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지구 미래 외면한 트럼프…미국 중심 국제질서 흔들

 

등록 :2017-06-02 11:19수정 :2017-06-02 23:09

 

 

뉴스분석 / 미, 파리기후협정 탈퇴
지지층 이익 앞세워 국제합의 훼손
유럽 동맹국들 등 돌리게 만들어
중, 미국 빠진 틈새 영향력 확장
“협정 준수 다짐” EU와 공동성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발표한 1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 속에서 한 시민이 ‘트럼프의 대통령, 뱀 기름이나 계속 먹으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발표한 1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 속에서 한 시민이 ‘트럼프의 대통령, 뱀 기름이나 계속 먹으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전후 70년간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질서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며 “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의 시민들을 대표하기 위해 선출됐다”고 말했다.

 

파리는 단순히 프랑스의 한 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전 세계 195개국의 합의를 상징한다. 반면, 피츠버그는 미국의 쇠락하는 공업지대를 상징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인류의 미래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를 저버리고, 미국 내 일부의 이해를 대변하는 쪽에 선 것이다. 심지어 피츠버그 시장도 트럼프의 결정을 반대하며 이를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자세는 현 국제질서와 체제에 몇가지 중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미국 지도력과 영향력의 쇠퇴다. 둘째,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영향력 확장이다. 셋째, 미국 자체의 경쟁력 약화다. 즉, 기후변화협정 탈퇴로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첨단산업의 성장 유인을 스스로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첫째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탈퇴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 자신들이 설계하고 이끌어온 국제질서와 체제에서 지도력를 방기하며 심각한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미국 안팎의 시각이다.

 

미국 내에서부터 먼저 우려와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저명한 국제경제학자인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의 모든 본능은 전후 국제체제를 떠받드는 모든 사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고대와 현대를 통틀어, 열강들이 구축한 질서들은 번성하고 사라졌으나, 대개는 타살로 끝났지 자살로 끝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미국과 미국이 구축한 질서를 자살로 몰고가고 있다는 비난이다.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한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트럼프의 방기는 그의 대선 운동 과정에서 드러나기는 했다. 미국 주도 국제체제를 떠받드는 주축인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양안동맹에 대한 회의와 경멸, 미국이 주도한 각종 자유무역협상 체제에 대한 철수 의사, 동맹국들에 대한 일방적인 부담 강요, 무슬림 입국 금지 및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등 인종주의에 바탕한 다문화주의 부정, 그리고 ‘기후변화는 중국의 사기’라는 극단적 음모론까지 내비쳤다.

 

트럼프는 지난주 취임 이후 첫 해외순방에서 유럽 등의 동맹국들이 우려하던 사안들을 현실화시켰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심조항인 상호방위에 명확한 준수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대선 기간 중에 “러시아가 발트해 나토 회원국을 침략할 경우 해당 국가가 미국에 대한 의무를 다했는지 판단한 후 군사적 지원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나토 회원국들에 충격을 줬다. 나토는 한 회원국이 외부 국가에 의해 침공당하면 모든 회원국들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집단안보체제를 핵심으로 한다.

 

트럼프는 또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다른 정상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파리 협정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탈퇴를 시사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와의 만난 뒤 지난 28일 “우리가 다른 곳에 전적으로 기댈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나는 최근 며칠 동안 그걸 경험했다”며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기댄 유럽의 운명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유럽 독립 선언’에 준하는 폭탄 발언으로 미국 안팎에서 받아들여졌다.

 

결국 트럼프는 1일 미국 자신이 주도했던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미국과 운명을 같이했고, 같이하려던 독일 등의 동맹국들에게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사실상 압박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미국인의 이익에 오점를 남겼고, 지구의 미래에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분명하게 말하겠다. 파리 협정의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후에 더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면서 “(지구를 대체할) 행성B가 없기 때문에 (파리 협정을 대신할) 플랜B도 없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놓고 더이상 미국과 타협하거나 협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영향력 확장이다. 미국에 대해 동맹국들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공간에 중국이 이미 들어서고 있다.

 

중국과 유럽연합은 2일 정상회의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준수를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미국이 빠진 자리에 중국과 유럽의 ‘녹색 동맹’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미 초안이 마련된 성명에는 파리 기후변화협정과 관련해 “누구도 뒤에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과 중국은 전진하기로 결정했다”고 적혀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과 유럽연합의 정상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에게 “우리는 세계적인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며 “그리고 우리의 동반자 관계를 확대한 우리의 책임을 직시하고, 법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커창 총리는 “우리는 모두 세계의 안정에 기여할 준비가 됐다”고 화답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중국이 기회의 순간을 맞고 있음은 명확하다고 영국 <비비시> 방송은 논평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중국 정상으로는 처음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트럼프가 공격하던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다. 이를 놓고 장쥔 중국 외교부 국제경제국장은 “원래의 선두 주자가 갑자기 뒤로 빠지며 중국을 선두로 밀었다”고 표현했다. 미국이 스스로 구축한 국제질서와 체제에서 트럼프가 철수하니, 자연스럽게 중국이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 자체의 산업경쟁력 약화이다. 트럼프의 파리 협정 탈퇴를 놓고 미국을 대표하는 첨단기업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해 왔다. 특히, 정보기술(IT) 산업 등 첨단산업계에서는 기후변화협정 탈퇴가 청정에너지 개발 등을 둘러싼 새로운 일자리과 성장 동력 창출의 기회를 놓치게 할 것이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미국이 파리 협정에서 탈퇴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그동안의 다짐을 다시 확인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미국의 대표적 첨단기업들은 파리 협정 탈퇴 반대에 서명하고 이를 미국 신문에 전면 광고로 게재했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는 이번 주 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지 말 것을 설득했다. 심지어 기후변화협정이 회사 이익에 도움이 안되는 미국의 최대의 에너지 기업 엑손도 반대 입장이다.

 

지나 매카시 전 환경보호청 청장은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현 정부가 청정 공기와 물, 토지에 대한 기본적 수요를 간과하고 있고, 파리 협정 탈퇴는 국제적으로 기후 변화 대처를 주도함으로써 얻는 막대한 경제적 기회와 외교적 지렛대를 중국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우파 세력인 네오콘의 비평가인 데이비드 프럼조차 우울한 결론은 낸다. 프럼은 미국은 더이상 그 동반자들이 존경하던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 문제에서 예측불가하고 위험스런 세력이며, 과거의 친구들로 구성된 새로운 동맹에 의해 봉쇄되고 저지돼야 할 그 자체이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97287.html?_fr=mt1#csidx815ea363a05aa0285762828be9e0b6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