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광주 소방관 방화복이 서울보다 17배 낡은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3/15 10:17
  • 수정일
    2013/03/15 10: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19가 필요한 소방관들 ②] 소방 조직의 이원화와 국가직 전환 문제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15 오전 8:14:45

 

불. 사람들이 소방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다. 맞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매일 목숨 걸고 불과 싸우는 이들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하는 일은 화재 진압만이 아니다. 불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몫이다. 예컨대 보행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고층 건물얼음도 깨고, 가스 폭발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어김없이 출동한다.

이렇게 소방관은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공무원이다. 하지만 소방관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잘 아는 시민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소방관들의 안타
까운 순직이 이어지고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현실도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프레시안>은 소방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119가 필요한 소방관들
① 소방관들의 호소 "제발 우릴 때리지 마세요"


지난 1월 21일, 일부 일간지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정부와 국민은 우리의 가족과 동료를 지켜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현직 소방관이 주축이 돼 만들어져 현재 8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소방발전협의회가 한국소방정책연구소와 함께 실은 의견 광고였다. 5000원 남짓의 밥값을 아껴 십시일반 광고비를 모으고, 인증샷을 찍어가며 광고를 만들었다.

이 광고가 나간 뒤 3주쯤 후인 2월 13일 오전 4시 15분, 경기도 포천시 플라스틱 공장 화재를 진압하던 윤영수 소방교가 순직했다. 결혼 3년차 새신랑. 남은 아이는 한 살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일지 모를 이 광고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순직한 윤 소방교는 주목받았다. 한 소방관은 "우리가 죽어야 관심을 받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말미에 적은 광고를 통해 소방발전협의회는 "소방 국가직 전환 없인 소방 순직 사고 해결 없다", "직장협의회 불허는 소방관을 화재 현장에 맨몸으로 밀어 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직 전환과 단결권 보장. 각종 화재 현장에서 까맣게 그을려가는 그들의 핵심 요구다. 노조나 직장협의회가 없는 소방관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십시일반 모금해 의견 광고를 내는 것뿐이다. 전국 3만8000여 명의 소방관은 요구 사항을 모아 목소리를 낼 통로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 소방발전협의회와 한국소방정책연구소가 낸 신문 광고. ⓒ소방발전협의회


군인·경찰과 다른 소방 공무원의 '이원 체제'

"숙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소방 공무원은 '국가직 전환'을 꼽는다. 치안이나 국방만큼 소방 분야도 신속하고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하지만, 경찰이나 군인과 달리 소방관은 대부분 '지방직 공무원'이다.

1992년 광역 소방 체제로 전환한 소방 조직은 현재 '이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국가의 지시를 받지만, 소속은 지방자치단체라는 것이다. 1995년에는 내무부 산하 민방위 재난통제본부가 각 시도 소방본부 소속 소방관들을 통제했었다. 이후 2003년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2004년 행정자치부(현 안전행정부) 독립 외청 형태로 현재의 소방방재청이 생겨났다.

그러나 같은 안전행정부 외청인 경찰청과 달리 소방방재청은 중앙과 지방의 이원 체제를 유지한 채 탄생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행정학교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지방자치가 조금씩 발전하면서 소방 업무를 지역 업무로 보는 관점이 자리 잡아 현재까지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소방관은 중앙의 소방방재청에 소속된 국가소방공무원과 16개 광역시도 소방본부에 소속된 지방소방공무원으로 나뉜다. 전체 소방관의 90%가량이 지방 공무원이다. 소방공무원법과 소방기본법 등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장과 광역자치단체 소방본부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광역자치단체 소방본부장은 소재지를 관할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소방방재청은 방재, 훈련, 교육 등 전반적인 소방 정책 분야를 관장하고, 시도지사는 일선 소방 업무를 지휘하는 시스템이다.

소방 관계자는 "쉽게 말해 소방방재청은 지자체가 뽑은 소방 공무원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청장이 교육을 받으라고 하면 받고, 지자체장이 불 끄라고 하면 끄는" 식으로 이원화돼 있다는 말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올해 방재청 예산은 약 8600억 원이다. 이 예산으로 소방방재청은 예방, 방재, 구호 등의 활동을 비롯해 각종 소방 정책을 수행한다. 소방방재청이 수립하는 소방 정책은 전국 각지의 지방직 소방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경기도의 경우 2013년도 예산이 총 15조5600억인데, 이 중 소방관 인건비를 포함한 소방 관련 예산은 3900억 원이 조금 넘는다. 도 예산의 2.5% 정도다. 경기도 소방 예산에서 국가 예산은 33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즉 대부분의 소방관이 지자체에서 월급을 받고 국가 사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 지난 10일 있었던 포항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엔 지역 편차 없는데"…지역별로 차이가 큰 소방 업무의 질

소방 공무원 조직의 이 같은 '이원화'는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찬열 의원이 낸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소방 업무에서 지방자치 사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1년 63.5%에서 2011년 27%로 20년 동안 절반 이상이 감소했다. 반면 국가 사무는 15.4%에서 41%로 20년 만에 두 배가 넘게 됐다. 실제로 큰 재난이 발생할 경우 소방관은 도지사나 시장의 지시가 아니라 사실상 중앙정부 기관인 소방방재청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관련된 구호 활동의 경우 당시 전국 3개 시도에서 인원 142명, 장비 39대가 투입됐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큰 재난의 경우 중앙정부가 사실상 전국 소방 공무원을 지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쟁이나 치안, 방재와 같은 사안은 일원화된 조직 체계가 필수다. 각종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 조직은 군대·경찰과 달리 이원화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업무 과정에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일선 소방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인기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지자체장의 소방 행정 철학이 소방방재청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일선 소방 공무원들이 애를 먹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소방관은 "OO도지사는 과거에 소방본부 때문에 덴 적이 있다. 그 후 소방본부를 굉장히 나쁘게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 숭례문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소방방재청과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여 눈살을 치푸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모두 소방 업무의 비효율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더해 소방 공무원들의 근무 환경이 악화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지자체별로 재정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소방 공무원의 처우를 비롯해 소방 업무의 질도 지역별로 편차가 커진다. 단적인 예로 서울이나 경기도처럼 재정 자립도가 비교적 높은 지자체에 비해 강원도나 전라도와 같은 지자체의 소방 장비는 노후화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 박남춘 의원이 분석한 지난해 9월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소방관 개인 안전 장비의 노후율은 16개 시도별로 양극화가 뚜렷했다. 방화복의 경우 노후율이 가장 높은 광주(49.2%)와 서울(2.9%)은 17배 차이를 보였다.

한 소방관은 "안전에는 지역 편차가 없는데, 재정에는 지역 편차가 있다"고 푸념했다. 장비의 노후화는 사고로 직결될 수 있다. 근무 환경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안전 차원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은 어떨까. 대부분 한국과 같은 광역 소방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국가 사무가 강화되는 추세이고 영국도 중앙 통제가 강력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미국독일은 지방정부의 예산 권한 등이 막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지방직'과 개념이 아예 다르다. 정기신 교수는 "미국의 경우 각 주정부가 소방 업무를 관장하는데, 주가 각각의 '국가' 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한국의 지자체 개념과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국가직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소방에 대한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고, 소방관들의 대우 수준도 높다. 2001년 9.11테러 당시 현장에서 활약한 소방관들의 모습과 미국의 소방 시스템 등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지난 2011년 '소방관 국가직 전환 법안'을 낸 유정현 의원이 제시한 해외 소방관 쳬계 사례.


국가직 전환, 불가능한 일인가?

모든 소방 공무원의 국가 공무원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소방 공무원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소방 공무원을 현 지방공무원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소방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도 시도지사에서 소방방재청장에게 넘기도록 해야 한다.

국가직 전환의 걸림돌로 꼽히는 두 번째 사항이 예산 문제다. 지난 2011년 박연수 당시 소방방재청장은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의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는 인건비 포함 고정 지출 예산이 총 2조5000억 원가량이고, 기타 장비 도입 및 시스템 구축에 약 1조5000억 원이 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굳이 4조 원의 예산을 추가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세출 배분은 4대 6이다. 지방세 비율이 전체 세수의 20%밖에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정부는 부족한 지방 예산을 교부세로 보전해 주고 있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소방 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할 때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던 소방 예산을 국가가 가져가게 되는 만큼, 국가가 보전해주는 지방 교부세 지원을 줄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 지원하는 교부세를 줄이는 방식으로, 지자체의 소방 관련 예산을 국가가 사실상 환수하면 문제가 풀린다는 말이다. 물론 이와 별도로 소방 공무원의 3교대 근무를 원활하게 하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 등은 추가로 확보해야 할 일이다.

궁극적으로, 경찰청과 같은 중앙정부 소속의 독립 '소방청(가칭)'을 신설해 모든 소방 관련 조직과 예산을 일원화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국가직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의지다. 다만 고려해야 할 상황도 있다. 지방정부의 반발 가능성이다.

정기신 교수는 국가직 전환의 걸림돌과 관련해 "추가로 드는 예산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실제 부딪힐 문제는 주로 기술적인 사항들"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만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줄어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제 살 깎기'를 하면서 소방 관련 예산을 국가에 돌리는 일을 흔쾌히 할 지자체장이 있을까. 또 소방 업무를 직접 관장한다는 것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지자체장에게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소방 공무원의 숙원인 국가직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