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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청년배당, 걱정 마. 성남이 한다"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③ 이재명 성남시장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제가 20주년을 맞는다. 지난 95년 6월 27일 첫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들이 선출됐다. 이들 단체장들의 임기가 시작된 1995년 7월 1일을 온전한 지방자치의 출발일로 삼는다면 올해가 꼭 20주년째가 된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로 중앙정부의 리더십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지역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모습을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보여주면서 지방자치의 존재와 의미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우리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만나 자치와 분권의 현실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세번째 주인공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재명 시장의 별명은 '사이다 시장'이다. 일부 네티즌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소통도 소통이지만, '그 말투나 논리가 시원하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찾아내 긁어준다'는 이유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도 이 시장은 현 정국을 명쾌하게, 또 경쾌하게 짚어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풀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이름 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그것을 넘어선 것 같다. 인터넷에는 경계가 없다. 심지어 여론조사에 대권 주자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되는 성남의 시장이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이 못해도, 성남은 합니다' 민선 5기를 거쳐, 6기로 넘어오며 내건 이 시장의 선거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입담만 주목받는 게 아니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교복, 무상공공산후조리원, 성남시(공공)의료원까지, 시행하는 정책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켜왔다. 무상이라는 말의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공짜'가 아니라고 정리한다. 국민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먹는 것인데 왜 공짜인가. 그는 "성남으로 이사가자"라는 말이 요새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시장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배당 도입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국민(지자체나 정부)이 소유한 공공재에서 생긴 이익은 국민에게 배당돼야 한다는, 기본소득(혹은 시민배당금)의 개념을 성남시에서 최초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어디에선가 "공산주의자가 나라를 말아먹으려 한다"는 비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황당한 계획이 아니다. 이 시장은 "제가 하면 실현되는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 시장은 재정 상황 등과 관련된 일각의 우려에 대해 "걱정 말라. 그렇게 많이 주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성남시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지원,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화폐이므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청년들이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며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주머니를 채워주자, 또 청년들이 책을 사볼 수 있고, 적은 돈을 가지고 무전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해주자는 취지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 '기초노령연금'과 닮은 꼴이다. 노령연금은 일정 나이가 되면 그냥 주는 것이다. 청년배당도 마찬가지다. 노령연금이 고생한 노인들을 위한 보상이라면, 청년배당은 고생할 청년들에 대한 투자라는 게 이 시장의 논리다. 
 
이 시장과 인터뷰는 7월 1일 성남시청 2층 시장실에서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프레시안(손문상)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프레시안 : 총선 출마 안하신다는 입장 발표를 하셨더라. 
 
이재명 : 누가 자꾸 총선 나간다, 보궐 선거 나간다고 하길래, 꿈 깨라고 했다. 자꾸 뭘(성남시장) 해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웃음)
 
프레시안 : 7월 1일, 지방자치 20년이다. 소회를 말한다면?
 
이재명 : 대한민국 정권 교체(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인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의 기반이 된 게 지방자치다. 지방자치가 없었으면 정권 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초등학교다.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국민들이 정치를 가깝게 느끼고, 선택에 따라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한번 체득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 대한민국 권력도 바꿀 수 있다. 바꾸면 혜택이 있다' 이런 게 커졌던 것 같다. 그것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식 투쟁을 해서 이 제도를 관철시킨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이번 메르스 정국을 통해 지방정부, 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시민들이 많이 느꼈을 것 같다. 반대로, 국가, 정부는 도대체 나를 위해 뭘 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생겼을 것 같다. 
 
이재명 : 전염병을 막는 방역 활동이 실제 정부에서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즉 시, 군, 구에 집행 구조가 다 몰려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민행정이 그렇다. 이번 (메르스 방역) 과정에서 정부가 과연 존재하느냐, 그리고 중앙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우리나라 전체를 통할하는 시스템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을 (시민들이) 갖게 됐지 않나. 위가 없고, 아래쪽만 살아있으니, 아래쪽이 사람들의 눈에 띤 것 같다. 머리가 전혀 기능을 안 하니까 손은 손대로, 팔은 팔대로, 독자적인 시스템을 가동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것(지방 정부)마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방자치제도가 없었으면 중앙 정부의 부속품으로, (지방 정부 역시) 완전히 '올스톱' 상태로 됐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끔찍하다. 
 
프레시안 : '비밀주의'의 중앙정부에 맞서, 지방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향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보여줬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든 모양새로 보였는데, 지나고보니 다들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내고 있다. <프레시안>도 정부 방침에 반대, 병원명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재명 : 삼성의료원(삼성서울병원)을 박원순 시장이 (처음에) D병원이라고 하던데, (웃음) 우리도 삼성병원을 공개할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미 언론에서 다 보도하고 있더라. 정부보다도 언론이 먼저 국민을 위해 행동을 한 것이다. 언론도 위험한 결정이었지 않았겠나. 영업권 침해라고 할 수도 있고, 삼성이라니 제재당하거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미 (병원명을) 쓰고 있더라. 제가 사실 조금 부끄러웠는데, 민간 언론보다도 우리가 용기가 적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과감하게 D 병원이라고 하지 않고 삼성의료원을 지칭했다. 
 
프레시안 :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재명 :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게 아니다. 중앙정부 관료들이 국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것은 법률상으로도 공개하게 돼 있다. 감염병 발생 상황 예방 및 대응 체계를 보면, 국민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해서 알려줄 의무가 있다. 법에 있는 의무다. 국가는 곧 국민이다. (정부의 대응은) 그 국가에 대해 공무원이 지고 있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은 국민들 뜻에 따라서 자기들(중앙 정부)도 공개를 하기로 했지 않나. 국가의 의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는 외침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방을 한다. 그것과 비슷한 게 전염병, 질병, 재난재해 사고다. 이 4가지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게 국가다. (우리나라가) 국방은 열심히 한다. 국방에는 열심히 돈을 쓴다. 그런데 방역에 대해서는 돈을 안 쓴다. 방역은 민간 병원에 맡겨놓고 있다. 그리고 삼성병원을 야단친다. 야단칠 일인가? 국민을 위험 속에 몰아넣어서 돈을 벌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난 것 아닌가. 왜 그럴까? 방역의 부실함도 그런 현상의 일부가 아닐까. 
 
프레시안 : 당시 메르스 확산 상황에 대한 판단을 했을 때, <프레시안>도 병원명 등 정부가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시민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재명 : 이미 저보다 (언론과 시민들이) 더 빨리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질문이 들어오더라. 어느 초등학교에 환자가 생겼다고 하는데 맞느냐, 하고. 나중에 보니까 맞더라. 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가 양성으로 판명이 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저보다 정보가 더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숨긴다? 숨기면 의혹만 증폭된다. 잘못된 정보로 불안과 공포만 심화된다. 제가 일일이 답변하기 귀찮아서 확 알려드렸다.(웃음) 결국은 그게 혼란을 줄이는 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났다. 전쟁이 났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강 철교 끊고 본인은 도망가 버렸다. 방송을 통해 '걱정 말라, 서울은 사수한다'고 했다. 의료 기득권 살자고 국민들에게 정보를 숨기고, 그래서 병원을 통해 병이 퍼지는 모습을 보니까, 이승만과 한강 철교가 생각났다. 
 

▲ 리더십도 있지만, 더 근본은 국민에 대한 애정, 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다. 공직자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뭘 해먹으려고 공직자를 하느냐,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공직자의 길을 가느냐, 딱 그 차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사실 이번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다른 대응, 거기의 핵심은 리더십이었던 것 같다.  
 
이재명 : 리더십도 있지만, 더 근본은 국민에 대한 애정, 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다. 공직자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뭘 해먹으려고 공직자를 하느냐,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공직자의 길을 가느냐, 딱 그 차이다. 생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국민이 얼마나 불안할까, 국민이 얼마나 위험할까, 이런 생각을 했으면 정부가 과연 그랬을까. 기득권 눈치를 보느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것 아닌가. 
 
프레시안 : <프레시안> 편집국에 전화가 왔다. 독자가 '메르스 의심증세가 있다'고 해서 보건소에 알아보니 '알려진 메르스 증상과 달라서 검사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본인이 알아본 결과 성남에서는 본인 부담을 하면 보건소에서 해준다고 하더라. 그래서 성남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재명 : 그게 요새 유행이다. 성남으로 이사가자.(웃음) 지금도 묘한 것이 있다. 성남에 양성 환자가 4명이 나왔다. 그런데 이 4명은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즉 격리 대상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정부의 통제선 밖에 있는 사람들이 환자가 된 것이다. 황당했다.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얘기다. 운수에 따라 검사 받게 된다는 거다. '혹시 병원 간 일 있어요?' 물어서 '삼성의료원에 갔다' 그러면 검사를 해준다는 식이다. (일반 사람들은) 검사를 안 해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나. 혹시 이 사람이 지역감염이 됐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르스 발병) 병원에 가거나 접촉한 사람만 검사했기 때문이다. 지역감염은 확인이 불가능하게 해 놓고, (정부는 지역 감염은) 없다고 우기는 상황이다. 위험한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따로 민간 검사 기관을 확보해서 검사를 했다. 102건 검사했는데, 100% 음성이어서 다행이었다. 한 건이라도 양성이 나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프레시안 : '접촉력'이 없는 사람은 정부에서 검사를 안해줬던 것 같다. 
 
이재명 : 그래서 우리가 했다. 원래 성남시는 정부와 같이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만약 성남시가 같이 검사하면 자기들은 안한다'는 취지로 버티더라. 그래서 (정부와 함께 하는 것은) 할 수 없이 포기했다. 왜 못하게 할까? 자신들이 내린 결론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게 정보 독점이다. (국가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점검 해봐야 한다. 시스템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심각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정부는 없었다. 
 
청년배당·기본소득? 성남은 한다. 그러면 실현된다
 

▲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 아닌가. 그것을 위해 시민들이 세금을 낸다. 세금은 최대한 아껴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4대강 사업 하고, 자원 외교 한다고 세금 가져다 버리고, 방산 비리 저질러서 세금 빼먹고…. 나쁜 짓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최근에 성남시가 중앙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게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문제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과 편차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고, 성남시는 계속 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떤 계기로 산후조리원을 무상으로 하겠다고 했고, 왜 이게 시급한 정책 과제가 됐나? 
 
이재명 :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 아닌가. 그것을 위해 시민들이 세금을 낸다. 세금은 최대한 아껴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4대강 사업 하고, 자원 외교 한다고 세금 가져다 버리고, 방산 비리 저질러서 세금 빼먹고. 나쁜 짓이다. 저는 최대한 비용을 아껴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측면을 본다. 하나 더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책임만 강조되고 공공성은 약화되고 있다. 무한경쟁, 각자도생, 승자독식, 등 야만사회로 가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환경 속에서 공정한 기회를 누리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발전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희망이 생긴다. 그 조건을 만드는 게 정부다. 정부가 정해준 세액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아껴서 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해주겠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것을 하려고 지방자치를 하는 것인데, (공공산후조리원을) 하지 말라고 하면 황당한 것이다. 이것은 지방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정부가 내놓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재명 : 법에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없다. 협의하라고 돼 있다. 특정 계층만 주고 특정 계층은 빠지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다른 자치단체와 균형이 안 맞다? 다른 데 못하니까, 너희도 하지마? 이런 태도는 지방자치를 부인하는 것이다. 차이가 생기고 불균형이 생긴다니.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아니, 선별복지 하라면서.(웃음) 똑같이 복지하지 말라면서 보편복지를 안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 아닌가? 거기에 덧붙여서, 이번에 거짓말을 했다. 선착순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소득층, 다자녀 가구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 하위 10~15%만 이용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정부 방침에 맞춰서 하는 것인데, (논리가 부족하니까) 성남시가 선착순으로 운영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성남시가 아무리 그래도 수백만원이 드는 복지 정책을 하는데 '줄서!' 해서 선착순으로 하겠나? 그래서 제가 복지부장관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성남시가 그렇게 무식한 곳이 아니라고 했다.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못 하는데, 우리는 준비를 다 해 놓았다. 전임 시장 빚 갚고도 예산을 확보해 놓았다. 새로 빚을 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중앙정부에 손 벌리지도 않는다. (재정이 올바로 쓰여서) 배 아파 죽으려고 하는 사람 많이 있다. '야, 저거 내가 해먹을 수 있는데'라면서.(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예고한 성남시 복지 정책 중 하나가, 기본소득과 청년배당 이야기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사 가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실현 가능성이 있나?
 
이재명 : 제가 하면 실현되는 거죠. (웃음) 지금 2차전이 준비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의 재산으로부터 생기는 이익은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그게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기초노령연금이다. 65세 넘었다는 이유로 돈을 주고 있다. 그것도 기초소득의 일종이다. 부분적 기초소득이다. 그런데 우리는 청년에게 해주자는 것이다. 노인만 되고 청년은 왜 안 되나. 어린 게 죄는 아니지 않나. 노인은 고생을 해왔다. 그래서 일종의 후배당 개념이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선투자하자는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도 못하고 자기 수련도 못한다. 청년들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그러니 거기에 선투자를 하자. 
 
프레시안 : 벌써부터 비판을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이재명 : 일각에서는 '그것 주면 일을 안 할 것 아니냐'고 하는데, 걱정 하지 마시라. 그렇게 많이 주지 않는다.(웃음) 20살부터 29살까지 잡는다고 하면 10만 명이다. 10만 원씩만 줘도, 1년에 120만 원, 1200억 원 정도 된다. 그렇게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현실적인 것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들이 자기 역량을 기르고, 찌들지 않게 책도 사보고, 무전여행도 가고, 커피 마시면서 토론도 하고, 이 정도만 조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우리 사회 구성원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겠나. 청년들이 중동을 가겠다고 하는데, '시장님 때문에 안 갑니다' 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보자는 게 취지다. 재정 상황도 따져봐야 한다. '청년 선투자'라는 정책 목적만 실현토록 하면 아까우니까, 지역 경제 활성화와 같이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청년배당금을) 지역 화폐로 주는 것이다. 지금 성남사랑상품권이 있다. 그런 것으로 (청년들에게) 주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몇 가지 정책을 믹스해서 시행할 것이다. 저는 말 하면 한다. 그냥 넘어가는 것은 없다. 
 
프레시안 : 최근에 성남의료원도 주목받는데, 시장님이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성남의료원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재명 : 제가 두 번째 전과가 생긴 계기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 발의 조례가 만들어지고 난 후 첫 사례로 성남의료원을 발의했다. 1년간 모든 노력을 다 해서 그렇게 발의했는데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부결로) 날치기하고 도망가더라. 그 때 방청객들이 항의했고, 저도 소리를 좀 질렀다. 그러니까 특수공무집행방해, 즉 시의회를 점거했다고 하더라. 사실 내가 거기에서 울었었다. 정말 서럽더라. 시민이 원하고, 시민이 시민의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도 권력이 없으니, 1년짜리 프로젝트가 시의원들이 방망이 소리에 없어져버리더라.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하자고 했다. 그게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다. 2004년에 그렇게 결심하고 2006년에 성남시장 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졌다. 2010년에 당선되서, 10년만인 2013년에 성남시의료원이 착공됐다. 2017년에 완공이 된다. 의료 공공성이라는 것 때문에 제 정치인생이 시작됐으니까, 저는 각별히 그 부분에 관심이 있다.  
 
프레시안 : 메르스 사태 겪으면서 공공의료원이 중요하게 부각된 것 같다. 성남의료원의 음압병상이 32개로 설계돼 있더라. 민간병원이 하지 않는 것들을 커버하는 부분 쪽으로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전체 음압병상 숫자(99개)에 비하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재명 : 그게 (언론의) 눈에 띤 것 같다. 공공의료 지출을 옛날에는 적자라고 해서 소홀히 했다. 공공의료라고 하면 당연히 재정 투자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돈을 남길 수 있는 분야는 삼성이 하겠죠. 그런데 삼성이 안하지 않나. 돈이 안 남으니까. 그러면 당연히 재정 투자가 돼야 한다. 이것을 적자라고 비난하니까 공공의료 시스템이 (메르스 사태에서) 이렇게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재정 투자다. 손해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지나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 즉 적자냐, 투자냐, 하는 논쟁에서 '투자다'라고 말하는 입장이 우위를 갖게 됐다. 이를테면 국방은 적자다. (굳이 따지면) 37조 적자 아닌가. 그런데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1년에 20억~30억 원, 많게는 50억 원 적자가 난다고 비판한다. 공공의료에 1년에 100억 씩 투자하면 안 되나?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앞으로는 그런 공격이 좀 약해질 것 같다. 
 
프레시안 :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을 적자라고 해서 없앤 일이 있다. 
 
이재명 : 제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거가대교를 없애라. 적자 나니까. (웃음) 공무원 문화시설, 체육시설, 운동장, 다 적자다. 그것 왜 하나. (메르스 사태와 성남의료원 논쟁이) 이게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에 대한, 또 공공투자에 대한 시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적자를 잘 내는 게 살림을 잘하는 것이다. 재정 수지 균형, 즉 수입이 들어오면, 딱 그만큼 쓰는 게 제일 잘하는 것이다. 문화센터에 공연하면서 180억 원 없애는 것, 어디 체육시설 한 개에 130억 원 써서 없애는 것은 괜찮은데, 50만 명이 이용하는 공공의료에 50억 원 쓰는 것은 죽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훨씬 중요하고 효율적인 일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공공성 강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적자라고 하면 안 된다. 안 그러면 국방부도 적자라고 해라.(웃음) 
 
야당 혁신, 국민은 답을 알고 있다. 실천이 문제다.
 

▲ 저는 이 정권이 보수정권이라고 생각 안 한다. 이게 무슨 보수인가. 무능한 집단이라고 본다. 보수는 이렇지 않다.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균형, 정의, 형평, 평화, 이게 다 보수의 가치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이번 메르스 사태 겪으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잠깐 이야기했는데, 공공 시스템에 무딘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더 대응을 못했다고 볼 수도 있을까? 
 
이재명 : 저는 이 정권이 보수정권이라고 생각 안 한다. 이게 무슨 보수인가, 보수냐, 진보냐 따질 수준에 미치지 못한, 무능한 집단이라고 본다. 보수는 이렇지 않다.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균형, 정의, 형평, 평화, 이게 다 보수의 가치다. 그게 아니고 만날 해먹기나 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왕 놀이'나 하고 있다. 정부는 제일 중요한 게 시스템이다. 지휘 체계다. 이 지휘 체계가 없으면 아무리 유능한 집단이라도 무너진다. 만화에 머리를 손으로 들고 다니는 캐릭터가 있다. 머리가 몸을 통제해야 하는데,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이재명 : 계속 그럴 것이다. 저는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행한 예측을 가지고 있다. 더 크게, 더 위험하게. 아마 안 바뀔 것이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어떤 부분, 특히 정치적인 부분은 결단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거부권 정국에서 그런 게 또 나타났다.
 
이재명 : 그런 것은 잘 한다. 그런데 (국정에는) 관심이 없다. 대통령 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장관이 할 일이고 신하들이 할 일이지, 하는 식이다. 야단을 치더라도 자기들끼리 숨어서 야단을 쳐야지,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권한은 나에게 있다? 문제다. 만날 유체이탈 화법이 나오는 이유다. 왜냐 하면 인식 자체가 그렇다. 다른 사람은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를 못한다. (대통령) 본인도 다른 사람이 왜 이해를 못하는지 이해를 못한다.(웃음) 원래 책임과 권한은 공존하는 것이다. 공무원 야단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병원장은 왜 야단치나. 돈벌이 하려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왜 야단치나? 그것은 국민을 야단친 것이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대통령은) 이해를 못하겠죠. (웃음) 
 
프레시안 : 국민들이 보기에는 병원장이 고개를 숙인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또 언론도 최근 문화일보의 '오보'를 지적했는데, 병원과 언론 등이 사회적 공기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여러 가지 의문들을 가졌을 것 같다. 
 
이재명 : 다 책임이 있는데, 책임의 종류가 다르다. 삼성의료원은 국민에 대한 기업 윤리 차원에서의 책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그래도 (책임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세지 않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지만, 그것도 기업 윤리에 가까운 부분이다. 그런데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법률상 책임이다. 윤리와 다른 영역의 법적 책임이다. 국민들이 월급을 준다. 그런데 엉터리로 했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병원이 잘 못했다는 비판과 차원이 다르다. 
 
프레시안 : 메르스 정국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활약이 돋보인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역할을 잘 했나 하는 것을 봤을 때. 국민들은 미흡하게 느끼는 것 같다. 야당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 공감한다. 야당이 정책적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대안 제시 능력의 부족이다. 성남시도 사실 처음 겪는 일이니까, 뭔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공무원들이 가진 한계가 있다. 변화를 안 주려고 한다. 보건소 하나를 비워놓으라고 했는데, 의사가 없다는 거다. '민간 병원에서 데려다 써라. 돈 줘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안 온다고 하더라. 그레서 제가 나중에 성질을 확 내면서 '안 오면 그 병원에 다 보낸다고 해라. 거부하면 다 단속해서 행정처분 한다고 하라'고 했다. 비상 사태라 강제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니까 움직이더라. 정부 기관 책임자가 성남에 와서 '성남 잘 하고 있네. 왜 이리 잘하느냐' 하면서 베껴갔다. 어느 부처의 모 차관이 성남시를 보더니, '중앙 정부가 이렇게 따라해야 하겠네' 하고 갔다더라.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이고, 이거 매뉴얼에 다 있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야당은) 그냥 '(정부가) 잘 해라' 하고 있으니까. 이것은 애들 보고 공부 잘해라 하는 것과 똑같다. 구체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국민과 소통을 늘려가야 한다. 물론 (야당이) 안을 많이 내도 (언론은) 안 써주지 않나? <프레시안>은 쓰겠지만,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안 쓴다. 그러면 전달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할 일이 아니다. 소통을 직접 해야 한다. 국민과 접촉을 늘려야 한다. 제가 잘 한다고? 아니다. 소통을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뭘 하는 것처럼 인정해주는 것이다. 다른 시군에서 하는 것을 베껴서 하는데, 저만 하는 것처럼 돼 있는 것도 많다. 홍보가 안 되면, 저는 눈 터지게 댓글 써주고 한다. 접촉과 소통을 늘리고 구체성이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게 차곡차곡 쌓이면 국민 지지율도 올라가지 않겠나. 야당이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잘 하려고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이 혁신위를 꾸려서 혁신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이재명 : 그것은 조금 다른 측면의 문제다. 정치 집단은 일단 소통이 잘 돼야 신뢰를 얻는다. 그 다음에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내용이 없으면 욕먹는다. 그 다음에 근본적으로 당의 체질을 바꾸는 방식으로 혁신을 하는 것이다. 사실 혁신안은 수없이 많다. 답은 국민이 다 알고 있다. 문제는 문제는 행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용기와 결단의 문제다. 
 

▲ 야당이 정책적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대안 제시 능력의 부족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홍준표와 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 단, 정 반대 의미로!
 
프레시안 : 많은 분들이 능력을 가진 성남 시장이라면 조금 더 큰 정치를 계획했으면 하는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총선은 안 나가신다고 하는데?
 
이재명 : 그걸 왜 나가나.(웃음)
 
프레시안 : 그러면 뭘 할 것인가?
 
이재명 : 저는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물론 굳이 놓고 고를 수 있다고 한다면 더 역할이 큰 것을 고르는 게 맞다. 그런데 역할이라는 것은 제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면 길은 생긴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시장하려고 산 것도 아니고, 변호사 되려고 대학 간 것도 아니다. 사실 대학교도 가려고 해서 간 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던 길인데, 이 자리까지 왔다. 좀 더 많은 영향력, 많은 권한을 가지면 좋죠. 그러나 그것조차도 내 뜻대로는 안된다. 그래서 제 기본 작전이 있다. 머리를 잡는 것은 어렵다. 꼬리를 잡는 것은 쉽다. 그러면 꼬리를 잠아서 몸통을 흔들어보자. 그런데 요즘은 몸통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도 같다.(웃음) 
 
프레시안 : 더 큰 꼬리를 잡으면 어떨까? 
 
이재명 : 더 큰 꼬리를 잡으려고 쫒아다니면 지금 잡은 꼬리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웃음) 이런 얘기가 있죠. 멍멍이가 먹이를 입에 물고 가다가 물 속에 있는 자신을 봤다. 그것까지 먹으려고 입을 벌리다가 물고 있는 것도 떨어뜨렸다. 내가 성남시장 역할을 하는데, '시장 말고 뭘 해야지' 마음속으로 확정하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을 거기에 맞추게 된다. 그러면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 (목표를 위해 시장직을) 이용하려고 하게 된다. 그러면 속된 말로 스텝이 꼬인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놓친다. 
 
프레시안 : 넘어지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이재명 : 확실하게 길이 생길 때까지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 그 길을 막을 필요도 없다. 김어준 씨가 얼마 전에 '대통령하고 시장, 둘 중에 뭐 할 건데'라고 해서 '그러면 대통령 해야지' 했다. 단순한 질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뜻대로 거기에 맞추는 (오히려) 그 길이 봉쇄될 수가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제가 이렇게 복잡하게 얘기해야 해요.(웃음) 
 
프레시안 : 단순하게 말하면 그게 제목으로 나간다. 
 
이재명 : 그렇게 나는 절대 안하죠. (웃음) 아이가 몇 살이에요? 성남으로 빨리 이사 오세요. 성남시의 직간접적인 '시민의 권리'를 더해보자. 아이 낳으면 얼마 준다. 차액보육료 지원한다. 도서관 엄청나게 많다. 시내에 어린이집 많고, 학교 가면 밥 주고, 장난감 공짜로 빌려주고, 체험학습도 다 지원해준다. 그런 데가 어디 있나.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하면서 식사하는 것도 지원해준다.(웃음) 
 
프레시안 : 시장이 바뀌면 어떻게 되나? 
 
이재명 : 그것은 운명이다. 일단 혜택을 주면 뺏기는 어렵다. 홍준표 지사 정도의 '용감함'이 없으면 못하는 거다.(웃음) 주민들을 괴롭히는 게 자기에게 표가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황당한 거다. 홍 지사와 나는 비슷한 스타일이다. 단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웃음) 그냥 인간적으로만 보면, 홍 지사는 남을 갑자기 배신하거나 하는 분은 아니다. 담백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더라. 
 

▲ 홍 지사와 나는 비슷한 스타일이다. 단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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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페이스북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北 일상


[친절한 통일씨] '증오'대신 '관심'...발전적 활용 모색 필요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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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6  00:09:12
페이스북 트위터
   
▲ 신은미 씨 페이스북 화면. [캡처사진 - 신은미 페이스북]

지난 1월 정부 당국에 의해 강제출국 조치를 당했던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씨가 최근 평양에서 올리는 페이스북의 내용에 신경이 거슬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신은미 씨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 강연을 마치고 지금 북한에 와 있다며 “틈나는 대로 북녘 동포들의 모습을 전하겠습니다"라고 보낸 후 진짜로 이날 오후 장충성당 미사, 옥류관 쟁반국수 점심을 시작으로 실시간 북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지난 3~4일에는 평양-원산간 이동 모습이 보이더니 5일에는 평양 칠골교회에서 진행된 주일 예배 모습이 올라왔다.

‘증오심’으로 가득한 댓글도 댓글이지만 신 씨의 평양행 자체를 문제 삼고 댓글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증오를 증폭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방북 중인 신은미 씨가 18시간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2015년 7월 5일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교회' 예배 모습. [캡쳐사진 - 신은미 페이스북]
‘국가보안법’도 있고 그에 앞서 모든 다른 생각을 때려잡을 듯한 ‘증오심’이 엄존한 가운데 페이스북으로 북녘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게 놀랍다.

 

거꾸로 그렇게 북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과 또 다른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는 국가보안법 및 ‘증오심’과의 상관관계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놀랍다.

나아가 이런 기막힌 일들이 광복70년, 분단70년을 맞는 나라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나는 이번 방북 체류 중에 평양에서 서울로 틈틈이 카톡을 보냈다.”

지난해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후 지난 2월 <통일뉴스>를 통해 방북기를 연재한 재미 최재영 목사는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보내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평양에서 보낸 카톡을 서울에서 받은 사람들은 답장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을 언급했다고 하면서 최 목사는 “21세기 첨단 사이버 세상에 살면서도 70년을 남과 북으로 나뉜 우리 민족은 언제까지 구석기시대처럼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니 카톡은 자유로울 망정 우리는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더라도 카톡은 날아다닐 것이라고 해야 할까?

고려호텔 화재 사진 등 평양발 ‘카톡’으로 전송

   
▲ 지난달 12일 외신을 통해 공개된 고려호텔 화재 장면. 카톡을 통해 유통된 것으로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 몇몇 언론사에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난달 16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 경기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전' 북한 대 우즈베키스탄 간의 예선 경기장면. 경기장 주변에 북측 브랜드 간판이 노출된 장면이 보도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달 12일 외신은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머무는 고려호텔 꼭대기에 검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사진과 함께 “화재는 11일 오후 5시30분께 호텔 36층 복도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또 지난달 21일에는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경기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전’ 북한 대 우즈베키스탄 간의 예선 경기(16일 진행) 장면 사진과 함께 ‘련못무역회사’, ‘맑은 아침’ 등 북한의 무역회사와 연합기업소의 광고판이 10여개나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고려호텔 화재 장면이나 북측 브랜드 간판이 노출된 월드컵 예선 경기 사진은 모두 카톡을 통해 유통된 것이며, 하루 또는 며칠이 지난 후 몇몇 언론사에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카톡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북한 내에 있는 외국인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접했을 때 휴대폰 카톡을 하면 남측으로도 들어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관련 사실을 주의 깊게 파악해 온 한 관계자는 최근 비공개 세미나에서 “북한에 머물고 있는 한국계 외국인 교수나 외교관들이 인터넷을 할 때 (카톡을)보내며, 물론 그것도 다 검열이 되고 있지만 자연경관 등을 올리는 것은 (북측 당국에서)눈감아 주는 상황”이라며, “우리(한국) 신문에 나오는 사진들이 북측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민들이 보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톡 서비스를 운영하는 다음카카오 측이나 정보 당국에서는 남북사이에 무선인터넷 등을 이용한 SNS통신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북에서 해외로 나가는 데이터 통신의 전체 용량만 체크하는 것 같다고 파악하고 있다.

北, 중국도 허용않는 트위터 등 허용

신은미 씨의 경우,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SIM 카드를 샀더니 인터넷, 국제전화 모두 가능하네요”라고 말한 바 있다.

   
▲ 북한주민들과 관리들이 스마트 폰으로 노동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2014년 9월).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앞서 최재영 목사의 경험은 더욱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최 목사는 지난해 9월말d서 10월초까지 자신이 평양에서 겪은 바를 전하면서 “내가 이번에 사용한 북한의 인터넷 속도는 미국이나 한국과 전혀 차이가 없이 매우 우수한 성능이었으며, 특히 평양시내에서의 무선 와이파이(WiFi)는 매우 강력하게 터졌다”고 말했다.

나아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도중에 버퍼링이나 끊김 현상도 전혀 없었으며, 차안이나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메신저와 국제전화를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내가 거주하는 미국 보다 오히려 더 잘 터졌다”고 덧붙였다.

최 목사에 따르면, 평양에서는 아직 외국인에게만 허용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평양 통신국의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외부세계와 자유롭게 통신할 수 있으며 아직 중국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트위터와 SNS 서비스를 북한에서는 무한 제공하고 있다.

북한에서 WCDMA(광대역 부호분할다중 접속) 휴대폰은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고려링크의 SIM카드를 꽂으면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의 국제전화가 가능하다.

요금은 가입비 204달러(심카드 구입비 84달러, 인터넷 가입비 120달러)와 매월 사용료 22달러(심카드 사용료 8달러, 인터넷 사용료 14달러)이며, 인터넷 데이터 요금은 50MB를 기본 제공하고 1MB 초과할 때마다 0.1유로를 월 기본 사용료와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요금 충전은 북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직불카드인 ‘나래카드’로 해야 하며, 요금 충전이 돼 있지 않으면 전화나 인터넷 연결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 고려링크사의 모바일 전용 심카드의 뒷면. [자료사진 - 통일뉴스]

평소에는 호텔 객실에 연결된 유선 인터넷을 노트북 PC와 연결해서 30분당 얼마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해 마식령스키장을 여행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조명지 중남부 회장은 방북기에서 “마식령호텔에는 와이파이(WiFi)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서 인터넷과 국제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휴대폰 이용자 300만명, 인터넷 이용은 제한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이뤄진 일이다.

지난 2013년 1월 7일 전까지만해도 평양공항의 수화물 검색대를 통과하는 외국인과 해외동포들은 갖고 있던 스마트폰이나 전화기를 무조건 공항요원들에게 반납해야 했다. 반납한 기기는 밀봉 처리된 후 특정 장소에 보관되었다가 출국하는 날 항공 티켓과 함께 되돌려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더욱 눈에 띄는 변화는 평양을 비롯한 북 전역의 휴대폰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현재 북측에서 적용하고 있는 3세대(3G) 무선이동통신 서비스는 지난 2008년 12월 ‘고려링크’라는 이름으로 조선체신회사와 이집트 오라스콤이 공동으로 시작한 것으로 2009년 평양 전역에 기지국이 세워져 시내 통신망 구축이 완성, 서비스 개시 1년 4개월만인 2010년 4월에는 이용자가 12만명을 넘었다.

그해 말까지 평양-향산,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비롯해 평양을 기점으로 한 주요 도로와 철도구간, 각 도 소재지는 물론 시·군소재지의 통신망을 정비, 60만 명에 육박할 만큼 이용자를 단기간에 확대했다.

   
▲ 보통강호텔 국기게양대 아래에 자리 잡은 통신기지국 안테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15년 현재 북의 휴대폰 이용자는 약 300만 명에 달하며, 3G망을 통해 서비스할 수 있는 음성통화와 SMS(Short Mail Service, 단문자서비스) 뿐만 아니라 화상통화(TV전화), 음악배신(스트리밍 서비스) 등 대용량 고속통신을 확대하고 있다.

평양 거리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며,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면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이미 북에서도 운전 중 휴대폰 사용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또 아직 북측 주민들이 국제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는 없으며, SNS 등을 통해 국제 인터넷 망과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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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으로 지뢰 제거했더니 불법이랍니다

 

DMZ 일원 실질적인 법규가 없다

15.07.05 19:18l최종 업데이트 15.07.05 19:18l

 

 

지난 6월 초의 일이다. 늦은 오후, 파주시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녹색연합에는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문의전화가 온다. 본인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보를 해 오시는 분들이다. 

연락을 하신 분은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이하 민통선)에 출입하며 콩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여느 전화와 마찬가지로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 수화기 건너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농토에서 지뢰를 발견해서 지뢰제거를 자비로 했는데, 국방부와 관할 부대에서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불법을 저질렀다며 엄포를 논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발견했을 때는 관할부대에 지뢰제거를 요청했으나 부대 여건상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서야 민간지뢰제거업자를 통해 자비를 들여 제거를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200여 발의 지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관할부대에 수거라도 요청을 했지만 불법을 저질렀다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 며칠 동안 DMZ 일원의 지뢰 지대 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1968년부터 민통선에는 민간인들의 정착이 시작되었고 부분적인 출입을 통해 영농이 가능하게 되었다. 민통선 정착 1세대들은 "전쟁과 같은 개척을 통해 땅은 옥토로 변해갔다"라며 한 잡지사와 한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회상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민통선 주민들의 어려움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며칠 후 파주시 장단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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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대교 통일대교의 끝자락이다. 저 너머 관문을 지나면 민간인통제구역이다. 파주시 장단면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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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제거가 군인의 임무 아닙니까?"

자유로를 쉴 새 없이 달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통일대교 끝자락까지 왔다. 민통선 출입절차를 마치고 차량내비게이션에는 표시되지 않는 도로를 20여 분 남짓 지나 한적한 농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느 농촌 농지들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곳곳에는 얇은 철조망과 함께 역삼각형의 붉은 안내판에 '지뢰, MINE'라고 적혀있다.  

그곳에서 제보전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본인을 예비역 중령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 분은 누구보다 지뢰와 군 시설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과 동시에 본인의 답답함을 연신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우리와 동행한 군 관계자들에게도 뼈있는 일침을 놓는 걸 잊지 않으셨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행동해야 할 것 아닙니까!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또 제거하는 것도 군인의 임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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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지대표시 제보농민의 농지 바로 옆에 위치한 지뢰지대 표식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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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유지 VS 군사시설 

제보를 한 농민의 입장과 이 지역을 관할하는 군 당국의 입장은 엇갈렸다. 문제의 논점은 이러했다. 

- 제보농민의 입장
"민통선 이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엄연히 개인의 사유지이다. 설사 그 안에서 미확인지뢰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군에서 제거를 해주어야 한다. 관할사단과 국방부에 지뢰제거를 수차례 요청했고, 해당 지자체와 지적공사에 행정조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험을 무릎 쓰고 스스로 지뢰제거를 한 것이다. 지뢰제거를 해야 해당 농지에 대한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군사시설을 자꾸 운운하는데 그렇다면 사유지가 안에 있으니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군 당국의 입장
"해당 농민이 문제를 제기한 농지는 최초 민원이 접수된 2010년에 미확인지뢰지대로 확인되었다. 해당 지역의 미확인지뢰지대는 군사시설로 분류되고, 민간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출입금지를 권고했었다. 미확인지뢰지대는 군 작전상 보호되어야 하고 군인들만이 공식제거장비를 통해 제거할 수 있다. 민간업자에 의해서 군의 통제 없이 지뢰를 제거한 것은 군사시설을 훼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24조 1항에 의거하여 군사시설을 손상시킨 자는 3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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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 = 지뢰밭? 제보농민이 지뢰를 제거한 밭이다. 96년부터 제보농민은 지뢰의 존재를 모른 채 15년 이상 콩농사를 지어왔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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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지뢰지대 = 군사시설?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명백히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있었다. 이 지역이 미확인지뢰지대는 확실한데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미확인 지뢰지대를 군사시설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맞다, 아니다" 서로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 판단근거를 확실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뢰를 두고 유관법률을 적용함에 있어 분명한 공백이 있었고, 입법상의 미비함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인 것이다.

하지만 군은 판단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을 두고 명확한 유권해석 없이 자의적인 해석만을 해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의 법리해석과 군교본 상의 정의를 두고 불법을 운운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견해도 없었고, 명확한 판례도 없었다. 

'해당 미확인지뢰지대는 군 작전상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현재 관할 사단은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당시에는 작전성이 소멸된 지역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할사단 내부에서도 지뢰지대를 명확한 현황파악 없이 관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또한 군에서 설정한 지뢰지대 안에는 실제로 지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고, 지뢰지대로 규정하지 않은 이 같은 곳에 지뢰가 더 많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동행한 민간지뢰제거업자의 주장이었다. 실질적인 조사 작업 없이 문서상으로 인수인계만 60여 년 동안 해오다 보니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군당국은 해당 지역을 지목상으로 '임(임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등기부등본상에는 '전(밭)'으로 분류하고 있다. 민통선 안은 군 전체가 관할하는 지역이 아니다. 행정부가 관할하는 곳이기도 하고 명백히 민간인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뢰지대에 대한 국방부와 행정부 간에 유기적인 관리 가이드라인도 없을뿐더러, 가장 기본적인 문서에서조차 손발이 맞지 않아 보인다. 

"제거를 하기에는 군의 능력이 부족하다"라면서 군이 보낸 공문은 모든 사안을 종식시킨다. 시간과 예산의 문제이다. 광활한 지역을 모두 처리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예산도 많이 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뢰를 제거하는 데 약 400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합참의 지뢰제거예산 상에는 평당 20만 원이 드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민간지뢰제거업자들은 평당 3만5천 원의 공임비를 받고 있다. 제거 시간도 현격히 차이난다.

군의 장비로는 하루에 10m 정도를 탐지(제거) 할 수 있지만 민간의 기계장비로는 하루에 200평을 평균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업자의 주장이다. 물론 편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현격한 편차이다. 비용과 시간을 어려움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군 당국에서 가용한 지뢰제거기술과 기준을 모두 적용하였는지 또는 상식적인 비용산출이 되었는지 의문이 드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군 당국과 정부의 의지문제가 이 사안에서는 더 두드러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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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와 도로, 그리고 지뢰지대 지뢰지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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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시민단체에까지 연락을 해서 이 난리 피는 줄 아느냐?" 

1시간 여의 논쟁 끝에 제보 농민이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왜 시민단체에까지 연락을 해서 이 난리를 피우는 줄 아느냐? 여기 주위에 사람들! 서부전선 전체에서 나처럼 미확인지뢰지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렇게 어렵게 농사짓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민간인들은 지뢰가 있다고 신고 안 합니다. 그냥 묻어 버려요. 신고가 들어가는 순간, 경계병 2명 데리고 와서 테이프치고 아무 것도 못 하게 해요. 농사 못 짓게 하는 거예요. 지뢰제거를 돕지는 못할망정, 막는 것만이라도 하지 말아주세요."

오늘과 같은 일은 흔치 않은 사례다. 해당 민원인이 예비역 육군공병출신이어서 군 관련 지식이 있고 또한 의지를 가지고 대응을 해왔기에 적어도 관할 부대 측과 논쟁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민통선 내에서 경작하는 주민들은 지뢰와 엮이면 쉬쉬하는 것이 보통이다. 군대에 밉보일까 벙어리 냉가슴 앓는 주민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실제로 제보농민의 밭 건너에서 지난달에도 폭풍지뢰(M14 대인지뢰)가 터졌으나 신고가 된 건 없었다. 

지뢰사고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 보상 및 배상에 대한 절차를 몰라서(128명) ▲ 군부대에 밉게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까봐(33명) ▲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각서 때문(11명)이라는 내용이 발표된 바도 있다(평화나눔회 2011년 조사, 228명 대상). 심지어 지뢰사고 피해를 당해도 이 정도인데 이외의 일들은 오죽할까. 6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국방부의 근거 없는 불도저식 대응에 주민들은 벙어리로 살아온 것이다.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부, DMZ 일원 교통정리부터 서둘러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뢰는 군인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는 없다. 국방부의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군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 민간제거업자에게 용역을 맡기고 대대적으로 지뢰를 제거한 사례는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의선 개발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최근에는 DMZ생태평화공원을 만들겠다며 대규모 지뢰제거용역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부의 의지와 의도가 어디에 쏠려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55마일, 248km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2km씩 한계선을 설정한 지역이 DMZ이다. DMZ 외곽의 민간인통제구역을 포함해 DMZ 일원이라고 부른다. 철책선을 따라 이어진 DMZ 일원은 60여 년의 분단역사가 만들어 놓은 지구상 유례없이 특수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 백두대간, 연안·해양과 함께 보전해야 할 3대 생태축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정부는 겉으로 평화적인 생태계 보전이라 말하고 그 안에는 다른 속셈을 늘 갖고 있은 듯하다. 생태계 보전이라는 구호만 흩날리고 있고 생태평화적인 가치를 빙자한 대형개발사업들만이 DMZ 일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정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부작용들은 정부의 뒷전에서 계속 쌓여가고만 있다. 제보농민이 겪고 있는 군사보호구역과 민간이용지역의 충돌문제가 대표적인 정부의 관심 밖 사안이다.

DMZ 일원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입장과 실질적인 법규의 부재로 인해 국방부는 자의적으로 기존 법규들을 해석하고 있다. 근거 없이 주민들의 사유지에서 엄포를 놓고있는 것이다. 호랑이 없으니 여우가 왕 노릇 하는 꼴이다. 생태계 보전의 가치, 대북평화적인 가치, 주민들의 삶이 모두 고려되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입장과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DMZ생태계 보전적 가치는 정부가 이용할 할 잿밥이 아니다. 오롯이 그 생태적 가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DMZ 일원 주민들의 삶 또한 국방부가 좌지우지 할 사안이 아니다. 정전 후, 60여 년 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되어 온 것이 없다. 정부는 무엇이 먼저인지 교통정리부터 서둘러야 한다. 지뢰지대의 등기부등본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군부대의 문서부터 제대로 파악하길 바란다. 

메르스가 온 나라를 들쑤셨다. 정부가 국민들을 셀프방역으로 내몰았는데 셀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뢰 제거도 셀프시대인가?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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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7.4공동성명 이행 미군 철수집회

"자주없이 통일없다, 미국 탄저균 들고 떠나라"
 
시민단체, 7.4공동성명 이행 미군 철수집회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04 [21: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코리아연대가 주최한 7.4공동성명 이행 촉구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을 퇴진 시키고 미국을 몰아내야 7.4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 평화 . 민족대단결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확인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7.4남북공동성명 발표 43돐을 맞아 박근혜 정부에게 7.4공동성명 이행을 촉구하고 미국은 더 이상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고 탄저균을 갖고 떠라고 요구했다.

 

코리아 연대가 4일 오후 4시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주최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실현 박근혜반통일정권퇴진 촉구집회에는 민가협 어머니들과 양심수 후원회 기독교계 목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 되었다.

 

범민련 남측위원회 이천재 고문은 "7.4 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원칙으로 된 가장 정당했던 통일의 이정표가 되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외세의 개입없이 자주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평화적 방법으로, 민족의 일부가 아닌 8천만 모든 겨레가 손잡고 나아가는 민족대단결 정신을 존중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위한 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조국통일 3대헌장과 남북불가침협정, 6.15. 10.4 남북정상은 우리민족에게 가장 합리적인 통일 방안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이를 이행하야한다고 강조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두 번째 연설자로 나 선 문대골 목사는 "함석헌 선생은 통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라고 장준하 선생에게 말했다."면서 "그러나 장준하 선생은 모든 통일은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통일의 중요성을 상기했다.

 

문대골 목사는 "7.4 공동성명은 크게 3가지를 말하고 있다"며 "첫째는 외세 개입없이 우리 스스로가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연습을 계속하고 있고, 우리민족을 향해 탄저균과 독성이 10만배나 강한 보톨리늄을 남쪽 5군데에서 시험하고 있다. 이는 평화통일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우리는 줄기차게 평화를 주구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사상, 정견과 신앙을 초월한 민족대단결 정신에 의한 통일이다. 남과북 8천만 겨레가 대동단결하여 통일을 이루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 우리사회 연구소 권오창 이사장은 7.4공동선언 이행으로 조국의 자주 평화통일을 이룩하자고 호소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우리가 분단 된 이후 단선단정 반대 투쟁에 이어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우리민족의 통일운동 시작이었다"며 입을 연 뒤 "결정적으로 통일운동을 촉진한 것은 7.4 남북 공동성명이었다. 7.4 공동성명은 남북불가침 선언과 6.15남북공동선언, 그리고 10.4 선언으로 맥을 이어왔다."고 7.4 공동성명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자주를 빼 놓고 통일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전쟁을 겪은 것도 우리민족의 싸움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라며 "어느쪽이든 흡수통일이나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려 한다면 우리 모두는 발 벗고 막아 나서야 한다."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역설했다.

 

권 명예회장은 "7.4 공동성명은 또 사상과 이념, 체제를 초월해야 한다. 분단 70년 세월을 지내 온 남과북은 하나의 체제로 통일되기는 어렵다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 져야 한다. 흡수통일은 전쟁을 전제로 한것이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민족대단결의 중요성을 거듭 피력했다.

 

그는 "우리민족의 통일 희망은 7.4 공동성명.  6.15선언, 10.4선언에 있다"며 "정부 당국은 이미 남북 정상들이 합의하고 선포한 합리적인 통일 방안들을 이행하고 우라모두는 이 기치를 높이들고 조국통일을 위해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 코리아 연대 김경구. 이미숙 회원이 탄저균 갖고 미국은 떠나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미국대산관 진격 투쟁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 됐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우리사회 연구소 권오창 이사장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구호로 발언을 시작했다.

 

권오창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불법으로 당선 되고 나서 민주주의는 짓 밟히고 독일에 가서 드레스덴 선언을 하고 나서는 자주통일에 엄중한 난관이 조성 되었다."고 비난했다.
권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통합진보당 성원들을 구속하고 미국에서 탄저균을 들여 오더니 북인권사무소를 서울에 설치했다. 통일대박을 말하면서 통일인사들을 마구잡아들이고 5.24 조치를 존치시키고 있다. 5.24조치와 드레스덴 선언이 같은지 다른 것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대답해야 한다. 대답 여하에 따라 통일이 대박인지 쪽박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박근혜를 퇴진 시키는일이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7.4 공동성명을 이행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이번 8.15민족공동행사를 보장하느냐 마느냐에 있다며 민족공동행사 실현을 위해 투쟁해 나가자고 결의했다.

▲ 문대골 목사가 대사관 진격 투쟁을 막는 경찰들에게 우리국민 다죽이려는 미국을 경찰이 옹호하느냐며 강력항의해 나섰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한편 이날 오후 3시40분경에는‘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가 ‘탄저균 가지고 미국은 떠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친 채 전단을 뿌리며 광화문 미국 대사관 정문으로 진격 투쟁을 벌였다.

 

이들이 미국 대사관 정문에 도착하자 경찰이 막아서며 대치가 시작되었다. 경찰과 대치 끝에 이 단체 소속회원 이미숙씨(39.여)씨와 김경구(38)씨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돼 관악경찰서로 연행됐다.

 

이 광경을 목격한 기독교평화연구소상임고문 문대골목사는 경찰이 "박근혜를 위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야 한다. 국민 다 죽이려는 탄저균 들여오는데 경찰이 국민을 위해야지, 미군 위하는 거냐"며 경찰에 강력 항의해 나섰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미국 대사관 앞을 떠나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지나 통일부 앞까지 행진을 마친 후 자진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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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력욕 꺾은 뒤 총선, 진보는 왜 참패했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06> 조봉암과 진보당, 열네 번째 마당
김덕련 전 기자2015.07.04 07:21:2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 번째 이야기 주제는 조봉암과 진보당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42535.16쿠데타 

[이야기 마당 5462] 제3공화국 

프레시안 : 조봉암이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승만 정권은 무너진다. 4월혁명 시기에 조봉암이 살아 있고 진보당이 건재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4월혁명 시기에 나타난 여러 운동은 조봉암과 진보당이 추구했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꿈과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부분을 하나하나 짚었으면 한다.


서중석 : 조봉암은 1959년 7월 31일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아홉 달 후에 4월혁명이 일어나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이 물러난다. 일반적으로 사형수의 경우 바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보통 1년에서 3년 정도는 놔두지 않나. 9개월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더라면 조봉암이 4월혁명 시기에, 그리고 이승만 하야 이후에 얼마나 중요한 활동을 했겠나. 그러나 조봉암은 죽었다. 조봉암이 죽은 상태에서 진보 세력이 과연 얼마만큼 일을 잘해나갔는가, 조봉암의 평화 통일론이라든가 피해 대중을 위한 정치의 본뜻을 얼마만큼 잘 살려갔는가 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4월혁명 시기에 엄청난 변화가 이뤄지고 새로운 분위기가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혁신계가 거기에 부응할 만한 활동을 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 논쟁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쨌건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면서, 1958년 2.4파동 때 문제가 됐던 그 국가보안법이 1960년 5월 30일에 개정되고 6월 15일에는 내각 책임제로 개헌한다. 내각 책임제로 이제 총리가 행정을 맡는다는 것 못지않게 이 개헌에서 중요했던 건 법관 선출제를 도입하고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새롭게 헌법 기관으로 하는 것 같은 다른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법관 선출제에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인단에서 뽑게 돼 있었다. 실제로 1961년 5.16쿠데타가 나기 직전에 그 선거인단을 구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었다. 법관은 대법관 회의에서 결의하는 것에 따라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었다.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법원을 독립시키는 헌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를 상설 기구로 만들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헌법 기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언론, 출판, 집회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자율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

4월혁명 후 총선에서 혁신계가 참패한 이유

프레시안 : 이승만이 국민들에게 쫓겨난 후 석 달여가 지난 1960년 7월 29일 총선이 실시된다. 4월혁명을 계기로 진보 세력은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고, 때로는 후보 등록조차 어려웠던 그 이전 선거들에 비하면 여러모로 나은 조건에서 선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혁신계는 이 선거에 어떻게 대응했나.

서중석 : 7.29총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양원제 선거였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 민의원과 참의원을 동시에 선거하도록 했다. 이 선거에서 처음에는 '혁신계가 30석 정도 확보할 것'이라고 신문에 보도되고 그랬다. 그렇지만 조금 지나니까 '이 선거에서 혁신계는 별 볼 일 없고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할 것'이라고 계속 보도되는 걸 볼 수 있다.

당시 혁신계는 몇 개로 난립해 있었다. 제일 큰 건 사회대중당이었다. '사대당'이라고 불렸는데 서상일, 최근우, 별 성(星) 자 쓰는 김성숙, 그리고 김달호와 윤길중 같은 진보당계가 다 여기 들어왔다. 최근우는 예전에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여운형 계통이다. 그다음에 장건상을 대표로 한 혁신동지총연맹, 전진한과 이룰 성(成) 자 김성숙이 중심이 된 한국사회당이 있었고 고정훈은 구국청년당을 만들었다. 이렇게 혁신계가 갈라졌다는 점도 있었지만, 사회대중당 내에서도 서상일계하고 진보당계는 원수 사이였다. 아주 사이가 나빠서 상대방을 서로 떨어뜨리려고까지 했다. 진보당 사건 때 서상일이 아주 나쁘게 증언했기 때문인데, 그런 것이 4월혁명 후 활동에도 작용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는 민의원이건 참의원이건 민주당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조직도 잘돼 있었고 자금도 풍부했지만 '자유당 때 너무 당하고 불쌍하지 않았느냐', 이런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다수가 됐다. 그렇지만 사실은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는 정당을 같이할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의 반반으로 쪼개진 정당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진보 세력은 '정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선거 결과가 아주 나빴다. 233명을 뽑은 민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4명, 한국사회당 1명밖에 당선되지 못했다. 참의원은 58명을 뽑았는데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혁신동지총연맹에서 각각 겨우 1명씩 됐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 당선자는 민의원 175명, 참의원 31명에 이르렀다. '편집자')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때는 민의원과 참의원을 다 합쳐도 그만큼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 당선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4월혁명기에 혁신계가 이렇게 적게 당선됐어도 영향력은 사실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컸다.

프레시안 : 혁신계가 참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이 압승한 이유 중 하나로 '이승만 정권 때 많이 당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 당한 것으로 치면 혁신계가 훨씬 심하지 않았나.

서중석 : 왜 이렇게까지 혁신계가 무력했느냐. 우선 혁신계에서 정책으로 내세운 것을 민주당이 같이 내세운 게 많았다. 복지 정책 같은 걸 민주당이 막 내세우고 그랬다. 그래서 혁신계에서 내건 것하고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했다. 또 혁신계에서 통일 문제에 대해 약간 주장하자, 예전에 자유당이 했던 수법 그대로 민주당이 혁신계를 용공 세력으로 몰아친 것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통일 문제와 관련해 혁신계에서 그렇게 강하게 주장한 것도 아닌데, 민주당은 서상일이나 장건상의 주장에 대해 그런 식으로 공격했다.

무엇보다도 혁신계는 감옥소에 많이 드나들어서 이미 무력한 존재가 돼 있었다. 혁신계 인사들 중에서 나이 먹은 할아버지들은 수염이 허옇고 그랬는데, 지방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영향력도 별로 없었다. 말하자면 혁신계의 대다수는 지명도도 별로 높지 못했다. 그리고 조직력, 자금 이런 데서는 워낙 떨어졌다.

사실 4월혁명 공간으로 새로운 사회가 열리고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건 지식인, 학생 같은 세력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농민들을 포함해 다수의 일반 서민들에겐 1950년대에 반공주의가 오히려 내면화·체질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조봉암과 진보당, 진보 세력이 이승만 정권 때 당했던 것, 그에 더해 한국전쟁 시기에 주민 집단 학살이 그토록 심했던 것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속에서 반공주의가 내면화·체질화되고 있었던 것이 7.29총선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윤길중이 강원도 원성군(오늘날 원주)에서, 서상일이 대구에서 당선은 됐지만 이 사람들이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표를 더 많이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혁신계로 나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두려워하는 면이 있었다. 이런 여러 상황을 볼 때 혁신계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하는 기로에 놓여 있었다.

 

▲1960년 4월혁명 후 치러진 7.29총선에서 혁신계는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사진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투표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이승만이 쫓겨난 후 수면 위로 떠오른 민간인 학살 문제

프레시안 : 7.29총선이 치러진 지 얼마 후 지방 자치 선거가 실시된다. 혁신계는 어떤 모습을 보였나.

서중석 : 혁신계의 몰락을 더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1960년 12월 네 차례에 걸쳐 치러진 지방 자치 선거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그리고 1995년 김영삼 정권 때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까지 치러지기 전에는 실시되지 않았던 전면적인 지방 자치 선거였다. (지방 자치 선거는 5.16쿠데타 후 사라진다. 그 후 1991년 지방 의회 선거가 부활하고, 1995년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까지 실시된다. '편집자') 이때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기명식 투표, 그러니까 자신이 찍으려는 시장 후보의 이름을 써넣어야 하는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혁신계는 정말 완전히 몰락했다. 사회대중당에서 도의원이 2명 정도 된 것을 빼놓으면, 당선됐다고 내세울 만한 걸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총선 때보다도 훨씬 더 몰락한 모습이 지방 자치 선거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때쯤 해서 혁신계가 새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비록 분열은 됐을망정 김달호를 중심으로 사회대중당이 새롭게 출범했고, 장건상과 진보당의 젊은 사람들이 혁신당을 만들었으며, 옛날에 여운형과 함께했던 근로인민당 계통이 중심이 돼서 사회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상일, 윤길중, 고정훈, 그리고 한자를 달리 쓰는 두 김성숙 같은 명망가들이 이동화를 당 대표로 해서 통일사회당을 만든다. 통일사회당은 혁신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당이었는데, 1961년 1월에 출범한다. 총선과 지방 자치 선거에서 몰락했던 혁신계가 1961년에 들어가면서 영향력을 상당히 확대하는 데에는 통일 운동하고 2대 악법 반대 투쟁이 큰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 : 극우 반공 세력의 위세에 눌려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사안들이 4월혁명을 계기로 각계에서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다.

서중석 : 한국전쟁 시기는 물론이고 이승만 집권기 전체에 걸쳐 억울한 일, 잘못된 일이 굉장히 많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 붕괴 후 그런 것들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운동 같은 것이 벌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1951년 학살 당시 경남 거창 신원면장이던 사람이 1960년 5월 11일 타살되는 것을 계기로 주민 집단 학살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다. 이때 서울에 있던 중앙지들도, 지방 신문들도 이 문제에 대해 보도를 많이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학살된 지 10년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버려진 유골 모습 같은 것들이 아주 생생하게 사진으로 찍혀 신문에 나오고 그랬다. 그러자 자유당과 민주당으로 구성된 '양민 학살 사건 특별 조사 위원회'가 생겨나고, 각지에서 유족회가 만들어져 진상 규명, 명예 회복, 유골 안치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때 유족회는 대부분 경상남북도와 제주도 쪽에서 만들어졌다. 전라도의 경우 함평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학살 문제뿐만 아니라 이승만 집권기에 발생했던 다른 사건들 즉 김구 암살 사건, 조봉암 사건, 김성주 고문 사망 사건,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도 아주 크게 쟁점이 됐다.

"비겁합니다! 선생님" 제자들의 질타에 새로 태어난 교사들
 

ⓒ오월의봄

프레시안 :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노동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된다. 이 시기 노동 운동을 대표하는 것이 교원 노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서중석 : 교원들은 당시 최대의 지식인 집단이었다. 해방 직후도 비슷했지만 1950년대에 지식인들이 취직할 수 있는 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대개 교사가 됐는데, 그게 제일 쉬웠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교사가 지식인 집단으로는 제일 큰 집단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동원 정책, 부정 선거에 참 많이 동원됐다. 북진 통일 운동 현장에도 학생들을 이끌고 얼마나 많이 가야 했나.

그래서겠지만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고 나서 이틀 후인 1960년 4월 28일 대구 중·고등학교 교원들이 교원 노조를 발기했다. 그걸 시작으로 각지에서 교원 노조 결성을 위한 활동이 전개됐다. 그러자 허정 과도 정부는 교원 노조를 해체하라고 지시하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법정 싸움이 벌어지고, 교원 노조 간부들이 극한투쟁을 벌이고, 정부에서는 교원 노조 간부들을 전보 배치하는 등의 사건이 연달아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그렇지만 장면 정부 수립(1960년 8월 23일) 다음다음 날인 8월 25일 대구고등법원에서 '교원 노조 조직 자체는 합법'이라는 판결을 했다. 그러자 장면 정부는 '결성권은 인정한다. 그러나 쟁의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방침을 정리한다.

1960년 8월말 기준으로 초·중·고 교사 7만5000명 가운데 2만2000명이 교원 노조에 소속된 것으로 돼 있다. 경남에서는 교사들의 90퍼센트, 경북에서는 70퍼센트가 조합원이었다. 교사들의 90퍼센트, 70퍼센트면 압도적인 것 아닌가. 이렇게 교원 노조의 대부분은 영남 쪽에 존재했고, 다른 지방의 경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교원 노조원이 급격히 늘어난 바탕에는 이승만 정권 때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시 말해 자괴감을 곱씹으며 정권 유지 도구로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교사들의 각오가 있었다. 아울러 4월혁명 때 피 흘린 제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1960년 4월 대구의 교사들이 전국의 교사들에게 교원 노조 결성을 호소하며 발표한 글의 다음 대목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선생님! 정의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정열에 불타던 그 눈동자! "비겁합니다! 선생님" 하고 외치던 그들의 울부짖음! 그들의 모습! 우리는 여기 양심의 가책과 자괴가 없을소냐. 전국의 교원 동지들이여! (…) 침체한 자리를 박차고 우리들도 진정한 교원의 권리를 찾자. 그들이 갈망하는 민주 학원을 건설하여 이 나라 민주주의의 교두보를 구축하자.> '편집자')

 


서중석 : 대한노총에서도 변신의 움직임이 있었다. 1959년 김말룡을 중심으로 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이걸 전노협(또는 전국노협)이라고 그 당시에 불렀는데 전노협 설립 준비 위원회가 4월혁명을 맞으면서 대한노총을 변신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노동 쟁의도 그전에 비해서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새로운 노조 결성 움직임도 나타났다. 그렇지만 대개 사무 노조, 금융 노조, 언론 노조, 중소 사기업 노조의 결성이 많았고, 산업 노동자의 경우 아직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쪽(생산직을 중심으로 한 산업 노동자)에서는 노조 활동이라는 것이 많이 제한돼 있었다. 교원 노조를 비롯한 일부 노조는 1961년에 전개되는 여러 정치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백일곱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권 서평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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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금강산 관광길 막은 것은 남측 당국"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 "성의있는 노력 다했다"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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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4  22: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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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관광이 흑자로 돌아서고 아연 활기를 띠던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금강산 관광 중단 상황을 두고 북한이 "금강산 관광길을 막은 것은 남측 당국"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 대변인은 4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을 헤아려 금강산관광재개를 위한 사업에 아량을 가지고 성의있는 노력을 다하여왔으며 지금도 관광길을 열어놓고있다"며 "금강산관광길을 가로막고있는 것은 바로 괴뢰보수패당"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남측 민간단체들의 금강산 관광 재개 촉구, 금강산기업인협회의 피해보상 요구 등을 거론하며 "이것은 남조선인민들의 지향과 염원, 생존권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저들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금강산관광재개를 가로막고있는 괴뢰패당에 대한 저주와 분노의 표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마치 우리가 저들이 요구한 관광재개를 위한 대화제의에 응해나오지 않는데 있는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고있다"며 "그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해보려고 발악하는 것은 저들에 대한 남녘민심의 반감을 눅잦히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금강산지구를 국제관광특구로 선포하고, 외자유치를 진행하는 데 대해 남측이 "금강산에 관광객들과 투자가들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는가 하면 해외기업가들을 위협공갈하는 놀음까지 벌리고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가 금강산지구를 국제관광특구로 선포하고 국제관광을 하는것은 우리의 주권행사로서 괴뢰패당이 이를 놓고 무엄하게 시비하는 행위는 오히려 우리의 치솟는 격분을 불러일으키고 국제적 망신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대변인은 "6.15의 옥동자로 불리우던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것은 남조선괴뢰보수패당이 관광객사건을 동족대결에 악용하고 그 누구의 돈줄이니 뭐니 하며 관광재개를 고의적으로 가로막아왔기 때문"이라며 "진실을 가리워보려고 잔꾀를 부려도 민족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달가와하지 않고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간 악행은 절대로 감출 수도 무마시킬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을 헤아려 금강산관광재개를 위한 사업에 아량을 가지고 성의있는 노력을 다하여왔으며 지금도 관광길을 열어놓고있다"며 "남조선인민들의 금강산관광길을 가로막고있는것은 바로 괴뢰보수패당"이라고 남측에 책임을 넘겼다.
 

   
▲ 황부기 당시 합동조사단장이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 씨의 총격 사망사건 여파로 중단됐고, 북한은 2011년 5월 금강산관광특구법을 제정한데 이어 2014년 6월 ‘원산-금강산 국제광광지대’를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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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무능에 국민 전체가 만장일치로 반대표 던지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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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7/05 12:28
  • 수정일
    2015/07/05 12: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선일보 “메르스 위기의 리더십은 어디에 있나?”, 박 정부의 무능력 질타
 
뉴스프로 | 2015-07-05 08:33: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죈 아프리크, 박근혜의 무능에 국민 전체가 만장일치로 반대표 던지다
– 정부의 메르스 초기 대응 느리고 투명성 부족
– 측근 연루된 비리 및 비자금 추문 등 사건 사고로 사태 꼬여
– 조선일보 “메르스 위기의 리더십은 어디에 있나?”, 박 정부의 무능력 질타

프랑스의 아프리카 전문 주간지 죈 아프리크는 3일 “한국을 덮친 엉망진창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보도하며 세월호 참사 대처, 비리 사건, 전염병 확산 저지에 대한 무능 등,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전체의 만장일치로 반대표를 이끌어 냈다며, 온 국민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전했다.

기사는 사람들이 “정부가 위기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등, 걱정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세월호 때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정부는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는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었는데, 실망했다”며 분노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메르스 전염병과 관련, 나라를 흔들어놓은 대규모 전염은 분명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바이러스 발생 초기에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팀의 혼란과 대통령의 먹먹한 침묵을 떠올렸고, 또다시 반복된 정부의 늑장 대처와 투명성의 부족을 질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는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요인들이 더 있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 주변에서 최근 일어난 잇따른 비리와 비자금 수수 추문, 박 대통령 자신의 동생이 연루된 메모 게이트 사건, 성완종 비리 사건, 그리고 조현아의 분노의 땅콩 사건을 차례로 언급했다.

기사는 극보수 성향인 조선일보마저 “메르스 위기의 리더십은 어디에 있나?”라고 물으며 박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이러한 난관을 벗어날 수 있는지 자문하며 “아니, 너무 늦었다. 2년 조금 더 남은 그의 임기가 끝난 뒤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전염병 사건에서 보여준 재앙 수준의 대처만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했다”는 한겨레 논설위원의 말로 답을 대신했다.

죈 아프리크 (Jeune Afrique)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뉴스·해설 및 사설을 게재하는 시사 잡지로, 1960년에 창간되어 파리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프랑스어로 발간되는 아프리카에 관한 매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죈 아프리크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Sang-Phil Jeong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GUska6

Corée du Sud : le virus de la gabegie
한국을 덮친 엉망진창 바이러스

Publié le 03 juillet 2015 à 16h19

2015년 7월 3일 보도

Par Juliette Morillot

쥘리에트 모리요 씀

Désinfection d’un café internet, à Séoul, le 16 juin. © KIM HONG-JI/REUTERS
지난 6월 16일 서울의 한 피시방에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Gestion calamiteuse du naufrage d’un ferry, l’an dernier ; affaires de corruption ; incapacité à enrayer la progression d’une nouvelle épidémie… Park Geun-hye fait l’unanimité. Contre elle.

지난해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한 재앙 수준의 대처, 비리 사건들, 새 전염병의 확산 저지에 대한 무능 … 박근혜는 국민 전체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 단, 반대표다.

«Je n’ose plus traverser la gare ni prendre le bus pour aller à la fac, explique Hyonmi, en rajustant le masque chirurgical qui lui couvre la moitié du visage. On ne sait d’où vient ce virus ni pourquoi il se développe si vite. De toute façon, le gouvernement est bien incapable de faire face à la situation ! » Même angoisse teintée de colère chez Dae-chol, chauffeur de bus à Séoul : « On n’a pas de chameaux ici, c’est incompréhensible. Il paraît que les gènes des Asiatiques sont plus sensibles au virus, mais les Philippins qui travaillent au Moyen-Orient, pourquoi ne sont-ils pas touchés ? »

얼굴 절반을 가린 마스크를 쓴 대학생 현미씨는 “학교에 가기 위해 기차도, 버스도 타지 못했다. 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렇게 빠르게 퍼지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쨌든 정부는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버스 운전을 하는 대철씨는 같은 걱정에 분노가 더해졌다. “여긴 낙타도 없는데 이해할 수 없어요. 아시아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더 민감한가 봐요. 그런데 중동에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죠 ?”

Dans tout le pays, les centres commerciaux sont déserts, les cinémas annulent des séances faute de spectateurs, et des centaines d’écoles sont fermées. Vingt-quatre morts et 166 contaminations confirmées depuis le premier diagnostic établi sur un homme revenant d’Arabie saoudite, le 20 mai… Plusieurs milliers de personnes placées en quarantaine… La Corée du Sud est aujourd’hui le deuxième plus grand foyer du coronavirus MERS, baptisé MERS-CoV, un virus presque aussi dévastateur que celui du sras.

나라 어딜 가든 대형 쇼핑몰이 텅텅 비어있고, 극장은 관객이 없어 상영을 취소하며, 수백 곳의 학교가 폐쇄했다. 지난 5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으로 온 남성에게서 처음으로 이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확진자는 166명, 사망자는 24명으로 집계됐다. 수천 명이 격리 대상이 됐다. 이제 한국은 사스만큼이나 파괴력이 센 메르스 바이러스에 있어 세계 두 번째 나라가 됐다.

On ne connaît à ce jour ni vaccin ni traitement pour ce syndrome respiratoire qui, selon l’Organisation mondiale de la santé (OMS), présente un taux de mortalité avoisinant 35 %. On suppose que le chameau pourrait être le réservoir du virus, mais sa transmission à l’homme n’est pas confirmée. Comment dès lors expliquer l’ampleur de l’épidémie qui frappe le pays ? La plupart des victimes, constate l’OMS, ont été contaminées dans des structures de santé : sur les 133 malades dont les déplacements ont pu être reconstitués, 72 l’ont été au Centre médical Samsung, l’un des plus grands de Séoul. Sans doute le système hospitalier sud-coréen est-il directement en cause : les visites ne sont pas, ou peu, réglementées, et, la plupart du temps, ce sont les familles qui prennent en charge la vie quotidienne des patients (aide à la toilette, alimentation, etc.).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치사율 35%에 달하는 이 호흡기 증후군에 대한 예방약이나 치료약이 없다. 그저 낙타가 바이러스의 매개라는 점을 추측할 뿐 어떻게 인간에게 옮기는 지는 확실치 않다. 나라를 흔들어놓은 대규모 전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세계보건기구는 피해자의 대부분이 의료기관에서 전염된 것으로 확인했다. 동선이 확실한 확진자 133명 가운데 72명은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됐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직접적 원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병실 방문은 거의 또는 매우 드물게 제재를 받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가족이다. ( 화장실이나 식사 보조 등 )

Bref, l’inquiétude grandit, mais la colère aussi : la communication hésitante des autorités au cours des premiers jours de l’épidémie a ravivé rancœurs et frustrations. « On nous ment, comme on nous a menti lors du naufrage du Sewol, s’irrite Dae-chol. Ce sont tous des pourris qui se croient au-dessus des lois. J’avais voté pour Park Geun-hye, mais je suis déçu. »

어쨌든 걱정은 커지고, 분노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정부가 초기부터 정보 공개를 주저하는 동안 국민들의 원성과 낙심이 더욱 커졌다. 대철씨는 “세월호 때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정부는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는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었는데, 실망했다”며 분노했다.

La lenteur des premières mesures – il a fallu trois semaines pour qu’un plan d’urgence contre le MERS-CoV soit mis en place ! – et le manque de transparence des autorités rappellent en effet les errements qui ont suivi la catastrophe du Sewol, en avril 2014. Personne n’a oublié ni les cafouillages des secours ni le silence assourdissant de la présidente aussitôt après le naufrage du ferry. Un an après, le navire n’a d’ailleurs toujours pas été renfloué, et les familles des 304 victimes, essentiellement des lycéens, accusent le gouvernement d’indifférence et d’incompétence.

첫 조치가 느렸던 점-메르스에 대한 비상 계획이 세워지기까지 3주나 걸렸다 !-과 정부의 투명성이 부족한 점은 확실히 2014년 4월 참사 때 비난받았던 점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도 당시 사고 이후 구조팀의 혼란과 대통령의 먹먹한 침묵을 잊지 않았다. 1년이 지나 배는 여전히 물속에 있고 대부분이 고교생인 희생자 304명의 가족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을 질타하고 있다.

La multiplication récente des scandales de corruption et de trafic d’influence dans l’entourage présidentiel ne contribue certes pas à arranger les choses. Ainsi, fin 2014, du Memogate, une sombre affaire dans laquelle le propre frère de Park Geun-hye se trouve impliqué, ou encore du suicide, au mois d’avril, d’un ancien député dans la poche duquel on aurait trouvé une liste de personnalités ayant reçu des pots-de-vin lors de la dernière campagne présidentielle. Et n’oublions pas la retentissante affaire de la fille du PDG de Korean Air, qui, en décembre 2014, fit faire demi-tour à son avion pour un caprice d’enfant gâtée.

최근 잇따른 비리나 대통령 주변의 수뢰 스캔들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2014년 말 박근혜 동생이 연루된 음침한 사건 메모 게이트가 있었고, 지난 4월에는 지난 대선에서 뇌물을 준 사람들의 리스트를 호주머니에 남기고 전직 국회의원의 자살한 일도 있었다. 2014년 12월 부잣집 도령이 투정부리듯 항공기를 유턴시킨 대한항공 회장의 딸 관련 사건 역시 반향이 커서 잊을 수 없다.

On imagine que la presse s’en donne à cœur joie. Même le très conservateur Chosun Ilbo titrait récemment : « Où est le leadership dans la crise du MERS ? » Quant au Hankyoreh, plutôt à gauche, il accusait le gouvernement d’« incompétence crasse ». La présidente peut-elle encore se sortir de ce mauvais pas ? « Non, c’est trop tard, tranche un éditorialiste de ce même Hankyoreh. À la fin de son mandat, dans un peu plus de deux ans, on ne se souviendra que de sa gestion calamiteuse du naufrage du Sewol et de l’épidémie de MERS. Elle a tout raté. »

언론들은 신이 났다. 극보수 성향의 <조선일보>조차 “메르스 위기의 리더십은 어디에 있나 ?”라고 물었고, 좌파 신문 <한겨레>는 정부의 “지독한 무능”을 비판했다. 대통령은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까 ? <한겨레> 논설위원은 “아니, 너무 늦었다. 2년 조금 더 남은 그의 임기가 끝난 뒤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전염병 사건에서 보여준 재앙 수준의 대처만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완전 망했다”고 밝혔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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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빗이끼벌레, '철새도래지' 창원 주남저수지서 첫 발견

 

[단독] <오마이뉴스> 현장답사 결과... "낙동강 물 유입 과정서 들어온 듯"

15.07.04 21:56l최종 업데이트 15.07.04 21:56l

 

 

큰빗이끼벌레가 창원 주남저수지를 뒤덮고 있다. 4일 <오마이뉴스>가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과 벌인 주남저수지 일대 현장답사 과정에서 큰빗이끼벌레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주남저수지에서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는 주남·동판·산남 3개의 저수지를 통틀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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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빗이끼벌레가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대량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4일 정해관씨가 한 덩어리를 건져 올려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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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맥주병 두 배 크기의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산남)에서 발견되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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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빗이끼벌레는 4대강사업 이후 금강 등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낙동강에서도 지난해부터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었다.

주남저수지는 물이 부족할 때 낙동강 물을 끌어 온다. 주남저수지에서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된 것은 낙동강 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포자가 같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주로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에서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었다. 큰빗이끼벌레의 크기는 다양했는데, 손바닥 넓이만한 것도 있었고 맥주병 두 배 크기도 있었다. 사람이 두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큰 것도 있었고, 큰 덩어리 서너 개가 붙어 있기도 했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큰빗이끼벌레가 주남저수지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낙동강에서 주로 발견되어 왔다"며 "낙동강 물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함께 들어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큰빗이끼벌레가 확산되면 생태계 이변이 오게 되는데, 그만큼 주남저수지도 오염되었다는 것"이라며 "주남저수지가 철새도래지로 보호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은정 창원시의원은 "큰빗이끼벌레가 낙동강을 포함한 4대강사업 강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주남저수지에도 발견되고 있으니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창원시에 저수지 보전 대책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창원시 주남저수지계 담당자는 "주남저수지에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우리는 주로 철새에 대한 관리만 해왔다. 큰빗이끼벌레 서식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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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산남)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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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산남)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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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산남)에 있는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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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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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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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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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에 큰비이끼벌레가 대량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진은 큰덩어리 3개가 한 곳에서 발견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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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휴대전화기 두배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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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큰빗이끼벌레가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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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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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언론의 자유, 특정 언론기관만 누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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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7/04 14:40
  • 수정일
    2015/07/04 14:4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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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영식 새정치 언론대책특위위원장 “종편, 찌라시보다 못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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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4  10:05:05
수정 2015.07.04  1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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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시민단체가 지난 6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청와대의 메르스 보도 통제 규탄 및 홍보수석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큰 변화로 언론지형이 꼽힌다. 2009년 종편의 출현과 YTN, KBS, MBC 등 공영방송 사장에 정권편향적인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면서 언론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종편의 출현은 ‘괴물을 낳았다’는 혹평이 쏟아질 정도다.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언론 지형은 곧 그 몇 년 사이 선거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15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33점을 기록해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됐다. 순위는 전체 199개국 중 아프리카, 나미비아와 함께 공동 67위였다.

민주정부인 참여정부 시절 말까지만 해도 한국은 언론자유국으로 분류 돼왔던 것에 비하면 언론 관련 성적 하락은 그야 말로 ‘날개 없는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자유는 곧 민주주의의 지표로 이어진다. 기울어진 언론환경에서 민주주의 지표가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노골적으로 ‘정권편향’, ‘보수편향적’인 종편의 출현은 민주주의의 위해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종편문제’를 꼽았고, 이전까지 종편 출연을 거부하던 당론을 바꾸기도 했다. 또 당내에 언론홍보대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최고위원에게 특위 위원장을 맡도록 하고 있다. 종편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노골적으로 정권편향적인 종편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오영식 최고위원. <사진제공=오영식 의원실>

이 가운데 ‘go발뉴스’는 올 초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언론대책특위위원장을 맡아 고군분투 하고 있는 오영식 위원장과 ‘기울어진 언론지형’의 심각성에 대해 싶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 위원장은 얼마 전 최재성 사무총장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방송한 ‘채널A’ 뉴스특보 ‘화제와 진실’ 방송내용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요청을 했다. 당차원에서는 명예훼손 등을 포함한 법률적 검토를 진행 중이다.

그는 현재의 종편 방송은 “찌라시 보다 못한 수준의 방송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방송내용이) 수준 이하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판했다.

그는 또 “(종편 방송에서 그 동안 꾸준히 문제제기 됐던)보수 편향적이고,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수준 이하의 패널들이 발붙이지 못하는 환경을 조성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공개형 뉴스제휴 평가위원회’와 ‘오피셜 댓글’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포탈을 포함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언론마저 정부여당에 장악되지 않도록 입법을 통해 안전장치를 두는 등 다각도로 노력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정권 태동의 산물인 ‘go발뉴스’, ‘뉴스타파’와 같은 독립 언론이 “지난 국정원 댓글사건, 세월호 참사 등에서 기존 공영방송과 다른 현장 중심의 보도를 하면서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언론 문제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오 위원과 나눈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Q. 최고위원 취임 150일 정도 됐다. 최고위원에 취임하면서 당 언론홍보대책특위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동안 언론담당특위 위원장으로 어떤 일들을 해왔나.

2015년 3월 13일 제73차 최고위원회 의결로 언론홍보대책특별위원회(이하 ‘언론특위’)가 신설되었다. 언론특위는 對 언론 홍보전략 수립, 우리당의 방송용 정책 기조와 메시지 홍보, 방송 출연 패널단 발굴 및 소통, 언론·방송사 임원진과 실무진(기자단·PD·작가)와의 교류를 강화하여 우호적 언론환경을 구축하고 상시 모니터링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신청 등 언론 감시기능과 모니터링을 통한 왜곡된 언론보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언론특위는 크게 3개 분과로 나누어 활동을 하는데 ‘공정언론실천단’에서는 상시모니터링을 통한 종편 등 저질 시사보도프로그램 등에 대해 편파·왜곡·막말방송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신청 및 결과를 관리하고 있다.

‘언론홍보 마케팅단’에서는 기울어진 언론환경 개선을 위한 ‘우호적 언론환경 구축을 위한 홍보전략’을 수립하고 언론·방송사 실무진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Q. 주로 종편 보도 관련해서 정정보도 요청도 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심의도 하는 거 같다. 종편 방송을 비롯해 일부 방송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겪어보니 어떤가.

일부 종편과 보도채널의 방송수준과 행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 이하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진행자들의 편파방송은 물론이고 보수 성향 패널들의 집중구성, 검증되지 않은 패널들의 막말과 왜곡이 난무하는 방송의 수준은 저널리즘은 고사하고 방송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찌라시보다 못한 수준의 방송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Q. 보수정권 들어서서 언론부터 길들이기 시작했다. 실감하고 있나. 얼마 전 최재성 사무총장 ‘찌라시 방송’ 관련해서 <채널A> 방송에 대해 문제제기 했는데…

지난 27일 채널A <뉴스특보>에서 ‘국회에 뜬 주먹왕’이라는 제목으로 최재성 사무총장의 인격과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이 장시간 방송되었는데 보도전문 프로그램이라고는 차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공정성과 공영성을 표방하는 방송언론이 ‘찌라시’ 수준의 내용을 아무 여과 없이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고 사용하는 용어들도 낯 뜨겁다. 이에 언론특위에서는 7월 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요청을 신청하였다.

Q. 언론특위위원장 되고 ‘이런 부분만큼은 달라졌다’고 자신하는 부분이 있나.

언론홍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나서 몇 가지 바뀐 것들이 있다. 우선 모니터링 부분을 대폭 강화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방송들, 예를 들면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나 <황금펀치>, <돌아온 저격수다>, 채널A의 <돌직구쇼>, <쾌도난마>, MBN의 뉴스보도프로그램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방송들에 대해 심의요청을 신청하였고 몇몇 프로그램은 폐지되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특위 차원에서 일부 진행자와 패널들의 명백한 사실관계 왜곡과 명예훼손 등에 대해서는 법률검토를 하는 등 법적 대응도 준비 중에 있다. 이런 활동으로 인해 소속 의원들 역시 언론특위에 많은 조언과 의견을 주고 있으며, 일부 의원들의 경우 본인에 대한 왜곡방송 등이 발생한 것에 대해 언론특위 차원에서 대응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과거보다 종편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Q. 앞으로 언론대책 어떤 부분에 집중할 계획인가.

언론특위에서는 크게 방송(지상파와 종편), 신문 그리고 포털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을 할 예정이다. 방송의 경우 방송사 지배구조에 대한 부분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 종편의 경우는 기울어지다 못해 삐뚤어진 균형을 맞추고 저질 막말·왜곡·편파방송이 사라지는 것과 방송에 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수준 이하의 패널들이 발붙이지 못하는 환경을 조성해 나아갈 것이다.

포털의 경우 최근 ‘공개형 뉴스제휴 평가위원회’와 ‘오피셜 댓글’로 뜨거운 상태다. 언론환경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온라인까지 정부와 여당의 의도대로 장악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Q. 올해가 마그나카르타 800주년이다. ‘법 아래 자유’의 시초가 된 마그나카르타가 이후에 미국에 건너오면서 권리장전에 영향을 주고, 민주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 그 중 유보될 수 없는 자유가 바로 언론의 자유다. 그러나 특정 언론기관만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결코 과하지 않다. 국제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지수 조사에서 우리 한국은 부분적 자유국으로 강등됐다. 정부의 통제 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 것이다. 최근 있었던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효종 방송심의위원장은 우리 당 위원들이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행정지도를 받은 것과 관련해 적절치 못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특정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서 한 조치이며 적절했다고 본다”는 답변만을 늘어놓았다. 그 특정인이 누구겠는가? 메르스 사태 수습이 미흡했다는 코미디언들의 풍자에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모두 웃음으로 승화시켰는데, 그 특정인과 방심위는 불쾌감을 느낀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 졌다.

Q. 기울어진 언론지형에서 오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 종편 방송을 비롯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대비책으로 어떤 법적 안정장치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종편을 포함한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방송을 특정인 내지는 정권이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 법안소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여당의 반대가 있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개선은 사장 선임 시 특별다수제(2/3 이상 찬성해야 사장으로 선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사들에 대해 여야가 동시에 추천하게 하고, 방송 편성에 있어서 노사가 동수로 참여하는 편성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게 하는 것이다. 물론 언론, 특히 방송에 대해 법으로 공영성확보를 강제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영성 확보를 위한 여건을 조성해 주어 언론의 자율성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Q. 고발뉴스 같은 대안언론, 독립 언론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독립언론마저 무너지면 그나마도 진실을 전할 언론 채널이 거의 전무해진다. 힘든 상황에서도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독립 언론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응원 한마디 해달라.

MB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이 언론장악이었다. 방통위, 공중파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 종편을 만들어 악의적인 왜곡편파방송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이 정부 들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비선실세 국정농단사건’, ‘세월호 참사’ 등 큰 이슈가 발생하면 공중파와 조중동이 정부 입장을 받아쓰기만 하면서 똑같은 내용을 무한 반복하고 있을 때, TV와 전혀 다른 현장의 사실을 보도한 매체들이 있었다. 바로 독립언론이었다.

독립언론은 스스로 운영하거나 국민과 시민들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기에 별도의 스폰서가 없고 광고로 수익을 벌지 않아 친정부, 친기업적 영향을 덜 받기에 공정성이 뛰어나다. 또한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기에 대중의 참여가 높으며 소통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매체를 운영하기엔 여전히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언론환경에서는 고발뉴스와 같은 독립 언론들이 진실에 대한 공정성과 전문성을 무기로 사회와 지속적인 소통을 해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 하시는 모든 독립언론 관계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힘찬 응원을 보낸다.

인터뷰 응해 주셔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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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말 배우는 아이 수준"... 전여옥이 옳았다

 

[여의도본색] 4년 전 한나라당 출입기자가 본 '박근혜 어법'

15.07.03 20:56l최종 업데이트 15.07.04 10: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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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4월 30일 저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사에 마련된 재보궐선거 종합상황실을 나서며 전여옥 대변인에게 "수고했다"고 치하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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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전체 발언을 살펴보면 이날 박 대통령은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활성화에 정부의 역량을 집중시키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발언만으로는 박 대통령이 '무엇'을 주문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박 대통령의 어법을 '창조어법'이라고 비꼬았다. 이러한 어법은 최고 국정운영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지도자로서 굉장히 무책임한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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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9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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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정치팀 내부게시판을 살펴보다가 4년 전 한 후배 기자가 '박근혜 어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글을 발견했다. 지난 2011년 2월 17일 작성된 이 글에는 '[생각] 박근혜 특유의 어법은 굉장히 문제가 많음'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한나라당을 오랫동안 출입했던 안홍기 기자는 이 글에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단순함을 박근혜 어법의 특징으로 꼽았다.

"박근혜식 어법의 특성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도록 말을 단순하게 하는 것. 기자들이 한두 줄짜리 워딩으로 요래조래 머리를 짜내서 기사를 쓰고, 그렇게 해서 기사 나가서, '너무 세게 얘기한 것'이라는 반응이 있으면, 측근들이 나서서 '그런 의도 아니다'라고 해명을 하는 구조임."

안 기자는 "그래서 박근혜 말을 들으면 가까운 측근의 '해설'을 들어야 기사가 좀 신빙성이 있어지는 그런 상황"이라면서 "결국 박근혜가 하는 말만 들어서는 그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안 기자는 "아예 생각이 없다면 '생각이 없어요'라고 하면 되지 '다음에 말씀드릴게요'라고 하면서 지나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 뒤 한 블로거의 글을 링크해놓았다. 강병한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가 <경향신문> 블로그에 쓴 '박근혜 누님에게 굴욕당하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월 23일 국회 헌정기념관 앞에서는 박 대통령의 싸이월드 1000만 방문 기념으로 팬클럽 '근혜천사'에서 주최한 바자회가 열렸다. 박 대통령도 이 행사에 참석해 "왜 복지를 돈으로만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이다"라는 요지의 격려사를 했다. 

강병한 기자는 이날 행사장을 나오는 박 대통령에게 "박 대표님, 아까 복지는 돈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맥락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던 '박근혜표 복지'의 실체를 캐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바로 돌아서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한국말 모르세요?"

안 기자는 이 장면을 두고 "'뭐 그리 캐묻냐'는 의도로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한 것 같은데,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면 물어보래도 안물어본다"라고 썼다. 자신의 '두루뭉술한 메시지 전달'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는 박 대통령을 꼬집은 것이다.

이어 안 기자는 "이런 어법을 구사하는 사람이 한국의 중요한 정치지도자인 것은 문제가 많다"라며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지지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현대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그 사람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고, 이 사람은 앞으로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 기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임."

안 기자는 "'박근혜식 복지'에 대해 박근혜 본인이 미주알 고주알 풀어내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박근혜는 '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라며 "이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굉장히 무책임한 행태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람은 이명박처럼 말해 놓고 '표 얻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나쁠 뿐 아니라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날 '으뜸언어상' 수상... 전여옥 "말 배우는 어린아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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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표, 으뜸 언어상 수상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지난 2011년 2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시상식에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으뜸 언어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의 대상격인 '으뜸 언어상'은 한나라당 박근혜, 민주당 이낙연 의원, '모범언어상'은 민주당 이미경,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품격언어상'은 자유선진당 변웅전, 한나라당 김선동 의원이 수상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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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전날(2011년 1월 16일) 박 대통령이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을 수상한 점이다. 이날 오후 3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시상식'이 열렸는데 박 대통령은 '으뜸 언어상'을 수상했다. 이날 현장에서 한 취재기자가 "평소 말을 잘 안 하시는데 으뜸언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감을 말해 달라"라고 요청하자 박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했다.

"만나실 때마다 현안에 대해 묻는데, (현안이) 과학비즈니스 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아니냐? 다른 분들도 입장을 밝히고 하는데, 내가 답할 사항이 아니어서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수상 소감'을 물었는데, 박 대통령은 '동문서답'한 것이다. '박근혜 어법'의 또다른 특징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이러니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진중권)라고 비꼬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득 '친박'에서 '반박'으로 변신한 전여옥 전 의원의 어록이 생각났다.

"박근혜는 늘 짧게 대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 국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그러나 사실 아무 내용 없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애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다."

"박근혜는 대통령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그녀는 이제 말 배우는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하다."

시차가 있긴 하지만 후배 기자와 전여옥 전 의원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 당당하게 '유체이탈 화법'과 '창조어법'을 선보여왔다. 국민에게도 불행이지만, '한국어'에는 재앙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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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 한.일과 대화 중"


김복동 할머니, 워싱턴서 미 국무부 관계자 면담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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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3  16: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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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일(현지시각) 미 국무부를 찾아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이에 미 국무부측은 "한국, 일본과 대화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출처-정대협 페이스북]

미국 국무부 측은 2일(현지시각)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한국.일본과 대화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와 만난 미 국무부 관리들이 이같이 말했다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 윤미향)가 전했다.

정대협에 따르면, 이날 면담에서 미 국무부 측에서는 캐서린 러셀 세계여성문제 전담대사를 대신해 한국 담당 및 일본담당 직원과 세계여성문제 전담대사실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여기서 이들은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미국정부도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와 대화하고 있으며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이들에게 피해사실을 증언하며, "사죄할 것은 하고 배상할 것은 해야한다. 돈이 탐나서 배상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남아있는 피해자도 50명이 이제 안 된다. 미국과 각국정부가 문제해결에 힘써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미.일 신 방위협력지침을 언급, "미국정부도 책임이 있다. 일본이 전쟁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미국이 돕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일본의 전쟁준비를 막는데 미국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미 국부무 방문에 앞서 지난해 세워진 패어팩스 정부청사에 세워진 일본군'위안부' 기림비를 찾은 김복동 할머니. [사진출처-정대협 페이스북]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전후 70년인 올해 문제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은다면 할머니들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전후처리 과정에서 제대로 규명되고 처벌되지 않은 ‘위안부’ 범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정대협 측은 지난 5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3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된 제언서를 전달했다.

앞서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해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카운티 청사에 세워진 일본군'위안부' 기림비를 찾았으며, 1일(현지시각) 워싱턴 DC 주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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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으로 가뭄 해결, 왜 거짓말인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7/04 13:09
  • 수정일
    2015/07/04 13: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욱 2015. 07. 03
조회수 1601 추천수 0
 

기본목적은 수위 유지, 가뭄 때 빼 쓰거나 홍수 때 가두는 시설 아냐
섬·고지대 상습 가뭄 지역은 빗물 이용, 녹색댐, 저수지 확충으로 풀어야

 

05340443_R_0.jpg» 가뭄과 홍수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할 것처럼 큰소리 친 4대강 사업이 끝났어도 가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1일 인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흥왕저수지가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을 보이고 있다. 강화/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올해도 논바닥이 갈라지자 100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가뭄이 2012년에 이어 또 왔다고 한다. 그러자 왜 4대강에 가득 담아둔 물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때다 하고 4대강 물을 가뭄에 해결할 수 있도록 공사를 하겠다고 1조원이 넘는 예산이 드는 사업계획을 내어 놓았다. 
 
그러나 4대강에 담아둔 물을 가뭄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이 물을 가뭄 해결에 쓰도록 하겠다고 또 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참으로 뻔뻔한 사기행각에 지나지 않는다. 4대강 물은 결코 가뭄 해결에 쓸 수 있는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다. 4대강의 댐에 담아둔 물은 흐르지 않기 때문에 호수의 상류나 하류나 수위가 거의 같다. 4대강 공사로 상류 쪽은 수위가 옛날보다 낮아져서 그 물을 끌어다 농업용수로 쓰든지 양어장을 운영했든지 하던 곳은 물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다시 이 수위에 맞추어 물을 끌어가야 했다. 반면에 하류 쪽은 수위가 높아져서 홍수를 막기 위하여 강둑을 더 높이 쌓아 올려야 했다. 
 

05336981_R_0.jpg» 4대강 보는 다목적댐이 아니어서 물을 가두는 기능이 미미하다. 따라서 홍수조절이나 가뭄 대비용으론 쓸모가 없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 강정고령보 모습. 사진=이정아 기자


그리고 이 수위에 맞추어 발전소니 요트장이니 기타 시설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만약에 이 물을 빼서 수위가 낮아진다면 4대강 사업의 목적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팔당댐같이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댐들은 수변이 안정되어 있어서 식생이 잘 자리 잡아 경치가 아름답지만 소양댐, 충주댐, 안동댐같이 물을 공급하느라 수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댐들은 홍수 때 잠겼던 부분에 벌건 흙이 드러나 풍광이 아름답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4대강에 담아둔 물을 빼 쓰게 되면 물에 잠겼다 드러나게 되는 부분에 시커멓게 썩은 퇴적물과 쓰레기와 죽은 큰빗이끼벌레들이 드러나게 되어 참으로 흉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녹조가 심하게 끼고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수문을 열라고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그 수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절대로 수문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05337887_R_0.jpg» 다목적댐인 충주호 모습. 호수 가장자리는 수위 변화에 따라 헐벗은 구간이 띠모양으로 드러난다. 이번 가뭄으로 바닥까지 드러났다. 사진=이정아 기자
 
수도권 시민들 중에는 팔당에 모아둔 물을 마시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팔당은 일정한 수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팔당에 모아둔 물이 아니라 소양댐과 충주댐에서 팔당으로 흘려보내야만 그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4대강에서 물을 뽑아 쓸 수는 있지만 그 물은 4대강에 모아둔 물이 아니라 그 상류에 이전부터 있던 댐, 즉 소양댐, 충주 댐, 안동댐, 대청댐 등에서 물을 흘려보내야 그 물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즉, 4대강에 담아둔 물은 물을 쓰기 위해서 모아둔 것이 아니라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아둔 물일 뿐이고 가뭄을 해결하는데 쓸 수 있는 물이 아니다. 
 
가뭄 해결에 쓸 수 있는 물은 이전부터 가뭄 해소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댐들이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즉, 4대강 사업과 가뭄해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많은 국민이 깜빡 속았다.  

05338132_R_0.jpg» 4대강이 가뭄 해결은커녕 강의 유속을 늦춰 심각한 녹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녹조가 넓게 퍼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나루터 앞 낙동강에 17일 한국수자원공사의 모터보트가 녹조 띠를 흩뜨리기 위해 강물 위를 선회하고 있다. 사진=이정아 기자

 

그리고 100년에 한 번 오는 가뭄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펌프장이며 송수시설이며 저수지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대로 쉽게 되기만 하면이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지만, 이것도 엉터리고 사기다. 100년에 한번 오는 가뭄에 대비한 시설은 말 그대로 100년에 한번 쓸 일이 생기기 때문에 지금 만들어 봤지 그 시설은 100년을 놀고 있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유지관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뭄 대책은 10년에 한 번 오는 정도의 가뭄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10년이나 20년 가뭄에 대비해서 시설을 만들고 그 이상의 가뭄이 오면 물을 아끼고 비상대책을 쓰는데 하물며 농업용수 대책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정 급하면 앞에 열거한 부작용들을 무시하더라도 4대강에 담아둔 물을 빼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물을 정말 올해 그리고 2012년에 가뭄이 들었던 지역에 물을 보낼 수는 있는 것인가? 이것도 아니다. 
 
4대강 물을 보낼 수 있는 지역은 이미 관개수로가 다 되어 있고 가뭄이 들지도 않았다. 가뭄이 든 지역은 산골지역과 해안도서 지역들에 흩어져 있는데 이런 지역들은 주로 4대강 상류의 물을 공급하는 광역 상수도도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들이다. 
 
광역상수도도 놓지 못하고 있는 지역에 100년에 한 번 오는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에 쓸 송수관을 놓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이번에 가뭄이 심하게 든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의 산간지역에 4대강 하류의 댐들에 모아둔 물을 보낼 수 있겠는가? 
 
보통 관개용수는 20m 정도 높이까지는 무리 없이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보낸다. 그러나 강원도의 산간지역에 물을 보내려면 수백 미터 높이까지도 끌어올려야 보낼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단계로 저수지를 만들고 펌프질을 해야 한다. 
 
수돗물도 이렇게 해서 보내지를 못하는데 농업용수를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그림 1의 가뭄지역과 4대강 사업구간을 비교해 보면 전혀 4대강 공사가 가뭄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1.jpg» 그림 1 우리나라의 물 부족 지역과 4대강 사업지역 비교.4대강 사업으로 물을 담아 둔 곳은 물 부족 지역과 관계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이 사업이 가뭄과 홍수를 동시에 해결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댐이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해결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홍수를 해결하자면 댐을 비워놓아야 하고 가뭄을 해결하자면 댐을 채워 놓아야 하는데 둘 중의 하나만 할 수 있는 것이지 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둘 가운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가 잘못 짚으면 일이 터지는 것이다. 
 
올해는 이렇게 가뭄이 들 줄 예상하지 못하고 녹조도 희석할 겸 댐 문을 열었었는데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하게 되었다. 전에는 가뭄을 예상하고 댐을 채워두었었는데 큰비가 오는 바람에 여주를 물에 잠기게 한 적이 있었다. 
 
1999년에는 소양댐을 채워두었었는데 예상치 못한 큰 홍수가 와서 댐이 넘쳐 터질뻔하여 <한국방송>이 생중계를 한 적도 있었다. 댐이 가뭄을 조절할 수는 있다. 그러나 4대강 공사는 전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속았다.

 

가뭄 해결한다고 22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 4대강에 많은 물을 모아두었는데 이것은 전혀 가뭄대책이 아니다. 가뭄대책은 실제로 가뭄이 일어나는 그 지역에서 해야 한다.

 

04004813_R_0.jpg»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소규모 저류 시설로 빗물을 관리하여 도시홍수도 대비하고 식수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공대 건물에 설치된 빗물 저장고에서 직접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박승화 기자

 
아마 우리나라에 10만개 정도의 농어촌 마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각 마을에 저수지를 잘 정비하고, 산림이 물을 잘 저장할 수 있도록 녹색 댐을 기르고, 그리고 빗물을 지하에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실제로 도움이 된다. 
 
가뭄이 드는 지역은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두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또 마을마다 마을 단위로 빗물을 지하에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기술은 이미 잘 개발되어 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가뭄을 해결하고 또 홍수를 막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대책은 4대강 사업에 든 돈의 몇 십분의 일만 있어도 할 수가 있다. 
 

04765243_R_0.JPG»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노원구 공릉동 원룸 건물에 설치한 빗물 저장통을 살펴보고 있다. 정태우 기자

 

독일은 ‘물 부족 국가’란 말을 하지 않고도 거의 집집마다 빗물 다 받아쓴다. 자기 집 마당에 떨어진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면 빗물세금을 내야 한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가뭄은 앞으로 더 심해질 전망이다. 그래서 가뭄에 잘 견디는 농사를 짓도록 연구하고 대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가뭄대책이다. 

 

05307082_R_0.jpg» 지난 5월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 물순환 엑스포에서 태양광 전력과 빗물을 이용해 식수를 얻을 수 있는 빗물 식수 저장 탱크 및 태양광 발전 전력저장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가뭄과 홍수를 해결하고, 물 깨끗하게 하고, 일자리 만들고, 국토를 균형발전시켜서 국운을 융성시킨다는 등 온갖 좋은 말을 다 갖다 붙이고 휘황찬란한 그림으로 국민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노자가 말하기를 ‘진실한 말을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다(信言不美, 美言不信)’고 하였다. 영어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너무 좋은 것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은 너무 좋을 수가 없다 (It is too good to be true, it is too true to be good)’. 사기꾼들은 항상 너무 좋은 것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내어 놓아 욕심 많은 사람을 꾄다. 
 
선거 때만 되면, “길 뚫어 드리겠습니다" "다리 놓아 드리겠습니다" "이런 저런 개발해 드리겠습니다" "땅값 올려드리겠습니다” 이런 공약으로 표를 얻어 가는데, 4대강 사업에서 그 극치를 이루었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무슨 개발사업 하나로 국민을 공짜로 부자를 만들어줄 것처럼 꾈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다. 
 
정직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벌어서 정직하게 살도록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발사업의 이득은 국가가 환수해 가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정직해지고 4대강 사업과 같은 사기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정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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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살길은 오직 하나

  • [글] 박근혜가 살길은 오직 하나[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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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4일이다. 1972년 이날, 남북(북남)의 수뇌부는 인편을 통해 직접 합의한 조국통일3대원칙을 내외에 엄숙히 발표했다. 7.4공동성명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 기막히게 완벽한 원칙들이다. 김일성주석은 이후락이 이 원칙들에 동의한다고 말할 때 속으로 <이 친구가 미쳤나> 했다 한다. 박정희가 누군가. 항일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군장교출신에, 해방직후 공산주의자인 형을 따라 혁명운동하다가 다시 변절해, 이번엔 미군의 개가 돼 결국 5.16군사쿠데타로 이땅 민주주의를 작살낸 장본인이 아닌가. 
     
    박정희가 민주주의는 죽여도 경제는 살렸단 소리는 전부 개소리다. 저곡가정책과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은 빚더미에 질식하고 그렇게 폭력적탈농사태로 도시에 모인 청년들이 저임금정책의 또다른 희생자가 돼 결국 전태일의 분신을 불렀다. 그렇게 해서 남의 경제는 자립적토대가 말살된, 철저히 예속적이고 기형적인 경제구조가 완전히 고착됐다. 미국이 일본에 떠넘긴 공해중공업산업을 일본이 다시 남에 떠넘긴 걸로 북의 자립적공업화에 밀리지않는 전시경제(Window Economy) 만들어보려 했지만 결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꼭두각시경제, 금이 쩍쩍 가 있는 유리경제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일본은 감기에 걸리고 남은 폐렴에 걸리는 경제, 미국이 경제봉쇄를 하면 원료·연료의 해외의존으로 경제 자체가 말살되는 그런 한심한 경제가 바로 남경제다. 
     
    하여튼 그런 박정희도 말년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아 결국 미국의 사주를 받은 김재규의 총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문제는 애비·에미가 모두 비참하게 미국의 공작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직도 제정신을 못차리고 종미사대매국에 미쳐돌아가는 박근혜다. 책도 안읽고 정책에도 관심없고 민생·민심도 모른다해도, 적어도 제정신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래 아직도 누가 애비를 죽이고 에미를 죽였는지 모른단 말인가. 
     
    정말 박래군4.16연대상임운영위원의 말대로 마약이라도 한단 말인가. 사실 박정희가 히로뽕을 상용하고 그래서 아들이 그 흉내를 냈다는 설은 인터넷에 너무 많이 퍼져있다. 지난해 세월호참사당일 사라진 7시간동안 도대체 뭘 했기에, 미국마저 조선일보·산께이신문을 시켜 정윤회와의 낯뜨거운 추문설을 퍼뜨리고 이제는 마약복용설까지 나도는가. 현재 박근혜에게 과연 무엇이 남아있는지 묻지않을수 없다. 민심은 오래전부터 싸늘하고 미국도 의심하고 있으니 선친처럼 되는길외에 뭐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민족의 품을 찾아야 한다. 모든걸 용서한다는게 바로 7.4공동성명이다. 살길은 오직 하나다.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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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김중산  | 등록:2015-07-03 08:16:17 | 최종:2015-07-03 08:19: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올해로 광복 70년에 한국전쟁  65주년이 된다. 이에 즈음하여, 우리는 우리의 조국 한반도가 왜 그리고 누구에 의해 분단되어 전쟁을 치렀으며 통일이 안 되는 이유는 뭔지 냉철하게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반드시 그 책임 또한 물어야 한다. 결론은 하나, 미국 때문이다. 그러면 왜 미국인가.

 

 

1882년 한국과 미국이 어렵게 국교를 맺은지 23년만인 1905년 7월 29일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일본과 도쿄에서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는다. 밀약에 따르면,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탈하고 통치하는 것을 묵인하는 내용이다. 이 밀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무한한 축복 속에’ 을사늑약에 이어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탄조약을 강제 조인하여 대한제국은 마침내 국권을 상실하고 이후 36년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은 해방과 동시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최초로 38도선에 경계선을 긋기로 한 결정은 동년 8월 10일과 11일 사이에 있은 미 국무부와 군부의 합동철야회의에서 채택된 것이었다. 육군성의 찰스 본스틸과 딘 러스크 대령은 ‘30분 안에’ 소련측에 제시할 제안을 작성하라는 명령을 받고 옆방으로 물러가 미국의 군사적 편의주의에 따라 멋대로 그은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새벽 발발한 내전으로 민족상잔의 참극이 벌어졌고,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협정에 따라 지난 60여 년간 국토가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한반도를 통한 소련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38선을 임의로 그어 한반도를 분단한 다음 날인 1945년 8월 11일 트루만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에  있는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기 위한 연합군과 공동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군작전 편의상 단지 ‘일시적으로’ 한국을 분할하며 본군사작전이 끝나는 대로 연합군은 한국에서 철수한다”였다. 성명서 대로라면 미군은 진즉 철수했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물러갔지만 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지금도 남한에 점령군으로 주둔하고 있으면서 사실상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발생한 한국전쟁은 미국이 군사적 편의주의에 따라 자의로 삼팔선을 획정해 한반도가 분단된 탓에 두 개의 한국(Two Koreas)이 존재하게 되어 초래된 필연적인 결과였다. 전쟁 으로 초토화된 우리 민족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미국이 지불한 인적 물적 대가 또한 실로 심대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미국의 잘못된 선택에 의한 불가피한 업보였다.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막대한 희생을 치렀고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그랬고 전쟁 또한 자신들이 자초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왜곡된 역사 교육을 받은 상당수 한국인들은 마치 미국이 오로지 한국민의 자유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 희생한 것처럼 잘못 인식하고 고마워하다보니  미국을 비판하면 대뜸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며 역정을 내고 심지어 종북 빨갱이로 매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나 한심해 보였으면 한국문제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역사학과 석좌교수가 한국민을 향해 “자녀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라”고 말했겠는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한 전략적 이해 관계에 따라 수 없이 한국을 기만하고 배신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도록 방조해 고통받게 했고, 분단에 따른 전쟁으로 동족상잔을 겪게 했으며, 신군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할 때 끝내 침묵했다. 한국군을 지휘하는 미군이 신군부의 병력 이동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평소엔 인류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안면몰수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전쟁도 불사하는 무서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이처럼 병 주고 약 주는 고약한 나라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미국의 대외정책의 핵심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한 정전협정에 의하면 모든 외국군은 협정 발효일로부터 90일 이내에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군은 협정을 위반하고 남한에 계속 주둔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모두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명목으로 해마다  약 1조 원씩 퍼주고 있다. 미국에 필요 이상으로 무작정 퍼주다 보니 주한 미군이 방위비를 쌈짓돈처럼 흥청망청 쓰고도 남아 돌아 이자놀이까지 하고 있지만, 한심한 한국정부와 국회는 우리 국민의 혈세가 어떻게 쓰이는 지 관심조차 없다. 기지사용료 또한 한 푼도 안 내고 100%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사 미국의 요구 대로 하지 않으면 대뜸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니, 군사주권까지 내어주고 안보를 걱정해야 하는 무능한 한국정부로서는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한반도를 분단하고 자기네 잇속 챙기느라 주둔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협박이나 하는 적반하장의 나라를 혈맹이라 부르며 시도 때도 없이 성조기를 미친듯이 흔들어 대고, 칼침 맞은 주한 미국대사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석고대죄 단식’을 하는 골 빈 한국민을 떠올리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게 된다. 
      
미국은 남한이 자주국방력을 갖추는 것을 철저히 가로막아 왔다. 남한이 자력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규제해야만 남한이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게 되어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도발로부터 남한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주둔비까지 두둑히 받아가며 남한에 계속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미국은 북한보다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남한의 자주적인 노력을 노골적으로 견제하여 왔다.

예컨대, 1979년 한국이 첫 국산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카터 행정부는 한국이 개발하게 될 탄도미사일 사정거리를 180km로 제한하고, 탄두 중량은 500kg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미사일 실험발사를 계기로 한국은 국산 미사일 사정거리를 500km로 연장해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지만 끝내 300km로 늘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2년 10월에야 겨우 사정거리가 북한을 카버할 수 있는 800km로 허용됐지만, 핵무기는커녕 미사일 하나 독자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간섭하고 통제하는 나라, 이것이 평상시 한국을 ‘세계 최고의 동맹국’이라고 치켜세우는 미국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미국은 매년 실시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 외에 때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완화시키기를 교묘히 반복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봐오고 있다. 인공위성 사진을 보여주며 북한군이 휴전선 가까이 전진배치 되었다거나 미사일 기지를 전방배치했다는 등 별것도 아닌 북한군의 동향을 적당히 부풀려 당장 남북 간에 무력 충돌이라도 발생할 것처럼 겁을 주면, 혼비백산한 한국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부르는 게 값인 첨단 무기나, 아니면 고철이나 다름없는 낡은 무기를 허겁지겁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이기에 바쁘다. 요격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그 좋은 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 미사일 역시 우리에겐 무용지물이라는 데도 결국 수조 원씩이나 주고 조만간 구입할 모양이다.

이렇게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해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주둔군 방위비 받아 챙기고, 고가의 무기도 팔아 먹고, 더구나 신흥 군사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기지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미국이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바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상당수 우매한 한국민들은, 이제라도 그같은 미국의 실체를 똑바로 알고 한반도 분단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엄중히 물어도 모자랄 판에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자 가장 큰 통일의 걸림돌임을 모르고 오히려 미국을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되도록 적극 도와줄 최대 우방으로 굳게 믿고 있으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비록 지금은 우방이지만 미국은 언젠가 우리가 통일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외세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결코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하고, 햇볕정책으로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을 추구한 남한 진보 좌파 정부의 자주적인 노력을 못마땅해 하고 집요하게 방해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해야만 한반도 통일이 가능하다”고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가 말했듯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는 한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얼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녀에게 “북한은 남한의 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우려하는 주한 미군 철수 없이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선대의 유훈을 통치 이념으로 받들고 이어가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남한의 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김 위원장의 다짐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일 것이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또 무작정 기다린다고 오는 것도 아니다. 우방이 가져다 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더 늦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온전히 우리 민족 스스로 힘을 길러 달성해야만 한다. 김일성 주석이 그랬다. “완전한 통일국가는 후대에 맞기자”고. 반통일 외세의 집요한 간섭과 저항을 물리치고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들이 만나 발표한 역사적인 6.15 와 10.4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우리 민족이 통일을 향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한 대로 한 발짝씩 떼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도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의 조국은 하나였고 민족도 하나였다. 그랬던 우리가 지난 60여 년 동안 남북으로 갈려 서로의 가슴팍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통한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이제 그 비극의 사슬을 끊어내고 남과 북 우린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  


김중산(LA, 자유기고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788&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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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영등포 돌아온 희귀식물 ‘등포풀’

100년 만에 영등포 돌아온 희귀식물 ‘등포풀’

조홍섭 2015. 07. 02
조회수 2081 추천수 0
 

1914년 미국인 의사 밀스가 영등포 습지서 처음 채집, 지난해 밤섬서 자생 확인

여의도와 함께 한 하중도이던 밤섬, 폭파돼 골재로 사라졌지만 등포풀이 기억 이어

 

ba0_P6120067.jpg» 밤섬 물가에 주걱 모양 잎을 지닌 작은 식물인 등포풀이 여의도를 바라보고 있다. 밤섬은 여의도에 몸체를 내어주기 전 여의도와 하나의 하중도를 이뤘다. 사진=조홍섭 기자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병리학 교수였던 랠프 가필드 밀스(1884~1944)는 20세기 초 10년 동안 조선에 머문 미국인 의사였다. 그는 조선인에 흔한 배앓이가 회충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등 기생충, 풍토병, 식생활, 전통의학 등을 주로 연구했다. 
 
특히 식물에 관심이 많아 “짬만 나면 식물채집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해, 무려 1만5000여점의 식물 표본을 남겼다. 그는 소래 해안에서 ‘싸리풀’이라고 불리던 식물이 소금기 많은 미국 황무지에서도 재배할 수 있다고 보고 채집해 표본과 씨앗을 미국 농업국에 보냈다. 이 풀(둥근잎매듭풀)은 미국의 버려진 땅을 목초지로 바꾸는 데 기여해 밀스는 연방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표본.jpg» 밀스가 1914년 6월12일 서울에서 채집한 등포풀 표본. 도쿄대 표본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이우철 강원대 명예교수 
 
그는 1914년 6월12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포풀’이라는 식물을 서울에서 채집했다. 고 이영노 박사는 나중에 그 지점을 영등포로 보고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처음 발견된 지 100년 만에 등포풀이 다시 영등포에서 확인됐다. 국내에 드물게 관찰되는 멸종 위기종이 국내 최대 규모로 고향인 서울 한복판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ba6_서울시_2009.jpg» 밤섬과 여의도. 한강 하류쪽에서 2009년 촬영한 모습이다. 왼쪽이 윗밤섬이다. 사진=서울시

 
작은 습지식물인 등포풀이 살아남은 곳은 영등포구에 속하는 한강의 윗밤섬이다. 밤섬은 둘로 나뉘어 있는데 서강대교가 지나는 아랫밤섬은 마포구 관할이다.
 
지난 3일과 12일 윤석민 한강유역환경청 전문위원의 안내로 밤섬을 찾았다. 윤씨는 지난해 생태계 변화 관찰 조사 중 등포풀과, 마찬가지로 밀스가 이곳에서 1914년 채집한 희귀식물인 대구돌나물의 자생을 확인했다.

 

P6120042.JPG» 등포풀과 함께 밤섬에서 발견된 대구돌나물.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습지식물로 크기가 아주 작다. 사진=조홍섭 기자

 

여의도 서강대교 남단에서 배를 타고 윗밤섬으로 향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윤씨가 자갈과 모래가 깔린 물가를 가리킨다.

 

ba2-1_P6120193_1.jpg» 등포풀은 아주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운데 위쪽 주걱 모양의 잎에 작은 흰꽃이 달린 식물이 등포풀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짐작한 것보다 등포풀은 더 작았다. 물별이끼, 물벼룩이자리, 뚝새풀(둑새풀) 틈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개체를 찾았다. 주걱 모양의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2~3㎜의 앙증맞은 흰 꽃이 달렸다.

 

ba0-1_윤석민.jpg» 앙증맞은 등포풀 꽃을 확대한 모습. 사진=윤석민 전문위원
 
등포풀은 최근 대구·부산, 경남·북, 제주에서 극소수의 개체가 발견된 현삼과 식물이다. 자생지인 습지가 급속히 사라진데다 워낙 크기가 작아 전국 구석구석을 훑는 아마추어 식물 애호가들도 드물게만 발견한다. 산림청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식물이기도 하다. 
 
썰물로 물이 빠진 윗밤섬과 아랫밤섬 사이 고랑을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강에서 보기 힘든 자연하천과 습지의 모습이 오롯이 펼쳐졌다.

 

ba2-2_P6120130.jpg» 윗밤섬과 아랫밤섬 사이 물골을 따라 치어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새끼 물고기가 큰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도망쳤다. 고랑 양쪽에 드러난 기슭에서 여러 개체의 등포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랑을 따라가자 키 큰 갈대와 부들에 숨겨진 호수가 나타났다. 팔뚝만 한 잉어들이 물방울을 튀기며 몰려다니며 산란행동에 바빴다.

 

ba1-4.jpg» 두 밤섬 사이에 위치한 작은 호수. 외부에선 보이지 않는다. 사진=조홍섭 기자

 

ba1-5.jpg» 이 호도에서 밀물 때 물골을 따라 들어온 잉어들이 산란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섬에는 50~60년은 됨직한 굵은 뽕나무가 많았다. 밤섬에선 오래전부터 양잠을 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있던 뽕나무의 후손인지 모른다. 굵은 오디가 다닥다닥 열려 번식기 여름철새들의 요긴한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커다란 소리로 우는 개개비를 비롯해 새끼를 데리고 있는 꿩, 오색딱따구리, 번식중인 민물가마우지, 제비, 멧비둘기가 눈에 띄었다. 밤섬은 홍수 때 한강에 떠내려온 온갖 식물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P6030254.JPG» 동물이 다닌 흔적 말고는 따로 길이 없는 밤섬은 갈대와 물쑥, 버드나무 등이 무성해 도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진=조홍섭 기자
 
고산지대에 사는 가래나무와 애기쐐기풀, 상류에서 온 외래종인 가시박이 자라고 있었다. 관목과 물쑥, 갈대밭에 파묻혀 있노라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가 자동차 소음과 앰뷸런스 경적이 도심임을 일깨워줬다.

 

ba7_서울시.jpg» 1968년 여의도 개발 공사 현장에서 김현옥 서울시장이 블도저를 운전하고 있다. 블도저란 별명의 그는 1년 예정의 여의도 윤중제 공사를 4달만에 끝냈다. 건너편에 보이는 언덕이 밤섬이다. 사진=서울시, 권혁희(2012) 재인용.

 
밤섬은 한강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주민 62가구 443명이 강 건너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되고 1968년 2월10일 폭파돼 섬의 형체 자체가 사라졌다. 모래밭이었던 여의도를 돋워 도시로 개발하는데 필요한 단단한 암석과 흙을 가까운 거리에서 얻고, 범람원이던 여의도가 잠기지 않으면서 가로막는 물길을 확보하기 위해 밤섬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등포풀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등포풀과 대구돌나물 모두 물가에 사는 한해살이풀이어서 생존전략이 덧없으면서도 강인하다. 큰물이 나면 자생지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휴면 상태의 씨앗은 땅속에서 기회를 기다리다 일시에 자라 번식한다.

 

ba0-윤석민.jpg» 등포풀. 한해살이 식물인 등포풀은 급변하는 환경에서 끈끈하게 버티는 능력이 있다. 사진=윤석민 전문위원
 
여의도 윤중제를 쌓느라 밤섬의 바위와 토사를 모두 들어냈지만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습지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근근이 삶을 이어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중에 상류 어딘가에서 떠내려 왔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한강 상류에서 등포풀의 자생지가 밝혀진 곳은 없다.

 

1968_서울시사편찬위원회.jpg» 1968년 여의도 모습. 왼쪽 양말산은 나중에 국회의사당 터가 된다. 사진=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밤섬 폭파 당시의 신문 기사는 밤섬 마을을 “500년 동안 수돗물과 전깃불 모르고 살아온 마을” “한강물로 밥 짓는 마을” 등 도심 속 낙후지로 그리고 있다. 요즘 밤섬을 ‘도심 속 무인도’ ‘도심의 생태계 보고’로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밤섬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다. 권혁희씨는 2012년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조선시대부터 폭파되기까지 밤섬의 역사를 더듬었다.

 

64_시사편찬위.jpg» 폭파 전인 1964년 밤섬 모습. 홍수기 때의 모습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시사편찬위원회

 

ba2_1911_밤섬과 여의도.jpg» 1911년 지도. 밤섬과 여의도가 하나로 이어진 하중도의 일부임이 잘 드러난다. 사진=권혁희(2012)

 

이 논문을 보면, 특히 밤섬과 여의도의 운명적 관계가 흥미롭다. 평상시에 밤섬과 여의도는 한강 하중도에서 연결된 두 지점이었다. 홍수 때만 밤섬의 용바위와 여의도 양말산(현 국회의사당 자리)이 물 위에 드러났다. 
 
밤섬은 조선시대 동안 주점만 700곳에 이르던 조선 최대 포구 마포와, 조선 각지의 세곡이 하역되던 서강 포구 사이에 자리 잡아 드나드는 수많은 배를 고치고 만들던 요충이었다. 반면 여의도는 국가 제사에 쓸 가축을 기르던 곳이었다.

 

ba5_대동방여전도.jpg» 조선시대 대동방여전도에서도 밤섬과 여의도는 범람원에 생긴 커다란 하중도에 위치해 있다. 샛강은 홍수기에만 흘렀고, 일제 때 여의도에 비행장을 만들면서 여의도는 섬으로 고정됐다. 그림=권혁희(2012)
 
최고의 상권과 오랜 전통 속에서 잘나가던 밤섬은 이름 자체가 ‘너나 가져라’란 뜻의 여의도에 몸을 내주고 사라지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권씨 밤섬과 여의도의 운명적 관계를 “문명과 자연의 표상으로 재현되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밤섬과 여의도의 운명적인 관계는 서울의 맨해튼으로 생존하느냐 아니면, 폭파되어 소멸하느냐(물론 이후 신화적인 부활을 거듭했지만)에 이르기까지 통합과 분리를 거듭하며, 도시 역사상의 문명과 자연의 표상으로 재현되어 의미화되고 있다. 여의도가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는 업무지구로 개발되어 한국 도시계획 역사에 기록되는 프로젝트로 회자되고 있는 반면, 밤섬은 그 희생양이 되었으며 이후 다시 한강 속 자연을 대표하는 명소로 부활하는 역사를 연출해 내고 있다.”(56쪽)
 

도시화는 밤섬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자연은 밤섬을 버리지 않았다. 퇴적물이 쌓여 밤섬은 반세기 만에 몸집을 6배나 불렸다. 생태계도 살아났다.

 

05125762_R_0.jpg» 2014년 8월20일 열린 `밤섬 실향민' 고향방문 귀향제 모습. 사진=김태형 기자

 
밤섬 주민들도 고향을 잊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2년마다 한가위에 밤섬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 이제 예전의 밤섬을 기억하는 등포풀이 이들을 반길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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