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쇼트트랙 대선, 다섯 고비 남았다

 

등록 :2017-01-27 15:14수정 :2017-01-27 15:22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17
박 대통령 탄핵국면 앞당겨진 대선
‘문재인이냐 아니냐’ 구도로 압축
한순간 삐끗하면 반전 가능성
설 연휴가 지나면 2월이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를 2월이나 3월에 할 것 같다. 인용되면 60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20명 가까운 여야 대선주자들의 출마 선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4개월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진 19대 대선을 전망한다. <보좌의 정치학> 저자 이진수, <정치의 귀환> 저자 유창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김윤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오래된 참모’ 등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이번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현직 대통령이 중도 하차하고 갑자기 치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주자의 출현은 불가능하다. 선발주자나 재수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선 구도는 간명하다. ‘문재인이 되느냐, 안 되느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 대선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문재인은 2017년 새해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보수 성향 언론사들은 사설과 칼럼으로 연일 문재인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야 대선주자들도 문재인만 비판한다. 온통 문재인이다. 전형적인 ‘밴드 왜건’ 효과다. ‘문재인 대세론’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한꺼번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안철수, 반기문 등에 차례차례 뒤졌을 정도로 허약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국면에서 1위로 치고 나갔다. 박근혜 탄핵의 반사이익을 ‘2012년 경쟁자’였던 문재인이 고스란히 흡수한 것이다. 여기에 안철수, 반기문 등 경쟁자들이 제풀에 무너지며 격차가 더 벌어졌다. 최근 조사에서는 ‘20% 박스권’을 확실히 돌파했다.

 

 

문재인 대세론 흔들 변수는…

 

·탄핵 뒤 박 대통령 구속? 봐주기?
주자들 대응 따라 지지율 변화

 

·민주 경선 이재명·안희정 연합
결선투표서 대역전극 이뤄낼까

 

·보수·여권 지지층 결집으로
반기문 상승세로 반전할까

 

·안철수 독자출마 고집하지만
제3지대 정계개편 가능성 여전

 

·문 ‘옳은 정치’서 폭넓혀
지지기반 확대 이뤄낼까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 덕분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는 국민의당, 새누리당, 바른정당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운동장이 거꾸로 기울어진 형세다. 문재인 대세론은 이처럼 정치적 환경 및 기반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문재인 당선이 확실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포르투나(fortuna)는 있지만 비르투(virtu)는 증명되지 않았다. 두 가지를 모두 갖춰야 대통령에 당선된다.

 

문재인의 참모는 이번 대선 레이스를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 비유했다. 쇼트트랙에서는 한순간 삐끗하면 넘어진다. 넘어지면 끝장이다. 옆에서 넘어지는 다른 선수와 함께 뒹굴 위험도 있다. 방향을 트는 코너링에서 추월이 이뤄진다. 그리고 결국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날 가능성이 높다. 결승선을 지나는 순간 스케이트 날을 앞으로 쑥 내밀어야 한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고비는 다섯가지다.

 

첫번째 고비는 탄핵심판 결과와 박근혜 대통령 사법처리다.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되면 4~5월 대통령 선거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라진다.

 

탄핵이 인용된 이후에는 박근혜 대통령 사법처리가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문재인은 지난해 11월 느닷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언급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봐주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엄정한 사법처리와 구속 수사’를 요구하면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다. 민심은 늘 변덕스럽다.

 

두번째 고비는 당내 경선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최성 고양시장이 도전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포기했다.

 

이재명은 참신한 아웃사이더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선명하다. 경선 국면에서 문재인과 극적으로 대비될 가능성이 높다. ‘사이다’와 ‘고구마’의 대결은 기본적으로 사이다가 유리하다.

 

안희정의 뿌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문재인과 같다. 그런데 안희정은 노무현과 문재인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오랜 정당정치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원숙함이다.

 

이재명과 안희정은 문재인보다 훨씬 젊기까지 하다. 문재인에게 두 사람은 결코 쉽지 않은 상대다. 문재인이 경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까? 결선투표에서 이재명-안희정 등의 연합이 이뤄지면 대역전극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문재인의 세번째 고비는 반기문이다. 반기문의 정치적 역량은 초라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반기문은 현재 여권에서 지지도 10%가 넘는 유일한 후보다. 반기문이 사라지면 여권은 정권을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보수 기득권 세력과 여권 지지층은 어떻게든 반기문을 살려내려 할 것이다. 반기문의 독자창당 선언이나 기존 여당의 이합집산 등 반전의 계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전례가 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게 크게 뒤져 있었다. 이회창은 조순의 민주당과 통합해 한나라당을 창당했다. 이회창-조순의 이른바 ‘이조연대’였다. 여권 지지층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회창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다. 1997년 대통령 선거가 1주일 뒤에 치러졌다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을지도 모른다. 여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갤럽에서 1월17~19일 조사해 발표한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수행 평가가 있다. 긍정 38%, 부정 48%, 유보 14%였다. 권역별로는 대구·경북과 대전·세종·충청, 연령층은 50~60대 고연령층에서 긍정이 더 높게 나왔다. 지지정당별로는 새누리당, 바른정당, 무당층에서 긍정이 더 높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황교안 권한대행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도 긍정 여론이 낮지 않은 이유는 여권의 재집권을 원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표심은 막판에 여권 후보에게 결집할 것이다.

 

문재인의 네번째 고비는 정계개편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이른바 ‘제3지대 정계개편’을 노리고 있다. 역동성을 먹고 사는 정치의 특성상 판이 흔들리면 ‘문재인 대세론’도 흔들린다.

 

그러나 제3지대 정계개편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첫째, 제3지대 정계개편이 성사되려면 기존 정당에서 탈당하는 의원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별로 없다. 둘째, 정계개편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한다. 따라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나 반기문까지 뛰어들어 판을 크게 흔드는 정계개편이 이뤄진다면 문재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기문이 후보를 포기할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안철수는 어떨까? 그럴 리가 없다. 문재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대규모 정계개편을 안철수의 강력한 독자출마 의지가 가로막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철수가 문재인을 돕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의 다섯번째 고비는 문재인 자신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는 “문재인이 안 돼도 걱정, 돼도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가 평소에 하는 말이나 쓴 글을 보면 그는 확실히 ‘신념윤리’가 강한 편이다. 옳고 그른 것을 자꾸 따진다.

 

그는 2013년 12월 펴낸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서 2012년 대선 패배의 원인을 ‘근본주의’로 지적했다. “근본주의가 우리의 세력과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고 자책했다. 맞는 말이다. 정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같음과 다름’의 영역이다. 정치인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가 필요하다.

 

문재인은 자신과 야권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체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촛불의 바다를 건너며 문재인의 근본주의 성향은 오히려 강해진 것 같다. 여기에 열성 지지층의 극성까지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적 리더십도 여전히 부족하다. 문재인은 인간적인 매력이 별로 없다. 당내 경쟁자들을 과연 끌어안을 수 있을까? 경선 이후 대선 승리를 위해서도, 당선 이후 국정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당내 경쟁자들의 전폭적 협력이 필요하다.

 

‘문재인의 참모’는 항공모함과 선단으로 비유했다. 1997년과 2002년 이회창 후보는 항공모함의 함장이었다. 의사결정과 선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졌다. 문재인은 항공모함이 아니라 여러 척의 배로 구성된 선단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배의 선장들에게 적절한 임무와 권한을 배분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정당정부’, ‘연립정부’ 구상이다. 이론은 완벽하다. 실천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