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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장미 소녀 캔디>

 

 

타이틀 화면~ (네이버 블로그에서 가져옴)

 

 

 

울지않는 캔디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하늘 바라보면 노래하자
내이름은 내이름은 내이름은 캔디
나혼자있을땐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들장미 소녀야
울면 바보다 캔디캔디야~~"

 


흐미...
이거 뭐... 울고싶음 울어야지...애답게 말야..

 

어릴때는 아무생각없이 신나게 따라불렀던 노래인데
성인이 된 지금 가사를 곰곰히 따져보니 어린이 만화인데
왜이리 음울하고 처량맞은건지. 에휴..
강인한 어린이로 밝고 맑게 자라나라는 큰뜻이 담긴 듯 하겠지만
이건 시대상에 맞게 이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캔디에겐 특별한게 있다.

커다란 눈망울엔 눈물가득 머금으면서 "난 울지않아 울지않아"를 외치는
외로운아이 캔디. 태어날때부터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라지만
명랑하고 강한 아이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고 발랄하며
어려운일이 생기면 항상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강인한 소녀이다.

한마디로 마인드콘트롤이 대단한거다.

안티도 엄연히 존재하긴 하지만
어딜 가나 사랑받고 어딜가나 인기초절정이다.

말도 안되게 쉽게 문제가 풀리는 듯하지만(어린이 만환데 몰바래?) 

그 아이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당연한 보상으로 보이는 이유,

세상을 물리칠 강인함과 독립심, 오바된듯한 긍정적인 삶의 태도라는

특별한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캔디에겐 응원군이 넘쳐난다.
고아원 친구 애니, 안소니 스테아, 아치 형제들, 반항아 테리에서부터
강력한 후원자 큰아버지.(알버트 아저씨?),
심지어 캔디를 납치한 나쁜아저씨도 캔디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받아
그녀를 도와주고 참회한다는 스토리까지 보면 인기절정임을 실감할 수 있다.ㅋ

 


세상의 불의와 맞장뜨고 정의를 수호하는 언제나 밝고 명랑한 마음의
긍정적인 소녀. 캔디.
외롭고 슬퍼도 울지않는 캔디.

 

 

그런데...

울고있지만 울지않아를 외치고 거울을 향해 외로움을 달래는 소녀

캔디를 보고있자니   
어린아이가  왜 그리 울지않아를 외쳐야할만큼 강해져야 하는거냐고?
외로울 일은 왜그리 많고 또 슬퍼야할 일은 왜 그리 많은거야?
어린이들이 울일도 외로울 일도 그렇게 많았던 살기 힘든 세대였던 떄문인걸까?

요즘만화중에 이렇게 대놓고 슬픈 어린이만화 있나?

 

세상이 달라진걸까?

 

 

 

오마낫! 아직도 이장면이 머리속에서 아련히 남아있다^^

많은 영화나 코미디에서 여러번 패러디해 울고먹은 유명한 그 장면이지~

 

 

 

왜곡된 남성상을 키워주다.ㅋ


초등생 시절, 일요일 아침 9시마다 거진 매회를 빼먹지않고 보려고
졸린 눈비비고 일어나 동생 언니와
옹기종기 TV앞에 모여 참이나 잼나게 보았던 기억을 지니고 있는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

 

그 시절 즐겨보았던 만화들
<미래소년 코난> <우주소년 아톰> <은하철도 999> 대부분이
당연히 우리가 만든 made in korea인줄 알았다가 성인이 된 이후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의 재패니메이션
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은근 충격을 받았던...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만화건 한국만화건 크게 개의치않지만
유일한 놀이문화의 안식처였던 TV만화의 영향력은
내어린시절의 감성을 만들고 키우는데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 

 

 

그 가운데 <들장미 소녀 캔디>는 많은 내 세대 소녀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남성상을 만들어 내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던 듯하다.

캔디만화안에는 몇가지 유형의 남성 캐릭터가 존재한다.

 

 

반항아, 뿌리치기 힘든 매력가이, 못된 남자의 전형 테리우스

(게다가 왠지 신비로운 계급 귀족이랜다)


순수하고 착한 우리들의 왕자님, 장미를 손수키우고 가꿀줄아는

부드러움의 대명사 안소니

(사실..현대적으로 해석해보면 게이에 가까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ㅋㅋㅋ)


똑똑하고 배려심많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엉뚱발랄 귀여운 스테아,


세련된 감각의 깔끔남 아치, 살짝 냉정해보이지만 유독 캔디에겐 다정다감한 것같다. 


힘들땐 날 찾아라 문제해결사, 캔디에겐 키다리아저씨버전 알버트

 

이건...뭐...

이상적인 남성상 종합선물세트같다. 하나같이 매력이 철철 넘치고 캔디에게 잘한다.

지극정성이다. 애정이 넘친다. 힘들면 언제든지 달려온다.

게다가 다들 좋은 가문에 부자에다 잘생기기까지 했다. 헉... 

 

 

요즘보니 스테아가 젤루 좋더라

그의 발명품은 엉뚱하며 창의력 짱에다 귀엽기까지 하다. 홍홍~

 

 

왜 하나같이 주근깨투성이의 고아, 말광량이 캔디를 사랑해주는거야?

ㅋㅋㅋ

 


<들장미 소녀 캔디>는 소녀들에게 현실에는 존재할수도 존재하지도 않는
왜곡된 남성상을 꿈꾸게 해버렸다 흑...

2000년대 소녀들도 이걸보며 왜곡된 남성상을 꿈꾸게 될까 살짝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이 만화가 잼나는건 왜일까?^^

 

 

<들장미 소녀 캔디>는 어린이채널을 통해 재방영 되고 있다.

여러분도 기회되면 함 만나보셈~ 



어릴적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성인이 된 지금 보면서

새로운 해석과 재미를 즐길수 있다.

스테아에 대한 참신한 매력과

캔디의 분신과 같은 존재인 너구리 "크린"의 아기자기한 표정도

재미있는 요소중에 하나이다.

특히

캔디의 심리상태를 "크린"의 다양한 표정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건 굉장히 흥미롭다.

캔디와 함께 잡히는 장면엔 꼭 너구리"크린"이 함께 등장한다.

많은 표정을 이미지화해서 그린것같지는 않은데도

미묘한 캔디의 심리를 조그마한 너구리가 짓고 있으니 볼때마다 신기하다.

캔디가 슬프면 같이 슬프고 캔디가 의아하면 그린도 같이 의아해하고

기쁘면 같이 활짝 웃고 있다. 너구리가 말이다~ 하하~~

 

또하나 동양인 감독의 서양인 캐릭터~

주인공 이름도 "캔디" 유치하지만 영어이름에다 배경도 미국과 영국이다.

일본만화인데 의상과 캐릭터는 서양의 문화와 외모를 그리고 있다.

재패니메이션의 특이한 경향인데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해 그리고

있는 감독이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미야자키 하야오,

<스팀보이>의 오토모 가츠히로등 저패니메이션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경향이다. 이유는 까먹었다.

정보를 좀더 들춰보고 써야지...헹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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