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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을 '경제동물'로 만들려 하나?

청소년들을 '경제동물'로 만들려 하나?
  [경제교과서 논란(2)] 기존 경제교과서의 실상
 
  2006-11-16 오전 9:07:32
 
   
 
 
 현행 경제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부르주아 경제학을 교육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현행 경제교과서의 검인정 기준인 '제7차 교과과정 경제편'이 "경제 과목이 지향하는 민주시민 상은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에 적응하여 효율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면서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 윤리적 경제인"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한 데서 확인된다.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하기는커녕 이런 사회적 관계를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로 치환한 현행 경제교과서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반시장적, 좌편향적이라는 것일까?
  
  노동인권 교육이 불가능한 교과서
  
  현행 경제교과서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행 경제교과서에는 그 어디에도 주류 경제학의 체계를 벗어난 서술이 없다. 주류 경제학에 맞서 경쟁적인 흐름을 형성해 온 마르크스 경제학,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 제도주의 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의 흐름은 현행 경제교과서에서 전혀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6차 경제교과서에는 '노동시장과 산업평화'라는 제목으로 들어 있었던 노동문제에 관한 절이 현행 경제교과서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그 결과 현행 경제교과서에는 기업과 소비자만이 존재하고 노동자, 노사관계, 노동과정에 관한 서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노동과 관련해서는 기업과 근로자의 역할, 실업의 원인과 대책 정도만이 단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교과서의 내용이 이러하니 학생들이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는가? 2004년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노동인권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참았다'와 '그만두었다' 등 소극적 대응을 한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응답이 80%로 나타났다(하인호 외,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개선방안 연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출 연구보고서, 2004년).
  
  또 한국노동교육연구원이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총 72종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학생들의 직업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40여 건에 이른다. 특히 초중고의 모든 교과서에서 '노동'과 '근로',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육체노동자'와 '사무근로자'라는 식으로 사용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부정적 편견을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됐다(송태수, '한국 노동교육 내실화를 위한 정책대안 연구', 한국노동교육연구원, 2006년).
  
  인간성과 사회의식의 골격이 청소년기에 형성됨을 감안한다면, 대학 진학 후에 비판적 사회과학 등을 통해 청소년기에 형성된 기존 사고방식의 틀을 깨기란 대단히 어렵다.
  
  우파는 재벌과 정부기구를 총동원해 고등학교 이하의 경제교육 과정과 그 내용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의 요소를 어린 싹부터 제거하고 학생들에게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진보진영도 이런 우파의 움직임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순응하는 경제동물로 청소년들을 파편화, 불구화하는 데 기여할 뿐인 7차 교과과정 경제교과서는 전면 폐기돼야 한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과 달리 모순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가득 찬 사회문제를 탐구하는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 사회과학의 경우 교과서의 역할은 모순적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이해하고 비교하고 토론하는 것이 돼야지, 어떤 한편의 주장을 보편적 진리라고 획일적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경제교과서의 경우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장경제 체제를 당연한 것 내지 초월할 수 없는 여건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순응하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운동법칙과 그 모순 및 한계, 나아가 대안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이해하고 토론하는 것이 돼야 한다. 특히 경제교과서는 아직 세계관이 확립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시장경제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그들을 세뇌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토론하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각과 능력이 함양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경제교과서는 학생들이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최대한 접하도록 해야 한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 보수적 시각(자유시장을 주장), 자유주의적 시각(관리되는 시장을 주장), 급진적 시각 등 여러 시각에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며, 경제적 선택을 평가할 때의 기준으로 경제성장, 경제적 효율, 소득분배, 경제적 자유, 형평성, 안정, 경제발전 등을 제시한 미국의 교육학자들도 있다.
  
  교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보다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고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기주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원칙은 다른 나라의 사회과 교육에도 확립돼 있다. 독일의 사회과 교육에서는 ① 교화 또는 주입을 금지한다, ②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③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교육돼야 한다는 3가지 원칙이 교육자들 사이에 합의돼 있다. 또 독일에서는 교육방법의 경우 모든 교과서가 토론식, 유도식, 체험식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강의식, 주입식, 강독식 교육방법은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경제교과서를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로운 경제교과서에는 노동인권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은 노동해서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자신의 기본적 인권을 지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노사관계와 노동자의 권리를 다루는 교과를 배우는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혁과 참여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시장이데올로기의 교본인 현행 경제교과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진보학계의 거듭된 문제제기를 외면하고 7차 교과과정의 방향을 그대로 고수하는 내용의 8차 교과과정 시안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8차 교과과정 시안 작성과정에서 진보진영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8차 교과과정 시안은 교과서 서술에서 다양성과 경쟁을 고무한다는 미명 하에 교과과정을 개략화, 신축화했는데 이는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제작과 선정 및 유통에까지 시장논리를 확실하게 관철시킴으로써 이미 경제교과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과 참여의 초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21세기 미래의 주역인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신자유주의 경제동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이고 연대적이며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육성하기를 조금이라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8차 교과과정 시안을 백지화하고 진보진영과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경제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장상환 정성진/경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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