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젤라 할머니. ⓒ 조호진
"가난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준다니 고마워요!"
지난여름, 안젤라(세례명) 황분녀(80)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6동 무허가 주택에서 혼자 사십니다. 가난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고맙다며 따뜻한 국밥을 사주신 어르신입니다. 국밥 한술에 목이 메고 국물에 목젖이 뜨거워져서 혼났습니다. 가을에 다시 만난 안젤라 할머니는 지난여름보다 수척해지셨습니다. 몸이 아파서인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든 인생, 험난한 인생이었지요. 우리 아버지가 무남독녀인 나를 귀하게 키워서 시집보냈는데 결혼을 잘못하면서 고생길에 접어들었어요. 젊어서는 이 식당 저 식당에서 일했어요.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요. 고생해서 번 돈은 다 어디로 가고 늙고 병든 몸 밖에 안 남았어요."
가난해도 나누며 사는 어르신들... 밀양 어르신과 연대하며 사회참여
- ▲ 신림6동 무허가주택 골목. ⓒ 조호진
안젤라 할머니는 (사)관악사회복지 '은빛사랑방' 전임 회장입니다. 신림6동시장(삼성동 시장) 인근에 위치한 '은빛사랑방'은 사회참여와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초노령연금 인상 요구 등의 노인 권리 운동, 좋은 서울시장 뽑기 위한 투표참여 캠페인, 송전탑 문제로 상경한 밀양 어르신들과 연대활동 등을 펼친 은빛사랑방 어르신들은 깨어 있는 시민입니다.
"나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 뭔가 하나라도 나누어주고 싶어요."
안젤라 할머니는 자신도 어려우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풉니다. 혼자 힘으로 벅찰 때는 은빛사랑방 어르신들과 힘을 모읍니다. 인생의 고달픔을 삭히면서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며 사시는 은빛사랑방 어르신들을 보면서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
안젤라 할머니가 거주하는 신림6동은 '신림1재정비촉진구역'입니다. 무허가 주택이 헐리고 아파트가 지어지면 가난한 어르신들은 떠나야만 합니다. 재개발이 되면 집만 부서지는 게 아니라 가난한 공동체도 부서집니다. 정을 나누던 이웃들과 뿔뿔이 헤어져야 합니다. 이 지상의 땅과 집은 부자들이 차지했지만, 하늘나라만큼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관악사회복지가 자랑하는 최고의 노인운동가
- ▲ 안젤라 할머니네 보일러가 고장났습니다. ⓒ 조호진
- ▲ 들어낸 살림을 쓸고 닦는 김순복팀장. ⓒ 조호진
안젤라 할머니네 오래된 기름보일러가 고장 났습니다. 관악사회복지 어르신 담당인 김순복(65) 팀장이 달려왔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으냐?" 할머니도 순복씨도 근심 어린 표정을 짓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순복씨는 보일러 기술자를 수배하고 들어낸 살림을 쓸고 닦았습니다. 순복씨 얼굴에 구슬땀이 송송 맺혔습니다.
순복씨는 관악사회복지가 자랑하는 최고의 노인운동가입니다. 가난한 어르신들을 섬기고 조직하는데 그녀만큼의 노하우와 열정을 가진 활동가는 찾기 힘듭니다. 올해로 19년 차 고참 상임활동가인 그녀는 주민운동은 학벌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과 헌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순복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배고플 때 밥을 주어서 고마웠어요."
중풍 걸린 독거노인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순복씨에게 이런 하직 인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배고픔은 한(恨)입니다. 순복씨는 밥을 차려드린 것이 아니라 한을 풀어드린 것입니다. 독거노인이 배고픔을 달래지 못하고 떠났다면 눈을 감지 못했을 것입니다.
밥을 차려드리고, 똥 기저귀를 빨고, 말동무를 해드렀던 순복씨는 노인의 죽음 앞에서 한참 울었습니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린 할머니를 더 잘 모시지 못한 것만 같아서 울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관악사회복지'는 독거노인들의 돌봄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살핍니다. 가난한 죽음에는 찾아오는 발길이 별로 없기 때문에 추모의 발길로 모여 외로운 어르신들을 배웅합니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와 아픈 친정어머니를 모신 순복씨
- ▲ 안젤라 할머니와 김순복 팀장. ⓒ 조호진
전북 고창에서 상경해 공장에 다니던 순복씨는 공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산동네 단칸방에서 시동생 세 명을 돌보면서 홀어머니까지 모신 순복씨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제공장 미싱사로 일했습니다. 미싱 일이 끊긴 뒤에는 앙고라 장갑 뜨기 등의 부업을 했습니다. 억척 같이 일해서 모은 돈으로 13평짜리 임대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세 자녀를 잘 키우면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와 척추를 다친 친정어머니를 모신 순복씨는 진정한 효부이자 효녀입니다.
안젤라 할머니네 보일러를 다 고쳤습니다. 찬바람 불기 전에 보일러를 고쳐 다행입니다. 안젤라 할머니가 환하게 웃습니다. 순복씨도 함께 웃습니다. 순복씨는 눈물 밥을 먹어봤기에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지, 외로움이 얼마나 힘겨운지 뼈저리게 압니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가난한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 생각입니다. 어느덧 세 명의 손자를 둔 할머니 순복씨에겐 꿈이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상경했습니다.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관악사회복지에서 활동하면서 야학에서 공부해 쉰여덟에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저의 꿈은 고졸 검정고시 합격입니다. 이 늦은 나이에 공부해서 무엇에 쓸 거냐고요. 배운 만큼 더 나눌 겁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운동권 어르신들... 사람이 그립거든 사람의 마을로 오세요!
- ▲ 은빛사랑방 서로돌봄 짝궁마을 지도. ⓒ 조호진
- ▲ 텃밭에서 거든 채소를 들고 기뻐하는 은빛사랑방 어르신들과 활동가들. ⓒ 관악사회복지
세상은 가난한 노인들을 더 차별합니다. 세금만 축내는 잉여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순복씨는 "관악사회복지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나누는 어르신들을 오랫동안 봤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어르신, 삶의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협동하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렀기 때문입니다.
관악사회복지 어르신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어르신들을 돌봅니다. '사랑마을'은 박군자와 송정숙 할머니, '성락마을'은 임수야와 고선행 할머니, '우정마을'은 황분녀와 최월순 할머니, '양지마을'은 박영자와 홍영필과 김영구와 박맹년 할머니, '성지마을'은 차장순과 박분이와 이부자 할머니가 담당합니다. 서로 짝꿍이 되어 아픈 어르신과 어려운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안부를 물으며 돕습니다.
'은빛사랑방' 어르신들이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등 굽은 허리로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여름 내내 땀을 흘려 가꾼 채소를 팔아 모은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골목의 오물을 수거하면서 환경을 개선시켰습니다.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을 팔아 활동비를 마련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었습니다. 별처럼 빛나는 인생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노년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나눔주민생활조합'(이사장 심순섭)을 만들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어르신을 돕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의 목돈 마련을 돕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소중한 운동이 관악의 가난한 마을을 환하게 밝힙니다. 따뜻한 밥을 나누고, 외로움을 서로 덜어주며 살아가는 관악사회복지 어르신들에게서 잃어버린 사람의 길을 찾았습니다.
자신만의 삶에 갇힌 그대들,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거든 욕망은 버려두고 여기 사람의 마을로 오십시오.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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