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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 성주 주민 7명을 만나다

 
성주 군민들이 고립되고 있다. 보수 언론은 ‘사드 배치 반대’가 지역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인다. ‘외부세력은 빠지라’는 군수와 정치인들 때문에 진보적인 국민들도 주춤한 상태다. 성주 군민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부세력의 분노’를 들어보았다.
  조회수 : 1,093  |  김연희·이오성 기자  |  webmaster@sisain.co.kr
 
 

 

 

외부세력? 성주 주민 7명을 만나다

사드 예정지 코앞에 성주 최대 고분군 있다

 

 

경북 성주 주민들의 삶은 7월13일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참외 하나 바라보고 살던 평범한 전업농민도, 땅에 기대어 살겠다고 도시를 떠난 귀농인도, 평생 새누리당만 찍어온 ‘TK 아재’도 저녁마다 촛불을 들고 나선다.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비판하는 이들의 물결이 매일 밤 성주군청 앞을 가득 메운다. 과거 성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  
ⓒ시사IN 신선영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생겨났다.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은 성주 주민의 시위에 ‘외부세력’이 개입한 의혹이 있다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급기야 “불순세력을 가려내야 한다”라며 공안몰이까지 시사했다. 그러나 ‘불순세력 개입’이라는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주 주민의 투쟁 구호는 ‘성주 사드 배치 반대’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지금 ‘성주 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싸움에 나서고 있을까. <시사IN>은 7월13일 이후 열흘 동안 성주에 머무르면서 사드 배치 투쟁에 나선 성주 주민 7명을 인터뷰했다. 이들 대부분은 성주 군민 평균연령보다 젊고, 주로 촛불집회가 열리는 성주읍 인근에 산다. 이들이 성주 군민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다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사드 배치 반대 싸움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바로 성주 주민들 자신이라는 점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이희동(53) 성주읍 학산리  
ⓒ시사IN 신선영
이희동(53) 성주읍 학산리

“참외가 곯는데 보고만 있다”  

이희동(53) 성주읍 학산리

이희동씨는 군복무 기간 3년을 제외하면 평생 성주에서 보냈다. 지금 살고 있는 학산리 자택은 그가 태어난 집이다. 이씨는 해병대 출신이다. “나라를 위해 한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해병대를 선택한 거지예.” 7월13일 열린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 궐기대회’에도 성주 해병대전우회 회원들과 군복을 입고 참석했다.

사드 배치 결정은 ‘경상도 사나이’ 이씨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그는 7월12일 성주에 사드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큰일 났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사드’에 대해 하나둘 알게 되며 심각성에 눈을 떴다. “우리나라를 보호한다꼬? 중국과 러시아가 왜 반대하겠심꺼? 사실은 미국을 위한 군사기지 아잉교. 북에서 낮은 고도로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사드로 못 막아예. 대한민국을 믿고, 정부를 믿고, 또 새누리당을 믿었는데 진짜 배신감 느낍니더.” 한나라당 시절부터 당원이었던 그는 이번 일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새누리당 탈당서를 작성한 성주 군민은 1000여 명(7월21일 기준)에 이른다.

이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시작한 30년 전까지만 해도 성주군의 주 작물은 수박이었다. 그는 참외 농사 초창기부터 고수익 상품으로 자리 잡기까지 과정을 몸소 겪은 산증인이다. 이씨는 “겨울이 되면 비닐하우스 안이라도 참외를 이불로 덮어줘야 합니더. 지금은 자동화 시설로 그 작업을 하지만 예전에는 아내와 둘이서 일일이 손으로 했심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2년 과정인 농업마이스터대학을 다니고 있다. 참외 농사는 “죽을 때까지 배워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씨가 출하하는 참외 박스에는 ‘게르마늄 성주 참외’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박혀 있다. 이씨는 항산화 효과가 있는 게르마늄을 비료로 사용한다.

7월19일 이씨는 70대 노인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노인단체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참외 상자에 적힌 이씨의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노인은 전화로 이씨에게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 서울 지역 노인단체들과 참외 불매운동을 벌이겠다. 수도권에는 1000만명이 산다. 성주 인구는 1만5000명(실제는 4만5000여 명)이지 않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7월까지가 참외 수확철입니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영 일이 손에 잽히질 않는데 그런 전화까지 받으니 기가 막힙니더. 농사 대신 매일 저녁 촛불집회 나가는 게 이제는 일상입니더. 지금 안 따면 참외가 곯아버리는데, 그냥 넋 놓고 보고만 있심더”라고 한탄했다.

이씨는 올해 비닐하우스를 7동 더 늘릴 계획이었지만 사드 배치 결정으로 미루어야 한다. 비닐하우스 한 동을 설치하는 데에는 1000만~1200만원이 든다. 이씨는 현재 비닐하우스 17동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배정하(39) 성주읍  
ⓒ시사IN 신선영
배정하(39) 성주읍

“유림 아버지도 반대한다”

배정하(39) 성주읍

배정하씨는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한 다음 날인 7월14일 성주군청 들머리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였다. 아들은 “저는 성주초등학교 1학년 ○○○입니다. 성밖숲(성주읍 공원)에서 뛰어놀고 싶어요. 사드가 무서워요”라는 삐뚤빼뚤한 글씨를 피켓에 직접 썼다. 언론에 이 모습이 보도되자 “어린 아이를 대동해 데모한다”라는 등 악플이 달렸다. 서울에 사는 배씨의 남동생은 전화로 누나를 위로했다. “성주 선비 딸보고 종북이라카네.”

배정하씨는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산 배씨이다. 아버지는 성주향교에서 “가장 꼿꼿한” 유림이다. 2000년 동성동본 결혼이 합법화될 때, 제일 앞에 서서 반대했던 이가 배씨의 아버지다. “데모하는 딸”이 마뜩지는 않지만 꼿꼿한 아버지도 사드 배치에는 적극 반대한다. 딸이 말려야 할 정도다. 그녀는 7월21일 성주 주민들을 따라 서울 집회에 간다는 아버지를 겨우 말렸다고 했다. “다른 유림 분들이랑 갓 쓰고 도포 입고 올라가신다는데 어르신들 몰려갔다가 한복자락이라도 밟고 넘어지면 어떡해요.” 아버지는 대신 7월27일에 성주읍내에서 거리행진에 나서기로 했다.

결혼 후 대구에서 살던 배씨는 3년 전 고향 성주로 돌아왔다. 그녀는 왕버들 나무가 울창한 성주읍 성밖숲 공원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자라기를 바랐다. “‘인서울’ 이런 거 원하지도 않고, 우리 아이들이 깨끗한 성주에서 농사지으면서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 했어요. 그런데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사드가 들어온다 하니, 미군이 우리를 상대로 인체 실험을 하려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7월15일 배씨는 군민집회에서 ‘성주’ 사드 배치 반대 구호를 선창하자는 사회자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집회에 참가한 엄마들이 ‘성주 배치 반대’가 아니고 ‘한반도에서 사드 반대’라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사회자가 무시하잖아요. 성주에만 안 오면 된다고 하는 건 정말 잘못된 거예요.”

배씨는 1905년 성주를 지날 계획이었던 철도 노선이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으로 변경된 사연을 들려줬다. “성주 지역 양반들이 결사반대해서 왜관으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성주 군민 중에는 그때 기차역이 들어왔으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사드가 배치되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하는 이들이 많다. 그녀는 “그래도 일본군이 철길 까는 걸 무산시킨 고장 아닙니까. 그 저력으로 사드 배치도 막아낼 겁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손소희(41) 성주읍 대황리  
ⓒ시사IN 신선영
손소희(41) 성주읍 대황리

세월호 촛불집회도 열었다”

손소희(41) 성주읍 대황리  

손소희씨는 2012년 귀촌했다. 대구에 살던 그녀는 K2 공군기지의 소음을 피해 성주로 왔다. 손씨의 아들과 딸은 모두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손씨는 “학교 교육 방침은 보수적인데 아이들이 참 괜찮더라고요. 도시랑 달리 서로 이끌어주고 챙겨주는 분위기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성주에 온 뒤 손씨는 소일거리로 두릅을 따서 팔았다. 그 매개체가 된 게 카카오톡에 개설된 성주 지역 ‘안전한 먹거리’ 그룹 채팅방이었다. 카톡방에는 주로 귀농한 농부들과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하려는 주부들이 가입했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발표 이후, 이 카톡방은 사드 반대 투쟁의 구심점이 되었다. 채팅방에 있던 멤버들이 정보 공유를 위해 다른 주민들을 초대하면서 원래 200여 명이던 인원은 1318명까지 불어났다. 1318명은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 초대할 수 있는 최대 인원으로 성주 주민들은 요즘 이 그룹 채팅방을 ‘1318 카톡방’이라고 부른다. 매일 밤 성주군청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가 처음 논의된 곳도 이 카톡방이었다. 7월13일 사드 배치가 공식 발표되자 군수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이 서울 국방부에 항의 방문을 갔다. 손씨는 “그날 성주에 남아 있는 주민들끼리 촛불집회라도 하자는 말이 카톡방으로 전해졌어요. 그날은 200여 명 모였는데 다음 날에는 2000명이 나왔어요”라고 촛불집회가 시작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는 “(지역이기주의라며) 성주 주민들이 요즘 욕을 많이 먹지만, 성주 주민 중에도 우리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여럿 있어요”라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성주 주민 30여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촛불 추모제를 열기 시작했다. 이때 모인 성주 주민들은 ‘함께하는 성주 모임’의 준말인 ‘함성’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손씨도 함성에서 활동하고 있다. 함성 회원들은 얼마 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하자는 내용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읍내에서 배포했다.

손씨는 사드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보다도 미군부대가 더 걱정이다. 2014년 사드 레이더 기지가 들어온 일본 교토 교탄고 시에도 미군이 일으키는 교통사고가 지역 문제로 떠올랐다. 게다가 작은 시골 마을인 성주는 미군들이 읍내로 몰릴 수밖에 없다. 손씨의 딸이 다니는 성주여고는 성주읍내에 있다. “사드 배치 소식을 들었을 때 완전히 땅이 꺼지는 줄 알았어요.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효순이·미선이 사건도 생각나고, 미군 범죄가 많이 일어나잖아요. 게다가 사드가 배치되면 유사시에 폭격 1순위가 되는 건데 앞으로 성주 군민들은 그런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김삼곤(51) 성주읍 대황리  
ⓒ시사IN 신선영
김삼곤(51) 성주읍 대황리

“외부세력은 찬성론자들이다”

김삼곤(51) 성주읍 대황리

7월19일 저녁, 김삼곤씨를 만난 곳은 풍물굿패 ‘어울림’ 연습실이었다. 어울림 단원 20여 명은 촛불집회에서 선보일 ‘단심줄놀이’ 연습에 한창이었다. 둥그런 대형으로 서서 중심 기둥에 달린 색색깔의 천을 잡고 빙빙 돌며 매듭을 만들어가는 단심줄놀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촛불집회에서 성주 군민들은 ‘쾌지나 칭칭나네’ 장단에 맞춰 “사드는 절대 안 돼”를 외치며 풍물패 공연에 힘을 불어넣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성주에서 집회를 이끌어가는 건 성주 지역 문예단체들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성주에는 각 면에 풍물패가 조직돼 총 10개 단체가 있다. 노래패도 2곳이 있다. 김씨는 “북장단에 맞춰 구호도 외치고, 투쟁가도 부르고 집회가 빠르게 모양새를 갖춰가니 매스컴에서는 외부세력이 있다고 보나 본데, 집회 집행부 모두 성주 사람들이에요. 앞에 나와서 노래 가르치는 분은 성주농민회 회장 아내입니다”라고 자랑했다.

지금은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가 주관하고 있지만, 1318 카톡방과 함께 성주군청 앞 촛불집회의 불을 처음 밝힌 건 성주농민회였다. 아직도 매일 밤 촛불집회에서는 이재동 농민회 회장이 사회를 본다. 농민회 부회장인 김씨도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씨는 “성주에 외부세력이 있다고 하는데, 굳이 외부세력을 꼽자면 사드 찬성한다고 기자회견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 7월16일 성주에 들어온 진리대한당 당원과 애국기독연대 회원이라고 밝힌 외지인 10여 명은 성주읍내에서 사드 찬성 집회를 열었다. 성주 주민들은 “대응할 가치가 없다”라며 무시했다.

성주가 고향인 김씨는 참외 농사만 20년을 지었다. 대구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도 했지만 성주가 그리웠다. “드라마 <서울의 달>에 나왔던 노래에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딱 그 심정이었어요.” 김씨는 농부로서 사는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하우스 참외는 10월에 파종을 해 3월부터 수확한다. 12월부터 2월까지 참외가 자라는데, 하루가 다르게 실해지는 참외를 보는 이맘때가 가장 즐겁고 뿌듯하다. 김씨는 아들에게도 농부의 길을 추천했다. 아들은 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해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성주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농업 기반이 튼튼한 지역이다. 참외라는 고수익 작물이 있어서 젊은 농부들의 유입도 많다. 김씨는 “성주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귀감이 될 만한 농촌 모델을 만든 건데… 이 지역 농업을 더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사드나 배치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김상화(37) 대가면 대천리  
ⓒ시사IN 신선영
김상화(37) 대가면 대천리

“아이들 고향을 지켜주겠다”  

김상화(37) 대가면 대천리

김상화씨의 명함에는 ‘농업회사법인 ㈜포천계곡팜스 대표이사’라고 적혀 있다. 성주군에서도 풍광이 아름다운 포천계곡 인근에서 상추, 치커리 등 친환경 쌈채소를 키우고 판매한다. 원래 대구의 한 대학에서 산학협력단 교직원으로 일했던 그는 서른 살이던 2009년 일찌감치 성주를 택해 귀농했다.

그가 귀농지로 택한 포천계곡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휴일마다 김씨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놀러오곤 했다. 성주에 정착한 이듬해 첫째 아이를 낳았고, 3년 뒤 둘째를 낳았다.

그는 평생 시위와는 담을 쌓고 살 줄 알았다. 새누리당이 지역을 발전시켜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성주에 귀농한 이후에도 지난 7년 동안 농민회 등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작목반 교육이나 농업기술센터 수업에만 참석하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그랬던 그의 삶도 사드 배치 소식 이후 180° 달라졌다. 날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진보 성향을 지닌 젊은 귀농인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되어보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성주 사람들의 삶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엄청난 정책을, 어떻게 아무런 설명회나 공청회 한번 없이 밀어붙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가 망할 것 같아도 새누리당만 찍어주는 지역 주민을 우습게 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커질수록 싸워야겠다는 의지도 더불어 솟았다.

이러다 결국 정부가 보상책을 제시하면 흐지부지 타협하고 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그는 고개를 젓는다. “농사꾼에게 보상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내가 지금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이 땅을 옮겨주든가 하면 모를까. 다른 건 의미 없어요. 항간에 대구에서부터 지하철을 놔준다는 소리까지 나오던데, 이상한 말씀 마세요. 농사꾼이 지하철 탈 일이 뭐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그에게 가끔 묻는단다. 성주 토박이도 아닌 자신이 이곳에 무슨 애정이 있어서 그토록 열심히 집회에 참석하느냐고. 그는 이렇게 답한다. “성주는 우리 두 아이의 고향입니다. 아비가 자식의 고향을 지켜주겠다는 겁니다. 그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이민수(37) 성주읍  
ⓒ시사IN 신선영
이민수(37) 성주읍

“총리에게 하소연하러 갔다”

이민수(37) 성주읍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를 찾은 7월15일, 성주 주민 이민수씨의 일상은 깨져버렸다. 총리를 태운 차가 이씨의 승용차를 들이박고 달아난 것이다. 당시 앞좌석에는 이씨의 아내가, 뒷좌석에는 세 아이가 타고 있었다. 이씨는 황 총리가 타고 있던 YF 쏘나타를 뺑소니 혐의로 신고하려 했지만, 경찰은 다친 사람이 없으니 뺑소니가 아니라며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도리어 경북지방경찰청은 이씨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두고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씨는 성주 토박이다. 부모와 장인, 장모 모두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아내, 10살 딸, 7살 쌍둥이 아들과 함께 꾸려가는 평범한 삶을 지키고 싶었다. 황 총리가 헬기를 타기 위해 성산포대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목에서 기다렸던 건 그 때문이었다. 이날 성주군청을 찾았다가 버스로 대피한 황 총리는 6시간 만에 군청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국무총리가 그 길로 지나간다카기에 ‘우리 계속 성주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 사드 배치를 철회해달라’고 하소연하러 간 깁니더. 무력으로 막을라캤으면 남자들을 태우고 가지 아이들을 와 데려갑니꺼.”

‘총리 뺑소니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말이 지난 후 출동 순찰차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자고 했던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사고 10분 뒤 교통 순찰차가 도착해 사고 당시 영상은 없다”라고 밝혔다. 7월18일 현장검증에서 총리가 탄 YF 쏘나타를 운전했던 경찰관은 “그곳을 빠져나가려는 도중 이씨가 차를 후진해 충돌하게 됐다”라고 증언했다. 이씨는 정차해 있는데 뒤 범퍼를 치고 갔다며 “세상에 어느 애비가 아이들이 타고 있는데 후진을 해 사고를 냅니꺼”라고 황당해했다. 그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이 불안해합니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직장에도 거의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씨가 다니는 회사 사장도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에 속해서 활동 중이다. 인터뷰를 마친 이씨는 목격자를 찾아봐야 한다며 서둘러 성산포대 쪽으로 향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노연우(36) 성주읍  
ⓒ시사IN 신선영
노연우(36) 성주읍

“하루아침에 미래가 무너졌다”
노연우(36) 성주읍

노연우씨는 19개월 아기의 엄마다. 딸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해 곧 둘째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소식에 마음을 바꿨다. 그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를 낳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사드 배치 결정 이후로는 ‘앞으로’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하루아침에 미래가 무너져버린 거예요”라며 말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노씨는 2년6개월 전 남편을 따라 성주로 왔다. 성주가 고향인 남편은 시부모와 함께 김밥집을 운영한다. 김밥집의 고객은 참외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다. 인부들 간식거리로 김밥을 사가기 때문에 남편은 새벽 3시부터 김밥을 싼다. 이처럼 성주군 상권은 대부분 참외 농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성주 참외가 ‘사드 참외’라는 오명을 얻으면 참외 농사뿐 아니라 성주군 지역경제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경남 함양 출신으로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노씨는 성주에 와서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식당에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달력이 붙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점점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정자들이 좋은 업적만 선택해서 알리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박정희 향수에 젖어 1번을 뽑으시는 거죠. 어쩌면 이분들도 피해자예요.”

노씨 역시 ‘1318 카톡방’에 가입되어 있다. 아기 밥을 챙겨주는 시간 이외에는 본인이 밥 먹는 것도 잊고 이 카톡방을 본다. 그룹 채팅방에는 성주 사드 배치 관련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그녀는 외부세력 개입 기사 등 왜곡 보도가 심하다고 답답해했다. 노씨는 그래도 희망이 생긴다고 했다. “사람들의 생각이 점점 커져가는 게 보여요. 처음에는 단순히 전자파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공감을 얻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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