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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이여 힘을 내시라-민주노총 대의원동지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게 경고함
-송경동 시인이여 힘을 내시라-민주노총 대의원동지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이해삼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게 경고함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송경동 시인(당원)에게 경찰로부터 출두요구서가 날아왔습니다.

지난 8월 4일 포항에서 있었던 포스코 건설노조 하중근 씨 사망에 항의하는 민주노총결의대회에 참석해서 아래와 같은 시를 마무리 집회에서 낭송했다는 이유입니다.
낭송된 장소는 바로 하중근 열사가 폭력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었습니다.

하중근 열사는 뒷머리에 3곳의 상처가 있고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앞머리로 밀려와서 뇌출혈 증상으로 사망한 것이 직접적 원인입니다.
갈비뼈가 두개가 부러졌고 온몸이 피멍으로 짓이겨졌습니다.

이런 야만적 폭력앞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을 승리한다는 것, 어쩌면 과거로 세상을 돌리려는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이라크 양민을 학살하고 미제의 꼬붕인 이스라엘을 시켜 중동전쟁을 획책하고 무기 팔아 먹는 부시정권이나 삼성의 국민소득 이만불 이데올로기에 젖어 개혁나부랑이 거둬 치우고 제국의 논리대로 전 민중 다 죽이고 사회양극화 확대하는 한미fta 관철하려는 매판 정권과 관료들이 그들입니다.

재벌독재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집권하고 있다는 것 사실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대통령입니다. 이제 레임덕이 아니라 있으나마나한 대통령입니다.
아니, 국민의 세금이 아까운 직에 있는 자입니다.

자본독재의 시대, 재벌공화국의 시대 국제투기자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동부,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모든 관료들은 헌법상의 노동3권조차 지키지 않는 것으로 가고 있습니다.
비정규 날치기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중입니다.
모든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하향 평준화 한다는 생각으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마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양 언급하면서 전체 국회의원에게 서한을 보낸 바 있습니다.
공무원의 노동3권은 커녕 노동2권 조차 용납할 수 없다고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문화일보의 모기자는 경남도 지사인 42세 김태호가 소신있는 태도로 불법 공무원노조를 일관되게 정리해 나가고 있다고 칭찬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공무원노조와 전국교직원노조을 죽이려고 칼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비상한 시기입니다.

민주노총은 최은민부위원장이 열사대책위 활동으로 구속되었고 조준호 위원장도 포항 경찰서로 부터 출두요구서를 3차례 이상 받고 있고 포항건설노조를 지원하는 주변의 동지들에게 까지 10여명 더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에 이 기회에 민주노조의 씨를 말리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정권과 자본에 순응하는 노조가 참다운 노조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김근태씨가 파시즘의 부활을 이야기 했지만 그가 속한 정권이 노동3권조차 용납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파시즘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 조합원들의 실리추구 경향이 그렇게 상황을 만든다고 이야기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연대도 안되고 간부들이 민주노총 대대 가는 일보다 사소한 신변의 일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되는 지경까지 와 있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실리도 일정한 힘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년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 하여 순응하는 노조에게 더 많은 떡고물이 돌아 가는 양 정세를 조성해 놓고 2007년을 맞아하려고 자본은 총체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가하게 앉아서 난국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송경동의 양심적인 시 한편이 우리의 갈길을 알려 줍니다.
포항건설노조의 싸움의 중요함을 알려 줍니다.
하중근 열사를 가슴에 묻지 맙시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

전체 노동진영의 힘을 집중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대대가 정족수 부족으로 열리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치용입니다.
지난 시절 피와 땀과 눈물이 묻어 있고 민주노조와 민주노총이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열사가 돌아 가신 것을 생각하면 정말 민주노총의 치욕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상 가장 중대한 기로입니다.

만주노총 대의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민주노총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특히 민주노총에서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당원 동지여러분!!

진정어린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민주노조운동의 기강을 다시 세웁시다.
산별노조 전환 투표를 성공시켰듯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벽을 허물고 드넓은 노동의 바다에 함께 합시다.
정규직 우리 처지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 한구석 편치 못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노동운동의 진정성은 사회적 휴머니즘의 기초로 부터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파 분파는 이 움직임에 모범이어야지 다 죽는데 소속의 이익이란 없습니다.

동지들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를 드립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 故 하중근 동지 영전에 바침

송경동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너희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버릴 하수구를 만들어주었고
학교와 공장과 교회를 만들어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배관을 타고 앉아서야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전선을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상의 모든 천장과 벽과
계단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불법다단계 하청인생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던
일용공의 날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쇳가루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거나 공업용기름끼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쓰미끼리1) 인생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줘도 되는 근로기준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못나고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되는 불량표지판
말 안 듣고 버릇없는 것들이 가는 인생 종착역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옷 갈아입을 곳이라도 있다면
점심시간 몸 누일 곳이라도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일한 돈 떼이지 않을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원청사용자들과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못배우고 더러운 노가다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자본의 왕국 포스코를 점거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58명 구속에 가담자 전원 사법처리
그리고 시범케이스로
하중근 동지의 머리를 깨부셔놓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하청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원청이 되는 투쟁이다
우리의 노동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인간기생충들을 박멸하는 투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건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투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망치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그라인더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이 성스런 건설노동자의 투쟁 앞에
돌이켜라. 썩은 시대여
항복하라. 낡은 시대여

 
 
 
2006-08-28 05: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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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고교생운동’ 처음으로 주목한 양돌규씨

“한총련의 씨앗은 고등학생 운동”
고졸뒤 노동운동하다 늦깍이 공부
고교운동 경험 20여명 면접·구술
91년 5월 투쟁 중추적 역할 밝혀

안수찬 기자

‘고교생운동’ 처음으로 주목한 양돌규씨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친 한국에서 ‘운동사’가 차지하는 학문적 위치는 작지 않다. 여러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제 어지간한 역사적 사건 대부분이 학문적 분석·검토를 거쳤다. 그러나 좀체 ‘학문적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운동사의 한 영역이 있다. 고등학생 운동이다.

양돌규 성공회대 석사(사회학)는 지난 7월 학위논문으로 ‘민주주의 이행기 고등학생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에 관한 연구’를 썼다. 박사도 아닌 석사학위논문이지만, 그 의미는 허투루 지나칠 게 아니다. 선행연구가 사실상 전무했던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단행본이나 자료집의 형태로 청소년의 일탈·저항, 전교조 지지운동 등을 거론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 시기 고등학생들의 조직적·의식적 운동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전국적 고등학생 운동의 실상을 조사·분석했다. 서울·부산·광주·대구 등에서 ‘고등학생협의회’ 등 크고 작은 고등학생 모임들이 만들어져 민주화 운동의 한 구석자리를 점했던 시기다. 양씨는 전국의 고등학생 운동 경험자 20여명을 만나 구술을 듣고 관련 자료를 섭렵하면서 논문을 썼다.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당시 활동가들을 만나보니, 각자의 응어리가 너무 커서 그때의 기억을 돌이키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았다”며 “구술을 녹취하는 과정이 자연스레 그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응어리는 무엇일까. “1991년 5월 투쟁을 보세요.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6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고등학생 운동 출신자고 1명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당시 투쟁의 핵심은 ‘고등학생 운동 세대’가 죽음으로 항거했던 데 있습니다.”

그는 한총련을 고등학생운동 세대와 연결시켜 해석했다. “조직적 고등학생운동의 세례를 받은 친구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와 그 세대의 마지막이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가 한총련의 탄생 및 쇠퇴와 일치합니다. 이 세대의 순환과 학생운동·민주화운동의 순환이 맞물렸던 것이죠.”

1973년 출생인 양씨 스스로가 고등학생운동 세대다. “아버지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고 어머니는 노동소설을 쓰시는 분이라 자연스레 ‘물들었다’”며 웃는 그는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 절반이 그랬던 것처럼” 고교 졸업 직후 울산 지역의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1년여만에 공장을 나온 그는 그제야 대학을 들어갔고 지금껏 뒤늦은 공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사회과학 출판사, 전태일기념사업회 등에서 일했던 그는 현재 민주노총 정책실에서 ‘민주노총 10년사’ 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앞으로의 학문적 목표를 궁리중이다.

그는 한국 노동운동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나갈 생각이지만, 고등학생 운동에 대한 관심의 끈도 놓지 않을 결심이다. 양씨는 “조직적 고등학생 운동 세대의 구술을 더 수집하는 동시에, 민주화 담론이 아닌 인권담론을 중심으로 삼고 있는 90년대 후반 이후의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해서도 계속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글 안수찬, 사진 이종근 기자 ahn@hani.co.kr



» 1990년 6월24일 경북대 소강당에서 고등학생, 교사, 대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김수경 열사 추모결의대회. 당시 경화여고 3학년이었던 김수경은 학생회 탄압 등에 항의하며 90년 6월5일 영남대 인문관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다. 같은해 9월에는 충북 충주고 2학년 심광보, 다음해 5월에는 전남 보성고 3학년 김철수가 각각 교육민주화 등을 주장하며 투신·분신 자살했다. 사진제공 양돌규·김수경열사추모사업회.

기사등록 : 2006-08-25 오후 08:52:39 기사수정 : 2006-08-25 오후 09: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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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폐가, 시간에 갇힌 기억의 공간

폐가, 시간에 갇힌 기억의 공간

 

인천 부둣가 작가의 외할머니집
무너진 천장·벗겨진 벽 그대로
“고민하는 관객과 교감하고파“

 
 
한겨레 노형석 기자
 
 
유럽파 설치작가 양혜규씨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

젊은 설치작가 양혜규(35·왼쪽)씨의 전시장은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진 옛 왜식 집이다. 삭을 대로 삭은 천장의 나무 이음매 곳곳에 구멍이 뚫려 햇살이 들어온다. 벽에는 벗겨진 벽지가 너덜거렸다. 먼지와 폐자재가 깔린 다다미 방들의 폐허 같은 바닥 위에 방울등과 사이키델릭 조명등이 깜빡거린다.

유럽에서 호평받으며 활동해온 이 유학파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은 항도 인천의 부둣가 부근 폐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9일 시작한 전시 ‘사동 30번지’는 으레 하는 개막 행사도 없었다. 서울에서 1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린 뒤 물어물어 사동 주택가에 파묻힌 폐가를 찾은 관객들은 좁은 실내에서 또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을 찾느라 발품 들였던 일상의 시간들이 폐가 속에서 숨쉬어온 또다른 심연의 시간 속으로 잠기는 듯한 환각이다.


 

“이 폐가는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가 8년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어릴 적 크고 풍성하게 보였던 이 집이 이제는 왜소하게 보이더군요. 신기하지 않아요. 시간 속에서 기억이 변질된 거죠. 그 신비스런 변화를 머금은 공간 속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굴절을 이야기해보려고 한 겁니다. ”

작가는 지난겨울 유년의 기억이 깃든 폐가를 답사한 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관계를 담은 일종의 판타지아를 만들겠다고 구상했다. ‘새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인 폐가 안팎의 쓰레기를 치워내면서 만들었다’는 이 역설적 설치작업은 그래서 이젠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폐가 곳곳에 넘실거리는 결핍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부서지고 벗겨진 벽들로 이어지는 폐가의 이미지는 거칠고 남루하지만, 조형물과 조명등의 배치는 뜻밖에도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다. 낮게 내려온 백열등이 비추는 문간방 바닥의 스프레이 칠한 나뭇조각들, 마루와 건넌방에 흩어진 기하학적 모양의 색종이 조형물과 방울등, 사물을 정지사진처럼 비추는 스트로보 조명, 관객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등이 작가의 의도를 연출하는 적절한 소품이 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칫 진부한 향수로 덧입혀질 수 있는 집에 얽힌 구체적인 사연을 일부러 비워내고, 다분히 추상화한 조형물들을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린 옷장과 소파에 천으로 감싼 건조대를 놓은 안방, 숫자가 뒤죽박죽된 시계, 거울 등이 등장하는 마루와 건넌방 등의 모습들을 통해 작가는 시간의 질곡을 피할 수 없는 인간존재와 공간의 함수관계를 차분하게 되짚어 보고 있다.

일상 사물, 현상의 뒤안에 도사린 보이지 않는 구조와 힘들 사이의 간극은 작가 양씨가 유학시절부터 패션, 음성 등의 다른 영역을 아우른 개념적 설치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관심사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소우주를 지니고 있으며, 시간은 바로 그들 소우주들을 은연중 소통시키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작가는 폐가란 매체를 빌려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네덜란드에서 같이 활동한 기획자 김현진씨와 의기투합한 이 전시를 두고 작가는 “관객들이 쇼핑하듯 작품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전시장 대신, 발품 들이더라도 고민하고 숙고하는 관객들과 교감하는 전시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천/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사등록 : 2006-08-22 오후 07:35:28 기사수정 : 2006-08-22 오후 07: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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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서 고교생운동 과정 분석(성공회대 양돌규씨) / 경남도민일보

 

“학교 안바뀌면 고교생운동 부활”

성공회대 사회학과 양돌규씨, 논문서 고교생운동 과정 분석

 

김성찬 기자 kim@idomin.com

 

지금의 청소년 인권 상황이 80~90년대 상황과 다를 바 없으며,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무더기 퇴학과 구속, 심지어 항의자살 사태까지 낳았던 80년대 고교생 운동이 다시 불붙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그리고 2000년대의 고교생 운동은 80·90년대에 비해 새로운 프레임을 가진, 즉 ‘인권담론을 근간으로 한 운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국내 고등학생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을 연구한 논문을 쓴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양돌규씨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통해 “지금 한국의 학교 현장이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처럼 다시금 기로에 서 있다”면서 “학교 현장이 학생들의 인권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돼야 하는 숙제 앞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더불어 지난 민주화 이행기에 학교 체제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징계를 받거나, 학교로부터 추방당했던 학생들에 대한 학교 당국의 사과와 징계 취소 조치 또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6월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마산공고 사태’전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양씨는 “마산공고 사례를 주목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지금의 청소년 인권 상황이 80~90년대 상황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라면서 “또 다른 마산공고 학생들이 9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춘천고, 대광고, 동성고에서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입시경쟁과 학교규율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학생들의 시도(두발규정 폐지, 비상식적인 징계 금지, 강제 0교시와 보충·자율학습 폐지 등)에 대해 가해지는 학교의 탄압 양상은 지금도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마산공고 퇴학 사례 아직 여전…경직된 분위기 유지 방증”

논문은 ‘이처럼 과거 고등학생운동이 현재 청소년 인권운동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교육현장이 그만큼 경직된 채 스스로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논문은 고등학생운동을 태동기, 발전기, 심화기, 하강기, 전환기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해 고찰하고 있다.

△첫 번째 1985~1987년 6월민주항쟁 이전까지의 태동기에는 중고등학교에 광범위하게 소모임이 조직되는 한편으로 파주여자종합고등학교와 같이 자발적인 대중투쟁이 존재했었다. △두 번째 6월민주항쟁 이후부터 1987년 12월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서고련)의 명당성당 농성까지의 발전기에는 학생회 직선제 등 학내민주화투쟁이 벌어지는 한편 서고련은 명동성당에서 대통령 선거 부정선거 규탄 농성도 펼친다.

△세 번째는 심화기로 1988년부터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수와 학생탄압분쇄 투쟁까지다. 심화기에는 정치적 성격으로부터 학내민주화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투쟁이 벌어지는데 특히 전교조가 출범하던 1989년 고등학생들은 연인원 50만 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대중투쟁력을 보여줬다.

△1990년부터 다음해 5월투쟁까지의 하강기에 이르자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당국 경찰 등까지 고등학생들에 대한 탄압에 나섰고, 이 가운데 김수경, 심광보, 김철수 등 학생들이 희생되는 사건들이 있었다. △1992년부터 1994년 조직사건에 이르는 마지막 전환기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점차 소멸해가지만 다른 한편 인권담론이 떠오르면서 청소년 인권운동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게 된다.

덧붙여 양씨는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의 성격을 “교육민주화를 위한 운동이자 병영적 통제 아래서 감옥과 같은 규율체제 속에 있던 학생들 스스로의 인권을 찾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평가했다.

 

2006년 0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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