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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자본주의 경제 산책> 1장 간단 요약

20세기 경제 산책

- 정운영, 『자본주의 경제 산책』中 1장.

 


1. 세기 초의 형편

① 20세기를 준비하던 1899년의 몇몇 장면

- 보어전쟁 : 1867년 영국 식민지 케이프에서 한 아이가 가지고 놀던 돌멩이가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케이프에서 독립한 트란스발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당시 금본위제 하의 영국은 이 곳으로 밀어닥침. 영국은 8만 8000명의 보어(뒷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연합국을 물리치기 위해 50만명을 파병하여 장악.1) 이로 인해 영국 국내의 반전 운동과 노동당 창설 재촉.

- 레닌의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출간 : 러시아는 국내의 협소한 수요의 문제로 인해 자본주의 미발전이 예견되었고, 그래서 이를 뛰어넘어 농촌 공동체를 통한 직접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한 인민주의(Narodnism)운동이 탄생. 그러나 레닌은 수요 부족 문제는 점차 해결될 것이므로 러시아는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

- 하이에크의 탄생 : 초기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던 하이에크는 미제스의 세미나 참여 이후 극단적 시장자유주의자로 변신.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케인즈 경제학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하이에크 경제학은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무대 전면에 다시 등장.

⇒⇒ 20세기는 짧은 안정기를 제외하면 제국주의, 공황, 파시즘, 전쟁으로 점철된 파국의 시대.


2. 파국을 향하여

- 제국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독점적 생산력의 증대. 이를 감당할 해외 소비시장과 원료 산지를 위해서 식민지 쟁탈을 위한 제국주의로 이어짐. (+ 배타적 민족주의 + 사회진화론)

- 미약한 노동의 대응 : 제2인터에 참여했던 각 국 노동당/사회당은 공동의 결의를 저버리고 참전에 동의. 독일 사민당의 경우 집권 가능성 때문에 투표에 참여.

- 1차 대전의 결과 독일의 호엔촐레른 왕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등 많은 제국이 붕괴. 전후 자본주의는 제국 없는 제국주의.

- 전후 비용 처리의 문제 : 전쟁이 끝날 무렵 유럽 연합국의 전쟁 채무는 2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대부분 미국의 대부를 통한 것. 미국은 이에 대해 전액 상환을 고집했고, 연합국은 패전국인 독일에게 배상금과 전쟁 채무를 합친 330억 달러 지급 요구. 이로 인해 독일은 심각한 인플레를 겪고, 이는 나치의 등장 배경. (전쟁 채무는 1933년 히틀러가 지급 거부)

- 최초의 사회주의 실험 무대로서 러시아 혁명 : 자본주의 성숙 후에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기존의 도식이 파괴. ⇒ 제3세계 국가들의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 60년대 민족해방 투쟁으로 이어짐.


3. 공상에서 절망으로

- 1차 대전이 끝난 1919년부터 2차 대전이 터진 1939년까지의 전간기(戰間期)는 베르사유 평화 체제가 허공에 쌓은 전반 10년의 희망이 1929년 대공황을 고비로 후반 10년의 참혹한 절망으로 바뀐 시기. 그로써 전체주의가 득세.

- 1929년 10월 미국 증권시장에 대공황 엄습. 이에 대해 다양한 진단이 나왔지만 정부의 개입이 효과적인 처방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음. 자유방임 경제학에 대한 중대한 도전.

-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 과잉과 정치 실패로 허덕이던 독일에서는 위기를 틈타 나치스가 정권 장악. 전체주의적 권력 개입 없이는 독점 이윤 수취가 어렵다는 대자본의 위기감과 예전의 유복한 생활을 빼앗겼다는 대중의 상실감이 파시스트 정권을 지지하는 원천. 나치의 재무장에 기업과 금융계는 불만을 표했지만, 히틀러는 인종 차별과 국수주의 선동으로 대중을 열광시키고 그 지지를 배경으로 반대 의견 억압.

- 러시아 혁명 이후 : 국가자본주의 → 전시공산주의 → 신경제정책(NEP) 등으로 좌편향, 우편향을 넘나드는 곡예.

- 스페인 내전 : 1936년 등장한 인민전선 정부는 소련의 지지, 정부군에서 변신한 반란군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지를 받음. 그러나 내부적 각 진영 내부 갈등은 한 층 더 복잡. 결과는 반란군 프랑코의 승리. ⇒ 『카탈루냐 찬가』(조지 오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작품.

- ∴ 대공황의 두 결론 : 뉴딜과 파시즘. 그러나 둘 모두 전체주의적 해결책. (ex: 케인즈가 실업이 왜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히틀러는 그 대책을 발견했다는 존 로빈슨 여사의 탄식) 스탈린의 승리 역시 전체주의적 승리.


4. 열전에서 냉전으로

- 2차 대전은 민주주의 진영과 파시스트 진영의 대결. 물론 제국주의의 갈등이 여전했지만, 파시즘에 가려 1차 대전만큼 부각되지 않음.

- 그러나 코민테른의 변덕으로 파시즘과의 투쟁에 혼란을 자초함. 사회주의의 주적이 파시즘이 되었다가 제국주의가 되었다가 다시 파시즘이 되는 따위의 우왕좌왕 지도 노선은 일국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스탈린 지령에 따른 것.

-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냉전의 가시화. 미국은 마셜플랜으로 소련은 코메콘을 통해 각각 서유럽과 동유럽을 장악함. 그러나 70년대 이후 데탕트의 여파로 소련이 파산했다는 것은 냉전의 기묘한 역설.

-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 확립. 그러나 70년대 금태환 중지 사태로 고정환율제도 포기.

-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 대표의 반둥 회의는 제3세계의 시각으로 역사를 저하는 최초의 기회. 제3세계의 중립을 강조하고 서구와 소련을 다 같이 제국주의 세력으로 비난.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 역설. 그러나 냉전이라는 세계 정치 구도는 이를 용인하지 않음.


(이하 생략... 별로 중요한 내용이 없어서...)






1) 이 당시 영국은 보어와의 게릴라전에서 혼쭐이 나고는 현대 군복의 시초가 되는 카키색 군복을 입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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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비철학적 철학을 위하여> 요약

루이 알튀세르 : 비철학적 철학을 위하여

- 철학의 탈주 中 2장

백승욱



1. 알튀세르 읽기 : 알튀세르의 모순과 그 작동


- 알튀세르는 ‘맑스주의’ ‘철학자’ 라는 측면에서 살펴 보았을 때, 이단적인 측면에 상당히 존재한다.

- 알튀세르의 궤적은 자기비판, 맑스주의의 위기 선언, 당에 대한 공개비판, 아내 엘렌의 살해 등으로 채워지면서 충격적인 과정으로 보여진다. 그의 삶은 ‘변증법적’이기보다는 ‘불확정적’이다. (요약 불가능한 철학자)


▶ 알튀세르와 ‘철학’

- 초기의 그의 작업은 『자본』속에 등장하는 ‘맑스주의 철학’을 만들어내는 작업. ‘맑스를 위하여’ 헤겔과 다른 맑스의 변증법을 대문자의 이론(Théorie: 즉 이론들의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하는 것.

- 그러나 자기비판 이후 ‘철학의 새로운 실천’, ‘최종심급에서 이론 내의 계급투쟁’이라는 테제로 전환. 맑스주의 철학은 불가능하며, 주어진 과제는 맑스주의를 위한 철학을 가공하는 것이라고 함.


▶ 알튀세르와 ‘과학’

- 라캉에 대한 평가 : 라캉과의 동맹을 통해 이데올로기론을 개척함. 그러나 후기에 가서는 그와 결별하는데 이는 이론적 결론이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기인함. 이 대립은 구조주의 철학이 지지하는 과학관과 불확정적 유물론 철학이 지지하는 과학관의 대립.


▶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경계선을 설정. 그러나 자기비판 이후 진리란 ‘정세적 효과’임을 강조하며 이데올로기론으로 강조점을 이동함.

- 이는 레닌의 테제인 외부 주입설(자생성과 목적의식성의 구분)을 후기에 가서는 상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남.


▶ 알튀세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①『맑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는다』를 특권화 하는 방식 : 대부분의 알튀세르 논의 방식이 이에 벗어나지 않음.

- ② 후기 알튀세르가 초기의 문제점들을 극복 또는 초기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훨씬 완성된 견해에 도달했다는 것.

-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사물을 일면화하는 문제가 있음. 알튀세르 사상은 변증법적으로 진화하여 자기완성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체’해 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음.

- 알튀세르 연구에 있어서 우리는 모순들의 작동과 파괴, 해체의 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음.

- 알튀세르에 대한 ‘징후적’ 독해법 :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해체하는 독해법(『잉여가치 학설사』를 『자본』의 유기적 구성 부분으로 파악하는 것.)을 맑스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이것을 알튀세르에게 적용하여 알튀세르 자신의 모순이 작동하게 하는 과정. 이는 “극단에 서서 극한적으로 사고하라.”는 말로 요약됨. ⇒ 막대 구부리기 ⇒ 철학을 이론에서의 정치,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 파악한 이후의 견해로 지식자체가 아니라 ‘지식효과’를 중요시 함.

- 알튀세르 철학의 궤적은 끊임없는 ‘개입’의 여정. ‘비철학’으로서의 철학.


▶ 알튀세르의 관심사

- 맑스와 프로이트 : 역사과학과 정신분석을 대표하는 이론가들에 주목. 맑스를 해석하기 위해 프로이트로부터 심급들, 과잉결정, 응축, 전위와 같은 개념을 빌려 왔음. 그러나 이는 일정한 제한 속에서 이루어지며, 맑스주의와 정신분석 양자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음.

- 과잉결정과 정세의 우위 : 생산양식에서 사회구성체로,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론으로 강조점이 이동하는 흐름과 연관됨. 현실 정치에서 레닌과 마오에 준거하려는 이유이기도 함.



2. 알튀세르 사상의 궤적 : 철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 1960년대 초반의 이론-정치적 정세

- 당시 맑스주의 운동은 스탈린 사후 스탈린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비판이 촉발한 계기 속에 있었음.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단지 스탈린의 반사적 대립물에 머물고 있었음. ‘개인숭배’라는 관념은 스탈린적 편향의 사회․정치적, 이론적 근거들을 참구하는 대신‘ 사회주의적 법치성의 위반’만을 지적하는데 머물고 있었음. 이에 알튀세르는 좌익적 스탈린 비판을 통해 이론적 정세에 개입하기 시작함.

- 스탈린적 편향 : 경제주의 + 인간주의.

└→ 경제주의 : 생산력을 생산관계(계급투쟁)보다 우위에 놓는 관점. 1936년 소련 헌법은 소련 내에서 계급투쟁 소멸을 선언하고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을 주창함.

└→ 인간주의 :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 프롤레타리아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을 나누는 기준이 됨.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라는 원리에 따라 존재론과의 상응성에 의해 부여되는 반영 이론으로서의 인식론이 등장함. ⇒ 프롤레타리아 세계관, 보편법칙으로서의 존재론, 반영이론으로서의 인식론이라는 세 축이 맑스주의 철학의 ‘정통’으로 확립됨.

└→ 이러한 대쌍은 데카르트 이후 근대적 철학관의 귀결. 근대 철학의 모든 전통은 대부분 이를 벗어나지 못함.1)


(1) 인식론적 단절과 이론적 실천: 초기 알튀세르

▶ 알튀세르의 첫 시도 : 맑스주의의 지반 위에서 그것을 전화하기

- ① 맑스주의 전통에서 나온 개념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내용을 전화하기 ②맑스주의에 없는 개념을 맑스주의 아닌 다른 전통에서 영유․도입하기 ⇒ 실존주의 및 현상학에 반대하여 구조주의와 연대

-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개념 수용(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맑스 사이의 비가역적 단절 설명) ⇒ but, 바슐라르에게 정신분석적 설명이었던 ‘인식론적 장애’는 ‘이데올로기’로 대체되고, 철학은 이론의 이론으로서 ‘대문자 이론’으로 대체. ⇒ 자크 마르탱과 캉길렘의 '문제설정'개념 수용.

- ‘실천’ 범주의 재구성 : 실천은 노동대상(일반성 I)에 대해 노동수단(일반성 II)을 사용하여 생산물(일반성 III)을 만들어 내는 과정. ex) 이론적 실천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 / 이데올로기적 실천은 ‘인간’이라는 노동 대상에 대해 이데올로기라는 노동수단을 통해 주체를 생산하는 과정. ⇒ ‘구조’는 실천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들의 과정 그 자체.

- 맑스 과학의 단절 과정 : 『독일 이데올로기』를 계기로 인간학적 이데올로기(인간의 유적 본질의 투사로서의 역사)와 단절하고 성숙기 저작 『자본』완성. ‘사회적 관계’의 개념에 기초하여 사회는 표출적 총체성이 아니라 과잉결정된 ‘전체’로서 탐구됨.

- 맑스주의 철학의 규명 : 헤겔과 동형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중심축만 바꿔놓는 포이어바흐식 변증법에 반대. 그는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에 기반하고 있는 반영론적 인식론을 스피노자적 입장에서 공격. ⇒ ‘항상 이미 주어진’ 복합성의 변증법으로서 과잉결정의 변증법.

  └→ 헤겔 변증법의 동심원적 총체성 ⇒ 건축학적 토픽(1층의 구조는 2층의 구조를 직접 결정하지 않고 단지 한계만 규정)


▶알튀세르 이론의 모순

- ①알튀세르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대상은 인식 주체의 초역사적, 보편적인 형식적 조건을 다루는 이론이 아니라 지식생산의 역사(이론의 이론, 과학들의 과학) ②사회적 실천들 일반의 이론 ⇒ 개념생산의 변증법인 동시에 객관 변증법? 디아마트로부터 불철저한 단절의 결과

- ①과 관련 : 주체의 인식론(인식, 진리, 보증 등)에 대한 거부. ⇒ 복수의 진리가 존재함을 인정. 과학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적인 것 사이의 구분은 새로 형성된 과학에 의해서 사후적, 회고적으로 형성. ⇒ 과학들의 대상의 수만큼의 진리의 기준들이 있고, 이것을 통약할 수 있는 선험적 또는 초월적 기준은 없다. ⇒ 철학에서 인식론적 단절을 생각하는 초기 알튀세르의 견해와 모순.

- 이데올로기적 실천에 대한 이론작업 : 맑스주의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론을 벗어나기 위해 라캉을 매개로 ‘무의식’ 개념을 도입(상상적인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사회적 결합작용의 시멘트로서의 이데올로기론)

- 알튀세르의 과잉결정론은 심급들의 자율성을 설명해 주지만, 심급들간으 l관계, 현실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끊임없이 논쟁거리.


(2) 과잉결정과 최종심급에 대해서

- 과잉결정은 모순들의 축적이나 응축, ‘중층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의 양항의 불균등성, 비대칭성을 뜻함.

-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관계에서 두 계급은 동일한 역사를 가지지 않으며, 동일한 세계를 공유하지 않고, 동일한 수단을 갖지 않으며, 동일한 계급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과 권력을 박탈당한, 즉 음의 부호가 붙은 자본가 계급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립한다. 이는 명백히 모순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립관계는 헤겔적인 아름다운 고양과 화해를 통해 대립의 조건들을 초월하기는커녕 그 대립의 조건들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 과잉결정은 한 모순에 대해 사고할 때 동시에 다른 모순들에 미치는 효과성을 사고하게 함. 이를 위해 과소결정을 함께 논의. ex)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유산된 경우.

- ‘과잉결정’이라는 용어를 모순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토픽’적 사고와 관련된 심급들에 대해서는 ‘최종심급’이라는 용어 사용. 과잉결정은 모순의 복잡성, 불균등성을 논의하며, 최종심급은 차별적 효과를 지칭.

-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이 각 심급의 실제적 차별성과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심급들간의 위계, 지배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유물론적 관점이라고 봄. 여기서 후자의 유물론적 관점이 우위에 섬. 그러나 최종심급은 궁극적 원인, 본질, 실체가 아님.

-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를 심급들로 분할하고, 경제를 지배적 심급으로 생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자체,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이론은 그 효과를 의식함과 동시에 그 위험을 경계해야 함.


(3) 자기비판, 재생산의 관점

▶ 자기비판의 4가지 테제 : ①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②철학은 과학이 대상을 갖는다는 의미에서의 대상을 갖지 않는다. ③철학은 과학이 여갓를 갖는다는 의미에서의 역사를 갖지 않는다. ④철학은 이론 영역에서의 정치다.

  └→ 자신의 이전 주장이 과학과 철학을 모두 이론으로 포괄함으로써 양자의 차이를 경시하게 되었다고 보고 과학적 실천과 철학적 실천을 구분. 과학은 더 이론적(‘진리들’이 문제)이고 철학은 더 실천적(‘입장의 올바름’이 문제).

  └→ 철학은 과학과 같은 의미의 대상을 지지니 않으며, 철학사는 패배한 입장들이 언제든지 새로운 대치점이 형성됨에 따라 다시 부활하고, 낡은 입장들을 새로운 외양으로 치장학 h등장할 수 있는 ‘반복’의 역사이므로 ‘단절’을 말할 수 있는 ‘불귀점’을 갖지 않음.

  └→ 철학은 이론적 명제(테제)들을 합리적으로 구성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이론에 개입하여 이론적 효과(철학효과)를 유발.


▶ 이론의 이론, ‘대문자 이론’에 대한 비판

- 인식론적 단절을 순수하게 이론 내적인 단절로만 파악함으로써 단절의 조건들, 즉 계급투쟁이라는 문제를 경시.

- 자기비판 이후 단절은 이제 우선적으로 정치적/철학적이고 과학적 단절은 그 결과가 됨.

- 우리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과학이 다루는 사유 대상. 정치적 입장의 변화는 철학적 입장의 변화를 매개로 과학의 사유 대상에 개입. 철학은 이론 영역 내에서 정치를 대표.

- 새롭게 정의된 철학은 과학이 대상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대상을 갖지 않는다. 철학은 경계선의 구획을 통해 입장을 정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 철학에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 이외의 문제들이 있고, 그렇지만 철학은 중요하게 이론에서 계급적 지위의 표명이라는 것을 지적. 모든 철학은 아무리 사변적이고 순수한 형태를 띠더라도 실천적, 정치적.


▶ 재생산의 관점

- ①인민 대중이 역사를 만든다. 그런데 대중은 엄밀한 의미에서 주체가 아니다. 대중은 무정형적이고, 이미 주어진 구체적 복합성이다. ②계급투쟁이 역사의 동력이다. 그런데 계급투쟁은 사물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개념이며, 그 자체에 정세, 우연성 등을 담고 있다.

  └→ ‘생산양식의 과학’이라는 초기 관점: 구조와 이행은 진화론적 관계로서 이행은 안정적인 구조의 재생산 외부에서 삽입되는 계기일 뿐. ⇒ 자기비판 시기의 관점: 재생산은 생산수단의 재생산뿐 아니라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 구조의 재생산 안에 계급투쟁의 문제를 삽입시킴. 여기서 주체들을 재생산하는 표상매커니즘으로서 이데올로기를 주요하게 사고. ⇒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과 호명 테제.

-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은 오히려 문제의 균열을 심화시킴. 과학의 단절의 계기를 과학 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철학이라는 매개를 둠으로써, 맑스주의의 과학성과 ‘맑스주의적 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증폭.


(4) 맑스주의의 위기, 철학의 전화

- 이론은 이론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인 물질적 힘,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고유한 방식으로 전화, 즉 이데올로기로 전화해야 한다. 이론이 운동과 결합하는 것은 가능성으로만 남을 뿐 필연적이지 않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은 적대적 두 진영의 대립이 아니라, 두 경향들의 대립이며, 이 대립은 항구적이지도 않고 대립선은 계속 바뀐다.


▶맑스주의 위기의 선언 : 두 가지 난점

- 난점① - 잉여가치론 : 『자본』에서 맑스가 잉여가치를 산술적 계산의 문제로 제시함으로써, 착취에 대한 경제주의적, 리카도주의적 해석을 남김. 알튀세르는 『자본』의 역사적 서술에 관한 장들을 부각시켜 계급투쟁의 구체적 조건, 형태, 효과를 다룸.

-  난점② - 변증법 : 전통적 철학은 모순들을 소거할 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실천들과 그 이데올로기를 통일할 가능성의 이론적 조건들을 사고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한 지배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데올로기들을 통일하는 데, 그리고 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리임을 보증하는 데 기여. 즉 철학 안에서 국가편에 투항. 알튀세르는 철학의 외부가 있다는 ‘비철학’의 개념을 주장. ⇒ 철학을 구성하는 것은 논증의 담론도 정당화의 담론도 아니고, 새로운 철학적 입장의 옹호, 바로 철학적 전투장이다.

  └→ 모든 지배는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이 비대칭성을 무시하고 지배하는 측과 대등한 대립물을 형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지배 측의 거울상을 형성하게는 되는 것.

  └→ 과학에 대한 합리주의적 가정에 대한 공격 : 알튀세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더불어 맑스주의 역사과학에 대해 갈등적, 분파적 과학이라는 규정 제시. ‘진리’의 반대물은 오류가 아니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유기적 체계’. (레닌의 ‘맑스주의는 과학이므로 전능하다’라는 테제에 대한 명백한 반대.)


(5) 불확정적 유물론을 위하여

- 1980년 아내 엘렌 교살 사건 이후 공식적인 발언권을 박탈당함. 침묵 중에 유일하게 공개 출판된 성과는 『나바로와의 대담』. 이후의 이론적 작업은 유물론/관념론의 이분법적 대당을 넘어서는 비철학으로서의 철학인 ‘불확정적 유물론’에 집중.


▶알튀세르의 후기 철학적 작업

①명시적으로 맑스주의 철학의 불가능성을 선언. 우리의 당면 과제는 맑스주의 철학을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을 가공하는 것, 맑스가 사고했던 것과 사고했던 형식을 설명해 주는 요소들을 철학사 속에서 찾는 것을 목표로 함.

②유물론/관념론의 이분법적 대당을 비판. 어떤 철학도 어떤 이론적 정세에서 입장을 채택하는 데 유물론적 효과를 지닐 수 있다. 철학사에서 볼 때 유물론은 플라톤 이후 관념론적 질문들이 자신의 대립물로 불러낸 대쌍일 뿐.

  └→ 유몰론이 결코 벗어나지 못한 관념론의 근본적 질문은 기원과 종말 목적 두 가지로 이중화하는 ‘근거율’. 여기서 절대정신의 자리를 물질로 대체하더라도 유물론은 이 질문을 벗어날 수 없음. 이 질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철학의 기원, 즉 조재, 주체, 의미 또는 텔로스에 대한 질문들로부터 벗어나야 함. ⇒ 체계가 아닌 경향으로만 존재하는 유물론을 강조.

③불확정적 유물론(또는 마주침의 유물론) : 맑스주의를 위한 철학의 기원을 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마키아벨리-스피노자-하이데거-데리다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찾기 시작함. 클리나멘의 철학. ⇒ 정세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

  └→  에피쿠로스에게 실재하는 것은 원자들의 우연적 충돌의 결과물일 뿐. 이는 라이프니츠의 고립되어 있는 보편성을 담지한 ‘단자’(monad)와 다름.

④역사과학과 사회과학에 던진 새로운 이론적 함의 : 현전하는 역사는 늘 유일 고유한 불확정적 정세의 역사로 인식. 일반적 상수(레비스트로스)나 경향적 법칙(맑스)의 보편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변종을 통해서 각 사례의 유일고유성을 밝히는 것이 문제.


3. 이데올로기론


▶이데올로기론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

①이론의 조재 조건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 이데올로기들, 대중이 처해 있는 이데올로기적 조건, 지배적 이데올로기, 그 내부 적대의 조절, 균열, 그 속으로 이론 개입의 효과 등을 다루는 것이 중요.

②서양 정치철학의 두 전통

  1>국가에 대한 계약론적 전통 : 국가를 합의/강제의 틀로 규정. 국가는 장치나 기계가 아니라 명목적인 ‘계약 상태’를 지칭.

  2>국가에 대한 ‘공포의 모델’: 국가에 대한 ‘무의식 모델’. 마키아벨리-스피노자-니체-알튀세르적 계보. 국가가 유지되지 위해서는 공포+희망이 필요한데 이는 선/악처럼 상호 보완적.


(1)이데올로기적 실천

-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 아니고, 의식도 아닌 ‘무의식적인 것’. 세계에 대해 상상적 관계를 맺는 주체를 생산하는 것.

- ①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는 없다. ②과학과 비교해 이데올로기적 실천은 이론적 기능보다 실천적, 사회적 기능이 중요하다. ③이데올로기는 의식이 아니라 구조다. 그것은 인간과 그 세계 간의 체험된 관계다. ④이데올로기는 허구가 아니며, 실제 관계와 가상적 관계의 통일이다. ⑤이데올로기는 영역과 경향에 따라 분할된다.


(2)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반론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 이데올로기들이 중요함을 강조. 이데올로기 일반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최소한의 일반성.(『자본』에서의 노동과정과 같은 맥락) ⇒ 이데올로기 일반의 역사는 없음. 이데올로기 일반은 구체적 이데올로기로 상향해 가기 위한 추상의 첫 출발점일 뿐.

-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힘, 즉 ‘국가장치’. 알튀세르의 이 주장은 뒤르켐-라캉적 전통 하의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을 기표의 물질성으로 파악하고, 사회적인 것은 그 자체로서 힘을 지닌다는 분석과는 다름. 그는 사회에 존재하는 경쟁적, 상호 투쟁적 ‘해석들’ 사이에서 특정한 해석들이 지배하게 되고, 사회적인 물질적 힘을 획득하게 되는 계보학적 분석을 중시(니체적 이데올로기론).

- 이데올로기에 의한 주체 생산


(3)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토픽/계급투쟁

- 호명테제에 대한 ‘기능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알튀세르의 대응 : 재생산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설명.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의 작동양식과 착취, 적대만을 대상으로 삼는 ‘유한한’ 이론이듯이, 이데올로기에서도 구체적 이데올로기들의 문제로 가야함.

  └→ 라캉과의 동맹 파기 : 라캉은 무의식의 과학적 이론 대신에 정신분석의 철학을 제시. 모든 것을 무의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에 따라 인식하는 이론체계. ⇒ 알튀세르의 비판은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여행객”에 집약. 유물론 철학자란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으로 기원도, 제1원리도, 어떤 목적도 알지 못하며, 불확정적 만남의 계열들을 기록할 뿐.

  └→  호명속에 이데올로기적 반역은 다음의 조건 하에서 가능 :

        ①호명이 실패했을 때,

        ②호명에 의해 주체가 구성되더라도 그 이데올로기 자체가 이미 갈등적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 이데올로기를 우회할 수 없다는 근본적 비대칭성의 문제. 이데올로기적 표상은 계급투쟁을 온전히 포섭할 수 없다.

        ③호명된 복수의 주체 지위들 사이의 갈등 : 각 개인은 복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어 있는 우연적 통일체. 각 이데올로기가 내적으로 갈등적이며, 동시에 각 개인은 복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체로 호명됨으로서 호명의 내적 균열 가능성은 항상 주어져 있음.
 

 

 

 

 



 

 

1) 서양철학에서 근원적인 반데카르트 철학의 대표자는 스피노자와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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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예수전> 발췌 - 3

25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하려고 서 있을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시오.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예수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무조건적인 용서를 설파했다는 것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갖다 대라’는 그의 말(마태 5:39)은 불의와 폭력에 대한 무기력한 순응을 강요하는 데 활용되어 온 가장 유명한 경구다. 그러나 오늘 좀 더 섬세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의 이 경구가 오히려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아챈다. 사람은 대개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은 ‘바른손’이며 고대사회에선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뺨을 때린다는 건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빰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면”이라고 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렸다는 말이다.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행위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하찮은 상대를 모욕할 때 사용되곤 했다. 그렇게 모욕당한 사람에게 예수는 ‘왼뺨도 갖다 대라’고 말한다. ‘나는 너와 다름없는 존엄한 인간이다. 자, 다시 제대로 때려라’하고 조용히 외치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순응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단호하게 저항하라, 불복종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 유명한 경구는 사람 취급 못 받는 사람들, 매일처럼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가슴 아픈 위로다. 예수는 그들 앞에서 애끊으며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여러분이 당장 여러분의 현실을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여러분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부자와 권력자들의 편이 아니라 여러분의 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부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자존심을 잃지 마세요.”


불의한 사회 현실 속에서 분노와 용서는 늘 균형을 잃곤 한다. 현실에 분노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대개 용서를 모른다. 그래서 많은 경우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빠져 들어간다. 한편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은 분노할 줄 모른다. 그들의 분노 없는 용서, 진실과 정의를 가리지 않는 무작정한 용서는 불의 한 현실을 덮고 그 현실에서 영화를 누리는 세력에게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에게 분노와 용서는 늘 병행한다. 성전 뜰에서 그의 생애 중 가장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 예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용서를 말한다. 두 가지 모습은 얼핏 개연성이 없어 보이나 모두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는 분명히 분노하여 진실과 정의를 가리지만, 끝내 용서함으로써 증오와 보복의 고리를 끊어 낸다.


우리는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의 순서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되 죄는 분명히 미워하라.’ 우리는 끝내 용서하되, 먼저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진정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용서할 줄도 모르며, 진정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와 용서는 실은 하나다.


(187-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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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축제 때마다 그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었다. 7 마침, 폭동 중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빠라는 사람이 구속되어 있었다. 8 이윽고 군중이 빌라도에게 올라가서 그가 자기들에게 해 온 관례대로 해 주기를 청하기 시작하였다. 9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대답하여 “내가 유다인들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오?” 했다. 10 대제관들이 시기하여 그분을 넘겨주었음을 그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관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빠를 자기들에게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그러자 빌라도는 다시 대답하여 “그러면 [여러분이 말하는] 유다인들의 왕을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랍니까?]”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13 그러니 그들은 다시 소리 질렀다.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14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가 무슨 나쁜짓을 했단 말입니까?” 그러니 그들은 더욱 소리 질렀다.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은 (11:9~10) 왜 고작 나흘 만에 “죽여라!”라고 외치는 걸까? 학자들은 대개 군중들의 생각이 달라져서라고, 혹은 예수를 죽이려는 세력의 사주와 선동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를 죽이려는 세력에 의한 사주와 선동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러나 군중들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군중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과 “죽여라!”를 외치는 군중은 실은 다른 군중인 것이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던 순례객들, 즉 성전 지배세력의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던 갈릴래아 인민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고, 지금 “죽여라”라고 외치는 군중은 예루살렘 사람들, 즉 성전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의 평소 인구가 5만 명가량인데 성전에서 상근하는 사람이 1만 7,000명에 달했으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조리 성전에서 일하거나 성전 덕에 먹고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성전의 적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적이었다. 안 그래도 ‘갈릴래아 놈들의 괴수’예수를 마땅치 않아 하던 그들은 지난 며칠 동안 예수의 행태 덕분에 분노가 폭발했다. 그들은 예수가 성전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으며 “강도들의 소굴”이라 고함칠 때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다. “호산나!”는 그렇게 이해관계의 이동을 통해 “죽여라”로 변한 것이다.


유년 주일학교에서 ‘강도’라 가르치는 바라빠는 “폭도 중에 살인을 한 폭도들”가운데 한 사람, 즉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장 항쟁을 벌이던 조직의 성원이었다. 군중들은 “차라리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외친다. “차라리”. 그들은 바라빠도 죽이고 싶지만 둘 중 한 사람만 죽일 수 있다면 바라빠를 풀어 주고서라도 예수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여 폭동과 살인(다른 입장에서 볼 때 정치적 테러리즘, 혹은 의거이기도 한)까지 한 사람을 석방해서라도 예수를 죽이려 하는 걸 보면 당시 예루살렘 사회가 예수에게 가진 적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혹은 예수에게서 얼마나 강력한 위협과 공포를 느꼈는지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는 정치적인 혁명가가 아니었다.’는 상투적인 견해에 대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치적 혁명성이 ‘주장’되는 게 아니라 지배체제에 의해 ‘증명’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겉보기엔 제아무리 혁명적이라 해도 지배체제가 별 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혁명적인 게 아니다. 학술적, 문화적 차원에 머무는 혁명 이론 따위가 그렇다. 반대로 겉보기엔 그다지 혁명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데 지배체제가 어떤 과격하고 급진적인 혁명운동보다 더 위협을 느끼고 적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것이다. 예수는 비폭력주의자였고 국가권력을 접수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건 다 안다. 그런데 왜 지배체제는 폭력을 사용하고 국가권력 접수를 목표로 싸운 바라빠보다 예수에게서 더 큰 위협을 느끼는가? 예수의 정치성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죽이기를 꺼리는 모습은 빌라도에 대한 다른 역사적 기록들과는 거리가 있다. 요세푸스를 비롯한 유력한 역사가들은 빌라도를 매우 냉혹하고 영악한 인물로 기록한다. 빌라도는 예수가 죽고 7년 후 해임되어 송환되는데 그 주요한 이유도 소요 사태를 지나치게 잔인하게 진압했기 때문이었다. 빌라도에 대한 호의적인 묘사는 「마르코복음」집필 당시 기독교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다. 로마에 의해 탄압받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가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정치적 반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로마 총독도 예수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게 아니라 유다 지배세력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종교가 로마와 적대적이지 않음을 애써 주장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분명 사실과 다르지만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쉰 예수보다 ‘죽음으로서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 예수, 즉 신학과 교리 속에 갇힌 예수를 선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46-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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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다. 기독교도들은 ‘부활이 없엇다면 기독교도 없었다’며 굳세게 예수의 부활을 주장한다. 반면 부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불신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역사 속에 실재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일은 예수가 잡히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어느 순간 “예수가 부활했다!”를 외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달라진 모습 사이에 예수의 부활 사건이 있다.


문제는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부활이 무엇인가다. 예수의 부활을 둘러싼 모든 주장과 논란은 예수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 즉 예수의 죽은 세포들이 재생한 사건이라는 전제를 갖는다. 그러나 부활이 단지 죽은 육체가 되살아난 것이라면 부활은 ‘영원한 생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살아난 육체는 즉시 노화를 시작하고 어쩌면 그날 다시 죽을 수도 있다. 죽은 육체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건 단지 육체가 사흘 동안 노화를 멈추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이적이지만, 그런 이적이 우리의 존경이나 신앙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예수는 이미 제자들 앞에서 충분히 이야기한 바 있다. 사람은 대개 육체를 사용하는 시간을 목숨이 유지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유한함은 우리를 겸허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착에 빠지게 한다. 금방이라도 인생이 지나가 버릴까 아쉬워, 혹은 반대로 인생이 영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집착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렇지 않다고, 육체의 목숨은 진정한 목숨이 아니라고, 육체의 목숨에 연연하면 진정한 목숨을 영원히 잃고 만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은 몸이 살아난 광경을 본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다라면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살아 있는 예수를 떠났었다. 그들은 예수가 말한 ‘진정한 목숨’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죽지 않았다고, 영원히 살아 있다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목숨이란, 살아 있다는 것이란 지정 무엇인가? 육체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것이 찬미되는 순간에도 이미 늙고 있다. 엄청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보다 힘차게 살아 있는 듯 보이나, 그들은 둘러싼 모든 인간적 호의와 관계들은 대개 그들이 가진 돈과 권력을 향한 것이다. 그들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돈과 권력이 그들의 시체를 쓰고 살아 있는 것이다 . 스무 살짜리 노인도 있고 여든이 넘은 청년도 있다. 몸은 살아 있되 목숨은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은 죽은 지 오래이나 목숨은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목숨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지정한 목숨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묵상하는 사람은 참 드물다. 그래서 육체의 목숨에 집착하느라, 그 목숨이 지속하는 시간 동안의 안락과 이런저런 부질없는 욕망의 충족에 매달리느라 정작 그 시간조차 허비하고 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듯, 내 삶 속에서 예수가 부활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목숨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오랜 종교적 수련이나 특별한 구도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바로 이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이 이 순간 그런 삶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권력을 얻은 후에 낮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던 사람이 이 순간 스스로 권력을 잃어 낮고 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옳다는 건 알지만 현실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좀더 경제적 안정을 얻고 나서’라고 되뇌며 제 삶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이 이 순간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으로 새처럼 훌쩍 날아오른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261-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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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예수전> 발췌 - 2

20 그리고 그분은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 와서 그분 일행은 빵을 먹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21 그런데 그분의 친척들이 듣고서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그분이 정신 나갔다고 말햇던 것이다. 22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은 말하기를 “그는 베엘제불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고, 또한 “그는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고도 했다. 23 그러자 그분은 그들을 불러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 24 나라가 서로 갈라지면 그 나라는 지탱할 수 없습니다. 25 또 집안이 서로 갈라지면 그 집안은 지탱할 수 없습니다. 26 이와 같이 사탄도 서로 들고 일어나서 갈라지면 지탱할 수 없고 끝장이 납니다. 27 실상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세간들을 털 수 없습니다. 묶어 놓아야 그의 집을 털게 될 것입니다. 28 진실히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들은 죄뿐 아니라 독성도, 어떤 독성의 말이라도 모두 용서받을 것입니다. 29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30 “그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31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이 왔다. 그런데 밖에 서서 그분을 부르러 누군가를 그분에게 보냈다. 32 그리고 그분 주위에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그분께 “보시오,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 형제들[과 당신 자매들]이 밖에서 찾습니다”했다. 33 그러자 그분은 답변하여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4 그러고서는 당신 주위에 둥글게 앉아 있는 이들을 둘러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보시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35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


율법학자들의 비난에 예수는 매우 민감하게, 그들을 불러서까지 대응한다. 예수는 매우 중요한, 한 치의 타협 없이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예수는 ‘신성모독을 해도 용서받을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결국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인간이 만든 종교체제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의 성실과 충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 속에서 하느님이 벌이고 있는 역사, 즉 하느님 나라 운동에의 참여인 것이다.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아도, 심지어 교회와 교리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만,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제아무리 성실하고 충성스럽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어떤 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일 수 있으며,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죽어 하느님이 뭔지 예수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제3세계의 수많은 인민들 가운데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이 허다한 것이다.


보수 교회에선 이런 사실을 엄격하게 부인하는 것을 마치 하느님을 타협 엇이 섬기는 일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태도는 실은 하느님을 자신들의 교회 체제에 가두어 놓으려는 말도 안 되는 수작일 뿐이다. 우리가 한낱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 그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도, 혹시라도 내 생각이 그의 본디 생각에 못 미칠까 걱정하며, 그런 걱정을 함께 전하는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의 생각을 전하면서 그리 오만하고 권위에 찬 태도를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도 미처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앙상한 교리와 신학을 내세워 자신이 하느님의 권한을 완전히 위임받은 양 구는 태도가 아니다.


예수의 소문을 들은 가족들은 ‘정신이 나간’ 예수를 붙들러 나선다. 가족들의 행동은 예수가 서른 살이 다 되어 가족을 떠나 요한에게 서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만일 예수가 어릴적부터 신의 아들이라는 표징을 보였다면, 하다못해 위대한 예언자의 징후라도 보였다면 그가 공적 활동을 시작했을 때 가족들은 그저 ‘올 게 왔구나’ 했을 것이다.


아들이 집을 떠나 ‘미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어머니의 심경은 어땠을까? 어릴 적부터 노동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맡아 온 착한 맏아들에 대한 연민, 다른 가족들마저 미쳤다고 말하지만, 또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 속으로 낳고 기른 어머이기에 직감할 수 있는 아들의 진지하고 존귀한 신념, 그리고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그러나 필시 아들에게 닥쳐올 위험과 고난 등에 대한 생각으로 어머니는 번민한다. 그런데 정작 예수는 어머니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어머니를 부인한다.


예수는 마치 출가한 승려처럼 세속의 인연을 ‘초월’하려는 걸까? 이어지는 예수의 말을 곰곰이 살펴보면 예수는 오히려 세속의 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흔히 고대인들은 오늘 개인주의에 물든 우리보다 훨씬 덜 이기적이었던 걸로 여겨진다. 물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들에겐 집단화한 이기심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게 존재했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들에게 가족이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상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누구의 자식인가 어느 가문 출신인가가 훨씬더 중요했다. 가족의 이해관계는 전적으로 나의 이해관계였고 단일한 이해관계로 뭉친 가족은 다른 가족이나 사회에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집단화한 이기심이 하느님 나라 운동에, 모든 인민들이 하나로 연대하는 일에 큰 벽이 되었다. 예수는 그 벽을 자신부터 깨트리는 것이다. 예수는 제 어머니와 형제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와 형제의 의미를 해체하여 하느님 나라 운동을 기준으로 다시 세우며 동시에 무한하게 확장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사람”은 물론 바리사이인들이 말하듯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참여하는 사람, 즉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예수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함께하는 사람은 가족이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 나와 피를 나눈 형제라 해도 그 듯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남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베풀러 온 줄로 여기지 마시오. 평화가 아니라 칼을 던지러 왔습니다. 사실 나는, (자식 된) 사람과 제 아버지, 딸과 제 어머니, 며느리와 제 시어머니를 가르러 왔습니다. 제집 식구들이 제 원수들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마태 10:34~37)


(66-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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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사이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율사 몇 사람이 그분께 몰려왔다. 2 그런데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바리사이들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않는다. 4 그리고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않는다. 그 밖에도 지켜야 할 전통이 많이 있으니, 잔과 옹자배기와 놋그릇[과 침대]를 씻는 것이다. 5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그 분께 “왜 당신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다라서 걷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라고 물었다. 6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사야는 여러분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잘도 예언했으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섬기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도다. 7 헛되이 나를 공경하나니 인간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기 때문이로다.’ 8 여러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인간의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9 그러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립니다. 10 모세는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라’ 또한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1 그런데 여러분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코르반이라 하면, 즉 제게서 공양 받으실 것은 예물입니다 하면 그만이다’ 하면서 12 여러분은 그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더 해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13 여러분이 전하는 여러분의 전통에 의해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이런 짓들을 많이 합니다.”


예수는 바리사이인들과 “위선자”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격정적인 논쟁을 벌인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의 바리사이인들에 대한 분노가 워낙 불거지다 보니, 마치 예수가 사두가이파나 헤로데 괴뢰 세력보다 바리사이인들을 ‘더 나쁜 놈들’이라 여겼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진 않다. 사두가이인들이나 헤로데 괴뢰 세력이 바리사이인들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나쁜 사람들인 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예수는 그 자신이 ‘선생’(랍비)이라 불리기도 하는, 바리사이인들과 매우 가까운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비판이 반드시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대상을 h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악한 세력은 그 악함이 이미 일반화되어, 뒤집어 말하면 그들에 대한 인민들의 적대감이나 반감 또한 일반화되어 있어서, 그들을 비판하는 일은 그런 일반화한 적대감이나 반감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일에 머물기 쉽다. 너무나 지당한 일은 하나 마나 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 세력은 두 가지 요건을 갖는다. 가장 악한 세력과 갈등하거나 짐짓 적대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에게 존경심과 설득력을 가질 것, 그러나 그 갈등과 적대의 수준은 지배체제 자체를 뒤흔들 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 그 두 가지 요건의 절묘한 좌화가 바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인민들은 사두가이인들과 헤로데 괴뢰 세력을 혐오했지만 이스라엘의 현실과 미래를 고뇌하며 실천하는 바리사이인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바리사이인들은 젤롯당처럼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열정적이지 않았고, 성정 지배세력과 완전히 절연하고 광야에서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처럼 순수하지 않았다. 적당한 여정과 적당한 순수함으로 무장한 그들은 삶의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지간한 사회 개혁의 실천으로, 지배세력의 폭압이 혁명의 불길로 번지는 걸 차단하고 인민들의 변혁 의지를 중화하는 체제의 안전판이었다. 예수는 놀라운 통찰로 그들의 정체를 꿰뚫어 본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 살던 바리사이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바리사이인들을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수 당시 바리사이인들이 자신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듯,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자신들이 바리사이인인 줄 모른다.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2,000년 전 바리사이인들을 매우 진지한 얼굴로 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2,000년 전 바리사이인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핌으로써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을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며, 안정된, 그러나 거부감이 들 만큼은 아닌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상당한 사회의식을 가진 ‘양심적인 시민들’이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과 짐짓 긴장과 갈등을 벌이며, 늘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만 하는 대다수 인민들과는 달리 시민으로서 양식을 충분히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들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115-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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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분은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16 그리고 누구든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17 또한 가르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집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18 마침 대제관들과 율사들이 듣고서는 어떻게 그분을 없애 버릴까 하고 궁리했다. 사실 그들은 그분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을 매우 놀라워했기 때문이다. 19 또 저물게 되자 그분 일행은 성 밖으로 나갔다.


‘성전 정화’ 사건이라 불리는 이 에피소드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 가운데 가장 소란스러운 것이다. 순례자들은 성전에 제물로 양을 바치거나 형편이 덜한 사람은 비둘기를 바쳤는데 반드시 성전에서 인정한 ‘정결한 것’이어야 했다. 성전의 뜰에는 ‘정결한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로 넘쳤는데 그 양과 비둘기 가격은 여느 양이나 비둘기보다 수십 배나 비쌌다. 성전에 바칠 돈 역시 로마 화폐가 아닌 잘 사용하지 않는 이스라엘 화폐로 바꾸어야 했는데 성전 뜰의 환전상들은 말도 안 되는 수수료를 받았다. 물론 그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은 성전과 결탁해 있었고, 그 막대한 수익의 대부분은 대제관을 비롯한 성전의 고위층에로 흘러 들어갔다.


사실 성전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걸 인민들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인민들은 성전에 순응했다. 묵묵히 수십 배의 돈을 치로 양과 비둘기를 사고 돈을 바꾸어 제관에게 바쳤다. 타락했지만 ‘그래도 성전인데, 그래도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인데’ 하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성전이나 제관들에게 대항하는 건 마치 하느님에게 대항하는 것처럼 느껴져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성전의 문제들을 대화와 비판으로 풀지 않고 ‘난동’을 부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수가 성전 지배세력의 비리나 부정들을 고치고 개혁함으로써 성전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그런 ‘난동’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은 성전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에 대한 ‘부인’이다. 예수는 그 성전이 ‘문제 있는 성전’이 아니라 ‘성전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 선언은 성전 지배세력을 향한 공격이자 성전 체제의 권위에 눌려 침묵하는 인민들을 일깨우는 퍼포먼스였다.


예수의 태도는 우선 오늘날의 교회(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스로를 ‘성전’이라 부르기도 한다)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깨우침을 준다. 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 예수가 ‘그래도 성전인데’하며 침묵하던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쳤듯이 우리는 ‘그래도 교회인데’하며 침묵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쳐야 한다.


그러나 예수 당시의 성전이 단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지배체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에서, 예수의 태도를 전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해 보아야만 한다. 예수는 억압의 사회체제가 피억압자들의 비굴과 무기력에 힘입어 유지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앞서 말했듯 인민들은 성전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저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다”, “하느님은 저곳에 거하시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엔 예의 순진함 외에 ‘세상이 다 그런 거지’하는 비굴과 무기력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대개 어떤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힘이 전적으로 그 체제의 지배세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를테면 1970년대 한국의 군사 파시즘 체제를 유지하는 힘은 전적으로 박정희 패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민은 다만 그 포악한 체제의 일방적 희생자로 묘사된다. ‘박정희 군사 파시즘에 신음하던 인민들.’ 그러나 그 시절 대개의 인민들은 ‘신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할 수야 있나’하며 제 식구들 챙기며 오순도순 살았을 뿐이다.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인민들의 비굴과 무기력이다. 사실 제 아무리 포악하고 강한 사회체제라고 해도 대다수 인민들이 한꺼번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 당장이라도 맥없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예수는 수많은 인민들 앞에서 그들의 비굴과 무기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결국 예수의 ‘난동’은 침묵하는 억압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지배자들은 그 퍼포먼스를 통해 하느님의 권위로 은폐된 그들의 썩은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인민들은 ‘인민들의 순진함’으로 가려진 제 비굴과 무기력을 비로소 되새기며 인간적 위엄을 회복할 채비를 할 수 있었다.


(178-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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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예수전> 발췌 - 1

40 그리고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며 “선생님은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41 그러니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하였다. 42 그러자 즉시 그에게서 나병이 물러가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43 그리고 그에게 호통치시며 즉시 그를 쫓아내셨다. 44 그러시며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가서 제관에게 당신을 보이고, 당신이 깨끗해진 것에 대해서 모세가 명한 제물들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오.”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많이 선포하고 또한 그 일을 선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도시로 들어가실 수 없었고 바깥 외딴 곳에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왔다.


“측은히 여기시고”는 그리스어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인데 ‘창자,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동사형이다. 한국어에는 기막히게도 같은 말이 있다. ‘애끊다’는 말이다. ‘애’는 바로 ‘창자, 내장’을 뜻하고, ‘애끊다’는 말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말이다.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정상적인 인간성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애끊지는 않는다. 우리가 애끊는 순간은 낯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제 아이나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면할 때다.


그런데 예수는 난생처음 만난 나병환자에게 애끊는다.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사람의 속내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예수의 모든 행동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의 분노 역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이 자연스레 그들의 고통을 낳는 사람들과 사회체제에 대한 강렬한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에게서 배우는 일 역시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 출발한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마르코복음」에 세 번 나온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하였다.”(1:41) “그래서 그분은 (배에서) 내리면서 큰 군중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6:34) “군중이 측은합니다. 그들이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있는데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8:2)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병자는 누구보다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지 자신의 어떤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병자는 죄가 있어서 하느님의 벌을 받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만성 질병 환자일수록 하느님께 용서받기 어려운 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 여겨진 건 물론이다. 그런 사고방식 속에서 만성 질병일 뿐 아니라 외관마저 흉하게 일그러지는 ‘나병’(오늘의 한센병을 포함하여 좀더 넓은 범위의 만성 피부병을 뜻한다) 환자는 공동체에서 완전히 버림받았다. 나병환자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결! 불결!” 하고 소리 질러야 했으며, 마을에는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병자는 병으로 인한 고통에 보태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인간적․사회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모든 사람이 가족이나 지역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제 존재와 삶의 가치를 확인하던 사회에서 공동체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건 죽음과 같았다. 요즘도 신유나 안수니 해서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병을 고치는 행위들이 있지만 예수의 치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는 일은 단지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잃어버린 인권을 회복시키고 죽음 같던 삶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병자 본인에게 병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온 우주가 다시 열리는 벅찬 순간인 것이다.


애끊어 어쩔 줄 모르던 예수는 나병이 나은 사람에게 ‘제관에게 가서 정해진 절차를 거치라’고 말한다. 나병 환자가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예루살렘 성전의 제관에게 가서 병이 다 나았음을 인정받은 의례를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예수는 기쁜 얼굴로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 ‘자 이제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가슴을 펴고 세상으로 걸어 나가세요. 하느님은 당신 편입니다.’


(37-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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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리고 그분은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모두 그분께 왔고 그분은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리고 지나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시오” 하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그리고 그분은 그의 집에서 식사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세관원들과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자리 잡았다. 그들은 (수가) 많았으며, 그분을 따라왔던 것이다. 16 그런데 바리사이파 율사들은 그분이 죄인들과 세관원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저 사람이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먹다니?” 했다. 17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예수가 세리(세관원)를 제자로 삼은 건 파격적인 사건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배신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유일하게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걸 더할 수 없는 모욕으로 여겼다. 게다가 세금은 관리가 직접 징수하는 게 아니라 입찰을 통해 민간인 징수 대행업자에게 맡겼다. 징수 대행업자는 입찰시 적어낸 금액을 선납한 다음 세금을 징수했다. 세금을 얼마나 많이 거두어들이는가에 따라 징수 대행업자의 수입이 결정되었으므로 징수업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내는 것 자체가 모욕인 세금이 징수 과정의 공정함마저 없었으니 인민들의 반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세리는 그 징수 대행업자 밑에서 일하는 말단 징수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앞에서 인민들과 접촉했으므로 로마에 대한 적대감을 한 몸에 안아야 했다. 예수가 레위를 제자로 고른 건 그가 제자로 삼을 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세리를 제자로 부를 필요는 없다. 그런 행동은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며 예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결국 예수의 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보란 듯이 그렇게 한다.


예수의 행동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세리는 대단한 세속적 야망이나 기득권을 구하기 위해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그 짓을 하는 사람이다. 만일 다른 품위 있는 일을 해서 비슷한 벌이를 할 수 있다면 세리 노릇을 지속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비난받아야 할 그들의 배후보다 더 심한 비난과 경멸을 받아야 했다.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죄인 취급 받는 사람들조차 그들을 경멸했다. 예수는 대놓고 세리를 제자로 삼음으로써 그 위선과 허위를 까발리고 환기한다.


오늘날 ‘바리사이인’은 기독교나 성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조차 ‘위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즉 바리사이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를 통틀어 가장 양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랜 외세 침략으로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헬라 문화의 유행은 상류층에 만연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헬라식 운동경기 구경을 위해 제의 시간을 바꿀 정도였다. 성전 지배세력이자 귀족계급인 사두가이파는 로마와 야합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렸다. 대제관의 임명권도 이미 로마가 갖고 있었다.


바리사이이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전통이 완전히 결딴나려는 그런 상황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이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모든 이방 문화로부터 이스라엘을 분리시켜 그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인들은 사두가이인들이 장학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인민들은 로마와 야합하고 타락한 사두가이인들을 존경하지 않았지만 바리사이인들은 존경했다. 바리사이인들은 오늘 윤리적이며 정의감에 넘치는 시민운동가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 사회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하느님이 주신 율법, 즉 토라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바리사이인들은 토라를 분석해서 일상생활의 모든 세세한 부분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바리사이인들의 율법주의는 그 자체론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의무요 자부인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인민들에게 율법주의는 재앙이었다. 그 세세한 율법을 다 지키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훌륭한 바리사이인들 덕에 인민들은 ‘죄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인민들은 그런 현실을 체념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지켜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로 그 ‘죄의식의 체제’에 주목한다. 예수는 그 체제를 깨트리기 위해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다.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예수는 오로지 율법을 잘 지키는 의로운 사람들에게만 하느님의 사랑이 닿는다고 생각하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는다. 예수는 하느님의 관심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먹고 살기 위해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에게 있음을 선포한다.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고 기존의 모든 가치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재정리되어야 한다.


(...)


사람은 아무하고나 밥을 먹지 않는다. 식사 약속엔 엄격한 사회적 맥락에 들어 있다. 식사에 초대하는 건 그 사람을 내 사회적 관계와 질서 속에 들이는 일이다. 이를테면 한 아버지가 마땅치 않아하던 아들의 여자 친구를 식사에 초대했다며 그건 단지 함께 끼니를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둘의 교제를 허락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물며 고대사회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 식탁 교제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에 속했다. 누구와 먹는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 따위는 곧 사람의 신분과 명예를 표현했다. 그래서 점잖은 사람들은 절대 죄인들과 식사하지 않았다. 그들과 식사하는 건 자신을 더럽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세리나 죄인들과 기꺼이, 아니 보란 듯이 어울려 식사를 했다.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담소할 때 예수는 죄인들과 어울려 유쾌하고 떠들썩한 식사를 했다. 예수는 식탁 교제의 법칙을 해체함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한 번 선언한다. ‘하느님은 고상하고 훌륭하다 칭송받는 사람들만 가까이 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천대받고 멸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명령이라 주장되는 율법에 의해 삶이 옥죄어진 사람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분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식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천박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의 식탁에서 비로소 인권을 가진 한 인간이 되었다. 예수의 식탁에서 기존의 가치관과 위계는 모조리 전복되었다. 말하자면 예수의 식탁은 ‘선취된’ 하느님 나라의 풍경이었다.


(45-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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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호수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로부터 큰 무리가 따랐다. 8 또한 유다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아, 요르단 강 건너편, 그리고 띠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큰 무리가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을 전해듣고 그분께 왔다. 9 그러자 군중이 당신을 밀어붙일까봐 당신을 위해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0 사실 그분이 많은 이들을 낫게 하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을 만지려고 그분에게 밀려들었던 것이다. 11 또한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자 그분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자 그분은 당신을 밝히지 말라고 그들을 몹시 꾸짖으셨다.


예수는 마지막 며칠을 제외한 공생애 기간 내내 갈릴래아 시골 마을로만 돈다. 예수의 고향인 나자렛에서 고작 6킬로미터 떨어진 세포리스는 원형경기장까지 잇는 번성한 그리스식 도시였지만 예수가 그곳에서 활동한 흔적은 없다. 예수의 활동 방식은 사회운동의 일반적인 속성을 거스른다. 모름지기 운동이란 그 이념이나 목적을 막론하고 더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 되도록 크고 번성한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예수의 독특한 활동 방식은 이른바 사회운동의 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깨우침을 준다.


운동이란 기존의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운동이 갖는 숙명적인 모순은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기존의 사회체제와 그 사고방식에 이미 깊이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운동의 외형적 성장, 즉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조직이 커지는 것을 운동의 성장과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런 외형적 성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두 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하나는 외형적 성장과 운동의 정체성의 훼손이 비례하는 경향이다. 또 하나는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기존의 사회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운동의 껍데기는 커졌지만 정작 운동의 알맹이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 비대한 운동 조직이 사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운동 조직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운동의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예수는 애당초 운동의 외형적 성장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예수는 오로지 제 운동, 즉 ‘하느님 나라 운동’의 본대 목적과 내용에만 집중한다. 예수는 시종일관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 즉 고통 받는 인민들을 찾아다니며 하느님의 위로와 초대를 전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예수가 갈릴래아 시골 마을로만 돈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그곳에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흐트러짐 없는 활동은 결국 그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팔레스타인 전역,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지역뿐 아니라 요르단 강 건너편 이방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지금 여기에서 고통 받는 사람과 죄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라는 예수의 말은 혁명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이해에 의해 자칫 오해될 수가 있다. 예수의 말은 고통받는 사람과 죄인들이 지배계급이  리던 부와 권력을 빼앗아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그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세상이다.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우애에 의해 운영되는 세상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고통 덕에 안락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인권을 회복하는 일을 기초로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회복이 세상의 회복이며, 그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도정에서 주인공인 것이다.


더러운 악령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소리 질렀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시점상의 혼란’을 줄 수 있다. 「마르코복음」은 AD 70년경, 기독교의 교리나 신학의 기초가 만들어진 후 쓰였다. 「마르코복음」은 이미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는 시각에서 쓰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활동했던 당시에 예수는 전혀 그런 사람으로 여기지지 않았다. 예수는 기껏해야 랍비 혹은 세례자 요한의 뒤를 잇는 예언자로 여겨졌을 뿐이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전제하고 복음서를 읽는 건 예수의 절절한 삶을, 다시 말해서 복음서를 읽는 이유나 가치를 내팽개치는 일이다. 복음서는 ‘한 평범한 시골 c jd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되었는가’를 증언한 책이지 ‘하느님 아들의 인간 흉내 쇼’를 적은 책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독교 교회는 그 ‘시점상의 혼란’을 방기하거나 오히려 부추겨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신도들이 복음서를 읽으며 의문이나 토론 과정을 거쳐 예수에 대해 이해해하는 쪽보다는 무작정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하는 쪽이 신도들의 교회에 대한 복종심을 관리하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60-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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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 <리영희 프리즘> 서평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 『리영희 프리즘』서평, 그리고 나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나 그리고 나의 여자친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친구는 엄마가 하도 보채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했다지만, 나이가 올 해 스물여섯이나 먹은 성인이 제 얼굴에 칼 대는 일을 엄마가 하란다고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친구가 아무리 변명한다 해도 그 선택에 자신의 욕망이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믿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한번의 수술로 그간 우리가 지켜왔던 여성주의 운동의 대의를 배신한 친구의 선택에 분노를 터뜨리고 난 후에도 뭔가 개운치는 않았다. 나조차도 부지불식간에 그 친구에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보편이 될 수 없는 도덕률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식의 도덕률로 그를 욕한다면 알량한 대학 졸업장을 받아보겠다고 두 달간 토익학원에 시간과 돈 그리고 영혼까지 갖다 팔았던 나는 얼마나 정당한가? 냉정하게 말해서 그와 나의 차이점이라고는 노동시장에서 나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기계발의 기술을 외모에 까지 적용했느냐 안했느냐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나면 내가 감히 그 친구에게 들이밀은 도덕주의는 혹시 '꼰대스러운' 운동권의 자격지심의 발로는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대에 좌파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분열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의미"(한윤형, <냉소주의시대의 우상과 이성>, 206쪽)한다는 한윤형의 지적은 이미 그런 분열증 증세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는 의사가 작성해준 진단서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학생운동을 할 때, 우리는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과 경쟁교육을 비판하면서도 밀린 방세를 내기 위해 영수과외를 해야만 했다. 이쯤 되면 과연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MB교육인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에 세 번씩은 꼭 울어대는 내 배꼽시계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내 앞엔 지금 『리영희 프리즘』이란 책 한 권이 놓여져 있다. 70년대 대학생에겐 '스승'이었고, 그래서 프랑스 진보언론 르몽드로부터 '사상의 은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상징적인 지식인 리영희. 그는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쉼 없이 '몽롱한 의식에 끼얹은 찬물 한 바가지'같은 글들을 쏟아냈고, 그렇게 리영희로부터 세례 받은 청년들은 소위 '의식화'가 되어 80년대를 분노와 저항의 세월로 채워갔다.


2010년 3월 11일. 나는 리영희의 일생의 화두였다는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도 거의 대다수의 청년세대가 리영희를 모르고 리영희의 사상에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2010년 3월 11일에.



스승이 없는 시대, 우상맹목의 시대


지난 21세기의 첫 10년간, 우리는 확실히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았다. 70년대 대학생을 감화 받게 했던 리영희도, 80년대 대학생이 리영희를 경유하여 만난 마르크스도 우리에겐 없다. 91년 사회주의권 붕괴를 찍고 턴한 청년세대의 사상적 좌표는 그간 '모셔왔던' 스승들을 사정없이 패대기를 쳐대더니 결국 지금의 청년세대를 탈이념, 탈정치 그리고 냉소주의를 뼛속 깊숙이 받아들인 'Cool'한 이들로 성장시켰다. 그러는 동안 리영희가 치열하게 마주해왔던 군부독재라는 우상은 자본독재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지만, 우리는 이전 청년세대와는 다르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우상을 치열하게 대면하고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Cool'했기 때문에.


그러했기에 사르트르식으로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서 지식인 또는 그람시식으로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지식인은 소위 '꼰대'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는지.(이대근,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다>, 133쪽 참조) 어쩌면 우리에게 '지식인'은 특정한 기술(Technique)을 전수해주는, 이를테면 메가스터디 손주은 사장같은 사람이 아닌지.


그렇게 스승이 부재한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우리는 분명 고통스럽게 억압과 마주해야 할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탈정치'라는 이름으로 그 부담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부담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에 지금 무엇이 들어 앉아 있는가? 얼마 전 삼성 총수 일가를 비판한 책에 대한 광고를 거부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의 고위간부라는 사람들이 'Cool'하게 던진 말들 속에서 나는 그것의 실체를 본다. "삼성은 우리의 파트너", "삼성은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대상". 이미 우리시대 우상(偶像)이 되어버린 삼성은 그들에게 신문사 경영의 일부가 되었고, 리영희에겐 그것과 맞서기 위해 벼려내야 했던 무기였던 이성(理性)이 그들에겐 삼성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적응의 기술'이 되어버렸다. 이 '적응의 기술'이 시장주의를 통해 자유의 가면을 쓰는 과정을 안수찬 기자는 <진짜 기자의 멸종>이라는 글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렇게 억압과 마주해야 할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대신, '생각'을 잃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지만, 우리는 지금 확실히 의심의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병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5쪽 참조) 우상의 지배 하에서 작동되는 두뇌의 의식작용은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화학적인 생리작용과 다르지 않다. 화학적 생리작용으로만 유지되는 유기체를 우리는 '노예' 또는 '짐승'이라고 부른다.


확실히 이 구절은 아팠다. 너무 아파서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리영희는 사르트르를 인용해 자유의 의미를 절절하게 전했다. 사르트르는 독일 점령 하에 있을 때처럼 자유로웠던 예가 없었다고 했다. 일체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매일 정면으로 모욕을 당할 때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유라고 했다. 막다른 골목에 쫓겨 있었던 까닭에 거동 하나하나가 앙가주망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억압자에 저항함으로써 자유를 느꼈던 그에게는 저항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였다." (이대근,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다>, 144쪽)


나와 같이 범속한 인물이 저런 자유에 털끝만큼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심지어 앞에서 말한 '진보언론'의 간부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상과 이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우리 삶의 두 부분일 따름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그러나 나는 또 아프게 되새김질 한다. 나치 전범재판에 회부된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사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무'이다. 우상이 끊임없이 이성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둘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그 둘을 분리해내려는 고통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만 아이히만의 변종일 뿐이다. 아이히만은 가정에 충실했고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다만 너무 성실한 나머지 유태인을 살해하라는 우상의 명령에 대해 '사유'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친구에게 묻는다. 성실하게 일주일에 세 번 토익학원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유행에 맞춰 성형외과를 찾는 동안, 너는 얼마나 자유로웠냐고. 너는 얼마나 네 안에 자리 잡은 우상에 대해 사유했느냐고. 5.18의 시인 김남주는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은 맨 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라고 꾸짖었다. 시인 앞에 한 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스승 없는 시대를 함께 버텨내온 나의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만났을 때 김규항의 『예수전』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최근에 그 책을 접했다. 종교와 별 다른 인연을 맺지 않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친구였던 '최초의 사회주의자' 예수의 삶에 깊이 감동했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스승 없는 시대에 스승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는 사실에 감사했었다. 나는 여전히 나의 친구와 함께 사유하고 싶다. 자유롭기 위하여. 나의 이성과 육체 모두가 진정 자유롭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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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새의 선물> 발췌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편지를 가슴에 껴안고 즐거워하거나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악으로운 삶에게 들키면 안 된다. (310쪽)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거울처럼 조그만 이미지 하나가 파손되면 그것의 파문은 전체로 퍼진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미지가 일시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형렬은 지금까지 이모의 애교있고 순수하게만 보아왔던 면이 그처럼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여진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지도 모른다. 청순한 이미지 하나를 잃음으로써 이모의 순수함은 유치함으로 전락되며 진실함은 거머리 같은 아둔함으로 이형렬을 짜증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미운 정'의 깊이까지 가지 못하고 '고운 정'에서 끝나버린 숱한 풋사랑의 파국이기도 하다. (315쪽)

 

 

그제서야 나는 삶의 경고를 깨달았다.

경악한 나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남자 쪽으로 마구 달려가보았다. 그렇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모든 것이 명백했다. 그날 하모니카를 불던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었다. 허석이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염소의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내 사랑이 이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허석이 아닌 이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를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하모니카 아저씨가 말했다.

"너 하모니카 소리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몇 살이니? 귀엽게 생겨쑥나. 이리 가까이 와봐, 아저씨한테. 자, 어서."

제방길 옆에 문둥이가 산다느니 폐병환자가 산다느니 하는 말이 헛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뒤도 안 보고 도망을 쳐야 했다. 집에 가까이 와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에게 조롱당한 것이 분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는 나를 보면서 나는 아직 내게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남아 았었음을 알았으며 내 몸속에 물기로 남아 있는 그 환상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배설시켜 버리기 위해서 울 수 있는 한 실컷 울었다.

죽은 이선생님이 이런 얘길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기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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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강신주는 보기 드물게 친절한 철학 선생님이다. 그 동안 대학 새내기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입문서로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정도가 각광을 받아왔지만, 이 책 또한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얘들 몇을 빼놓고는 그다지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 2006년에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라는 책을 만나고 '요것 참 물건이 나왔구나'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이 책을 추천도 많이하고, 그래서 몇몇 얘들은 그걸 가지고 새내기와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랬던 강 선생께서 이번에 또 하나의 물건을 내놓으셨다. '시를 통한 철학읽기'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 싶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내가 원래 문학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닌데, 시는 더더군다나 인연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예전에 '투쟁 자료집' 만들때 빈 공간 채워 넣으려고 갖다 쓰던 브레히트나 도종환의 몇몇 구절 정도가 좀 인연이 있었을 뿐... 사실 시라는게 나같은 범속한 인간이 읽으면 '그래서 대체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오는게 대부분이어서 딱히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세계였다. 그런데 또 강 선생께서 친히 철학-삶-시의 삼각관계를 자연스럽게 풀어헤쳐주셔서 우리는 또 수줍게 시 속에서 나의 삶과 철학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게 된다.

 

일단 내가 이 책에서 소개된 책 중에 가장 맘에 든 시는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이다. 원래 김남주 시인의 직설적인 화법과 따가운 질책은 언제나 좋았지만, 이 시는 더욱이나 울림이 크다. 각설하고 감상을~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국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이 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사유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라는 명제를 꺼내드는데, 요즘 내 삶에서 그럴만한 계기는 딱히 없었지만 왠지 이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구청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만 보이면 공무원들을 말한다. "이 자식 이거 군대를 보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근면함은 무사유의 다른 표현이다. 군대는 무사유 속에서 근면함을 형성시키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악인이 될 수 있는 무사유의 일상성.

 

 

어쨌든 이 책은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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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독백 & 대사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이를 안고 있는 지금은 상당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몸 안에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정지오)

 

 

 

 

생각해보면 나는 순정을 강요하는 한국 드라마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 한번도 순정적이지 못했던 내가 싫었다. 왜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상대를 더 사랑하는 것에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뛰어오는 저 남자를 그냥 믿으면 되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

 

(...)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 남자에게 순정을 다짐했다. 그가 지키지 못해도 내가 지키면 그 뿐 아닌가. (주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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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명대사 와 독백

 

준영: 근데, 우리 엄마 만날 것 같았으면 나한테 정보를 좀 물어보지. 그러면 우리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말해줄... 아니다, 잘했어 잘했어. 집에 가질 말걸. 괜히 가가지고는 싫은 소리만 한 바가지 듣고.. 소화제 있어? 엄마네 집에서 먹은 밥이 체한 것 같애. (냉장고 앞으로 가서 물을 마신다.)

지오: 야, 준영아. 너 그냥 강준기 만나라.

준영 : 뭐?

지오 : 나 너 못만나겠다. 강준기가 그냥 만나잔다며. 그냥 걔 만나.

준영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식탁에 와 앉으며) 장난이 심하다.

지오 : 장난 아니거든.

준영 : 장난이 아니면 뭐야? 아무리 짜증나도 할말이 있고 못할말이 있는거야! 가뜩이나 짜증나 죽겠는데... 사람 성질 돋구고...

지오 : 그러니까 짜증나게 있지말고 가라고 새끼야!

준영 : 왜 소리를 질러? 소화제나 달라고!

지오 : 없어.

준영 : 우리엄마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제 알겠지? 내가 왜 그렇게 엄마를 피해 다녔는지.

지오 : 사람 쪼잔하게 만들지 마라. 니네 엄마때문 아니야.

준영 : 장난도 아니고, 엄마 때문도 아니면, 진심이란 거야?

지오 : 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났고, 우리 집은 너가 생각한 것보다 더 형편없다. 그리고 난 그 모든걸 굳이 뛰어넘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피곤하고 암튼.. 너는 나하고는 그만 보는게 나을 것 같다.

준영 : 또또 심각하게 나온다 또. 지겨워 진짜. 그놈의 심각병. 오늘은 자. 나도 피곤해. (현관을 향해 나감)

지오 : 키 두고가.

준영 : 뭐가 문제야?

지오 : 갑자기 너랑 나랑 무슨 대단한 사랑을 한다고 내가 이렇게 초라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무리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관둘라고.

준영 : 넌 가끔 정말 정말정말 이상해. 그거 알어? 보름 동안 24시간밖에 못자서 골이 딩딩 거려. 내일 얘기해.


(지오 나레이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구는 그것이 초라함의 문제이고,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어쩔수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데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준영이를 다시 만나면서 대체 내가 왜 예전에 얘랑 헤어졌을까, 이렇게 괜찮은 얘를... 과거에 내가 미쳤었나 싶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은 안했지만 천만번 다짐했다. 다신 얘랑 헤어지지 말아야지. 근데 또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내가 저질러 놓고도 눈물이 자꾸 나려고 한다. 난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것 같다. 그래도 난 준영이를 다신 안 만날 생각이다. 그게 내 한계래도... 이젠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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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눈물>, 그리고 공영방송 MBC를 지켜야 하는 이유

 

 

설 연휴 내내 <아마존의 눈물>에 빠져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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