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천수를 누릴 노동운동의 역사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전순옥 (지은이)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3월호
http://www.ynlabor.co.kr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2000년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 '전망', '뉴(New)' 등등의 수식어를 붙인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디어가 혼돈과 불안을 부추길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모두가 몰두했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앞의 현상보다는 훨씬 값지고 의미있는, '과거'를 정리하는 작업 성과물들 역시 꾸준히 출판되었다. 흔히들 역사를 10년, 100년 단위로 끊어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역사는 그런 식으로 단절되지 않는다. 역사는 '십진법'과 '오진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역사는 현재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끊어질지 모른다. 그것은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이 쥔 '칼자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1000년이 주는 효과는 대단한 것인가 보다. 아무래도, 100살까지 사는 사람은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모두의 소원?), 천년을 누리는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89년 겨울, 90년 봄, 수많은 '운동권 잡지'들은 80년대를 '평가'했다. 그리고 딱 10년 뒤, 99년 겨울, 2000년 봄, 운동권 잡지들은 '평가'를 중단했다. 대신 '전망'만을 내놓았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2000년 들어 노동운동을 정리하는 작업은 꾸준히, 아니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90년대 후반, 마산의 김하경 선생은《내사랑 마창노련》을 내놓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빨라졌는데, 강인순·이옥지 선생이《한국여성노동자 운동사 1, 2》를 발간했다. 오장미경 선생의《여성노동운동과 시민권의 정치》, 구해근 선생의《한국노동계급의 형성》등도 출판되었다. 단위노조나 투쟁사업장들 역시, 예전에 비해서는 "기록"에 대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70년대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5인의 구술을 묶어 낸《숨겨진 한국 여성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전순옥 선생과 함께 해온 최순영, 박순희, 이총각, 이철순, 전향자의 눈물겹지만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최근에는 노동운동의 주인공 옆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그녀'들, 노동운동가 가족과 부인의 이야기를 조주은 선생이《현대 가족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내놓기도 했다.
2004년 2월말, 또하나의 저작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전태일 열사의 누이'이자, 그 자신이 70, 80년대 여성 노동운동의 산 증인인 전순옥 선생의《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가 출판된 것이다(한겨레신문사).


나는 70년대에 태어났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성노동자들의 수혜를 받은 '자식'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키워준 시대', '나를 양육한 사회적 존재들'에 대해 나는 익숙해야 당연하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익숙치 못하다. 무엇보다도, 70년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더더군다나 "운동"이라는 것을 접한 이후에는 나에게 70이라는 숫자는 80 또는 87에 비해 매우 '먼' 세월, '기호'였다. 게다가 나는 불행히도 '젠더(gender)' 또는 '여성적 관점'에 대해 무지하다. 이는 '서평'을 하는데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은 몹시 부담되는 일이다. 저자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전태일 열사의 누이'이자 '이소선 어머니의 딸'(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 수식어가 다른 누구보다도 전순옥 선생에게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노동운동사 중 70년대 1차 사료들에 입각한, '오랜 참여관찰(?)'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누누이 언급될 중요한 저작이라는 점에서, 각오할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자신이 '시다'였고,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이제 '연구자'로 돌아온 그녀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국에는 때때로 존재하는 '현장노동자 출신 학자'가 한국에 등장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다시 한번 이소선 어머니와 전순옥 선생에게 빚을 질 '영광(?)'을 얻게 되었다.



저자는 79번의 개인 인터뷰(70년대 노동운동의 주인공들, 또는 사용자)를 했으며, 4번에 걸쳐 총 28명이 참가하는 집단토론을 했다. 또한 전화, 팩스 등을 이용한 27차례의 추가 인터뷰를 했고, 저자의 동지이기도 했던 인터뷰 대상자들에게서 많은 자료를 기증받거나,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또한, '남성'들 역시도 조사대상이었는데,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사람들(김영삼, 최장집, 김승호, 김문수, 이태호, 김영대, 장기표, 김세균, 김금수 등등) 역시 저자의 조사대상이었다. 이러한 조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소선 어머님'의 칠순잔치였다고 한다.



저자의 관심사항은 남성 중심의 유교적 문화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해서 민주노동조합운동을 태동시켰고, 독재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운동이 무시당하고 잊혀지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는가 이다.



책을 쓰는 작가나 역사가들은 전태일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바로 그 사람들, 전태일에게 가장 고무받고 동기를 부여받은 그 사람들이 남한 사회에 공헌한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저서들은 예외 없이 민주노동운동의 탄생 시기를...그의 죽음 이후 거의 20년이 지나서라고 보고 있다. 360

이 책 10장의 소제목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또한, 앞서 소개한, 70년대 선배 여성노동운동가들의 구술을 묶은 책의 제목은《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이다. 한국 노동운동사 속에서 70년대 경공업 여성 노동자운동이 정당하게 자리매김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동일방직 지부장이었던 이총각은 다음과 같이 구술한다.



남한 노동운동이 1987년 이후 엄청나게 진보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외부인들은 그 모든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노조 지도자들이 누리는 안락한 생활은 그들 자신이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이전 세대가 투쟁해 온 결과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1970년대 노동자들의 희생은 모두 잊혀져버렸다. 363



저자는 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을 '경제주의적 투쟁'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거부감을 표시한다. 전두환 정권이 YH, 청계피복 등 70년대 민주노조를 파괴하려고 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70년대 민주노조들이 이루었던 공적들이 심각하게 잠식당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가족에서 벗어난 70년대 도시의 여성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조건들로 변화했고, 이 속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권위를 사실상 넘어서는 집단적인 세력'으로 스스로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한 남성 노조운동가들은 박정희 시대 내내 자랑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그런 사실을 공식적인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학생운동가 출신 활동가들은 '과학적인 원칙'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70년대의 역사를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80년대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관념적, 기계적 평가'와 '딱지 붙이기'를 통해 70년대의 역사가 심각하게 파손되거나, 의도적으로 '선별된 전승'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하게 70년대 민주노조들을 '경제주의적 투쟁으로 매몰'되었다는 평가에 의심을 품어볼만 하다. 경제주의적 투쟁과 정치주의적 투쟁의 선은 때때로 불분명하며, 중첩적이다.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전후의 논의과정, 김경숙의 죽음과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 대구를 거쳐 터져나온 부마민중항쟁, 박정희 암살 등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은 개발독재 시대에 노동운동이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감수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70년대 노동운동은 박정희 정권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했다. YH 노동자들은 이미 그 사실을 간파했고, 따라서 농성장소를(미대사관, 조흥은행, 공화당, 신민당 중) 신민당 당사로 선택했던 것이다(337쪽).



전순옥 선생의 분석대상은 70년대 노동운동이며, 특히 청계피복노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동일방직, 원풍모방, YH노동조합이 아니라, 왜 하필 청계피복노조일까? 첫째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신호탄이었고, 열사의 주요 활동 공간이 청계천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청계피복노조는 70년대를 넘어 80년대에도(비합법시기를 포함해서) 활동을 계속 유지해 왔다는 점이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청계피복노조는 구로동맹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구로의 주요 활동가였던 심상정은 구로동맹파업을 지지·엄호해줄 수 있는 본부로 청계피복노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청계피복노조는 기꺼이 제공해 주었다. 구해근,《한국노동계급의 형성》, 창비, 183쪽). 청계피복노조에는 당시 학출 활동가, 광범위한 지식인 집단, 교회조직, '민주단체', 노동운동가들이 매개된 일종의 활동가 네트워크 센터의 역할 또한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후, 청계피복 노조는 구로에 있던 여타 조직과 함께 '정치적 노동조합주의'를 내세웠던 '서노련'에 참가했다. 이러한 사실은 70년대 노동운동의 대표조직이었던 청계피복노조가 80년대에도 꾸준히 활동영역과 이슈를 넓혀 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70/80년대, 경제주의/정치주의 등등으로 구분, 평가되는 선들의 가운데에서 '역사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해준다. '서노련' 내에서 청계피복노조 혹은 70년대 활동가들이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비판과 그로 인한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86년 5월, 집회장에 올려진 집체극에서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에 '이소선 어머니'를 비유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371쪽). 어쨌든 전순옥 선생이 주요하게 복원시키고자 했던, 70년대 노동운동의 정당한 평가에 있어 '청계피복노조'만큼 적당한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구해근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왜곡된 성문화에 기초한 시각과 근시안적 역사관, 이 두 요소로 인해 한국 노동운동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주변적이고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까지 민주노조운동에 활동적이었던 대다수 여성들은 산업현장을 떠났다. 그들 대부분이 주부가 되었지만, 대부분 평범한 가정주부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여러 형태의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계급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노동계급의 강한 정체감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70년대 노동운동과 80년대 초중반까지의 노동운동이 일정하게 새로운 불씨를 잉태하고,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정당한 위치지움 또는 격상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킬 수는 없다. 구해근 선생의 언급처럼, 70년대와 80년대를 총체적으로,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서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 '단절적 면' 역시 쉽게 부정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양자는 경쟁적 관계가 아닐 것이다. 70년대 운동이 80년대 운동에 스며드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마치, 어머니의 영향을 부인하는, 혼자 커온 듯이 말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아들'처럼. (하지만, 아들에게는 아들 나름대로의 인생이 있다.)



또 다른 문제로, 많은 페미니즘 시각의 연구에서는 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이 '여성을 위한 성(gender)에 관련한 쟁점'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강인순 선생은 여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목적으로 한 연구에서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또 최저생활이 보장되지 못해 생존만이 중요했던 상황에서 남녀를 막론하고 노동자이기에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존재조건은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의식조차 잊게 하였던 것이다.《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1》, pp.29-30.



이러한 평가에 대해 오장미경 선생은 "본질적인 질문에 정면승부하기보다는 그것을 살짝 비켜간 듯한 느낌을 준다. 단지 '환경적 탓'만이 이유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좀 더 깊이 있는 구조적·심리적 분석과 설명을 해냈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순옥 선생은 이러한 페미니즘 시각의 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명확한 설명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남성 중심 어용 노동조합이자 국가 통제기관인 한국노총과의 대결, 섬유노조와의 대결 과정은, 그 자체가 여성노동자들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으며, 70-8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독자적 행보를 잉태한 '산파'였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또한, 전순옥 선생은 페미니스트들이 70년대 사건들을 분석하고 있지 않고, 서구에서 나온 페미니즘 모델들을 이용하는 것을 언급한다. 간접적으로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오장미경 선생의 강인순 선생의 《한국여성노동자 운동사》에 대한 비판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힘주어 주장한 '여성노동자 운동사' 서술의 필요성을 반감...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여성노동자'에 관한 역사이지, '여성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쓰여진 역사라고 하기 어렵다...'누락되고 배제된 여성의 역사를 채워넣고 복원하는 작업'이지 '새로운 관점에서 기존의 역사서술을 비판, 수정하는 젠더사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기억과전망》, 2003, 겨울호, p.321.



여성노동자운동의 복원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시각의 비판에 대한 '반증'도 전순옥 선생의 연구에서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노동운동에서 성 의제(gender issue)가 제기되지 않는 한, 이 사회의 실질적 평등의 길로 나가는 것은 매우 요원하다. 계급적 문제는 '순수하게 계급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70년대 노동운동의 치열함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70년대 노동운동이 교회와 맺은 깊은 인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온정주의적인 분위기와 정신적 충만함 같은 것은 전순옥 선생의 문장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영어로 쓴 박사논문을 다시 우리말로 옮겨서 그런지, 문장이 매끄럽게 못한 부분은 흠이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그동안 묻혀있던 많은 자료들이 인용되고 검토됨으로써 우리에게 70년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한층 흥미롭게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발로 뛰면서 찾아 낸, 한국노총 섬유노련 김영태의 '반동적 행위', 그리고 이를 국제노동계에 알렸던 민주노조의 대응, 국제노동계가 취했던 행동들과 박정희 정권의 위기의식, 김재규의 재판 녹음기록 등은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이 책 이외에도《동일방직노동조합운동사》나《원풍모방 노동조합 활동과 투쟁》,《해태제과 8시간 노동을 위하여》, 청계피복과 YH노동조합운동사 등은 아직도 주변을 찾아보면 많이 남아 있는 책들이다. 이 책들에는 70년대 노동운동이 지녔던 민주성과 대중적인 실천들, 짜임새 있는 교육프로그램과 조직의 치밀함, 여성노동자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열망과 연대감에서 오는 동료애 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지금은 절판된, 민종덕 청계피복노조위원장이 이소선 어머니의 구술을 받아 쓴,《어머니의 길》(돌베개, 1990)도 소중한 우리 운동의 역사 기록물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기록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우리 노동운동을 조명하면 할수록 그 빛은 더욱 화려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노동열사들이 제 몸을 던지기도 했고, 많은 노동운동의 선배들이 지금도 산 채로 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인간해방의 가치는 그럴 수 없다. 한국 노동운동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은가? 천수를 누리는 길, 있다. "실천의 기록과 전파, 공유와 토론을 통한 계승" 바로 이것뿐이다.


"기록하지 않는 것, 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2004. 3. 1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