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재평가 운동

2006/03/07 00:33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차범근 감독에 대한 재평가 운동이 일고 있다. 아직 공식 언론에서 이 운동을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네이버 같은 데는 차범근이라는 검색어가 순간적으로 인기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내가 봤다. 순간적으로.) 지식검색으로 차범근을 치면 온통 그가 선수시절 독일에서 이룬 업적에 대해 경악하는 글들뿐이다. 아래글도 그런 지식검색에서 퍼온 것이다. 물론 글쓴이의 정서는 보아하니, 붉은악마 혹은 황우석 열풍 등으로 나타났던 최근 우리 사회의 '애국질' 현상과 관련 있어 보인다. 그러나 '순수 축구'(그런게 있다면)로서의 차범근과 그에 대한 재평가는 모든 이의 가슴을 뛰게 하지 않을까?

 

"자본과 국가주의, 분할 지배술의 이데올로기 등등은 모두 회색.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축구의 몸짓."

 

(아래,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퍼옴.)------------------------------------------------

 

말할 것도 없이 차붐입니다.
지금도 명문이지만 그때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리그 우승컵을 쓸어담으셨고
UEFA컵 2회 재패라는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운 사람이죠.
지금도 독일인들은 차붐 하면 알아줍니다.
차두리가 레스토랑이나 편의점 가서 계산하려고 하면
그냥 가라 이럴 정도입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는 더 그렇죠..
발락, 클로제 같은 선수들도 차붐을 안다고 합니다.
어떤 프랑스 시인은 차붐을 낳은 어머니와 그의 조국에게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시까지 썼다고 합니다.

느낌이 안 오신다면,
차붐 선수의 주요 활약상을 bej0322 님의 글을 인용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전율이 돋아날 겁니다.

차범근 감독님은요,,,,,,,,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4골의 소나기 골.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1로 승리.

일간스포츠 톱기사

<차범근 두골! 오쿠데라 누르다>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시청률 최고.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마테우스! 차붐을 막아라>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한심한 한국인들>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득점 4위.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신문 톱기사

<지구 최고의 선수 ''차붐''>

KICKER지

<차붐, 팀 창단 첫 UEFA 우승 두번이나 이끌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의 최고스타>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아쉽게도 이기록은 최근몇년전에깨짐)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당시-독일에서의 차범근은 최고의 용병으로 꼽혔습니다.

보루시아MG와의 시합당시..당시20살임에도 불구하고 게르만의 홈이라고 불렸던 마테우스가

차범근의 전담마크를 담당합니다...

막상.시합날-차범근은 날아다녔고..마테우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시합후 마테우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말합니다.

"나는아직 어리다, 그러나 차범근은 세계최고의 공격수다"

이렇게 자신의 패배인정과, 패배를 정당화시킵니다.

또.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진출한 선수가있죠 일본의 오데쿠라.

오데쿠라 그선수또한 독일.분데스리가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역시-차범근과 맞붙을기회가 있었구요..같은 아시아인이라는것으로 집중받기도했으나.

시합당시.차범근은 역시나 날아다녔고, 오데쿠라는 헛발질7번...

그리고 누구?인가가 말하기를..현재 분데스리가에서 평범한 마크방법으로

차범근을 마크할수있는 수비수는 아무도없다-라고 했었습니다.

그정도로 굉장한 공격력을 가졌던거죠...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시절..그팀의 주장이.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시합이 끝나고, 차붐의 몸을 봐라, 이것은 2차대전에 참가한 병사의 몸과 다를바없다-"

그정도로 집중마크를 당했던겁니다

그의 체력또한 어마어마했죠...현재 우리나라국대팀에 인간병기.차두리

한강변을 아버지와 끝에서 끝까지 달리기를 하는데...차범근은 저만치 앞에가있고,

차두리는 못쫓아가고 뒤에서 헥헥-대고있더군요..

차범근나이 38에 19살의 독일국가대표선수보다 체력이 월등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얼마나 몸관리를 잘했는지를 알수가있죠

또 어떤사람들은 차범근이 챔피언스리그를 진출못했다고 딴지를 거는데요

그당시의 UEFA컵은 지금보다 훨씬더 권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챔피언스리그가 각나라리그1~3위가 진출을 하지만

그당시에는 무조건 1위만 올라가는것이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어쩌다 허접팀이 올라갈수도 있었고...

UEFA컵은 2위부터..몇?위까지 쭈루룩~진정.최강팀들과 자웅을 겨뤄야 했던거죠

한경기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붐'을 연호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프랑크푸르트 소속당시 레버쿠젠과의 시합당시..레버쿠젠의 겔스도프라는 새끼가

뒤에서 찍어가지고 차붐을 못쓰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자 차붐광팬..칼들고 레버쿠젠에 그놈죽이러가는일까지 생깁니다

그리고 차붐이 레버쿠젠으로 옮기자.프랑크푸르트팬들은 눈물바다가 되기도 하구요..

86월드컵.에대해서도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이 86월드컵때 차범근이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고...

그렇게 차붐-차붐-해대더만...골도못넣었다고...씹어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당시.우리나라가 만났던 나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불가리아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아르헨티나...영원한 세계축구강국들 아닙니까?

그리고 시합내내 전방에 나가있는 차범근에게 공이연결된적은 5번을 넘지못했습니다.

미드필더에서 완전히 밀려버린거죠, 차범근 하나만 잘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예를들면 현재-세계최고의 윙-라이언 긱스..그또한 웨일즈의 사람이고..

웨일즈는 월드컵 구경도 못하고 있습니다...오래전...아주오래전..한번-진출한적은 있다고...

그리고 한가지 알아둬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차범근은 당시 발목부상중이었습니다.수술을 해야할 상황이었는데

월드컵때문에 월드컵후로 미루고.발목에는 붕대를 칭칭말고 시합에 참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수를 끌고다니면서 공간을 만드는게 안보인다면...축구보지마십시오-

만약 차범근 활동당시...지금처럼 당연지사 월드컵 본선을 진출하는거라면..

분명 한번은 16강에 올라갈수있었을겁니다...안타까울따름.

독일에 차범근 활동당시 칼하인츠 루메니게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선수는 유럽의 펠레-라고 불렸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펠레와는 시대의 차이도있기때문에

오히려..펠레보다 조금더-앞설거라고까지 평가받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시절.감독은 차범근이 칼하인츠루메니게보다도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차범근...호나우두, 피구같은 선수들과 비교해서.절대 뒤지지않았을것으로 보입니다

우선...차범근이 득점한 골수가..그들에비해서 크게 많은게 아닌데요

그이유는 차범근은 전형적인 골게터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 더좋은 위치에 자기편 선수가 있다면...망설임없이 공을 보냈습니다-

즉-자신의 득점보다.팀의 승리를 위한 플레이를 했다는거죠

일본에 70년도정도? 그때 가마모토 구니시게 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선수의 실력...가히-엄청난 선수였습니다...

올림픽에서 혼자 7득점을 한것만 봐도 알수있죠

그런데 자기들만 잘난줄아는 그 일본놈들이 그 가마모토를 아시아 최고라고 부르는것은 주저합니다

그건 바로..한국에 차범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차범근을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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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7 00:33 2006/03/0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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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코 2006/03/07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복권되지 않았나요? ㅋㅋㅋㅋ 그 당시 차범근을 제일 먼저 앞장서 씹은 모언론과 그의 유착을 보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