현실을 인정하시면, 더 이상 힘들게 노력을 하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아직 제가 "나리님"이 아니라 "기획관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한, 기획관님과 제가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로운" 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는 현실도 말입니다. 다만 앞으로 기획관님의 노력을 더 열심히 지켜봐야야 할 것 같습니다. 전 기획관님뿐 만이 아니라 제게도 주어진 "노력해도 된다"는 자유가, 개·돼지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이 좋거든요.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더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