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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과할 수 없는 8.15 건국절 논란

묵과할 수 없는 8.15 건국절 논란
 
곽동기  | 등록:2014-09-04 09:33:36 | 최종:2014-09-04 10:17: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히로히토의 라디오 방송이 전국에 있었다. 바로 “대동아전쟁 종전의 서”였다.

“짐(일왕)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여기 충량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 영, 소, 중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이후 생략)”

히로히토가 언급한 미, 영, 소, 중 4국에 대한 공동선언은 포츠담 선언을 말한다. 1945년 7월 26일, 미, 소, 영, 중의 4국은 독일의 포츠담에서 일본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멸을 경고하며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40년 독립투쟁으로 쟁취한 해방

포츠담 선언의 제8항에는 일본영토의 한정 조항에서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되어야하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카이로 선언에서 한반도에 자유독립국가를 인정하였으므로 포츠담선언 8항에 의해 조선독립은 이어지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하였으므로 조선은 바로 독립하였다. 

해방이 되자 한반도 전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먼저 서대문형무소,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독립투사들이 석방되었다. 서울시민들은 해방을 눈으로 확인하였으며 해방의 기쁨에 목이 터져라 환호하였다. 나라를 팔아먹던 친일파들은 도망치기 급급하였다. 일본의 항복으로 나라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던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배 36년간 나라와 국토를 완전히 잃고 일본제국주의의 노예로 극한 고통을 강요받았다. 일제는 동양척식회사로 우리민족의 땅을 뺏고, 산미증산계획으로 쌀을 가져가고, 삼천리 금수강산의 온갖 자원을 마구 수탈하였다. 1940년대가 되니 민족말살을 노린 황국신민화정책 속에 우리말과 글을 뺏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다. 수백만의 조선청년이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갔으며 대략 20만명의 조선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다.

한반도에 인간의 껍데기를 갖춘 이는 극소수 민족반역자, 친일파들뿐이었다. 3천만 동포가 노예, 거지와 다름없는 비참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우리민족은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고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이끌었던 독립군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3.1 독립만세 소리가 아시아 대륙을 뒤흔들었고 김구 선생을 비롯한 민족주의 인사들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구성하였다. 1930년대에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을 구성해 일본군과 싸웠다. 1937년, 김일성 주석은 백두산 항일유격대와 함께 함경남도 보천보를 공격하였는데 <동아일보>는 2002년, 당시 신문기사를 황금판으로 만들어 북한에 선물하기도 하였다. 상해임정은 중국 충칭으로 옮기면서 끝까지 저항하였으며 미국과 함께 광복군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김일성부대”로 알려진 사회주의 계열 항일유격대는 소련군과 함께 대일전쟁에 참전하여 8.15 항복 전까지 함경도 여러 지역을 해방하였다.

조선독립의 길에 수십만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백만의 청년들이 청춘을 바쳤다. 역사가 이러하니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은 그야말로 우리민족의 경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8월 15일을 광복절로,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으며 북한도 8월 15일을 “조국해방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친일냄새가 흥건한 815 건국절 논란

그런데, 일부 보수진영에서 8월 15일을 8.15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06년 7월,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정권은 건국절 기념행사를 가졌다. 2007년 9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내용을 담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논란이 격화되자 철회하였다. 

건국절을 처음 제기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2008년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자다. 대표적 친일교과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뉴라이트 교과서는 일제식민통치가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하게 해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계기를 제공했다고 평가하는 한편, 토지 수탈을 노린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토지거래가 활성화되고 이를 담보로 한 금융이 발전했다는 정신나간 논리에 심취해 있다. 이런 책을 집필하였다니, 한마디로 말해 이영훈은 일본제국주의를 조선의 친구로 보는 현대판 친일파라 할 수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친일에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법하다. 폭로전문 매체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 언급하였다고 한다.

친일의 냄새가 짙게 배인 이들이 건국절 논란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1945년의 8.15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48년의 8.15가 더 소중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았으며 유엔의 인정을 받았기에 대한민국이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주장한다.

우리 전후세대들은 누구나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그 권리와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70년이 경과한 대한민국의 오늘을 인정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뿌리, 출발점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임시정부를 계승하였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계승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란 무엇인가? 임정은 3·1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9년 4월 13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망명 정부 형태의 독립운동 단체였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에 설립된 임시정부들을 흡수·통합하여 통합임시정부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와 같은 길을 걸었다고 보기 어렵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방략에 대해 한국이 독립할 준비, 즉 일본과 전면적인 전쟁을 통해 승리할 물리력과 실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전면전쟁이 불가능하고 당장 자력 독립이 불가능하니 실력을 갖출 때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립이 아니라 국제연맹에 조선을 통치해달라는 위임통치를 청원하다가 임시정부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1921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당시 국제연맹에 조선위임통치를 청원했다. 이승만은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고 있어 조선백성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국제연맹이 조선을 대신 통치해달라는 정신나간 논리를 펼쳐 국제적 망신을 샀다. 결국 1925년 3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탄핵 의결로 대통령직에서 면직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고 비판했다.

이후 1933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내부 자리싸움이 치열했던 임시정부의 틈바구니 속에서 “미국박사”라는 간판을 내세워 국무위원, 외교위원 등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지구반대편인 미국에서 머물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초기정부에는 상해임정요인들이 배제되었다.

임시정부의 가장 대표적 인물인 김구 선생은 1947년에 단독정부 절대반대를 주장하였다. 김구선생은 1948년 1월 UN 한국위원단에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발송하였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1948년 4월에는 또한 임정의 주요인물인 김규식 선생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이 발기하였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강력히 주장하였던 김구선생은 38선 이남의 선거만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에서 배제되었고 1949년 6월에 암살당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를 한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포병장교로 복귀시켰으며 1953년 2월에는 완전사면해주었다.

상해임정에 참여하였던 여운형 선생은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1947년 7월에 우익테러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이렇듯 정치적 뜻을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임정의 핵심요인들이 차례로 암살당한 터에, 이승만 정권을 두고 임시정부의 정통을 계승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친일을 청산했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청산도 덮어버렸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구성되자 이승만 정권은 온 국민의 강력한 요구였던 친일파 처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1948년 9월 7일,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이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해 친일분자들을 색출하고 악질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시도를 극구 방해하였다. 반민특위가 반민족행위자 7천여 명을 파악하고 1949년 1월 8일부터 검거활동에 나선 취급한 조사건수는 682건(여자 60명 포함)이었다고 한다. 이 중에 체포 305건, 미체포 193건, 자수 61건, 영장취소 30건, 검찰송치 559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상당수 친일인사들과 손을 잡고 정권을 구성하였는 관계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가 지목한 친일파들을 “반공주의자”라며 두둔하였다. 급기야 반민특위에서 활동하던 김약수 등 13명의 의원이 남로당 등 공산당과 연계되어 있다며 이를 빌미로 반민특위를 해체시켜 버렸다.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유야무야시켰던 가장 큰 이유는 이승만 정권 자체가 지난날의 친일파들을 규합해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8.15해방과 더불어 지하에 은거한 친일파들은 미군정의 적극적인 등용으로 고개를 쳐들었으며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이전의 권력을 다시 거머쥐었다. 그러니 친일청산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였다.


국민은 통일정부를 원했다.

1948년 8월의 삼천만 조선동포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누구나 할 것 없이 통일된 단일정부를 원했다.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38선을 넘어 평양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가한 것도 전민족적으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통일정부수립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통일정부를 반대하고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끝내 강행하였다. 38선 이남의 단독정부를 지지했던 것은 바로 미군정이었다.

38선 이남의 민중들은 너나없이 단독정부 선거를 반대하였다. 4.3 항쟁이 바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제주도민의 군중적 투쟁이다. 여순항쟁 역시 단독정부 반대, 민족통일정부를 요구하는 4.3 정신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상당수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기도 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선거는 정당한 절차로 치러지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던 당시 상황에서 미군정은 제헌국회 투표율이 무려 95.5%였다고 밝혔다. 서울이 93.3%, 경기가 96.5% 등이었으며 4.3 항쟁으로 난리가 난 제주지역마저도 투표율이 86.6%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글을 몰랐던 이들도 상당수였는데 전 유권자의 95.5%가 투표를 했다는 미군정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1948년 4월 말, 신문들은 “약 500명을 인터뷰한 결과 91%가 선거 등록을 강요당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4월28일, 유엔임시위원단은 “(1)미곡배급통장을 발급하는 지방행정사무실에서 등록 실시, (2)통장을 몰수하겠다고 위협해서 강제 등록, (3)경찰과 청년단체가 등록권유”와 같은 사항을 투표자 등록 부정행위로 지적하였다. 유엔임시위원단 위원장인 야심 머기는 “투표소 둘레나 안에서 향보단원을 발견했다. 어떤 투표소엔 경찰이 투표소 안에 있었다. 어떤 투표소는 (투표의) 비밀이 결여됐다”고 했다.

결국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단독정부의 구성은 한반도의 분단을 더욱 굳어지게 하였다는 점에서 결코 정상적인 건국과정이었다고 할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의 염원이었던 통일정부 구성을 외면한 채 미군정을 앞세워 38선 이남의 단독정부를 구성했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의 염원이었던 친일청산도 외면하였다. 이승만 정권이 임시정부의 정신과 법통을 승계하였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런데 8.15를 건국절로 기념하자니, 친일의 냄새가 짙게 배여 있는 이들의 건국절 논란이 더욱 황당할 따름이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441&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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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대통령 비판 제동 걸려던 검찰 망신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9/04 11:22
  • 수정일
    2014/09/04 11: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 법원, 교사 3명 영장 기각... 검경의 무리한 구속영장청구 재확인

14.09.03 23:09l최종 업데이트 14.09.03 23:17l

선대식(sundai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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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장실질심사 출석하는 김정훈 위원장 세월호와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반발하며 시국선언과 조퇴 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오른쪽)과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그리고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하는 글을 올려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민숙 교사(왼쪽)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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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현직 교사를 구속하려던 경찰과 검찰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경찰과 검찰이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에 발맞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탄압하기 위해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윤강열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부장판사는 3일 오후 10시 20분 현직 교사 이민숙씨와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이영주 수석부위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경찰은 이들을 수사한 뒤, 지난달 29일 검찰을 통해 이들 3명이 정부를 비판하는 교사선언과 조퇴투쟁 등을 주도해 공무 외 집단행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검찰의 무리한 영장 청구에 제동을 걸었다. 윤강열 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들의 주거 및 직업관계 등에 비추어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 후 서초경찰서로 이송됐던 전교조 소속 3명은 풀려났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상식적인 결정이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전교조가 사회적인 혼란을 일으킨 사례를 나열하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주장만 했다,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기하지 못했다"며 "구속영장청구에는 경찰과 검찰만이 아니라 전교조를 탄압하려는 청와대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완패한 검찰, 왜 무리하게 구속하려 했을까

애초 검찰이 전교조 소속 3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여기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정훈 위원장은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 직전에 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앞에서, 노동기본권이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냥 죽으라'는 게 정권의 요구가 아닌가 싶다"면서 "검찰이 대놓고 정권의 시녀임을 자처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비판했다.

검경은 사전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이들의 범죄가 중대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교조 소속 3명에 대해 "세월호 참사를 빌미로 대통령 퇴진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과 함께 단기간에 수회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집단행위를 감행해 지속적인 반정부투쟁을 전개하고 있어 사회 전체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검경은 특히 이민숙씨에 대해서는 "'법외노조' 관련 법원의 판결 선고를 앞두고 전교조가 대응 방향을 결정하던 와중에 투쟁을 선도하여 전교조 조직을 압박하면서 대정부 투쟁을 유도하기로 마음먹었다"면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며, 재범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 당시 사법부의 판결에 비춰보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한 교사선언 등이 중대한 범죄라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당시 교육부는 16명의 교사를 해임했지만, 사법부는 이들 교사에 대한 해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는 시국선언을 통한 공무원의 정부 규탄 행위를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엄벌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4월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간부 3명에게 벌금 70만~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13명의 대법관 중에서 5명이 무죄 의견을 냈다는 데 있다. 

이들 대법관들은 당시 시국선언을 두고 "헌법이 국민 누구에게나 보장한 기본권으로서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교원들이 자신들의 비판적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서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은 정부로 하여금 국민의 여론을 존중하여 정책에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데 있으므로, 민주주의 국가라면 마땅히 공론의 장으로 받아들여야 할 주장이며 행위"라고 밝혔다.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어느 문명국가가 대통령에 대한 글을 올렸다고 현직교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는가"라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탄압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검찰의 수치이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서버 있는 지메일 사용했으니, 증거 인멸?

검경이 이들 3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또 다른 이유는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이미 서버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수사 자료를 확보했다. 전교조 변호인인 신인수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 변론 과정에서 "이들의 행위는 모두 언론에 공개됐고 사실 관계를 다툴만한 사안이 없다, 인멸하려고 해도 인멸할 방법도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모두 경찰과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했다. 이민숙씨는 직접 서울중앙지검에 전화를 걸어 출석 일정을 문의하기도 했다. 검경은 이들이 진술을 거부한 것을 두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이민숙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교사선언을 전교조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조직적 행위로 몰아가는 것이 가장 거슬렸다"고 꼬집었다.

이민숙씨가 구글 지메일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검경이 증거 인멸 가능성을 제기한 것을 두고 비판이 크다. 검경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미국에 서버가 있어 압수수색이 불가능한 지메일을 사용하는 등 참여자의 신원확인에 지장을 야기했다"고 강조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구글 지메일은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이메일 계정이다, 또한 이민숙씨가 교사선언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지메일을 쓴 게 아니고 오래 전부터 써왔다"면서 "검찰과 경찰이 도주·증거인멸의 우려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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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천장애인AG 9명 참가


리분희 서기장 방남..현정화 전무와 만날 듯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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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3  16: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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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측 장애인 선수단이 2013년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 장애청소년경기대회에 참가해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이 다음달 18일부터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9명의 선수를 파견한다고 3일 공식 신청했다. 북한의 장애인아시안게임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북측은 리분희 '조선장애자올림픽위원회' 서기장 명의로 '아시아장애인올림픽위원회'(APC)에 참가를 신청, APC는 관련 내용을 3일 조직위원회에 공식 제출했다.

북측은 이번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육상 1명, 양궁 1명, 탁구 4명, 수영 3명 등 총 4개 종목, 9명의 선수를 참가시키기로 했으며, 리분희 서기장을 포함한 임원 등 20여 명이 방남할 것으로 보인다.

조직위는 3일 "북한 선수단이 사상 처음으로 참가하게 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며 "그 동안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과 부족한 재정문제 등으로 대회 개최 및 홍보에도 상당히 어려웠는데 북한의 참가결정으로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김성일 조직위원장은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사상 최초로 참가하는 것이 남북 화해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하나되는 아시아를 추구하는 APC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지난 6월 18일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국내장애자의 날 기념 련환모임'에 참석한 리분희 서기장(오른쪽). 왼쪽은 북측 장애인체육을 지원하고 있는 푸른나무의 신영순 공동대표.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편, 이번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북측 리분희 서기장이 방남,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 부부와 함께 탁구친선경기를 펼쳐 1991년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 대회의 감격을 재현할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은 2012년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준회원 자격으로 런던 하계 패럴림픽에 처음 참가, 김영철 조선장애자원호연맹(KFPD) 김영철 위원장, 리분희 서기장과 림주성 수영선수 등 총 24명을 파견한 바 있다.

이어 2013년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시아 장애청소년경기대회에 참가, 수영, 탁구 등 종목에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으며, 같은 해 11월 IPC 정회원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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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와 서울시의 자주민보 등록취소 소송 항의 유인물

박근혜정부와 서울시의 자주민보 등록취소 소송 항의 유인물
 
 
 
자주민보 
기사입력: 2014/09/04 [03:3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보수 세력들의 자주민보 폐간 주장을 받고 서울시는 정보통신부에 문의한 결과 박근혜 정부의 정보통신부에서 '자주민보 폐간 적합'이라는 심사 결과를 통보해왔다며 이를 근거로 기어이 폐간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1심 재판에서 자주민보 등록취소 즉, 폐간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자주민보는 법무법인 정평 변호인단을 통해 즉각 항소하였으며 지난 9월 2일 첫 재판을 서울지법에서 진행하였다. 다음 기일은 10월 31일 이다.

 

자주민보폐간저지범국민대책위는 자주민보 등록취소 소송의 진실과 그 문제점을 전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어 집회 현장 등에서 배포하고 있으며, 여러 국민들과 양심적인 명망가들 그리고 해외동포로부터 탄원서를 받고 있는데 벌써 몇몇 해외동포들의 자필 탄원서가 본지에 배달되어 왔다.

이런 국민들의 의지를 모두 모아 이후 재판부에 정중히 제출할 생각이다.

 

▲ 자주민보 폐간 반대 유인물     © 자주민보
▲ 자주민보 폐간 반대 유인물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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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개판의 날… 뭘 잘했다고 잔치를 벌이나”

“방송 개판의 날… 뭘 잘했다고 잔치를 벌이나”언론시민·현업단체들, ‘방송의 날 축하연’ 규탄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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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02  19:43:06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언론 현업인들이 “세월호 보도참사로 민심을 조작한 방송이 무슨 염치로 축하연을 벌이느냐”며 제47회 방송의 날 축하연을 규탄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80년해직언론인협회·민주언론시민연합·방송기술인연합회·방송독립포럼·새언론포럼·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광장·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PD연합회 등 11개 단체는 2일 오후 5시 30분, 제47회 방송의 날에 앞서 축하연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에 손발이 묶인 언론현실을 개탄했다.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80년해직언론인협회·민주언론시민연합·방송기술인연합회·방송독립포럼·새언론포럼·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광장·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PD연합회 등 11개 단체는 제47회 방송의 날에 앞서 축하연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방송의 날 축하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미디어스)

 

이들은 “방송사는 공공재인 전파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해 사업을 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공정해야 하며 정파를 떠나 정치권력의 잘못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철저하게 국민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방송사들은 현 박근혜 정권의 관건 부정선거, 대선공약 파기, 간첩조작 사건 등 온갖 패악질을 해도 정권비호에만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공정보도를 내팽개치고 거짓방송으로 정권의 눈치나 보고 아양이나 떠는 애완견, 막말과 선정보도로 국민의 눈과 귀를 오염시켜 마침내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쓰레기 방송이 당신들의 권력을 지속시키는 데 얼마나 든든한 원군이겠는가”라며 “그 정치권력과 그 언론권력이 유유상종하는 당신들만의 잔치가 지금은 마냥 즐거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유가족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박 대통령이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대해 개탄하면서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등 오보를 내고 이제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고립시키는 왜곡보도를 하는 언론사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세월호 유가족과의 약속을 조속히 지킬 것’을, 방송사 사장들에게는 ‘그간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 대죄할 것’을 촉구했다.

최성민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는 “방송의 날은 국민의 이름으로 폐지를 시키거나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바꾼다면 국민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 개판의 날’, 언론 전임·현업자들 입장에서는 ‘방송 참회의 날’이라고…”라며 “뭘 잘했다고 축하하고 잔치를 벌이나”라고 반문했다.

이완기 민언련 상임대표는 “엊그제 MBC 상암동 신사옥을 축하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왔다. 박 대통령은 ‘방송이 신뢰를 쌓아야 한다’며 신뢰와 공정성을 얘기했다. 참으로 뻔뻔스럽고 염치가 없다. 자기 자신한테 해야 할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며 “그들만의 방송,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상황에서우리는 저 잔치를 당장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KBS 새 노조, 이인호 KBS 이사장 임명 거부 “원치 않으니 갖고 가라”

임기 초부터 현재까지 반복되는 방송장악 시도를 규탄하는 발언도 나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교회 강연에 ‘감명받았다’고 밝힌 뉴라이트 성향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KBS의 새 이사장으로 추천했고, 이 교수의 KBS 이사장 임명은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KBS 구성원들은 ‘낙하산 인사는 거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권오훈 본부장은 “방송의 날 맞춰서 박근혜 대통령은 KBS 구성원들이 원치 않는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그 선물 거절하겠다는 의사 직접 전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원치 않는다. 낙하산 이사 받지 않으니 갖고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권오훈 본부장은 “길환영 퇴진 투쟁 때부터 KBS 구성원들 요구는 단 하나다. 청와대는 KBS에 손을 떼라는 것”이라며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 대통령 책임론 희석시키고 KBS의 문창극 비판 보도를 공개적으로 재비판하는 등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을 앉히는 것은, 한마디로 KBS를 박 대통령 입맛에 맞게 길들여달라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어, 방통위에는 이인호 교수의 KBS 이사 추천을 즉각 철회할 것을,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인호 교수 임명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권오훈 본부장은 “그 길만이 (청와대가) 공영방송 KBS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 이날 언론시민·현업단체들의 기자회견을 '방어'하고 '관리'하기 위해 다수의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버스 앞 안내판에는 현장 대비를 위해 주차하고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사진=미디어스)

 

 

<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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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까지 바꿔? 역사개조 광풍 분다

 
 
  번호 9179  글쓴이 오주르디  조회 283  누리 15 (15,0, 2:1:0)  등록일 2014-9-2 15:46 대문 2
 
 
 
 
 


과거까지 바꿔? 역사개조 광풍 분다
(WWW.SURPRISE.OR.KR / 오주르디 / 2014-09-02)

 

 

배 안에 있던 승객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처방으로 내놓은 게 국가개조유족을 만난 자리에서는 개조를 강조하기 위해 클 대()자를 붙여 국가 대개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제 군국주의 용어에 익숙했을 박정희

국가개조는 일제 군국주의 용어다박 대통령은 어떻게 이 용어를 떠올린 걸까이 단어와 이미 친숙해 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왜냐면 아버지 박정희가 쿠데타 직후 자주 사용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이 용어에 익숙했을 사람이 바로 박정희다그가 일본군관을 꿈꾸며 교사생활을 하던 1936년 2월 일본에서 젊은 장교들이 주축이 된 쿠데타가 일어난다이들이 내건 구호가 국가개조였다경제 공황과 전쟁으로 어수선했던 일본사회를 뜯어 고치겠다며 정관계 인사들을 암살하고 정당을 무력화 시킨 뒤 천황에게 1인 독재를 해달라고 요구한다이른바 쇼와 유신이다.

천황이 이들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파장은 컸다정치에 적극 개입할 기회를 잡은 군부로 인해 일본은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향해 미친 듯이 치닫는다박정희가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4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일제 군관이 된 그는 자연스럽게 이 쿠데타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을 것이다.

일제 국가개조의 한국판 버전, ‘5.16과 유신

국가개조를 설파한 사람은 일본 군국주의 사상가 기타잇키다쇼와 유신에 관심이 많았던 일제 청년 장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선배장교들의 구호인 국가개조를 몰랐을까그럴 리 없다그 뜻을 묵상하고 유념해 두었을 것이다.

그가 뇌리에 담아두었던 국가개조는 5.16쿠데타를 통해 세상으로 나온다우리 역사를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박정희/국가와 혁명과 나)로 보고 민주주의를 빛 좋은 개살구라고 폄훼했던 박정희는 국가와 인간 개조를 외치며 민주적 정치권능보다 일관성 있는 강력한 지도원리를 주장한다.

쇼와 유신’ 때 쿠데타 세력들이 바라던 바는 천황에 의한 1인 독재였지만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스스로 천황 같은 독재자가 됐다. 5.16쿠데타와 유신독재의 모티브를 국가개조를 주장한 쇼와유신에서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와 인간 개조를 부르짖던 정권의 퍼스트레이디 출신이니 개조라는 말은 박 대통령에게도 매우 친숙한 용어일 것이다.

개조 DNA’ 상속받은 박근혜, ‘역사 개조에 박차

국가개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나보다또 다른 개조’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바로 역사개조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움직임이 국사 분야를 넘어 방송까지 강타하고 있다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역사공습이 이제 막강한 화력을 장착했다국사 관련 기관과 연구소가 뉴라이트에 의해 장악된 상태다.

친일교과서와 식민지근대화 논란의 원조인 유영익은 국사편찬위원장을교학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은 한국학대학원장을명성황후를 민비로 격하하는 등 친일 미화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이배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국사 관련 기관 장악에서 그치지 않고 방송까지 넘보고 있다정권의 방송통신 사후 검열기구로 전락한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친일과 유신독재를 미화한 대안교과서 집필자 박효종을 임명했다그러더니 지난달 30일 뉴라이트 원로인 이인호를 KBS 이사장 후보로 내정했다방송을 여론 호도 수단으로 활용할 모양이다.

이승만 친일한 적 없다” “이승만은 로마제국의 코스탄티누스” “5.16은 혁명” (유영익)

일제 식민지배는 근대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 축적된 시기” (박효종)

김활란은 일제의 극심한 회유에도 이화(여대)를 지켰다” “명성황후는 민비” (이배용)

“5.16은 혁명제주4.3사건은 좌익 폭동희생자에게 국가가 사과할 필요 없어” (권희영)

문창극 비난하는 사람은 제정신 아냐...김구는 대한민국 체제 반대한 사람” (이인호)

일본군 위안부는 단순 매춘부돈을 위해 매춘 저질렀다.”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역사공습 이끌고 있는 뉴라이트 야전지휘관들

이들은 모두 일제 식민지배와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을 미화해 온 교과서포럼’ ‘한국현대사학회’ ‘현대한국학연구소’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뉴라이트 역사공습을 이끌고 있는 야전 지휘관들이다.

역사공습을 주도하는 저들은 친일과 독재를 불가피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그러면서 친일과 독재의 결과물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한다더 나아가 친일과 독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현재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거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박 대통령도 이들과 한통속이다이들과 궤를 같이할 뿐 아니라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해왔다이유는 간단하다아버지 박정희를 얘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가 친일과 독재다이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 때문에 박정희의 공이 퇴색되고 나쁜 평가를 받을뿐더러 자신에게는 비난의 화살이 돼 돌아온다고 보고, ‘부정적 의미를 긍정적 의미로 치환시키기 위해 저들과 손잡은 것이다.

국가개조는 현재의 모습을 바꾸겠다는 것이지만 역사개조는 과거를 뒤집어 놓겠다는 얘기다과거까지 개조하겠다는 미친 파시즘그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9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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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다는 ‘민생법안’ 실체는 재벌과 부자만을 위한 특혜

급하다는 ‘민생법안’ 실체는 재벌과 부자만을 위한 특혜
 
‘민생’ 이란 단어는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를 뜻합니다
 
임병도 | 2014-09-03 08:35: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 입법 촉구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호소문 발표 자리에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이 최 부총리와 함께 서 있기도 했습니다. 

최 부총리는 "8월 국회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이번 회기에 민생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길을 잃고 회복하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빨리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민생법안은 <관광진흥법>, <의료법>, <소득세법>, <조세특례제한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클라우드컴퓨팅법>, <기초생활보장법>, <신용정보법>, <국가재정법>등 9개입니다. 

이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하면 경제 회복이 힘들다고 주장하며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과연 그것이 민생법안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씩 따져 보기로 했습니다.
 1
 

 

 

 

 

빨리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관광진흥법>은 학교 근처라도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호텔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지난 3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입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기업인이 관광호텔 설립 승인을 신청했으나 호텔이 초등학교 18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어렵다고 하자, 유진룡 문화체육부장관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기준을 가지고 규제를 해 우리도 미치겠다'고 발언을 합니다. 

듣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은 '시기에도 안 맞는 편견으로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고 있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호텔 객실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서울 소재 호텔 이용률은 79%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호텔 업계의 일용직 근로자가 79%이고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부실 일자리를 가지고 '죄악'을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이 학교 인근이라도 호텔을 건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원격의료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의료법>은 의사들도 반대하고 있는 법안입니다.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과 선택진료비 증가 등의 국민 의료보험 지출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격의료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급한 환자인 경우는 예약을 하거나 의사가 모니터 앞에 있어야 하는 연락망이 가동되는 시스템에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격진료를 대부분 당뇨나 혈압 등 관리가 필요한 질병 등에 적용할 예정입니다. 

지금 대기업은 너나 할 것 없이 헬스케어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원격진료 대상이 질병 치료가 아닌 관리 시스템에 도입되기 때문입니다. 

진단장비, 시스템 구축에 소요되는 세금 비용과 이익은 이런 헬스케어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에 돌아갈 것입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있는 의료 관광비자 발급 제출 서류 간소화와 환자 유치 업무 범위의 숙박시설 확대는 의료영리화를 위한 법안입니다.

이런 법안이 무슨 민생법안이라고 빨리 처리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정부는 2천만 원 이하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분리과세를 하며, 3년간 세금을 면제하는 <소득세법>을 처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사람은 136만 명입니다. 이들이 임대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그만큼 근로소득자 (현재 10~36%)만이 세금을 부담하는 꼴이 됩니다. 

'공평과세'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부는 136만 명만을 위해 그나마 있던 세금마저 내지 않도록 도와주고 '불로소득'을 조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조세특례법>에 적용되는 세입자의 월세 10% 소득공제는 오히려 집주인들이 소득의 노출로 2 세입자에게 월세를 올리거나, 3 불평등한 계약을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국민 4명 중의 한 명이지만, 공동주택 지분이나 공동 소유 등을 제외하면 집 구하러 다니는 국민이 태반입니다. 재건축을 통해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전세대란을 부추기는 꼴이 된 것입니다. 

136만 명을 위한 법안, 이것을 민생법안이라도 불러도 좋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9개 법안은 검토와 실효성을 다시 조사해야 할 필요성이 많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나온 지급 대상에 대한 기준은 오히려 117만 명의 수급 탈락자가 발생할 수 있게 합니다. 

<신용정보법>은 개인정보유출 사고 방지를 위한 과징금과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취지인데, '집단소송제'나 입증책임을 어떻게 하느냐의 후속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법안입니다. 

소상공인진흥기금을 설치하는 <국가재정법>은 이미 2013년부터 2조1,526억 원의 자금을 지급하는 등 시행하고 있는 법안입니다. 
 

 

 

새누리당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민생법안'에 대해 '당장 어려우신 분들께 혜택이 돌아가고, 세월호 참사로 얼어붙은 우리 경제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생명과도 같은 법들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빨리 통과시켜야 우리 경제가 살아난다는 '민생법안'의 실체는 재벌과 대기업, 부자들을 위한 혜택이지, 결코 일반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이 아닙니다. 

'민생'이란 단어는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를 뜻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민생법안' 그 어디에서도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가 나아지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민생법안'이라는 말로 포장한 '특정계층을 위한 특혜 법안'에 아직도 속고 있는 국민이 많으니 권력과 부를 지닌 재벌과 부자들만 살판나는 세상입니다.

1.박근혜정부 민생법안 평가자료:경실련,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새사연, 
2.세입자가 공제 받기 위해서는 계약서와 월세 내역 등을 제출해야 한다.
3.월세 10%분에 소득공제분을 집주인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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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교통사고" 왜 자꾸 들먹이나 했더니

[안전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⑨마지막] '적당히'가 통할 수 없는 4·16특별법

14.09.02 19:47l최종 업데이트 14.09.02 19:47l

이호중(escapeline)

세월호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구조 실패의 원인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반복되는 재난사고 속에서 왜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연속칼럼을 통해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가 힘모아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맞다. 왜 그런가? 우리가 '세월호 참사'라고 하는 것은 단지 희생자 수가 많아서 때문만은 아니다. 몇 가지 장면을 다시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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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수색하던 '언딘', 청해진해운과 계약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 투입된 민간 잠수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가 사고 책임 해운사인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업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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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16일, 해경은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에 기울어져 침몰해가는 배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할 뿐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생존 학생들은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해경은 구조할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 해양구조 업무를 민간업체에게 외주하는 정책을 펴 왔기 때문이다. '언딘'이라는 업체가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후에야 구조에 나섰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더구나 언딘이라는 회사는 구조전문업체가 아니라, 인양업체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재난상황에서 신속하게 구조업무를 해야 할 정부는 구조현장에 없었다.

#2. 세월호 선원들은 이미 여러 차례 과적으로 인해 배가 위험하다는 경고를 선사 측에 전달했다. 물론 무시되었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 구조의 임무를 저버린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돈벌이에 혈안이 된 청해진해운이 과적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 세월호 운항을 강행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선원들의 위험 경고는 자본의 탐욕 앞에서 힘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3. 선박운항의 안전을 점검하는 일은 한국해운조합에서 맡는다. 한국해운조합은 선주회사들이 회비를 내어 운영하는 단체이다. 선주회사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해운조합이 안전점검을 한다는 것이니, 제대로 된 안전점검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조타기가 고장나도, 과적을 해도 아무런 제약없이 출항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정부가 안전관리 업무를 민영화한 단면이다.  

#4. 서해페리호 침몰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노후선박의 운항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2009년, 여객선의 선령제한은 20년에서 30년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대구지하철참사가 발생했을 때 1인승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아직도 1인승무제는 여전하다.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1인 승무제는 확대되었고 무인역사 등 역사 근무인력은 대폭 감축되었다. 이게 다 기업의 비용절감을 위한 규제완화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채로 오로지 돈벌이만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을 본다. 규제완화니, 민영화니 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본연의 의무를 저버린 정부의 무능과 추악함을 본다. 친기업적 규제완화 정책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마저 해체되어 버린 참담한 현실을 본다. 

그래서 '참사'다.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였기에 참사다. 정부가 자본의 탐욕과 결탁하고 있으니 참사다. 그 결과 존엄한 삶의 권리가 박탈당했으니 참사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아주 무겁고도 엄중한, 그렇지만 반드시 시민들의 힘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시민들의 특별한 각오가 담겨 있는 4·16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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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자 10명' 조끼 입은 유가족들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청와대앞에서 밤샘노숙중인 유가족들의 박근혜 대통령 면담 요구 수용을 촉구하는 '8.30 국민대회'가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실종자 10명의 사진이 붙은 조끼를 입고 있다. 이 조끼는 시민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안산까지 도보행진을 하며 입었던 것으로 이날 국민대회에서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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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9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 그리고 대한변호사협회는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아래 '4·16특별법안'이라 함)을 마련하여 국회에 입법청원하였다. 법안에 따르면, 특별위원회는 3개의 소위원회로 구성된다. 

제1소위원회는 진실규명을 담당한다. 일정 경력이 있는 변호사가 제1소위 상임위원으로서 특별검사의 권한을 가지고 수사와 기소 업무를 담당하도록 한다. 제2소위원회는 안전사회를 위한 대안을 마련한다. 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과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건강한 일터,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방안을 제시한다. 제3소위원회는 피해자의 치유와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 

4·16특별법안의 내용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당연하게도 철저하게 그 진상을 밝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에 기초하여 안전한 사회를 위한 개혁과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은 그 자체가 정의의 실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교통사고'라고 말한다. 

대형참사가 발생했을 때마다 정확한 진실규명 없이 몇몇 하급책임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적당히 보상금만 지급하면 그만이라는 심보이다. '세월호=교통사고'라는 말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정부의 무능함과 기업의 탐욕을 시민들이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정치공작 언어이다. 

4·16특별법이 '특별'한 이유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각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능과 병폐 그리고 기업의 탐욕이 대형참사를 발생시켰다는 것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런 참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모아진 것이 바로 4·16특별법이다. 그러니 적당히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시민의 힘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점검해 보자.

[과제①] 자본의 이윤추구에 갇힌 '안전'을 구출하자

세월호 참사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의 논리를 앞세운 자본의 탐욕과 정치권력의 야합이 빚어낸 참담한 재앙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은 두 말 할 것 없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에 속한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안전에 써야 할 돈을 줄이고 각종 친기업적인 규제완화 및 민영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추구를 조장해 왔다.

기업은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비생산적인 비용으로 간주하면서 기업의 이윤추구를 극대화한다는 명분으로 안전비용을 줄인다. 안전업무에 투입되어야 할 인력은 감축되고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그 결과 우리의 일상생활과 일터 곳곳에서 생명·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들은 기업의 비용절감, 경영효율화 등의 명분으로 방치되고 누적되어 왔다. 이렇게 축적된 위험이 결국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 안전사고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세월호 참사는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첫째, 안전 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해야 한다. 1993년에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그 핵심은 기업의 안전업무에 관련된 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가스, 유독물 등 안전보건 관리자의 법정 의무고용을 완화하고,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안전관리 업무를 대행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기업들은 기계설비의 정비·보수를 비롯한 안전관리 인력을 감축하고 안전관리 업무를 대폭적으로 외주화하고 있다. 

기업의 비용절감 논리에 따른 안전 인력의 감축과 안전관리 업무의 외주화는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심각하게 증폭시킨다. 안전관리 업무를 대행하는 하청업체들은 단가 후려치기라든가 최적가낙찰제 등으로 근본적인 비용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안전관리 업무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철도공사의 정비업무를 담당하는 외주 회사인 코레일테크는 90%의 인력이 비정규직이다. 간접고용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할 수밖에 없고 이직율도 높기 때문에 정비 업무의 전문성과 경험이 제대로 담보될 리 없다. 게다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업체와의 관계에서 철저한 갑을 관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설비교체나 근본적인 보강작업이 필요한 경우에도 원청업체에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없다.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은 이렇게 축적되고 있다.

둘째, 정부가 안전관리·감독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문제도 반드시 짚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객선에 대한 선원 안전교육과 여객선 입·출항 시 안전 점검 등을 담당하는 한국해운조합은 선주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다. 한국해운조합이 운항관리자를 선임하여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지도·감독한다. 

여객선 선주 회사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는 해운조합이 선사들을 상대로 안전관리를 한다는 것이니 이보다 더 우스운 민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 덕분에 세월호는 아무렇지 않게 화물 과적을 일삼을 수 있었다. 사고 당일 세월호 출항보고서에는 차량 대수 등 화물의 적재 내용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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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 사고 현장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잠실방향으로 향하던 열차가 멈춰있던 열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끼리 충돌하면서 기관실 유리창이 부서져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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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여객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5월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신호기 오류였다. 열차의 신호시스템을 설치·유지하는 일은 '유경제어'라는 민간업체로 외주화되어 있고, 철도신호 시스템의 안전점검은 철도신호기술협회라는 곳에서 한다. 이 협회는 철도신호 시스템을 제작하는 민간기업 477개사가 회원으로 있는 단체이다. 2006년 건설교통부로부터 철도안전전문기관으로 지정된 철도신호기술협회는 철도시설의 모든 안전점검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셋째, 기업과 사업주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 법제도의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 산재나 재난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정작 기업과 사업주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정작 안전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하급 책임자인 현장의 안전관리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앞세운 기업의 조직구조와 사업주의 결정이 안전사고의 원인임에도 기업과 사업주는 법적 책임의 시야에 전혀 포착되지 못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업에 벌금이 부과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2000~3000만 원을 넘지 않는 수준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현장의 안전관리자로 다른 사람을 채용하면 그만이고 기업이 내야 할 벌금은 그저 비용으로 치부될 뿐이다. 사내도급사업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하청업체의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사업주가 산안법 위반의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림산업의 가스폭발사고(6명 사망, 11명 부상), 삼성 불산유출사고(1명 사망, 5명 부상), 청주 SK 폭발사고(8명 사망) 등에서 원청 사업주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 2011년 7월, 4명이 사망한 이마트 냉동설비 질식사고의 경우 원청업체가 받은 벌금은 고작 100만 원에 불과하였다. 

[과제②] 안전에 관한 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강화로 

이명박 정부는2009년 여객선 선령제한을 최대 30년으로 늘렸다. 선주 회사들의 요구에 정부가 화답한 것이었다. 해운조합이 2007년 7월 당시 해양수산부장관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했고 정부가 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선령제한이 완화된 덕에 청해진해운도 2012년 10월 일본에서 18년간 운항하고 퇴역한 여객선을 인수하여 선실을 개조한 후 별다른 규제없이 운항할 수 있었다. 

철도 차량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하다. 노후화의 문제가 심각함에도 정부는 2012년 철도안전법과 도시철도법을 개정하여 고속철도 30년, 일반철도 20~30년이었던 내구연한을 아예 폐지해 버렸다. 노후원전의 설계수명을 연장한 것도 동일하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로 모두 130번의 사고·고장을 일으켰으며 2007년 수명 연장 이후에도 5차례나 가동이 정지되기도 하였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 승인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암덩어리' 취급하면서 경제활성화, 일자리창출의 명목으로 친기업적 규제완화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난 국민들은 규제완화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5월 21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제816회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그래도 규제는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그는 규제완화가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하면서 "세월호 사고를 이유로 규제개혁의 불씨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규제완화정책으로 기업의 비용을 줄여 주어야 경제가 살아나고 경제가 살아나야 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증가한다는 식의 논리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러니까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여전히 자본의 비용절감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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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광장에 등장한 대형 노란리본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7월 22일, 노란 우산을 들고 리본을 만들어보이며 더 이상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우리사회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규제완화 중단, 수명 끝난 원전 폐쇄 등을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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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③] 안전한 삶의 권리를 향한 시민의 저항적 실천

안전한 삶의 권리는 생존권과 모든 인권의 기초이며, 국민의 기본권보장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근원적인 책무가 바로 안전한 삶의 권리가 충만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안전한 삶의 권리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은 작동을 멈추었다. 그러니 "이것이 국가냐?"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국가는 '이윤을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자본의 국가'일 뿐, 더 이상 국민의 안전하고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국가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피아'라는 말은 이제 흔한 용어가 되었다. 그 단어는 썩을 대로 썩어버린 관료사회의 부패함을 표현해 준다. 그런데 이는 단지 몇몇 정부관료들의 추악함을 말하는 용어가 아니다. 관피아의 본질은 자본과 국가권력의 동맹에 있다. 김영삼 정부 이래로 역대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규제완화정책과 기업의 안전관리 업무를 외주화하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통해 민중들의 노동·생활현장의 안전문제를 기업의 비용절감과 효율성의 논리에 복속시켜 버렸다. 

작업장의 안전 문제가 비용절감,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하여 기업의 자율과 사적 자치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위험은 고스란히 노동자와 시민들이 사적으로 감수해야 할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안전의 기준은 철저하게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점점 더 하향조정되어 왔다. 그것을 부추기면서 부패한 이익을 뒷주머니로 챙긴 자들이 바로 관피아다. 그러니까 관피아는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추구를 조장하면서 기생하는, 무책임하고도 반헌법적인 정부 그 자체이다.

안전한 삶의 권리는 '인간다운 삶', '존엄한'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안전한 삶의 권리는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자본의 논리에서 구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안전한 삶의 권리는 생활·노동현장에서 자본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민주주의적 의제로 정립되어야 한다.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기업이 노동현장의 안전을 온전히 책임지도록 하는 법제도의 개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볼모로 기업의 돈벌이를 조장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정책을 폐기하는 것,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안전권리를 보장하는 것, 유해화학물질 등 유해위험에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공동동체 등 시민사회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안전관리스스템을 만드는 것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안전한 삶의 권리를 향한 이 모든 사회적 과제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신자유주의 동맹에 저항하는 치열한 시민행동으로만 성취할 수 있다. 

안전한 삶의 권리는 그저 국가의 보은을 구걸하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시민의 주권자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제이며, 그러니까 저항의 권리여야 한다.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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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철옹성인가"…유족들 절규

"청와대는 철옹성인가"…유족들 절규

[현장] 세월호 유가족, 광화문광장서 청와대로 삼보일배

서어리 기자 2014.09.02 17:56:32

 
 

"'뭐가 부족하다고 뭐를 더 달라는 말인가?' 어제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 의장이 저희들에게 한 얘기입니다. 진정 모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새누리당은 국민을 기만하고 왜곡하는 행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이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저희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님께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2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 행진을 했다. 전날 새누리당과의 3차 면담이 시작 30분 만에 결렬되자, 방향을 틀어 다시금 청와대로 향한 것.(☞ 관련기사 : "세월호 유가족-새누리 3차 회동 '결렬'")
 
▲2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 행진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프레시안(서어리)

▲2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 행진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프레시안(서어리)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삼보일배 행진 시작 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을 규탄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규명', '안전사회' 구호에 맞춰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규명', '안전사회' 구호에 맞춰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이들은 "어제의 새누리당 만남의 결렬 이유는 명확하다"며 "새누리당이 세월호 진상규명에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어떠한 추가 협상안도 없음을 강조했고, 나아가 '반체제를 주장하는 세력에 국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결국 청와대로 갈 수밖에 없다"며 185만 명분의 서명지가 든 상자 60개를 나눠 들고 청와대 방향을 향해 몸을 틀었다. 유가족 뒤로 국민대책회의, 일반 시민 등 100여 명이 3열로 대형을 맞춰 섰다. 이들은 걸음을 세 번 옮긴 뒤 '진상규명', '안전사회' 구호에 따라 엎드려 절을 올렸다.
 
청와대로 향하던 행진 대열은 그러나 50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세종대왕 동상 양옆으로 늘어선 경찰벽에 막힌 것. 유가족들은 경찰벽을 코앞에 두고 제자리에 서서 삼보일배를 계속했다.
 
경찰의 구둣발 앞에서 흐느끼며 절하던 단원고등학교 고(故) 박예지 양의 어머니 엄지영 씨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이 왜 이러고 있습니까. 청와대가 시켰습니까. 이런 거 하지 마시고 우리 아이나 구해주시지 그랬어요. 아이 없으세요? 결혼 아직 안 하셨죠? 조카는 있잖아요. 경찰이라고 자기 아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경찰은 피도 눈물도 없나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얼마나 불렀겠느냐고요. '엄마, 살려줘. 아빠, 살려줘' 안 그랬겠느냐고요."
 
▲경찰들 앞에서 엎드린 유족들. ⓒ프레시안(서어리)

▲경찰들 앞에서 엎드린 유족들. ⓒ프레시안(서어리)

엄 씨의 절규에 유가족들도 덩달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故) 이재욱 군의 어머니 홍영미 씨도 청와대를 향해 울부짖었다.
 
"아무 죄 없는 경찰 앞에서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한 인간으로서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게, 처절하게,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직도 저 파란 지붕은 철옹성입니다. 
 
백성들은 잘못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 준비가 더 이상 분노로 바뀌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진상규명해서, 나라를 정말로 아끼고 제대로 짊어지고 가실 요량이라면 양심선언을 하셔야 합니다."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언제든 오라고 했는데 왜 막느냐, 당신들이 대통령보다 높은 거냐"라고 말하며, 경찰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다.
 
삼보일배는 행진이 시작한 지 3시간여가 지난 오후 5시 30분 현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계속되고 있다.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경찰을 향해 "경찰이라고 자기 아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며 절규하던 세월호 유가족 엄지영 씨가 다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경찰을 향해 "경찰이라고 자기 아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며 절규하던 세월호 유가족 엄지영 씨가 다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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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경제학자가 파헤친 '이명박근혜'의 실체

[게릴라칼럼] 미리 본 <21세기 자본>... 피케티가 한국에 보내는 경고
14.09.02 10:49l최종 업데이트 14.09.02 10:49l
강인규(foucault)

 

'게릴리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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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자본> 겉그림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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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었다.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700페이지 가까운 이 책은 전화번호부만큼 두껍고 벽돌처럼 무거워 들고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표지 디자인도 사람의 시선을 끄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투박하고 단순한 영어판 표지는 1970~80년대 한국에서 공안당국의 눈을 피해 찍어낸 '불온서적'을 연상시켰다. 글자만 찍힌 소박한 표지는 현란한 그림과 사진으로 도배된 책 속에 묻혀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학술서 아닌가. 그것도 수치와 그래프가 가득한 경제이론서다. 애초에 일반대중을 겨냥한 책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시장에 풀리자마자 무섭게 팔려나갔고, 매진 사태가 계속되어 출판사를 놀라게 했다.  

결국 이 책은 하버드대학교 출판부 신기록을 세워, 출간 첫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책은 5월 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고, 20주가 지난 8월 초 현재까지도 순위권을 지키고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딱딱한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경제학, 99%가 분노하는 이유를 보여주다

<21세기의 자본>은 저자의 모국 프랑스에서도 그런대로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미국의 '피케티 광풍'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영국에서의 반응은 미국 같지 않았다. 

미국의 빈부차가 영국과 프랑스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것 같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점령시위'가 미국 월스트리트와 전국을 뒤덮으며 '99%를 위한 사회'를 만들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미국사회는 <21세기 자본>이 분석하는 자본의 문제점을 몸으로 깨닫고 있던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진행되면 소수에게 부가 집중될까? 아니면 반대로 성장, 경쟁, 기술발전으로 인해 부가 고루 나뉘게 되어 조화로운 사회가 될 것인가? 

첫 번째 관점은 19세기에 칼 마르크스가 제시한 것이고, 두 번째는 20세기 이후 사이먼 쿠즈네즈 등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것이다. 21세기에 살게 된 우리는 어떤 입장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누가 자본주의의 결말을 제대로 예견했을까?

토마 피케티는 앞의 두 입장 모두가 충분한 증거 없이 내려진 판단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직관에 의한 결론이라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저자는 오노레 드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 등의 문학가가 직관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삶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포착해 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피케티는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을 입증할 필요성을 느꼈다. 자본주의에 대해 상반된 입장이 서로 목소리만 높이는 상황에서는 경제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진단과 처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5년에 걸쳐 방대한 문서작업을 했다. 지난 300년 동안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일본 등 20여 개국의 세금자료 등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는 무척 흥미롭다. 

오늘날 미국 = 18세기 혁명 전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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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유럽의 소득불균형을 보여주는 그래프. 유럽 국가들은 1920년 이래로 소득불균형이 급격히 줄어든 반면, 미국은 1940-1970년 사이에 소득 불균형이 크게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80년대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방임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소득격차가 다시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피케티는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 과세강화와 누진세 강화를 통해 소득불균형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 Pik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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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소득집중도는 세계 최악이다. 2012년 기준으로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48%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절반을 1할의 부유층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소득 집중도가 낮은 편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의 약 33% 가량을 점하고 있고, 스웨덴의 경우는 더욱 낮아 28% 미만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국이 항상 그랬던 것이 아니며, 유럽도 항상 그랬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의 소득집중도는 미국보다 높았다. 네 나라 모두 45%를 훌쩍 넘어설 때 미국은 4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이것이 1910~1920년 동안,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뒤집히게 된다. 

이 시기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많은 유럽국들이 '1차 세계대전'에 휩쓸렸고,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이 사실은 마르크스가 비판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왜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농업국을 벗어나 산업혁명이 겨우 불붙기 시작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피케티의 설명은 간단하다. 전후 유럽국가들이 대거 사민주의로 전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서유럽국가들의 복지정책 대부분은 전후에 고통 받던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때 채택된 사회보장제도는 지금까지 비교적 견고하게 유지되며 소득불균형을 막아주는 기능을 했다. 

주류경제학이 가르쳐온 바에 따르면,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조절기능을 통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려면, 개입을 최소화해 '순수한 시장'을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탈규제'와 '작은 정부'로 대표되는 자유방임주의를 가장 열렬히 신봉해 온 나라다. 하지만 미국은 혁명 전 프랑스 왕정과 비슷하거나 더 심한 소득불균형을 겪는 나라가 되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자를 편애하는 '보이지 않는 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보이지 않은 손'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런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21세기 자본>도 '보이지 않는 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손이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핵심내용은 부등식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r > g 

여기서 "r"은 자본수익률을 의미하고, "g"는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자본수익률이란 돈 있는 사람이 그 돈을 굴려 얻어내는 수익을 말한다. 부가 사회에 분배되려면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데, 만일 경제성장률이 부자들의 소득 증가율보다 크다면 장기적으로 부는 균형 있게 분배될 것이다. 반대로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크다면,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피케티의 부등식을 보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 이것이 피케티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근원적으로 부를 편중시키는 제도라는 것이다. 피케티는 여기서 소득 불균형이 '시장 실패'나 정책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시장 자체에 내재된 속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방임주의가 가르치는 대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둘 경우, 소득 불평등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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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 피케티의 <자본> 열풍을 다룬 미국 경제주간지 <비지니스위크> 표지. 불어 원서를 번역한 이 책은 미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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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득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인가? 피케티는 소득 불균형이 줄어들었던 예외적 사례로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전쟁이고, 하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다. 전쟁은 재산을 파괴하고, 재산권자를 살해하며,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금융재산을 종잇조각으로 만든다. 전시에는 국가가 필요에 따라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는 일도 잦다.  

전쟁을 불균형 치유의 대안으로 고를 수는 없으므로, 남은 것은 정부의 개입이다. 부자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하고 복지를 확충함으로써 시장 고유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때 누렸던 1940~1970년 유례없는 활황기는 바로 이렇게 찾아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0년대 경제공황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대적인 복지정책을 마련했다. 사회보장제도 도입, 노동자 단체교섭권 보장, 실업자 구제, 누진세 강화 등 대대적인 정부 개입에 나선 것이다. 부유층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빈곤층 보호에 열을 올리는 대통령을 향해 부자들은 '계급의 배반자', '빨갱이(pinko)'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는 현재, 루스벨트는 워싱턴, 링컨과 함께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근혜 노믹스'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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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신임 대통령과 이명박 전임 대통령이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연단을 내려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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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다시 심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자랑하던 두터운 중산층은 얇아지기 시작했고, 일은 더 많이 하면서도 실질임금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집권 후 방임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가는 동시에,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어야 가난한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trickle-down)'론을 탄생시켰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외환위기 이래 심화되어 왔지만, 이를 가속화시킨 것은 탈규제와 부유층 세금감면으로 대표되는 'MB노믹스'였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레이거노믹스'와 닮은 이름으로 불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명백한 실패로 드러난 20세기 정책을 21세기에 추진했다는 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거노믹스'를 탄생시켰던 미국은 2008년 세계금융 위기 이후 정 반대의 철학을 지닌 개혁주의자 오바마를 당선시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같은 해, 우리는 가장 극단적인 방임주의자를 지도자로 골랐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한국사회는 'MB노믹스'를 이름만 바꿔 계승한 후보를 또 다시 대통령으로 맞이했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상황이 낫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의 상위 10% 소득 집중도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46%에, 하위 50%의 소득 점유율은 미국보다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비록 피케티는 한국 사례를 인용하지 않지만, 그의 경고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에 소개된 <21세기 자본> 서평 대부분이 소득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이 책은 교육과 지식인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예컨대 미국에서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비싼 등록금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부유층이 진학하는 사립대에 집중투자하면서 나머지 학교들은 소외시킴으로써 계급을 고착화하는데 기여한다.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아직 나오지도 않은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징표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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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징맞은 숲속 요정, 흰눈썹황금새를 만나다

앙징맞은 숲속 요정, 흰눈썹황금새를 만나다

윤순영 2014. 09. 01
조회수 424 추천수 0
 

도사를 떠올리는 커다란 흰 눈썹, 몸 아래 뒤덮은 탐스런 황금빛

잘 보전된 숲속에서 만나는 황홀한 여름 철새, 보호와 관심 필요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YSJ_1563.jpg» 영역을 경계하는 흰눈썹황금새 수컷.

 

5월부터 6월 하순 청아한 새소리가 푸르른 숲속에서 들려온다. 몸 길이 13㎝의 숲속의 작은 요정 흰눈썹황금새다. 참새보다 작은 앙증맞은 새이다.

 

높은 산이나 계곡보다는 낮고 평지인 우거진 숲을 좋아한다. 그런 곳은 쉽게 개발되니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한다.

 

크기변환_dnsSY3_9134.jpg» 깔끔한 자태의 흰눈썹황금새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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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썹황금새는 주로 나무 구멍에 둥지를 짓는다. 그러나 나무구멍을 찾지 못하면 전나무나 잣나무 가지 위에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밖으로 노출되는 것보다는 나무 구멍이 새끼 기르는데 더 안전하다는 것을 새라고 모를까. 하지만 나무 구멍 좋은지는 모든 새가 다 아는 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인공 새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크기변환_dnsSY3_9403.jpg» 흰눈썹황금새 암컷.

 

크기변환_dnsSY3_9392.jpg» 둥지로 향하는 흰눈썹황금새 암컷.

 

수컷 흰눈썹황금새는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킨다. 경고성으로 지저귀며 자기 영역의 둥지 주변에 다른 새들이 침범하면 크기와 상관없이 작은 몸으로 쏜살같이 날아가 쫒아낸다. 어디서 저런 용기가 생길까 의아스러울 정도다.

 

크기변환_dnsSY3_9263.jpg» 새끼를 기르는 바쁜 와중에도 깃털 고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크기변환_dnsSY3_9293.jpg» 사냥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깃털 다듬기는 필수적이다.

 

암컷 흰눈썹황금새는 수컷이 목숨을 다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을 때 열심히 둥지를 만든다. 새끼가 태어나면 수컷과 함께 먹이를 나르며 새끼를 키운다. 먹이는 주로 곤충류의 성충과 나방의 유충 및 벌 등 동물성 먹이이다.

 

크기변환_dnsYSJ_1831.jpg» 먹이를 물고 둥지로 다가가는 흰눈썹황금새 암컷.

 

크기변환_dnsYSJ_2009.jpg» 새끼 배설물을 물고 나가는 흰눈썹황금새 수컷. 

 

먹이 사냥도 둥지 주변 100m 안팎으로 제한하며, 새끼를 보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흰눈썹황금새의 수컷은 몸의 윗면이 대부분 검은색이다.

 

날개에 흰 무늬가 있고 꼬리는 검고 허리와 등에 노란색 무늬가 있다. 멱과 가슴, 배에는 선명한 노란색, 흰 눈썹 선이 아주 뚜렷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도사의 흰 눈썹을 떠올리게 하는 이색적인 눈썹을 가졌다.

 

크기변환_dnsSY3_9268.jpg» 뚜렷한 흰 눈썹과 황금빛 배가 도드라지는 흰눈썹황금새 수컷의 모습. 

 

 

크기변환_dnsYSJ_1584.jpg» 먹이 사냥을 하면서도 둥지 주변을 수시로 경계하며 살피는 흰눈썹황금새 수컷. 

 

부리는 검고 다리는 짙은 갈색이다. 수컷은 검은색과 흰색, 노란색의 삼색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암컷은 이마에서 등까지 연한 녹색을 띤 갈색이며 날개에 흰색 무늬가 있고 허리에 노란색 무늬가 있다.

 

동부 시베리아·몽골·아무르·우수리·한국 등지와 중국 북동부 및 중국 동부 양쯔강 하류에서 번식하다가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난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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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장악 없다는 박근혜의 약속은 거짓

 
 
뉴라이트 친일파 후손 이인호 교수를 KBS 이사장 후보 내정
 
임병도 | 2014-09-02 08:34:3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KBS의 새 이사 후보로 내정됐습니다. KBS 이사장은 방통위 위원들이 투표로 뽑는데 이 교수가 제일 나이가 많고, 과거 KBS 이사를 지냈던 경력이 있어 KBS 이사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인호 교수가 KBS 이사장이 된다는 것은 역사 왜곡을 자행하는 친일 성향의 뉴라이트 세력이 방송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는 박근혜 정부의 언론장악과 뉴라이트 등용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뉴라이트 이인호 교수 친일을 옹호하다' 

이인호 교수는 전형적인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입니다. 뉴라이트의 핵심은 친일입니다. 

왜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느냐면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는 물론이고,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출신 안병직 교수나 이영훈 교수 등 대부분의 뉴라이트 인물들이 철저히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저지른 조선의 수탈과 위안부 문제를 일본제국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은 일제의 조선 침략이 오히려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사] - '친일독재미화' 교학사 교과서 채택 고등학교 명단
[현대사] - 박정희는 왜 '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었나?
[현대사] - '교학사' 교과서는 '일본 후소샤' 한국판?
[현대사] - 아이에게 5.16을 '군사쿠데타'로 가르쳐야 할 이유
[현대사] - 조선의병이 마적? 일본에 뒤통수맞은 한국
[현대사] - 친일 뉴라이트 연합,한국을 접수하다.


이번에 KBS 이사장 후보로 내정된 이인호 교수도 친일을 옹호하며 일본제국주의 조선침략을 정당화하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한국 근현대사'와 뉴라이트 한국현대사학회의 고문입니다. 
 

 

 

특히 이인호 교수는 친일 발언 논란으로 사퇴했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적극 지지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인호 교수는 6월 19일 TV조선에 출연,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연설이 감동적이었으며, 그의 강연이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한 것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KBS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친일 발언 영상을 보도해서 각종 특종상을 받았지만, 방통위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KBS이사장에 문창극을 지지한 사람이 임명된다면 KBS에서 친일 옹호 비판 뉴스는 더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친일파의 자손, 친일 청산은 이제 그만을 외치다' 

이인호 교수는 친일을 옹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일청산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인물입니다. 
 

 

 

이인호 교수는 제자 최영미 시인과의 대담에서 친일청산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최영미 시인:그럼 친일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할까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알려줄 필요는 있지 않습니까? 

▶ 이인호 교수:물론이지요. 역사학자들이 친일청산 문제를 연구해 오고 있는데, 학자들에게 맡겨둬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만 아니라 남이 보아도 수긍 할만한 현대사 쓰기 작업을 거국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이인호 교수는 친일청산을 역사학자들에게 맡겨 놓고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현대사 쓰기는 친일과 역사 왜곡으로 얼룩진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인호 교수가 친일청산 대신 뉴라이트의 친일 교과서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가 친일파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이인호 교수의 할아버지 이명세는 조선총독부가 유도황민화를 위해 조직한 어용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조선유림의 대표로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했으며, 징병제를 찬양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죽는 것을 축하하라는 한시를 지어 바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인호 교수는 살기 위해서 친일하는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조선인이 살기 위해 학도병이나 징병,징용됐다고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선유림의 대표로 명망 받는 지식인이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던 행위를 이런 범주에 넣는 것은 학자의 자격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가 친일청산을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학문적 주장이 아니라 그가 친일파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 방송장악 없다는 박근혜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철저히 뉴라이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뉴라이트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과 친분과 교류를 맺어 왔습니다. 
 

 

 

뉴라이트의 각종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단순히 참석만 한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 이론과 주장에 찬성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 원로급(???)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이인호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에 대해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으며, 박 대통령은 수첩에 이 교수의 말을 적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저 수첩에만 뉴라이트의 이론을 적은 것이 아니라, 국정에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고문이었던 이배용을 학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대표적인 이승만 찬양 유영익을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친일을 미화하며 역사 왜곡으로 물의를 빚었던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집필한 권희영을 한국학대학원장에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방송과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쥔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뉴라이트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효종을 임명했고, 이어 이인호 교수를 KBS 이사장에 내정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방송장악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국민 앞에 약속한다고 말했습니다. 

KBS 이사장이었던 이길영은 임기가 1년이나 남았었습니다.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사람이 갑자기 사퇴하고, 방통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뉴라이트 인물이었던 이인호 교수를 선임합니다. 

방통위를 먼저 접수하고 KBS 이사장까지 자신의 이론으로 삼고 있는 뉴라이트 인물을 내정했다는 것은 앞으로 그녀가 역사교과서 왜곡은 물론이고, 방송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대선 공약부터 계속 거듭되는 그녀의 약속 파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사용했던 '무단 통치','민족 분열 통치','민족 말살 통치'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밀고와 선동을 자행하며 적극적으로 일본의 앞잡이로 활약했던 조선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친일파의 활약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어리석고 서글픈 민족이 되고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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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4대강 이 정도로 망가졌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9/02 12:27
  • 수정일
    2014/09/02 12: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장하나 의원, 7월 촬영사진 공개...녹조현상 심화돼
14.09.01 13:35l최종 업데이트 14.09.01 14:54l

선대식(sundaisik) 

 

녹조현상에 신음하는 올여름 4대강 사진이 공개됐다. 


1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환경부가 지난 7월에 촬영한 4대강 항공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녹조와 큰빗이끼벌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4대강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4대강 사업 완공 이후 녹조 현상이 심화됐다. 환경부는 녹조 현상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녹조 현상은 매년 4대강에 나타나고 있다. 

낙동강 상류 칠곡보에서도 녹조현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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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지난 7월 11일 촬영한 낙동강 함안보 항공사진에서는 강변을 따라 이어진 선명한 녹조띠를 확인할 수 있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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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지난 7월 11일 촬영한 낙동강 함안보 인근 사진에서 낙동강 지류에 퍼진 선명한 녹조 띠를 확인할 수 있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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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촬영된 낙동강 함안보 사진에서 녹조 띠의 선명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낙동강 지류에도 녹조현상이 침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7월 23일 촬영된 낙동강 사진에서는 녹조현상이 더욱 심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합천보 상류~달성보 하류 구간의 낙동강의 색깔은 녹색으로 변했다.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인근 낙동강은 녹조 현상이 심화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했다. 

또한 녹조현상이 주로 발생하는 낙동강 하류뿐만 아니라, 상류인 칠곡보에서도 녹조현상이 발견됐다. 낙동강 상주보·칠곡보·강정보·달성보·합천보·함안보의 경우, 2012년~2014년 7월 마지막 주에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남조류 개체수를 비교한 결과 올해 가장 많이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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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지난 7월 23일 촬영한 낙동강 합천보 상류~달성보 하류 구간 사진을 살펴보면, 녹조 현상으로 인해, 강 색깔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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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지난 7월 23일 촬영한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인근 낙동강 사진을 살펴보면, 녹조현상이 심화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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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지난 7월 23일 촬영한 낙동강 달성보 인근 사진에서 넓게 퍼진 녹조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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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충남대 교수는 지난 2011년 한국수자원학회 심포지엄에서 "칠곡보 등 중상류의 조류농도가 체류시간의 증가로 인하여 보 설치 전보다 심해질 것"이라는 모델링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낙동강 곳곳에서는 녹조뿐만 아니라 하폭과 수심 확대로 강바닥을 파낸 탓에 나타난 고사목 군락지가 눈에 띄었고, 황량한 친수공간도 보였다.  

금강에서도 녹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큰빗이끼벌레가 번성하는 고사목 군락지도 확인할 수 있다. 금강유역환경청은 장하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큰빗이끼벌레는 대부분 좌우안에 분포하는 수몰고사목 가지에 부착돼 있다"라면서 "수몰고사목 군락이 많은 백제보 좌안부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다"라고 밝혔다. 

장하나 의원은 "지난해 2012년~2013년 4대강 항공촬영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올해 항공촬영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전문가들이 4대강의 생태계 변화와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복원대책을 마련하는 기술 검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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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 지난 7월 16일 촬영한 금강 백제보 상류 사진에서는 선명한 녹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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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주 유럽 순방, 최근 북한 '공세외교' 주목

당국자 "고립.제재 이완 염두..목표달성 쉽지 않을 것"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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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2  11: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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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유럽 국가를 순방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강 비서는 이르면 이번 주 후반부터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하고 벨기에서 유럽연합(EU) 측과의 일정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2일 오전 “강석주 비서가 9월 초중순경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를 방문한다”며 기간은 열흘 내외라고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강석주가 유럽에 가는 것은 ‘당 대 당’ 교류”라며 “강석주가 행정부 안에 직책이 없고 당비서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북한 노동당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정당의 초청으로 가는 걸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외교적 고립, 또는 국제사회에서 취하고 있는 대북한 제재의 어느 정도의 이완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공세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핵.미사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북핵 불용’ 입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목표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개인적 판단을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EU는 △북한 핵문제 △북한 인권문제 △남북관계 개선에서 진전이 있어야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비판적 관여(critical engagement)’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강석주(75) 비서는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당시부터 북핵외교의 핵심 담당자로서 부총리를 거쳐 당비서를 맡고 있으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어 그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 비서의 스위스 방문 시기 일본 총리실 납치문제대책본부 수장이 제네바에 머물 것으로 알려져 북.일간 고위급 접촉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다른 일각에서는 중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북.중 협의나 유럽지역에서 북.미 접촉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고 최근 리수용 외무상의 중동.아프리카 순방 등을 예로 들며 “강석주 유럽 방문도 포함해서 북한외교가 공세적 모습 띠는 것 아닌가 생각든다. 우리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분야 핵심 실세인 강 비서가 유럽행을 선택한 것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북.중관계도 원활치 않은 조건에서 유럽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인 2009년경 ‘포괄적 세계전략’을 수립하고 ‘북.미관계’ 일변도에서 남북관계는 북.일관계를 등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에도 공세외교를 펼치는 구상을 세원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최근 프로레슬링 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억류된 미국인 3명을 <CNN> 인터뷰에 내세우고 리수용 외무상이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참가에 이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대외 외교를 펴고 있어 강 비서의 유럽 방문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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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만탑산 핵실험장, 분주한 서해위성발사장

조용한 만탑산 핵실험장, 분주한 서해위성발사장
 
한호석의 개벽예감 <12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9/01 [20: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1 > 이 사진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3차원 영상기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흰색 줄로 그어진 거대한 계곡이 지하핵실험장 지표면 구역이다. 거기서 갱도를 얼마나 깊이 파고 들어가 얼마나 많은 격실들과 차폐문들을 곳곳에 만들어놓았는지 외부에서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북은 국토면적이 좁기 때문에 핵폭발력이 큰 핵탄을 폭발실험에 사용할 경우 인근도시들에 인공지진피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폭발력을 줄인 소형핵탄을 폭발실험에 사용하였던 것이다. 올해 들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에서는 지난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들이 나타났는데, 요즈음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용한 분위기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 자주민보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에 드리운 커다란 가림막이 벗겨지는 날

 

지난 8월 11일 미국의 대북정보웹사이트 <38 노스(North)>에 주목할 만한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에서 핵실험이 임박한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었는데, 요즈음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조용하더라는 것이다. 그 기사를 쓴 분석가 잭 류(Jack Liu)는 요즈음 북의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이 왜 그처럼 조용한지 알 수 없다고 궁금해 하였다. <사진 1>


지난 5월 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은 미국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서 북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를 가림막으로 가려놓았다고 하였다. 지난 6월 25일 미국 관영언론매체 <미국의 소리>에 실린, 미국 스탠포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CISAS) 객원연구원이며 위성영상자료분석가인 닉 핸슨(Nick Hansen)의 대담에 따르면, 북이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를 가림막으로 가려놓으면 군사정찰위성 또는 민간관측위성이 갱도입구로부터 25~30m에 이르는 범위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이 지난 시기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때마다, 길이가 25~30m나 되는 커다란 가림막을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에 설치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닉 핸슨은 그 날 대담에서 그런 식으로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형적인 북한식 위장술”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위장술이라는 말을 썼지만, 위장이라기보다는 은폐이므로 은폐술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갱도입구에 도착한 특수수송차량에서 핵탄상자와 관련장비들을 꺼내어 갱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촬영하지 못하게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은 무슨 은폐술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집중감시를 받지 않는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같은 핵보유국들은 지난 시기 핵실험을 실시할 때 가림막을 드리울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으면서 미국으로부터 집중감시를 받는 북이 가림막도 드리우지 않고 지하핵실험을 준비하는 작업을 적대국에게 노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과 미국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현실을 망각한 채,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비적대적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북의 행동을 인식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오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은 지하핵실험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핵탄을 폭발시키기 직전에 갱도입구를 봉쇄하고 가림막을 걷어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위에서 언급한 <CNN>방송 보도기사는, 북이 커다란 가림막으로 갱도입구를 가려놓은 것은 지하갱도 깊은 곳에 마련한 특수격실에서 핵탄을 폭발시키는 시각이 가까웠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북은 갱도입구를 봉쇄한 시각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핵탄을 폭발시키게 되는데, 북이 갱도입구에 드리워놓은 커다란 가림막은 미국군 정찰위성의 시야를 가려 갱도입구가 언제 봉쇄되는지 알지 못하게 하므로 미국은 북의 핵실험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미리 알지 못한다. 가림막 아래서 갱도입구를 봉쇄한 북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지하핵실험장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대를 피해 가림막을 걷어낸 다음 즉시 핵탄을 폭발시킴으로써 지하핵실험 실행시각을 미국에게 미리 노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북이 갱도입구에 가림막을 드리우는 바람에 지하핵실험이 임박한 징후가 나타났던 지난 4월 하순, 언론계보다 군부가 한 발 더 먼저 움직였다. 위에서 인용한 <CNN>방송의 보도가 나오기 며칠 전인 지난 4월 21일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북의 제4차 지하핵실험에 대비하기 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지난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기간에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태세는 핵탄폭발에 임박한 상황까지 도달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난 지금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은 왜 그처럼 조용한 것일까? 위성영상자료에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고 적막감마저 감도는 것 같은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의 ‘이상한 분위기’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첫째, 북의 핵무력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한 각종 오류정보들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미국의 핵전문가들은 북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때마다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기 위한 핵폭발실험을 실시했다는 식의 주장을 계속해왔다.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려고 핵폭발실험을 실시한다는 주장은 핵보유국들이 컴퓨터모의실험기술과 임계전핵실험기술을 아직 몰랐던 1980년대에나 들을 수 있는 ‘옛 이야기’인데, 21세기를 사는 핵전문가들의 입에서 그런 엉뚱한 소리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는 데서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남측 국방부다. 이를테면, 지난 4월 23일 남측 국방부는 “한미정보당국의 분석결과 북한이 탄두중량을 1,500kg 이하로 줄였지만, 1,000kg까진 줄이지 못했다.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가 가시화하고 있지만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남측 국방부의 그런 주장은 아마 그들 자신도 믿지 않을 것이다. 북이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부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북이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한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핵탄을 다종화, 정밀화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뜻한다. 나는 지난 8월 19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북의 핵개발사 다시 쓰기와 ‘최후 결전’ 예견’에서 국내외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북이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였음을 논증한 바 있다.


그러나 남측 국방부는 북이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2014년 5월 8일부 보도기사가 해명해주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만약 북한이 (핵탄의) 소형화, 경량화를 달성했다고 하면 핵무기 보유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이는 곧 한국의 북핵정책 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정책 및 핵비확산정책의 실패”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남측은 북이 핵탄을 아직 소형화, 경량화하지 못했다는, 자기들도 믿지 않을 황당한 주장을 어쩔 수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둘째, 북이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2006년 10월 9일)과 제2차 지하핵실험(2009년 5월 25일)은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시 북미협상에 의도적으로 난관을 조성한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협상을 재개하고 최종적으로는 미국을 철군담판으로 끌어내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차례의 선행 지하핵실험들과 달리, 북이 2013년 2월 12일에 실시한 제3차 지하핵실험은 대미압박이 아니라 대미응징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2013년 2월은 철군담판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2009년 7월 이후 근 4년이나 지난 때였으므로 북은 2013년 2월에 지하핵실험으로 미국을 압박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2013년 2월 당시 북은 2012년 12월 12일에 자기들이 실시한 인공위성발사를 ‘범죄행위’로 몰아가며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대북제재조치를 추가한 미국의 적대행위를 물리적으로 응징할 필요가 있었는데, 북의 제3차 지하핵실험이 바로 그런 대미응징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집요한 거부로 철군담판을 더 이상 추진할 필요가 없게 된 이후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박차를 가해오는 북은 미국을 압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므로, 앞으로도 북은 미국을 압박하려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려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북의 핵실험은 적대행위를 감행하는 미국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응징하기 위해 실시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금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지하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북은 미국이 북의 위성발사를 ‘범죄행위’로 몰아 대북제재조치를 또 다시 추가하는 적대행위를 감행할 경우 핵실험으로 미국을 응징하려고 대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예견하는 것처럼, 북이 지하핵실험으로 미국을 응징하는 것은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을 전제로 한 행동이다. 
북의 핵개발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한 미국은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는 것이다. 그런 의도를 지닌 미국이 북의 위성발사를 또 다시 ‘범죄행위’로 몰아 제재조치를 추가하는 적대행위를 감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이 그런 식으로 대북적대행위를 감행할 경우 북이 그에 상응하여 그보다 더 강경한 보복행동에 나서는 것도 역시 불가피하다.


이처럼 미국의 적대행위와 북의 보복행동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조국통일대전’에서 북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할 때까지 계속되면서 한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책임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철군담판을 끝내 거부하고, 대북적대행위에만 집착해오는 미국에게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4년 9월 현재 한반도 정세는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와 북의 대미보복행동의 반복적인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 매우 긴장된 상황에 놓여있음이 자명해진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지금 북이 신형 위성운반로켓과 신형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자기의 우주개발사업을 막바지에서 힘껏 다그치고 있으며, 멀지 않아 위성발사폭음을 울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시해야 할 곳은 핵실험준비를 완료하고 조용히 대기 중인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이 아니라 각종 공사를 벌이며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서해위성발사장이다. 

 

▲ <사진 2> 2012년 4월 북이 외래기자들과 외래전문가들에게 공개한 서해위성발사장 종합지휘소의 벽에는 위와 같은 총배치도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북은 그 모든 시설들을 완전히 일신시키는 전면적인 개건공사를 진행하는 중이며, 오는 10월과 11월 사이에 완공하게 된다. 더 많은 위성들을 우주공간에 쏘아올리며 우주개발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려는 북의 원대한 구상과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자주민보

 

60m로 증축된 거대한 위성발사탑과 궁금증 불러일으키는 수송열차 지하구간

 

북이 지하핵실험을 단행하는 목적이 대미압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의 우주개발을 막아보려는 미국을 응징하는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목적도 대미압박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우주개발을 추진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의 위성발사는 북미관계의 변동상황과 무관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북이 자체로 정한 우주개발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만약 북이 위성발사준비를 모두 끝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서해위성발사장에 위성운반로켓을 세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그 동안 벌여온 대대적인 공사를 마무리단계에서 다그치고 있는 중이다. 그 공사는 기존시설을 부분적으로 보완, 보강하는 공사라고 하기보다는 기존시설을 현대적인 대형시설로 대체하는 전면적인 개건공사라고 보아야 한다.


2012년 4월 북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언론인들과 위성전문가들에게 공개한 서해위성발사장 종합지휘소에는 커다란 ‘서해위성발사장 총배치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 배치도를 보면, 종합지휘소, 관리운영소, 위성발사장, 련동시험장, 발동기시험장, 원격관측소, 숙소, 도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2> 그런데 지금 북은 그 모든 시설들을 완전히 일신하는 전면적인 개건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개건공사에 대해서는 지난 8월 21일 닉 핸슨이 <38 노스>에 실은 글 ‘북코리아의 서해위성발사장: 증축공사 거의 완성, 더 많이 발사하려고 준비하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닉 핸슨이 이전에 서해위성발사장에 관해 쓴 몇몇 글들이 모두 그러하듯 이번에도 민간관측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하는 글을 썼다. 최근 그가 <38 노스>에 발표한, 서해위성발사장에 관한 글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첫째, 서해위성발사장 발사장은 길이가 200m로 매우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생겼고 전체가 콘크리트로 포장되었는데, 거기에 이동식 발사대(movable launch platform)와 발사탑(gantry tower)이 설치되었다.


전면적인 개건공사가 벌어지기 이전에는 위성운반로켓을 발사탑에 세울 때 쓰는 높이 11m, 길이 28m의 대형기중기가 발사탑 맨꼭대기에 얹혀 돌아갔는데, 그 대형기중기는 지난 7월에 철거되었다. 대형기중기를 철거한 것은, 3단으로 분리된 위성운반로켓 동체를 이동식 발사대 위에 조립해 세운 뒤에 그 이동식 발사대를 발사탑으로 이동시켜 위성운반로켓을 발사탑에 장착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전면적인 개건공사가 벌어지기 이전에는 3단으로 분리된 위성운반로켓 동체를 대형수송차량 세 대에 각각 나누어 싣고 발사탑까지 가서, 발사탑 꼭대기에 설치된 대형기중기로 들어올려 조립하는 식이었다.

 

▲ <사진 3> 이것은 서해위성발사장의 위성발사탑을 컴퓨터도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위성발사탑을 증축하기 전 모습이다. 북은 이 위성발사탑을 10층에서 13층으로 증축하여 높이를 46m에서 60m로 높였다. 60m로 증축된 위성발사탑이라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릴 수 있으며, 장차 우주선도 쏘아올릴 수 있다.     © 자주민보
▲ <사진 4> 이 사진은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3호 2호기를 쏘아올리는 장면이다. 위성발사탑 윗부분에 증축한 3층을 흰색으로 표시하였고, 은하-3호보다 25m나 더 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 길이를 붉은 색으로 표시하였다.     © 자주민보


둘째, 위성발사탑 증축공사는 이미 끝났다. 독일의 미사일전문가 노르베르트 브뤼게(Norbert Brűgge)의 분석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 위성발사탑은 10층에서 13층으로 증축되어 높이가 46m에서 60m로 높아졌다. <사진 3>


60m 높이로 증축된 북의 위성발사탑을 중국의 위성발사탑, 우주선발사탑과 비교하면, 우주개발에서 북의 위성발사탑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중국 시촨성(四川省)에 있는 시창위성발사중심(西昌衛星發射中心)의 위성발사탑 높이는 45m이며, 중국 고비사막에 있는 주콴위성발사중심(酒泉衛星發射中心)의 위성발사탑 높이는 45m이고, 우주선발사탑 높이는 75m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북의 위성발사탑은 중국의 위성발사탑보다는 15m 높고 우주선발사탑보다는 15m 낮은 것이다. 하지만 북의 위성발사탑이 중국의 우주선발사탑보다 15m 낮다고 해서 북의 위성발사탑에서 위성만 쏘아올릴 수 있고 우주선은 쏘아올릴 수 없는 것은 아니며, 60m 높이의 발사탑에서도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다. 


60m로 높아진 서해위성발사장 위성발사탑에서는 길이가 55m가 되고, 지름이 4m가 되는 위성운반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 북이 지난 2012년 12월 12일에 쏘아올린 은하-3호 위성운반로켓은 길이가 30m, 지름이 2.4m였는데, 북이 쏘아올릴 새로운 위성운반로켓은 은하-3호보다 길이가 25m나 더 길고, 지름이 1.6m 더 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멀지 않아 등장할 그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이 과연 은하-9호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나게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셋째, 서해위성발사장을 일신하는 전면적인 개건공사가 끝나면, 위성발사준비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짧아지게 된다. 지난 6월 25일 <미국의 소리>에 실린 닉 핸슨의 대담에 따르면, 이전에는 평양에서 제작된 위성운반로켓과 인공위성을 함경북도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으로 옮겨 조립하고 발사대에 세우고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기까지 준비시간이 약 45일이나 걸렸는데, 2011년 초에 완공된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준비시간이 두 주간이나 단축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2012년부터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위성발사준비를 30여일만에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서해위성발사장이 전면적으로 개건되면, 위성발사준비시간은 30일 미만으로 더 단축될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위성발사준비시간을 그처럼 크게 단축시키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수송조건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이다. 이번에 북은 위성발사장으로 통하는 폭넓은 도로를 새로 닦았을 뿐 아니라, 1.42km에 이르는 철도지선까지 깔아놓았다. 도로건설공사와 철도지선부설공사를 위해 기관차 두 량, 철로부설차량 한 량, 부속차량 두 량, 수송열차 18량이 동원되었다. 도로건설공사와 철도지선부설공사는 이미 지난 7월 초에 끝났다. 새로 놓인 철도지선은 위성발사장에 이르러 마치 갱도처럼 생긴 지하구간으로 연결되는데, 수송열차가 통과할 지하구간은 길이가 120m이고, 폭이 4m다.


수송열차 철도지선을 평지에 부설할 수 있는데, 북은 왜 공사하기도 힘든 땅속에 수송열차 지하구간을 건설한 것일까? 위성영상자료만 보고서는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 <사진 5> 이 사진은 서해위성발사장에 신축되고 있는 반구형 건물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다. 지금은 외부공사를 마치고 내부공사도 거의 끝냈다. 이 건물의 지름은 50m이고, 4층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건물의 쓰임새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은 체육관 같기도 하고, 음악공연관 같기도 한 이 건물을 무엇을 위해 위성발사장 한 쪽에 세운 것일까? 지금은 상상력을 동원해도 잘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북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리는 날 그 정체가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 자주민보

 

쓰임새 알 수 없어 궁금증 불러일으키는 반구형 건물 두 채

 

닉 핸슨이 위에 언급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서해위성발사장을 전면적으로 개건하는 공사에서 외부인들에게 가장 커다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반구형 건물이다. 2013년 중반에 착공했던 반구형 건물 두 채는 약 1년 동안 신축공사를 마치고 지난 7월 초 마침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내부공사가 거의 마감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제1반구형 건물은 지름이 50m인데, 지름이 30m인 반구형 지붕을 덮었고,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바깥쪽으로 기울어진 폭 20m의 고리형 지붕이 그 반구형 지붕을 둘러싸고 있다. 그 건물에는 커다란 출입구가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한 개씩 나있다. <사진 5>


제1반구형 건물의 외부는 연한 파란색으로 도색되었다. 그 건물에 도색된 연한 파란색은 지난 3월 31일에 제정된 북측 국가우주개발국 표장의 위성자리길(위성궤도)에 칠해진 바로 그 색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그 표장 안에 연한 푸른색으로 표시된 위성자리길에 대해 해설하면서 “우주의 모든 궤도에 공화국의 위성을 계속 쏘아올리려는 우주개발전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둘째, 제2반구형 건물은 제1반구형 건물 인근에 신축되었다. 제2반구형 건물은 지름이 18m이고, 내부가 2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건물에 씌워진 반구형 지붕은 지름이 10m이고, 제1반구형 건물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외부가 연한 파란색으로 도색되었다.


셋째, 제2반구형 건물 옆에 길이가 28m인 직사각형 건물이 신축되었는데, 그 앞마당에 깃대 네 개가 한 줄로 서 있는 것을 보면, 실내주차장인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지름이 50~60m인 평평한 원형공간이 신축되었고, 그 원형공간으로 통하는 폭 4m의 도로가 신설되었다. 그 공사는 지난 8월 초에 끝났다. 그 평평한 원형공간은 제1반구형 건물로부터 160m 떨어진 곳에 있는데, 바깥쪽에 폭이 각각 5m인 원형통로 두 개를 이중으로 배치하였고, 안쪽에는 지름이 33m인 원형공간을 조성하고 표면에 콘크리트를 깔아놓았다. 그 원형공간 출입구에는 폭이 15m이고 길이가 18m인 앞마당이 펼쳐져 있다. 그런 공간배치를 보면, 이 평평한 원형공간은 헬기착륙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제1반구형 건물과 제2반구형 건물이 무슨 쓰임새로 사용될 건물들인지 알 수 없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8일 반구형 지붕을 아직 덮기 전에 촬영된 위성영상자료에서 제1반구형 건물내부를 엿볼 수 있다. 제1반구형 건물내부는 4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건물내부 북쪽 공간에는 2층을 얹지 않은 대신, 건물내부 남쪽 공간에만 2층을 얹었다. 3층은 말발굽형으로 빙 둘러 얹었다. 이것은 2층과 3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2층과 3층에 좌석만 들여놓으면 마치 음악공연장처럼 보일 것이다.


또한 제1반구형 건물에는 반구형 지붕을 떠받쳐주는 커다란 중심기둥 한 개가 정중앙에 세워졌는데, 그 중심기둥의 맨꼭대기 부분이 반구형 지붕 정중앙에서 마치 꼭지처럼 밖으로 튀어나와 원뿔형 부착물이 반구형 지붕 꼭지점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평양에 세워진 대표적인 원형 건물들은 류경정주영체육관, 인민극장,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이다. 25,000석의 대형체육관인 류경정주영체육관과 북의 전략미사일들을 곧추세워 전시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은 모두 반구형 지붕을 씌운 원통형 건물들이고, 인민극장은 평면지붕을 씌운 원통형 건물이다.


그런데 위에 서술한 내용을 보면, 서해위성발사장에 신축된 제1반구형 건물은 그 내부구조로 봐서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에는 없는 중심기둥이 제1반구형 건물에 있다는 것이다. 북이 위성발사장 경내에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을 신축할 리 없지만, 정중앙에 중심기둥을 세운 것을 보더라도 그 건물이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이 아니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그 건물은 위성운반로켓전시관인 것일까?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에는 중심기둥이 없는데, 제1반구형 건물에는 중심기둥이 있고, 전략로케트관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제1반구형 건물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건물은 위성운반로켓전시관이 아닌 것 같다.


쓰임새를 알기 힘든 제1반구형 건물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세워진, 그보다 작은 제2반구형 건물도 무슨 쓰임새로 사용될 건물인지 알기 힘들다. 만일 위성운반로켓 발사장면을 전망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라면 모양과 크기가 서로 비슷한 반구형 건물을 한 곳에 두 채나 세울 리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살펴보면, 북이 다른 위성발사국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 식의 독특한 건설계획을 가지고 서해위성발사장을 특색 있게 개건하였음을 직감할 수 있다.


     
개건공사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까닭

 

닉 핸슨의 예견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 개건공사는 2014년 가을에 완전히 끝날 것이라고 한다. 오는 10월이나 11월에 완공된다는 뜻이다. 이전에 쓴 글에서 그는 2015년에 가서야 그 개건공사가 끝날 것으로 보았으나, 올해 들어 공사속도가 매우 빨라져 완공예상시점을 몇 달 앞당긴 것이다.


예컨대, 북은 반구형 건물 두 채에 반구형 지붕을 덮는 작업을 탑식 기중기 한 대만 설치해놓고 40일만에 끝냈는데, 이것은 작업을 매우 빠른 속도로 진척시킨 것이다. 북에서 쓰이는 통속적인 표현을 빌리면, “불이 번쩍 나게 와닥닥 해제낀 것”이다. 요즈음 북의 생산현장과 건설현장에서 구호로 내세운 ‘조선속도’가 서해위성발사장 개건공사에서도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그처럼 서해위성발사장 개건공사속도를 얼마 전부터 갑자기 부쩍 높인 까닭은, 거기에서 쏘아올릴 위성운반로켓 제작이 완료되는 때에 맞춰 개건공사도 끝내려고 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위성운반로켓 제작은 로켓엔진연소실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2014년 2월 13일 일본 <NHK> 방송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3년 12월 25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여섯 번째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북이 2013년 한 해 동안 평균 두 달에 한 차례씩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한 것인데, 그 사실만 봐도 북의 위성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성적으로 노력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북의 위성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들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모습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 <사진 6> 2012년이 저물어가던 12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광명성-3호 2호기를 지구궤도에 올려놓은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을 모두 평양에 불러 영웅으로 축하와 환대를 베풀어주고 그들과 함께 당중앙위원회 청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올해 10월 10일 당창건기념일에는 그들에게 위성과학자거리를 통째로 안겨주어 좋은 거주환경에서 생활하며 일하도록 배려하였다. 감격한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형 위성운반로켓과 신형 인공위성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들의 열정이 빚어낸 위성운반로켓과 인공위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 멀지 않았다.     © 자주민보


<로동신문> 2013년 1월 3일부 기사에는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데 공헌한 북의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각별한 신임과 배려로 평양에 모두 올라가 영웅으로 축하와 환대를 받던 중 갑자기 몸이 불편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하였던 어느 위성과학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청사 앞에서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병상에 누운 그가 기념사진촬영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배려하였다고 한다. 생각하지도 못한 특별배려를 받고 크게 감동한 그 위성과학자는 “얼굴과 옷자락이 온통 눈물범벅”으로 되어 “더 많은 위성발사로 보답하겠다”고 맹세하였고, “단숨에 <은하-9>까지 쏴올릴” 결의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심정과 결심이 어찌 그 한 사람에서만 일어났겠는가.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과 광명성 계열의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데 공헌한 북의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도 모두 그와 같은 심정을 느끼고 그와 같은 결심을 세웠으리라.


닉 핸슨이 위성영상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북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지난 5월 초와 7월 초에 각각 한 차례씩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였다. 이런 추세로 가면, 북은 9월 초에 또 다시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게 되는데, 만약 9월 초가 지났는데도 로켓엔진연소실험이 실시되지 않는다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은 이미 8월 중에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탑재할 신형 인공위성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일정까지 생각하면 올 가을에는 모든 작업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북은 전면적으로 개건된 위성발사장에서 새로 만든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에 새로 만든 인공위성을 실어 우주로 쏘아올리게 될 것이다. 북에는 국가명절에 즈음하여 중대사를 치루는 관행이 있는데, 그런 관행을 고려하여 발사시기를 예측한다면 북에서 ‘광명성절’로 지키는 2015년 2월 16일 직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는 압박과 전횡으로 북의 핵개발을 막으려다가 결국 실패한 미국이 자기의 실패경험을 망각하고 북에게는 통하지 않을 압박과 전횡으로 북의 우주개발을 또 다시 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북을 대미응징과 ‘조국통일대전’으로 떠미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북은 우주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은 북의 우주개발을 막아보려는 적대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와 북의 대미응징이 중첩되면서 그 동안 쌓여온 적대감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2015년에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2015년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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