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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 2003.12월 - 노무현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며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3.12월

노무현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며

지속되는 노동배제, 확대되는 차별, 개혁의 침몰



양솔규 / 연구소 사무국장

 

1. 깨어진 환상


2002년, 월드컵과 노사모, 자발적 참여와 젊은 애국주의라는 증폭된 블랙홀에 4천만이 빠져든 후, 이제는 정말 한국도 '원시적 시공간'을 지나 21세기로 들어선 듯한 착각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효순이․미순이 추모 촛불집회는(결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단적 자각의 시발점으로 보였다. 절망의 깊이만큼이나 붉었던 장밋빛 희망에 찬 전망이 2003년 우리 앞길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기대는 처참하게 추락하고, 다시 거리 곳곳에, 뇌리 구석에 움크리고 있던 산산조각 난 절망의 파편들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의 나이든 노동자 배달호가 자본측의 손배 가압류와 노조탄압에 대한 항의로 분신자살하면서, 애초부터 변동 없이 그대로이던, 그러나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전근대적 노동통제 관행’과 ‘노동배제의 에토스(ethos)’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노동의 ‘죽음의 정치’는 해결되었지만, 이들을 추모하는 마음은 계급적 차단막에 가려져 있다. 모두가 보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나 존재하고 있던 그 사실은 여전히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아니 노동배제적 시선은 ‘지속되는 배제’를 피해 버린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일년이 되어 간다. 지금 현재,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대통령 핵심 측근 박지원, 권노갑은 구속․수감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IMF 경제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빛 좋은 숫자놀음에 불과했고, 건실한 경제구조보다는 재벌들의 독점 강화, 빈곤층의 증가와 빈부격차의 심화, 여전히 지속된 온갖 추잡한 비자금 스캔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래도 DJ는 통일문제 하나는 잘했잖아”, “경제는 어려워도, 남북정상회담은 대단한 성과이다”라고 말이다. 국민의 정부가 통일, 외교분야에 있어서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 의아하지만, 민심은 대체로 이러한 견해로 수렴되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가 지난 후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억측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추세로 봐서는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노무현은 노동문제 하나는 개판이었지”, “경제도 어려운데, 노동정책은 정말 대단한 과오였다”고.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필자 자신을 포함해 다수가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노무현 정권은 명확한 정책기조를 세워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노무현 정권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화된 노동자와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 자본의 입장을 초월한 객관적 중립자로서 노동정책을 수립했는가?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계급해방적 요구’를 내걸고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과격한 투쟁노선’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인가? 극한적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노무현 정권의 복안은 있는 것인가?

 


2. ‘노동죽이기’ 카르텔 형성과 ‘이회창 없는 이회창 체제’의 성립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총은 노무현 후보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많은 이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다수는 ‘전통적인 비판적지지’ 정서와 이에 기반한 분석, 그리고 실용적인 득실에 기대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비공식적’이지만 가시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이러한 상황을 빚어낸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권영길은 당선될 수 없다, 둘째,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의 상대적 개혁성, 민주당 내부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상대적 개혁성, 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의 성장을 노무현 후보가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의식, 셋째,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공포감, 넷째, 위와 같은 논리의 귀결로서 점진적 개혁(노사중립적 입장)의 필연성(적어도 높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요는 노무현 후보의 정치적 기반과 전략적 선택지에 대한 고려 없이 감정적인 호감이 밑도 끝도 없이 증폭된 결과였다.  


인수위 시절 차별 시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기대가 ‘과학적 기대’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두산중공업 배달호 분신사망 처리과정, 철도노조, 화물연대 1차 파업에 대한 처리과정에서 뭔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유연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3년 5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방문에는 많은 재계인사들이 대동했으며 일련의 ‘동거동락’ 이후 재계-정부의 관계는 데탕트로 접어들었다. 또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사측의 노조탄압에 항의해 목매 자결한 이후인 11월 5일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편집국장들과 화해의 장을 마련하면서 정부-재계-언론의 ‘노동죽이기’ 카르텔을 형성했다.  


돌이켜 보건데, 노무현 정부 초기의 친노(親勞)적(?) 행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배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철도노조와 철도청(사실상 교섭의 실질적 주체는 정부였다)이 합의한 4.20 합의에는 손배 가압류에 대한 취하와 부족 인력 충원 및 민영화 방안 배제, 철도개혁에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사항은 정부 자신에 의해 파기되었고, 올 한 해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손배 가압류는 법원의 기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청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손배 가압류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매우 유력한 노동통제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NEIS에 대해 전교조와 교육부가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이것 역시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급기야 법원에서 NEIS CD 제작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부는 그대로 강행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16일 NEIS의 인권 3개영역은 별도의 시스템으로 관리하기로 하고, 학생 신상정보의 수집 관리주체는 학교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토대로 최종방침을 밝혔고, 전교조도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교육부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고 이러한 시각이 일소되지 않는 속에서 또 다른 문제는 잠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노동쟁점의 전개과정에서 원칙과 대화, 참여와 합의정신은 배격되었고 ‘합리적인 21세기 비전’은 소멸되었다.

하반기, 노무현 정부는 이주노동자 추방, 손배가압류에 대한 방치, 공공부문의 노사합의를 파기한 후 독단적 밀어붙이기를 계속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근거없는 이데올로기 유포를 통해 전(全)사회적 노동배제 질서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노무현 대통령과 개혁세력이 정부 내 역학관계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소위 ‘노빠’(노무현 빠xx)들은 노무현 vs 조중동, 노무현 vs 한나라당, 노무현 vs 전경련 식으로 현재의 국면을 극명한 이미지로 정식화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미시적인 지배권력 내부 관계를 살피는데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거시적인 지배권력간 이해공유와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것이다.  

'노빠'들과 ‘열린당’의 총선출격 386 돌격대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의도적 배제는 노무현 정부의 약한 고리인 노동문제가 담론화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조중동과 같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기 없는 경제정책(정리해고, 공기업 사유화 등등)을 ‘용감하게’ 추진한 김대중 정부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를 계승하면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구조개편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인기없는 정책이 국민경제를 살찌’우기에 현재의 노무현 지지도의 하락은 곧 올바른 정책의 올곧은 추진이며, 이것이 증명되는 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등극한다는 순진무구한 그러나 충성스러운 꿈을 꾸고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있어서도 ‘옳다고 믿으면 무모할 정도로 고집을 피우는’ 노무현식 정치 때문에 ‘노무현 지지하기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정작 파병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파병반대-노무현지지 철회자들에 대해 ‘조중동 추종자’라는 얼토당토 않는 레떼르를 붙인다. 파병반대자들은 조중동의 파병찬성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면서도, 조중동의 파병관련 정보는 백퍼센트 믿는다는 것이다. 후세인이 체포되면서 상황은 일사천리로 바뀌고 있다. 물론 국내 정세에 따라 시기는 가변적이지만, 노무현 정권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하워드 딘(Howard Dean)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부시 정권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도 파병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결정할 경우, 과연 노빠들은 어떤 논리를 가져올 것인지 심히 기대된다.

(이데올로그ideologue는 못되나 훌륭한 프로파간다들이다)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이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조중동의 정책적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노동문제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가리워지고, 법률상의 권리인 파업권은 상황에 따라 유보될 수 있는 ‘선택적 옵션’에 불과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애송이 선동주의자들인 이들의 시각을 법조인 출신 통수권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아니,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아마추어리즘에 빠져있다.  

3. 얼어붙은 노동배제, 강요된 동투(冬鬪)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대기업 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의 차별’을 비난했지만, 노동현실은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통령은 정확하게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왜곡된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 언론들은 금속산업의 주5일제 근무제 실시 합의와 이에 이은 현대자동차 노사합의에 대해 끊임없이 왜곡하면서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가했다. 논란이 끝난 후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했지만 이미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후였고, 어떠한 진실도 통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합의안에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조중동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논의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조중동 언론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다고 왜곡하였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대 재벌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였으며, ‘민노총은 이 나라를 거덜낼 셈인가?’라는 사설과, ‘폭력시위 나라가 멍든다’는 시리즈를 내고 있다. 정작 불안을 선동하는 것은 극우매체 조중동이다. 전경련은 현대자동차 노사 협상에 사사건건 끼어 들어 노사합의를 방해하려 하였고, 협상 타결에 임박해서 현대자동차 사용자측은 오히려 (삼성 출신이 부회장으로 있던)전경련에게 볼멘 소리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제반 조건의 격차를 해소해 ‘사회적 통합’(노무현 정부의 국정목표이기도 하다)을 이루어야 할 노무현 정부는 불구화된 주5일 근무제와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통과시켜 노동 내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노사 자치주의’라는 이름아래 정부의 자기 역할을 방기하면서 노사관계의 제도화를 거부하고 약육강식의 자본 위주 게임을 관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초기,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네덜란드 모델’을 현 정부의 노사관계 모델로 상정했지만, ‘네덜란드 모델’이 사회적 차별 해소를 전제로 한 모델이라는 점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참여정부에 의해 제시된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리는 것은 ‘노동 내부 분할 심화를 통한 이주노동자, 청년 실업자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철저한 방기’, ‘자본 주도 노동정책의 진전’,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 노동자의 대(對) 사회적 발언력의 철저한 봉쇄’이다. 참여정부의 노동통제전략은 이데올로기적 통제 속에, 물리적 통제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노태우 정권 이후의 통제전략과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노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으며 따라서 분신, 투신 등 극단적인 자기 희생을 통한 ‘죽음의 정치’가 불과 참여정부 1년 만에 현상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 운송노동자,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졌고, 개별적인 타결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안전장치는 하나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강제출국과 단속에 직면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 역시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 들어, 이름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지하철역에서, 공장에서, 송환되던 배에서, 화장실에서, 은신처에서 동사(凍死)하고, 목을 매고, 바다로 뛰어내리고, 절단기에 잘리고, 압사 당하며 이국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많은 노동자 구속을 양산했던 김영삼 정부, 그보다 더 심한 노동자 구속을 양산했던 김대중 정부... 이보다 더 많은 노동자를 구속하는 노무현 정부는 과연 민주적 개혁분파 정부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극좌 혁명적 파괴주의’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는가? 대부분의 노동 관련 학자들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서 실리적 노선으로 옮겨오는 것을 불가역적 추세로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노동의 선택지를 좁히는 노동배제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이러한 흐름은 아직도 가로막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재벌과의 데탕트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불구화된 주5일 근무제는 전경련을 비롯한 자본가단체들과 한나라당의 찬성 속에서 통과되었다. 민주노총은 대다수 평범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과제였던 온전한 주5일 근무제를 주장했지만, 노동배제적 담론 지형과 왜곡, 날조 선전선동, 전통적인 성장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론의 몰매를 홀로 감수해야 했다.  


2003년 12월 5일,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연구위원회(위원장 임종률․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9월 발표했던 중간보고서에 이어 최종보고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핵심적 내용을 보면, 최종안은 '공익사업'의 범위를 사회보험업무 등 공공서비스와 열(난방)․증기 공급사업까지 확대했으며, 부당해고와 관련해선 상습적일 경우에만 처벌토록 했다.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이 60일에서 30일로 줄어들었고,  '파업예고기간'(7일)이 신설되었다. 쟁의행위의 합법, 불법과 관계없이 직장폐쇄가 가능해졌다. 올 한해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던 손배 가압류와 관련해서는 가압류 시 노조 존립 및 조합원 생계 보장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그 선은 명확하지 않으며 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살아있는 노동력, 죽은 노동조합은 여전히 가능하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11월, 전국 6,500명의 노조위원장 및 지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동부와 참여정부가 노동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 시간에도 ‘죽음의 정치’는 풀리지 않았고, 정부에 의한 노동조합 손배 가압류는 풀리지 않았으며, NEIS 추진을 고집했고, KTF, 두산중공업 등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이 이루어졌다. 졸업시즌을 앞두고 청년 실업자의 대량양산이 코앞에 닥쳤고,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바뀌었다. 수구보수 대중선동지 조중동은 노동을 코너에 몰아넣었고 정부는 차별 해소에 대한 공약과 국정지표도 포기한 지 오래다.  


작년 대선 당시, 노무현 광신도들은 노동진영을 향해 “표를 구걸”했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이회창이 당선되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후퇴와 파시즘의 출현 가능성이 예상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 일부 사회단체(문화연대)에서는 “노무현 파시즘”이라는 파격적(?)인 헌사를 했고, 부안사태를 “제2의 80년 광주”로 비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 1년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민중탄압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이름도 희한한 ‘이회창 없는 이회창 체제’가 현 노무현 체제이며, 사회통합적 내용 없는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다. 빈곤한 자, 노동하는 자,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 없는(배제하는) 참여 정부가 노무현 정부이다 


4. 마치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정책에 대한 이러한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시기상조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국적 자본분파와 국내 재벌, 수구언론은 대선 시기부터 노무현 정부의 행보를 틀 지워져 왔기 때문이며, 노무현 정부 1년의 과정은 대통령과 추종세력의 ‘시각교정’의 트레이닝 코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레이닝의 스파링 파트너는 물론 조중동과 재계, 한나라당과 부시정부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골격은 이후에도 크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노동이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급내적 정치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민주주의적 시민권으로서의 노동권을 방어하고 사회적 발언력을 확장하면서 다양한 개입을 통해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획득한다면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일정한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최대치라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12월 19일 대선 1주년을 기념해 노무현 친위대(서프라이즈, 노사모, 국민의 힘, 라디오21)들이 여의도에 모여 당시를 되새기는(리멤버) 축제를 연다고 한다. 김두관의 축하메시지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청와대에서도 참석을 고려한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 연달아 작년 대선 후보 이회창과 현 대통령 노무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내일은 제1야당 한나라당 최병렬의 기자회견이 있다고 한다. 정세에 민감해야 할 나조차도 3일 연속 이들의 기자회견을 듣자니 구역질이 나오는데, 하물며 바쁘게 땀흘리며 생계를 꾸려 가는 우리네 이웃들은 오죽이나 정치에 신물이 날까? 10억이든, 100억이든, 1000억이든 그 공감되지 않는 숫자에 얼마나 무감각한가?

2004년은 멀지 않았으나 아직 봄은 우리에게 멀다.



<200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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