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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장사꾼의 놀이가 된 한반도의 전쟁 이미지

안보장사꾼의 놀이가 된 한반도의 전쟁 이미지

김종대 2015. 06. 02
조회수 1004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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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동 등 보수 성향의 언론 기사를 보면 이제는 국가의 안전이라는 것이 무슨 어린 애들 전쟁 놀이와 같이 희화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미국의 사드 요격체계 배치를 안 하면 국가가 망하는 것처럼 요란 떨던 언론이 이번엔 뭐라고 했느냐?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로 인해 사드나 킬체인(kill-chaine),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가 무력화 되어 실효성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뒤에서 쏘는 걸 잡을 수 있는 해군의 해상초계기,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을 더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전쟁의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내 북치고 장구치는 언론과 전문가들

 

 통상 핵심무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를 건설하려면 10년이 넘게 소요됩니다. 천문학적인 무기도입 비용에다가 운용요원의 무기 숙달, 정비시스템 구축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뭘 슬쩍 보여주기만 해도 석 달 전부터 지면을 장식한 자신들의 주장을 폐기하고 또 새로운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경망스러움을 드러냅니다. 마치 철부지 어린 애들의 전쟁놀이에나 나올 법한 일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잠수함에서 튀어 오른  미사일(모조품)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도 어린 애의 천진난만함 그대로입니다. 도대체 전쟁이 뭔지, 군사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는 자들이 전쟁을 소비하고 즐기는 일종의 놀이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살아있는 전쟁의 이미지에 실컷 취하고 놀면서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초등학교 야구 선수가 공 한 번 잘 던졌다고 류현진이나 박찬호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류현진이나 박찬호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지금 남북한이 티격태격하는 건 메이저리그 야구 보고 흥분한 어린 애들의 동네 야구 시합과 무엇이 다릅니까? 북한이 핵 미사일체계와 잠수함발사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체계까지 모두 보유했다는 건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걸 의미합니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반도 북단의 이 나라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해 낸 것입니다.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여기에 한국과 미국, 일본이 다 달라붙어야 대적이 되는 이 짜릿한 전쟁놀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이건 영화 속에 있던 전쟁 이미지가 현실로 튀어나온 사건입니다. 드러누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지 않습니까? 자세한 기술적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의 SLBM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야구공 한 번 잘 던졌다고 박찬호나 류현진이 되지 않습니다. 그걸 알면 차분하게 대응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전쟁의 가짜 이미지에 속지 않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면 초라한 북한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 나라는 총체적인 품질불량 국가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렇게 허세를 부리고 허풍을 떠는 것만이 고립된 처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막다른 현실이 보인다는 겁니다. 정작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다른 데 있습니다. 어린 애들 같은 언론과 군사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찌 할 바 모르는 국방부를 향해 “군사정책을 바꾸라”며 호통을 치고 자기들 멋대로 군사정책을 좌우하려고 갑질을 해대는 겁니다. 이들은 북한의 잠수함 미사일 사출실험만 보고 “내 이럴 줄 알았다”며 얕은 전문성을 과시하면서 새로운 전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국방부가 쩔쩔 맵니다.

 이런 가짜 전쟁광들이 떠드는 건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자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의 능력이 아니라 의도를 보라

 

  그러던 중 미국의 북한 전문 분석 누리집인 <38노스>에서 이번 북한의 잠수함 미사일 발사시험이 가짜로 의심된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군요. 사실이라면 이 미사일이 진짜라는 가정 하에 거의 매일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던 박근혜 정부에게는 참으로 어이없는 해프닝입니다. 그동안 우리 보수언론과 종편은 북한의 잠수함과 미사일 능력에 대한 우리 정부와 동맹국의 기술적 분석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북한 조선 중앙방송을 받아 적기에 바빴습니다. 심지어 어제 국방위에서 군 출신 의원들은 “북한이 잠수함 발사 미사일을 개발하는 동안 뭐하고 있냐”고 호통을 쳤고, 한 군 장성 출신 의원은 “1년이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이 전력화 된다”며 군사적 전문성이 의심스러운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북한 조선 중앙방송과 같은 계열사로 의심되는 조선TV는 아예 조갑제씨를 출연시켜 “핵무장을 하자”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는 주장을 내보냈습니다. 역시 같은 계열사인 조선일보는 “이제 킬체인과 사드 체계, 한국형미사일방어도 무력화 된다”며 대한민국을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이들 언론이 북한 위협을 보도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우리는 아무 대책이 없어야 합니다. 대책이 있다면 기사가 되지 않습니다. 핵미사일이건 잠수함 발사미사일이건, 무인정찰기이건, 공기부양정이건 무엇이든 새로 나타나면 “그런데 한국군에는 대책이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야 공포 영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이 산불을 내도 대책이 없고, 돌맹이를 던져도 대책이 없고, 노크 귀순을 해도 대책이 없고, 굶주린 개들을 내려 보내도 대책이 없고, 심지어 1990년대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북한 식량난으로 모기가 흡혈을 할 가축이 줄어들어 대거 남하하여 전방 군인이 1년에 3000명씩 말라리아에 걸려도 대책이 없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일일이 우리가 왜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까? 어떤 것은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무시해버려도 되는 것이고, 어떤 것은 대책을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문제는 대책이 없어야 합니다. 예컨대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확실한 대책이 있다면 한미동맹은 깨집니다. 미국의 억지력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국가적 취약성이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겁니다. 
  그런데 단순히 “대책이 없다”고 동어반복만 되풀이 하는 것이 오늘날 군사전문가들의 직업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북한이 대책이 안 통하는 나라여야 한다는 게 우리 보수언론이 기사를 키우는 방법이라면 앞으로 뭐가 나타난다 한들 대책은 없는 겁니다. 사실 인간의 삶 자체는 대책이 없는 겁니다. 한반도에 지진이 나도 대책은 없고, 백두산에서 화산이 폭발해도 대책은 없고, 혜성이 지구에 충돌해도 대책이 없고, 만일 제가 내일 암에 걸린다 해도 대책은 쉽게 나올 수 없는 겁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국가는 원래 그렇게 불완전한 겁니다. 그러니 핵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극한의 공포를 내세우며 “대책이 없다”고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저의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겁니다. 무슨 남한이 핵 무장을 합니까? 할 수 있는 건 북한 핵이 위협적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밖에 없지요. 그게 아니면 이민을 떠나시든가. 이민도 안 가고 강남의 아파트에 살면서 대책 없는 공포를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안보장사입니다. 이런 언론과 가짜 미사일에도 흥분하는 군사전문가들이 과연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믿으십니까? 거기에 넘어가는 박근혜 정부가 안보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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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동행사 방해 한.미 정부 규탄

 
 
범민련 남측 본부 “장소. 내용 핑게 민족 잔치 방해”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6/02 [14: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회원들과 양심수후원회 민가협 통일광장 회원들이 한미 당국이 민족공동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장 이규재 이하 범민련)가 한국 정부와 미국이 6.15 민족 공동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양국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2일 오전 11시 청와대 인근 청운동 사무소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5월 20일경 예정 되었던 6.15민족공동행사를 위한 개성 실무접촉이 무산되고, 6.15민족공동행사가 파탄의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범민련 이규재 의장은 “올해는 외세에 의해 조국이 분단 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의 이정표인 6.15 남북정상을 한지 15년째 되는 의미 있는 해로 남북 8천만 민족은 작년부터 올해를 통일의 획기적 해로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에 따라 남북 민간단체들은 “6.15 민족공동행사는 서울에서, 8.15 광복절 행사는 평양에서 갖기로 합의했으나 남측 정부는 불필요 하게 간섭하면서 민족공동행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규재 의장은 “현재 박근혜 정부는 님북 민간교류를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를 불허 하고 있다.”면서 “1999년 남북 노동자 축구 대회를 계기로 남북정상이 만남을 가졌고, 금강산길이 열렸으며 개성공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5.24 조치를 해제하고 남북 민간 교류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 의장은 “명분상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 교류를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미국이 뒤에서 남측 정부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 자명하다.”며 미국을 규탄했다.
  
이규재 의장은 특히 “우리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주와 통일”이라며 “각계 각층이 떨쳐일어나 손을 맞 잡고 조국의 자주 통일을 열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 범민련 이규재 의장이 우리민족에게 시급한 것은 자주와 통일이라며 각계각층이 연대하여 조국의 자주 통일을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이어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남북 민간단체와 당국은 분단 70주년을 통일의 전변적 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이를 훼방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장소와 내용을 가지고 민족 공동행사를 방해하자 북 당국도 급기야 지난 1일 남북 분산 개최를 통보해 왔다.”고 말하며 남측 정부가 의도적으로 민족공동행사를 파탄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 시키고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북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북에 대해 공포정치 운운하며 비방중상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고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권 명예회장은 “정부가 6.15민족공동행사를 비정치적인 것으로 한정하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북 겨레가 공연이나 보고 꽃놀이나 하라는 것”이냐며 “공동행사가 열리면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민족공동행사의 핵심적 내용이 되어야한다. 그 것은 최고의 정치적 내용인데 이를 논하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적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은 발전하고 있다.”면서 “우리민간 통일 운동 단체들은 정부이 대북적대 정책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주통일의 기치를 높이들고 반드시 올해를 통일의 전환적 해로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범민련 서울본부 김규철 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적대 정책과 외세 공조를 폭로 규탄하며 자주통일의 길을 지켜 갈 것을 천명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서울범민련 김규철 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5월 20일 ∼ 21일의 개성 실무접촉이 무산되고, 2015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남북협상이 박근혜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표류하던 상황에서, 지난1일 북측은 “6.15공동선언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각기 지역별로 분산개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입장을 보내오기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기자회견문은 “우리는 분단 70년, 6.15공동선언발표 15돌을 맞는 올해 민족공동행사와 남북 각계각층의 상봉이 이루어져 남북관계 개선이 제2의 6.15시대로 이어지기를 학수고대하여 왔다.”면서 “민족경협사업을 곤경에 빠뜨린 5.24조치는 남북의 대화와 왕래를 가로 막고 있고 한반도 군사긴장으로 인해 남북당국간 회담도 난망한 상황에서 남북해외가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6.15민족공동행사는 이 땅의 평화와 대화를 바라왔던 우리민족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민족공동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러나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의 남북해외 실무협의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오만무도한 간섭과 통제는 결국 민족의 간절한 염원을 파탄지경으로 내몰았다.”며 “이러한 결과는 6.15공동선언 이행의 통일궤도에서 탈선하여 통일문제를 정권안보용으로 써먹으려는 박근혜정부의 대결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정부는 인수위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없다. 오히려 드레스덴 선언과 <통일준비위>의 활동을 통해 ‘경제통합을 통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만을 반복하여 말하여 왔다. 대다수 통일전문가들과 국민들이 5.24조치를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여 철회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비핵화’니 ‘대화의 진정성’이니 하는 조건을 달아 대결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박근혜 정부의 반북 적대정책을 비판했다.
 

▲     © 이정섭 기자



아울러 “정부는 ‘조국광복 70돌 8.15행사’를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과 ‘체제대결’로 끌고 가며,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를 관변행사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하거나 정부의 통제아래 두려 하고 있다.”며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총리내정자로 지명하여 전면적인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한편으로는 한미일전쟁동맹을 서둘러 구축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문화예술행사로 통일행사를 치루라는 것 자체가 박근혜정부의 순수치 못한 치밀한 정략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통준위가 앞서서 개혁개방유도해서 흡수통일 할테니 민간은 그저 문화예술계가 만나서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라’는 얼빠진 소리인 것이다. 통일 없는 통일행사만 하라는 것이야말로 민족공동행사를 하지 말라는 압력이자 겁박 아닌가”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범민련 기자회견문은 “굳이 6.15선언발표 15돌을 맞아 미국에 가서 대북제재를 위한 한미공조강화를 논의한다는데서 이미 박근혜정부는 공동선언이행의지도, 공동행사 성사의지도 없었음을 말하여 준다.”면서 “6.15와 8.15를 맞이하여 남북해외가 한자리에 모이는 민족공동행사는 정부도 아니고 통일준비위도 아닌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가 당사자이며 주관기구이다. 정부는 그 어떤 부당한 간섭도 통제도 즉각 중지하여야 한다.”고 정부의 간섭 배제를 거듭 촉구했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민족공동행사가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대북적대정책이라고 폭로하며 민족의 이익을 위해 박근혜 정권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전향적 자세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기자회견문은 “2008년 이후의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민족문제에 미일외세를 끌어들이면 이 땅에는 대결과 영구분단과 전쟁의 위험만이 남게 된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라고 강조하고 “분단된 민족의 비극과 고통은 사상과 제도를 상호존중하고 공존공영공리의 원칙에서 공동번영하는 통일국가를 지향할 때라야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의 전환을 요구했다.
  
회견문은 끝으로 박근혜정부가 5.24조치를 철회하고 6.15공동선언이 민족의 살길임을 인정하고 민족공동의 자주통일행사를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며 “범민련 남측본부는 7.4조국통일3대원칙과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아래 6.15, 10.4선언에서 합의한대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세력과 힘을 합쳐 더 힘차게 투쟁해 나갈 것”이이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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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통일운동을 향하여


<기고> 이재봉 원광대 교수
이재봉  |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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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2  10: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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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남이랑북이랑 통일운동 대표)


올해 ‘분단 70년’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주제도 “분단 70년을 맞아 새로운 통일운동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분단된 지 70년이 흐르도록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한 채 통일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게 안타깝다. 나는 전업 또는 전문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북한 및 통일문제에 관해 공부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으며, 부업으로 평화와 통일운동에 한쪽 발이나마 걸쳐온 것이다. 부업 통일운동가로서 시민단체의 새로운 통일운동을 모색해보는 게 부담스럽지만 지금까지 겪어온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통일운동에 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내가 통일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북한의 식량난이었다. 1995년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세계식량계획 (WFP)에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일본에도 식량지원을 부탁했다. 쌀이 남아돌아 보관하기 어렵다면 창고에서 썩고 있는 쌀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에 따른 남한의 ‘조문 파동’으로 남북 사이에 대화나 접촉이 끊긴 터였다. 북한이 남한에 손을 내밀지 못하던 차에 김영삼 정부가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했다. 일본보다 한국이 먼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무무장관은 한국이 식량을 보낸 뒤 일본이 지원해달라며 협조를 부탁하고, 통일부장관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보내면 한일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위협하기도 했다.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속셈이었다. 6.25전쟁 발발 45주년 기념일에 “잊지 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을 외치는 대신 부랴부랴 쌀을 보낸 배경이다. 쌀을 보낸 다음날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선거 하루 전날, 청진항에서 이른바 ‘인공기게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쌀을 주면서도 뺨을 맞았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에 대북 식량지원에 호의적이던 여론이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6월 27일 선거에서 여당이 재미를 보지도 못했다. ‘순수한 인도적 차원’이 아닌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대북 식량지원의 불행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두 달 뒤인 8월 북한에서 이른바 ‘100년 만의 물난리’가 나서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졌는데도 김영삼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간 차원의 식량 지원까지 방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7월 북한 및 통일 관련 월간지에 “조건 없이 북한을 지원하자”는 내용의 글을 썼다. 잡지사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반대하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난 지지한다고 했더니, 그럼 찬성의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이었다. 나중에 잡지를 받아보니 “이 달의 쟁점”이라는 주제로 대북 식량지원에 관해 찬성과 반대의 글이 각각 한 편씩 실려 있었다. 반대의 글은 통일부 관리가 쓴 것이었다. 그 글 때문이었는지 여러 통일운동 단체들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의 반대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지원 운동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 무렵 <전북 종교인 연합회> 대표라는 분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전주고백교회 한상렬 목사였다. 그가 <북녘동포 돕기운동 전북본부>를 주도하면서 전북 도내 14개 시와 군에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아놓으면 내가 왜 북한에 식량을 보내주는 게 바람직한지 강연했다. 그 때부터 학자가 대중 강연이라는 외도를 시작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서울 이외엔 전북 지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모았다. 1998년까지 2년 동안 5억 원 정도 모금했을 것이다. 전라북도와 함경남도 사이에 역사 문화적 공통점이 적지 않다는 점을 찾아내, 남쪽에서 가장 차별 받는 전라도 사람들이 북녘의 가장 어려운 함경도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내면서 자매결연으로 발전시켜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1998년 5월 이러한 취지로 북한 당국자들과 협상하고 싶으니 주선해달라는 편지를 중국 연변의 조선족 교수에게 보냈다. 6월 긍정적 회답을 받았다. 평양 사람들이 우리와 베이징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일부에 신고하고 허락을 받아 한 목사와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초청장을 건넸다.

1998년 10월 한 목사와 둘이 일주일 일정으로 북녘 땅을 밟게 된 것은 상당한 뉴스거리였다. 남북 사이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계기였던 2000년 6.15 정상회담 2년 전이었고,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도 전이었기 때문이다. 평양에 다녀오자 여러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나 방북기 게재를 요청해왔고 다양한 단체와 기관에서 강연을 부탁해왔다. 그런 가운데 많은 대북지원 단체 임원들이 조용히 묻는 게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지원 물자를 평양에 직접 갖고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의 대북지원 운동엔 북한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의도가 배어있었던 것이다. 평양 방문을 위해 북녘동포 돕기 운동을 주도하는 듯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1999년 6월 1차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원인과 과정이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30명 안팎의 북녘 젊은이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남북 사이에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사건이 터졌는데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전투에서 이겼다고 환호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퍼졌다. 국방부는 거의 모든 일간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실어 “민과 군이 함께 애창할 수 있는 승전가”를 현상 공모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더욱 나빠지는 가운데 서해에서의 싸움에 이겼다고 축제 분위기에 빠져드는 우리 사회를 지켜보며 나는 열흘 남짓 밤잠을 설쳤다. 고민 끝에 시작한 게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이었다. 남북을 공멸로 이끌 전쟁의 가능성을 단 1%라도 줄이려면 북한에 대한 원한이나 적대감을 누그러뜨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1999년 8월부터 매달 1-2차례 10쪽 안팎의 ≪남이랑북이랑≫ 소식지를 만들어 먼저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냈다. 내 글을 읽고 동의하면 구독료나 회비라 생각하고 매달 1,000원씩 보내달라고 했다. 매달 1,000원씩 보내기 귀찮겠으면 1년치 10,000원 또는 평생회비 100,000원을 한꺼번에 보내도 좋다고 했다. 소식지를 만들고 보내는 비용은 모두 내가 부담하고, 구독료나 회비는 전부 북녘동포를 돕는데 쓰겠다고 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원한과 적대감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호소했다. 배부른 남쪽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편견과 왜곡에서 벗어나 북녘동포를 도우며 원한과 적대감을 줄이고, 배고픈 북녘 사람들은 남쪽동포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원한과 적대감을 줄인다면, 서해교전 같은 불행하고 위험한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달 만에 200만 원 이상 모였고 1년 만에 1,200만 원 이상 들어왔다. 2007년 말 ≪남이랑북이랑≫이 서울의 <남북평화재단>과 합칠 때까지 8년 남짓 구독자 또는 회원은 5,000명을 넘었고 모금액은 1억 원 가까이 되었다.

회원이나 구독자 또는 후원자들을 분류해보니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처음엔 내 글의 내용보다 나와의 친분 때문에 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모르지만 내 의견이나 호소에 동감한다며 구독료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셋째,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 <개성 평화의숲 가꾸기> 등 큰 단체들을 통해 북녘동포를 도우며 회원들이 평양이나 개성을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하자 북녘 땅을 밟아보기 위해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남북교류 활성화를 불러왔다. 교류라지만 남북 경제력의 커다란 격차 때문에 남쪽의 일방적 지원이나 다름없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남쪽 사람들은 서서 주고 북녘 사람들은 앉아서 받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남쪽의 수많은 민간단체들이 경쟁하듯 저마다 북녘의 서너 개 관변기관 가운데 한 곳과 접촉하느라, 주는 쪽이 오히려 낮은 자세를 취하며 줄을 서는 듯했다. 북녘 땅에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나 후원자 한 명이라도 더 보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교류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완전히 끊어졌다. 대북지원과 남북교류를 주요활동으로 삼아온 많은 통일운동 단체들이 거의 모두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평화와 통일을 외쳐온 활동가들은 감옥에 갇혔다. 보수정권과 수구언론 그리고 극우단체 등에 의해 모든 통일운동은 ‘친북’이나 ‘종북’ 행위로 매도당하게 되었다. 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은 물론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조차 ‘친북’이나 ‘종북’과 연결되었다.

2014년 11월 ‘신은미-황선의 통일토크 콘서트’가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다. 종편이 이를 악의적으로 보도하면서 ‘종북몰이’ 광풍이 시작되었다. 극우언론의 왜곡과 억지 그리고 횡포가 얼마나 극심한지 전국 각지에서 예정되었던 콘서트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분들이 중심이 된 단체의 초청도 취소되고, 현직 국회의원들이 초청한 국회에서의 행사까지 무산되었다. 더구나 신은미 씨는 그녀의 방북기 때문에 바로 몇 달 전 각종 언론단체들로부터 상을 받았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터였다. 그 무렵 박근혜 정권의 공안통치와 극우언론의 ‘종북몰이’에 숨죽이는 야당 정치인들이 한심했고, 무기력하게 침묵을 지키는 다양한 진보운동 단체와 조직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보자는 말이 있지만, 그렇게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도저히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중북 아줌마’로 매도당하며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극우언론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껏 강연하라고 부추겼다. 나 홀로 만용을 부리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행사가 전국 모든 곳에서 취소되더라도 익산에서는 꼭 성사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주관한 12월 10일의 익산 콘서트는 ‘일베’ 고교생의 테러로 중단되고 나는 화상을 입었다. 통일운동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었다.

지난주 5월 24일 세계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북녘에서 남쪽으로 비무장지대를 건너 왔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추구하기 위한 ‘여성 비무장지대 건너기 (Women Cross DMZ)’였다. 오래전 행사의 기획 단계부터 주관자로부터 자문을 부탁받아온 터라, 여기저기서 미국, 북한, 남한에서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귀띔 받을 수 있었다. 4월 초 남한 정보부의 끄나풀로 여겨지는 한 미국인이 남한 정권에 꽤 영향력 있는 극우인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종북’ 행사를 반대하거나 방해하라고 부탁했다. 여성들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판문점을 통해 휴전선을 건너오지 못하고 개성을 거쳐 경의선 도로를 따라 내려온 데다 300여명 우익세력의 시위를 받은 배경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에 한 재미동포 여성은 반대 시위의 규모가 예상보다 작고 강도가 약해 ‘무사히’ 남쪽 땅을 밟은 자체에 안도하는 뜻을 서울 도착 직후 전해오기도 했다. 이제는 세계적 여성운동가들의 순수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행사조차 ‘한미 공조’에 의해 반대와 방해를 받게 된 것이다. 2015년 5월 현재 민간 통일운동의 서글프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이에 앞서 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10여 차례 법정에서 이른바 ‘전문가 증언’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 통일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변론하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시대엔 ‘승공통일’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공산당을 쳐부수자고 주장하는 게 애국이었을지라도, 노태우 정부 이래 지금까지 남한의 공식 통일정책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이제는 ‘친북’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이러한 증언을 묶어 2015년 1월 ≪이재봉의 법정 증언≫을 펴냈는데, 이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강연 요청을 많이 받아왔다. 오늘 이 자리도 그렇게 마련된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서울에서든 지방에서든, 북한 및 통일문제와 관련된 강연장에선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70-80대 어르신들이 청중의 대부분이다. 내가 올해 회갑을 맞는데 나보다 어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참 안타가운 현실이다.

부업 통일운동가가 새로운 통일운동을 제안해보기 위해 지금까지 직접 겪고 느낀 점을 위와 같이 시시콜콜 밝혔다. 1996년 북한 식량난을 계기로 대북지원에 관해 짧은 글 한 편 쓰는 바람에 통일 관련 대중강연에 나서기 시작하고, 1999년 1차 서해교전을 계기로 소박하게나마 내 나름대로 통일운동을 주도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보고들은 점을 얘기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통일운동은 주로 대북지원과 남북교류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엔 북녘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 같다. 둘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과 남북교류조차 끊어지자 통일운동 단체들의 일거리가 없어지다시피 했다. 셋째,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및 박근혜 정부의 공안통치 강화로 평화와 통일 운동이 ‘친북’이나 ‘종북’ 행위로 매도당하며 활동가들이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다. 넷째, 시간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나아가 ‘종편’의 영향력 확대로 통일운동에 대한 무관심이 반감이나 적대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찾아보는 게 내가 제안하고 싶은 통일운동의 방향이다. 첫째, 대북지원과 남북교류 중심의 통일운동을 지속하는 게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면 ‘5.24 조치’의 부당성과 비현실성을 지적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활성화가 막힘으로써 북녘의 고통보다 오히려 남쪽의 피해가 훨씬 크지 않은가. 남북교류가 끊어지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불러오기보다 남한 중소상공인들의 붕괴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널리 알려 ‘5.24조치’의 해제를 이끌어내고 남북교류가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 대북지원과 남북교류 없이는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통일대박’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홍보해야 한다. 북한 붕괴를 바탕으로 한 ‘통일대박론’의 문제점에 대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통일대박론’의 허상”이라는 글을 참고자료로 덧붙인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827

둘째, 통일운동 단체들의 연대와 단합이 필요하다. 분단 70년을 맞아 가장 절실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인데, 한국전쟁의 법적 종식조차 끝내지 못하고 있다. 60여년 이상 정전협정을 종전/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때문이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유지되어야 할 법적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미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기 된다. 거꾸로 말해, 미국은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끊임없이 ‘악마’로 만들며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들어서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궁극적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가 주한미군과 평화협정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평화/통일운동 단체가 드물다. 이 분야에선 아마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평통사)>이 거의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활발하게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운동해온 것 같다. 주한미군과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하면 ‘반미용공’으로 매도되고 ‘이적단체’로 처벌받기 쉽기 때문에 많은 단체들이 나서기 곤란하겠지만, 이 기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어떠한 평화/통일운동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셈이라는 생각으로 모두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셋째, ‘종북몰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추구할 수 없다. 1989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노태우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공식 통일정책 1단계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또는 공존공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반대와 비난을 일삼으며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큰 모순이다. ‘반북’이 아니라 ‘친북’을 해야만 화해협력과 공존공영을 통한 평화통일을 성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남한이 북한보다 나은 사회라도 단점이 있고, 북한이 남한보다 못한 사회라도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 남한을 비판할 수 있고 북한을 칭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친북’ 운동도 펼치고, 북한 사회의 훌륭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본받는 ‘종북’ 행위도 떳떳하게 벌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넷째, 요즘 통일운동은 특별한 사람들의 유별난 행동으로 취급당하는 듯하다. 통일운동이 대중성을 확보하려면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특히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고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통일운동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먼저 통일운동가들의 어려운 그리고 투쟁적 언어부터 조금 쉽고 부드럽게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 1980-90년대 그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었지만, 그들의 말투는 나에게도 생경하게 들릴 때가 적지 않다. 하물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떠하랴.

또한 통일운동가들조차 분단의 폐해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예를 들어, 사회혼란이나 세금부담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북한붕괴와 흡수통일이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취업이나 실업 문제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에겐 통일이 되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처럼 군대 안에서의 사고가 잦거나 병역 비리가 그치지 않을 때는 징병제를 폐지할 수 있도록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야 한다. 또한 얼마 전 경남에서 있었던 일처럼 수천 만 원의 예산을 아낀다고 아이들 급식을 중단하겠다면 ‘아줌마’들까지 들고 일어서지만, 수 억 원의 경비가 들어갈 고고도미사일 방어망 (THAAD)을 구축하겠다는 데는 통일운동가들조차 조용하다. 통일이 되면 그렇게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쓸데없는 파괴 비용도 생산적 복지비용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렇듯 통일은 거의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 또는 ‘민생 문제’에 직접 커다란 혜택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며 온 국민이 통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없을까. 분단의 문제점과 통일의 필요성 및 방법 등에 관해서는 “분단 70년에 생각해보는 통일”이라는 글을 참고자료로 덧붙인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857

* 이 글은 2015년 6월 1일 목원대학교와 대전YMCA가 주최한 <시민단체의 통일운동>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필자 주

  이재봉 교수

 

   
 

 

화와이대학교 정치학 박사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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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 국회통제가 위헌? 논란 거리도 안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6/03 07:38
  • 수정일
    2015/06/03 07: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회법 개정안 위헌 제기에 전문가들 "행정입법 더 통제해야"

15.06.02 19:58l최종 업데이트 15.06.02 19:5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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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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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상위 법률에 위배되는 정부 시행령의 수정·변경 요구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첨예한 대결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위헌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논란 거리도 안 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우선 이번에 개정된 국회법에 대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과거 비슷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예를 들며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회 스스로가 이번 개정안이 위헌의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일부 법학자들도 국회법 개정 과정을 '졸속 입법'이라거나 '3권분립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는 의견을 내면서 개정된 국회법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라고 파상공세를 펼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면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난 자체가 허무하다. 개정 전후의 국회법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개정되기 전의 국회법 98조의 2의 3항이다. 

"(전략)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다음은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 정부 이송을 앞둔 국회법 개정안 같은 조항이다. 

"(전략)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내용을 요약하면, 기존 국회가 법률 위배 내용을 행정기관장에게 통보하는 것에서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로, 행정기관장이 국회에 시행령 수정 처리계획과 결과를 보고하던 것에서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바뀐 것이다. 

큰 차이가 없다. 기존 국회법이 다소 두루뭉슬하게 축약해 놓은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명시한 수준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행령 수정·변경 의무가 강제성을 띠는지 아닌지 여야가 확정해 달라고 하고, 여야는 이를 두고 논란 중이다. 

"개정안으로도 정부가 '배째라'면 별 도리 없어"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날 정도로 강제력이 있다고 하려면 국회의 수정 요구를 행정부가 거부했을 때 시행령은 효력이 없어진다거나 정지되는 등의 결과가 야기돼야 한다"며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에 행정부가 막말로 배째라고 나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적어도 강제력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클 교수는 "논란이 있을 게 없는 사안을 갖고 논란을 벌이는 상황이 우습다"며 "강제력이 있냐 없냐, 위헌이냐 얘기하는 게 오히려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정 교수는 "대통령령 같은 행정입법은 입법부인 국회가 '사소한 것들은 대통령이나 총리나 장관 등이 알아서 정하라'고 헌법에 따라 위임한 건데, 정부가 이런 위임의 취지에 맞지 않게 시행령을 만들고 있으니 '원래 내가 부탁한 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라'고 요구한 게 이번 국회법 개정 취지인 것 같다"며 "그렇다면 당연히 위임을 받은 정부는 원래 입법권의 주인인 국회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법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지 않아 문제가 된 최근 사례가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대통령령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다. 정부는 시행령을 정하면서 특별조사위 인원과 예산을 당초 안보다 축소시키고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특별조사위에 파견토록 해 '꼼수 시행령으로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정부 때의 대표적 사례는 4대강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당연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이지만 정부가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수정해 재해예방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결국 수십조 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사가 적절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시행됐다. 

"행정입법 당연히 통제해야... 나라 망할 것처럼 얘기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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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 세미나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참석해 국회법 개정안 위원논란을 주제로 한 제정부 법제청장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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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은 국회가 입법권한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걸 염려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행정부가 입법부에 위임받은 권한으로 시행령을 마음대로 정하고 수정·변경하는 상황을 통제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의 경우 입법부의 '입법독재'가 아니라 행정입법에서의 독재가 더 문제시 돼 왔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보는 이들이 입법독재를 거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에도 정부에 법안제출권이 없지만 한국은 법안제출권뿐 아니라 국회의원을 통해 청부입법하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 정도로 행정입법을 통제하겠다는 걸 입법독재라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도 "법치주의의 기본틀을 가진 국가는 행정입법을 다 통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엔 헌법에서 행정명령에 대해선 의회의 동의권을 부여했다"며 "시행령이 법률에 맞도록 노력하는 건 행정부의 당연한 업무인데 거기에 국회가 관여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이어 "그런데 이게 마치 새삼스러운 일처럼 위헌 논란을 일으키고, '무능한 국회가 유능한 행정부를 통제하느냐'는 식의 얘기까지 하고 있다"며 "입법부가 당연히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한다. 잘하고 못하는 건 나중의 문제고 먼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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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의심 50대 여성 숨져…격리 대상 700명 육박

등록 :2015-06-01 20:16수정 :2015-06-01 22:41

 

첫 확진환자와 같은 병원에서 입원…호흡기 질환 앓아
‘3차 감염 우려’ 격리 인원 682명…하루 만에 5배로 늘어
문형표 장관 “미흡한 초동대처로 국민 불안 끼쳐 송구”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1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치료 격리센터가 있는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1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치료 격리센터가 있는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던 메르스 의심환자가 1일 오후 숨졌다. 메르스와 관련해 자기 집이나 시설에 격리된 인원이 682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출국도 금지된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대책본부)는 이날 “지난달 20일 메르스 환자로 확진된 첫번째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 같은 층에 입원했던 여성(58)이 경기도 한 병원에서 이날 오후 6시께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이 여성의 사망이 메르스와 관련이 있는지) 역학조사와 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여성의 메르스 확진 여부 검사 결과는 2일 오전 중에 나올 예정이다.

 

이 여성은 이날 현재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18명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보건당국은 31일 밤 이 환자가 첫 환자와 함께 입원한 사실을 알고 뒤늦게 의심환자로 분류했다. 이 여성은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본부는 또 “첫 환자와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거나 2차 감염 환자들과 접촉해 3차 감염이 우려되는 682명에 대해 자가 및 시설 격리 조처했다”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또 “격리 대상자에 대해서는 관련부처에 요청해 출국 제한 조처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애초 격리 대상자를 60여명으로 잡았다가 31일 129명으로 확대한 뒤 하루 만에 다시 다섯배로 늘려 ‘1차 방역’에 실패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한데 전파력에 대한 판단과 접촉자 확인, 예방, 홍보와 의료인들에 대한 신고 안내 등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날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미흡한 초동 대응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와 불안을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1주일 동안이 메르스 확산이냐 진정이냐의 기로로 판단하고 3차 감염을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메르스 감염자 3명이 추가로 확진돼 환자 수는 모두 18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모두 첫 환자와 접촉한 2차 감염자로, 첫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같은 병동을 쓴 환자들과 가족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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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산 역사’인데 정부는 일본 눈치보며 외면

 
억울한 고통의 대물림, 원폭 2세 청년의 절규
 
여전히 ‘산 역사’인데 정부는 일본 눈치보며 외면
 
육근성 | 2015-06-01 14:35: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다…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20세기 일제의 광기의 역사는 지금까지 연장돼 우리들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


인류 최악의 실험 ‘원폭 투하’

온갖 병에 시달리며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고 김형률씨는 폐 기능의 70% 가 정지된 고통 속에서도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원폭 피해자 2세의 인권을 외치며 이렇게 절규했다.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은 채 숨이 넘어가도록 마른기침을 하던 체중 32kg의 청년은 원폭 2세였다.

1945년 8월 미국은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제를 향해 인류 최악의 실험을 감행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순간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은 2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한국인 7만 명이 피폭을 당했으며, 이중 약 4만 명이 사망했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 온 한국인 피폭 생존자는 2만 5천 명 정도다.

고향으로 돌아온 원폭 1세들 상당수가 원인 모를 병마에 시달렸지만 일본과 미국정부뿐 아니라 한국정부도 이들을 외면했다. 수십 년이 지나며 1세 대부분은 이미 사망해 2600명 정도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몸을 할퀴는 병마가 아니었다. 선천성 기형과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는 자식들이었다.

정부는 반세기가 넘도록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원폭 피해자 1세들이 직접 나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터다. 피폭 1세뿐 아니라 피폭 2세들이 겪는 고통도 컸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 의해 간헐적으로 다뤄졌을 뿐이다.


대물림되는 고통, 정부는 일본 눈치 보며 외면

원폭 피해자 김 할머니(언론 취재 당시 대구 대명동 거주/2002년)는 1945년 당시 히로시마 시내의 한 산부인과 간호사였다. 피폭 당시 섬광과 열선으로 화상을 입고 해방 후 귀국길에 올랐다. 1949년에 낳은 첫딸은 허벅지에, 이어 태어난 둘째딸 역시 팔뚝에 주먹만 한 혹이 생겼다. 아들에게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원인 불명의 양성 종양이라고 말했지만 김 할머니는 원폭 후유증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김 할머니는 삼 남매의 요구에 따라 피울음을 삼키며 친권포기각서를 써줬다. 그래도 할머니의 소원은 일본정부가 삼 남매를 치료해 주는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이 아무개 할머니의 사 남매 중 세 자녀도 원폭 후유증에 시달린다. 큰 아들은 불임증, 둘째는 정신질환, 막내는 폐결핵을 앓고 있다. 원폭 피해자가 많아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는 경남 합천에 사는 전 아무개 어르신의 자식 3명은 모두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검진조차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합천군 봉산면의 최 아무개씨도 희귀병을 앓고 있는 원폭 2세다. 가슴에 이상하게 생긴 종양을 안고 산다. 원폭 피해자를 어머니로 둔 용주면 강씨 형제는 정신지체 2급이다. 초계면 문씨 형제는 원폭 1세인 아버지로부터 후유증을 물려받았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다가 스무 살 무렵부터는 시력까지 잃고 말았다.

원폭 1세들에게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원호수당과 일부 의료비를 지원하지만, 원폭 2세와 3세들에게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 게다가 사회적 차별과 편견까지 감수해야 한다. 피폭자 박 아무개씨의 절규다.

“자식들이 나더러 ‘아부지예, 어디 가서 피폭자라고 하지 마이소. 우리 결혼 안 시킬랍니꺼’라고 역정을 내는 통에 자식에게 지장을 줄까봐 아무 말 몬하겠심더.”


한 청년의 절규, 원폭 2세 실태 세상에 알려

병마의 고통에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보태지는 원폭 2세들. 그나마 이들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진 건 한 청년의 절규 덕분이었다.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을 앓고 있던 고 김형률씨는 2002년 3월 자신이 원폭 2세임을 밝히는 ‘커밍아웃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양국 정부를 상대로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피폭자 2세 환우회’가 결성됐고, 김씨는 이 단체를 이끌며 2005년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피폭 2세를 위한 인권운동에 매진했다.

이러한 고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무관심은 여전하다. 원폭 2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안 되는 실정이다. 어느 단체에서는 1만명이라고 말하고, 다른 기관에서는 4만명이라고 추정한다. 또 어떤 이들은 8만 명을 넘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실정이니 피폭 2세 가운데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실태를 가늠하는 건 불가능할 수밖에.

정부가 피폭자들의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 뒷짐만 지고 있다. 일본정부를 의식해서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국제정세를 고려한 전략적선 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 해도… 원폭 피해자들의 구제를 외면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워진 역사’가 아니라 ‘산 역사’인데

2003년부터 원폭 1세들이 받고 있는 원호수당도 피해자들이 투쟁한 결과다. 징용병으로 히로시마로 끌려간 곽귀훈씨가 한국인 피해자도 일본정부가 지급하는 원호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일본 오사카 지법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제공한 지원과 외교적 도움은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정부가 한국인 원폭 피해 상황을 알리겠다고 나섰다. “2011년 발간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조선인 원폭피해 진상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올해 광복절을 기화로 일본 전역에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원폭 투하 70년 만에 이뤄지는 정부차원의 공식 활동인 셈이다. 그런데 일본어판 발생부수가 고작 1000부라니. 척만 하려는 모양이다.

원폭 2세들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나 마찬가지다. 국내 유일의 원폭피해자 시설에도 입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1996년 한일 양국정부가 기금을 지원해 설립된 ‘합천원폭피해지복지회관’의 경우 원폭 1세들조차 입주가 쉽지 않다. 신청, 심의, 선정, 대기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시설 정원 110명에 비해 입주 요청이 많기 때문이다. 원폭 2세의 경우 아예 신청조차 할 수 없다.


고 김형률의 절규

국회도 마찬가지다. 17대와 18대 국회 때 각각 한차례씩 ‘원폭 피해자 진상조사 및 지원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기한 내 처리가 안 돼 자동 폐기 됐다. 19대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한국인 원폭 피해는 ‘지워진 역사’가 돼 간다. 국내 중고교 역사교과서 29종 가운데 ‘한국인 피폭’ 관련 내용을 다룬 건 두산동아가 출판한 교과서 1종뿐이다.

원폭 투하 70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일본의 눈치를 살피며 실태조사조차 쉬쉬한다. 고 김형률씨가 제기한 ‘원폭 2세 특별법’ 문제는 고인의 10주기가 되도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억울한 피해자들의 실존적 역사를 '외면'이라는 지우개로 지우려 하다니. 고 김형률씨는 생전에 이렇게 외쳤다. 이 외침조차 내팽개칠 텐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꼭 지키고 싶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도 진실을 밝히려하는 것은 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피폭자 2세들의 건강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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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 미군들, '탄저균' 항의서한 전달 가로막아


단체들, 오산 미군기지서 기자회견..철조망에 항의 엽서 매달아
오산=조원호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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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1  22: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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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단체들은 1일 오산 미군기지 앞에서 탄저균 반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제공 - 한국진보연대]

 

 지난 28일 오산 미군기지에 생물학 무기인 탄저균이 우리정부도 모르게 반입되어 폐기처분되었다는 소식에 전국민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1일 오산의 미군기지앞에서는 탄저균 반입 규탄과 투병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소속 회원들 7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평택이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사드(THAAD, 고고도방어미사일) 배치와 탄저균 반입사건, 메르스 확산 등을 언급하면서 국민들의 의혹과 불신, 분노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원들은 박근혜 정부가 책임있게 나설 것을 주문하면서 ‘미국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국민은 물론, 대통령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고 우리정부가 미국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없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한미 당국에게 소파 개정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 한국진보연대]
 
   
▲ 집회를 마침 참가자들은 항의 엽서를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에 매달았다. [사진제공 - 한국진보연대]

 

참석자들은 앞으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물자의 반입, 반출시 한국정부에 통보하고 위험물질에 대해 사전 협의와 동의’를 거치도록 개정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어서 대표단들이 미군부대 사령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가려 했으나 헬멧에 방패와 곤봉 등으로 무장한 미군들이 민원실 앞에서 대표단의 진입을 막으면서 한동안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졌고 항의서한 전달은 끝내 무산되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치고 후문 쪽으로 이동한 100여 명의 참석자들은 한국진보연대가 주최하는 ‘탄저균반입사건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대표단들의 항의서한 전달을 미군들이 가로막아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사진제공 - 한국진보연대]
 
   
▲ 헬멧에 방패와 곤봉 등으로 무장한 미군들이 민원실 앞에서 대표단의 진입을 막아 항의서한 전달은 끝내 무산되었다. [사진제공 - 한국진보연대]

 

집회를 마친 소속단체 회원들은 우리국민들의 울분을 담은 항의 엽서를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에 매다는 것으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보내는 경고를 대신했다.

이날 기자회견 및 집회에는 한국진보연대, 민변,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 평택YMCA 등 6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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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전쟁 4년... 창조경제가 망치고 있다"

 

[e사람] 정우성 변리사 "정부 '눈먼 돈'에 '허수 특허' 비일비재"

15.06.01 21:01l최종 업데이트 15.06.01 21:0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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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특허전쟁>을 통해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의 본질을 짚었던 '글쓰는 변리사'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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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명목상 소송만 남았죠."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이 불붙은 지 4년이 지났다. 아직 소송은 진행중이지만 포성은 잦아들었고 언론과 사람들 관심에서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사이 두 회사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한 채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허전쟁에선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셈이다.

당시 <특허전쟁>(에이콘)이란 책에서 이 같은 특허 소송의 본질을 짚었던 정우성(43) 변리사를 4년 만에 다시 만났다(관련기사: "사실상 삼성 승리? 국내 언론 사실 왜곡"). 

2011년 4월 시작된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한 변리사의 인생을 바꿨다. 정 변리사는 언론 취재에 응할 뿐 아니라 저술 활동에도 적극 나섰고, 이듬해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애플 완승'은 애국심 탓? '삼성 관점' 벗어야 보인다)로 직업 언론인들을 제치고 KAIST 과학저널리즘대상 인터넷부문상을 받았다(관련기사: '삼성 애국주의' 벗긴 시민기자, 과학저널리즘상 받다).

이후에도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에이콘)에 이어 아빠 육아 이야기를 담은 <나는 아빠다>(알마)를 냈고 각종 매체 기고 활동을 통해 '글 쓰는 변리사'로 활약하고 있다.

휴대폰 특허 많은 삼성이 '신참' 애플에 고전한 까닭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정 변리사는 변리사 5명을 포함해 직원 8명이 일하는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였다. 삼성-애플 특허 소송은 두 당사자와 우리 사회, 그리고 정 변리사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특허가)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라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기는 어려워요. 단순하게는 기업 경영에서 특허가 정말 중요하다, 이 소송을 교훈 삼아 우리 산업에서 특허 경쟁력을 찾자는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건 문제의 겉모습일 뿐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흥미롭게도 삼성전자는 휴대폰 업계 선발주자이고 애플은 2007년 처음 휴대폰을 만든 후발주자예요. 삼성이 애플보다 무선통신분야 특허가 10배나 더 많았어요. 특허전쟁이 벌어지면 당연히 삼성이 압도적으로 이겨야 하죠. 삼성 특허팀도 그런 전략을 폈을 테고 소송이 9개 나라로 번진 것도 삼성이 주도했어요. 그런데 소송 전개 과정에서 삼성이 밀렸고 애플이 주도했어요. 우린 여기서 교훈을 찾아야 해요."

특허는 '숫자 싸움'이 아니다. 특허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나야 특허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에서 원천기술을 강조했듯 삼성도 원천특허와 표준특허로 애플을 공략했지만 결국 무용지물이 됐어요. 특허가 독점인 만큼 책임이 있어요. 바로 독점 규제죠. 우리 산업은 대기업이 주도해 속성으로 발전하다 보니 독점을 어느 정도 봐줬고 특허의 독점적 속성도 고찰하지 못했죠."

삼성전자는 처음에 휴대폰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무선통신기술 관련 '표준특허'를 앞세워 애플에 맞섰지만 외국 법원에서 '프랜즈 조항'에 발목이 잡혔다. 자칫 표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특정 산업을 독점할 위험이 있어, 경쟁사도 합당한 사용료를 내고 그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애플이 앞세운 제품 외관 같은 디자인 특허는 힘이 약해 보여도 법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이어서 '여론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원천특허와 표준특허는 일부 대기업이나 가능하지 중소기업은 대부분 소외될 수밖에 없었어요. 산업이 대기업 중심이듯 특허도 대기업 중심이었던 거죠. 스마트폰 등장으로 산업 패러다임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대기업-하청기업 수직적 구조에서 플랫폼 중심의 수평적 구조로 바뀌었어요. 기업의 특허 전략이나 국가의 특허 정책도 달라져야죠. 

요즘 중소기업, 스타트업, 청년창업, 창조경제 얘기하는데, 특허는 그런 비즈니스 활동에서 아이디어나 브랜드, 디자인이 나오게 하는 촉매제이고 아이디어 유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권리' 이전에 하나의 '과정'인 거죠. '권리'로서 특허가 중요했다면 삼성-애플 소송에서 삼성이 큰 승전보를 가져왔어야죠. 애플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사소한 것들이지만 지금은 그런 게 혁신이죠."

"창조경제 지원에 행정업무 늘고 '허수 특허'도 비일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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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 변리사가 만든 소책자 3종 세트.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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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요즘 IT(정보기술) 업계 화두인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로 이어졌다. 

"창조경제 담론도 좋고 멋지잖아요. 창조경제란 말을 생각해 낸 사람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수직적 체계에서 에코시스템으로 바뀌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반대할 이유가 없죠. 

다만 창조는 누가 하느냐. 사람이 하는 거죠. 사람의 활력과 자율성이 중요한데 타율성에 의해서는 창조 활동이 안 나온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정부 지원 사업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현장에선 그걸 '눈먼 돈'이라고 해요. 지원 사업은 행정과 유대해야 하는데, 창조경제와 행정의 관계를 풀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요. 

기업들이야 불경기고 자금 사정도 어려운데 정부에서 각종 명목으로 자금 풀고 지원 사업하니 좋죠.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행정 업무에서 힘들어해요. 국가가 지원하면 평가와 감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서류 구비나 평가 준비에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어요.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창의성이 행정 업무에 소모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주객이 뒤바뀌는 현실이다.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특허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지식재산권을 강조하다보니 아이디어가 정말 가치 있는지 생각하기보다 일단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내는 특허가 비일비재해요. 기업도 그렇고 국책연구기관도 허수가 많아요. 연구개발을 평가하기 가장 좋은 게 특허 출원이나 보유 특허 건수거든요."

변리사는 개인이나 기업이 발명한 독창적 아이디어부터 개발 단계인 기술이나 상품, 서비스가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도록 특허 출원을 돕는 전문가다. 특허를 받으려면 각 나라 특허청을 상대로 상품이나 기술 같은 실체 대신 글과 도면이 담긴 문서로 모두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을 잘 이해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변리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쨌든 특허 출원이 늘어나면 변리사 업계에선 반길 일 아닌가요?
"아니죠. 변리업계도 심각해요. 지금 변리업계는 2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어요. 우선 시간이 흐르면 가격이 오르는 제품 가격과 달리 변리사나 변호사, 회계컨설팅 같은 서비스 가격에는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아요. 시간이 흘러도 가격 안 오르고 경쟁이 심해지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죠. 국책연구기관이든 기업이든 무의미한 특허나 행정에 수반되는 특허에는 굳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아요. 변리사 서비스 수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우리 같은 전문가가 보기엔 가치 없는 특허가 태반이에요.

두 번째 문제는 국가가 창조경제 명목으로 자금을 많이 풀면서 다양한 기획 사업이나 컨설팅 사업을 만들어요. 여기서 수행기관과 수혜기관이 나오는데, 컨설팅 사업은 특허와는 무관하지만 돈은 커요. 몇천만 원, 몇억 대가 될 수도 있으니 변리사가 머리 짜내서 특허 권리화에 필요한 글을 쓰기보다 컨설팅해서 발표 자료나 행정업무평가에 필요한 서류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요. 그럴수록 실무 역량이 떨어지는 거죠. 좋은 특허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발명가)과 그 아이디어를 문서화하는 사람(변리사) 협업으로 경쟁력이 확보돼요. 후자가 열악해져서 좋은 특허도 실무자 때문에 나쁜 특허가 되면 심각하죠. 그런데 이렇게 막말해도 되나(웃음)."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던 정 변리사가 이 대목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자신이 10년 넘게 몸담은 변리사 업계에 대한 비판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후배 변리사들이 걱정돼요. 일(변리사 고유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 일을 잘하려면 장인이 돼야 하는데 그럴수록 경제적 빈곤함이 동반하는 현실. 변리사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에요. 그런 정통 실무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제 시대적, 직업적 소명이에요."

이날 정 변리사를 만난 직접적 계기는 소책자였다. 정 변리사는 지난해 <특허, 더 나은 생각>에 이어 최근 <디자인 극장>이란 소책자를 비매품으로 펴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판형에 100쪽 안팎에 그쳤지만 특허와 변리사 업무에 대해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었다.    

"원래 회사 홍보 자료를 만들려고 했는데 팸플릿 같은 건 대부분 버리잖아요. 이왕이면 세상에 이로운 걸 만들자고 해서 책자를 만들게 됐고 크게 만들면 들고 다니기 힘들 테니 양복 주머니나 핸드백에 들어갈 크기로, 쉽게 버리지 않게 (디자인을) 예쁘게 만들었어요."

실제 책 표지는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1899)의 원작 삽화와 19세기 화가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명화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1877)처럼 저작권 시효(저작권자 사후 50년)가 지난 옛 그림을 사용해 아름답게 꾸몄다. 여기엔 지식재산권이 창작자의 '권리 보장' 못지않게 후세들의 창작에 '활용'돼야 한다는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

"지금까지는 특허를 기술과 권리(법률)로만 '2원론'으로 봤는데 전 '경영(비즈니스)'을 더해 '3원론'을 주장해요. 기업이 망하면 권리는 사라지고 기술도 패러다임이 바뀌면 죽어요. 특허는 '경영'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기업이나 정부도 경영 관점으로 특허를 보면 시각이 달라져요.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엔 특허 출원을 안 해도 되고 어떤 경우엔 꼭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거죠.

이 책을 만든 것도 특허에 대해 어렴풋이 아는 사람은 많은데, 모호하고 심지어 잘못된 정보가 만연돼 있어요. 잘못된 정보를 만든 사람도 문제지만 저 같은 전문가가 전문성만 고집한 나머지 쉽게 이야기하거나 안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특허를 쉽게 안내하고 좋은 지식을 전달하자는 차원이죠. 만족해요. 예쁘니까. 비매품이지만 사람들 반응도 좋고.(웃음)" 

"염치없는 짓은 말자"... 대표실 버리고 출입구 택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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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인 정우성 변리사의 자리는 직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사무실 출입구쪽 자리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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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사이 특허 등 지식재산권 문제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인터넷에 올린 서체나 사진, 그림을 빌미로 누리꾼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저작권 장사'가 있는가 하면 대기업에 기술이나 상표권을 빼앗긴 중소기업이 소송을 벌이는 사례도 많다. 

"그만큼 세상이 복잡해졌어요. 우리나라에 매년 특허 신청이 20만 건 정도 상표, 디자인 권리까지 포함하면 연간 40만-50만 건이 넘어요. 내 권리를 찾는 목소리도 커진 거죠. 권리가 무수히 많은 세상에서 권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찰할 필요가 있어요. 과연 40만 개의 권리가 정말 도덕을 결정하느냐, 모두 진짜 권리냐 하는 거죠. 사실 그 가운데 외형은 갖췄지만 실제 권리가 아닌 허수도 많아요.

회사 경영 이념 맥락도 '염치없는 짓은 하지 말자'는 거예요.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뺏어갔다는 언론 보도가 많은데, 사실 권리적, 법리적으로만 바라보면 대기업이 잘못한 게 별로 없어요. 대기업은 법무팀이 있으니 잘 분석했겠지만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잘 몰라서 법적 행위를 잘못한 경우가 많을 거예요. 전통적 법리 시각으로 보면 대기업은 면책이지만 우리 정서로 보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문가는 소송에서 권리 분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더라도 일상에선 도의적으로 정당한지 따져봐야 해요."

정 변리사는 회사 경영에 18세기 독일 철학자인 칸트의 윤리학을 접목했다. 이른바 '칸트주의 경영'이다. 정 변리사가 1년 전 대표실 밖으로 나오면서 일반 직원들이 가장 꺼리는 사무실 출입구 쪽 자리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는데, (직원에게) 가급적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게 칸트 윤리학에 맞아요. 제 자리는 컴퓨터로 뭘 하고 있는지 누구든 볼 수 있어 직원들이 싫어해요. 전 눈치 볼 사람이 없는 대표니까 심력이 강해 괜찮지만, 심력이 가장 약한 말단 직원에게는 나쁜 환경인거죠. 오히려 제겐 이 자리가 채찍질 돼서 딴짓 안 하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직원들이 농담 주고받는 것까지 다 들을 수도 있어 좋아요. (웃음)"

명색이 회사 대표지만 정 변리사는 아주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저녁 약속이나 야근을 하지 않는다. 저녁이나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철칙이다. 2년 전엔 보통 아빠의 육아 이야기를 담은 <나는 아빠다>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아내가 외국인(일본인)이다 보니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별로 없어 가급적 일찍 집에 들어갔어요. 자연스럽게 아홉 살, 일곱 살 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많은 걸 배웠어요. 전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게 자기 자신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배우고, 잠도 많아져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져요. 남자의 진정한 발전은 아빠 역할을 할 때 시작한다고 할까. (웃음) 아이들이 없었다면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길이 훨씬 낫다는 거죠."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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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북공세의 허구성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6/02 05:37
  • 수정일
    2015/06/02 05: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나라를 망치는 종북귀신> 1.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북공세의 허구성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5/06/02 [02:1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연재서문] 

 

역설적으로 우리 대한민국만큼 북한을 무서워하는 나라가 또 있을 지 의문입니다. 바로 서울 한복판에서 “종북” 귀신이 춤을 추는 것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국정원 등 공안당국을 그리도 업신여기고 불신의 눈길을 보내다가도, 우리사회 누군가가 북한과 연루되었다는 공안당국의 발표만큼은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확 기울어버리는 이런 콘크리트 같은 영향력은 어찌보아야 하나요.

 

의심은 우리생활 전반에 젖었습니다. 국민들은 술자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말을 장난스럽게 끄집어냅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상의 민주화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자기의견과 주의주장도 없이 북한의 지시사항 (그것조차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을 파악해내려 애쓰고 또 제 멋대로 설정한 북한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가난과 멸시, 심지어는 감옥행도 감수한다는 “종북”주의자가 있다는 주장만큼 어리석은 견해가 또 있을까요.

 

어쩌다 한두 명, 정말로 그런 사회부적응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수 만 명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어찌 믿겠습니까. 그것도 그 수 만 명이 정당을 이루어서 지난 총선 때는 전체 유권자의 10%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처럼 허무맹랑한 소설은 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야권은 국가보안법과 종북 색깔론에 휘말릴까 두려워 선거에 번번히 패하면서도 매번 종북공세에 넘어가 단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만큼 북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자기 경력에 “북한”이 튀면, 정치생명이 끝장난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리하여 그 종북이 무엇이길래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국가보안법 하나 못 건드리고 이제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상황에 이르도록 종북마녀사냥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역사에서 있었던 수많은 “종북공세”는 거의 대부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양치기 소년도 거짓말을 세 번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종북 거짓말은 세 번, 네 번도 아니고 무려 70년 가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1.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북공세의 허구성

 

1) 1950년 국민보도연맹

 

우리 역사는 학계에선 20만명, 최대 100만명의 무고한 양민을 잔혹하게 학살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8년 제주 4.3 항쟁과 여순항쟁 관련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반공단체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 12월, 한시적 법안으로 국가보안법을 만들면서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익세력은 보도연맹 실적을 위해,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까지 마구 가입시키면서 보도연맹원은 무더기로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원의 수를 채우기 위해 비료와 밀가루 등을 미끼로 보도연맹 가입을 유도하였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린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초에 보도연맹의 회원 수는 이미 30만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일반 농민들과 심지어는 10대 중고등학생들도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빨갱이” 누명을 벗으려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였지만 6.25 전쟁이 터지자 도리어 “확실한 빨갱이”로 몰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 당하였습니다. 6.25 전쟁에서 한-미가 패퇴를 거듭하자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무고한 양민들을 무리로 학살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깡패들이 최대 100만명까지로 추정되는 집단학살을 자행한 배경은 “보도연맹원들이 정말로 종북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하게 학살당한 보도연맹원들이 무죄임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최대 100만명에 달하는 “보도연맹원”의 피해자들이 종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을 죽일 때는 “빨갱이일지도 모른다”며 마구 죽였는데,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나오니 모두가 무고한 양민이었던 것입니다. 종북사냥의 실상은 무고한 양민에 대한 잔혹한 학살이었습니다. 잔혹한 국가범죄였습니다. 

 

 

2) 1958년 진보당 조봉암 선생

 

종북사냥, 빨갱이 사냥은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정치인에게도 집중되었습니다. 1958년,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 반대파인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를 간첩 혐의로 몰아 사형시켰습니다. 오로지 북진통일 주장만이 팽배했던 대한민국에서 죽산 조봉암 선생은 “평화통일”을 주장했는데 그로인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였습니다. 오늘날 조봉암 선생을 북한의 꼭두각시로 보는 이는 한명도 없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1950년대 말 이승만의 최대 정적이었습니다. 1956년에 치러진 3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봉암 선생은 유효표의 30%가 넘는 216만표를 득표했습니다. 당시 이승만과 자유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풍토에서 30%는 엄청난 이변이었습니다. “조봉암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조봉암의 등장으로 이승만의 장기집권이 위협받자, 이승만 정부는 죽산 조봉암 선생과 진보당이 ‘평화통일론’을 주장해 대한민국의 국시인 북진통일을 위배했으며, 북한이 밀파한 간첩과 접선해 ‘폭력혁명을 기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상식적으로 “평화”통일을 외치는 평화세력이 “폭력”혁명을 기도하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1958년 진보당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 체포 1개월 만에 진보당은 전격적으로 등록 취소되어 해산당했으며,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판은 채 2년이 되지 않아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1959년 7월 31일, 진보당 당수 조봉암 선생은 형장의 이슬로 산화했습니다. 4.19 혁명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진보당과 조봉암 선생에 대한 모든 혐의는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3) 1974년 민청학련

 

4.19 혁명 이후 종북사냥, 빨갱이 사냥이 근거없는 낭설이었음이 드러나자 군부독재정권은 새로운 논리가 필요했습니다. 이제부터 군부독재정권은 좌경용공분자라는 새로운 조어를 탄생시키며 말만 바꾼 빨갱이 사냥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대표적 희생양이 바로 1974년 민청학련 관계자들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 재야인사를 구금해 무려 8명을 사형시킨 사법살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4월 3일, 박정희가 선포한 <긴급조치 4호>에 의해 대학생을 포함한 총 1024명을 조사해 이 중 180명을 군법회의에 회부시킨 공안탄압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과정에서 변론을 맡던 강신옥 변호사가 법정모욕,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으며 일본인 관련자 2명에게 징역 20년형이라는 중형을 부과해 한-일간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유신정권은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인혁당 관련자들을 지목하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 1974년 7월 13일,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18시간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한편 김병곤, 김지하, 나병식, 이철, 유인태, 이현배 등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되지는 않았으며 김지하의 경우는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김근태, 이해찬, 장영달, 유홍준, 이철, 유인태 등 민주당의 여러 전현직 정치인들이 민청학련 사건 때 빨갱이로 몰려 탄압을 받았던 분들입니다. 70년대 반유신투쟁에 나섰던 이들은 이후 “민청학련 세대”로 불리면서 민주당 내에 비중있는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민청학련 세대를 투옥하고 학살한 논리는 “좌경용공세력의 내란음모”였습니다. 민청학련이 인민혁명당의 지도 아래 일본공산당 출신의 하야카와 요시하루와 함께 이철, 유인태 등과 접촉, 폭력혁명 계획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피해자들은 국가에 재심을 요구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민주당에서 활동하셨던 수많은 민청학련 세대 정치인들도 모두 무죄입니다. 내란음모에 휘말렸던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결백했던 것입니다.

 

 

4)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박정희가 죽고 신군부의 쿠데타로 전두환이 집권하자, 공안당국은 또 다시 종북사냥, 빨갱이 사냥감을 물색했습니다. 이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바로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입니다.

 

1980년 7월 4일, 전두환 신군부 계엄사령부는 5.18 광주항쟁의 주동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해 그와 사건관련자 37인을 이른바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계엄사령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해방직후부터 좌익활동에 가담한 열성 공산주의자였으며 해외에서 북과의 노선에 동조하는 반국가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즉 <한민통>을 만들었으며 이들 불순분자들과 근래에도 접촉해왔다”고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성 공산주의자였다고 믿으시나요? 1980년 당시의 국민들은 아마도 그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1977년, 중앙정보부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체포해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으로 이들이 한민통 소속 재일지도원의 지령에 따라 국내에 잠입해 간첩행위를 했고 한민통 간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했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민통 결성을 준비하고 의장활동을 했다고 하니 내란음모 조작은 완성되었습니다. 계엄사령부는 군사재판을 통해 1981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는 커녕,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대중은 빨갱이다”라고 외쳤던 이들 모두 뻔뻔하게도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새빨간 거짓말이 또 어디 있었겠습니까.

 

 

5) 각종 간첩단 사건

 

뿐만 아니라 지난 70, 80년대에 사회지면을 강타했던 각종 간첩단 사건들이 줄줄이 연이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1975년에 있었던 ‘김우철⋅김이철 형제 간첩 사건’도 조작임이 드러나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977년, 서울대 법대, 한양대 의대생들이 재일교포 간첩에게 포섭되었다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관련자 4명도 이후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1983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으로 몰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10년형을 선고받았던 박 모 씨, 재일동포 유학생 김원중 씨도 모두 재심청구 끝에 조작임이 드러나 무죄를 판결받았습니다.

 

1964년 인혁당 사건과 저명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연루된 동백림 사건, 1967년 이중간첩 이수근 사건과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북한도 제법 잘 살더라”란 말 한마디 했다가 간첩으로 몰린 납북어민 서창덕 씨, 그리고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다 숨진 최종길 서울대 교수, 문인간첩단 사건, 심지어 1985년의 모자 간첩사건, 진도군 중림마을의 고정간첩단 사건들도 모두 재심청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남파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과 조작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함주명 선생은 재심청구로 20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간첩행위 및 방북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간 복역했던 이장형 씨는 고문에 못 이겨 간첩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그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악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처와 자식들도 똑같이 고문하겠다는 협박에 간첩사실을 시인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문후유증으로 재심판결이 있기도 전에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체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법원에 재출한 유우성 씨의 증거자료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지면을 강타한 간첩사건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공안기관에 의해 조작된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6) 지금 종북은 유죄인가?

 

새빨간 거짓말에 의해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종북”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가 “종북”이란 주장에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6.25 전쟁 당시에는 수십만의 양민이 학살당하는 참극을 낳았고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하였으며 민청학련의 선량한 청년들이 무더기로 감옥에 끌려가는 암울한 시기를 겪었습니다. 보도연맹도 무고한 양민이었고, 조봉암 선생이 종북이 아님은 물론, 민청학련도 종북이 아닙니다. 당연히 김대중 전 대통령도 종북이 아닙니다. 간첩으로 내몰려 한맺힌 옥고를 치른 수많은 간첩혐의 연루자 분들 모두 종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첨단과학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 종북이 있습니까? 종북이 있다면 그것은 또한 공안기관의 소설 속에 있을 뿐입니다. 보수언론의 요상한 입술 속에 있을 뿐입니다. 

 

 

지난 시기 수많은 애국인사들, 무고한 양민들이 끊임없이 종북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은 북한당국과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이 비슷하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당국이 “민족자주”와 “민주”, “통일”이란 말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남쪽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니니까 무언가 연계가 있다는 식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것을 북한이 쓰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쓰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용어가 그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는 재야인사들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권이나 보수인사들처럼, 북한과 비슷한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북한을 비판하는 문장을 삽입해서 국가보안법의 처벌을 피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권 인사들의 행동은 대단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자기는 국가보안법의 사상검증을 빠져나오는 대신, 국가보안법을 더욱 튼튼히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근거도 없이 북한을 비판할 것을 강요하고,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행위와 정서 자체가 반통일적인 것입니다.

그 결과로 지난 70년간 종북공세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은 김대중, 김근태, 이해찬, 이철, 장영달, 유홍준, 유인태 같은 이들이 사실은 종북 빨갱이란 주장을 믿으시는지요.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2015년에 한국사회에 종북인사들이 있다는 마녀사냥도 세월이 지나면 모두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다만 극소수 국민들은 김대중, 김근태, 이해찬, 이철, 장영달, 유홍준, 유인태 같은 이들이 정말 종북 빨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일간베스트>에서 활동하는 몇몇 일베충들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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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세균실험실의 탄저균실험, 그 충격적인 내막

오산세균실험실의 탄저균실험, 그 충격적인 내막
 
한호석의 개벽예감 <16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6/01 [09: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충격사건의 중심에 있는 오산세균실험실 
2. 오산세균실험실에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가 새로 들어간 까닭   
3. 미국이 꾸미는 세균전예비음모인가?

 

▲ <사진 1> 위쪽 사진은 탄저균을 전자현미경을 통해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탄저균감염증에 걸린 사람의 팔이 패혈증으로 괴사되는 상처부위를 촬영한 것이다. 탄저균이 인구밀집지역에 퍼지면 500만 명이 위와 같은 처참한 모습으로 몰살당하게 된다.     © 자주시보



1. 충격사건의 중심에 있는 오산세균실험실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미국에서 탄저균 표본이 민간탁송업체 페덱스(Fedex)를 통해 18개 세균실험실들에 발송되었는데, 발송된 탄저균 표본들 가운데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탄저균은 왜 위험한가?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흔히 ‘공포의 백색가루’라고 불리는 탄저균은 피부, 호흡기, 소화기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어 패혈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이다. 만일 탄저균이 인구밀집지역에 퍼지는 경우 500만 명이 탄저균감염증에 걸려 몰살당하게 된다. 이처럼 탄저균은 대재앙을 가져오는 병원체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살아있는 탄저균을 민간탁송업체를 통해 발송한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대형사고였는지 알 수 있다.


탄저균 같은 1급 병원체의 국내반입은 국내법과 국제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다. 미국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오산미공군기지에 비밀리에 반입한 것은 국내법과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한국 국민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몰아넣은 불법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 국민들은 미국에게 항의도 하지 않고 진상규명조차 요구하지 않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이번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려면 <한겨레>와 <경향신문>, 그리고 미국 <ABC> 텔레비전방송의 보도내용을 종합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사건조사결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취재에 응한 주한미국군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한 보도기사를 내놓았는데, 그 내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액체상태에서 냉동처리되어 3중으로 포장된 탄저균 냉동표본 1㎖가 2015년 4월 말 오산미공군기지에 있는 세균실험실에 도착했다. 오산세균실험실에는 미육군 전문병 10명, 미육군 군무원 3명, 미공군 전문병 5명, 미국인 계약직 근무자 4명을 합쳐 모두 22명의 전문요원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탄저균 냉동표본을 생물안전등급 냉동고에 보관하다가 2015년 5월 21일 생물안전작업대(BSC)에서 해동하였고, 해동된 탄저균을 가지고 탄저균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5월 27일 미국 국방부는 탄저균을 폐기하라는 긴급지시를 오산미공군기지에 보냈고, 오산세균실험실은 그 지시에 따라 탄저균을 폐기하였다. 주한미국군 의료진은 오산세균실험실 근무요원 22명을 검진하고 예방약을 복용시켰는데, 그들에게서 아무런 병리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미국 <ABC> 텔레비전방송은 미국 국방부의 발표내용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발표내용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했는데, 그 내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사진 2> 미국 유타주에 있는 덕웨이실험장 정문을 촬영한 사진이다. 73년 전 유타주 사막지대에 건설된 이 실험장은 미국 군부가 새로 개발한 각종 무기를 실험하거나, 새로 개발한 무기를 적재해두는 군사시설이다. 바로 이 실험장에서 개발된 무기들 가운데는 화학무기와 세균무기도 있다.     © 자주시보

 

▲ <사진 3> 미국 동부 매릴랜드주에 있는 미육군 애버딘실험장 정문을 촬영한 사진이다. 104년 전에 설립된 이 실험장도 덕웨이실험장처럼 신형 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군사시설이다.     © 자주시보


<사진 2>에서 보는, 미국 서부 유타주에 있는 덕웨이실험장(Dugway Proving Ground)은 2015년 4월 30일 미국 동부 매릴랜드주에 있는 미육군실험장에 탄저균을 발송하였다. 탄저균을 받은 미육군실험장은 <사진 3>에서 보는 애버딘실험장(Aberdeen Proving Ground)이다. 
애버딘실험장은 탄저균을 방사선으로 처리하는 안전조치를 취한 뒤에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위스컨신주, 테네씨주, 매릴랜드주, 버지니아주, 델라웨어주, 뉴저지주, 뉴욕주에 있는 18개 민간세균실험실들에 민간탁송업체를 통해 탄저균 안전표본을 각각 발송하였다.


그런데 매릴랜드주에 있는 민간세균실험실은 자기들이 받은 탄저균 안전표본 속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이 사실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에 신고하였다. 매릴랜드주 보건당국은 그 세균실험실에서 일하는 근무자 4명에게 탄저균감염증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제공하였는데, 4명 가운데 3명만 항생제를 복용하였고 나머지 1명은 항생제 복용을 거절하였다.


위에서 재구성한 <한겨레>, <경향신문>, <ABC>의 보도내용을 읽어보면, 이번 사건의 윤곽만 드러난다. 사건의 윤곽만이 아니라 내막까지 파헤치려면 다음과 같은 심층정보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민간탁송업체는 민간세균실험실에 소포를 배달할 수 있지만, 오산미공군기지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는 세균실험실에는 소포를 배달하지 못한다. 또한 민간탁송업체가 냉동처리된 1급 병원체 표본을 배달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애버딘실험장은 방사선처리를 한 탄저균 표본을 미국 각지에 있는 18개 민간세균실험실들에 발송하였고, 그와 별도로 덕웨이실험장은 방사선처리를 하지 않은 탄저균 표본을 오산세균실험실에 발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보도기사들은 두 종의 탄저균 표본이 두 갈래로 각각 배송된 과정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놓아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 두 배송과정을 분리하여 고찰해야 이번 사건의 내막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액체상태에서 냉동처리된 탄저균은 살아있는 세균이고, 분말상태에서 방사선처리된 탄저균은 죽은 세균이다. 덕웨이실험장이 오산세균실험실로 발송한 탄저균 냉동표본은 방사선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므로 살아있는 탄저균이다. 그와 달리, 애버딘실험장이 18개 민간세균실험실들로 발송한 탄저균 안전표본은 방사선처리를 한 것이므로 죽은 탄저균이다. 탄저균 냉동표본과 탄저균 안전표본을 구분하여 고찰해야 이번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있다.


셋째, 애버딘실험장이 미국 각지에 있는 18개 민간세균실험실에 탄저균 안전표본을 발송한 목적과 덕웨이실험장이 오산세균실험실에 탄저균 냉동표본을 발송한 목적이 서로 달랐다. 전자의 목적은 미국 연방정부가 2009년에 발표한 ‘생물학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untering Biological Threats)’에 따라 세균테러에 대처하기 위한 방역준비사업을 위한 것이고, 후자의 목적은 세균전준비사업을 위한 것이다. 탄저균 표본을 발송한 목적을 구분하여 고찰해야 이번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있다.

 

▲ <사진 4> 오산미공군기지 정문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기지 안에 문제의 세균실험실이 있다. 세균실험실을 설치해놓고 세균실험을 감행해도 한국 정부는 그런 불법행위를 법적으로 제지하지 못한다. 외국군대가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못 본척 묵인해주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은 치욕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 자주시보


넷째, 애버딘실험장이 매릴랜드주에 있는 어느 민간세균실험실에 탄저균 안전표본을 발송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이 섞여 들어갔다. 바로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자기들에게 배달된 탄저균 안전표본 속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섞여있는 것을 발견한 그 민간세균실험실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에 신고하였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탄저균 표본을 보낸 최초의 발송자가 덕웨이실험장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 실험장은 비공개 군사시설이므로 민간조사단이 들어가 현장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또한 덕웨이실험장이 탄저균 냉동표본을 발송한 곳이 <사진 4>에서 보는 오산미공군기지 안에 있는 세균실험실이라는 사실도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으나,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오산미공군기지에 있는 비공개 군사시설인 세균실험실에 조사단을 보내 현장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이처럼 민간조사단이 비공개 군사시설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할 수 없는 제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내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다섯째, 2015년 5월 27일 미국 국방부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로부터 연락을 받고 탄저균 냉동표본을 폐기하라는 지시를 오산미공군기지에 보내려고 했을 때, 오산세균실험실은 이미 엿새 전에 해동한 탄저균을 가지고 탄저균실험을 한창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미국 국방부는 탄저균실험을 중지시키고 실험 중인 탄저균을 폐기하라고 지시하였고, 오산세균실험실 근무요원 22명에게 “검진을 받고 예방약을 복용하도록 조치”하였다.


이번 사건은 극도로 위험한 1급 병원체인 탄저균 표본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므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접촉한 사람들을 무조건 격리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살아있는 탄저균을 취급한 오산세균실험실 근무요원들은 약식예방조치만 받았다. 이것은 오산세균실험실 근무요원들이 감염위험이 없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탄저균 냉동표본을 접수하였고, 탄저균실험을 내부규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산세균실험실에 탄저균 냉동표본이 전달된 것은 실수에 의해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내부규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한 실험활동의 첫 공정이었다. 그런 까닭에, 2015년 5월 28일 미국 육군 참모총장 레이먼드 오디어노(Raymond T. Odierno)는 미국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탄저균 표본이 규정에 따라 배송되었고, 배송 이후에도 인위적인 실수가 없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2. 오산세균실험실에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가 새로 들어간 까닭


덕웨이실험장은 왜 탄저균 냉동표본을 오산세균실험실에 보낸 것일까? 냉동처리된 탄저균 표본이 있어야 본격적인 탄저균실험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저균 냉동표본을 전달받은 오산실험실에서는 그 냉동표본을 해동하여 탄저균실험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애버딘실험장이 18개 민간세균실험실들에 탄저균 안전표본을 발송하면서 살아있는 탄저균이 섞여 들어간 것을 모르고 그대로 보낸 것은 실수였지만, 덕웨이실험장이 오산세균실험실에 탄저균 냉동표본을 발송한 것은 정상적인 발송이었는데도 미국 국방부는 탄저균 냉동표본이 실수로 오산세균실험실에 발송된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였다. 이것은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실험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짓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미국 국방부의 진상은폐는 기만책동으로 확대재생산되었다. 이를테면, 2015년 5월 30일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미국 국방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제12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을 만나 오산세균실험실에 탄저균 표본이 배달된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사고관련자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능청을 떨었다. 미국 국방장관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실험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세상을 속이는 기만극이다.

 

▲ <사진 5> 열순환기라고도 불리는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를 사용하는 모습이다.     © 자주시보


그렇다면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실험을 진행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원래 세균실험이란 냉동처리된 세균 표본을 해동시켜 세균을 활성화시키고, 그렇게 활성화된 세균을 특수장치에 넣어 세균유전자를 분석하거나 세균을 대량증식시키는 분자생물학실험이다. 이러한 세균실험에는 <사진 5>에서 보는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Polymerase Chain Reaction machine)가 사용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세균유전자분석실험이나 세균증식실험은 세균무기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오산세균실험실이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를 사용하는 실험시범을 오는 6월 5일에 진행하려고 준비하였다는 점이다. <경향신문> 2015년 5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신규 유전자분석장비(PCR)”가 얼마 전 오산미공군기지에 새로 들어왔는데, 오는 6월 5일 “주한미군 통합위협인식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장비를 사용한 실험시범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 실험시범을 위해 탄저균 냉동표본을 약 4주 전에 미국에서 반입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에서 언급한 유전자분석장비가 바로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다.

 

▲ <사진 6> 이 사진은 오산세균실험실에서 근무요원들이 세균실험을 진행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들은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를 사용하여 탄저균 유전자를 분석하고, 탄저균을 대량증식시키는 실험시범을 2015년 6월 5일에 진행하려고 준비하였다.     © 자주시보


위의 정황은 미국 국방부가 탄저균 폐기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폴리메라제 연쇄반응기를 사용한 탄저균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데, 그들의 탄저균실험이 탄저균을 무기화하는 세균전준비사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이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실험을 진행하던 중 미국의 민간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표본배송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뜻밖에 세균전준비사업으로 의심되는 움직임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미국 국방부가 이번 사건을 탄저균표본배송사고로 축소하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미국이 오산미공군기지에 세균실험실을 설치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8년 9월이다. 27년 전, 미국은 세계 각국에 건설한 수많은 해외미국군기지들 가운데 오직 오산미공군기지에만 세균실험실을 설치했고, 해외미국군기지들 가운데 오직 오산미공군기지에만 화생방중대를 창설했다. 지난 27년 동안 오산세균실험실은 세균실험을 진행해왔고, 오산화생방중대는 세균전을 연습해왔다. 이처럼 미국이 오산미공군기지에 세균실험실을 설치하고, 세균전특수부대를 창설한 것은, 조선을 상대로 세균전을 감행하려는 미국의 적대감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준다.


지금 미국 육군 연구개발 및 공병사령부(U.S. Army Research Development and Engineering Command)는 ‘공동 주한미국군 문맥 및 통합위협인식 첨단기술시범(Joint United State Forces Korea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ion)’이라는 긴 이름으로 불리는 특수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미국 군부는 그 특수사업을 ‘주피터 에이티디(JUPITR ATD)’라고 약칭한다.

 

▲ <사진 7> 미국 육군이 생물학통합탐지체계(Biological Integrated Detection System, BIDS)로 사용하는 탐지장비를 실은 야전차량을 촬영한 사진이다.     © 자주시보


그 특수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실무를 맡은 곳은 미국 육군 연구개발 및 공병사령부 산하 화학-생물학방호 공동사업실행실(Joint Program Executive Office for Chemical Biological Defense, JPEO-CBD)이고, 지원업무를 맡은 곳은 미국 육군 에지우드 화학-생물학센터(U.S. Army Edgewood Chemical Biological Center)다. 그 센터는 생물학통합탐지체계(Biological Integrated Detection System)를 개발했는데, <사진 7>에서 보는 군용차량은 그 체계의 실험장비를 실은 야전차량이다. 그 센터는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와 합동으로 세균위험탐지기를 개발하였다. 
‘주피터 에이티디’라는 특수사업이 세균전준비사업이라는 점은 명백하며, 그 특수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오산세균실험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도 역시 명백하다.  

 
그런데 2013년 여름부터 미국의 세균전준비사업에서 특이한 움직임이 일어났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육군 연구개발 및 공병사령부 예하 에지우드 화학-생물학센터가 2014년 3월 7일 자기 웹싸이트에 현시한 자료에 따르면, 그 센터와 화학-생물학방호 공동사업실행실은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여름까지 2년 동안 오산미공군기지에 전문인력을 주기적으로 파견하여 주한미국군 병사들을 위한 개별적인 세균전훈련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신형 생물정찰장비들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세균전훈련을 강화하고, 화생방중대가 신형 생물정찰장비를 도입하고,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실험이 진행되는 등 일련의 군사행동은 미국이 2013년 여름부터 조선을 상대로 하는 세균전준비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 <사진 8> 일제 관동군사령부 예하 731부대 요원들이 1940년 11월 중국 지린성 농안현에서 페스트균을 사용한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극악무도한 범행장면이다. 종전으로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731부대 지휘관들을 전범재판에 세우지 않고 전원 사면해주었다. 그로써 미국은 일제의 세균전을 계승하였고, 실제로 6.25전쟁 중에 조선을 상대로 세균전을 자행하였다.     © 자주시보

 

 

3. 미국이 꾸미는 세균전예비음모인가?


탄저균무기화실험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감행한 나라는 전범국 일제였다. 일제는 731부대로 알려진 관동군 방역급수부라는 세균전특수부대를 1936년 하얼빈 부근에 설립하였는데, 731부대는 전쟁포로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사진 8>에서 보는 것처럼 잔혹한 생체실험, 해부실험, 냉동실험을 감행하여 1만여 명을 살해하였고, 중국침략전쟁 중에 중국 각지에서 세균무기공격을 161차례나 감행하는 바람에 중국인 237만명이 세균에 감염되었고 그 가운데 27만명은 세균감염증에 걸려 사망하였다.


일제는 세균전실험을 중국에서만 감행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감행하였다. 일제식민지강점기에 도쿄 인근에 있었던 제9기술연구소는 1944년 5월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에서 시한폭발물을 부착한 풍선에 세균탄을 매달아 미국 본토로 날려보내기 위한 세균전연습을 비밀리에 감행하였던 것이다.


세균무기까지 동원하며 발악하던 일제를 태평양전쟁에서 패망시킨 미국은 일본을 점령한 뒤에 일제의 세균전 범죄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처형해야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흉계는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국은 잔인무도한 세균실험과 세균전을 감행한 731부대 지휘관들을 처형하기는커녕 대량학살의 피가 흐르는 그들의 세균무기실험자료를 상납받는 조건으로 세균전 범죄자들을 도꾜전범재판에 세우지 않고 전원 사면해주었다. 이것은 일제의 세균전 범죄를 계승하려는 의도가 미국의 흉심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살려준 일제의 세균전 범죄자 23명은 종전 후 15년 동안 교또대학에서 세균학을 연구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세균학자로 자기들의 신분을 세탁하였다. 

 

▲ <사진 9> 2014년 11월 미국 유타주에 있는 덕웨이실험장에서 전문요원들이 세균전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 자주시보


참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어 전 세계가 평화와 안전을 갈구하던 역사의 전환기에 미국은 일제 전범들로부터 넘겨받은 세균무기실험자료를 움켜쥐고 세균전준비사업에 매달렸는데, 당시 미국이 세균전준비사업을 진행한 비밀거점이 이번 사건에 나오는 덕웨이실험장이다.  
미국 서부 유타주 쏠트레익씨티(Salt Lake City)에서 남서쪽으로 145km 떨어진 외딴 사막지대의 방대한 부지에 건설된 덕웨이실험장은 미육군시험평가사령부(U.S. Army Test and Evaluation Command)가 관리하는 군사시설인데, <사진 9>에서 보는 것처럼 그 실험장에서 각종 세균실험과 세균전훈련이 진행되었고 각종 세균무기가 개발되었다. 덕웨이실험장에서 진행된 각종 세균실험과 세균무기개발에 731부대의 세균무기화실혐자료가 이용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1943년 10월에 창설된 덕웨이실험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잠시 운영을 중지하였다가, 6.25전쟁이 일어나자 운영을 재개하였고,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부터 항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사진 10> 미국은 6.25전쟁 중에 조선의 수많은 민간인거주지들에 세균탄을 투하하였다. 이 사진은 미공군 폭격기들이 조선에 투하한 세균탄을 촬영한 것이다. 세균탄 내부는 네 개의 칸막이로 분할되었는데, 거기에 콜레라균을 비롯한 1급 병원균에 감염된 파리, 거미와 같은 유해곤충들을 무더기로 집어넣었다, 세균전을 감행한 사실 하나만 놓고 봐도, 미국은 조선에게 씼을 수 없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 오산세균실험실에서는 탄저균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세균전 전과범인 미국이 세균전예비음모죄를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 자주시보


그런데 미국은 바로 그 덕웨이실험장에서 개발한 세균탄을 사용하여 세균전을 감행하였다. <사진 10>에서 보는 것처럼, 6.25전쟁 중에 미공군 폭격기들이 조선의 수많은 민간인거주지들에 세균탄을 투하한 것이다. 6.25전쟁 중에 미국이 세균전을 감행하였다는 사실은, 1952년 9월 15일 조선과 중국에서의 세균전 관련 사실을 위한 국제과학위원회(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ssion for the Facts Concerning Bacterial Warfare in China and Korea)가 작성한 최종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국제과학위원회는 세계평화협의회(World Peace Council)가 설립한 조사위원회였는데, 당시 세계평화협의회 회장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저명한 물리학자 쟝 프레드릭 졸리오 뀌리(Jean Frederic Joliot-Curie)였다. 그는 세계과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뀌리 부부의 사위다. 국제과학위원회만이 아니라 국제민주변호사협의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mocratic Lawyers)도 1952년에 ‘조선에서 미국이 자행한 범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여 미국의 세균전을 인류의 양심에 고발하였다.


일제식민지강점기에 하얼빈에 설립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사령관이었던 1급 전범은 육군중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郞)인데, 미국은 6.25전쟁 중에 세균전을 감행하면서 그를 전선에 불러들였다. 이시이의 비밀방한은 1952년 초에 두 차례, 1953년 3월에 한 차례 있었다. 미국 군부와 731부대 출신 전범들의 은밀한 결탁은 731부대의 전쟁범죄를 계승한 미국이 6.25전쟁에서 세균전을 감행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6.25전쟁이 불안정한 정전상태로 접어든 때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 미국은 오산세균실험실에서 탄저균실험을 진행하면서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오산세균실험실에서 진행된 탄저균실험은 탄저균방역사업이 아니라 세균전예비음모에 직결된  것으로 보인다.   


1972년 4월 10일에 국제적으로 채택된 생물무기협정은 세균무기의 생산, 보유,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였는데, 미국이 그 협정의 가맹국으로 된 때는 1975년 3월 26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생물무기협정 가맹국으로 된 이후에도 여전히 세균전예비음모에 해당하는 비밀세균실험을 계속해왔다. 바로 이것이 이번에 오산세균실험실 탄저균실험에서 드러난 아메리카제국의 숨겨진 모습이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대에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이 조선에서 세균전을 감행했어도 미국 군부 책임자들을 전범으로 제소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02년 7월 1일 국제형사재판소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문을 열었다. 미국이 국제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세균전을 60년 만에 또 다시 감행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났으므로, 그 진상을 규명하는 조사가 필요하며, 진상조사결과에 따라 세균전예비음모가 확인되면 미국 국방장관, 미국군 합참의장, 주한미국군사령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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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혁신의 기본은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민주가 죽어야 민주가 산다 - 제9편
 
신상철 | 2015-06-01 09:12:5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개혁과 혁신의 기본은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민주가 죽어야 민주가 산다 - 제9편


2014년 7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남미 순방시 남미횡단철도 건설을 제안합니다.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을 연결한다 하여 ‘양양(兩洋) 철도’라 불리우는 이 프로젝트는 금년 5월 리커창 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남미를 순방하면서 구체화시키고 있다합니다. 

 

‘슈퍼 세일즈맨’이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해외순방 때마다 굵직굵직한 계약을 따내기로 유명한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지난 5월 20일 브라질 방문 중 바쁜 일정 속에도 짬을 내 리오데자네이로시의 지하철을 탔습니다. 중국의 철도기업 중국베이처가 제조해 브라질에 수출해 운행중인 지하철입니다.

 

중국의 고속철 사업의 역사는 불과 채 10년이 되지 않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직전인 2008년 8월 1일 베이징∼톈진 고속철을 시작으로 현재 중국 전역을 4개의 종축과 4개의 횡축을 기반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4종4횡(四縱四橫)’ 계획에 따라 총 운영거리는 1만6000㎞에 이르며 이것은 전 세계 고속철 길이의 60%에 이르는 수치라합니다.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철도수출사업에 열성인 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기술축적을 통해 승차감과 안전성 뿐만아니라 가격대비 경쟁력이 뛰어나 수출효자상품으로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리커창 총리는 2013년 10월 태국을 시작으로 10여개국에 고속철도 수출계약을 따냈으며 2014년 6월 영국 방문시에는 차세대 인프라 사업인 고속철 프로젝트에 중국의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기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합의함으로써 ‘철도 원조’인 영국에 중국산 고속철이 달리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민주가 죽어야 민주가 산다’ 그 아홉 번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웬 뜬금없이 중국의 고속철 이야기인가 하면 -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포함 중국의 지도부가 ‘세일즈 영업’에 발벗고 나서 80개국과 맺은 철도관련 설비 수출 총액이 267억7000만 위안(약 4조7000억원) 이라 합니다. 천하의 시진핑 사단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일군 영업실적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이명박은 혼자 청와대에 앉아 4대강을 파헤치는데 물경‘22조’를 썼습니다.


1. 이명박의 4대강 사업, 잊은 겁니까?

이명박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라며 멀쩡하게 살아있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파헤치는데 22조원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파헤친 강바닥에 다시 토사가 쌓이고, 수질악화의 대명사인 ‘녹조라테’가 등장하고 오죽하면 감사원 조차 2013년 1월 「4대강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과 수질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에서 4대강 사업이 총체적 부실을 안고 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거 그냥 내버려 둘 겁니까? 이명박은 이미 한 물 갔고 서산 너머 끈 떨어진 연이라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까? 이명박이 미워서가 아니라, 수구정권의 정책이 얼마나 무모하고 형편없는 것인지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4대강 죽이기 사업>은 지속적으로 파헤쳐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 조차 하지 않으니, ‘4대강 사업’의 후속 버전인 ‘5대강 사업’을 국토교통부가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존 4대강에 청정지역인 섬진강 마저 포함되어 소위 ‘친수지구’라는 것을 두 배 가까이 늘여 난개발을 하겠다는 의도라는 거지요.

 

 

왜 건설사업이며 왜 하천지역 개발일까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일 터인데, <돈이 많이 든다 = 돈이 많이 생긴다> 아닌가요?

새정치민주연합, 이거 그냥 내버려 둘 겁니까? 개혁도 좋고 혁신도 좋지만 해야 할 일들은 해야지요.


2. 성완종 게이트, 안 들여다 볼 겁니까?

성완종 리스트 사건, 누구를 수사해야 할까요? 대통령입니다. 리스트 8명 중 7명이 핵심 친박입니다. 그리고 그 중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이완구는 국무총리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누가 져야 하는 걸까요? 대통령입니다.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 여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자금이 대선자금으로 사용되었는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무엇들 하고 있는 겁니까?

 

 

검찰은 홍준표 지사 수사하면서 요란스럽게 변죽이나 울리다가 ‘불구속 기소’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완구 전 총리에 대한 수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홍준표 지사가 부인까지 거론하며 비자금을 포함한 ‘자뻑 고백’을 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긴 했지만 ‘공천헌금’문제를 끼워넣기 식으로 슬그머니 흘린 것이 주효했을 것으로 봅니다.

참으로 대단한 홍준표입니다. 홍준표의 ‘함께 죽자’ 전략은 ‘공천헌금’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여당은 그렇다치고, 왜 야당까지 침묵모드로 돌입한 걸까요? 

새정치민주연합도 ‘공천헌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까요? 새정연의 침묵이 길어져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고백하여 매를 맞고, 뜯어 고칠 것은 뜯어 고치고, 잘못 없는 사람은 싸워야 하는 거지요. 그게 개혁이고 혁신 아닌가요?


3. 황교안 - 총리되도록 내버려 둘 겁니까?

 

황교안이 총리후보로서 부적격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무엇보다 그는 법무장관 시절 야당으로부터 두 번에 걸쳐 ‘장관 해임안’이 올려졌던 인물입니다.

 

그러한 자를 총리로 임명하겠다는 것은 한 마디로 ‘야당이라는 존재를 발바닥 때 정도로 여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황교안 그는 대선개입 부정선거에 대한 수사를 막았습니다.

‘황후보자는 2013년 6월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 개인 특별 수사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의견을 밝히자 ‘법률가의 양심’을 거론하며 거부의사를 밝혔다’(한겨레5/27.3면)

황교안 그는 군입대를 면제받기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의학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만성담마진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정도라면 온 몸이 가려워서 사법시험 준비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는 군 면제 다음해 사법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런 그가 만약 총리가 된다면 온 국민은 정신적 담마진에 시달릴 터인데, 그가 총리가 되도록 내버려 둘 겁니까?


4. 탄저균 -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입니까?

 

살아있는 탄저균이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배달되어 훈련에 사용됐다고 합니다. 탄저균이라니요. 십 수년 전 하얀가루가 담긴 편지봉투로 인해 미국에서 난리가 났던 기억이 어렴풋한데 우리 땅에서 왠 ‘탄저균’ 논란입니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군이 미국 유타주에 있는 생화학병기실험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캘리포니아 등 9개 장소로 보냈는데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도 그 중 하나라는 것. 주한미군은 실험용 죽은 표본으로 오해하여 이 탄저균으로 제독실험을 진행했는데 나중에 표본이 살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 훈련에 참가했던 22명 요원에 대한 감염여부를 검사하고 항생제와 백신을 투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는 것. 2008년에도 탄저균 배달사고가 있었다는 것. 한국에만 탄저균 분석실이 있다는 것>등 입니다. 

‘공포의 백색가루’로 불리우는 탄저균은 치사율이 95%에 이르는 병원균으로 전염성이 높고 맹독성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거나 비활성화된 상태로 옮겨야 한다고 합니다. 치사율이 높은 탓에 생물학 테러 및 군사용으로 악용되고 있는 거지요.

문제는 언론과 야당입니다.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온 나라가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메르스는 치사율 40%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치사율 95%의 탄저균에 대해서는 잠잠합니다. 어쩌자는 건가요.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입니까?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집단은 도대체 어느나라 국민입니까?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탄저균과 사드, 국민은 야당의 존재이유를 묻습니다.


5. 천안함 공동 조사 - ‘수용하자’고 할 배짱은 없는 겁니까?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공동조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국방부가 ‘폭침’이라고 발표했음에도 국민의 70%가 믿지 않는다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사건 당사자’로 지목한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를 제안했습니다.

 

우리 국방부는 북한과의 공동조사를 통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진실을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국방부가 지목한 ‘범인’ 스스로 ‘조사하자’고 나섰으니 이것을 마다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안함은 평택 2함대 육상 위에 올려져 있고, 북한으로 천안함을 갖고 오라는 것도 아니고, 평택에서 함께 조사하자는 얘기일 터인데 그것을 회피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북한은 2010년에도 공동조사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당시 ‘중국과 북한 vs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참여해서 조사하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묻습니다. 당 대표께서 직접 ‘폭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고, ‘북한 잠수정’에 대해 언급을 하셨으니 그 근거를 밝혀주시든지 아니면 “이번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여 공동조사를 벌이자”고 정부 여당에 대해 주장할 배짱은 없는 겁니까?

그렇게 주장할 경우, ‘종북좌파’로 몰리게 될 것이 두려운 겁니까? 그런 겁니까?

야당다운 야당을 본 지가 너무나 오래되었습니다.

정부여당에 잘 길들어져온 야당이 개혁을 한다고 합니다. 개혁과 혁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기본이며 시발점입니다.   


[1편] 민주당이 망가진 5가지 이유 | 민주당이 사는 법 
[2편] 4.29 재보선,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라구요? 
[3편] 보수화된 새정치민주연합
[4편] 친노인 듯 친노아닌 친노같은 너
[5편] 상산솔연(常山率然) 
[6편]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장 조국이 적임이다 
[7편] 노건호의 절규를 보는 시각
[8편]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 바란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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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MIT 교수 “한반도 사드, 중국과 무관?…미국 말 믿지 말라”

 
등록 :2015-06-01 01:16수정 :2015-06-01 10:13
포스톨 MIT 공대 교수. 사진 포스톨 교수 제공
포스톨 MIT 공대 교수. 사진 포스톨 교수 제공
미국 MD 전문가들 ‘한반도 사드’ 분석 첫 공개
시어도어 포스톨 MIT 공대 교수 인터뷰
시어도어 포스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에 매우 열정적으로 응했다. 오랫동안 미사일방어 문제에 천착해온 그는 이 이슈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품고 있음을 직감한 듯했다. 특히 그는 한반도에 배치되는 사드 레이더는 미국의 본토 방어를 위한 미사일방어체계의 부속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10차례 이상의 전자우편, 5차례 이상의 전화통화를 통해 진행됐다.

 

-한국 내 일각에선 사드 레이더를 북한 쪽을 향해 고정시키면 중국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 때문에 사드 레이더가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의 영향에 대한 분석에 나서게 됐다. 내가 얻은 대답은 이와 관련해 중국이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사항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사드 레이더는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미사일방어체계를 지원하는 부속물이 될 수 있다. 나는 한-중 외교관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중국이 이 레이더를 중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여길 것임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한국을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미국의 동맹국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말하는 이 레이더의 성능에 관한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일본 2대 배치 외 한국 추가땐 
중국 가까워 미사일 관측 더 쉬워져 

진짜-가짜 탄두 구분 못해도 
미 본토 방어체계 강화 

중, 한국을 적대적 미 동맹 여길것 
한국 사드 배치여부 신중 고민을

 

-사드 레이더에 관한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가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레이더의 ‘종말모드’가 설치되면 탐지거리가 600㎞로 제한돼 중국에 대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의 분석은 사드 레이더의 기본적인 성능에 기반한 것이다. 이 레이더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엄청난 유연성을 갖도록 설계됐다. 레이더를 여러 방식으로 운용하기 위한 최첨단 컴퓨터들을 갖고 있다. 떠돌아다니는 ‘특수용어’들은 미국의 사드 추진자들이 당혹스런 질문들이 던져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혼란을 퍼뜨리려는 것일 수 있다. 사드 레이더는 종말모드로만 사용하도록 기능이 제한돼 있지 않다. 한국 정부가 북한 방어용으로만 사용한다고 확언하더라도, 중국은 이 레이더의 내재적 역량, 그리고 군사체계를 배치한 뒤 애초의 주장과 목표를 바꿨던 미국의 전례 때문에 우려할 것이다.”

 

미군이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 요격 미사일)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출처 미국 국방부 미사일방어청
미군이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 요격 미사일)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출처 미국 국방부 미사일방어청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무기통제·검증·이행 담당 차관보는 최근 세미나에서 사드 레이더는 이미 일본에 2대 배치돼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 배치된다 해도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거나, 이를 알면서도 한국 국민과 정부를 오도하려는 것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방어를 추진하면서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잘못된 주장이다.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이 이런 잘못된 주장을 퍼뜨리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미국 시민으로서 나는 이런 주장이 미국의 외교적 노력에 큰 해가 되고,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를 훼손하리라 본다.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이 해야 한다. 한국은 이번에 우리가 한 것과 같은 분석 정보 없이는 올바른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국민과 정부가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기꺼이 도울 것이다.”

 

-사드 레이더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이 레이더가 매우 강력할지라도 중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추적하는 데 거리 제한이 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다. 이 레이더는 정밀추적 역량을 증진시키고 알래스카 공군기지에 있는 미국 조기경보 레이더망에 전송할 추적 데이터의 질을 개선시킬 것이다. 중국의 탄도미사일에 더 가깝기 때문에 그 궤적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 미사일방어체계는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를 식별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이를 추진하는 데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사일방어에 대한 집착은 미국 사회를 형성하는 복잡한 문화·정치·경제·역사적 영향력의 결과다. 미국 문화의 강점 중 하나는 기술혁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이런 긍정적 문화가 혁신사회를 만든 엔진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주의의 부정적 결과로, 많은 미국인들은 충분한 자원과 재능을 투입하면 어떤 문제도 기본적으로 풀릴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미사일방어의 경우에도 충분히 노력하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단순히 믿는다.

 

또다른 요인들도 존재한다. 미사일방어 프로그램은 많은 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한다. 여기서 혜택을 입는 개인·기업이 지리적으로 넓게 분포돼 있다. 이는 연방 의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다. 타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의원들도 국가를 방어할 의지가 없는 정치인으로 비난받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 유권자들이 이런 이슈들에 면밀한 관심을 갖지 않는 정치적 환경에서는 이런 비난들이 쉽게 만들어지고 여기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미국 리더십에도 큰 문제가 있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미사일방어를 비난하는 것을 정치적 자살 행위로 여긴다. 대학에서 종신직을 보장받은 나 같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비판을 제기하기 쉽지만, 그런 나도 대학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게 현실이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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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탄저균 훈련, 2013년부터 용산기지 포함 본격 시행

[단독] 주한미군 탄저균 훈련, 2013년부터 용산기지 포함 본격 시행

주한미군 “이번 훈련이 처음” 해명...2013년 “한국 내 최소 5곳에서 실험” 발표와 엇갈려

최근 불거진 주한미군의 '탄저균 사태'와 관련하여 주한미군이 이미 2013년부터 탄저균 등 생화학 무기와 관련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이번에 오산기지에서 처음으로 훈련을 실시했다는 해명은 사태의 파장을 우려한 거짓일 것으로 보여 또 다른 파문이 예상된다.

'민중의소리'가 최근 확보한 관련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이미 2007년을 전후하여 미군 '생화학방어합동참모국(Joint Program Executive Office for Chemical and Biological Defense (JPEO-CBD))'을 중심으로 북한의 생화학 공격이나 예상치 못한 전염병 발발에 대비하기 위해 특히, 주한미군의 방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작업은 미 육군의 '에지우드 생화학센터(Edgewood Chemical Biological Center(ECBC))'가 주관이 돼 이른바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JUPITR))'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한국명:주피터)로 추진됐다.

'주피터 프로젝트', 한국 내 최소 5곳에서 실시 드러나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맡은 책임자인 에지우드 센터 소속 피터 엠마뉴엘 박사가 이끄는 팀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한국에 상주하다시피 해가며 주한미군에 있는 각 연구소에 최근 노출 사건이 발생한 탄저균 등 생화학 물질의 탐지 및 분석 병력들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은 주피터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교육과 관련 최신장비 도입을 마친 뒤, 본격적인 첫 주피터 실행 야전 훈련을 2013년 6월 17일과 23일에 공식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훈련은 현재 탄저균 사건이 발생한 주한미군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용산 미군기지 그리고 미 '육군공중보건국(USAPHC)' 산하 연구소 등 한국 세 군데 지역 이상에서 최소 5곳이 넘는 한국 소재 미군기지 연구소에서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3년 6월 주피터 계획이 오산, 용산 등 미군 기지 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을 보여주는 자료
2013년 6월 주피터 계획이 오산, 용산 등 미군 기지 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을 보여주는 자료ⓒ미 ECBC 공개자료
피터 박사 일행이 2013년 전 2년 동안 한국 (주한미군 기지 등)에서 관련 프로젝트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피터 박사 일행이 2013년 전 2년 동안 한국 (주한미군 기지 등)에서 관련 프로젝트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미 ECBC 공개 자료

당시 훈련과 관련하여 이미 미 육군 관계자들은 2014년 3월 12일 발행된 미 육군 관보를 통해 이 주피터 프로젝트가 한반도에서 대단히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JUPITR program takes shape on Korean Peninsula)고 강조했다.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ECBC의 제임스 라이트 생물학자는 "일대일 주피터 방법은 혁신적(innovative)이며 그것은 탐지병들이 즉시 결과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가 연구소 과학자로 참여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같은 해 9월 12일 미 육군 관보를 통해 USAPHC 연구소포트폴리오 책임자인 겔리 할버슨 대령은 "한반도에 새로운 환경 실험실뿐만 아니라 총 6개의 USAPHC 연구소가 설치되고 있다"며 "모든 연구소들은 같은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어 어떤 연구소가 분석을 하든 적합한 결과를 보장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한마디로 이미 2013년 첫 실전 테스트 등 훈련을 통해 주피터 프로젝트가 안착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와 관련 한반도에서 관련 미군 연구소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 이미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피터 프로젝트에 관해 이를 총괄한 ECBC의 피터 박사는 한반도에서 공식 훈련을 하기 얼마 전인 2013년 6월 4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주피터 프로젝트의 핵심은 생물학 분석 능력(BICS)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50개에서 100개에 이르는 표본들을 많게는 24시간 안에 짧게는 4~6시간 안에 표본의 독성 유무 등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미 관련 최신 장비가 다 도입되어 있는 한국 미군기지에서 관련 병사들이 해당 샘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분석해 대응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하려면 당연히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표본들이 한국으로 보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탄저균 표본을 비롯한 수많은 생화학 표본들이 주한미군 측에 전달되었다는 것에 관한 또 다른 방증이다.

한국으로 이송된 표본 숫자 방대할 것으로 추정돼

2013년 주피터 관련 주한미군 병사들이 탐지 장비를 설치하고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2013년 주피터 관련 주한미군 병사들이 탐지 장비를 설치하고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미 육군 공개 사진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주한 미 공군이 관할하는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용산기지 등 주한미군 관할 다수의 연구소에서 관련 실험과 훈련을 이미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한 연구소에서 약 50개에서 100개에 이르는 표본들을 24시간 안에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주피터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드러나 그동안 한국에 전달됐던 검사 표본들의 숫자가 방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미 국방부는 이번 탄저균 사태를 지난 22일 인지하고도 이 사실을 우리 정부에는 사건 발생 5일이나 지난 27일에 통보했다고 민중의소리에 공식 답변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주한미군이 이미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런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주한미군이 이번 사건이 터지자 이를 오산기지로 한정하고 "처음으로 실시한 훈련(This was the first time the training has been conducted.)"이라고 해명한 것은 이번 사건을 축소 내지 은폐하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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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 그리운 대동강맥주


[친절한 통일씨] 대동강맥주, 5.24가 앗아간 또 하나의 즐거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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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1  01: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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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해당화식당 내 대동강생맥주집(지난해 10월 31일). [캡쳐사진 - 재미동포연합]

2000년 5.24 대북제재조치와 함께 사라진 것 중 요즘 같이 때이른 더위에 더욱 진한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것이 있다.

한 때 국내에도 반입·시판돼 인기를 누렸던, 그러나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대동강맥주’이다.

대동강맥주는 가장 가까이는 최근 재미교포 신은미 씨가 토크콘서트에서 했던 ‘대동강맥주가 맛있더라’는 발언을 타고 몇 년 만에 또 한 번 인구에 회자된, 그닥 새롭진 않은 소재이다.

2008년 3월 <로이터통신>은 평양에서 대동강맥주를 맛본 일부 맥주전문가들을 빌어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적은 없지만 아주 훌륭한 맥주”라고 소개했다.

당시 로이터가 전한 대동강맥주 시음평가는 미묘한 반향을 일으켰다.

“달콤하면서도 중후한 무게감이 느껴진 뒤 입 안에서 살짝 감도는 쓴맛의 여운…. 남한에서 대량 생산되는 맥주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시음해 본 외국인들의 평가.”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맥주 맛은 따분하다.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도 맛이 없다”는 ‘충격적인’ 보도로 국내 맥주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런가 하면, 2013년 3월 30일부터 8일간 평양에서 맥주 양조장들을 방문한 미국인 조시 토머스 씨는 그해 9월 19일 <미국의 소리>와 인터뷰에서 “대동강맥주는 햄버거로 치면 고급 수제 햄버거, 다른 아시아 나라 맥주들은 맥도날드 햄버거와 같다”는 ‘대동강맥주 찬양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미국 소재 북한 전문 여행사인 ‘우리투어스’는 지난해 1월 대동강맥주 양조장 등을 돌아보는 관광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영국 <인디펜던트>도 연달아 대동강맥주 시음기를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2월 7일자 ‘이런 경영전략이 세계적인 우리의 것을 창조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대동강맥주공장의 품질관리활동을 평가하면서 대동강맥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소개한 후 ‘자본주의 세계에 던져진 맥주폭탄’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대동강맥주 종류별 특징

   
▲대동강맥주의 번호별 주요 특징 안내판. [캡쳐사진 - 재미동포연합]

지난해 12월 22일 재미동포연합은 방북 취재기사에서 지난 2013년 4월 개관한 평양 해당화관을 찾아 식당 안에 있는 대동강맥주집에 들러 이곳에 비치돼 있는 대동강맥주의 종류별 특징을 설명한 안내판을 촬영해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대동강맥주는 맥아(麥芽, 몰트)와 쌀의 배합비율과 첨가한 향의 종류에 따라 7가지로 나뉜다.

알콜 성분은 4.5%에서 6% 사이이며, 원액함량(원엑스)은 대개 10~11%이고 6번 흑맥주만 15%이다.

1번 맥주는 알콜 도수 4.5%에 ‘100% 보리길금(맥아)로 만들었고 길금(맥아)향이 짙고 쓴 맛이 적당하여 진한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맥주’이다.

2번 맥주는 알콜 도수 5.5%에 맥아 70%와 흰쌀 30%로 만들었으며,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은 기본 품종의 맥주로써 소비자의 호평이 좋다’고 소개되고 있다.

대부분 국내 소비자가 경험해 본 병맥주가 주로 2번 맥주이다.

3번 맥주는 알콜 도수 5.5%에 맥아 50%와 흰쌀 50%를 혼합해 만들었다. ‘흰쌀의 깨끗하고 상쾌한 맛과 맥아의 부드러운 맛, 쓴맛이 조화롭게 겸비되어 유럽과 아시아의 맥주품격을 다 같이 갖춘 맥주’이다.

4번 맥주는 알콜 도수 4.5%에 맥아 30%와 흰쌀 70%를 혼합, ‘맥주 고유의 맛을 가지면서도 흰쌀의 향미, 깨끗한 맛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주정과 쓴맛이 낮을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맥주’이다.

여성용으로 개발된 대동강맥주 5번은 100% 흰쌀로 만든 알콜 도수 4.5%의 맥주. ‘색이 매우 연하고 거품이 좋으면서도 흰쌀 고유의 향미와 호프맛이 조화롭게 어울린 특이한 맛을 가진 것으로 하여 여성들의 기호에 특별히 맞는 맥주’라고 설명되어 있다.

흑맥주인 6번과 7번은 진한 맥아에 흰쌀을 넣어 만든 맥주.

원액함량(원엑스)15%, 알콜 도수 6%로 제일 독한 대동강맥주 6번은 커피향을 첨가한 흑맥주. ‘맛이 진하고 풍부하며 강한 커피향과 높은 주정, 쓴맛을 가진 전형적인 흑맥주’로 분류된다.

쵸콜렛 향을 첨가한 흑맥주인 7번 맥주는 ‘기본 맛이 연하고 상쾌하면서도 뚜렷한 초콜렛 향과 부드러운 쓴 맛의 흑맥주로써 새 세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흑맥주’이다.

안내판에는 대동강흑맥주인 6번, 7번 맥주가 ‘맛이 독특하며 풍부한 멜라노이딘 성분의 항산화 작용으로 하여 노화방지에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대동강맥주와 함께 제공하는 안주거리는 프렌치 프라이(굵게 채를 썰어 튀긴 감자)와 ‘탈피’라고 불리는 말린 황태.

특히 노릇노릇한 ‘탈피’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새콤한 겨자 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왜 대동강맥주인가?

그렇다면 대동강맥주에 쏠리는 호평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재료선택부터 생산관리,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품질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 때문이라고 북측은 말한다.

올해 2월 재일 <조선신보>는 대동강맥주공장을 방문해 대동강맥주가 외국인들로부터 ‘동방제일맥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며, 그 인기비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신문에 따르면, 먼저 대동강맥주에서 일하는 품질관리과 직원들은 원료산지인 황해남도(보리), 양강도(호프) 농장에 직접 나가서 품질을 따져가면서 수령하고, 특히 호프는 진공 포장해 매월 정기검사를 진행할 정도로 원료 보관 및 관리에도 공을 기울인다.

즉, 좋은 재료를 철저한 관리하에 제품생산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 맛과 향의 설계를 위해 세계적인 맥주의 추세와 ‘인민들의 기호에 대한 연구’를 선행하며, 시제품을 만든 후에는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한 생산 공정별 기술관리를 모두 진행한 후에야 제품을 출시한다.

그동안 경영전략의 중심을 제품의 질 향상에 두고 과학적인 품질관리를 꾸준히 실천해왔다는 것을 강조한 평가이다.

이로 인해 대동강맥주공장은 올해 1월 북한내에서 최우수제품에 부여하는 ‘12월15일품질메달’을 받았다.

곧 대동강맥주 병맥주에는 ‘12월15일품질메달’ 도안이 함께 인쇄된 제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앞서 대동강맥주공장은 지난 2002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 속에 조업을 시작한 이래 2007년 이후 품질관리를 위주로 경영관리를 전환했으며, 2008년과 2010년 12월에 ‘ISO 9001 품질관리체계인증’과 ‘HACCP 식품안전관리체계’를 받았다.

   
▲대동강맥주 생맥주집 전경. [캡쳐사진 - 조선의오늘]
   
▲경흥관맥주집 내부 [캡쳐사진 - 조선의오늘]

대동강맥주의 품질관리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맥주집에서 ‘인민들의 반향을 수집’, 품질개선대책을 세운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평양시내에 150여개의 식당 및 맥주집에서 대동강 상표의 생맥주가 팔려 나가고 있는데, 품질관리과 종업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아무리 맛있는 맥주라도 식당에서 우리가 정한 기준과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본연의 맛을 제공할 수 없다”며 성의껏 돕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속에 생산을 시작한 대동강맥주에 대한 사회적 보장도 특별한 구석이 있다.

북에서는 콩우유, 닭고기 등 식품들과 함께 대동강맥주 운송차들도 통행우선권을 부여받아 이들 차량이 지나갈 때는 교통안전원이 다른 차량을 모두 멈춰 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용무보다 대중적 목적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북측 매체에는 최근에도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삼삼오오 모여 생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띨 정도로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북에선 맥주를 ‘청량음료’, ‘대중음료’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대동강맥주 한잔 쭉 들이킬 수 있을까.

대동강맥주 레이블(Label) 읽는 법

   
▲ 대동강맥주 앞면 레이블(왼쪽)과 뒷면 레이블.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동강맥주에도 그만큼 복잡하지는 않지만 레이블 규칙이 있다.

레이블을 제대로 읽기만 하면 처음 보는 맥주라도 언제 생산된 제품인지, 몰트 원액 함량과 알콜도수, 주요 성분 비율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맨 위쪽 가운데 대동강맥주 마크 옆에 표기된 ‘11°’는 몰트 원액함량을 뜻한다. 북에서는 ‘원엑스’라고 말한다. 알콜도수와는 다른 의미이다.
보리함량을 뜻한다거나 마시기 적당한 온도를 적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가운데 위쪽 방향 사선으로 쓰여 있는 대동강맥주 글씨 아래쪽에 표기된 ‘②’는 대동강맥주 1~7번까지 종류 중 2번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이걸 보면 이 맥주는 알콜 도수 5.5%에 맥아 70%와 흰쌀 30%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레이블 왼쪽 위에서 아래로 1,2,3...12까지 쓰여 있는 숫자와 레이블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1,3,5...31까지 쓰여 있는 숫자 옆의 표식을 보고 생산 월일을 알 수 있게 했다.

△레이블 뒷면을 보면 주요 성분과 알콜 도수, 용량과 유통기한 등이 적혀 있다. 앞면 레이블과 함께 읽어보면서 대동강맥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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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103명 전원 패소, 동아일보와 사법부의 추악한 야합

 
[기고]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만인의 상식’으로 인증된 진실을 부정하는가
 
입력 : 2015-06-01  09:56:26   노출 : 2015.06.01  10:00:10
김종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media@mediatoday.co.kr    
 

2015년 5월 29일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또 하나의 암흑의 날’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1975년 3월 17일 결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일제강점기보다 긴 40년 동안 활동해 왔는데 대법원이 “그런 단체는 애초부터 태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좀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적 사건들인 3·1운동, 4월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의 정당성과 실존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니 팔만대장경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동아일보사가 국가(안전행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민일영)가 내린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사에) 의견 제출 기회를 제공했다는 자료가 없는 점을 보면 동아일보사에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정권의 요구에 굴복해 기자들을 해직했다는 인과관계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행정소송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동아투위가 2006년에 진실화해위(위원장 안병욱)에 제기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과 언론인 강제해직에 관한 진실 규명 요청’의 결과를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공식 기구로 창설된 진실화해위는 2년여에 걸친 정밀조사를 한 결과를 2008년 10월 21일 동아투위에 통보했다. 요지는 아래와 같다.

정부는 이미 1975년에 조선일보를 상대로 광고탄압 방식을 실행하여 효과를 보았던 수단, 즉 광고 수주를 차단하여 경영상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사 사주를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동아일보사를 탄압하였다. 광고주들을  중앙정보부 남산 조사실로 불러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여성동아. 신동아 심지어는 동아연감에까지 계약된 광고를 취소케 하였고,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보안각서를 쓰게 하였다. 개인 소액광고주에게까지 이러한 위압을 행사하였다. 광고면이 백지상태로 발간되는 동아일보를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시민들의 격려광고에 대해서도 당국은 조사하여 압력을 행사 하기에 이르렀다. (···) 이는 동아일보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뿐 아니라 언론 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훼손하고 침해한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 8일부터 5월 1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민주공화당 의장 박준규가 동아일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졌으며, 또 이러한 인사 조치에  대한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항의농성도 통행금지가 있던 새벽에 정부의 비호 아래 동원된 인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동아일보사는 언론자유 수호에 앞 장선 언론인들을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순응하여 정부의 요구에 따라 대량 해임·무기정직시킨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정부의 광고 탄압으로 인한 경영상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다 하더라도, 동아일보사도 정부의 강압을 기화로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언론인들을 탄압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중앙정보부 및 문화공보부 등 당국은 자유언론실천을 주장하는 기자들을 해임 또는 무기정직 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했고, 복직도 막았으며, 재취업마저 방해하였다. 이는 비판언론과 언론인을 언론계에서 추방·격리시켜야 한다는 유신정권의 언론통제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침내 정부의 치밀한 주도하에 진행된 일련의 탄압조치로 비판언론 거세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되자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해제하였다. (···)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동아일보사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 왔던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더욱이 사측은 이후에도 정권의 강압에 의한 해임이라는 점을 시인하지 않고 경영상의  이유로 해임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동조하였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들의 생존권 침해를 초래하였다. (···)

국가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에서 동아일보사 및 언론인들을 탄압하여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인들을 강제로 해임시키도록 한 행위에 대해 동아일보사 및 해임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일보사는 비록 정부의 편집권에 대한 간섭과 물리적인 압력, 그리고 광고탄압을 통한 경영상의 압력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기화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킨 책임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가 신장되었고, 권력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법률적 의무 여부를 떠나 피해자인 해직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권고한다.

사법기구가 아닌 진실화해위는 위와 같은 이유로 정부와 동아일보사가 동아투위 위원들에게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의 그런 결정은 동아투위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받아낼 수 없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 때 공식기구의 그런 ‘결정’이 나오자 동아투위 위원 103명은 정부를 상대로 민사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6부(재판장 부장판사 이승호)는 2009년 6월 21일부터 2011년 1월 14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친 공판 끝에 “동아투위 위원들이 진실화해위 결정대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해직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까지는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김영삼 정부부터는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아투위 위원들이 항소하자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부장판사 김용빈)은2011년 7월 20일부터 2012년 3월 23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열린 공판 끝에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으므로 국가는 그 손해를 위자할 의무가 있으나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국가는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동아투위는 2012년 4월 10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언론인들이 1974년 10월 24일 편집국에서 유신정권의 탄압에 맞서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2014년 12월 24일 대법원 제2부(주심 대법관 신영철)는 사실상 원고 전원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원고들은 민법상 화해를 한 것으로 보아 소송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는 한편, 진실화해위에 진상조사를 신청한 50명과 그렇게 하지 않은 53명 가운데 생활지원금을 받지 않은 14명에 대해서만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그 14명에 대해서도 동아일보사가 진실화해위 결정에 관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한다면 그 14명은 자동적으로 패소한다는 ‘예고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은 2014년 5월 29일 대법원이 확정한 ‘동아일보사 승소’로 추인을 받았다. 그렇게 됨으로써 동아투위 ‘103인 소송’은 전원 패소로 결말이 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법부의 ‘갈팡질팡’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동아투위 103명이 제기한 국가 상대 민사배상 소송 1심과 2심에서 재판부는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박정희 정권이 동아일보사에 광고탄압을 가하는 한편 사주를 강압해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 113명을 강제해직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가 면밀한 조사를 통해 그런 사실을 확인한 뒤 국가와 동아일보사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권유하는 결정을 내리자 동아일보사는 행정소송을 통해 그 결정을 ‘허위사실’로 확정해버렸다.

사법부 안에서 이렇게 엇갈린 판결이 나온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이런 사례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유독 아버지의 유신체제를 세습한 박근혜 정권 아래서 ‘사법부의 망나니 칼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언론탄압과 인권유린을 없었던 일로 돌리려는 권력의 ‘기획’에 어용화한 사법부가 순응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대해 대법원이 동아일보사의 손을 들어준 이튿날인 5월 30일자 동아일보는 8면에 “대법 ‘동아일보 해직사건 과거사위 규명 결정은 잘못’”이라는 제목으로 가로 2단 기사를 내보냈다. 그 회사로서는 희희낙락해야 마땅한 판결이 그렇게 시답잖은 기사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일까?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대량해직 당시 사장인 김상만, 그의 장남으로 사장과 회장을 지낸 김병관, 그의 장남인 현재 사장 김재호에 이르기까지 동아투위 113명 강제해직과 민중의 열렬한 성원을 배신한 행위에 대해 단 한마디 사죄도 하지 않았다. 김재호는 행정소송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을 뒤엎고 집요하게 ‘공작’을 거듭한 끝에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거짓’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동아투위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과 동아일보 사주의 추악한 야합 때문에 거리로 쫓겨난 것이 아니라 광고탄압으로 인한 경영난 때문에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만인의 상식’으로 인증된 진실, 곧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투쟁 때문에 박 정권이 광고탄압을 했고 결국 대량 강제해직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없었던 일로 만든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그런 죄과와 악업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민주진보세력은 물론이고 당시 격려광고를 통해 열정적으로 민중운동을 벌였던 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부역하고 ‘조·중·동’의 말석에서 권력에 아부하기를 일삼았다. 이제 동아일보사는 사법부의 ‘날라리 판결’을 기화로 ‘동아투위는 없다’고 주장할 것인가? 앞에 적었듯이 동아투위는 40년을 의연하게 싸워온 엄연한 실체이다. 동아일보 사장 김재호는 ‘이 찰라의 승소’를 방패삼아 동아투위를 부정하고 권력에 더욱 아부하는 길로 치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깨어 있는 국민은 명확히 알고 있다. 그의 증조부인 친일파 거두 김성수가 동아일보를  ‘국민신문’에서 일가의 사유물로 둔갑시킨 사실을. 그리고 그의 장남 김상만이 자유언론실천운동에 대한 민중의 열렬한 성원을 배신하고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사원 113명을 강제해직한 역사를. 또 그의 장남 김병관이 1987년 6월 항쟁 직후 동아투위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가 노태우가 전두환의 후계자가 되자 재빨리 그 손을 거두었던 일을. 그리고 김병관의 아들인 김재호가 동아일보를 권력의 나팔수로 만들고 종편인 채널A를 ‘기레기 방송’으로 전락시킨 죄과를.

양심을 팔아버린 사법부가 어떤 판결을 내렸든지 간에 동아투위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지난 40년 동안 한결같이 그랬듯이 자유언론을 실천하고, 궁극적으로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동아투위의 영원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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