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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누리당, '육갑(六甲)'부터 손봐라!"

 
문재인發 민생 개혁 방안 제시, "전·월세 피크제 도입해야"
최하얀 기자 2015.11.08 16:40:39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8일 박근혜 정부의 노동·공공·금융·교육 분야 4대 구조 개혁의 '맞대응' 격인 주거·중소기업·갑을·노동 분야 4대 개혁을 제안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이후 정부-여당이 '민생' 프레임으로 급격히 기수를 돌리는 것에 대한 맞대응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경제 성장의 과실을 재벌·대기업이 독식하고 가계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4대 개혁은 우선순위도 틀렸고 옳은 내용도 아니다. 제대로 된 민생 경제 대책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말 국민에게 절실하고 민생 경제를 살릴 진짜 4대 개혁은 주거 개혁, 중소기업 개혁, 갑을 개혁, 노동 개혁"이라며 각 분야에서의 개혁 방안과 그를 위한 입법 방향을 제시하고 새누리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첫 번째 과제로 제시된 '주거 개혁'을 문 대표는 △전·월세 피크제(상한제)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표준 임대료 도입 △공공 임대 아파트 확대와 같은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문 대표는 "전·월세 대란의 원인은 보편적 주거 복지를 약속했던 박근혜 정부의 공약 파기 때문"이라면서 박근혜 정부는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시키는 것이 대안이라며 '빚내서 집 사라'는 엉뚱한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매매 활성화 정책은 가계 부채를 급속하게 악화시키는 한편 전·월세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전·월세 피크제로 서민의 주거 안정을 이뤄내는 것보다 더 절실한 민생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여당의 이른바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임금 피크제'를 겨냥해 "피크제가 필요한 것은 임금이 아니라 전·월세 가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 대표는 이어 "새누리당이 민생을 말한다면 우리당이 발의해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 법안을 더 이상 발목 잡지 말고 이번 정기 국회에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하는 '표준 임대료' 제도의 도입을 합의해야 한다"고도 요청했다.
 
그는 "또 월세 전환율을 기준 금리 더하기 3%로 억제하여 전세와 월세 간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체 재고 주택 대비 5.5%에 불과한 공공 임대 주택은 "평균 11%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문 대표는 주문했다. 그는 "이것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면서 "공공 임대 주택의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민생 말한다면 전·월세 피크제부터 도입해야"
 
문 대표는 이어 "성장도 일자리도 소득 증대도 이제 중소기업이다. 전체 기업의 99%인 중소기업이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 개혁과 갑을 개혁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중견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생의 산업 생태계와 '성장 사다리'가 무너졌다"면서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소상인의 △업종 △골목상권 △해외직판 활로 △기술을 지키고 돕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이어 "현행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는 실효성에 한계가 많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추진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자고 새누리당에 요구했다.
 
또 상업 지역 내에는 1만 제곱미터를 초과하는 대규모 점포를 건축할 수 없도록 제도화하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해외직판지원센터를 설치해 중소기업 해외 직판을 종합적으로 지원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해외직판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감면, 자금 및 인력 지원도 공약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제한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원-하청 거래에선 원가 구조와 기술에 대한 공개 요구를 원칙적으로 금하겠다"면서 "기술 유출에 따른 손해 배상액도 5배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기술 유용 적발 시 피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해야 한다.
 
문 대표는 또 "중소기업 간 협력을 지원하겠다"면서 "이탈리아의 네트워크계약법(Network Contract Law)처럼 중소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국내외 시장을 함께 개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이 외에도 그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들의 집단교섭권 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성과공유제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임금공유제 확산 및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적극 추진 △최저 임금 기준 변경과 연동한 하도급대금 조정 청구 법제화를 약속했다.
 
문 대표는 이날 대표적인 여섯 가지 갑질을 '육갑'이라고 부르며 이를 근절하겠다고도 밝혔다. 그가 제시한 '육갑'은 ①대리점업계의 밀어내기 판매 강요 행위 ②가맹점업계의 고가 인테리어 강요 행위 ③제조하도급에서 부당한 원가산정 요구와 남품단가 후려치기 ④건설하도급에서 추가공사비 미정산 행위 ⑤대형유통점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반품 행위 ⑥기술설명회 등을 빙자한 기술편취와 탈취 행위 등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식 '노동 개혁'…노동시간 단축·사내유보금의 고용 투자
 
정부-여당이 이번 정기국회 중 '과제 완수'를 목놓아 외치고 있는 노동 시장 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도 새정치연합의 '맞 정책'이 제시됐다.
 
문 대표는 이날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본질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고용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노동 개악"이라면서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200만 원도 벌지 못하고 2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구조,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려 627만 명에 달하고 임금 격차가 극심한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한 정책으로 △노동 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차별 해소 △대기업 사내 유보금을 활용한 청년 일자리 창출 △고용보험법 개정을 통한 청년구직촉진수당 신설 등을 제시했다.
 
문 대표는 우선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한 것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면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 노동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면 최소 11만2000개, 여기에 운수업 같은 '노동시간특례업종'까지 확대하면 15만5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말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52시간의 근로 원칙을 분명히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새누리당이 겉으로는 '노동 시간 단축'이라고 포장해 지난 9월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새누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주 근로 시간을 최대 60시간까지로 열어두고 있다. 법정 근로 시간 40시간에 노사 합의 시 가능한 최대 연장 근로 시간 12시간에 더해, 이른바 '특별 근로' 8시간을 덧붙일 수 있게끔 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휴일 근로는 연장 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일방적인 행정 해석으로 최대 주당 68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했던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취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향의 개정안이다.
 
문 대표는 이어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도 시급한 과제"라면서 "인턴이나 임시직과 같은 나쁜 일자리가 아니라 정규직의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라 공공 기관은 정원의 3%를 청년으로 채용해야 하나 넷 중에 하나꼴로 지키지 않는 실정"이고 "학교 비정규직 등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 또한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처럼 "청년 일자리 확대와 고용 안정에 정부부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을 뿐,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입안 되어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확산의 시발점이 된 '기간제법'에 대한 개정 방향 또한 이날 제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 대표는 대신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며 "사내 유보금을 청년 고용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인턴의 정규직 전환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청년채용할당제를 민간 대기업에도 확대 적용해, 300명 이상의 대기업인 경우에는 전체 고용자 가운데 3% 이상을 청년들로 채우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당이 내놓은 '사내유보금 과세법안'은 사내유보금을 청년일자리 만들기에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 대표는 최근 서울시와 성남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한 '청년구직촉진수당'의 법제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고용보험법' 개정으로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하여 일정기간 취업준비생들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취업에 소요되는 학원비나 교재비 등 취업 준비자금을 대학생 학자금 대출처럼 대출해주고 취업이 되면 상환하도록 하는 제도도 강구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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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권은 신뢰, 신뢰는 만남에서 시작”


 30년 대북 교류·지원, 에릭 와인가트너 “제 눈의 들보부터 보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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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8  17: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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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세계교회협의회 활동가 자격으로 첫번째 방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 이상 남북 기독교 인사 및 인도적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있는 에릭 와인가트너 씨를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캐나다인이면서 북측 당국으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한 최초의 비정부 기구 대표.

에릭 와인가트너 씨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수식어 중 하나이다.

와인가트너는 지난 1985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활동가 자격으로 남북 교회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한 첫 번째 방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 이상 남북 기독교 인사 및 인도적 지원 단체 관계자 등과 폭넓게 교류해 왔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개선 모두 신뢰에서 시작되며, 신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이를 위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신뢰 구축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는 모든 정부의 정책은 정말 잘못된 것”이며, 만남의 계기를 이어갈 수 있는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한 그는 인권을 빌미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아가 스스로 인권을 유린하면서 인권을 기준으로 다른 정부를 비판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의 성서에는 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경구가 있다.” 그가 생각하는 중요한 인권의 원칙이다.

이미 은퇴한 70대의 이 국제 NGO활동가는 지난 달 23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측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의 만남을 주선한 뒤 바로 서울로 와서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열린 ‘2015대북지원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1985년 한국교회가 북측과 처음으로 접촉할 때 그 일에 대한 주선을 의뢰받고 처음으로 방북한 WCC의 외국인 활동가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남북 교회 대표단은 그의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이후 5년 동안 남북한 대표단이 모두 참여한 4개의 국제회의를 성사시키기도 했으며 지난달 말에도 그 일을 하고 왔다.

지난 1995년 북이 국제사회를 향해 처음으로 원조를 요청한 이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6개월간 평양에서 근무하며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원조연락소(FALU; Food Aid Liaison Unit) 창립 대표로 일했다. 이때 그는 북이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절, 북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근 해소를 위해 활동한 외국인 벗이었다.

캐나다로 돌아간 후에는 북-캐나다 외교관계 수립에 기여하고 양국 관계를 다루는 뉴스레터 및 웹사이트인 ‘Cankor’의 편집장으로 일하다 2013년 은퇴했다.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만나 최근 남북 관계 현황과 지원사업, 평화문제, 인권 개선 등 현안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김동진 박사(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지난 3일 개최된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는 5일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선언문' 발표로 폐막했다.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는 에릭 와인가트너 전 캔코리포트 편집장(오른쪽), 왼쪽은 카타리아 젤버거 전 SDC 북한사무소장. [사진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통일뉴스 : 쉬운 질문부터 드리겠다. 평양시 명예 시민권자로서 특전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 에릭 와인가트너 : 특별한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으로부터는 대우를 받는 편이다. 북측 당국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조그련은 30년 동안 만나왔기 때문에 만나면 서로 좋아한다.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서 정부 인사들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지금은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 강수린 조그련 위원장의 근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 강영섭 위원장이 사망(2012.1.) 후 아들이 물려받은 것이다. 지난해 두 번 만났다. 한번은 제네바에서 만났고 지난 주 평양에서 만났다. 그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이다. 원고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평양에서는 제네바에서와 달리 좀 더 공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주로 개·폐막식 행사에만 나타나고 뭔가 실제적인 일을 할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 강수린 위원장이 겸하고 있던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10월 중순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고 일각에서는 건강 악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 굉장히 건강하고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 이날 인터뷰는 김동진 박사(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오른쪽)의 통역으로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1985년 처음으로 방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주최한 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주제는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정의’였다. 그렇지만 포커스는 한반도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남과 북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WCC의 목표였다.

도잔소 전에는 남측 교회가 북측과 연계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 등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1984년에 처음으로 한국교회가 WCC에 북한에 무언가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때 비록 북에서 일본 도잔소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한국 교회가 WCC에 처음으로 북측 기독교인들을 초청하는 문제를 의뢰했고 이 문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1985년에 파견된 WCC 실무자 2명 중 한 사람이 와인가트너였다. 그는 이때 북측과 협의를 통해 북측 기독교인들이 제네바로 와서 남측 교회 대표자들과 만나는 모임이 가능하겠는지를 협의하기 위해 방북을 했다.

실제 남북교회의 만남은 지난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성사됐다.

대북 교류·지원 30년...상상할 수 없었던 기근, 함께 극복 보람

□ 30년 전이었다. 이때 평양의 첫 인상은 어쨌나?

■ 그때는 고려호텔이 없었다. 지금은 확충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단층 건물이었던 보통강호텔에 묵었다. 당시에 한국에는 와 봤었지만 북은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공항은 굉장히 작았고 어린 소녀가 꽃을 갖다 주면서 우리 일행 두 명을 브이아이피(VIP)로 극진하게 대접해 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도로는 굉장히 넓은데 운행되는 차량은 없었고 심지어 자전거도 하나도 없었다. 왜 자전거가 없냐고 물었더니(베이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들어왔으니까 베이징 거리에 자전거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봤는데 평양에는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아 신기해서 물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자전거가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 복잡하고 싫다. 안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전거가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이미 주체탑도 있었다. 판문점에 가서 정전협정 체결 장소도 보여주었다. 조그련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그들은 일요일에 한번만 봤다. 가정교회가 있다고 했었는데 교회건물도 없을 때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조그련 사람들은 가정교회라는 데서 일요일에 몇 번 만나고 계속 당에서 나온 사람들과 구경 다니고 이야기 나누고 했다. 워낙에 북측 당국과 협의하러 갔던 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때 한편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북에도 종교적인 삶의 양태가 있었지만 굉장히 제한적이고 통제하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평양은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도 있었으며, 건물에 색칠도 잘 되어 있었다. 교통만 많지 않았을 뿐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평양뿐만 아니라 먼 외곽지역과 지방도시까지 함께 다녔고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다 봤는데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영양상태도 좋아 보였고 옷도 잘 입고 다녔다.

그때는 10년 뒤에 정말 그런 기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고 나서 1987년에 한 번 더 갔었다. 87년에는 조그련과 더 많이 만났었다. 그 후 1997년부터 2년 반 동안 체류했다.

   
▲ 지난 3일 개최된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 모습. [사진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1985년 첫 방북 무렵 북측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별 문제는 없었나.

■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오히려 그들이 질문이 많았다. 남쪽 사정과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공식 미팅뿐만 아니라 술 마시고 할 때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북을 방문하기 전에 제네바에 나와 있는 대표부 사람들을 만나고 가긴했는데 그들은 WCC 뿐만 아니라 본인이 알고 있는 해외동포 중에서 친북 또는 친남 성향의 동포들에 대해 이름을 거명하면서 물어볼 정도였다. 그 사람들이 질문은 많이 했지만 사실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우리가 오히려 놀랬었다.

□ 첫 방북 때와 1990년대 중반 WFP-FALU 창립대표를 지냈을 때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반 북한에 상주했다. 12년 전 첫 방북의 기억이 있던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가서 만났던 사람들이 많이 야위었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짐승들도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도 너무 남루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오래 입어서 제대로 빨지도 못했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12년 전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은 타일이 다 떨어지고 색도 다 바래고 페인트가 다 벗겨졌는데 보수를 엄두도 못내는 상황으로 보였다. 창문은 전부 깨져 있었는데 깨진 창문을 다른 유리로 복구할 수도 없어서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들로 대충 얼기설기 막아놓은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단순히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에너지난으로 인해서 하루에 몇 시간밖에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기반시설이 전부 붕괴돼 있었다. 그저 단순히 식량이 필요한 상황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경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중첩된 상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때 느낌으로는 결국 이건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니고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 몇 년 지나는 동안에 북한이 무역 파트너들을 다 잃고 석유를 싼 가격에 사오거나 지원받을 수 있는 소련 등 관계들이 끊어지면서 에너지난이 심화되고, 그 모든 것이 중첩되어서 이런 결과를 빚어냈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방북했을 때에는 평양에 돌아다니던 전차가 잘 정돈돼 있었다. 1997년 평양에서 본 전차는 전력을 공급받는 전차 위의 전선이 너무 자주 끊어지고 지나치게 노화되어서 한 블록 지나면 보수인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 당시 체류하던 구역은 어디었나?

■ 대사관들이 밀집돼 있던 문수동 외교구역이었다. 대사관 근무자들을 위한 아파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살고 있었다.

   
▲ 에릭 와인가트너는 정확한 기억력과 따뜻한 애정,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지난 30년간 해 왔던 대북 지원 사업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이 가장 어려웠던 2년6개월을 평양에 체류하면서 직접 목격했는데, 위기가 극복되는 추이나 동향까지 보았나.

■ (웃음)나는 정말 최고의 직업을 가졌다. 세계식량기구(WFP) 본사 직원보다 훨씬 좋았다. 그들에게는 식량원조사업만 있었지만 내가 일했던 FALU는 WFP를 지원하는 NGO를 조정하는 사무국 기능을 했다. NGO들이 다양한 사업을 원했기 때문에 WFP의 사업장이 없는 지역에도 우리는 다양한 사업장을 두고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북동부지역의 식량부족이 심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나는 바로 북측 당국에 이야기해서 따로 갈 수 있었고 상황이 어떻게 개선되는지 모니터링도 즉시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북의 전역을 다 돌아다니면서 상황이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던 특별한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NGO, 지원 활동 외 북에 대한 이해 높여야

□ 당시 북 당국의 제약은 없었나.

■ 당시에도 지금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북측 당국에 24시간 전에 통보하면 해당 지역을 방문할 수 있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초반이어서 그랬는지 북도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엔 사실 굉장히 편했다. 어디를 가자고 하면 다 협조해 주었고 가만히 있어도 북측에서 오늘은 어디를 보고 싶으냐고 물어보고 제안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제가 심해진 측면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이미 12년 전에 방북 경험이 있었고 북측 관계자들과도 면식이 있으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원이 많지 않던 초기 NGO활동가였기 때문에 북측도 통역이나 이동 수단 등에서 큰 불편 없이 지원해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도적 지원단체가 늘어나면서 북측이 나중에는 대학생들까지 동원해서 통역지원에 나서는 등 애를 썼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1~2일이면 해결되던 일들도 나중엔 일주일씩 걸리기도 했으며, 이 같은 상황은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북측 당국의 의도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기보다는 지원 기구 활동가들이 한반도와 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북측 당국과 부딪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앞으로 국제기구 등에서 지원 능력은 물론 지역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고 지원 대상인 북 당국과의 신뢰 부족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조언했다.

   
▲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북이 기근을 극복하는 과정을 함께 했던 에릭 와인가트너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에 체류하면서 겪었던 지원활동에 대해 더 설명해 달라.

■ 중앙당 간부와 지역 당 간부, 농장 관리원 등이 어떤 태도나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지원활동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다.

도 당 비서나 협동농장의 관리원이 여성인 경우에는 특별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지원기구 관계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반면, 어떤 경우에는 우리를 속이고 지원물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역 내 창고에 저장해 두었던 물품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을 요청하자 똑같은 사람을 여러 집의 주인으로 등장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지난 일이긴 했지만 이런 일이 평양의 고위 간부들이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라기보다는 지역 관리원이 자기 권한으로 한 짓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경우, 지원 기구에서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러 갔는데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북측 사람들 중에는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일도 있었다. 부모가 지원 기구 사람들에게 배고프고 힘든 자식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는 것은 부끄러워서 감추는 것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하면 도와줄 수 없다”고 했더니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격리해 놓은 시설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 충격적인 상황을 보고 난 후에는 많이 조심스러워졌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은 점차 줄어들었으며, 그 이후에 계속 방북하면서 본 북의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북이 겪고 있는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했는데 반드시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나?

■ 1995년 북한은 유엔에 처음으로 원조를 호소했다. 한 달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WFP의 경우에는 7명의 직원이 1년 사이에 50명으로 늘어났다. 내가 하던 사업팀만 해도 5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을 진행했다.

전체 경제 구조를 바꾼다던지, 남북의 정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적어도 극심한 기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고 실제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서 북한이 적어도 기근의 상황에서는 벗어나는데 분명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 당시 북측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모습과 적극적인 해결 노력에 대해 모두 이야기 해주었다. 전반적인 모습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 정말 적극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모두가 고통 받았던 시절이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당 고위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우리와 함께 일하던 통역사는 항생제가 공급되지 않아 고통 받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항생제를 챙겨주겠다는 우리의 제안에 대해 “아니다. 그 항생제는 너희들의 계획대로 전체적인 해결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받지 않았다.

처음에 WFP는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기근을 먼저 지원하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평양은 아무래도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WFP는 절대로 평양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많은 보육원·애육원을 돌아다니며 확인한 결과 평양이라고 해서 기근상황이 다르지 않고 엄청난 규모의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다음부터 평양에 대한 지원도 시작됐다.

물론 최고위층은 그래도 잘 살았을 것이라고 본다. 가끔 만찬에 초대받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음식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소수였다.

 □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측의 원조요청에 대해 호응하지 않았다. 어떻게 느꼈나.

■ 마음이 아팠던 건 전 세계가 북한을 돕고 있었는데 동족이 외면하는 상황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남측 정부에 WFP를 통해서라도 지원해 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WFP는 모니터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느 날 지원을 한다고 하면서 조금 지원을 하고는 정부지원이라며 모니터링은 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남북 사이에 신뢰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최근까지도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하면서 “남측에서 뭐라도 들여보내는 경우에는 내용물에 한국에서 보낸 것이라고 엄청나게 붙여놓고 북측은 북측대로 그걸 뜯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한편 재미있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남북 신뢰 없어...그럴수록 인도지원·개발협력 중요

□ 남북 사이에 신뢰가 없다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 과거 김대중 정부 초기 햇볕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전 세계가 흥분했다는 느낌이 있다. 그 후로 남북관계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9년 내가 북한에서 나올 때 김대중 정부의 요청에 의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북과 수교를 하려고 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북 외무상 부상이 귀국하는 나에게 부탁한 바가 있어 캐나다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재방북, 2001년 2월 북-캐나다 수교로 이어지게 됐다.

내가 느끼기에, 북은 언제나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바뀌는 것은 남측과 미국의 정책이다.

북측 인사들은 “아니 미국과 한국은 항상 선거에서 정부가 바뀌어서 정책이 자주 바뀌는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신뢰가 없으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 아니냐. 뭘 믿고 오랜 기간 협력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북의 전쟁 세대, 전후 세대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억제력은 핵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부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돈이면 왜 가난한 사람들 먹이지 않느냐’며 북을 공박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재래식 무기라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비싼 첨단 무기이다. 그런 무기를 살 돈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안 되는 북의 입장에서 안보에 있어서 핵무기를 하나 가지는 것이 가장 싸게 먹힐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국제사회는 이 같은 북의 입장을 용납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북의 핵개발 이후 미국, 한국과 북한의 신뢰관계는 깨져 버렸고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그는 "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성서 구절을 중요한 인권의 원칙으로 여기고 있다며, 인권을 빌미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지난 1985년 첫 방북과 1997년부터 2년6개월 체류, 지난 주 방북을 거치며 느낀 북의 변화에 대해 비교한다면?

■ 3년 전 방북 이후 지난주에 처음 평양에 들어갔다. 많이 알겠지만 최근 북한은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지역에 새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미래과학자거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3년 전엔 일반 차량을 택시로 바꾸어 운행했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색상의 택시 전용차가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고 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아파트에는 태양열 판넬이 정말 많이 부착돼 있었다.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보이는 모습만 보면 대북 경제제재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 한반도의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 북한, 미국은 각각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제안해 달라.

■ 계속 해 왔던 이야기이다. 신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신뢰를 구축하자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 신뢰는 상층부뿐만 아니라 밑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중간에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정부에 다 말하고 싶다. 왜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나. 그건 정말 잘못된 정책이다.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해야 한다.

북에서 활동하는 미국 NGO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좀 힘든 상황이다. 내 경우에 이번 방북 때에도 보험을 들 수 없었다. 정부가 반대하는 여행을 보험회사에서는 계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북에서 활동하는 NGO와 학계 인사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계속 제약을 하고 있다. 이러면 만남을 주저하게 된다.

북은 국제사회가 자신들에게 고립정책을 펴고 있다고 하는데, 북이 그럴 수는 있지만 개방된 국제사회가 북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인권개선 중요, “제 눈의 들보부터 보라”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 꼭 한마디 하고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인권 개선을 위해 직업 경력의 절반 이상을 바쳤다고 자부하는 그는 북의 인권 옹호에 대해서도 100% 지원한다는 입장이지만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권 유린국에 대해 결의안을 만들고 비판하고 압박하는 등의 활동으로는 인권문제를 개선할 수 없으며, 정말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국민이 자신들의 인권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개선을 위해 그들 스스로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결국 배고플 때 식량을 지원하고, 물이 오염됐을 때 식수 개선과 위생사업을 통해서 그들이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인권을 빌미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며, “게다가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스스로 인권을 유린하면서 인권을 기준으로 다른 정부를 비판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기독교인들의 성서에는 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경구가 있다. 중요한 인권의 원칙이다.” 에릭 와인가트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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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 ‘혁신 외나무다리’…손태공 ‘꿈틀’

문·안 ‘혁신 외나무다리’…손태공 ‘꿈틀’
안홍욱·박홍두 기자 ahn@kyunghyang.com
입력 : 2015-11-06 22:31:47수정 : 2015-11-06 22:46:25
 
ㆍ막오르는 야권 리더들의 각축전

‘손(孫)태공’, ‘물갈이’ 그리고 ‘필사즉생’….

‘국정교과서 정국’이 한 고비를 넘어서는 요즘 야권을 달구는 열쇳말들이다. 여야 대결 국면이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물밑에서 야권 리더들의 각축전도 막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화 저지’에 한목소리를 내던 그들이지만,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이 그들을 ‘3각 쟁패’의 무대로 불러내고 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62)와 안철수 전 대표(53)는 주류·비주류의 운명을 쥔 채 혁신의 외나무다리에 마주섰다. 이런 구도에 초연한 듯 은거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68)도 최근 자의반, 타의반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 총선이 있기 때문이다.

■손사래 치는 ‘손(孫)태공’

-흙집서 때를 기다리는 손학규“강진의 산이 나가라 하면…”

손 전 고문은 8일간의 외출을 마치고 지난 4일 다시 흙집으로 들어갔다. 전남 강진 백련사 인근 산 중턱 토담집은 월동 채비를 마친 상태다. 올겨울에도 ‘여의도’에 얼굴을 내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손 전 고문이 정치에 거리를 두지만 “당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다”(한 측근)고 한다. 카자흐스탄 키멥대 초청강연에선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귀국해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켜선 안된다”고 일갈했다. 그가 정치 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은 토담집에 은거한 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하고픈 말을 꾹꾹 눌러놨다가 꺼낸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로 돌아가면 아직은 ‘허허’ 웃고 만다. ‘소이부답’(笑而不答·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는다)이다. 정계 복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하산(下山) 시기는 “강진의 산이 나에게 ‘나가버려라’하면…”이라고 했다. 주변에선 “자나 깨나 손학규”라고 그의 이름을 불러내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세상(강진의 산)이 그를 불러내길 기다리는 ‘강태공’처럼 말이다. 그의 정계은퇴 선언이 끝까지 지켜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다만 이번 ‘총선 무대’에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편이다.

■‘물갈이론’ 들고나온 안철수

-‘비주류’ 보폭 넓히는 안철수“물갈이 하라는데, 고기만 갈아”

안 전 대표의 키워드는 여전히 ‘혁신’이다. 당 안팎에서 보폭도 넓히고 있다. 당내 비주류 그룹인 ‘정치혁신을 위한 2020모임’, 박영선 의원, 김부겸 전 의원이 참여한 ‘통합 행동’ 등을 두루 만났다. 그렇다고 ‘문재인 축출’을 우선하지도 않고, 통합을 지상과제라고 여기지도 않는다는 게 안 전 대표 측근의 설명이다. 혁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그의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주류와의 교류가 잦지만 ‘비주류의 수장’이라는 표현에는 불편해 한다. 

당 ‘혁신 2라운드’ 상황에서 그의 뜻과 무관하게 비주류의 구심이 될 수도 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탈당·신당 가능성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일축했다.

안 전 대표 움직임의 다른 축은 ‘청년 속으로’다. 2012년 ‘청년 멘토’로 ‘안철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그다. 지난 5일 전남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국민은 ‘물갈이’를 요구하는데 정치권은 ‘고기갈이’만 한다”고 비판했다. ‘물’은 제도·문화·관행, ‘고기’는 사람이다. 7일 산업기술대, 10일 명지대, 11일 국민대 등 줄줄이 예정된 대학 강연에서도 혁신론을 설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 죽을 고비’라던 문재인

-‘마지막 고비’ 배수진 친 문재인 “총선 패하면 내가 있겠나 ”

“저에게는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습니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가 스스로에게 한 ‘예언’이다. 9개월 동안 첫 번째(전당대회 승리)와 두 번째(혁신안 통과) 고비는 넘겼다. 이제 가장 힘든 마지막 고비가 임박했다.

문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정치적 역할이 거기까지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대선은커녕 정치적 장래는 없다는 배수진이다.

‘고비 넘기’는 당장 당내에서 시작되고 있다. 9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하면서 비주류의 ‘역습’은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다. 교과서 국정화 국면이 잠시 비주류 목소리를 잠잠하게 만들었지만, 혁신과 총선 공천 등을 둘러싼 비주류의 도전과 응전은 이제 불가피하다.
 
힘으로든, 설득으로든 비주류까지 한 방향으로 아우르지 못하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다. 동행이냐, 파국이냐 ‘문의 리더십’은 다시 시험대에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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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였다면, 박근혜 정권에 폭탄 던졌다!"

 
[현장] 박근혜·김무성·황교안·황우여·김정배는 '을미오적'
이재호 기자 2015.11.07 22:21:00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국정화 반대를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 3일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 고시 발표 이후 국정화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7일 오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의 주최로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4차 범국민 대회에 10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의 한상권 대표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기에는 투표장에 잘 나오지 않는 20~30대들이 몰려있어 청와대와 여당은 현재 여론 흐름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면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국정 교과서 문제는 민생 현안에 가려져 곧 잊혀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에 우리는 반대 서명 참여, 촛불 문화제 참가, 반대 '인증샷' SNS 올리기, 1인 시위, 집 앞 현수막 내걸기, 반대 스티커 붙이기, 신문 등에 반대 의견 광고 내기, '교육부 장관 시민 고발단'에 참여하기,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함께 하기, 투쟁 기금 내기 등을 시민 행동 지침으로 마련했다"면서 국정화 저지에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행동을 촉구했다.

민생을 우선시하겠다면서 국정화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일침도 있었다. 한 대표는 "광범위한 국정화 반대 여론에 놀란 대통령과 여당은 뒤늦게 '민생 우선'을 내세워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며 "그러나 '민생 타령'은 '종북몰이'와 함께 정부와 여당이 늘 써먹은 위기 탈출용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2013년 국정원이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댓글을 단 사실이 밝혀지자, 새누리당은 극비 문서인 남북 정상 회담 회의록까지 공개하면서 색깔론 공세를 취하다가 슬그머니 민생론을 들먹였다. 2014년 세월호 진상 규명 촉구 때는 세월호에 경제가 발목이 잡혔다며 경제 위기의 책임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이번에도 국정화 여론이 악화되자 '국정화 반대는 북한 지령',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국민'이라는 등 종북몰이를 했다. 그럼에도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민생론을 내세워 '이런 경제 상황에서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과 상관없는 문제로 국회를 마비시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며 불복종 운동을 하는 야당을 '민생 외면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전략을 넘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이뤄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정 교과서 불복종 시민 행동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 7일 오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4차 범국민 대회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박근혜·김무성·황교안·황우여·김정배는 '을미오적'

이날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앞장서 추진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교육부총리,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을미오적(乙未五賊)'이라고 규정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대한제국의 대신 가운데 조약에 찬성한 5명의 대신을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칭한 것을 빗대어, 현 정부와 여당이 을미년인 올해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범국민 대회에 참석한 전 국회의원 김원웅 항일독립운동단체협의회장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밝힌 이유 중 하나는 조선의 교과서를 빼앗아 불태운 죄였다"라며 "안중근 의사가 지금 살아계셨다면, 박근혜 정권에 폭탄을 던졌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해 지난 3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성신여자대학교 한연지 총학생회장은 "국정교과서 만든다고 군인을 끌어 들이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노동 개혁을 하는 나라"라며 오는 14일 민중 총궐기 대회에 함께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세월호특별법 제정 1년을 기념해 열린 '11.7 기억과 다짐의 날' 집회 이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세월호 침몰 희생자 고(故)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세월호 참사 앞에 국가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역사를 국정화하고 왜곡하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싫다는데, 정부는 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참상"이라고 꼬집었다.

정 씨는 "국가는 국민을 내몰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잊을 수 없듯이, 수많은 미래와 아이들을 위해 멈출 수 없다. 삐뚤어진 역사를 두고 돌아갈 수 없다"면서 "그래서 함께 행동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언론이 되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범국민 대회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아베도 비웃는다 국정 교과서 중단하라", "전국민이 빨갱이냐 공안몰이 분쇄하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보신각과 종로 일대를 행진했다. 오는 14일에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의 주관으로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10만 명이 모이는 민중 총궐기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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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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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신형 이스칸더 미사일 발사시험공개

러시아 신형 이스칸더 미사일 발사시험공개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1/07 [21: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신형 이스칸더 미사일차량     © 자주시보

 

▲ 신형 이스칸더(이스칸데르) 미사일 발사 장면     © 자주시보

 

▲ 신형 이스칸더가 1단 분리 직전 속도를 가속하는 모습     © 자주시보

 

▲ 신형 이스칸더의 목표 명중     ©자주시보

 

 

▲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사거리가 400KM인데 원형공산오차가 5미터밖에 되지 않아 대단히 위력적인 미사일 미국의 미사일요격기지도 이 미사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자주민보
▲ 구형 이스칸더 미사일 발사     © 자주시보

 

 

 

5일 스푸트닉은 10월 30일 러시아 국방부가 러시아 남부의 아스트라한 지역 케프시틴 야르에서 이스칸더(NATO명 SS-26 Stone, 서구에서는 이스칸데르 라고도 명기해왔음) 단거리탄도미사일 로켓 발사 시험을 진행하여 목표물을 소멸했다는 소식을 관련 동영상과 함께 보도하였다.

 

동영상을 보니 이번에 시험발사한 이스칸더 미사일은 과거 구형에 비해 좀 날씬해진 느낌이 들었으며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특성을 보였다. 특히 발사 후 약 15초 경에 1단로켓을 떨어뜨리고 2단 로켓을 점화시켰는데 이는 최근 북의 대함 미사일 등에서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어서 주목되었다.

 

러시아 등 다른 나라 미사일과 달리 북의 대공, 대함미사일들은 발사 후 얼마 안 되어 1단 로켓을 신속히 떨어뜨리고 2단로켓을 점화하는데 그때부터 폭발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모든 물체는 최대정지마찰력 때문에 멈춘상태에서 출발할 때 높은 추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1단 로켓은 크게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엔진과 연료통의 무게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를 신속하게 떨어버리고 가벼운 상태에서 2단추진에 들어가면 당연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북의 순항미사일과 대공미사일들은 하나같이  발사 후 얼마 안 되어 바로 1단 분리에 들어가게 만들어져 있었다. 북은 소형단거리이건 대형 장거리건 모든 로켓을 다단으로 만들고 단 분리를 능란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축적해 놓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최근 공개되고 있는 신형 러시아의 미사일들도 이런 북의 다단로켓의 특성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의 기술이 전수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최신 무기에 적용하는 기술을 북은 구형 미사일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해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 된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 공개한 러시아의 이스칸더 미사일은 그 속도가 굉장히 빨랐으며 단 1미터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이스칸더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은 300-500kg 전술 핵무기까지 탑재가 가능하며 원래부터 순항속도 마하 6, 종말 타격 속도 마하 10을 넘나들 정도로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어 거의나 요격이 불가능하고 원형공산오차 5미터 즉, 5미터 원 안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어 미국에서도 매우 두려워하는 무기였다. 미국이 러시아를 압박하는 요격미사일시스템을 동유럽 등에 배치하면 러시아는 그에 맞대응하여 이 이스칸더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며 맞서는 일이 계속되어왔을 정도로 러시아도 미국도 이 미사일을 매우 위력적인 무기로 평가해온 것이다.

그 이스칸더가 더 빠르고 정확한 무기로 거듭난 것이다.

 

요격미사일의 발전 속도보다 타격미사일의 발전 속도가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전에서는 더욱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사라지고 있다. 대신 전쟁이 나면 그만큼 공멸의 위험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videoclub/20151105/773040/russia-kapustin-yar-iskander-launch.html#ixzz3qo95Yq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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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문제, 국민모두가 나서서 대응해야> ... 평화미국원정단 83일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1/08 10:32
  • 수정일
    2015/11/08 10: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탄저균문제, 국민모두가 나서서 대응해야> ... 평화미국원정단 83일째
     
     
    평화미국원정단은 미국원정 83일째인 4일 오후3시반부터 백악관앞에서 평화적인 피켓팅을 전개했다.
     
    이날 원정단은 라파예트공원중앙에서 먼저 피켓팅을 진행한 후 백악관쪽으로 이동해 시위를 이어갔다. 콘셉시온농성장주변에서 피켓팅을 진행하자 현장실습을 나온 중학생들은 원정단주변에서 플래카드문구를 읽으며 코리아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일부 학생은 원정단가까이 다가와 사진을 찍거나 질문을 하기도 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앞은 주말만큼 관광객들로 붐비었으며 사진을 촬영하거나 여행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도 했다. 원정단이 백악관앞으로 이동해 피켓팅을 이어가자 관광객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인도, 파키스탄, 현지인 등 각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원정단과 사진을 찍으며 대화을 나눴다.
     
    남코리아에서 온 사람들은 특히 원정단의 피켓팅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며 열띤 대화를 했다. 모지역 군수와 군의회의장을 비롯한 15명은 원정단의 플래카드구호를 유심히 보며 사진을 찍거나 원정단의 활동과 탄저균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등 여러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다. 원정단 이상준단장은 <지난 5월 남코리아미군기지5곳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검열없이 무단반입된 탄저균은 치사율 85%이상의 아주 위험한 생화학무기다>라며 <오산미군기지에서 탄저균실험을 한 뒤 일부 실험장비를 세척한 물이 하수구를 통해 서해로 흘러나갔다. 오산평택의 시민들이 계속해서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민모두가 나서서 대응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정부도 미국50개주와 남코리아, 호주, 캐나다, 영국, 일본 등 8개국 및 193개 실험실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달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며 <원정단은 미정부를 향해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구호를 외치며 80일 넘게 백악관앞시위를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정단의 설명을 계속 듣고 있던 일부사람은 <탄저균실험 반대한다. 80일 넘게 오랫동안 백악관앞에서 피켓팅을 하다니 쉽지 않을 텐데 수고많다>며 원정단활동을 응원했다.
     
    포틀랜드에서 온 한 현지인커플은 원정단의 코리아글플래카드를 더듬거리며 읽더니 코리아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2010년부터 남코리아에 2년동안 살았다. 코리아와 인연이 깊다. 남코리아에 있는 동안 경복궁도 가봤다. 아름다운 곳이 정말 많다>고 말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월호유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가슴아파했던 일이다. 세월호사건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 못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다>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계속해서 <코리아분단으로 인해 가족이 만날 수 없는 서러움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처럼 독재를 하며 전쟁훈련을 벌이고 또 민생파탄을 일삼고 있다>며 <코리아가 평화적으로 통일했으면 좋겠다. 80일 넘게 백악관앞에서 피켓팅을 진행하다니 대단하다. 힘내라>며 경의를 표했다. 
     
    이어 어나니머스(Anonymous)소속 회원은 원정단과 인사를 나눈 다음 <내일 오전9시에 큰 집회가 있다. 집회장소를 돌아보는 도중 원정단을 발견했다>,<9.11의 진실, 드론 및 전쟁무기,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GMO(유전자조작생물), 팔레스타인문제, 부정부패, 인권문제 등 미정부의 정책을 반대한다. 남코리아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밀반입해 실험하는 나라가 이곳 미국이다. 별로 놀랍지 않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바로잡아야한다>며 원정단의 피켓팅을 지지했다.
     
    한편 어나니머스는 <익명>이라는 뜻으로 초록색바탕에 물음표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다니며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3년 워싱턴DC에서 단일집회로 시작되어 이후 전세계 500개이상 동시집회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대규모집회로 기록되어있다. 어나니머스는 주간·월간단위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거리시위를 하거나 노숙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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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나뉜 광화문, 이 현장이 '올바른' 역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반대 집회 현장

15.11.07 21:27l최종 업데이트 15.11.07 21:3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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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재향경우회와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김용인 대한재향경우회중앙회 부회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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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데, 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난리치고 있는지 압니까? 검인정 교과서를 하면 그걸 쓴 교사, 교수들에게 매년 320억원이 고스란히 들어갑니다. 국정화를 하면 정부가 교과서를 더 싸게 만들 수 있으니까 자기네들 황금 노다지, 꿀단지를 뺏기게 되거든요. 이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저렇게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용인 대한재향경우회중앙회 부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외친 말이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 제2차 국민대회'에 모인 노인들은 "국정화 지지한다! 지지한다! 지지한다!"고 있는 힘껏 목청을 높였다. 

<조선일보>의 지난 10월 16일자 보도를 참고하더라도 말이 안되는 얘기다. 이 보도에 따르면 고교 한국사 출판시장에서 1위(채택률 33.2%)를 달리는 미래엔은 권 당 5420원짜리 한국사 교과서를 약 36만권 찍어 약 2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320억원을 챙긴다는 얘기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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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재향경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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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인정 교과서 집필진의 96%가 좌편향 교사와 교수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어떤 기관에서도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의 사상을 검증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이 또한 그 어떤 근거도 없는 주장이다. 96%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한국사 교과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들도 나왔다. 주로 북한을 비난하는 말이다. 

"남한이 북한보다 30배나 더 잘 삽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김 부회장은 이같은 국정화 찬성 집회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해서 반국가단체인 통진당(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라며 "역사 교과서도 우리가 하면 된다.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도록 여러분 힘을 모아주십시오"라고 독려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이날 노인들은 주최자인 재향경우회가 나눠준 구호띠를 두르고 비옷을 입고 손 팻말을 들었다. 재향경우회뿐 아니라 군복을 입고 나온 고엽제전우회 등 여러 보수단체 회원 약 500여 명은 광화문 네거리의 각 모퉁이 인도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현수막을 들고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이 진행된 오후 5시부터 약 1시간여 동안 서울 광화문 네거리는 보수단체에 점령당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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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재향경우회와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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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에선 반대 집회 "한국 아니라 박근혜 부끄러워 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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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국정화 저지 4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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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 1000여 명은 청계광장에 모였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4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권명숙 서울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연단에 올라 최근 교육부가 배포한 교과서 국정화 홍보 웹툰을 비판했다. 권 대표는 "교육부는 마치 그동안의 잘못된 역사교육 때문에 청년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고 떠나고 싶어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너무나 힘든 삶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냐"며 "우리는 한국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독재정권·불통정권,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박근혜 정권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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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 1000여명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 국정화 저지 4차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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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는 이날 결의문에서 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에 몰린 정부와 여당이 종북몰이와 '민생타령'으로 위기국면 모색을 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은 "2013년 국정원이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댓글을 단 사실이 밝혀지자 새누리당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까지 꺼내며 색깔론 공세를 취하다가 민생론을 들먹였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로 코너에 몰리자 '세월호에 발목이 잡혀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라며 책임을 돌렸다"며 "이번에도 국정화 여론이 악화되자 어김없이 종북몰이를 했고 그럼에도 여론이 악화되자 불복종운동을 하는 야당을 '민생 외면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는 국정화 반대 시민들 각자 불복종 운동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11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국정화 반대 집회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이들은 "반대서명 참여, 반대 인증샷 SNS에 올리기, 1인 시위, 집 앞 현수막 내걸기, 반대 스티커 붙이기, 신문 등에 반대의견 광고 내기, 교육부장관 시민 고발단에 참여하기, 투쟁기금 내기,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함께하기 등 우리 모두 국정 교과서 불복종 시민행동에 참여하자"며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확실히 일깨워 주자"고 독려했다.  

이들은 오후 6시 50분쯤 집회를 마친 뒤 청계광장을 출발해 광교, 종각, 을지로를 거쳐 서울시청까지 행진을 벌이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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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국정화 저지 4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남녀 한쌍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팻말을 나란히 가방에 붙인 채 걷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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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북방협력모델의 모색

남북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북방협력모델의 모색

2015. 11. 06
조회수 238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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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0년 후 동북아 미래를 좌우할 추세와 변수는 무엇일까? 단순히 북한의 체제변화인가? 아니면 중국의 팽창과 그에 따른 동북아 신질서일까?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 동북아의 미래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가지 상호 연관된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먼저 지정학적 측면에서 성장 국면에 있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불가피한 추세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주변국과의 갈등을 야기할지 여부는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나, 단순화하면 동북아에서 민족(국가)주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역으로 동북아에 국가를 초월하는 지역주의가 정착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동안 되풀이해온 역사와 영토 문제로 인한 민족주의의 부상은 지역주의 탄생을 저해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동북아의 미래는 민족주의 또는 지역주의의 향배에 따라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이다.

 

 동북아 미래 모습들


 한편 지경학적 측면에서 동북아의 경제협력은 현추세의 연장선에서 확대, 심화될 것으로 보아도 큰 착오는 없을 것이다. 이는 동북아국가 간에 경제협력의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 부분적으로 몽골과 북한의 광물자원 그리고 국가 간 기술 및 자본, 노동력에서의 격차는 협력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고 있으며, 또한 중국시장 확대를 위한 자유무역협정의 유인도 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품, 서비스, 금융, 사람과 지식의 월경적 이동이 확대되고, 기업들의 월경적 공급사슬도 늘어날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품과 사람을 비롯한 에너지 자원의 월경적 이동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기반시설 개발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통합유럽과 달리 동북아의 경제협력과 이를 지원하는 기반시설 개발은 동북아 나라들의 ‘개발국가적’ 특성상 국가의 전략적 선택과 정책 의지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서 동북아의 미래는 또 다른 갈림길에 들어설 수 있다. 즉 최근 20여 년간 진행돼 온 민간협력 중심의 ‘시장 주도적’ 시나리오와 정부 간 협력에 의한 ‘정부 주도적’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요약하면 동북아의 미래 모습은 크게 시장 또는 정부, 그리고 지역주의 또는 민족(국가)주의라는 변수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동북아 경제통합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지역주의가 정착되고, 시장 중심으로 협력이 확대되면 동북아에서 상품, 자본, 기술, 노동력의 월경적 이동이 자유롭게 되어 기업의 초국가적 경영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다. 이 경우에 동북아 발전의 공간적 형태는 집적과 혁신의 중심인 거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고, 거대도시간 연계는 항공과 해운이 주가 될 것이다.

 정부주도 지역주의의 미래

 

 한편 동북아의 상생과 협력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고 정부가 앞장서서 다자간 개발공동체 구성을 도모한다면 동북아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시장 주도 지역주의’가 통합유럽의 모습에 가깝다면, ‘정부 주도 지역주의’는 기반시설 개발 중심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등 자원의 공동개발과 이용 및 교통을 중심으로 한 개발공동체의 구축은 몽골,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극동지역, 그리고 북한을 포함하는 낙후된 동북아 북부지역의 면모를 일신시키게 될 것이다. 일본총합연구개발기구가 연전에 구상한 동북아 북부의 대환(big loop)과 한․중․일을 잇는 육상연계 수송망 건설은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동북아시대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주의’ 시나리오가 발현된다면 동북아의 미래는 밝다. 그러나 안보, 영토문제 등 갈등이 지속되는 한 동북아 지역주의 탄생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바라는 미래 모습은 아니지만, 폐쇄적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안보적 고려가 지배하는 미래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로  정치와 안보 차원에서는 민족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되 경제협력에서는 시장의 힘에 의존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 경우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필요에 따라 체결되고 자본의 월경적 이동이 허용되나 기술이나 노동력의 이동은 제한적이 될 것이다. 둘째로 ‘정부가 조장하는 민족주의’라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강대국 중국이 보편적 규범에 따르지 않고 중화주의를 외치며 동북아 패권 장악으로 치닫게 되면 동북아 경제협력은 국가안보를 위한 정치적 계산에 갇히게 될 것이다. 물론 최근 중․러 간 천연가스 이용협력과 중․북 간 접경지역 특구 개발 등 각국의 전략적 이익 극대화를 위한 양자협력은 지속되겠지만, 개방적 지역주의의 탄생은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동북아 고속철, 한반도가 가교

 

  ‘민족주의’ 정서가 지배하는 동북아에서의 국가간 수송연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항 간, 항만 간 점 대 점의 연계 이외에 육상을 통한 연계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극동지역, 그리고 중국과 북한 간의 육상수송로 연결은 주로 접경지역에서 중국 주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지역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동북아 사회간접자본 구조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선 ‘시장 주도 지역주의’ 시나리오에서의 종모양의 발전회랑이 시사하는 바는 국제연계 인프라가 주로 거대도시 중심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20여년 전부터 논의돼 온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 회랑은 이미 사베세토(상하이-베이징-서울-도쿄) 회랑으로 확대 발전되고 있다. 이들 중심지 간에는 셔틀항공이 운행 중이며, 장래에는 저가항공의 가세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회랑 주변 연해지구의 항만들은 협력항만 운영 및 공동물류기지 건설 등으로 한 국가를 넘어서는 보다 광역화된 서비스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중․일 철도 연결은 북한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향하고 주변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때에만 가시화될 것이다. 
  ‘정부 주도 지역주의’ 시나리오에 따른 동북아는 수년간 논의돼 온 철도, 고속도로, 천연가스 관도 및 송유관 등 범지역적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을 토대로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자간 개발협력체가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의체’의 일환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미치오 모리시마(Michio Morishima, Collaborative Development in Northeast Asia, MacMillan Press 2000)가 주장한 ‘철도 기반 개발공동체’나 필자가 제안한 ‘기반시설 중심 개발공동체’가 탄생하게 됨에 따라 동북아의 낙후지역에 새로운 초국경적 발전의 고리와 축이 들어서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극동러시아-몽골-중국-한반도 북부를 잇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울란우데-울란바토르-베이징, 하바로프스크-우수리스크-나진-원산, 치타-하얼빈-쑤이펀허-블라디보스톡, 창춘-훈춘-나진, 선양-평양-서울 등이 주요 교통 및 발전축이 될 것이다. 이중에서도 선양-평양-서울 축은 중국과 우리의 고속철도가 연결됨으로써 베이징-선양-평양-서울-부산 국제고속철도의 탄생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독도영유권 주장을 철회한다면 부산-후쿠오카 간 해저터널을 이용한 고속철도의 연계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일본과 한반도를 경유하여 중국을 잇는 고속철도는 동북아 개발공동체의 초석을 놓게 될 것이고, 한반도는 명실공히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역주의와 북한 변수의 향배

 

  이상에서 그려본 동북아의 미래 모습은 북한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체제변화 시기와 속도는 북한의 내부사정이 크게 좌우하겠지만, 동북아 국가들이 민족주의에 갇혀 있느냐 아니면 열린 지역주의로 나아가느냐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북한 스스로의 변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동북아 지역주의 탄생이 앞당겨지겠지만, 역으로 동북아 국가들이 협력하여 상생과 협력의 지역주의를 구축한다면 북한의 체제변화를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 주도 지역주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체제변화가 빠를수록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고, 지체될수록 ‘시장 주도 지역주의’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높이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북한정권이 노골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남북 간 긴장상태는 미래의 시점에서 되짚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분열증상에 빠진 호전적 정권이 피해망상에 빠져들어 저지른 망동일지도 모른다. 북한을 제외한 동북아 모든 국가들이 북한정권에 대한 격리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공유한다면, 이것이 바로 동북아 지역주의의 첫걸음일 수도 있다. 


 남북철도 사업의 중요성

 

  한반도는 아직도 분단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은 당사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유라시아 나아가 지구촌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분단은 불안한 남북관계가 해소되고, 남북 경제공동체가 형성되어, 주변국의 협력 하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면 극복될 것이다. 남·북한이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남북 간 상호 이익에 기여하는 남북 협력사업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남·북한 협력을 위한 핵심과제 중의 하나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이며 나아가 중국, 러시아와 미국 등 대륙철도와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TKR 연결사업은 단순한 경제적 차원을 넘어 한반도 통합물류망 구축, 북한의 대외개방과 남북관계 발전, 새로운 동북아 협력질서 창출을 이루는 의미심장한 프로젝트다. TKR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을 새로운 협력의 틀로 끌어내는 종합적,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이 한민족 공생 공영의 길이라는 공동비전을 세우고 북한을 설득하여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상 동쪽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며,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관문으로서 지정학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이러한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북한 철도 연결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종단철도(TKR)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TSK), 그리고 중국의 대륙횡단철도(TCR)와 연결되고, 일본과는 해저터널, 미국과는 베링해저터널을 이용하는 철도와 연결되어야 유라시아 대륙과의 인위적인 분절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군사 안보적 제약이 남북 철도사업 장애물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이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과 사회문화적 효과, 군사적 긴장 완화 등 긍정적 변화를 가져와 평화정착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한반도종단철도 사업은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 조치를 비롯한 평화체제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군사안보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핵, 미사일 문제를 비롯한 군사안보 문제들이 진전·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철도 연결확장 및 운영사업은 난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한구간이 우리의 유라시아 구상 실현을 결정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북철도 협력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우선 유엔사로부터 철도협력 사업을 위한 관리권을 이양 받아야할 것이다. 또한 남북철도 연결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북군사당국 간 협의가 정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협의시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 문제 등 철도사업과 관련된 제반사항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과제중 하나가 철도연결에 따른 개방문제다. 철도가 연결되고 운행되면 북한사회가 외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교류·협력에 의해 열악한 사회실상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다.  북한의 군사시설 배치상황 등 군사정보가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이 철도노선 협상시 경원선보다 동해선 연결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였던 것도 안보적 차원에서 염려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책이 선경정치로 변해야

 

  북한도 만성적인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폐쇄의 늪에서 벗어나 핵문제 해결의 결단을 내리고 대서방 관계개선과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미래는 보장받지 못하고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도 경제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선군정치(先軍政治)에서 선경정치(先經政治)로 전환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북한은 TKR 사업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교류·협력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체제 안전 정책때문에 아직까지 남북철도 연결과 같은 대외 협력에 적극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상생모델로 추진해야

 

  북한요소로 인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철도사업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에 달하는 물류비용과 연간 20조 원이 넘는 혼잡비용으로 나타나는 국내 물류난을 해결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 철도망의 유일한 미싱링크 (미연결 구간)인 남북철도 연결은 중국, 러시아,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이해에도 부합하는 지경제적 공통과제다. 
  우리에게 대륙으로의 길을 터주게 될 남북철도 사업은 세계철도망에도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남북종단 철도 연결은 한일해저터널이나 베링해협 터널사업의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이들 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길이만 200㎞가 넘는 한일해저 터널이나 빙하로 뒤덮인 베링해협 터널은 지금까지 추진되거나 계획된 어떤 철도사업과도 비교될 수 없는 고도의 기술력과 특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다양한 이해당사국을 조율하는 정치적 수완 등이 모두 동원되어야 하는 최고의 난이도를 지닌 사업이다. 
   남·북한 철도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세계 각국의 신규 철도사업이  봇물 터지듯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북철도사업을 필두로 한일해저 터널, 베링해협 터널사업 참여를 통해 최고수준의 해저터널기술을 보유하는 나라가 된다면, 향후 수십년 이상 우리나라에 먹거리와 일자리를 보장해 줄 것이다. 
   남북철도사업도 유무형의 과실을 남·북한은 물론이고, 인접한 모든 국가들과 함께 나눌 때 성공할 수 있다. 남·북한 모두가 윈·윈 하는 경제협력 모델, 나아가서 동북아의 상생모델로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남·북한 철도연결에 대해 북한이 동의한다면 철도 연결로 인한 남한의 수익금 전액을 북한철도 현대화에 투입한다는 상생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선언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북한 경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 루블화 약세와 최근 중국경제 불안 등으로 극심하게 위축되어 있다. 우리 경제력을 지렛대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북방이 한국경제의 활로다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역으로써 북미, EU와 함께 세계경제를 3등분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에서 동북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획기적으로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해양경제(미국, 일본, 유럽 등)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한국경제는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그런 점에서 연해주를 비롯한 동시베리아, 몽골, 중국의 동북3성, 즉 북방대륙이 한국경제가 진출해야 할 새로운 활로다. 이런 맥락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교통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해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선진강국이 되는 열쇠가 유라시아 복합교통물류망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


 ‘철의 실크로드’는 꿈이 아닌, 현실

 

  현재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공백기를 남북철도와 대륙철도연결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활용한다면 장기적으로 이러한 공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의 의지나 입장과는 별개로 우리는 남북철도와 대륙철도 시대에 대비한 필요사항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남·북한 철도연결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포함한 제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이상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경구가 있지 않은가.  
   징기스칸의 전성시대를 열게 했던 실크로드처럼, 남북철도는 한반도를 물류와 교역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21세기 철의 실크로드’임에 틀림없다. 남북철도는 미래의 젊은 세대를 위한 선물이다. 한반도를 거쳐 간도와 연해주는 물론, 만주벌판 및 몽골과도 연결됨으로써 우리 후손들의 활동영역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한반도는 더 이상 웅크린 토끼가 아니라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가 될 것이다. 철의 실크로드를 타고 부산-서울-개성-평양을 찍고, 베이징, 모스크바, 파리로 나가자. 
   한반도는 해상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이들 세력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만한 소통이 필요하다. 한반도와 시베리아, 중국, 만주 지역까지 한데 묶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21세기 철의 실크로드’는 장기적으로 일본과는 해저터널로 나아가 미국과는 베링해저터널로 연결, 동북아와 유럽연합(EU)은 물론 미국의 경제권을 통합하는 지구촌공동체 만들기를 의미한다. 
   우리의 미래 비전은 ‘21세기 철의 실크로드’를 완성시켜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는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여는 데 있다. 미래비전이 실현된 모습으로는  정치적으로는 통일 민주국가 건설, 경제적으로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통한 동북아 번영 주도,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 건설을 통한 동북아의 평화에의 기여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역량을 통합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치력,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경제력, 통일이후 동북아 선진강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국방력, 주변정세에 표류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외교력, 민족을 융합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원대한 철의 실크로드 실현은 남북철도 구간의 불통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꿈으로 남아있다. 남북철도 연결이 한반도 평화통일로 이어진다는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을 믿고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이다.

 

*이 글은 2015년 11월 9일 유라시아 네트워크가 '대륙에서 길을 찾자'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북방아카데미의 첫번째 강의의 원고입니다.

 

정태익 한국외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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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전망] 8월위기와 향후 한반도 정세전망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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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11/07 16:25
  • 수정일
    2015/11/07 16:2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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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위원장 8월 위기시 전쟁까지도 염두
 
[분석과전망] 8월위기와 향후 한반도 정세전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1/07 [12: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5년 8.25남북고위급접촉 공동보도문 발표 직후 28일 북은 관련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개최했다고 보도하였다.     © 자주시보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위원장

 

한반도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관련 정부 부처 관리들에게 있어 정세를 조급하게 보거나 안일하게 보는 편향들이 없지 않다. 한반도 정세는 결국 북과의 의지의 대결, 힘의 대결을 본질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힘과 의지를 객관적으로 살펴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는 것이 정세분석가들의 본분이라고 본다.


최근 북의 의지 부분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북의 당창건70돌최근 북의 의지 부분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기념행사 당시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조국통일연구원 림용철 부원장이 진행했던 남북관계에 관한 정세해설 강연 영상을 민족TV에서 최근 인터넷에 소개하였다.


강연에서는 8월 의문의 휴전선 지뢰폭발사건은 북이 결코 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제삼아 대북비방방송을 재개하는 등 남측에서 심각하게 도발을 해왔기에 북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북측이 생각하는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 2015년 8월 2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열고 휴전선지뢰폭발사건으로 촉발된 전쟁위기에 대한 단호한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 자주시보


8월 위기 정국에 대한 북의 의지

 

강연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면전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암시도 내놓았다. 북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자 우리의 예비군격에 해당하는 노농적위대, 청년근위대 등에 규정된 무기와 탄약까지도 전국적으로 일제히 지급되었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라의 작은 것도 한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며 어떻게든지 전쟁을 막아내자며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외교관들을 총동원하여 국제사회 여론도 불러일으키고 미국과 국방부에서 함부로 오판할 수 없게 단호한 군사적 조치들을 취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쟁을 막는데서만 멈추지 않고 조성된 극단적인 정세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남북관계 개선의 전환적 국면까지 열어낼 결심으로 미국이 유엔정전위원회 차원의 대화를 제기했을 때 “미국은 끼어들지 말라, 이것 남과 북의 문제다.”라며 미국의 제안을 그대로 무시해버리고 48시간 최후통첩시간을 통해 남과 북의 대화의 물꼬를 터 결국 8.25남북공동보도문을 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림용철 부원장은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배경을 미국이 을지훈련을 위해 한국에 와 있는 조건이라 북이 절대로 전쟁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국방부의 오판이 대북심리전 방송까지 재개하는 무모한 단계까지 가게 했고 북이 준전시상태 초강경 대응으로 나오자 결국 진짜 전쟁이 터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남측정부를 압박하여 8.25합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미국은 남측이 남북관계 개선에까지 합의를 한 것에 대해서는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8.25합의가 나오자마자 게릴라식 작전으로 북의 지휘부를 타격하는 참수작전이요 뭐요 하며 심히 북을 자극하고 있으며 군사훈련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오로지 북측의 시각이기는 하다. 그래서 그의 입장과 향후 움직임을 전망하는데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특히 ‘눈에 띄지 않던 나라의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느껴졌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언은 전쟁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감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심리전 확성기 방송을 48시간 안에 중단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찔하다. 남북대화에 응하고 8.25합의를 이끌어낸 남측 정부의 판단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싶다.


림용철 부원장은 강연 말미에 가서 남북관계의 전망을 그리 밝게 보지 않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체질적 북에 대한 적대의식, 고질적인 외세의존 정책, 원래 의심성이 많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을 믿지 못하고 있는 점 등 때문에 8.25 이후 대북 적대정책이 계속 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였다.


또 북이 대화판을 깨지 못할 것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오판도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8.25를 통해 북의 기본목적이 대화에 있었구나하고 잘 못 생각하고 있다. 연초부터 우리 김정은 원수님은 남북정상회담도 못할 것 없다며 남북대화를 촉구하였으며 압박도 가했다가 어르고 달래는 등 실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남이 응하지 않자, 북이 정세를 극단적으로 몰아갔다가 타협하는 방법으로 남북대화의 길을 열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고 8.25를 분석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남을 국제적인 대북압박에서 떼어내서 그 압박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북이 남측과 대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나 보구나라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있다.
거기다가 북이 올해는 당창건 70돌로 경축스런 분위기에서 보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북이 당분간은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북에 대한 자극과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진단하면서 림용철 부원장은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 북의 조국통일연구원 림용철 부원장의 해외동포대상 강연 모습     © 자주시보

 


북의 전망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든지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계속되는 남측의 도발에도 참을 대로 참아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좀 더 참아보자는 것이다. 
앞으로도 북남관계를 우리민족끼리정신으로 자주적으로 개척하기 위해 주동적으로 더 노력해가겠는데 문제는 남쪽이다. 남쪽이 동족보다 외세의존에 계속 선다면 북남관계는 파국상태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에 대한 인권문제, 핵문제를 거론하면서 대북압박을 가한다면 결국 남북관계는 다시 파산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강연을 할 때는 한미정상회담 전이었다. 그의 우려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북의 인권문제 핵문제를 거론하여 이후 북의 강력한 발발을 샀다.
그럼에도 남북노동자 축구대회와 이산가족상봉행사는 약속한 대로 추진되었다. 아직은 북도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남측이 북을 자극한다면 북에서도 강경대응으로 나설 우려가 없지 않다.


림용철 부원장이 강연에서 언급했던 강경대응은 핵시험이었다. 특히 이는 이미 계획된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 남측과 미국에게 시비를 걸고 또 제재와 압박을 가해온다면 핵시험으로 응대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여 사실상 한반도는 다시 긴장의 골짜기로 굴러가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내년엔 총선이 있고 그 다음해엔 대선이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남북관계가 악화되어야 종북몰이 등으로 통해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천안함 사건 때처럼 가끔 그 역풍이 불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반도 남북위기는 보수세력 집권에 도움이 되었다.
하기에 총선과 대선을 계기로 한반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북은 누가 집권을 하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자신들의 계획이 있고 짜놓은 조국통일 시간표가 있는 것 같다. 그 계획대로 밀고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휴전선 지뢰폭발사건과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한다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점을 8.25국면 림용철 부원장 강연내용을 통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돌발상황만 없다면 북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북의 지방 곳곳까지 강성대국 이상사회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 지난 9월 중미정상회담 장면, 시진핑 주석은 태평양은 넒어서 중국이 미국과 함께 이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등 강경한 중국의 의지를 가감없이 피력하였다.     © 자주시보


한반도 문제의 바른 해법

 

김명철 소장이나 여러 정세분석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그것을 이루는 데까지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본격적이고 주동적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대미대결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북은 이미 세계적인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무기, 미국이 북과 대타협이건 전쟁이건 양단간에 하나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할 핵억제력 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아직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을 공개하여 미국의 봉쇄망을 깨뜨리고 세계와 북이 전면적으로 교류하는 시대를 만든다고 해도 북 전국 곳곳을 전 세계에 내놓고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미국의 패권이 무너져도 국제사회가 큰 혼란을 겪지 않게 할 세계적 차원의 준비의 시간도 아직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면 북은 북 주민들도 모르고 있다는 무진막강한 힘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그 자체로 미국의 패권이 무너질 것이며 그것을 막자면 미국은 북과 전쟁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북과 교류를 위해 줄을 서게 될 것이며 그 자체로 대북봉쇄는 풀리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이 있다고만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에서 늘 강조해온 무혈승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 전에 미국이 북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바로 전면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북이 늘 강조해왔던 내용이며 이번 8월 지뢰폭발 전쟁 위기상황에서도 확인되었던 부분이다.


결국 미국은 북과의 대화를 서두르는 것만이 가장 좋은 답이라고 본다. 조금이라도 빨리 북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만이 미국의 체면을 그래도 좀 살리면서 한반도 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미국의 앞날을 건설적으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방도도 찾게 될 것이다. 북과 전쟁을 하거나 북이 전면적인 공세를 펴는 과정에 굴복하여 대화마당에 나선다면 미국의 체면이 얼마나 처참하게 구겨질 것인가.


지금도 미국의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미국의 혈맹이라던 유럽도 미국 말을 잘 듣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내놓고 미국에게 덤비고 있다. 여기서 더 미국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것은 그 앞날이 끔찍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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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길] 세계 자연재난지역 아동들의 현실

아이는 내게 물 한 컵을 건넸다
[함께사는길] 세계 자연재난지역 아동들의 현실
 
 
 
방글라데시, 아이티,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그리고 필리핀의 공통점이 뭘까? 기후변화, 물 부족 혹은 재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범죄에서는 가해자(원인을 제공한 자)와 피해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막대한 소비와 탄소배출은 도시에서 이루어지지만 정작 자연과 격리되어 사는 도시의 사람들은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는 무감각하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고 전기나 자동차를 사용할 일도 별로 없을 만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그리고 재난 지역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여성이나 아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극심한 물 부족이나 지진 같은 재난 지역에서 물을 긷는 것은 여성이나 아이들 몫이다. 미래를 위해 학업에 투자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가벼운 질병에 걸리더라도 몇십 센트의 약을 구입하지 못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재난은 아이들의 교육, 보건 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빈곤의 나락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 에디오피아. ⓒ강제욱

 

▲ 에디오피아. ⓒ강제욱

 

▲ 방글라데시. ⓒ강제욱


에티오피아 같은 극심한 물 부족 국가의 아이들은 몇 시간을 걸어 물을 길어 오거나, 혹은 구걸이 고사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아이티 같은 대지진 피해지역의 조금 큰 아이들은 무너진 건물의 더미에서 전선을 주워 모아 전선 피복을 태워 얻은 구리를 고물상에 팔기도 한다. 

기온 상승으로 뎅기열이나 말라리아 같은 매개성 질병이 캄보디아, 필리핀 그리고 몽골에서 급격하게 많아지고 있다. 캄보디아의 시골에서는 모기장이 이 아이들의 목숨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물을 마시고 잠을 자는 아주 일상적인 순간도 전쟁터처럼 위험천만한 시간이다. 비위생적인 하천 근처에 주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슈퍼 태풍 욜란다가 지나간 필리핀 타클로반에서는 모기장도 사치다. 하천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악취가 진동한다. 창문도 벽도 태풍으로 잃었다. 대충 주어온 나뭇조각이나 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는 정도다. 

재난 경험이 없는 지역의 도시에서 살던 어른이라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이 열악한 환경에서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상황을 초월한다. 아이들은 꿈을 꾸기 때문이다. 폐허 위에서도 아이들은 생존을 배우고 이방인에게 물 한 컵을 건네는 여유가 있다. 아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빛이 나는 보석들이다. 그러기에 어른의 스승이다. 
 

▲ 캄보디아. ⓒ강제욱

 

▲ 아이티. ⓒ강제욱

 

▲ 아이티. ⓒ강제욱

 

▲ 아이티. ⓒ강제욱

 

▲ 필리핀. ⓒ강제욱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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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회담 예비접촉 3차례 제의...북, 사실상 거부


당국자, “남북관계개선 계기 이어가고 싶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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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6  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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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25합의 이후 정부가 당국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접촉을 세 차례 제의했으나 북측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6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30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북측에 예비접촉을 제의하는 전통문을 보내려고 했으나 북측은 ‘아직 받으라는 이야기가 없다’며 수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9월 21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당국회담 개최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0월 2일 예비접촉을 갖자는 제의를 했으며, 이에 대한 북측의 부정적 반응을 확인한 후 24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재차 예비접촉을 갖자는 촉구 전통문을 보냈으나 북측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8.25 공동보도문 1항에 합의된 당국회담의 개최를 위해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북측에 예비접촉을 제의했으나 북측은 첫 번째 제의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이후 제의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수령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지난 9월 21일 정부의 제의에 대해 당시 북측은 이틀 후인 9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남북고위당국자 접촉합의가 성실히 이행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예비접촉 제의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북측은 또한 “대북전단 살포, 북한인권법 제정 논의, 북한 도발설 확산 등과 관련해서 통일부 당국자들이 남북대결을 선동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며, “통일부는 공동보도문의 이행에 역행하는 불미스런 행위를 하지 말고 책임적으로 행동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정부는 9월 24일 판문점을 통해 8.25 남북고위당국자접촉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측이 심사숙고해서 예비접촉 제의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했으나 지금까지 북측의 답이 없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9월 23일 북측의 반응으로 봤을 때 10월 2일 예비접촉은 조금 어렵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어서 24일 다시 전통문을 보내 추후에라도 호응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며, 이때는 예비 접촉일을 2일로 명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9월 정부의 예비접촉 제의에 대한 북측의 거듭된 부정적 반응이 뒤늦게 알려진 것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와 계기를 유지하려는 정부 당국의 보도자제 요청을 통일부 기자단이 수용했다가 북측의 당 창건 70돌(10.10.) 및 10월 하순에 개최된 이산가족상봉행사가 모두 끝난 상황에서 보도자제가 의미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다른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잘 이어가는 차원에서 엠바고(보조자제)가 좀더 유지되기를 바란다”며, 당국회담 개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북측에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남북간 현안은 당국회담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며 “북측이 8.25 고위당국자 접촉시 합의사항에 대해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당국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제의를 수용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앞서 정부의 예비접촉 제의는 모두 통일부 장관 명의로 북측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앞으로 보냈으며, 북측은 지난 9월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명의로 통일부 앞으로 보내왔다.

9월 예비접촉 제의에는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을 대표로 총 3명의 대표가 나간다는 내용 외에 회담 의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는데, 당국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의 성격상 회담 의제 등은 다루지 않고 당국회담에 누가 나올 것인지, 일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실무적인 논의가 이뤄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당국회담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는 당국회담이 개최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며, “다만, 아직까지 남북 간에 합의가 되거나 진전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당국회담과 관련해 남북간에 서로 제안이 오고 간 내용을 묻는 질문이 이어지자 “‘지금 노력하고 있는 단계이다’라고만 말씀드리고 적절한 시간에 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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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보름 만에 10kg 빠져, 목숨 끊으려 했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89] 2년 9개월 만에 간첩혐의 벗은 유우성씨

15.11.07 11:00l최종 업데이트 15.11.07 11:0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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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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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으로 간첩 혐의를 받았던 유우성씨가 지난 10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0월 29일 대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고와 자신이 중국 국적을 가진 채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감추고 남한 정부의 정착지원금을 받은 혐의 등(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여만 원)에 대한 유씨의 상고 모두 기각했다.

유씨가 대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여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소감과 함께 국정원 수사관에게 체포된 2013년 1월 이후, 2년 9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들어보았다. 다음은 유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사과는커녕 강제추방을 검토한다고..."

- 지난달 29일 간첩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셨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없던 일을 있던 일처럼 만들어서 괴롭혔던 시간이 3년이잖아요. 너무 오래 걸려서 대법원 판결 순간에 옛날에 아팠던 일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요.

사실 대법원 판결이 나긴 했지만, 형사재판이 끝난 건 아닙니다.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조작을 밝혀낸 것에 대한 보복으로, 검찰이 2014년 5월 추가사건으로 또다시 기소해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형사재판이 안 끝나고 남아 있어서 마냥 기뻐할 수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본전'인 거잖아요. 1심과 2심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제 동생을 6개월 동안 불법으로 독방에 가두고 폭행과 고문을 한 부분도 대법원이 다 인정했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그동안 항소심을 하면서 간첩으로 조작되었던 분들을 만나봤어요. 저의 경우 짧은 시간에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졌잖아요. 그런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몇십 년씩 교도소에서 살고 나오고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잖아요.

그분들의 억울한 심정을 저에게 빗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간첩 조작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는 끊이지 않고 '이슈몰이'처럼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 정부가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이나 환경을 만들기 바라는 마음은 그분들과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더 이상은 재일동포 또는 탈북자들 등의 사회 약자를 상대로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가정보원의 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 등이 공개되면서 탈북자의 실상이 알려진 건 성과인 듯해요. 
"맞아요. 그전까진 국민이 합신센터에 대해 몰랐죠. 영장도 없이 사람을 구금하고 독방에 가두는 건 몰랐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합신센터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구금하고 간첩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낱낱이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 판결문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대법원에서 조작된 부분과 일련의 있었던 사건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 판결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매우 존경을 표합니다." 

- 판결 직후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시던데 혹시 검찰이나 국정원에서 의견이 나온 게 있나요? 
"전혀 사과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판결 당일 법무부가 강제추방을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간첩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밖에 못 봤는데, 내가 간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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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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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부터라서 2년 9개월 정도 걸렸어요. 

"저 혼자 큰 사건을 밝혀낼 수 있었던 건 아니고 3년 동안 무료로 변호한 민변의 천낙붕, 장경욱, 양승봉, 김용민, 김진형, 김유정 변호사님 덕분이에요. 이분들은 자기 시간을 쪼개가면서 3년 동안 무료로 저를 변호해 주셨어요. 증거 찾으러 중국도 다녀오시고... 그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이분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종교인들도 계셨고, 특히 많은 기자님들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준 덕분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돼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혔음에도 그 누구로부터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한테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보복 재기소 및 괴롭힘이었습니다. 2007~2010년 사이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리한 사건을 재기소했습니다. 3년 내내 형사 재판 때문에 아르바이트 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재기소 사건 1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았어요. 그리고 29일에 난 대법원 판결에서도 추징금 약 25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로서 현재 제게 남은 건 빚과 추가 보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전에 결혼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강제추방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일부 보수언론에서 들립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을 하기는커녕 얼마나 더 괴롭히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빨리 형사 재판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요. 
"제가 1심 때는 8개월 동안 구치소 독방에서 살았어요. 조사받는 과정이 너무 억울해서, 심장 쇼크로 쓰러져서 실려 나가기도 했어요. 죽을 고비도 많이 넘었지만, 변호사님들과 사회에 계신 종교인들이 면회를 많이 와주셨어요. 또 편지도 수백 통 받았고요.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와 동생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지금도 국정원 얘기만 들으면 너무 힘들어하세요. 아버지는 3년 내내 마음고생이 심하셔서 종양까지 생겼고, 얼마 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옛날보다 더 많이 늙으셨고... 너무 가슴 아픈 부분인데 이젠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인 것 같아요." 

- 2004년 탈북할 때는 이런 일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처음 체포될 때 기분이 어땠나요? 
"낮엔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었고 밤에는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공부해서 남북한 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갖고 사회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정원 직원이 저희집에 와서, 그 자리에서 특수간첩죄 혐의가 있다며 가택 수색을 하고 저를 체포해갔거든요. 

국정원에 조사받으러 들어갔을 때는 제가 변호사님들도 못 만났어요.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해도 국선 변호사들은 국정원이 무서워서 안 왔어요. 10일 동안 저 혼자 조사를 받았어요, 밤에 울며 잠도 못 자고... 그때 너무 아팠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 몸무게가 15일 만에 10kg 정도 빠졌어요. 

밥은 물론 물도 안 마셨어요. 입은 트고 눈은 충혈됐죠.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갔잖아요. 간첩이라는 건 드라마나 영화로밖에 못 봤는데 하루아침에 간첩이라고 몰아가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수십 번 했어요. 

목숨을 끊으면 편해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죽으면 몸은 편할 수 있는데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억울하게 간첩죄를 쓰고 죽은 사람으로만 기억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이 악물고 수사기관에서 버텼어요. 제가 검찰과 국정원 합쳐서 50일 동안 수사를 받았거든요. 동생과 대질시켜 달라는 제 요청은 하나도 안 들어주고...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간첩으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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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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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신분 포기하고 탈북,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아

- 탈북한다고 대한민국을 꼭 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에 온 걸 후회했을 법도 한데 어때요?
"제가 북한에서 의학 공부를 했어요.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며 의학을 더 많이 배우고자 한국을 오게 됐어요. 북한에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게 싫어서 한국까지 왔는데, 제가 이런 일을 당하면서 '한국의 인권'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여긴 언론의 자유가 있긴 한데 언론의 자유라는 게 왜곡돼 있어요. 검찰에서 뿌리는 내용이 진짜인 것처럼 보도가 될 때 너무 힘들어서, 과연 목숨 걸고 한국에 온 게 잘한 건가란 고민을 했어요. 

그러나 지금 후회하진 않아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저를 변호했던 김자연씨와 결혼도 하게 됐고, 한국엔 나쁜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고 정의로운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졌고 사회에서 당당히 살고 있어요." 

- 의학 공부 때문에 한국에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유학인데, 그러면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제가 북한에서 한글로 초, 중, 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합니다(웃음). 한국에 와서 의대를 못 간 것도 영어시험을 통과 못해서예요. 전 한국은 한글로 시험 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2007년 연세대 중문과에 입학해서 2011년에 졸업했고 탈북자 1호로 서울시 공무원이 됐죠. 그런데 '1호'가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사건에 휘말릴 줄은 몰랐죠." 

- 북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북한 사람들은 한국이 잘산다는 걸 TV나 라디오를 통해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을 동경하는 사람도 많아요. 북한 언론을 통해선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나가고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안 믿어요." 

- 탈북자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힘들 것 같은데. 
"한국에 사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북한에선 의학 공부를 해서 의사였지만 한국은 그런 부분을 인정 안 해줘서 막노동을 했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 학원에 다니면서 의대 준비를 했어요. 결국 의대를 못 갔지만, 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저같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덕에, 이런 엄청난 사건을 당하고서도 오늘 인터뷰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든 부분은 있지만, 좋은 분들이 계셔서 꿋꿋이 버티며 살고 있어요.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거나 정착금을 날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정착금을 날렸고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며 배우는 거 같아요." 

- 본의 아니게 유명인이 되셨는데. 
"제가 유명인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고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유명해지게 됐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재북화교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추방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4대째 북한에서 살았어요.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셨거든요. 

저희 조상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긴 했지만 한반도에 저희 조상님들 피가 묻혀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반도를 더 사랑하게 됐고 뼈를 묻으려고 한국까지 왔어요. 언론에선 여려 안 좋은 얘기를 하지만 저에겐 저를 지켜줄 좋은 분들과 가족이 있어요. 굳건하게 대한민국에서 좋은 일 하며 사는 게 꿈이죠."

- 만약 통일된다면 어딜 가장 가고 싶어요?
"고향이죠. 회령이에요. 고향엔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도 보고 싶고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향기도 느끼고 싶고, 한국의 선진 기술을 고향에 가서 나눠주고도 싶어요. 언젠가는 통일이 돼서 자동차로 고향을 방문할 날이 올 것으로 믿어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겪은 일처럼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려면 많은 분이 억울한 사람들에 대해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합니다. 한 명의 목소리는 호락호락하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면, 결코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제 사건을 응원해 주시고 관심을 두신 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좋은 일 하면서 살게요. 그리고 다 같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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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유씨 뒤의 사진은 14년 4월 무죄판결을 받기전 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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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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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통일뉴스> 창간 15돌 기념공연 열려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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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5  18: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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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뉴스>가 창간 15돌을 맞았다. 4일 오후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기념공연에 이계환 대표를 비롯해 전.현직 기자와 운영위원 등이 무대에 올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아직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멈추지 않고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흔들림 없이 통일정론의 길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의 산물인 <통일뉴스>가 남북화해의 소식을 전한 지 15년이 됐다. 그리고 통일정론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통일뉴스>가 창간 15돌을 맞아 4일 오후 6시30분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아직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기념공연을 마련했다.

   
▲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는 이날 "지금의 남북관계 개선이 계속 진행돼 통일뉴스가 창간 때 가졌던 꿈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며 "통일뉴스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기에 흔쾌히 그 길로 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류경완 통신원]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는 인사말에서 "잘된 일 뒤에는 백 명의 은인이 있다. 통일뉴스 15년사에는 100명, 아니 1000명, 아니 그 이상의 은인이 있다는 것"이라며 "통일뉴스는 6.15공동선언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뉴스를 창간하면서 그 모토로 '민족화해의 소식을 전하는 통일정론지'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2015년쯤에는 '민족통일의 소식'을 전할 것으로 염원하기도 했는데, 알다시피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거쳐 최근 남북 위기설까지 돌았다"며 "지금 통일뉴스는 민족통일의 소식은커녕, 민족화해의 소식도 아닌 민족대결의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15년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남북관계 개선이 계속 진행돼 통일뉴스가 창간 때 가졌던 꿈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며 "통일뉴스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기에 흔쾌히 그 길로 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축사에서 "통일뉴스가 사업성보다는 민족적 양심에 따라서 이 땅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공헌했다"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얼마나 고초가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묵묵히 언론으로 정도를 유지하며 15년을 버텨온 통일뉴스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축하했다.

그리고 "이 땅에 언론이 많다. 자본에 편승하고 시류에 편승한 매체들이 대부분인데 통일뉴스만은 통일정론으로서 매체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오늘까지 우리에게 봉사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통일운동 모든 영역에서 하나도 빠트리지않고 살려서 보도하고, 국민들께 전하려고, 통일운동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기억하고 간직해야한다"며 "그 길이 험하기도 하고 멀기도 한데 통일이 될 때까지 역할을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축사를 하고있다. [사진-류경완 통신원]

홍용표 통일부 장관, 홍익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한상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박창일 '평화3000' 운영위원장,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탤런트 권재희 씨 등은 영상으로 축하인사를 보냈다.

이날 공연에는 가수 황미숙의 '타박네', '임진강', 전경옥의 '울려내주소서', '라구요', '이 작은 가슴', 전명신의 '독도아리랑', '배띄워라',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철망앞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날이 오면' 등이 무대에 올랐다.

또한,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가 <통일뉴스> 15돌 기념 감사패를 받았고, 통일뉴스에 만평을 싣고 있는 이진석 작가, 지철 후원회원에게도 감사패가 전달됐다.

이날 행사에는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조순덕 민주화실천가수운동협의회(민가협) 의장,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조용준 '민족일보 기념사업회' 이사장,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장,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활웅 <통일뉴스> 상임고문,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등이 축전을 보내왔고,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종흥 금강산기업인협회 회장 등이 화환을 보내왔다.

(수정, 19:41)

   
▲ 가수 황미숙 씨가 '타박네', '임진강' 등을 불렀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울려내주소서', '라구요' 등을 부르고 있는 가수 전경옥과 기타리스트 곽수환.[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국악가수 전명신 씨가 '배띄워라'를 불렀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평화의나무 합창단 공연.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날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이진석 작가, 지철 후원회원 등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사진-류경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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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법통’… 박정희가 5차 개헌 때 삭제했다

[국정화 불복종 확산]제헌헌법에 명시 ‘임시정부 법통’… 박정희가 5차 개헌 때 삭제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입력 : 2015-11-06 06:00:01수정 : 2015-11-06 08:26:48
 
ㆍ25년간 사라졌다 1987년 복원
ㆍ새 교과서로 다시 훼손 우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법통 계승이 1962년 5차 개헌부터 헌법 전문에서 25년간 사라졌다 1987년 9차 개헌에서 복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국정화한 역사교과서의 새 집필기준에 ‘1948년 건국’ 개념을 넣으려는 출발점이 오래전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셈이다.

임시정부 법통은 광복 후 처음 제정된 1947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전문에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하여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법통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 전문은 1960년 11월 개정된 4차 개헌 헌법까지 변동 없이 이어져왔다.

임시정부 법통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헌법 전문에서 처음 지워졌다. 박정희 의장이 이끈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주도해 1962년 12월 개정한 5차 개헌 헌법 전문에는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문장 대신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로 바뀌었다. 임시정부 법통은 그 후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해 만든 6차 개헌(1969년), 7차 유신 개헌(1972년), 전두환 정권 출범 후 탄생시킨 8차 개헌(1980년)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헌법 전문에서 사라진 임시정부 법통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현행 9차 개헌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로 환생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5일 “과거 박정희 정권이 헌법 전문에서 임시정부 법통을 지운 것처럼 이제는 역사교과서에서 임시정부 법통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며 “새로 나올 국정교과서에 1948년 건국론이 반영되면 이승만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던 친일 세력이 ‘건국 유공자’ ‘근대화 유공자’로 둔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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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부풀린 집값 거품, 곧 터진다

 
[주간 프레시안 뷰] 임박한 위기
 
 
 
"서프라이즈?"

러시아를 방문한 최경환 부총리가 3분기 경제 성장률 1.2%가 "서프라이즈하다"고 말했답니다. 지난 2분기의 성장률이 0.3%에 비하면 네 배나 증가한 수치니까요. 한 발 더 나가서, "추경과 정부 소비 진작책 등의 효과가 '상당히' 반영된 것"이라고 은근히 자화자찬까지 했습니다.

곧 총선에 나설 정치인의 자기 광고를 탓할 수야 없겠지요. 언론들 역시 메르스 이후 민간 소비가 살아나면서 경제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평했고 진보 언론들은 빚에 의한 소비 증가이니 자랑거리가 못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관련 기사 : 3분기 1.2% 성장이 서프라이즈 아닌 '빚 성장'인 걸 모르나)

정말 그런지 아래 표를 보실까요?

매 분기 보여드리는 표니 프레시안 조합원도 이젠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이 표 안의 숫자는 직전 분기 대비 성장률입니다. 즉, 3분기(7, 8, 9월) 성장률이란 2분기(4, 5, 6월)에 비해서 얼마나 GDP(국내총생산)가 증가했는지 보여주는 수치지요. 괄호 안의 수치는 전년 동기에 비한 성장률, 즉 맨 오른쪽 사각형 괄호 안의 수치는 2014년 3분기에 비교한 성장률(연률)입니다.
 

▲ [표 1]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 한국은행 '3/4분기 국민 총생산(속보)' 1쪽. ⓒ한국은행


3/4분기의 성장률은 지난 2/4분기에 비해선 1.2%이고,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2.6%(괄호 안의 수치)입니다. 2분기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꽤 높은 수치가 나온 거지 1년 전에 비교하면 고만고만한 성장입니다(1분기에는 2.5%, 2분기에는 2.2%니까요). 4분기에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금년의 연간 성장률도 2.5% 부근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다음으로 모든 언론이 받아 쓴 것처럼 소비가 성장을 주도했는지 보겠습니다.

분기별로 보면 –0.2%에서 1.1%로 증가했으니 과연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메르스로 인해, 2분기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소비가 회복된 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작년 3분기에 비해서는 2.0% 증가한 데 불과합니다. 전체 성장률 2.6%에도 미치지 못한 거니까 소비는 오히려 성장률을 깎아 먹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럼 어느 분야의 지출이 증가한 걸까요? [표 1]을 보면 건설 투자와 설비 투자가 각각 4.5%(전년 동기비 5.2%)와 2.0%(6.8%)로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건설은 최 부총리가 자랑한 정책 덕에 늘어났을 테고, 설비 투자는 한국은행의 설명으론 기계류 중심으로 증가했습니다. 만일 건설과 설비 투자의 증가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경제 성장률은 2.5%를 달성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소비 절벽"과 가계 부채 대책

이렇듯 한국은행의 GDP 통계를 근거로 소비가 성장을 주도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지금 보통 사람들의 소비는 가계 부채에 짓눌려 있습니다. 한 민간 금융 기관에선 "소비 절벽"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관련 기사 : 내년도 '소비 절벽' 오나…관건은 경제 심리 회복)

 

▲ [그림 1] 소비자 심리 지수 추이. ⓒ한국은행


[그림 1]에서 보듯이 소비자 심리 지수는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주거비가 상승하는 동시에 가계 부채가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앞으로 소비가 절벽에 부딪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더구나 집값과 전셋값을 올려줬다는 건 소득이 하층에서 상층으로 이전됐다는 걸 의미합니다. 부자들의 소비 성향이 더 낮으니까 앞으로 소비 증가율은 더 떨어질 겁니다. 즉, 정부의 공휴일 지정이나 개별 소비세 인하와 같은 정책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소비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2일 정부는 '가계 부채 종합 관리 방안'을 발표했죠. 핵심은 주택 가격이나 소득 대비 대출 금액이 큰 경우 원칙적으로 분할 상환을 적용한다는 겁니다.

10월 28일 은행연합회와 시중 은행들은 "내년부터 LTV가 60%를 넘는 신규 대출은 (…) 애초 검토했던 60% 초과분뿐 아니라, 전체 원금을 나눠서 갚도록 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기사 : 담보 대출 집값 60% 넘으면 대출 전액 분할 상환 검토)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2억1000만 원을 대출받은 경우(즉, LTV가 70%인 거죠), 7월 구상이라면 60% 초과분인 3000만 원(2억1000만 원-1억8000만 원(3억 원☓60%))만 대출 약정 기간에 분할 상환하는 거지만 이제 전체 대출 2억1000만 원에 대해서 매년 원리금을 나눠 갚아야 하는 겁니다.

즉, 빚을 낸 다음 해부터 원금도 일부 갚도록 해서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은행도 가계 빚을 빨리 돌려받으려는 겁니다. 금융 기관의 문제는 그 동안 남아도는 돈을 빌려 줄 곳이 없다는 거였는데 이젠 더 이상 위험한 대출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부실 채권이 되지 않도록 빨리 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금융 위기의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좀비 기업"과 구조 조정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면서 정부가 기업 구조 조정에 나섰다는 얘기는 지난 번에 이미 전해 드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정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고 그 방법도 채권단에 맡기는 게 아니라 구조 조정 회사인 유암코에 맡기는 것으로 변경됐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얘깁니다. (☞관련 기사 : 유암코, 11월부터 본격 부실 기업 구조 조정 착수)

금융위원회는 22일, '기업 구조 조정 전문 회사 설립 운영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시중 은행의 부실 채권 관리 전문 회사 유암코(연합자산관리)의 재원을 늘려, 11월부터 최대 28조 원 규모의 기업 구조 조정에 착수하겠다는 겁니다.

유암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농협중앙회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 6개 은행이 출자해 설립한 민간 중심의 부실 채권 전문 회사로 자산 유동화와 기업 구조 조정 업무 등을 맡아왔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외부 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 기업(영업 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이자 보상 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 비중은 2009년 12.8%에서 지난해 15.2%(3295개)로 증가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대 중국 수출이 급감하면 한계 기업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 금융 시장은 빡빡해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가 계속 증가할 수는 없겠죠. 즉, 이번 분기의 성장을 주도한 설비 투자는 앞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부양책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본 가계 부채 대책은 그 자체로 주택 수요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돈 빌려 집을 사도 집값이 오르기 전에 원금까지 갚아 나가야 하니까요.

몇 번 말씀드린 대로 건설 경기를 일으키기 위해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동시에 집값을 올리려면 가계가 빚을 늘려서 집을 사 줘야 합니다. 즉, 현재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 부채 증가는 한 몸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런 부동산 부양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주택 공급이 이미 과잉 상태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15일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주택 인·허가 물량은 총 45만2185가구로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2%나 급증했습니다. 건설사들이 하반기 들어 아파트 분양 등을 더욱 늘리고 있어 올 한 해 전체 인·허가 물량이 70만 가구에 육박하거나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2013년 장기 주택 종합 계획에서 추산한 연평균 주택 수요는 39만 가구인 데, 작년에 50만 가구가 이미 공급됐고 금년에 70만 가구가 더 증가한다면 이제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기사 : 주택 인·허가 폭증, 공급 과잉 우려)

이런 상황에서 건설 투자가 더 증가할 거라고 믿을 수는 없겠죠. 아마 정부는 공공 쪽의 건설을 늘리려고 하겠지만 정부 빚 역시 GDP의 40%를 넘어섰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기업 부채가 문제였지만, 가계와 정부는 여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기업, 가계, 정부가 동시에 문제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도화선 가운데 하나만 불이 붙어도 경제위기는 현실이 되고 말 겁니다. 물론 정부는 다음 대선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폭발을 막으려고 할 겁니다. 정부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죠.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 국정 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그 효심 하나는 칭찬 받을 만합니다.

그래선지 역사 해석을 획일화하겠다는 발상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경제 위기와 결합되면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요?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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