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자연과 타협하기” 위한 길...(1)
- 양다슬
- 2008
-
- ‘막’ 형성된 계급에게 놓인 ...
- 양다슬
- 2008
-
- 연대적 경제와 재생에너지 ...
- 양다슬
- 2007
-
- 연대감은 굶주림의 숙명을 ...
- 양다슬
- 2007
-
- 경남 고성 동해면 동진대교 ...
- 양다슬
- 2007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인천 부둣가 작가의 외할머니집 |
|
노형석 기자 | |
젊은 설치작가 양혜규(35·왼쪽)씨의 전시장은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진 옛 왜식 집이다. 삭을 대로 삭은 천장의 나무 이음매 곳곳에 구멍이 뚫려 햇살이 들어온다. 벽에는 벗겨진 벽지가 너덜거렸다. 먼지와 폐자재가 깔린 다다미 방들의 폐허 같은 바닥 위에 방울등과 사이키델릭 조명등이 깜빡거린다. 유럽에서 호평받으며 활동해온 이 유학파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은 항도 인천의 부둣가 부근 폐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9일 시작한 전시 ‘사동 30번지’는 으레 하는 개막 행사도 없었다. 서울에서 1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린 뒤 물어물어 사동 주택가에 파묻힌 폐가를 찾은 관객들은 좁은 실내에서 또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을 찾느라 발품 들였던 일상의 시간들이 폐가 속에서 숨쉬어온 또다른 심연의 시간 속으로 잠기는 듯한 환각이다.
“이 폐가는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가 8년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어릴 적 크고 풍성하게 보였던 이 집이 이제는 왜소하게 보이더군요. 신기하지 않아요. 시간 속에서 기억이 변질된 거죠. 그 신비스런 변화를 머금은 공간 속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굴절을 이야기해보려고 한 겁니다. ” 작가는 지난겨울 유년의 기억이 깃든 폐가를 답사한 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관계를 담은 일종의 판타지아를 만들겠다고 구상했다. ‘새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인 폐가 안팎의 쓰레기를 치워내면서 만들었다’는 이 역설적 설치작업은 그래서 이젠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폐가 곳곳에 넘실거리는 결핍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부서지고 벗겨진 벽들로 이어지는 폐가의 이미지는 거칠고 남루하지만, 조형물과 조명등의 배치는 뜻밖에도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다. 낮게 내려온 백열등이 비추는 문간방 바닥의 스프레이 칠한 나뭇조각들, 마루와 건넌방에 흩어진 기하학적 모양의 색종이 조형물과 방울등, 사물을 정지사진처럼 비추는 스트로보 조명, 관객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등이 작가의 의도를 연출하는 적절한 소품이 되고 있다.
일상 사물, 현상의 뒤안에 도사린 보이지 않는 구조와 힘들 사이의 간극은 작가 양씨가 유학시절부터 패션, 음성 등의 다른 영역을 아우른 개념적 설치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관심사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소우주를 지니고 있으며, 시간은 바로 그들 소우주들을 은연중 소통시키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작가는 폐가란 매체를 빌려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네덜란드에서 같이 활동한 기획자 김현진씨와 의기투합한 이 전시를 두고 작가는 “관객들이 쇼핑하듯 작품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전시장 대신, 발품 들이더라도 고민하고 숙고하는 관객들과 교감하는 전시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천/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사등록 : 2006-08-22 오후 07:35:28 기사수정 : 2006-08-22 오후 07:41:37 |
“학교 안바뀌면 고교생운동 부활”
성공회대 사회학과 양돌규씨, 논문서 고교생운동 과정 분석
김성찬 기자 kim@idomin.com
지금의 청소년 인권 상황이 80~90년대 상황과 다를 바 없으며,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무더기 퇴학과 구속, 심지어 항의자살 사태까지 낳았던 80년대 고교생 운동이 다시 불붙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그리고 2000년대의 고교생 운동은 80·90년대에 비해 새로운 프레임을 가진, 즉 ‘인권담론을 근간으로 한 운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국내 고등학생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을 연구한 논문을 쓴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양돌규씨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통해 “지금 한국의 학교 현장이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처럼 다시금 기로에 서 있다”면서 “학교 현장이 학생들의 인권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돼야 하는 숙제 앞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더불어 지난 민주화 이행기에 학교 체제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징계를 받거나, 학교로부터 추방당했던 학생들에 대한 학교 당국의 사과와 징계 취소 조치 또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6월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마산공고 사태’전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양씨는 “마산공고 사례를 주목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지금의 청소년 인권 상황이 80~90년대 상황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라면서 “또 다른 마산공고 학생들이 9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춘천고, 대광고, 동성고에서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입시경쟁과 학교규율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학생들의 시도(두발규정 폐지, 비상식적인 징계 금지, 강제 0교시와 보충·자율학습 폐지 등)에 대해 가해지는 학교의 탄압 양상은 지금도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마산공고 퇴학 사례 아직 여전…경직된 분위기 유지 방증”
논문은 ‘이처럼 과거 고등학생운동이 현재 청소년 인권운동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교육현장이 그만큼 경직된 채 스스로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논문은 고등학생운동을 태동기, 발전기, 심화기, 하강기, 전환기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해 고찰하고 있다.
△첫 번째 1985~1987년 6월민주항쟁 이전까지의 태동기에는 중고등학교에 광범위하게 소모임이 조직되는 한편으로 파주여자종합고등학교와 같이 자발적인 대중투쟁이 존재했었다. △두 번째 6월민주항쟁 이후부터 1987년 12월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서고련)의 명당성당 농성까지의 발전기에는 학생회 직선제 등 학내민주화투쟁이 벌어지는 한편 서고련은 명동성당에서 대통령 선거 부정선거 규탄 농성도 펼친다.
△세 번째는 심화기로 1988년부터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수와 학생탄압분쇄 투쟁까지다. 심화기에는 정치적 성격으로부터 학내민주화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투쟁이 벌어지는데 특히 전교조가 출범하던 1989년 고등학생들은 연인원 50만 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대중투쟁력을 보여줬다.
△1990년부터 다음해 5월투쟁까지의 하강기에 이르자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당국 경찰 등까지 고등학생들에 대한 탄압에 나섰고, 이 가운데 김수경, 심광보, 김철수 등 학생들이 희생되는 사건들이 있었다. △1992년부터 1994년 조직사건에 이르는 마지막 전환기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점차 소멸해가지만 다른 한편 인권담론이 떠오르면서 청소년 인권운동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게 된다.
덧붙여 양씨는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의 성격을 “교육민주화를 위한 운동이자 병영적 통제 아래서 감옥과 같은 규율체제 속에 있던 학생들 스스로의 인권을 찾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평가했다.
2006년 08월 18일
김성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