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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보수정권의 무기도입 사업

분석 보수정권의 무기도입 사업

김종대 2015. 06. 08
조회수 8349 추천수 0
 

  최근 방위사업청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최근 일체의 사업 결재를 하지 않고 몸 사리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질타하고 정부 차원에서는 대규모 방산비리 합동조사단이 구성되어 우리 군에 공급되는 무기 및 물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감사에 착수하였다. 한편 감사원은 6월 초에 그동안 무기도입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무기도입에 대대적인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 우리 국방의 무기도입 정책결정과 절차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장 청장이 아예 실무진에게 “부장급 실무진이 책임지고 결정하라”고 사업 결정을 아래 선에 미루는가 하면, 심지어 “방산비리 합수단에 가서 사업 추진해도 되는지 알아보고 오라”는 이상한 지시도 나왔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긴급을 요하는 국방사업이 대부분 마비되어 수요군과 업체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식물청이 된 방위사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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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위산업비리합동수사본부의 발족식

 

 지금 진행되고 있는 거의 모든 국방사업에서 부실과 파행, 비리가 잇따르면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방사청 안팎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것이 방사청으로 하여금 사업을 결재하기는 꺼리는 분위기로 연결되었다. 지난 4월말에 국회 방산비리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적 있다. 자리에 배석했던 방사청, 군 관계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난 8년 간 군의 주요 무기도입 사업 중에서 계획대로 진행되어 성공한 사업이 있으면 단 한 건만 나에게 제시해보라”고. 한 건 도 없다.

  한국 해군의 작은 배는 너무 성능이 과도한 엔진을 달아서 배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운행되고, 큰 배는 성능이 너무 떨어지는 엔진을 달아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잠수함은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하거나 배터리 성능 부실로 잠항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F-16 전투기 성능개량은 능력이 없는 업체에 저가로 발주하였다가 사업이 폭삭 주저앉았다. 이제는 애초 예상한 비용의 5배를 지출해도 사업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통영함의 음파탐지장비는 원래 120억원 사업이었는데 저가로 40억원으로 사업비를 후려치자 무자격 업체가 부실 장비를 납품하고 해군 수뇌부가 여기에서 또 뇌물을 받는 비리를 저지른 사업이다. 제대로 전력화되기는 틀렸다. F-15K 전투기는 날아다니는 성능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공대지 미사일을 사지 못해 불구자나 다름없다. 도입한 지 불과 5년 밖에 안 된 전투기가 부품이 모자라 카니밸리제이션이라고 하는 부품 돌려막기, 즉 동류전환에 들어간 지 오래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약 150종의 부품이 모자라 성능발휘가 안 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그 실상을 보면 애초 사업 착수 시에 창정비에 대한 사업을 포함시키지 않아 공급사인 보잉사와 창정비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 역시 얼마의 예산으로 정상화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서북도서 긴급 전력보강으로 착수된 무인비행선 도입 사업은 엉터리 업체에 저가로 낙찰을 주었다가 비행선이 뜨지도 못해 여기에 쏟아 부은 130억원을 또 날리게 되었다는 뉴스도 5월초에 나왔다. 방사청은 업체에 부정 거래 제재를 하겠다고 하지만, 계약업체인 SK는 이미 방사청이 선정한 비행선을 인수하여 센서만 납품한 업체에 불과하다. 업체를 제재해봤자 소송을 걸면 방사청이 100% 진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 서북 해역에 긴급히 보강한 전력들은 다 이 모양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청이 어떤 국방사업이 됐든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거의 모든 사업이 부실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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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잠작전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 영국제 AW-159 헬기

 

  영국에서 도입하는 해상작전헬기는 알고 보니 대잠수함 작전능력이 없다. 5월 초에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은 영국제 해상작전헬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공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해군 시험평가단에 소속된 일부 해군 장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방사청은 2013년 5890억원을 들여 영국 아구스트웨스트랜드의 AW-159 8대를 선정하고 사업에 착수하여 올해 1차분이 한국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어 12대를 구입하는 2차 사업을 해외구매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방사청은 재작년과 작년에 각각 한국항공대와 안보경영연구원(SMI)에 선행연구를 맡긴 바 있다. 여기서 국내개발을 할 경우 “전력화 일정이 미충족된다”며 해외 구매를 결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연구용역에 활용된 데이터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번에 합수단의 수사 상황을 보면 영국 헬기에 유리하도록 성능시험에 대한 데이터가 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심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SMI가 제시한 대로 국내에서 해상 작전헬기를 개발하면 전력화시기가 3년가량 지연되고 예산도 2372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결론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제 헬기 도입이 강행될 경우 대잠 작전능력이 없는 엉터리 장비가 도입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사연은 K-11 복합소총 개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미국의 복합소총개발사업인 OICW는 실효성 없다고 접은 지 오래다. 한국군이 뭐 하러 이런 소화기에 개발비로 중기국방계획에 4800억원 집어넣는지, 집어넣었으면 개발을 해야 하는데 연일 오발사고가 나는 불량품을 개발했는지, 한마디로 쑥대밭이다. 이런 문제를 조사한 합수단은 개발 당시에 성능 시험평가 서류가 조작되었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업체관계자를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그 외에 국산 명품이라고 개발한 것들은 야전에 배치하면 전부 말썽이다. K-2 전차는 개발을 끝내고도 엔진 파워팩 문제로 3년째 조립을 못하고 있다. K-21 장갑차도 가까스로 개발을 완료하였지만 시험평가 과정에서 장갑차가 물 속에 가라앉아 운용 부사관이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겪었다. 이런 지상군 장비에 대해 야전의 전투원들은 차라리 옛날 고물 재래식 무기가 더 낫다고  하소연이다. 옛날 무기는 고장은 잘 안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첨단이라고 도입하는 무기는 부실 장비이거나 잦은 고장, 까다로운 정비절차, 부품 부족, 무장 미도입 등으로 야전의 전투원들에게는 골치 덩어리가 되었다. 차라리 도입을 안 했으면 이런 일은 없다.
  그런가하면 도입을 결정하고도 실체가 없어 사업이 중지된 경우도 있다. F-35 도입은 아예 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도 못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서 작성에는 확정가, 도입시기, 기술이전 조건이라는 세 가지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F-35의 경우 이 중 한 가지도 확정지을 수 없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이 지연되면 올해 결정되어야 하는 한국형전투기(KFX) 사업도 사실상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F-35 도입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지 못하면 한국형전투기 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공군의 핵심 3가지 사업이 모두 파행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무기 소요를 통제하지 못하고 부실사업들을 전부 벌려놓으니까 이제는 현재의 국방재원으로는 벌려놓은 무기사업을 감당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방사청에서 퇴임한 관계자는 “돈이 모자라 지금 벌여놓은 사업을 과감히 조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3년 내에 우리 국방부는 지불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방부는 현재 중기국방계획 대비 국방예산 규모가 앞으로 5년간 약 30조원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나마도 이건 사업에 대한 아주 낙관적인 예측을 기준으로 한 수치이고 사업이 실제로 진행되면서 눈두덩이 처럼 늘어나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부족한 금액은 50조원을 상회할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 마디로 망한 국방이 아닐 수 없다. 그 위기의 초읽기가 시작되면서 최근 한민구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이미 중기국방계획 재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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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시험평가중 탑승 부사관이 사망했던 K-21 보병전투차량. 사진은 시제2호 차량

 

 품질불량 군대, 시스템 붕괴는 초읽기

 

  이런 문제점은 국방사업의 전 분야, 전 무기체계로 확산되어 있다. 이미 사업이 끝나서 야전에 배치된 무기라 하더라도 탄약과 부품, 무장의 빈약으로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무기가 한국군 전체에 깔려 있다. 코브라 공격헬기는 2시간 작전비행을 해야 하는데 야전에서는 40분 비행밖에 못한다고 하소연이다. 또 무언가가 잘못 관리된 것이다. 공군의 무기체계는 거의 전부가 창정비의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공군의 경우 고질적인 문제는 부품 부족이다. 정비를 담당하는 기술 부사관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군 항공기의 경우 항공 전자전장비에 내장되는 반도체 부품에서 심각한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미 미국에서 단종된 부품 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항공기의 가동률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으며, 가동 되더라도 제대로 된 기능발휘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단순히 개별사업을 관리하는 데서 나오는 문제점이 아니고 일종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아니냐는 것이다. 개별 사업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의미가 없어진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도사린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여기에는 보수정권 특유의 안보논리 자체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국방사업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합수단이 발표하는 방산비리 대부분이 2009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이전까지는 방사청 개청 이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방산 비리 사건이 그다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권력형 비리와 관련 없는 실무자 또는 업체 소속 직원 개인의 비리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2009년부터 통영함 음파탐지장비 도입 비리,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의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등의 새로운 유형의 비리가 나타난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명박 정부 전반기인 2010년부터 방사청 청장으로 장수만, 노대래, 이용걸 등 더 이상 군 출신이 아닌 지식경제부 출신의 경제 관료가 방사청의 수장을 장악함에 따라 방위산업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관점이 유입되었다. 경제 관료 출신들은 방위산업에 대한 그간의 안보적 보수주의적 관념을 완전히 부정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로 방산 자체의 패러다임을 혁신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의 모든 업무 영역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심지어 감정적 앙금까지 유발시켰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무기도입에 있어 전대미문의 혼란과 비리를 초래한 배경으로 작동했다. 
  이 논쟁의 기원은 미국의 1940년 초과 이윤세 논쟁으로 시작된다. 역사학자 존 모턴 블럽은 2차 대전 중에“루즈벨트에게는 공화당이 민주당을 전쟁당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며 전쟁으로 돈을 번 미국의 대기업에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겠다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 루즈벨트의 재선 선거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에 호응한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는 “방위산업체는 세제상 혜택이 없어도 재투자할 이윤이 많다”는 자유주의적 주장으로 이를 관철하려 했다. 이에 대해 앤드류 카네기와 같은 대기업들이 가세하여 “평시에 군사력은 낭비이자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급진적 자유주의 관점까지 정립하기에 이른다. 반면 국방장관인 헨리 스팀슨은 “방위산업은 국가 투자 없이 존립할 수 없는 보호해야 할 자산”이며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가 전쟁을 하거나 전쟁 준비를 하려면 방산업체가 그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며 평시에 동원된 군사력의 일환으로서 방산업체의 존재를 옹호했다. 이는 안보적 관점에서의 보수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관점이 2년 동안 팽팽하게 논쟁을 하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연합군에 절실한 무기 및 물자공급이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1942년 미 의회는 ‘방위산업 육성 조세법’을 통과시키는 데 그 내용은 ▲군수업체 공장 건립에 정부 융자 허용 ▲방산 업체 간 협력 촉진을 위한 독점금지법 예외 적용 ▲군수품에 대하여 원가 플러스 방식으로의 이익 보장 ▲토지, 장비, 건물에 대하여 5년간 감가상각 인정 ▲군수기업 초과이익 기준은 투하자본이나 기준기간 평균이익 중 기업에 유리한 쪽을 선택하도록 한다. 이 법안의 통과는 그 전해 미 국방부가 수립한 군수물자 증산 계획(1941. 5월)의 구체화로 이어지는 데 미국은 6만 대의 비행기, 4만5000대의 탱크, 2만 문의 대포, 1800만톤의 선박 증산계획을 통과시켜 2차대전 종료 시까지 500억달러의 군수물자가 연합군에 제공되도록 한다.
  이렇듯 미국의 경우 방산정책은 자유주의에 맞선 보수주의 승리의 역사였지만 우리의 경우는 보수주의에 의해 정립된 방산정책을 자유주의로 대체하는 반대 방향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초부터 방사청의 주된 시책을 보면 이제껏 방산업체의 전문성을 유지하고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대부분이 무력화 된다. 그 첫 번째로 전문·계열화 방산정책이 폐기되고 일반 업체까지 방산시장에 참여하여 자유롭게 경쟁하는 경쟁 우선정책으로 대전환을 한다. 이에 수반되는 두 번째 귀결로서 경쟁의 구체적 이익을 구현하는 정책으로 최저가 입찰제도가 일반화되기에 이른다. 그 명분은 기존 방산 시장에 비리가 만연하여 있다는 부정적 인식도 큰 몫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정부 예산이 편성될 무렵인 6월에 리베이트만 안 줘도 국방예산 20% 삭감해도 된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당시 청와대를 다녀 온 장수만 국방부 차관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기존 방위산업 육성 정책은 독점적 혜택을 부여하는 일종의 특혜로 인식하고 모든 무기체계 도입에서 경쟁을 일반화하고, 그 이점을 고려하여 국방 사업비 예산을 미리 삭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최근 방산 비리가 발생하는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국방 사업비에 대한 대규모 삭감은 이명박 정부가 당시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마련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 때문에 어떤 한 해에 무기도입 사업의 30%가 넘는 대규모 예산이 국방사업에서 삭감되어 4대강 예산으로 전용된 사실을 최근 방산비리 합수단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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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열균열과 오발로 문제가 지적된 K-11 차기 복합소총

 

낮은 최저가 입찰로 국방 무너뜨리기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2011년 초에 전임 장수만 방사청장이 비리로 구속된 직후에 부임한 노대래 방사청장이 임명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에 갔다.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온 노 청장은 빼곡히 적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참모들에게 전달하고 “이것이 대통령 지시이니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 내용을 본 참모들은 “이행이 불가능한 지침”이라며 서로 대통령 지시사항 후속계획 작성을 회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통령 지침은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국방예산 20%를 삭감해도 되니 비리를 척결하고 전 사업 예산을 20% 이상 삭감하라”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방사청은 이후 모든 사업에 대해 20~30%를 삭감하는 최저가 도입정책으로 선회하게 되는데, 이것이 개별 사업에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참여할 수 있는 국내외 전문업체를 배제하고 무자격 업체, 부실업체, 심지어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와도 계약을 체결하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간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노 청장이 부임하기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모든 국방사업 추진을 대통령에게 직접 방사청장이 보고하도록 했다. 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아예 “이거 사라, 저거 사라”며 구체적으로 무기를 콕 집어서 사라는 지시를 했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방사청장들은 아예 “어떤 기종을 선택하면 예산이 대폭 절감된다”는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대통령을 찾아갔는데,  그러면 대통령은 즉석에서 의사결정을 끝내버렸다. 이렇게 해서 절단이 난 사업이 바로 수리온 헬기 개발이다. 변무근 청장의 경우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소요되는 국산화 개발인 중형 헬기사업을 포기하고 소형헬기 개발과 해외 대형공격헬기 도입으로 선회하면 2조원 이상 예산이 절감된다고 보고했다. 이는 물론 사실도 아닐뿐더러 국가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코드 맞추기식의 행태였다. 이미 결정된 사업이 단 한 번의 검토만으로 번복되니까 연이어 군의 모든 무기도입 사업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방산 분야의 부실은 애초 군이 소요에 입각해 책정한 사업비를 방위사업청이 20~30% 정도 ‘후려치는’ 낮은 예정가 책정이 그 직접적 원인이다. 이에 “일단 사업을 수주하고 보자”는 체계 종합업체들의 과당 경쟁과 저가 응찰이 일반화되었고, 낙찰 후에는 하청 및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는’ 식의 납품가 후려치기, 과도한 경쟁 유도, 특정 협력업체와 공모한 원가조작 등 기상천외한 부작용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들은 정부가 ‘원가부정 척결’을 공언한 마당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단순한 도덕성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방예산을 절감하려면 “무엇을 사라”는 식으로 개입할 것이 아니라 군의 무기 소요 자체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개입했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 부족으로 이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결과 사업 자체는 방만한 데 예산만 줄이는 식으로 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그 결과 국방 전체의 부실은 필연적이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보수정권이 안보를 말하면서도 안보를 말아먹은 사연이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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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SLBM발사동영상 속 잠수함 분석

북의 SLBM발사동영상 속 잠수함 분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6/09 [01: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잠수함발사 아리랑tv 동영상으로 본 중에 가장 선명한 영상이다.]

 

북의 잠수함탄도미사일 발사 시험 동영상이 공개 되자 북의 잠수함 탄도탄 능력에 대한 전문가와 언론들의 분석과 대응책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미사일을 장착하고 다니는 잠수함에 대한 분석은 많지 않다.

 

본지의 한호석 소장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북의 잠수함 전력에 대한 심층분석글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북에서 SLBM을 발사하는데 사용한 신포급 잠수함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미 오래 전 한호석 소장이 그 존재와 능력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 바 있다. 북이 이번에 동영상을 통해 공개한 모습을 보니 한호석 소장의 분석이 정확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1151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0218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0199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0196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0184

 

그런데 문제는 한호석 소장이 언급한 잠수함 중에서 이 신포급이 정작 북에서 가장 크고 위력적인 잠수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에서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현지지도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95년도에 10여발의 탄도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2층 구조의 5000톤급 잠수함도 북이 모형으로 공개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 최근 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을 진행한 북의 신포급 잠수함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최근 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 전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전격 공개하였다. 그 동영상에서는 사진으로 공개했을 때보다 좀더 상세한 잠수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전형적인 러시아의 골프급 잠수함을 개조하여 만든 잠수함이었다.

 

본지 해외기고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이를 신포급 잠수함이라고 진단했는데 러시아 골프급 잠수함보다는 좀 작은 잠수함으로 전망대 즉 마스트에 잠수함발사관을 장착하기 위해 잠망경이나 레이더를 한꺼번에 모아 앞쪽에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에 잠수함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관 3기를 장착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골프급에 장착하는 미사일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핵탄두미사일을 장착하는 전략잠수함이라고 한다.

실제 지난 2014년 10월 미국 상업위성에 찍힌 북의 신포급 추정 잠수함을 보면 전망대 즉 마스트 가운데에 발사관뚜껑 2기와 그 뒷부분에 1기, 총 3기의 발사관이 보인다.

 

▲ 이것은 2014년 10월 초 상업위성이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촬영한 사진이다. 처음 보는 잠수함 한 척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잠수함은 북이 1994년에 수입한 러시아산 골프급 잠수함을 해체, 역설계하여 이미 오래 전에 건조하여 그 동안 운용해온 수상배수량 4,000t급 잠수함이 아니다. 신포급 잠수함으로 부를 수 있는 이 잠수함은 북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골프급 잠수함보다 작은 수상배수량 3,000t급 잠수함인 것이다. 북의 골프급 잠수함에는 화성-10호 잠대지탄도미사일이 탑재되고, 신포급 잠수함에는 그보다 크기가 작은 또 다른 잠대지탄도미사일이 탑재된다. 그 두 미사일은 모두 전시에 핵탄을 싣고 미국 본토로 날아갈 초강력 전략미사일들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서도 골프급 잠수함을 북이 도입했다고 주장한 바 있고, 2004년 영국의 군사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북한이 1993년 일본의 고철 거래상으로부터 러시아의 퇴역 잠수함 12대를 구입했고, 이 잠수함에 남아 있던 R-21 미사일 발사 시스템에서 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중요한 요소를 얻었다고 보도했었다. 이 러시아 잠수함이 바로 골프급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급에도 전망대에 미사일 발사관 3 기가 장착된다.

 

골프급 잠수함의 선폭은 최대 8.2미터이고 흘수선 높이는 8.5미터이다. 여기에 마스트 높이를 5미터 정도로 잡으면 13미터가 넘게  된다. 12미터가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의 화성10호 미사일을 정확하게 장착할 수 있게 된다. 마스트 높이를 5미터로 잡은 것은 북에서 공개한 동영상의 잠수함(신포급으로 추정) 위에 서 있는 병사의 키를 1.7미터로 보고 비교하여 계산한 것이다. 골프급은 신포급보다 크기 때문에 이보다는 마스트가 좀 더 높을 것이다.

 

▲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원이 2014년 9월 SBS 방송과의 대담에서 북의 선박기술이면 골프급 정도의 잠수함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며 다만 그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어서 북의 과학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자주시보

 

2014년 9월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북의 선박기술이면 골프급 정도의 잠수함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며 다만 그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어서 북의 과학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GY7QwPblNI

 

따라서 북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은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욱 연구위원의 진단과 달리 북은 탄도미사일 발사시스템까지 개발해버린 것이다.

 

▲ 이 사진은 북에서 건군절을 맞은 1995년 4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모형 앞에서 당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었던 김광진 차수의 보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1995년 4월 당시 놀랍게도 북은 자체 기술로 신형 핵공격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문제는 러시아의 골프급이나 북의 신포급 잠수함은 사거리 탄도미사일을 3발 장착한는데, 북에서 모형으로 공개한 더 진화된 잠수함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탄도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여러 기의 미사일 발사관을 장착할 수 있게 잠수함을 2층구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호석 소장은 1995년 이 모형사진을 북이 공개했는데 분석 결과 앞에 5기, 뒤에 5기 총 10기의 화성10호 탄도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이 잠수함은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잠수함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추진이라면 활동반경에 제약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서양, 태평양 세계 어느 바다이건 다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0184

 

북이 95년도에 이런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었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엔 실전배치가 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이 2층구조의 북 잠수함에 대한 시급한 정보 파악과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북의 전략무기에 대한 대응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한미공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제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히 원자력추진 잠수함에 10기의 다탄두 핵미사일을 싣고 다니는 나라와 과연 미국이 전쟁을 하려고 하겠는가. 북이 이런 전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미국도 전멸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북과 전쟁을 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우리 자체의 대응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대응책으로는 군사적 대응도 있겠지만 남북관계를 호전시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사실 민족적 대의나 현 우리의 경제 사정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후자가 훨씬 더 좋은 해결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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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민의 생명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6.15대학생실천단, 용산미군기지 앞 탄저균 규탄 퍼포먼스 진행
김연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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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8  16: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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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대학생실천단이 6일 용산미군기지와 미국대사관 앞에서 탄저균 규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 6.15 대학생실천단]
미 국방부의 탄저균 배달 사고로 국내 미군기지내 생화학무기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 된 가운데 대학생들의 탄저균 규탄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광복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서울 준비위원회 6.15대학생실천단’(이하 대학생실천단)은 지난 6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에 반대하며 용산미군기지 앞과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침묵행진과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날 오후 4시 녹사평역을 시작으로 진행한 용산미군기지 행진에서 참가자들은 생물학 실험 등에서 세균, 곰팡이 등의 미생물이나 이에 감염된 동.식물 등을 다룰 때 발생하는 재해나 위험을 표현한 ‘바이오해저드’ 마크를 마스크에 붙이고, 탄저균이 공기 중 떠다니는 모습을 표현했다.

 

   
▲ 방독면을 쓰고 미군 복장을 한 참가자가 독극물 표시가 된 ‘페덱스’ 상자에서 공기 중으로 하얀 가루를 뿌렸고, 이에 노출된 국민들은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진제공 - 6.15 대학생실천단]
300여 미터 행진 후 대학생실천단은 미군기지 앞에서 탄저균에 감염 된 국민들을 표현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방독면을 쓰고 미군 복장을 한 참가자가 독극물 표시가 된 ‘페덱스’ 상자에서 공기 중으로 하얀 가루를 뿌렸고, 이에 노출된 국민들은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치사율이 무려 95%나 달하는 탄저균의 위험성을 나타낸 것이다.

 

퍼포먼스에 참가한 광운대학교 1학년 이승호씨는 “미국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생화학무기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며 “한미 동맹 강화를 주장하며 탄저균 문제를 외면하는 정부의 무책임함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퍼포먼스를 준비한 대학생실천단 측은 미 국방부에서 살아있는 탄저균 배송에 대한 사과와 탄저균 자체를 폐기했다고 밝혔지만, 우리 땅에서 2013년부터 서울 용산, 오산, 평택 등 국내 3곳의 미군기지에서 생화학전 대비 훈련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명 ‘주피터(JUPITR,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 프로그램’의 실체는 무엇인지 정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6.15대학생실천단은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탄저균 밀반입 미국 규탄 대학생 집회’를 가졌다. [사진제공 - 6.15 대학생실천단]
한편, 퍼포먼스를 마친 대학생들은 미국대사관이 있는 광화문 KT건물 앞으로가 한차례 더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탄저균 밀반입 미국 규탄 대학생 집회’를 이어나갔다.

 

집회에 참가한 광운대겨레하나 동아리 회장 김성덕씨는 “위험한 생화학무기가 민간택배업체를 통해 들어와도 한미 간의 불평등한 관계로 인해 미군기지로 들어가는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조차 알지 못 한다”며 국민생명을 위협하고, 국가주권을 빼앗는 SOFA협정을 개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실천단은 탄저균반입과 생화학실험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미국대사관에 전달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 'STOP 탄저균'. [사진제공 - 6.15 대학생실천단]
6.15대학생실천단측은 “미국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연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방어용이라고 하기에는 17년 간이나 미국 땅도 아닌 오산미군기지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해온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이 실험은 한반도의 기후생태에 최적화된 탄저균을 배양해서 오래도록 살아남게 하려는 의도이고, 이는 세균전 공격용 실험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라며 이와 같은 의도를 밝히는데 대학생들이 나서 끝까지 행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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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제36차 공판 방청기 4편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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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6/09 04:28
  • 수정일
    2015/06/09 04: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메르스 바이러스와 정치 바이러스, 누가 누가 더 무섭고 더러울까…?
 
장유근 | 2015-06-08 11:57: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현충일과 메르스 바이러스의 정치역학
-천안함 사건,제36차 공판 방청기 4편-

“메르스 바이러스와 정치 바이러스,
누가 누가 더 무섭고 더러울까…?”

오늘은 현충일이다. 현충일(顯忠日)이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란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도 세상의 국가들 대부분은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모하고 있다. 그래서 현충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현충일은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날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한다. 
 

현충일은 이런 날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전쟁을 맞았고 이에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으며, 백만 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이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가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했다.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현충일로 공식적으로 개칭되었다.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행하는바 서울에서는 국립묘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추모대상범위는 6.25전쟁에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자료: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63445>
 

현충일의 추모대상범위
 
위에서 잠시 살펴본 바 현충일의 추모대상범위는 6.25전쟁에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참 잘한 국민된 도리가 현충일이다. 만약 특정 국가에서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라는 곧 쪽박을 차고 말 것 같다. 너도나도 나라 지키기를 소홀히 하고 정략적인 이익만 추구한다거나 자기의 이익만 추구한 나머지 부패하게 되면 특정 국가는 머지않아 망하게 될 것이며 이웃 나라의 식민지배를 받게 될 게 틀림없다. 역사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2015년 6월 6일 현재, 대한민국은 현충일을 잘 못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게 도드라져 보이는 게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얼마 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속개된 천안함 사건 제36차 공판을 뒤돌아 보며 방청기를 끼적거리고자 하니, 자꾸만 자꾸만 현충일의 추모대상범위가 께름칙한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승조원들도 '국립현충원에 묻혀야 하는 것인가' 싶은 것. 사망 원인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까닭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각계각층의 시각
 
지난 2010년 3월 26일 오후,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어둠이 깃든 백령도 앞 바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침몰된 천안함은 국민들 다수로부터 의혹을 남긴 미스터리한 사건이었다. 상식 밖의 이 사건은 국민들과 각계 각층 인사들 조차 한마디씩 거들 정도였다. 이랬다.
 
-.천안함 폭침은 소설…소설가인 내가 졌다.(이외수, 소설가)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자들을 낸 살인 원흉이다.(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목사) 
-.천안함 북 소행 발표는 웃기는 개그…0.0001%도 설득이 안 된다.(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  
-.천안함 사건은 정부가 적당히 장난치려다 커져버린 것...MB의 5.24 대북 조치는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를 능가하는 헌정파괴조치(백낙청 한반도 평화포럼 공동대표) 
-.천암함은 좌초된 후 다른 선체와 충돌해 절단되고 침몰했다.(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천안함 침몰을 북한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건 보수세력의 상상임신(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천안함사건은 정부가 종북세력을 단속하기 위해 억지로 북한소행으로 조작한 것(박창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신부) 
-.천안함 사건은 북한을 악마로 만들기위해 미국과 MB가 음모한 작품(정성희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어뢰로 맞췄다는 것은 달리는 차 안의 사람이 나비를 맨 손으로 잡을 확률과 비슷(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참여연대의 유엔 서한을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천안함 침몰 직접 보지 않아 북한 소행 확신할 수 없다.(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수구 신문들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선동한다(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대표) 
-.천안함사건은 단순한‘사건’이 아니라 수구세력이‘사건화’한 것(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미국의 처지에서 천안함 사건은 꽃놀이패였다.(정연주 전 KBS사장) 
-.북한은 같은 민족을 근거 없이 의심한 남측에 대해 따지고 사과 요구할 것이다.(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이 연계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유환 동국대 교수) 
-.북한 검열단 받아들여 진상규명 확실히 하는 것 필요(김용현 동국대 교수)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북한연루설 강조하면 감당못할 자승자박 될 것(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결론을 예단해놓고 조작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폭발이 없었는데 두달 후 폭발이라고 발표해서 결과가 진실되는 것 아니다.(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천안함 조사결과를 믿으라고 협박하면서 전쟁불사를 외친다.(김창현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북한이 밉다고 해서 무조건 북한쪽에 천안함사건의 책임을 넘기고 북한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미국의 책임론도 나올 수 있다(정세현 전통일부장관) 
-.북한은 버블제트형 어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정부의 천안함사건 발표는 급조된 선거용(강기갑) 
-.북한의 소행임을 전제로 소설을 써대고 있다.(노회찬)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양심선언이 곧 도처에서 나올 것이다.(김효석)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서 천안함사건 일어났다.(박원순)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 합조단 발표를  믿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유시민)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하는 정확한 데이터들이 없다.(박영선) 
-.천안함이 두동강 난 건 홀인원이 한 다섯 번쯤 연속으로 나는 확률(최문순) 
-.일부 언론과 보수층에서 북한 소행설로 연기를 피우고 있다.(박지원) 
-.6.2 선거는 이명박정권 심판이지 천안함을 빌미로 김정일 정권심판하는 것 아니다.(정동영)  
-.북한소행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는 신북풍 뒤에 숨어 이득을 보려는 간악한 술수(천정배) 
-.합동조사단 발표는 매우 부실…진실을 은폐해 신뢰 얻을 수 없다.(한명숙) 
-.북한이 했다니까 그럼 북한이 했다고 치자(정세균) 
-.천안함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숨은 의도가 분명히 있다.(이재정) 
-.선거 한 번 이겨보겠다고 천안함 가지고 전쟁까지 불사하고 있다. 북한에 천안함 반론권 보장하지 않으면 정전협정 위반(이정희) 
-.이명박 정권은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고있는 불량 정권(심상정) 
-.생존자들에게 함구하라는 지시를 해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고 있다.(이강래)
<출처: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2&articleId=96903>
 

천안함 사건의 희생양 
 
천안함 사건의 첫 희생양이 등장한 것일까.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누군가 정리해 둔 자료를 살보고 있자니 기가 찬다. 자료 속에 등장한 분들 다수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분들의 주장사실을 참고하면 천안함 침몰사건은 소설과 다름없거나 상식밖의 일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 중에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표현은 놀랍다. 이 선생은 “천안함 폭침은 소설…소설가인 내가 졌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울러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버블제트형 어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참 이상하잖아...!!) 한나라당(새누리당)소속 이명박이 TV로 생중계되는 화면속에서 찌질대는 장면만 참조하면, 박 전 비서관 포함 ‘천안함 피격(폭침)사건(?)’을 소설 등으로 말한 인사들 전부를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기소를 해야 마땅했다. 천안함은 폭침이 아니라 소설이었으며 폭발의 흔적도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척석 앞 피고인석에는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진실의 길’ 대표)만 (이명박)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하게 된 것이다. 당신은 이 분야 전문가였으며 전문가의 입을 통해 전문적인 판단을 내린 게 '괘씸죄'로 여겨졌을까.


천안함 승조원들이 현충원에 묻힌 까닭
 
주지하다시피 천안함 침몰사건은 새누리당 소속 아니 한나라당 소속 이명박 등이 폭침으로 정리한 사건이었다. 친미정부인 한국과 미국이 (규칙적인)훈련 중인 해역에서 발칙하게도 '북한의 잠수함이 (신출귀몰하게)등장한 후 (1번)어뢰를 발사하고 (천안함을)폭침시킨후 도망쳤다' 게 피격사건의 전말이었다. 따라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천안함 승조원 46명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게 된 것. 그리고 '다섯 해의 현충일'을 맞이하게 됐다.
 
(이상하지 않나…?) 군에서 작전 중에 사망하면 전사자로 지정될 건 자명한 일이며, 또 그렇게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천안함이 침몰한 지 5년의 세월이 경과하고도 원인 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동안 우리가 습관처럼 해 왔던 일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천안함 침몰사건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었다면 관련 당사자들은 엄벌에 처해져야 마땅할 것이며, 일벌백계를 통해 현충원에 누워계신 호국영령들을 편치않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 우리가 현충일을 추모하는 목적과 전혀 다른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면 ‘진실찾기’나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을 해야 옳을 것 같은 것.


천안함 침몰사건에 가려진 이명박근혜의 존재
 
천안함이 백령도 앞 바다에 좌초된 후 침몰된 지 어느덧 5년의 세월이 경과하는동안 희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작 피고인석에 앉아있어야 마땅할 인간들이 떵떵거리며 살고있는 것. 가끔씩 TV에 얼굴을 내밀고 혀를 날름거리며 핫바를 빨고 있던 이명박은 김무성이나 유승민 등의 보호를 받고 있는 지 언론으로부터 일찌감치 멀어지고, 새누리당 소속 박근혜는 여전히 '7시간의 마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이고 있는 모습들이다. 
 
뿐만 아니다. 인터넷을 열어보니 한 언론사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모 의원을 소개하며 “천안함 장병들의 희생정신을 기렸다.”고 끼적거렸다. 문재인이 지난 대선 중에 천안함 침몰사건을 ‘폭침’이라고 말한 이후 달라진 야당의 모습이다. 혼자 씨익 웃었다. 천안함 장병들이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누구로부터 희생됐을까 싶은 생각들’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의 상상속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이나 세월호 침몰사건 등 자국민들의 희생 앞에서는 여당도 야당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당리당략에 놀아날 뿐 진실찾기로부터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 법정 피고석에는 여전히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 자리를 지키고(?)고 있는 것. 필자는 신 선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공판을 기다리고 있는동안 잠시 상상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피고인석을 가득 메운 건 천안함 사건 당시 위정자들과 정치군인 등이었다. 바이러스 같은 존재랄까. 이들은 자국민들을 숙주로 삼으며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은 범죄자들로 선고를 눈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피고 MB는 원심의 형량 등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 이하 전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새대갈당… 등 천안함 사건에 관여한 자들 모두 사형에 처하거나 종신형에 처한다. 아울러 국립현충원에 묻힌 장병들은 가족들의 의사 등에 따라 이장하는 동시에 M방송국 등 이 사건에 관여한 방송. 언론인 등은 자격정지와 함께 수 일내로 폐쇄를 명한다. 땅!땅!땅!...”
 
방청석에서 판결을 지켜보고 있던 신 선생의 뺨은 젖어있었고, 방청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은 이 사건을 꾸준히 취재해 온 <미디어오늘>과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상상은 여기까지… 서기 2018년 어느 날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때까지 위정자들은 바이러스들처럼 변신에 변신을 꽤할 것. 그래서인지 요즘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메르스 바이러스 덕을 톡톡히 본다. 바이러스 뒤에 숨은 이들은 툭 하면 국민들을 겁박하는 모습들이랄까. 
 

현충일과 메르스 바이러스의 정치역학
 
자국민 9명이 진도 앞 바다에서 수장된 채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고… 산속에서 유서를 남기고 목멘 성완종의 정치자금이 대선자금으로 쓰여졌는 지 등에 대해 알고 싶은데, 어느 날 바이러스가 등장해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제 정치판 단골 키워드였던 북한도, 김정일도, 독도도 안 통하고, 위안부도 안 통하고, AI바이러스도 안 통하는 지, 서울시장까지 나서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하겠단다. 한 술 더 뜬 조치랄까...대기중으로 전파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 바이러스를 공중파로 날려보내야 하는 위정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곧 만천하에 다 드러날 진실을 위해 적당히 둘러대시기 바란다. 
 
필자의 기억속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랬다. 메르스 바이러스 보다 훨씬 더 무섭고 더러운 게 정치바이러스란 걸 알게 될 때 쯤이면, 대한민국은 위정자들 때문에 정나미가 뚝 떨어져 저만치 멀어져 있는 것. 현충일에 되돌아본 대한민국의 자화상 때문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께 죄송스러움 금치 못한다. (기립하세요!) 판사가 입장했다. 곧 공판이 진행될 것이며, 재판부는 증인 두 명 중에 먼저 검사측 증인을 불렀다. 이날 검사의 증인으로 나선 신희안 해군 대령(현재 해군작전사령부 연습훈련 차장)은 변호인의 반대심문(“1번 어뢰 설계도를 본 적이 있는가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본 적은 없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5년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부와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단장 윤덕용 등이 취재진들 앞에 내놓은 북한제 1번어뢰의 실체가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찌질대고 있는 MB의 얼굴이 크게 부각되는 것. 천안함 사건은 여러분들의 우려가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그래서 메르스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또 어떤 사건이 바이러스의 재물이 될 지 염려되는 것. 메르스 바이러스 보다 더 무섭고 더러운 바이러스의 2차 감염 혹은 공격에 대비하라.

<이 글은 6월6일 현충일에 쓴 글 입니다>

[1편] 천안함,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의 충격적 증언  
[2편] 천안함의 진실, 5년 전 기록을 들추어 보다 
[3편]
 천안함의 진실, 상식과 몰상식이 만든 해프닝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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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태평양사령관은 요즈음 밤잠을 설친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6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6/08 [12: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비결은 치밀한 작전계획과 압도적인 무력
2. 핵탄과 함께 기만탄 사출하는 다발식 재진입체
3. 너무 커서 자행발사대에 싣지 못하는 조선의 초대형 미사일 
4.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조선의 신형 미사일 10발  
5. 이미 시작된 전초전에서 어느 쪽이 이겼나? 

 

▲ <사진 1> 미국에서 통일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862년 10월 3일 링컨 대통령과 조지 맥클릴런 북군사령관이 전선을 시찰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통일전쟁에서 전술적 패배를 거듭하던 북군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링컨의 신념인데, 그는 통일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짔기에 전투에서 계속 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길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북군이 당시 최첨단통신수단인 전보를 사용한 것이다. 남군지휘부는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연락병을 통해 지휘통신을 보장하였지만, 북군지휘부는 전보를 통해 신속하게 지휘통신을 보장하였다. 미국통일전쟁은 사상정신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준비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 자주시보

 


1. 비결은 치밀한 작전계획과 압도적인 무력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5년 2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새로 꾸린 근위부대관을 돌아보면서 “조국통일대전을 눈앞에 둔 오늘의 정세는 모든 부대들이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 물질적 준비를 충분히 갖춘 근위부대가 될 것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민군대의 모든 부대들이 근위부대운동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미제와 반드시 치르게 될 앞으로의 싸움에서 미제의 성조기와 추종세력들의 기발을 걸레짝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세인식은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고, 그 전쟁에 대한 전망은 조선인민군이 이길 것이라는 신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야흐로 조선은 통일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세계전쟁사에 통일전쟁의 전형으로 기록된 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벌어졌던 미국내전(American Civil War)이다. <사진 1> 미국통일전쟁에서 62만~85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한 사람도 없다. 만일 미국에서 통일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나라는 남측의 아메리카연합국(CSA)과 북측의 아메리카합중국(USA)으로 영구분단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영구분단위기에서 구출한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을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위인으로 추앙하는 것이다.


150여 년 전 미국이 통일전쟁을 벌였던 것처럼, 지금 조선도 통일전쟁을 벌이려고 한다. 그런데 조선이 벌이려는 통일전쟁은 미국의 통일전쟁과는 생판 다른 전쟁이다. 당시 미국은 전쟁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4년 동안 격전이 지속되어 62만~85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조선은 지난 60년 동안 계속해온 전쟁준비를 완료한 까닭에 압도적인 무력을 동원하는 순간충격전법으로 상대의 급소를 강타하여 단숨에 전쟁을 결속하고 전쟁피해를 극소화하려는 것이다. 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의 조선식 명칭)은 격전이 3년이나 지속되어 혹심한 전쟁피해를 입었으나, 조국통일대전은 3일 안에 금방 끝날 것이라고 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전쟁을 72시간 안에 초고속으로 끝낼 비결은 치밀한 전쟁계획과 압도적인 무력인데, 조선에게 과연 그런 비결이 있다는 말인가?  


첫째, 조선이 치밀한 통일전쟁 작전계획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전쟁계획은 극비사항이므로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5년 1월 8일부 보도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25일 강원도 원산에서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새로운 작전계획을 승인”하였고, 각급 부대들이 그 작전계획에 따라 “세부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훈련을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조선의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이 아주 치밀하게 수립되었고, 조선인민군 각급 부대들은 지난 3년 동안 치밀한 작전계획에 따른 실전연습에 열중하여 오늘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군 주력부대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7일 안에 전쟁을 끝내려는 작전계획인데, 이를 위해 “핵, 미사일, 방사포, 특수전부대 등 비대칭전력을 동원하여 초기에 기선을 잡은 뒤에 재래식무력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도기사에서 조선의 통일전쟁이 7일 전쟁으로 될 것처럼 말한 것은 착오다. 왜냐하면, 전시에 미국이 주력부대를 증원군으로 급파하면 4일 만에 한반도 전선으로 밀려들 것이므로, 조선인민군은 통일전쟁을 무조건 3일 안에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의 통일전쟁 작전계획은 작전시간을 72시간 이상 넘기지 않는 전대미문의 초단기작전계획이라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만일 조선의 통일전쟁이 그런 작전계획에 따라 실제로 진행된다면, 그 전쟁은 세계전쟁사에 전무후무한 초단기속결전으로 될 것이다.


둘째, 조선이 통일전쟁 작전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한 것과 더불어 압도적인 무력도 준비하였는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부와 군사전문가들은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말 대신에 교전상대가 갖지 못했거나 또는 교전상대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무력을 뜻하는 비대칭무력(asymmetric armed force)이라는 말을 쓰는데,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말이나 비대칭무력이라는 말은 사실상 같은 뜻이다. 위에 인용한 <중앙일보> 2015년 1월 8일부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는 조선이 가진 비대칭무력을 핵무기, 미사일, 방사포, 특수전부대라고 열거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핵무기, 미사일, 방사포, 특수전부대를 가진 것 이외에도 네 가지 비대칭무력을 더 가졌는데, 그것은 항공연합부대, 잠수함연합부대, 고속기동함대, 싸이버전부대다. 그러므로 조선이 가진 비대칭무력은 여덟 가지나 되는 것이니, 미상불 압도적인 무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사진 2> 미국군이 보유한 전술핵탄 W70이다.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된 이 핵탄은 단거리전술미사일에 장착하여 발사된다. 이 핵탄의 폭발력은 1킬로톤에서 100킬로톤까지 다양하다. 이런 전술핵탄은 중성자탄으로 이용된다. 조선도 그와 같은 전술핵탄을 가졌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중성자탄을 장착한 초정밀전술미사일을 작전배치한 것이다. 1킬로톤급 중성자탄 1발의 파괴범위는 500-600m밖에 되지 않지만, 그 범위 안에 있는 적의 기갑무력은 모두 파괴된다. 조선인민군 전방부대가 주체포로 중성자탄 10발만 발사해도 전방에 배치된 미2사단은 순식간에 몰살당한다.     © 자주시보


조선이 가진 여덟 가지 비대칭무력 가운데 누구나 첫 번째로 손꼽는 것은 핵무력이다. 조선은 2013년 5월 21일 언론보도를 통하여 핵탄의 소형-경량-다종-정밀화를 이미 완성하였다고 언명하였는데, 그 말은 첨단핵기술로 개발한 강력한 핵무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사진 2>


그런데 그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쓰인 문장이다. 소형-경량-다종-정밀화된 핵탄을 가졌다고 쓰지 않고, 소형-경량-다종-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쓴 것은 소형-경량-다종-정밀화된 첨단핵탄보다 더 앞선 최첨단핵탄도 가졌음을 암시한 것이다.


지금 통일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조선이 그 전쟁을 72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하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교전상대를 압도하는 핵무력을 가진데서 찾을 수 있는데, 그런 압도적인 핵무력의 존재는 최첨단핵탄 보유사실을 암시한 위의 인용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선이 위의 인용문에서 보유사실을 암시한 최첨단핵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핵탄을 말하는 것일까?

 

 

2. 핵탄과 함께 기만탄 사출하는 다발식 재진입체

 

오늘날 핵탄공학부문에서 가장 앞선 최첨단기술은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만드는 기술이다. 그 이상의 핵탄공학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러시아, 중국의 핵탄공학기술은 지난 반세기 동안 단발식 재진입체(Reentry Vehicle, RV)→다발식 재진입체(Multiple Reentry Vehicle, MRV)→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MITRV)로 발전되어왔다.


핵탄공학기술의 최신, 최고결정체인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가 무엇인지 알려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탄도비행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추진로켓 3개가 차례로 연소, 분리되면서 외기권으로 상승한 핵탄이 대기권에 재진입하여 타격목표를 향해 내리꽂히는 극초음속하강비행을 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상상하지만, 실제는 상상과 다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탄도비행과정을 세분하면, 추진단계→중간경로단계→하강단계→종말단계로 나뉜다. 추진단계에서는 단계적으로 연결된 3단 추진로켓들이 차례로 연소, 분리되면서 상승비행궤도를 타고 외기권으로 높이 올라가는데, 그 때 2단 추진로켓은 탄도를 수정하면서 상승비행을 한다. 중간경로단계에서는 외기권에 도달한 3단 추진로켓과 후추진체(post-boost vehicle)이 분리되는데, 사실상 4단 추진로켓으로 볼 수 있는 후추진체는 축고도제어장치(axial altitude control device)를 가동하여 비행자세를 잡으면서 재진입체를 탄도비행궤도에 진입시킨다. 하강단계에서는 재진입체에서 사출된 핵탄이 하강비행궤도를 타고 대기권에 재진입하여 극초음속하강비행을 한다. 종말단계에서는 핵탄이 타격목표를 향해 극초음속으로 돌진하여 폭발한다. <사진 3>

 

▲ <사진 3> 재진입체에서 사출된 핵탄이 하강비행궤도를 타고 대기권에 재진입하여 극초음속하강비행을 하는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린 상상도다.     © 자주시보


여기서 나의 체험담을 다시 꺼내놓게 된다. 2013년 6월 5일 나는 평양 만경대구역에 있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였는데, 전략로케트관에 전시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실물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실물이라고 하지만, 신관, 폭탄, 산화제, 연료를 모두 제거한 전시용 실물이다. 강화유리로 만든 높이 30cm의 원형기단 위에 높이 2.5m의 굵은 불수강파이프 지지대가 V형으로 원형기단 외곽에 빙 둘러 설치되었는데, 화성-13호는 그 지지대 위에 얹혀 있었다. 나는 원형기단 중앙부에 들어가 로켓발동기 분사구  6개를 만져보았다. 그 때의 인상 깊은 체험은 2013년 7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무장장비관 견문록(5) 내 손끝에 전해진 화성-13의 짜릿한 금속감촉’에 서술되었다.


그런데 그 때 나를 안내하던 무장장비관 해설강사는 화성-13호 앞에서 “이 전략로케트는 추진부가 3단, 전투부가 1단으로 구성된 4단형 로케트”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퍽 나중에 가서야 그 해설강사가 말한 전투부가 후추진체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조선에서는 3단 추진로켓으로 구성된 추진체(booster)를 추진부라 부르고,  재진입체와 탄두로 구성된 후추진체(post-boost vehicle)를 전투부라 부르는데, 바로 그 전투부에 다발식 재진입체가 들어가는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린 화성-13호가 군사행진에 등장하였다. 그 전투부에 다발식 재진입체가 들어간다. 다발식 재진입체는 핵탄과 기만탄, 알루미늄박막을 사출하기 때문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로는 막을 수 없다.     © 자주시보


그런데 하강단계에 들어선 재진입체에서 핵탄이 사출될 때, 기만탄과 알루미늄박막(chaff)도 함께 사출된다. 여러 발의 핵탄과 기만탄이 함께 사출되면 적의 식별레이더를 교란시킬 수 있고, 알루미늄박막까지 공중에 흩뿌려놓으면 핵탄을 향해 날아오는 요격체의 추적비행을 교란시킬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배속된 고성능식별레이더가 제아무리 최첨단기술로 만든 것이라 해도 외형과 비행속도가 서로 똑같은 핵탄과 기만탄을 구분하는 초감도지능은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런 지능은 영원히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해보겠다고 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만들어놓은 미사일방어체계는 다발식 재진입체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미사일방어체계의 요격능력을 강변하는 과장선전에 매달리고 있으며, 미사일방어체계의 기존성능을 개량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계속 퍼붓고 있다. 이미 막대한 개발자금과 운영자금을 먹어치운 무용지물이 막대한 개량자금을 추가로 먹어치우는 것은, 미사일방어체계를 개발한 미국 군수산업자본이 천문학적인 추가이윤을 가로채가는 갈취행위로 보인다.


원래 군수산업자본은 무기생산을 멈추는 즉시 몰락하기 때문에, 군수업체들은 새로운 무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거나 기존무기체계를 자꾸 개량해야 자기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군수업체의 생리는 그처럼 전쟁승리보다는 이윤추구에 맞춰져 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무기가 실전에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별로 관심하지 않으며, 무기성능평가시험만 통과하면 무기조달비용을 걷어갈 수 있는 것이다.


돈만 밝히는 미국 군수업체들 속에 엄청난 부정비리가 만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 부정비리는 2012년 5월 21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드러났는데, 미국 군수업체들이 각종 군용기를 제작하면서 중국산 짝퉁 전자부품을 100만 개 이상 사용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 군용기들이 자꾸 추락하거나 불타는 사고가 빈발한다. 이를테면, 2014년 6월 23일 이륙비행을 하다가 치명적인 엔진결함으로 불타버린 미공군 전투기 F-35A가 작전에 배치될 수 없게 된 사정, 미해병대가 보유한 전투기, 수송기, 헬기 가운데 19%에 이르는 159대가 각종 기계고장을 일으켜 84억 달러를 들여 대폭수리해야 하는 사정, 고성능수직이착륙기라고 자랑하던 아스프리(Osprey)가 너무 많이 추락하여 ‘과부제조기’라는 오명으로 불리는 사정, 미공군 주력전투기인 F-15의 빈번한 추락사고 등은 미국 군수업체의 비리가 미국군 무기체계 속에 얼마나 뿌리 깊이 들어박혔는지를 말해준다. 그런 부정비리의 온상에서 생산된 미사일방어체계로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3. 너무 커서 자행발사대에 싣지 못하는 조선의 초대형 미사일


이 글의 관심사는 다발식 재진입체를 넘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로 나아간다. 최첨단 기술이어서 5대 핵강국 이외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핵탄공학기술의 최신, 최고 결정체라는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조선에서 만들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고찰하기에 앞서,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작전배치한 다른 핵강국들의 개발경험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하는 데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다. 이를테면, 미국의 잠대지탄도미사일 트라이던트(Trident)-II 1발은 각개조준식 핵탄 14개를 발사할 수 있는데, 사거리는 7,800km다. 러시아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RS-24 야르스(Yars)미사일 1발은 각개조준식 핵탄 10개를 발사할 수 있다. 야르스미사일의 사거리는 11,000km이며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리거나 수직갱발사대에 설치된다. 러시아는 2007년 5월 29일 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하였고, 2010년 7월 19일부터 작전배치하였다. 2015년 현재 러시아전략로켓군에 작전배치된 야르스미사일은 58발이다. <사진 5>

 

▲ <사진 5> 러시아가 2010년 7월부터 작전배치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야르스다. 이 미사일 전투부에 장착된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에는 핵탄 10발이 들어간다. 현재 러시아전략로케트군에는 이 미사일 58발이 작전배치되었다.     © 자주시보


중국도 미국과 러시아의 뒤를 이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둥펑(東風)-31B다. 중국이 이 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한 때는 2014년 9월 25일이었으므로, 2015년 6월 현재 작전배치를 앞두고 있다.  
중국의 개발경험을 보면, 다발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둥펑-31A를 작전배치한 때로부터 7년 뒤에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둥펑-31B를 시험발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개발경험은 다발식 재진입체를 개발하고 나서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지금 조선의 핵탄공학기술은 어느 단계에 와있을까? 조선이 다발식 재진입체도 아직 개발하지 못했고, 겨우 단발식 재진입체밖에 개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선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하였는가 하고 묻는 물음이 어리석은 물음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으로 포위하려는 조선에게, 그리고 미국 본토를 최후일격으로 멸망시킬 핵무력을 갖추었노라고 공언하는 조선에게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으로 포위하려는 러시아나 중국이 그 미사일방어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조선도 오랜 기간에 걸쳐 단발식 재진입체→다발식 재진입체→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 순으로 자기의 핵탄공학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이 다발식 재진입체를 개발한 시점을 파악하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한 시점도 산정할 수 있다. 러시아나 중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선도 단발식 재진입체를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였고, 다발식 재진입체를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이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각각 개발한 시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공개된 조선의 미사일개발경험에 관한 많은 자료들 가운데 조선의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시점을 말해주는 자료는 없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조선이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언제 개발하였는지 모르는 것이다. 다만 미국 정찰위성이 조선의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처음으로 포착한 시점, 다시 말해서 조선이 그 두 종의 미사일을 미국의 위성감시망에 처음으로 노출한 시점은 자료에 나와 있다. 미국 정찰위성이 그 두 종의 미사일을 처음 포착한 때는 1994년 2월이다. <사진 6>

 

▲ <사진 6> 이 위성사진은 2012년 4월 2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시내 도로에서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화성-10호 자행발사대 8대와 화성-13호 자행발사대 6대를 촬영한 것이다. 미국 정찰위성이 조선의 1세대,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인 목성-1호와 목성-2호를 처음 포착한 때는 1994년 2월이다. 사람들은 2012년 4월 15일 화성-13호가 군사행진에 참가한 것을 보고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그 무럽에 개발되었겠거니 생각하지만, 조선의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시점은 그보다 20여 년 앞선다.     © 자주시보


위성영상자료를 통해 그 두 종의 미사일을 확인한 미국은 그 미사일들에 대포동-1호와 대포동-2호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였지만, 그 미사일들의 공식명칭은 목성-1호와 목성-2호다. 조선이 목성이라는 명칭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리지 않았으므로, 미국이 대포동이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인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두 종의 미사일들이 준중거리미사일들이라느니 또는 대포동미사일개발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느니 하는 허위사실을 오래도록 퍼뜨리면서 그 두 종의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을 숨겨왔던 행동은 졸렬하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목성-1호와 목성-2호가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이라는 사실은, 권위 있는 군사정보전문매체라는 평판을 받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 1994년 3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대포동-2호는 길이가 32m이고, 지름이 1.3m이다. 이 보도자료를 보면, 목성-2호가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싣는 화성-13호보다 약 10m나 더 긴 매우 거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군사정보전문매체는 1994년 5월 7일에 실은 보도기사에서 대포동-1호와 대포동-2호는 크기가 너무 커서 조선이 보유한 자행발사대에는 통째로 실을 수 없으므로 동체를 몇 개로 분리해서 대형수송차량에 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을 수 없을 만큼 매우 거대한 목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은 조선 북부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지하요새기지들에 설치된 수직갱발사대에 세워져 있다. 나는 2013년 10월 1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4대에 걸쳐 진보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서 목성-1호는 사거리 8,000km의 1세대 경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목성-2호는 사거리 15,000km의 2세대 중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1994년 2월 조선이 그처럼 두 종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의 위성감시망에 일부러 노출하여 그 존재를 알려주자, 화들짝 놀란 미국은 조선을 자기의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정책적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1994년부터 사상 처음 조미핵협상이 시작된 획기적인 정세변화배경에는 목성-1호와 목성-2호의 압도적인 힘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은 1994년 2월 어느 날, 아마도 조선에서 광명성절로 경축하는 2월 16일 직전에 목성-1호와 목성-2호의 존재를 미국 정찰위성에 일부러 노출함으로써 그때까지 조선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줄곧 무시해왔던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던 것이다.  

 

 

4.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조선의 신형 미사일 10발


조선은 단발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목성-1호와 목성-2호를 이미 1990년대 초에 개발하였고, 그 뒤를 이어 다발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목성-3호를 개발하였다. 조선이 언제 목성-3호를 개발하였는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정보는, 2003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 55주년을 경축하는 군사행진을 며칠 앞두고 평양 동쪽에 있는 미림비행장에서 대규모 병력과 무장장비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던 군사행진연습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군사행진연습에는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두 종의 신형 미사일이 참가하였다. 당시 미림비행장 군사행진연습을 촬영한 미국 정찰위성의 영상자료에는 두 종의 미사일 10발과 자행발사대 5대가 위용을 드러냈는데, 그 미사일들은 모두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신형 미사일들이었다.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그 신형 미사일의 정체는 2003년 10월 1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펴낸 논문 ‘미국에 대한 조선의 탄도미사일 위협’에서 밝혀졌다. 그 논문에 따르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거리미사일”과 “대포동-X라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2003년 9월 9일 군사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미림비행장 군사행진연습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군사행진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 미사일들이 철수되었다는 것이다. 미림비행장 군사행진연습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에 나타난,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두 종의 신형 미사일 10발은 6축12륜 자행발사대 5대에 실린 화성-10호 중거리탄도미사일 5발과 대형트럭에 연결된 차량견인운반대 5대에 실린 목성-3호 5발이었는데, 바로 그 화성-10호와 목성-3호에 각각 다발식 재진입체가 장착된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2003년 9월 초 미국 정찰위성은 미림비행장 군사행진연습에 참가한, 미국 군부가 처음 보는 두 종의 신형 미사일 10발을 촬영하였다. 그 미사일들 가운데 5발은 3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이고, 다른 5발은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0호다. 위의 사진은 추진체 2단과 전투부 1단으로 구성된 화성-10호를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린 상상도다. 주목하는 것은, 목성-3호 전투부와 화성-10호 전투부에 다발식 재진입체가 각각 장착된다는 점이다.     © 자주시보


1994년 2월에 모습을 드러낸 조선의 1세대,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인 목성-1호와 목성-2호는 각각 단발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인데 비해, 2003년 9월에 모습을 드러낸 조선의 3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는 다발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미국 군부는 목성-3호를 대포동-X라고 부른다. 미국이 대포동-1호, 대포동-2호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여놓았으면, 그 이후에 등장한 3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에는 당연히 대포동-3호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여야 일관성이 있는데, 대포동-X라는 돌출적인 이름을 붙여놓았다. 미국인들에게 X라는 글자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군부가 대포동-3호를 대포동-X라고 부르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군부에게 대포동-3호는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기 때문에 그런 돌출적인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 군부는 자기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다발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목성-3호에 대해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다발식 재진입체를 각각 장착한 화성-10호와 목성-3호가 2003년 9월 초 미림비행장 군사행진연습에 참가한 것은, 조선이 2002년에 다발식 재진입체 개발을 완료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은 다발식 재진입체 개발을 2002년에 완료한 뒤에 그보다 한 급 높은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하였고, 아무리 늦어도 2013년에는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 이미 시작된 전초전에서 어느 쪽이 이겼나? 


주목하는 것은, 2015년 5월 8일 동해에 전개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수중에서 시험발사한 북극성-1호의 전투부가 연필 끝부분처럼 생기지 않고 우유병 꼭지처럼 생겼다는 점이다. 그런 모양을 한 전투부에는 다발식 재진입체 또는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조선이 2013년에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북극성-1호에는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가 장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군사정보기관들은 북극성-1호의 외형만 보고서도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가 그 미사일 전투부에 장착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5년 5월부터 조선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장착한 최첨단 잠대지탄도미사일의 계열생산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사진 8>

 

▲ <사진 8> 2015년 5월 8일 동해에 전개된 전략잠수함이 수중에서 시험발사한 잠대지탄도미사일 북극성-1호가 해수면에서 출수하여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 높이 상승비행을 하고 있다. 사거리가 1,500km로 추정되는 북극성-1호 전투부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의 타격목표 3개 이상을 동시에 날려버릴 수 있는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가 장착된다. 미태평양사령관이 요즈음 피폭악몽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에 앞서 벌어진 전초전에서 미국을 이긴 것이다.     © 자주시보


전시에 태평양 또는 대서양의 수중매복구역에서 매복대기하는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해수면 아래 발사수심에서 불시에 북극성-1호 1발을 쏘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가 미국 본토 상공에 드리운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서로 다른 3개 이상의 타격목표들을 동시에 날려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할 때마다 미국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악몽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런 악몽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미국은 조선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맞선 대응무력시위를 벌였다. <워싱턴타임스> 2015년 3월 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 2월 22일 서태평양에 전개한 전략잠수함에서 트라이던트-II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 이 시험발사는 2015년 1월 23일 조선이 동해에 전개한 전략잠수함에서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에 맞선 미국의 대응무력시위인 셈이다.  


조선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개발한 데 이어 잠대지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한 것은 5대 핵강국 이외의 나라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핵탄공학기술의 최고봉에 올라섰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조선이 미국과 맞장을 뜰 강위력한 핵무력을 보유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깜짝 놀라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맞선 대응무력시위를 벌일 만도 하였다. 하지만 대응무력시위를 벌인다고 해서 미국이 악몽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방장관 자문위원을 지낸 신안보센터 연구원 밴 잭슨(Van Jackson)은 2015년 2월 26일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 제출한 문서에서 “미국은 조선의 요구에 굴복할 수도 없고, 조선의 핵능력을 불능화하기 위해 예방전쟁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에게 닥쳐온 악몽 같은 상황을 개탄하였다. 
미태평양사령관 해리 해리스(Harry B. Harris)는 2015년 5월 25일 미국의 유력주간지 <타임>에 실린 대담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당신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물음을 받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조선”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런 조선 때문에 나는 밤잠을 설친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꼭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발사할 북극성-1호의 각개조준식 재진입체에서 기만탄과 함께 사출되는 핵탄들이 언제 미국 본토에 떨어질지 알 수 없으니 밤마다 피폭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치는 것이다.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목격한 미태평양사령관이 요즈음 피폭악몽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는 것은 조선이 조국통일대전에 앞서 벌인 전초전에서 미국을 이겼다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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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확산책임자 이번에도 봐주면 대국란 올 것

메르스 확산책임자 이번에도 봐주면 대국란 올 것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6/08 [01: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메르스는 치사율이 40%나 되는데 치료약도 백신도 없어 심각한 전염병이다. 우리와 직항로가 뚫려있고 경제교류가 많은 중동지역에서 대 유행을 했음에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 이건 거의 국민학살이나 다를 것이 없다.     © 자주시보


 

7일 삼성병원 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메르스 1번환자가 어떻게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는지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 과정과 그 이후 확산과정을 돌이켜보면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한 박근혜정부의 대응이 엉망진창이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건 단순한 오판이나 실수가 아니라 국민생명 경시, 무사안일주의가 부른 참담한 인재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선박안전검사, 선박안전운항, 해난구조 관련 말도 안 되는 부정부패와 문제점이 만천하에 드러나 박근혜 정부가 일벌백계니 하는 요란한 말은 많았지만 심각한 처벌을 받은 책임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국민생명 경시, 무사안일주의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도 말로만 그친다면 이런 썩어빠진 정부관료들의 문제점을 절대로 고치지 못한 것이다. 하기에 이번에는 확실하게 관련자들을 색출하여 엄한 법적 처벌을 가해야 한다.


아무 죄 없는 국민이 5명 째 메르스로 희생되었고 학교와 많은 병원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아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으며 외국 관광객 수만명이 한국관광을 취소했다. 나라의 경제 전반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범죄이다

 


1. 메르스와 같은 치명적 전명병 대비책 전무, 책임자 엄중 처벌해야

 

일단 1번환자가 중동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날이 5월 4일이고 증상이 시작되어 12일에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15일에 결국 입원을 했다. 하지만 증상이 더 심화되어 3군데나 병원을 옮겨다니다가 17일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후 20일에야 메르스 환자임을 확진판정받았다.

 

서울삼성병원원장은 7일 기자회견에서 1번 환자가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보였지만 이전 병원에서 치료가 먹히지 않았음을 확인 후 심층 조사 과정에 중동을 갔다 왔다는 사실을 확인, 바로 메르스 환자임을 의심하고 보건당국에 의뢰를 하는 한편 즉각 응급실에서부터 격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1번 환자에 의한 삼성병원의 감염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 보건당국이 중동지역 등 메르스 발병국을 갔다가 온 발열, 기침 환자에 대한 대응방안을 평택성모병원 등 전국의 모든 병원에 제대로 알리고 점검도 하지 않았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건 당국에서는 치료제나 백신도 없으며 치사율이 40%나 되는 이 심각한 전염병에 대한 대비책을 이렇게 허술하게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삼성병원 의사가 중동을 갔다 왔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사태는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뛰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동의 건설사업이나 플랜트 사업에 많이 진출해 있어 직항로가 뚫려있어 2012년 중동에 유행했던 메르스가 한국에 상륙할 우려가 높다는 감염학과 전문의들의 주장이 많았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는데 정부는 이를 거의 무시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일부 감염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개별적으로 중동을 방문하여 조사하고 대응책을 모색했겠는가.

 

메르스 등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전명병에 대한 각 병원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지침을 마련해주지 않은 보건복지행정 담당자들과 그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법적 처벌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 1번 환자가 20일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 이후에도 이렇게 1번환자와 접촉한 감염환자들이 전국의 다른 병원으로 퍼져가도록 정부는 방치할 수가 있는가.     © 자주시보



2. 1번환자 확진판정 이후 대응은 더욱 엉망

 

1번 환자가 확진판결을 받기 전에는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20일 확진 이후엔 비상사건화를 하고 그가 거쳐온 모든 경로를 역추적하여 철저한 접촉자 격리를 실시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가 입원했던 성모병원에서는 입원실 소독을 한답시고 1번환자와 함께 있던 환자들과 그 층의 옆 병실 환자들을 아래층 다른 환자들 속으로 내려보내 섞어버렸고 그래도 침상이 모라자라자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해버렸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성모병원에서 많은 감염환자가 나온 것이다. 전국 도처로 메르스가 퍼져나간 것이다.

평택성모병원은 질타하는 언론에 대해 이 모든 조치를 보건복지부와 긴밀히 상의해서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자신들도 억울하다며 자세한 내막은 사태가 진정되면 기회를 보아 발표하겠다는 말까지 언론에 흘렸다.

설령 복지부의 지시가 아닌 성모병원 자체 판단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해도 그 책임은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할 정부에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전염병 발병시 대응 체계를 제대로 가동시키지 않은 책임자들은 석고대죄하고 엄충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병원 관계자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병원의 피해 때문에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을 공개할 수 없다고 계속 고집을 피웠다.  결국 메르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자 7일 모든 병원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자주시보



3.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은 정부 관료 엄중문책해야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 모두 비전문가라고 한다  전문적 식견과 능력이 없으면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귀담아 듣기라도 해야 하는데 독선과 아집 고집불통 모습만 보여주었다.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을 바로 공개해야한다고 전문가과 국민들이 그렇게 아우성을 쳤지만 노골적으로 병원에 피해가 간다면서 공개를 거부했다. 그 기자회견 장면만 생각하면 정말 욕이 막 나오려고 한다. 누리꾼들은 삼성병원이란 재벌 병원이 끼어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전염병에 대한 무지도 문제이지만 재벌과 돈 앞에서는 국민들의 생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이 국민무시, 생명경시 관점은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세월호에서 그렇게 국민의 생명을 함부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로부터 그 혹독한 지적을 받았음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몸서리가 쳐진다. 이번엔 반드시 법적으로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해야 할 것이다.

 

▲ 지난해 미국에서 메르스 환자가 생기자 병원자체 판단으로 바로 언론에 공개했다.     © 자주시보



3. 삼성병원 등 병원관계자들에 대한 처벌도 반드시 해야 한다.

 

삼성병원 의사가 1번환자가 중동을 다녀온 점을 신속하게 파악해내고 격리조치를 잘 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정부에서 상을 주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다른 병원 의사들 중에서 중동에 갔다왔는지 물어본 경우가 전혀 없었는데 그래도 삼성병원 1번환자 진찰 의사는 그부분을 파고 든 것이다.


하지만 병원 책임자들은 이 중대한 사실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 결국 그 1번환자가 감염시킨 사람들 추적을 어렵게 했고 그렇게 해서 발생한 14번환자가 다시 삼성병원으로 찾아와 응급실에서만 17명이 감염시킨 우를 자초하였다. 보건복지부에서 뭐라고 하건 말건, 일시적으로 환자가 줄어 수입 좀 줄더라도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지키는 병원이기에 그 사명의식에 충실한 판단을 했어야 한다.


바로 공개를 하여 국민들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고 보건복지부에 비상사태 선포를 건의하고 1번환자 역추적과 접촉자 격리활동을 적극 도왔어야 한다. 그랬다면 14번 환자도 조기에 발견하여 삼성병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삼성병원 또한 14번 환자 확진판정과 그에게 감염된 삼성병원 의사 등 17명의 감염자들이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안전조치도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범위가 이미 수천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책임있는 의료진이라면 박원순 시장처럼 국민 스스로 의심환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고 열이나 기침이 나면 지체없이 신고하도록 감염자 수와 그들의 이동경로 등을 방송으로 공개했어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삼성병원은 이런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쉬쉬하는데만 급급했다. 그로인해 강남권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이르렀고 지금 학교 휴업령에 외국 관광객 수만명 취소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미국의 모 병원에서는 메르스 환자 2명이 발생하자마자 바로 언론에 공개하였다. 잠시 환자가 줄었지만 병원에 대한 신뢰가 생겨 금방 회복되었다. 그 미국 그 병원은 보건복지부와 상의한 것이 아니라 의사의 양심에 따라 자체적으로 바로 판단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병원은 공개했을 때 당장 환자 떨어져나걸 것만 걱정한 것은 아닌가. 돈을 벌지 못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 아니고서는 쉬쉬한 행동을 납득할 수가 없다.
 
사법기관에서는 이런 삼성병원 책임자들에게 법적 처벌 여지가 없는지 정확히 따져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돈 몇 푼 때문에 국민의 생명을 함부로 생각하는 발상을 점차 줄여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삼성병원만이 아니라 평택성모병원 등 모든 관계 병원에도 해당되는 지적이다.

 

▲ 메르스 발생 병원을 공개하는 것이 백번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어 7일 정부에서 병원을 공개한 후 사실은 3일날 대통령이 공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발표한 청와대, 우리 박근혜 대통령은 말만 하고 그것을 장관들이 집행하지 않고 계속 공개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데도 내몰라라 하는 사람인가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책임회피용 변명이라는 따가운 지적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 자주시보

 

 

4. 최종 책임은 정부와 대통령에게 있다.

 

물론 이런 병원을 관리감독해야할 박근혜 정부에 보다 큰 책임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기에 이번에만은 반드시 관련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고 이 모든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납득할만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인재들이 너무도 없다는 말들이 많다. 전문성이나 실력은 보지도 않고 오직 충성도 하나만 본다는 지적도 많다. 이번 황교안 총리 내정자도 사실 전관예우, 병역면제 등 납득할 수 없는 비리들이 마구 터져나오고 있다. 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에서 요구한 자료조차 거부하고 있다. 정말 막장 드라마도 이보다는 심하지 않을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이런 무능력 충성인사가 계속된다면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최악의 대국란 사태까지 피치 못할 것이다. 

특히 경제대란이 가장 우려가 된다. 우리 경제가 암울하다는 전문가 지적이 날마다 신문과 방송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 세월호, 메르스 등 국가 경제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사건이 계속 터진다면 나라 경제가 과연 버틸 수 있겠는가. 이런 무사안일주의가 더 팽배해져간다면 그간 환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혼란이 또 어디서 터질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사태가 온다면 더는 수습 불가능해질 것이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최악의 마지막 악재가 될 것이다. 하기에 대통령은 그저 무마하고 넘어갈 생각만 하지 말고 근본적인 혁신을 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능력있는 탕평인사와 남북관계 회복이다. 그것만이 경제대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주장을 이번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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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황교안 총리 후보자 낙마에 모든 것 걸어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6/08 08:54
  • 수정일
    2015/06/08 08: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가 죽어야 민주가 산다 - 제10편
 
신상철 | 2015-06-07 16:51: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황교안 총리 후보자 낙마에 모든 것 걸어라
민주가 죽어야 민주가 산다 - 제10편


작금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 대란’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박근혜 정부를 보면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뼈아픈 슬픔으로 남아있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그들이 보여줬던 한심한 행태와 너무나 닮은 꼴이어서 화가 치밉니다.  

첫째,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사고가 터졌는데 초기 너무 안이하게 대응함으로써 대형사고로 키우는 모습이 닮았습니다.  

둘째, 점점 심각한 상황으로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데도 책임지고 상황을 장악하는 콘트롤 타워가 없었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셋째, 총체적인 난국으로 치닫는데도 발생하는 일들을 쉬쉬하며 비밀에 붙이고 베일 속에 파묻는 것도 판박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로지 선량한 국민들 뿐이라는 점입니다. 반대로 집권 세력 스스로의 잘못으로 더 커져버린 사고가 오히려 그들이 겪고 있는 정치적 딜레마와 위기들을 덮어주는 아이러니 또한 똑같습니다.


2003년 사스 vs 2015년 메르스

1. 2003 SARS - 참여정부

참여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3년 2월 중국과 홍콩에서 폐렴과 비슷한 괴질이 돈다는 소문이 퍼지고 급기야 3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괴질에 ‘사스(SARS)'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2년 11월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에서 발생, 홍콩을 거쳐 세계로 확산된 전염병으로 갑작스런 발열, 기침, 호흡곤란이 주 증상이다. 폐렴으로 진행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노무현 대통령은 즉시 고건 총리를 재난컨트롤타워로 하여 총리실 산하에 종합상황실 설치를 지시하고 전국에 사스방역강화지침을 내립니다. 사스로 의심되는 국내 환자가 아직 판정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공항을 사스방역의 최전선으로 설정한 고건 총리는 4월25일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사스 발병지역인 홍콩에서 온 항공기 입국장을 방문하고 상황을 점검합니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고건 총리는 즉각 장비 구매를 지시하여 10대를 추가 배치하고 국방장관을 불러 협조를 요청, 군 의료진 70여명을 공항으로 투입합니다.

대책본부는 4월28일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사스 민관합동협의회를 개최하여 민간의료단체에 협조를 요청하고 그날 오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합니다.
   
사스 방역의 1차 목표를 ‘국내유입차단’으로 설정한 참여정부는 해외에서 8400여명이 감염되고 810명이 숨졌음에도 국내에서는 4명이 앓는데 그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는 성과를 거두고 그해 WH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2. 2015 MERS - 박근혜 정권

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바이러스에 감염한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호흡기증후군)

 

잠복기가 1주일 가량이며 사스와 마찬가지로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심한 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 다만 사스와는 달리 급성 신부전증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으로 사스보다 치사율이 6배가량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는 등 더 치명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근혜 정부는 지난달 20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뒤에도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장 지휘 아레 중앙메르스관리대책 본부를 두었다가 매르스가 확산되자 비로소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격상합니다. 이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다시 대책본부의 사령탑을 맡습니다. 메르스 국내 유입이 확인되고 2주가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메르스뿐 아니라 마스크를 쓰는 것은 위생을 위해 장려한다. 그러나 메르스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메르스 컨트롤타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항을 방문하였습니다. 메르스 환자를 대면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두려운지 볼테기가 들어가도록 X자 형태로 귀에 걸었네요. 살다살다 마스크 저렇게 쓰는 사람도 처음 봅니다.

 

 

초기 골든타임은 놓쳐버려 병은 퍼질대로 퍼지고 방역의 의미는 이미 상실했습니다. 세포분열하듯 확산되는 메르스가 전국으로 퍼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평택성모병원 - 메르스 환자가 최초 발생한 병원이 어딘지 국민들은 2주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비밀유지를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은 계속 그 병원을 들락거렸고, 조사결과 그 병원 현관 문고리에서도 메르스 병원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을지.. 이것은 거의 ‘공포영화’ 수준입니다.

참으로 무능한 정권. 온 나라가 재난에 휩싸여 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해외순방을 예정대로 진행할 모양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조롱거리가 될지, 얼마나 손가락질 당할지 전혀 느낌이 없나 봅니다. 참으로 기이한 뇌세포를 가진 부류들입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 인사청문회

 

메르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이미 잠복기를 지난지 오래입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지명건'입니다. 내일부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됩니다. 

황교안 그는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 대선개입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덮기 위해 검찰 수사팀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여 해체토록 한 자이며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사건(유호성 사건)의 직접적 책임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지휘자로 이후 이석기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났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사드, 국회법 개정안, 성완종 리스트, 방산비리, 원전, 탄저균, 수신료 인상안, 전교조 법외노조, 진보교육감 자르기 등등 모든 주요 현안들이 메르스에 묻혀가고 있는 가운데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내일 열리게 됩니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하는 이유는 국무총리로서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이 검증하기 위함입니다. 자격미달인 후보자는 반드시 낙마시켜야 하는 것이 인사청문회를 여는 목적입니다. 야당 스스로 황교안 법무장관 시절 그에 대해 두 번이나 장관 해임 건의안을 올린 당사자가 총리가 되겠다고 나선 마당에 그것마저 저지하지 못한다면 야당은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역량과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미 혁신위가 출범함으로써 절반은 기브스에 목발 짚는 야당대표가 되었지만 만약 ‘황교안 총리건’ 마저 저지하지 못한다면 그는 완전히 식물야당대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반면 황교안을 낙마시킨다면 그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문재인 - 그는 노무현 대통령 가장 가까이에 함께 있으면서 노무현의 리더십과 정치철학을 몸으로 겪은 사람입니다. 이제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정치철학의 핵심인 ‘사즉생(死卽生)의 정치’를 그 스스로 실천해야 할 절대절명의 순간에 맞닥뜨렸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문재인 대표의 선택은 하나 뿐이고, 그 선언을 할 기회 조차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별 고민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야당 대표와 국회의원직을 걸고 황교안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겠다.”

문 대표는 그렇게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총리 저지에 실패하면 당 대표와 국회의원직까지 던져버리고 무한 투쟁에 돌입하는 거지요.

그것이 현 시점 문재인 대표가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카드입니다.

신상철


덧글 : ‘민주가 죽어야 민주가 산다’라는 주제를 오늘 열 번째 글로 마무리 하려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암치료 후 의사선생님께서 ‘스트레스가 가장 큰 독이니 주의하라’고 당부하셨지만, 박근혜 정권에 끌려다니는 우리 야당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크기에 주제넘은 생각이나마 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조용히 시골에서 건강관리에 매진하며 천안함 진실찾는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편] 민주당이 망가진 5가지 이유 | 민주당이 사는 법 
[2편] 4.29 재보선,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라구요? 
[3편] 보수화된 새정치민주연합
[4편] 친노인 듯 친노아닌 친노같은 너
[5편] 상산솔연(常山率然) 
[6편]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장 조국이 적임이다 
[7편] 노건호의 절규를 보는 시각 
[8편]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 바란다. 
[9편] 개혁과 혁신의 기본은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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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함께 통일을 부르다


日 통일마당 실행위원회, 제22회 '통일마당' 행사 개최
오사카=이태우 인턴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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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8  01: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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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 시니마자토공원에서 한반도의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제22회 통일마당'이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한반도 밖에도 남북의 통일을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7일 12시부터 일본 오사카 이쿠노(生野)구 시니마자토(新今里)공원에서 한반도의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제22회 통일마당'이 개최됐다.

광복 70돌과 6.15 공동선언 15돌을 맞아 통일마당 준비위원회가 주관하고 7일 고베에서도 동시에 개최된 이날 행사에서 이쿠노초등학교, 조선중급학교, 오사카고급학교 등 조선학교 학생들과 재일동포 1,000여명이 모여 우리 민족의 힘으로 이룩하는 자주통일을 외쳤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등은 연대사를 통해 "일본 정부의 군국주의 우경화 정책과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일본 지역 동포들의 평화와 통일 의지를 담은 '통일마당'이 22회째를 맞이했다"고 행사 22주년을 축하했다.

이어 "일본에서도 '통일마당'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통일행사들이 추진되고 있어 이를 통해 일본 및 동포사회 안에서도 연대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남북통일을 향한 재일동포들과 일본 지역사회의 관심이 고조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창수 통일마당 실행위원장은 "통일하지 않고 민족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미 예전에 해결됐을 것"이라며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밖에 없다"며 민족 화합을 위한 자주통일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이어진 축하행사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은 사물놀이, 케이팝(K-POP) 공연, 소고춤 등 한국적 정서가 진한 공연들을 연이어 펼쳤다.

공연을 관람한 한국인 참석자는 "우리 동포들이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모습으로 사는 것 같다"며 "과연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전통과 민족적 동질성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선학교의 한 임원은 "비록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우리 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이 한국 국적을 소지하고 있고 한국 전통 교육 역시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타지에서 민족성을 견지하는 재학생들을 자부했다.

그리고 북한에 우호적인 교육을 펼친다는 종북 논란에 "우리는 국가교육이 아니라 민족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며 정체성을 확립함에 있어 타의로 구획한 분단선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폈다.

이어 "역대 남한 정부로부터는 한 번도 지원을 받은 적이 없지만, 북한 당국으로부터 재정 보조를 받아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후원자에게 호의를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종북' 교육을 주입한 적도, 남한 배척 교육을 한 적도 없다"며 대외적인 오해와 편견을 정정했다.

또 다른 종북 논란의 원인인 '조선'이란 명칭의 사용에 대해서는 "많은 남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1919년 3.1 운동 당시 선조들은 '대한독립만세'가 아니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것이다"며 "때문에 선조들의 영향으로 조국을 조선이라 칭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행위원회는 각종 공연을 포함한 모든 공식 일정이 펼쳐진 중앙 무대 밑에 큼지막한 한문으로 '6.15 공동선언 열렬지지'란 내용의 현수막을 부착해 이목을 끌었다. 즉, 민족의 화합과 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갈 교두보라 믿었던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오늘날에도 남북이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함께할 것을 숙원하는 주최 측의 안배인 것이다.

'통일마당' 특별출연을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6.15 합창단'(단장 심재환) 역시 6.15 공동선언의 실현과 자주통일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모여 자리를 빛냈다.

맨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6.15 합창단'은 '임을 위한 행진곡', '임진강', '찔레꽃', '아리랑' 등 총 네 곡을 열창하며 행사 말미까지 자리를 지킨 동포들과 교감을 나눴다.

합창단의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과 관중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을 통일'과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곧 둥근 대열 속에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해외 동포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통일을 노래하니 감정이 북받친 듯 했다.

한 합창단원은 "말로만 듣고 생각만 하다가 직접 동포들을 만나니 처음 봤어도 마치 형제가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며 "이렇듯 민간 차원의 노력은 반드시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향후 통일을 이끌어 갈 남한과 재일 청년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정작 '통일마당'에서 중장년층의 동포들이 합창단을 향해 보인 격정적인 환영에 비해 약간의 온도차가 존재했다.

본 행사 하루 전인 6일 저녁 KCC(Korean Christian Church) 본관에서 열린 '통일마당 이쿠노 전야제'에서는 6.15 합창단원들과 재일동포들이 <통일에 대한 인식과 현주소>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재일동포 참가자는 "재일동포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이 훨씬 덜하다. 통일을 위해 남북해외의 통합된 노력이 필요한 만큼, 한국 사람들과 동포들의 교류를 증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20대 한국인 참가자 역시 "한국은 세대를 거듭하며 남북통일에 대한 갈증이 희석됐고, 90~00년대를 걸쳐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교실에서 재일동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재일동포들과 공감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당국 차원의 교육 방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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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괴담·유언비어 유포" '엉터리 발표'에 비난 쏟아져

 

18일 만에 나온 허점투성이 정부 대책... 그래도 "믿어달라"

15.06.07 18:32l최종 업데이트 15.06.07 20: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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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숙인 최경환 총리대행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 브리핑룸에서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 조치 발표와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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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7일 메르스 확산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 '정보'는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경유한 병원 명단 공개다.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18일 만에 나온 종합 대책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오류투성이다. 병원 명을 잘못 기재하거나 병원이 위치한 지역을 잘못 적었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국민 불안'을 이유로 병원 명단 공개를 거부해 온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병원 명단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서두르다 실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병원 명단을 공개한 최경환 총리대행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미 지난 3일 이후 병원 명단 공개를 준비해왔다고 밝혔지만,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뒷북'에 '엉터리 정보'로 버무려진 정부의 종합 대책 발표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1] 정부, 병원 공개 '뒷북'... "왜 이제야, 속사정 있는 게 아닌가"

정부는 이날 확진 환자가 발생·경유한 병원 24곳을 공개했다. 최 총리대행은 "지금까지 대응해온 기조와 달리 보다 차원 높은 총력적인 대응 체제를 갖춤으로써 메르스 확대를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한 정부의 방향 선회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한참 뒤늦은 조치였다. 언론은 일주일 전부터 병원명을 공개했고, 지난 3일 정부의 비밀주의에 참다 못한 시민들이 직접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은 메르스 관련 정보를 직접 밝히며 사태를 진두지휘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일, 트위터)는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이 박원순인가요?"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의 비밀주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자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 명단을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정부가 오늘에서야 병원의 실명을 공개하고 총력 대응 체제를 선언했다, 너무 늦은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라며 "왜 이제서야 하는 아쉬움과 함께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라고 짚었다.

[#2] 병원 공개도 오류 투성이... "꼭 괴담 유포죄로 처벌 받으시길"

최 총리대행은 '대통령의 지시'로 병원 명단 공개를 결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여론에 떠밀려 병원 공개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께서 지난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셨다"라며 "이에 따라 2, 3일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신고폭증에 대비한 신고체계 구축 및 격리병상 추가 확보 등 사전준비를 마치고 공개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3일을 준비한 것 치고는 너무나 허술했다. 가장 기초적인 정보인 병원명부터 틀렸다. 정부는 '평택푸른병원'을 경유병원이라 발표했지만 3시간 후 '평택푸른의원'으로 정정했다. 또 군포 성모가정의학과의원에 메르스 확진환자가 방문했다고 발표했지만 군포에는 해당 병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군포시 보건소는 발칵 뒤집혔다. 해당 병원은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성모가정의학과의원'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트위터 이용자 'sesang***'는 "사실관계 확인없이 허위 병원 정보 떠돌아다닌다고 강력히 처벌하신다 하셨는데, 지금 전혀 상관없는 군포의 병원을 사실관계 확인 없이 허위로 공개하셨으니 꼭 괴담 유포죄로 처벌 받으시길"이라고 비판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댓글을 남긴 'hevg****'는 "정부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있네요, 처벌가능한가요?"라고 꼬집었다. 

[#3] 박 대통령, 3일 병원명단 공개 지시? 사실이어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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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보다 대통령이 더 무섭다' 전단 살포 5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부근에 '메르스보다 대통령이 더 무섭다'는 전단 수천장이 뿌려졌다.
ⓒ 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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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일 대통령 지시'로 병원 명단을 공개를 준비했다고 밝히자, 당장 세종정부청사 출입 기자로부터 '의문'이 제기됐다. 그는 "(정부 관계자가) 어제는 삼성서울병원 정도만 공개할 거라고 하더니 하루 사이에 모든 병원을 공개했다, 국민여론 의식해서 갑자기 바꾼 거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긴급점검회의'를 연 후에도 정부의 '병원 비공개' 방침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긴급점검회의'에 참석한 김우주 대한감염협회 이사장은 "병원 공개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현재 환자들을 격리수용한 병원들을 전부 공개하면 앞으로 치료를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4일 "미국 등 선진국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병원 명단을) 밝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 지역과 입원 병원을 즉시 공개했다. 해당 병원에서 추가 감염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 5일 메르스 병원을 공개하려고 하자 정부가 이를 막았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병원 공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알려지자 복지부 등에서 여러차례 (자제 요청) 연락이 왔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는 3일 이후에도 꾸준히 '병원 비공개' 방침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왔다. 그랬던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에 트위터 이용자 'zzirra***'는 "뒤늦은 정부 발표 그나마 병원 명단 오류? 그 와중에 박근혜 쉴드 치느라 3일날 명단공개 하려 했었다고? 뒷북도 꼴불견이네!"라고 쏘아붙였다. <네이버>에 댓글 단 'wneo****'는 "박원순이 나서기 전부터 공개 준비하고 있었다더니 그게 이거냐? 박원순이 나서니까 똥줄타서 제대로 파악도 못하던거 대충 긁어 모아서 발표하려니 이런 꼴 생기는 거"라고 일갈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일 '병원 공개'를 지시했어도 문제는 존재한다. 새누리당에는 이 같은 방침이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대표는 3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김 대표는 4일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신속하게 공개하라"고 주문했다. 5일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정책위원회는 '병원 정보 공개'를 정부 측에 건의하기도 했다. 메르스 대응에 발맞춰야 할 정부-여당 간에도 핵심 방침이 공유 되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불통'의 사례로 지적될 수 있는 지점이다. 

정부가 병원 공개를 꺼리는 동안 삼성서울병원은 또 다른 메르스 진원지로 급부상했다. 보건복지부는 사실을 밝히는 대신 관련 사실을 폭로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저격하는데 몰두했다. 정부가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는 사이 메르스 확진 환자는 64명이 됐다. 사망자도 5명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흘려버린 18일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최 총리대행은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라, 정부를 믿어달라"고 말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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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는 여전히 이념 갈등이 존재한다”


WCD 국제위원회, 여성평화걷기 종료 소감 밝혀
이태우 인턴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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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6  19: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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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여성평화걷기 대표단이 5월 24일 북측 판문각에서 남북해외 여성들이 공동제작한 조각보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한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는 초기 구상 단계부터 행사 종료 시까지 숱한 화제와 논란을 낳았다. 24일 남한 입경 등을 포함한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WCD 국제위원회는 마냥 순탄치 만은 않았던 이번 행사를 되돌아보며 지난 4일 본지에 총 결산 및 소감을 전달했다.

위원회는 ‘여성들이 남북의 분단선을 넘다 : 소감 및 결의’란 제하의 소감문을 통해 행사 추진 배경과 과정, 성취와 한계 등을 가감 없이 술회했다.

 

우선 “남북한 주민 대부분이 DMZ를 종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여성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그들을 대변해 DMZ를 건넜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8명의 노벨상 수상자, 반기문 UN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美 대통령,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달라이라마 등 세계 각계 유수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남북해외 각종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지지 사실을 밝히며 이번 행사가 확보한 국제적 정당성을 역설했다.

 

   
▲ WCD 대표단은 북한에서 수많은 환영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진제공 - 정연진]
이번 방북 행사에 참여한 정연진 AOK(Action for One Korea) 대표는 “대표단이 북한에 도착했을 때 수천명의 여성들이 환영 인파를 이루는 등 북한에서는 WCD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국제 사회 뿐만 아니라 북한 역시 이번 행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WCD가 내세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라는 기치보다 ‘종북단체 색출’에 관심이 쏠렸다. 위원회는 일부 언론과 단체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친북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WCD 대표단은 지난 5월 2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노벨상 수상자이자 WCD 성원인 메이리드 맥과이어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을 방문해 “그의 혁명적 생애를 알게 되었으며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한 이후 종북 논란에 휩싸였다.

위원회는 이에 대해 “우리는 북한 수뇌와 일절 접촉한 바가 없고, 정치.경제적 체제 또한 지지한 적이 없다”며 “초지일관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음에도 이런 의혹이 가시지 않는 걸 보면, 이번 소동을 통해 우리가 목격한 이념적으로 갈라진 다양한 반응들은 남한에 여전히 내분이 존재한다는 방증임이 자명하다”고 아직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념 갈등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 평양 조국통일3대헌장탑 앞에서 평양시민들의 환호 속에 행진하고 있는 WCD 대표단. [사진제공 - 정연진]
또한 본래 계획이었던 판문점이 아닌 경의선 육로를 통해 입국한 것에 대해 “이미 경색된 남북관계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타협의 정신에 입각해 남한 당국과 DMZ의 관할권을 쥐고 있는 국제연합(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권고를 수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DMZ 남측구간의 행정권은 한국이 유엔사로부터 이양받았지만, MDL 통과에 대한 허가권은 여전히 유엔사가 보유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이뤄낸 성과로는 남북여성들과의 협업을 통해 ‘2015 세계 여성들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걷기 대회 기념’ 선언문을 발표하고 “남북해외 출신의 다양한 여성들이 만든 조각보를 함께 누볐다”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모든 집단이 힘을 모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점도 꼽았다.

그리고 “동영상 생중계 어플리케이션인 페리스코프(Periscope)를 운용”해 외부인들에게 “달리 공개될 방도가 없는 공간과 문화를 소개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익숙화에 기여했다”며 북한에 대한 외국인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공헌했다고 자평했다.

 

   
▲ 5월 24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도라산 출입사무소에 도착한 WCD 대표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마지막으로 20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한국전은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국제분쟁으로 남았다며 “한국전에 참여한 국제 사회와 UN은 냉정의 비극으로 기록된 한국전에 방점을 찍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과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글 번역본(전문)>  여성들이 남북의 분단선을 넘다 : 소감 및 결의

15개국 출신의 30명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3.2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우리는 평화 협정 체결, 한국 전쟁의 종식,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들의 참여 등을 요구하며 국제적 관심을 유발했다. 남북한 주민 대부분의 DMZ 종단이 불허되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여성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그들을 대변하여 DMZ를 건넜다. 

WCD 대표단은 저명한 여성 지도자들로 구성됐다. 자국의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을 주도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 출신 메이리드 맥과이어와 라이베리아 출신의 리마 보위,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오랫동안 평화 운동에 헌신한 활동가, 인권 운동가, 종교지도자, 그리고 한국인 전문가들이 우리와 뜻을 모았다.

24일 DMZ 종단에 앞서 나흘 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현지 여성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겪은 전쟁과 분열에 대한 기억을 공유했다. WCD 운동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동원을 통한 공동체 내 갈등 해소 방안을 나누기도 했다. 남북의 여성들이 동시에 남북에서 행사를 기획했고, 이는 한국 여성들과 함께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된 평화 심포지엄과 평양, 개성, 파주를 아울러 열린 평화걷기대회에 수 천명의 한국 여성들의 참여함으로써 의의가 배가됐다.

성 과

2015 여성평화걷기대회는 끝나지 않은, 하지만 '잊혀진' 한국전쟁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여성들이 실제로 DMZ-군사적 분단선으로 62년간 지속된 정전이 야기한 직접적인 결과-를 종단함으로써 평화걷기는 언론의 국제적인 관심과 세계 유수 지도자들의 쏟아지는 후원을 받았다. 8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반기문 UN사무총장, 전 美 대통령 지미 카터,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달라이라마, 작가 앨리스 워커와 나오미 클레인,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마하트마 간디의 손자 아룬 간디, 염수경 추기경, 대체 의학자 디팩 쵸프라, 트위터 공동설립자 에반 윌리엄스, 전 美 뉴 멕시코 주지사 빌 리처드슨, 엠네스티 인터네셔널 미국 사무소 잭 렌들러 등이 우리의 활동에 지지를 표했다. 노벨여성평화운동, 세계여성기금, 여성발전협회, 마드레, 긴급행동기금, 그리고 20년 전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한 여성평화활동프로그램 등의 여권 운동을 주도하는 다양한 단체들 역시 우리와 함께했다. 몇 십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여성 정치인들 역시 정치와 이념을 넘어 우리의 평화걷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수 백명의 개인들 역시 역사적인 여정을 가능케 하기 위해 재정 보조금을 보냈다. 우리는 이들의 지도력과 협력 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국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유구한 역사에 감명을 받아, 우리는 경색된 남북관계 이후 위축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운동의 불씨를 살리는데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2007년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의 북한과 교류하려는 시도는 막대한 제한을 받았고, 심지어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남한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국제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결속력을 통해 전세계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도 평화 협상의 모든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천명한 UN 안보리 결의안 1325호를 대한민국 사회의 공적 담론의 장에서 논의하기 시작하는 등 국내 토론과 정치적 공간의 개편을 촉발했다고 한다.

정체된 남한관계는 재래적인 접근을 거부하는 WCD와 같이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했다. 대부분 기성 권력 구조 밖의 사람들로서, 여성 평화운동가들은 상대편과 연결고리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평화구축에 관한 전략을 제공하는 등 갈등 분석에 있어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할 수 있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알려준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군국화는 사회의 남성화를 가속화할 것이고 이는 여성을 향한 폭력성 증대와 사회 복지 및 개인 안보에 투자되는 자원의 감퇴로 돌아올 것이다.

다양한 배경과 정치색을 지닌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북-남미, 유럽 등 각지의 예술가, 학자, 인권운동가, 그리고 평화운동가들이 평화 걷기를 위해 결속했다. 우리는 남북에 각각 적을 둔 단체들과 모두 협력관계를 맺었다. 우리는 북한에서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조선위원회와 협업했다. 남한에서는 경기여성네트워크, 한국여성정치연맹, 이프토피아를 비롯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YWCA 한국 지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다수의 여성단체와 함께했다. 우리는 위 단체들의 지도력과 협력 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들의 도움 없이 이번 행사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남북여성들과의 협업을 통해 '2015 세계 여성들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걷기 대회 기념' 선언문을 발표했다. 평양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말미에 눈물, 웃음, 그리고 노래로 꽃핀 가운데 우리는 남북해외 출신의 다양한 여성들이 만든 조각보를 함께 얽었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모든 집단이 힘을 모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은 것이다. 우리는 지식의 습득과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의미있는 대화로 귀결될 것이라 믿었다. 때문에 기술의 힘을 빌려 동영상 생중계 어플리케이션인 페리스코프(Periscope)를 운용, 북한 밖 외부인들에게 공감, 노출, 교육 등의 매개로 활용했다. 남/북한에 체류할 당시 모두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해 활동을 생중계했다. 특히 북한 내부의 공식적인 행사나 평상 모습 등을 아우르는 순간들이 이와 같은 형태로 전세계로 중계된 최초의 사례였다. 북한 내부의 일상을 짧게나마 공개함으로써 우리는 외부에 달리 공개될 방도가 없는 공간과 문화를 소개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익숙화에 기여했다.

이번 걷기행사는 특히 북한, 중국, 16개국을 포함한 유엔사령부를 대신한 미국이 1953년에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래 한국 내부 갈등을 종식하기 위해 국제적인 단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재조명했다. 국제 사회-타국 정부들 또한 70년 전 한반도의 분단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는 한반도의 평화적 화합과 통일을 지원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한 계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이 직면한 한계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DMZ를 종단하기 위해 시행한 복잡한 협의, 그리고 DMZ의 관할권을 쥐고 있는 유엔사를 통해 드러났다. 비록 정전협정을 서명한 장소인 판문점을 통해 입경하고 싶었지만, 남한 당국과 유엔사의 권고를 수렴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경색된 남북관계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타협의 정신에 입각해 모두가 동의한 경로를 채택했다.

통일을 향한 길 앞에 놓인 과제들은 북한 방문 당시 우리 대표단의 발언이 와전된 사례를 통해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발언이 보도된 이후, 우리는 주최측에 대표단 발언을 와전하고 문맥을 무시한 채 함부로 인용한 것에 항의했다. 하지만 와전된 발언들은 일부 남한 및 국제 언론에 의해 더 심각하게 왜곡됐다. 우리는 북한 수뇌와 일절 접촉한 바가 없고, 정치/경제적 체제 또한 지지한 적이 없다. 초지일관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음에도 이런 의혹이 가시지 않는걸 보면, 이번 소동을 통해 우리가 목격한 이념적으로 갈라진 다양한 반응들은 남한에 여전히 내분이 존재한다는 방증임이 자명하다.

우리의 여성걷기대회는 한반도에 평화와 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최적의 정책과 전략에 대한 토의-가끔은 과열된-를 개시했다. 바람직한 추세라고 생각하며 이런 양상을 주도하게 되어 기쁘다. 하지만 우리가 예의와 존중을 갖춰 대화에 임할 때, 상대방 또한 동일한 태도로 참여했으면 한다. 한국 전쟁의 종결, 이산가족 상봉 촉구, 여성들의 평화활동 참여 등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평화적 화합, 표현의 자유, 평화를 누릴 권리의 보호 등 기본권의 진정한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향 후 추 진

여성평화걷기대회는 '긴' 여정이 될 것이다. 2015년 DMZ 종단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장기적 운동의 일부이다. 60여년의 군사 대립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 여성운동가이자 민간인으로서 대체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남북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한국 여성들의 노력에 힘을 싣는 것이 한반도 내 평화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강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국제단체로서 남북한의 여성들과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인권문제와 비핵화 등 군사주의가 남북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깊은 대화를 조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관계의 태동이기도 하다.

평화는 인권의 진정한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적대 관계와 국제분쟁은 국가가 자국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배경을 제공한다. 세계 인권선언 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서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하게 실현될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남북간의 지속적인 분쟁은 이러한 질서를 설립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자 인권 유린의 근거로 작용한다. 인권과 평화는 상호 필수불가결하다.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없으며, 인권과 평화는 양립해야 한다.

자국을 포함한 세계를 둘러보면, 전시에 근접한 국가일수록 자국민 인권의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의 초점은 민간 교류량과 여성의 지도역량을 향상하는 것으로, 이들 모두가 군국화 감소와 평화협정 체결의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간, 경제, 문화, 학술, 정부 등 모든 차원을 막론하고 더 활발한 참여를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면적인 군사 갈등의 가능성이 고조될 수 밖에 없다.

20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 한국전은 과거에도, 지금까지도 국제분쟁으로 남았다. 평화 협정의 부재와 남북한 및 동북아 국가들의 현재진행형 군국화는 국제적 위협으로 작용한다. 한국전에 참여한 국제 사회와 UN은 냉전의 비극으로 기록된 한국전에 방점을 찍을 책임이 있다. 따라서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2015년 6월 3일
WCD 국제위원회


<영문 (전문)> Women Crossing the Korean Divide: Reflections and Resolutions

Thirty women peace makers from 15 countries made a historic crossing of?the two-mile wide De-Militarized Zone (DMZ) from North to South Korea on May 24th?International Women’s Day for Peace and Disarmament. We called global attention to the need for a peace treaty to finally end the Korean War; to reunite families long separated by Korea’s division; and to assure women’s participation in the peace process. Because most citizens of North and South Korea are not allowed to cross the DMZ, international women crossed the DMZ on their behalf in solidarity with Korean women’s desires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Korea.

The delegation included prominent women leaders, including two Nobel Peace Laureates, Mairead Maguire of Northern Ireland and Leymah Gbowee of Liberia, who led citizen movements of women to bring peace to their countries, feminist author activist Gloria Steinem, as well as seasoned peace activists, human rights defenders, spiritual leaders, and Korea experts.

During the four-day visit to North Korea ahead of the May 24th DMZ crossing, we connected with North Korean women, learning about their experiences of war and division, and sharing how we mobilize women to end conflict in our communities. Parallel events were organized with women of both Koreas, culminating in peace symposiums, one in Pyongyang and one in Seoul, and peace walks in Pyongyang, Kaesong, and Paju ? all with thousands of Korean women.

Successes 
The 2015 Women’s Peace Walk succeeded in bringing global attention to the unended, “forgotten” Korean War. By physically crossing the DMZ?the militarized division that was created as a direct result of the 62 year-old ceasefire?the Peace Walk generated major global media attention and an outpouring of support from world leaders, including eight Nobel Peace Laureates,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U.S. President Jimmy Carter, Archbishop Desmond Tutu, the Dalai Lama, authors Alice Walker and Naomi Klein, actor Robert Redford, Arun Gandhi, Cardinal Andrew Yeom Soo Jung, physician Deepak Chopra, co-founder of Twitter Evan Williams, U.S. Governor Bill Richardson, and Jack Rendler of Amnesty International USA. Leading women’s rights organizations supported us, including Nobel Women’s Initiative, Global Fund for Women, AWID, MADRE, Urgent Action Fund, and Women Peacemaker Program, which started?International Women’s Day for Peace and Disarmament twenty years ago. Dozens of South Korean women Parliamentarians across political lines issued a public statement endorsing our walk. And hundreds of individuals provided financial support to make our historic journey possible. We are so incredibly grateful for this community’s leadership and partnership.

Inspired by the long history of Korean women peacemakers, we helped revive Korea’s peace and reunification movements, which have been deflated since the souring of inter-Korean relations. Since 2007, their efforts to engage with North Koreans have been greatly hampered, and even criminalized. According to our South Korean partners, the solidarity of international women peacemakers helped renew debate and open political space in South Korea, including putting into public discourse the legal mandate of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325, which ensures the female half of the world be involved at all levels of every peace process.

The deadlocked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calls for game changer initiatives like Women Cross DMZ that go beyond conventional paths. As a group of people generally outside structures of power, women peacemakers offer a critical perspective in the analysis of conflict, providing strategies toward peacebuilding that focus on creating ties across opposing sides. As Korean feminists have taught us, the militarization of Korea leads to greater masculinization of society, which increases violence against women and strips resources away from social welfare and human security.

In preparing for the Peace Walk, a diverse group of international women from a variety of backgrounds and political views came together, including artists, scholars, human rights defenders, and peace activists from the Asia Pacific, Africa, North America, Latin America, and Europe. We partnered with organizations in both North and South Korea. In North Korea, we established working relationships with the?Korean Committee for Solidarity with World Peoples?and the?Democratic Women’s Union of Korea. In South Korea, we partnered with local women’s groups such as?Gyeonggi Women’s Network,?Korea Women’s Political Solidarity, and?Iftopia, as well as several leading national women’s organizations, including?Women Making Peace,?YWCA of Korea,?Korean Women’s Association United, and?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We are enormously grateful for their leadership and partnership, without which the Women’s Peace Walk could not have happened.

Through a collaborative process with both North and South Korean women, we issued the Declaration of the 2015 International Women’s Walk for Peace & Reunification of Korea. At the end of our symposium in Pyongyang, through laughter, tears and song, we also stitched together a jogakbo, a traditional Korean quilt, with parts made by North and South Korean, diaspora, and international women, signifying the role that each group must play to help reunify the Korean peninsula.

We believe that knowledge and connection lead to meaningful dialogue. To that end, we leveraged technology as a medium for empathy, exposure, and education by using a video streaming application called Periscope. We broadcast live footage via social media such as Twitter from both North and South Korea. This was the first time in history that moments both formal and casual were shared live with the world in such a manner from North Korea. By providing intimate glimpses from the inside, we transported the world into an otherwise inaccessible place and culture, helping to transform the unknown into the familiar.

Our walk brought renewed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world solidarity in ending the Korean conflict, particularly since the 1953 Armistice Agreement was signed by North Korea, China, and the United States on behalf of the UN Command that included sixteen countries. It helped highlight the responsibility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whose governments were complicit in the division of Korea seventy years ago? to support Korea’s peaceful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Challenges 
The challenges of overcoming Korea’s division became apparent in the complex negotiations over our DMZ crossing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as well as with the UN Command, which has formal jurisdiction over the DMZ. Although we hoped to cross at Panmunjom, the “Truce Village” where the armistice was signed, we decided after South Korea and the UN Command denied our crossing there that we would take the route agreed by all parties in the spirit of compromise lest our actions further strain the already tense North-South relationship.

The challenges of overcoming division were further illuminated by the misrepresentation of our delegation’s comments made in North Korea. We registered complaints to our hosts, insisting that our comments not be misrepresented and used out of context. Instead, these misquotes were further distorted by some South Korean and international news outlets. We did not meet with any heads of state or endorse any political or economic system, maintaining a neutral stance throughout, and yet, it was apparent that divisions within South Korea itself manifested in some of the ideologically divided reception and reactions that we witnessed.

Our Women’s Peace Walk has initiated discussion, at times heated, on the best policies and strategies for advancing peace and reconciliation in Korea.?This is healthy and we are glad to generate such debate, but as we engage in respectful dialogue, we expect the same of those who oppose our position. Our efforts to end the Korean War and press for family reunification and the participation of women in peacemaking are a true expression of our fundamental human rights to peaceful assembly,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to defend the right to peace.

Road Ahead 
The Women’s Peace Walk will be a “long” walk. The 2015 DMZ crossing is not the end, but the continuation of a long-term movement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of Korea. We bring an alternative civilian voice from an international feminist perspective to challenge over 60 years of military standoff. It is the first step in highlighting the significance and urgency of peace in Korea to strengthen our support of Korean women to help bridge the two sides. This is our first meeting with women of North and South Korea as an organized international body, and the beginning of relationships that we hope will foster deeper conversations about the impact of militarism on the North and South, including issues of human rights and nuclear disarmament.

Peace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the full realization of human rights. States of hostility and international conflict are the basis on which states have long violated the rights of their citizens. Article 28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states that all have a right to an international order that permits the fulfillment of all rights enumerated in the Declaration. The continued state of war between the two Koreas is a major obstacle to such an order and a rationale for the violation of human rights. Human rights and peace are integral one to the other. Neither is more important than the other; they proceed together.

As we look around the world, including our own? ?countries, we also see that the closer a country is to a war footing the less it respects human rights values. Our focus is to increase civilian exchanges and women’s leadership, highlighting the obligation of all parties involved to decrease militarization and move towards a peace treaty. We therefore urge increased engagement at every level -- civilian, economic, cultural, academic, governmental. The alternative is heightened risk of full military conflict, which is not an option.

Twenty countries fought in the Korean War, and thus, in many ways, it was ? and continues to be?- a global conflict. The absence of a peace treaty and the ongoing militariz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other countries in northeast Asia are global threat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e UN which took part in the Korean War have a responsibility to close this tragic chapter in Cold War history. Thus, we will continue our efforts until a peace settlement is achieved in Korea for peace in northeast Asia and our world.

June 3, 2015
WCD Committee
 
(번역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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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남정신이 있는 한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

 
  • [사회] 〈강희남정신이 있는 한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
  •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초대의장인 고강희남의장의 6주기를 맞아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가 6일 오후5시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통일애국인사, 민주인사, 종교인, 노동자, 여성,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 100여명이 참가했다.

     

    강희남의장은 지난 2009년 6월6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첫 발언자로 나선 범민련남측본부 이천재고문은 <강희남목사를 재조명하자는 글이 1000개는 나오거나 국회 또는 국무회의에서 100년에 나올까말까한 탁월한 지도자에게 어떤 예우를 해야 할 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강목사와 오랫동안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밀도는 10년 100년 사귄 사람보다 더 깊다.>면서 <그분은 통일을 위해, 혁명을 위해 총탄이든 무엇에든 목숨을 언제든지 바칠 수 있다는 확신이 넘쳐있던 분이며, 북의 김일성주석이 서거하고나서 조문간다며 판문점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간 분으로 몸소 실천하고 행동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지도자였고, 사상가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했다.

     

    그러면서 <강목사가 박정희를 그렇게 미워했듯 전두환을 그렇게 미워하고 이명박을 끌어내라는 유언을 남기며 자결할만큼 독재를 증오했는데, 오늘 이 더러운 독재가 어떤 독재인가?>라고 묻고 <참으로 박근혜는 도척(刀尺)같은 대통령이다. 선거부정으로 아우성을 치고, 세월호사건에서는 대통령이 직무중 7분도 아닌 7시간동안이나 자리를 비웠다. 직무유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해서 <도척같은 정치인들을 내쫓는게 강희남정신이다. 내쫓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강희남정신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준) 송무호공동대표는 <100kg만 있어도 300만명이 죽을 수 있다는 탄저균을 들여온 미군에 대해 통탄을 금할수 없는데 그보다 더 통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미군이 탄저균을 마음대로 들여와 실험을 하는데도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박근혜는 탄저균에 대해 말한마디 없었다. 이게 주권을 가진 나라인가. 특히 전시작전권을 무기한 연기했는데 주권을 무기한 포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정권>은 △오바마대통령의 통렬한 사죄 △미군기지내 합동연구소 즉각 폐기 △주남미군사령관과 주남미대사 문책 △군사물자반입에 관한 소파협정 개정 등을 미국에 강력히 항의하며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통선평화교회 이적목사의 <식민의 노래9-점령군>이 낭송됐고 공주대노래패 <타는목마름으로>의 노래공연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흰돌 강희남의장 6주기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에는 강희남의장이 한생을 조국통일투쟁과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투쟁에 바친 장면들이 기록된 소중한 사진들이 편집돼 있다.

     

    영상은 먼저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강희남의장의 남기는 말과 더불어 오늘 강희남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곧 이명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위한 투쟁임을 말해주고 있다.

     

    여앙에는 또 강희남의장이 전두환 호헌조치를 규탄한 1987년 40일간의 옥중단식투쟁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1991년 범민련남측본부 결성부도, 그리고 1995년 범민련남측본부 출범과 초대의장을 맡은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상에는 <북에 조문간다. 길비켜라>며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위한 방북조문투쟁, 경찰소환을 단호히 거부한 1999년 명동성당농성투쟁, 2003년 이라크파병저지를 위한 천리도보행진, 2005년 맥아더동상철거와 양키추방을 위한 69일간 노숙농성투쟁 등 주요한 역사의 고비마다 큰 걸음을 걸어온 강희남의장의 투쟁과 더불어 우리민족 고대사를 집대성한 역작 <새번역 환단고기>와 <우리민족 정리된 상고사> 발간, 2008년 제1회 파리 코리아국제포럼에서 역사적 발표 등 말년을 조선상고사연구에 매진한 나날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특히 1994년 7월 김일성주석 서거당시 강희남의장의 방북조문투쟁과 2011년 12월 김정일국방위원장 서거당시 코리아연대 박창균상임대표와 공동대표단의 방북조문투쟁기자회견, 그리고 황혜로공동대표의 방북조문투쟁 성사가 인상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영상에는 끝으로 강희남정신을 계승해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코리아연대의 실천투쟁이 다양하게 편집돼 있다.

     

    유족인 강희남의장의 아들 강익현씨가 발언에 나섰다.

     

    전주 그린피아추모관에서 6주기추모제를 진행하고 서울로 올라온 강익현씨는 추모제를 서울과 전주 양쪽에서 하게 된 사연을 전하면서 <강희남목사님께서 마지막유언으로 <살기는 여기 살았지만 죽어서는 북에 묻히는 것이 좋겠다. 내가 죽거든 북으로 보내주고, 이명박정권 때문에 만일 못간다고 하면 화장해 범민련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가 북으로 보내다오.>라고 하셨다. 때가 되면 유골을 북으로 보내드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추모제를 양쪽에서 번거롭게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손자들 이름에 모두 <혁>자가 들어가는데 이 나라를 가만히 보니 민주화운동 갖고는 안되겠더라, 혁명을 해야 바뀌겠다 해서 이름에 <혁>자를 다 넣으셨다.>며 <강목사님은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생각을 잘 안하신다. 마지막 자결하실 때 그분은 살때 살고 죽을때 죽어야지 마음을 먹으면 그냥 그렇게 하시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코리아연대 지영철전공동대표와 김정희전공동대표가 함께 발언자로 나섰다.

     

    두 전공동대표들은 지난 1월8일 기독교회관에서 민주주의수호공안탄압저지시국농성에 돌입한 이래 150일째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김정희전공동대표는 <오늘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치신 강희남의장님께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고 절절히 호소하시면서 순절한 날>이라며 <강의장님과의 인연은 12년전 결혼할 때 주례를 부탁드렸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강희남정신을 생각하면 투쟁과 실천 속에 그 답이 있다.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꿀 주체가 없다는 말씀, 이시대는 제2의 6월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말씀을 새기면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지영철전공동대표는 <강의장님은 민족을 가장 사랑하셨고, 양키를 가장 증오하셨다. 그리고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를 실천하셨고, 민중을 가장 사랑하고 독재를 가장 증오했기 때문에 억압을 반대하고 민주를 실천하셨다. 또 미대사관앞에서 농성을 하려다 못하게 되자 자신의 집 방문에 <양키대사관>이라고 써붙이고 수십일넘게 단식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강의장님과 함께 여기서 투쟁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영광이다. 살인마 이명박이 살인마 박근혜로. 이명박근혜를 끝장내는 투쟁이 바로 강희남정신을 계승하는 투쟁>이라며 <명박산성앞에서 투쟁했던 것처럼, 지난 4~5월 안국동, 광화문, 경복궁에서 이명박근혜를 끝쟁내고 투쟁했던 것처럼 투쟁하자. 강희남정신이 있는한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고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결연한 투쟁의지를 밝혔다.

     

    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미대사관앞에서 출발해 세월호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까지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강희남정신 계승하여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시키자!>, <강희남정신계승하여 양키를 몰아내자!>, <제2의 6월항쟁으로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시키자!>, <탄저균 무단반입 싸드배치 양키는 이땅을 떠나고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종미반북 사대매국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불법정치자금 민주파괴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용산학살 세월호학살 이명박근혜학살정권 퇴진하라!>, <민주파괴 공안정치 박근혜독재정권 퇴진하라!>, <6.15부정하고 탄저균방임하는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이 끝난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주관으로 <미군탄저균밀반입 및 6.15불허 규탄 시국기도회>가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렸다.

     

    150일째 민주주의수호공안탄압저지시국농성을 이끌고 있는 민통선평화교회 이적목사가 시국기도회를 인도했으며시국기도를 목정평전상임의장 정태효목사가, 시국설교를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상임고문 문대골목사가 진행했다.

     

    정태효목사는 <박<정부>가 6.15공동선언을 어기고 있는 이 현실에서 오늘 남과북이 통일된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밀반출된 탄저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권이 회개케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날 <시대의 증언>에 나선 김정희전공동대표는 <박근혜가 6.15민족공동행사를 불허했는데 박<정권> 발악의 하나다. 코리아연대를 집중탄압하고 공안총리를 임명하려는 반민주공안탄압이야말로 박<정권>의 어리석은 짓>이라며 코리아연대의 강희남의장6주기추모사 <강희남정신을 계승하여 이명박근혜를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를 낭독했다.

     

    <대북정책전환, 조건없는 민족공동행사 보장촉구> 농성3일째를 맞은 한국청년연대 정종성공동대표는 <코리아연대동지들과 선생님들과 우리도 끝까지 투쟁하겠다. 선생님들께서 개척해오신 통일운동의 길, 그 뜻 이어받아 열심히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문대골목사는 로마서12장1-2절을 읽은 뒤 시국설교를 통해 <공존이라는 역사의 오메가포인트에서 볼 때 한국현대사에서 용서할 수 없는 두사람은 박근혜와 박정희>라면서 <그 이유는 민중이 자유롭게 선택한 민주정권을 총으로 정복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과정을 보면 군대까지 출동했다. 국가정보원, 검찰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문대골목사는 <여기 민족의 통일을 세계의 하나됨을 눈물겹게 추구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귀한 권속들을 위해 스스로 역사의 주체이기를 희구하는 모든 민중들의 머리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라고 축도했다.

     

    거리기도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7시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진상규명 촉구 문화제>에 참가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배포된 <촛불101혁신호>를 받아본 시민들은 <박근혜퇴진 상식 아니냐>, <이게 최고다. 내용적으로 신문도 잘만든다.>, <여러분들이 촛불이다. 꺼져가는 불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며 직접 신문을 가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나눠 주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촛불101혁신호>에는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 <이명박근혜정권> 끝장내자!> 제목의 코리아연대성명, <박근혜<정권>의 파멸을 촉진시킨 6.15민족공동행사무산사태> 제목의 21세기민족일보사설, 강희남의장 6주기추모사 <강희남정신을 계승하여 이명박근혜를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때 경찰이 이유없이 촛불신문을 나눠주던 코리아연대회원을 막아나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왜 인터넷에도 다 나오는 내용들인데 왜 못하게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자 도망치듯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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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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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항야족 탄압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침묵을 참을 수 없는 이유

로항야족 탄압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침묵을 참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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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이 여성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리고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과의 호합을 위해 분투하는 세상 모든 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1991년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발표했다.

또 수치가 “압제에 맞서는 싸움의 중요한 심볼”이라고도 했다.

24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의 무슬림 로힝야족들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의 평가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수치를 ‘세상에서 유명하고 용감한 양심수’라고 불렀던 고든 브라운과도 의견을 달리할 것이다. 미얀마의 사람들은 “아웅산 수치가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도덕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고 했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말할 것도 없다.

UN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소수집단’인 로힝야족은 최근 몇 년 간 자신들의 곤경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몇 주 전 로힝야족 수천 명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아직도 이 세 나라의 바다에 수천 명의 로힝야족이 허술한 배를 타고 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과 깨끗한 물은 점점 바닥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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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배고프다. 너무 말랐다.’

“어부 무치타르 알리는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절박한 굶주리는 로힝야 사람들이 초과 승선한 배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5월 20일 AFP의 보도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고 나와 내 친구들은 울었어요. 그들이 너무 배고파 보이고 너무 말라서요.”

그러나 이런 로힝야족 ‘보트 피플’은 훨씬 더 큰 문제의 증상에 불과하다. 암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아시아 태평양 연구자인 케이트 슈츠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수천 명의 목숨이 지금으로선 가장 급한 문제이지만, 이 위기의 근원도 해결되어야 합니다. 로힝야족 수천 명이 미얀마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살아남지 못할 지도 모르는 보트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미얀마에서 처한 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들이 처한 압제적 상황은 130만 명의 로힝야족 무슬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부터 이동, 취업, 교육 및 의료 서비스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에 걸치며, 로힝야족이 사는 라킨 주는 로힝야족이 가정당 두 명까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차별법도 도입했다.

수십만 명이 자기 집에서 쫓겨났고, 광란에 빠진 군중들이 그들의 도시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2014년에 정부는 심지어 ‘로힝야’라는 단어 사용까지 금지하며, 미얀마에서 수세대에 걸쳐 살아온 소수 무슬림인 로힝야들이 인구 조사에서 ‘벵골인’으로 분류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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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할 수 없는 침묵

그렇다면 여기서 수치의 자리는 어디인가? 일단, 그녀의 침묵은 용납할 수 없다. 승려 아신 위라투(일명 ‘버마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의 부추김으로 벌어지는 로힝야에 대한 불교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은 물론, 정부가 나서서 그녀의 나라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을 규탄하기는커녕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집단 학살에 있어, 침묵은 공모다. 아웅산 수치도 마찬가지다.’ 런던 대학 법학 교수이자 국가범죄 계획 디렉터인 페니 그린이 ‘인디펜던트’ 사설에 최근 쓴 글이다. ‘막대한 도덕적 정치적 자본을 지닌’ 미얀마의 야당 지도자 수치는 ‘버마의 정치적 사회적 담론의 특징인 용납할 수 없는 인종차별과 이슬람 공포증’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그린은 썼다.

수치는 도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최근 몇 년 동안 미얀마의 대다수인 불교도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2016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려면 그들의 표가 필요히다. 만약 군부가 그녀를 대통령 자리에 앉게 내버려 둘지, 후보로 출마는 하게 해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수인 무슬림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축소하려 하고, 박해자와 박해 피해자가 평등한 것처럼 말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수치는 2013년에 BBC와 인터뷰하면서 추잡하게도 이 폭력이 ‘양측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하며, 인터뷰어 미샬 후세인에게 ‘무슬림들이 타겟이 되었지만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악취가 풍기는 수용소에 갇혀 ‘굶주림, 절망, 질병에 서서히 굴복하는’ 사람들은 불교도들이 아니다. 국제인권감시기구가 ‘인종청소’라고 부르는 일을 당한 것도, UN의 미얀마 인권 상황 특별 조사 위원이 ‘인류에 대한 범죄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 일을 당한 것도 불교도들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도망치려고 비좁은 배에 올라타는 것도, 그러는 와중에 망치와 칼로 공격을 받는 것도 불교도들이 아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집단 학살에 직면한 사람들은 불교도들이 아니다.

rohingya

‘집단 학살’의 위험

과장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좋으련만.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시몬-쇼드트 집단 학살 방지 센터 조사원들이 내린 결론을 들어보라.

그들은 5월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집단 학살의 여러 전제 조건이 이미 존재한다는 깊은 우려를 안고 버마를 떠났다.”

로힝야 억류 수용소를 방문하고 폭력적인 공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조사원들은 ‘버마 정부가 이들 지역 사회 전체를 억압하는 법과 정책을 즉각 수정하지 않는다며 로힝야족에게 집단 학살은 심각한 위험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배와 시체들, 보고서와 폭로에도 불구하고 수 치는 아직도 말이 없다. 로힝야족들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구하려고 달리고 있는데, 수치는 그들을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이 없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는 좀 더 많은 걸 기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닐지도 모른다. ‘헨리 키신저’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게다가, 노벨상 위원회는 평화상을 일찌감치 수여한 좀 괴상한 전력이 있어 왔다.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1994년에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걸 기억하는가? 중동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자의 어린이들에게 물어보라. 2009년의 버락 오바마는 기억하는가? 파키스탄에서 드론에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라.

라빈, 아라파트, 오바마…… 결국 그들은 물론 모두 정치인들이다. 수치는 다른 존재, 그 이상의 존재라고 우린 생각해왔다. 도덕의 아이콘, 인권 챔피언, 현대판 간디.

aung san suu kyi

슬픈 진실

오피니언 리더이자 한때 정치 죄수였던 그녀가 2013년에 CNN에 자신은 ‘이제껏 늘 정치인이었’고, 자신의 야망은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왜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슬픈 진실은 이제 우리가 장밋빛 색안경을 벗고 ‘그 분’을 바라볼 때가 이미 한참 지났다는 것이다. 수 치의 본모습을 보아야 한다. 한때 양심수였던 것은 맞지만, 이제는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원칙보다 득표를 더 중요시하는 정치인인 것이다. 죄없는 로힝야족의 생명보다는 정당 정치의 발전이 그녀에겐 더 중요하다.

수치는 1991년에 가택 연금 상태에서 수상한 노벨상을 21년 뒤인 2012년 6월에 감옥에서 마침내 받아들이며 거창하게 선언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난민, 홈리스, 희망 잃은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구석구석이 모두 보호구역이고 사람들은 자유와 평화롭게 살 능력을 갖는 세상입니다.”

세상 따윈 잊어라. 그녀는 고국에서부터, 라킨의 로힝야족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러지 않겠다면, 혹은 그럴 수 없다면, 20년 넘게 기다렸다가 받았던 상을 반납하는 걸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알 자지라에 먼저 게재되었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Aung San Suu Kyi's Silence on the Rohingya Is Inexcusabl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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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 작전’으로 숨진 특전사 대원들의 억울함

 
‘봉황새 작전’으로 숨진 특전사 대원들의 억울함
 
 
 
임병도 | 2015-06-06 10:37: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82년 2월 5일, 특전사 대원 47명과 공군 6명 등 53명의 군인이 사망했습니다. 53명의 군인이 사망하고도 3일이 지난 뒤에야 언론은 ‘대침투작전 훈련 중 악천후로 인한 추락 사고’라고 보도했습니다.
 
‘5일 오후 3시경 제주도에서 작전 중이던 군용기 1대가 추락,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53명의 군장병이 모두 숨졌다고 국방부가 6일 저녁 발표했다. 이 군용기는 대침투작전훈련이었으며 사고원인은 악천후로 인한 추락으로 일단 보고 있다. 군당국은 6일 오후 4시경 한라산 정상북방근처에서 기체잔해를 발견, 탑승장병들은 모두 순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공군 C123수송기 추락사고로 순진 육군장병 47명과 공군소속 승무원 6명 등 53명의 사망자명단은 군 사정에 의해 발표하지 않고 유가족에게만 통보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특전사 대원들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까지 가서 ‘대침투작전 훈련’을 하다가 사망한 것입니다. 왜 특전사 대원들은 꼭 제주까지 가야만 했을까요? 
 

“전두환을 경호하기 위한 ‘봉황새 작전’이 대침투작전훈련으로”
 
1982년 2월 6일 전두환은 제주국제공항 확장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전두환의 경호를 위해 특전사 요원 450명을 제주도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청와대의 명령에 따라 특전사 대원을 태운 세 대의 C123 수송기가 제주로 향했고, 이 중 한 대가 한라산에 추락했습니다.

▲박희도 특전사령관은 1982년 2월 6일 오전 8시 45분 김두청 707대대장에게 훈련 명칭 변경 메시지를 보내, ‘봉황새 작전’을 대간첩 침투작전’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 오마이뉴스

박희도 특전사령관은 사고 다음날 ‘동계특별훈련’으로 훈련 명칭을 변경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두환의 경호를 위한 ‘봉황새 작’이 ‘대침투 작전’으로 바뀐 것입니다.1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박희도 준장이 이끄는 제1공수특전여단과 3공수,5공수특전여단을 동원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에도 공수부대를 투입해 유혈진압을 합니다. 
 
특전사라는 막강한 군 전력을 자신의 사병처럼 사용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 특전사가 전두환을 지키려다가 고귀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시신과 함께 지내야만 했던 유족들’

100일 위령제를 위해 특전사 대원과 공군 53명이 숨진 한라산 사고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100일이 지났는데도 사고 현장에는 사고 잔해가 그대로 있었고, 53명 시신을 모두 수습했다는 군의 발표와 다르게 시신 더미가 무려 3포대나 나왔기 때문입니다.

▲1982년 5월 15일, C-123 공군수송기 추락 사고 현장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어지러이 널린 비행기 잔해 속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족들은 사고 현장에서 찾은 시신더미 세 포대를 들고 서울로 향하려고 했지만, 군인들의 방해로 제주의 호텔에 감금됐습니다. 1주일 동안 시신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버텼던 유족들에게 남은 것은 남편과 자식들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분노뿐이었습니다.2
 
사고 현장을 갔다 온 유족들이 유해 등을 끝까지 찾아 정리해달라고 요구하자, 부대는 1982년 7월 3일까지 제주 현장에 내려가 최종정리 작업을 하고, 유해 발견 시 화장해 국립묘지에 봉안된 유해와 합동으로 충혼비에 안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 당국은 1년이 넘도록 사고 현장에 시신과 잔해를 방치했고, 여전히 대통령 경호 때문이 아닌 ‘동계훈련’ 도중에 사망했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입 다물라,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고 원인’

봉황새 작전으로 순직한 특전사 대원과 공군 유족들은 아직도 왜 사고가 났는지 모릅니다. 그저 기상악화라고만 하지만 구체적인 사고원인은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82년 2월 5일 발생한 공군 수송기 C123기 사고기에 탑승했던 장병들의 생전 훈련 장면과 국립묘지에 안장된 고 김인현 중사의 어머니 모습. ⓒ 오마이뉴스

사고 현장 수습이나 시신 발굴 등에 참여했던 관계자와 유족들은 철저히 전두환 정권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군인들이 전두환의 경호를 위한 작전에 동원됐다가 사망했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서재철 전 제주신문 사진 기자가 촬영했던 사고 현장의 필름은 군부로 넘겨졌고, 함께 취재했던 경향신문 기자들도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서재철 기자가 숨겨놓은 1롤의 필름은 전두환 정권이 물러난 1989년에서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3
 
1989년 유족들은 서울지검에 전두환 전 대통령, 이희근 공군 참모총장, 주영복 국방장관, 박희도 특전사령관을 살인혐의 등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1992년 서울지검은 혐의가 없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4

전두환은 봉황새 작전으로 숨진 ‘C123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보고를 받은 직후 “이번 사건은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군 복무 도중 숨진 군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보상이 아닌, 정확한 진실 규명과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늘 절망감에 몸서리 칩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갔던 동작동 국립묘지는 현충일이면 엄청난 사람이 찾아오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찾아오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를 기억하는 유족들의 나이가 많아져 하나둘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군인으로 살다가 숨진 이들에 대한 진실 규명과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충일인 오늘만이라도 그들의 억울한 삶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1. 박희도 사령관, 작전명 바꾸라 명령 25년째 비문에도 ‘대침투 작전’으로. 오마이뉴스 2007년 3월 21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8928 
2. 제주 봉황새작전의 비밀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기획기사. 2007년 3월http://www.ohmynews.com/ 
3. “특전사 희생 추락 비행기 사진 군부가 빼앗아” 제주의 소리. 2012년 2월 8일
http://m.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10562 
4. 한라산에 갇힌 53명 특전사 영혼 “진실 밝혀야” 제주의소리. 2012년 2월 10일
http://m.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10699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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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평택·화성... 거리에 말붙일 사람도 없다

 

[메르스 현장] 평택, 초중고 휴업률 94%... 지역경제 휘청

15.06.06 21:53l최종 업데이트 15.06.06 21:5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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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9일 폐쇄한 평택성모병원, 인적이 거의 없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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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중동 호흡기증후군) 확산에 대한 경기도민들 불안감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 특히 메르스 진원지로 알려진 평택과 첫 사망자 발생지역인 화성 시민들 불안감은 심각했다. 이 불안감이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5일과 6일,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이고, 이 불안감이 지역경제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평택·화성·안산·안양을 찾았다. 아직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안양과 안산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화성·평택 시민들 못지 않았다. 

평택, 8일 기준 유·초·중·고 휴업률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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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이 없는 평택성모병원 앞 , 차들만 무심히 지나다니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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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 오래가면 영업을 접어야 할지도…. 매출이 50~70% 정도 떨어졌다."

메르스 진원지로 알려진 평택성모병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아무개(남, 40대)씨 말이다. 박씨는 이어 "원래 사람들 왕래가 드문 곳이었지만 (메르스 사태 이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평택성모병원을 방문한 것은 6일 오전 10시 30분께다.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자동차만 무심한 듯 도로를 지나쳤는데, 운전자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알려진 대로 병원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평택성모병원과 약 4km 떨어진 평택역 주변도 인적이 뜸했다. 번화가로 알려진 곳이다.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박씨는 "예전 같았으면 주말이라 꽤 북적거렸을 거리"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일 현재 33명이 이 병원에서 감염됐으며 이곳에서 감염돼 사망한 사람은 4일 사망한 76세 남성을 포함해 현재까지 3명이다. 이 병원은 지난 29일 폐쇄됐다. 보건복지부는 확진자 30명과 사망자 2명이 나온 뒤인 지난 5일에야 이 병원 이름을 공개하며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이 지역 시민들 불안감이 높다는 것은 휴업한 학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는 8일(월) 휴업하기로 한 학교는 전체 154개 유·초·중·고 중 145개 학교로 휴업률이 94.1%에 이른다.  

화성 동탄, 대형 쇼핑센터 매장 썰렁 주차장은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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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동탄 Y초등학교, 텅 빈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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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동탄 H병원 부근 텅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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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로 인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H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5일 오후다. 병원 문은 열려 있었지만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병원이 폐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 인근은 대형 쇼핑센터까지 있어 꽤 번화해 보이는 거리였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 붙일 사람 찾기도 힘이 들 정도였다. 병원 앞 대형쇼핑센터 매장은 썰렁했고 주차장은 한가했다. 손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매장 직원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이후 손님이 50% 이상 줄었다고 한다.  

병원 인근 Y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휴업 중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지난 3일부터 휴업에 돌입했다. 원하는 학생은 학교에 와도 되지만 불안함 때문인지 학교에 오는 아이가 아무도 없다고 한다. 화성·오산 휴업률도 73.1%로 무척 높은 편이다. 8일, 전체 253개 학교 중 185개 학교가 휴업에 들어간다. 

"불안하다, 3일째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 잠깐 나갈 때도 마스크를 꼭 쓴다. 아파트 놀이터에도 사람이 없다." 

화성 동탄 주민 이아무개(여, 40대 주부)씨가 5일 오후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말을 붙일 사람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인 소개를 받아 동탄 주민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메르스 확진 공포 때문에 한의원 환자 수도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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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업을 한 안산 A 초등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의 큰 줄넘기 놀이. 학교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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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업 연장공고, 화성 동탄 Y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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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과 안양은 아직 확진 자가 나타나지 않은 비교적 평온한 지역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화성·평택 못지않았다.

5일 오전, 이날부터 휴업을 하는 안산 A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운동장과 교실은 텅 비어 있었지만, 학교 뒤편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어우러진 긴 줄넘기 놀이가 한창이었다. 휴업은 하고 있지만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학교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돌봄 교실'은 운영하고 있었다.  

'메르스 확진자도 없는데 왜 휴업을 한 것일까?' 학교 관계자는 "학부모들 불안감이 너무 커서"라고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어 "집단공포가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안산은 6개 초등학교가 8일부터 휴업을 하기로 했다. 휴업률은 3.5%로 낮은 편이다. 

안양은 경기 중·남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학교 휴업을 결정하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5일 오후 안양 만안구에 있는 D 한의원에 들러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조아무개 한의사는 "환자 수가 30% 정도 줄었다"며 그 이유를 '사람 모이는 곳을 피하려하기 때문'이라 추측했다. 이어 "(불안감 때문인지) 환자들이 메르스에 대해서 많이 묻는다"라고 말했다.

전체 메르스 확진자는 6일 기준 50명이다. 경기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50명 중 약 32명이 경기도에 있다. 이 때문에 경기도민이 느끼는 불안감이 다른 시·도에 비해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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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호수, 욕조물 빠지듯 사라지는 미스터리 풀려

 
조홍섭 2015. 06. 05
조회수 6329 추천수 0
 

5천만톤 호수가 2시간에 완전 배수…스며든 물이 쐐기 작용, 호수바닥 당겨 파열

여름바다 수백개 호수 하룻밤 새 사라져, 녹은 빙상이 해수면 상승 불러 주목

 

gr1_LAURA STEVENS,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jpg» 그린란드에 여름이 오면 수천개의 파란 호수가 빙상 위에 생겨난다. 이 호수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사진=LAURA STEVENS,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해마다 북극 그린란드에 여름이 오면 두터운 빙상 표면 곳곳이 녹아 낮은 곳에 호수가 생겨난다. 이렇게 생긴 수천개의 빙하 위 호수 가운데 13%는 말 그대로 하룻밤 새 사라진다.
 
그린란드 서부 해안 가까운 1000m 깊이의 빙상 위에 형성된 노스 레이크에서 그런 현상이 2006년 7월 발견돼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얼음 위에 깊이 10m에 이르는 파란 물이 폭 3㎞의 호수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호수에 담겨 있던 5000만t 가까운 용량의 물이 2시간도 걸리지 않아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흐르는 물보다 빠르게 호숫물이 얼음 밑바닥의 틈으로 빠져나갔다.

 

MIT-Greenland-Melt-3.jpg» 그린란드 노스 레이크에서 물이 모두 빠져나간 모습. 사진=MIT
 
과학자들은 호수 바닥 얼음층에 수압에 의한 틈이 생겨 마치 깨진 욕조에서 물이 빠지는 것처럼 호숫물이 사라진 것임을 곧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호수 바닥에 그런 틈이 생기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진은 노스 레이크 주변 16곳에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GPS)을 설치해 정밀 관측했다. 연구자들은 2011년부터 3년에 걸쳐 호수가 사라지기 직전과 배수 과정, 배수 직후의 관측결과로부터 미스터리를 풀 해답을 발견해 과학저널 <네이처> 4일치에 발표했다.

 

Laura A. Stevens_MIT-Greenland-Melt-1.jpg»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와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진이 노스 레이크 주변에 지피에스 측정소를 설치하고 위치 변화를 재고 있다. 사진=Laura A. Stevens_MIT
 
연구결과를 보면, 배수 현상은 빙상 표면과 기반암 사이를 수직으로 잇는 기다란 터널 같은 통로를 통해 호숫물이 흘러들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물이 이 통로로 흘러 들어가면서 빙상 바닥과 기반암 사이 공간이 부풀어 오른다. 
 
그 결과 호수 바닥은 밑에서 수직 방향으로 솟아오르는 힘을 받아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효과가 나타난다. 어느 순간 호수 바닥이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바닥의 얼음층이 파열되는 것이다.

 

pic.jpg» 호숫물이 배출되는 과정. a. 빙상 위에 호수 형성 b. 수직 통로로 물이 빙상과 기반암 경계에 유입돼 팽창 c.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호수 바닥의 얼음층이 파열됨. 하늘색 파열면이 배수구 구실을 한다. 그림=스티븐슨 외 <네이처>
 
측정 결과 그 순간 빙상은 파열의 충격으로 수평으로 45㎝를 이동했다. 이 정도의 에너지는 규모 5.5의 강한 지진에서 분출되는 수준이다. 긴 선 형태로 파열된 틈을 통해 물이 빠르게 새어나간다.

 

pic2.jpg» 2011년과 2013년 호수 바닥이 파열되기 각각 하루와 이틀전 모습. 호수 바닥이 산봉우리처럼 위로 향해 부풀어 오른 것을 보여준다. 그림=스티븐슨 외 <네이처>

 

pic3.jpg» 2011년과 2013년 배수사태 전과 후의 노스 레이크의 위성 사진(a, b). c에서 파란 선은 호수 바닥이 휜 모습. 그림=스티븐슨 외 <네이처> 
 
이번 연구결과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논문 제1 저자인 로라 스티븐스 엠아이티 박사과정생은 “빙하 위 호수들이 어떻게 왜 배수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린란드의 빙상이 기후변화 시대에 얼마나 해수면 상승을 일으킬지를 예측하는데 필수적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갑작스런 호수의 배수현상이 현재로는 그린란드 해안가에서만 관찰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내륙에서는 여름에 호수가 생겨 호숫물이 개울을 통해 크레바스로 흘러들다가 겨울이면 다시 얼어붙는다.
 
그린란드의 빙상이 모두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을 6m 높이는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그린란드의 해빙 추세는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어 얼음층의 동태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aura A. Stevens et. al., Greenland supraglacial lake drainages triggered by hydrologically induced basal slip, Nature  522, 73~76 (04 June 2015) doi:10.1038/nature1448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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