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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기행

오랜만에 씁니다. 올해 일본은 태풍이 유난히 많습니다. 지금 나하(오키나와)를 지나 가고시마를 타고 북상하고 있는 23호가 11개쨉니다. 이번것도 세기로 치면 만만치 않은 놈(950hp, 중심부근 풍속 40m, 반경 260km의 초대형)입니다. 일본에서 태풍을 경험하면서 비도 비지만 바람이 참 무서운 에너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 시내에서 중요한 세미나가 있는데 집으로 돌아올 시간쯤 태풍이 도쿄인근을 통과할 듯 하여 걱정입니다. 자연의 힘앞에서 개기면 안됩니다.

 

지난 주말에 학회차 간사이(교토, 오사카)에 다녀왔습니다. 역앞에서 일회용 후지카메라를 사서 나름대로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화지 대신 씨디롬에 담아달라고 사진관에 부탁했습니다. 디지탈카메라 없어도 디지탈라이즈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도쿄에서 버스로 8시간을 달려 아침 7시에 도착한 곳이 아래 보이는 교토역입니다. 건물이 예술이었습니다만 제게는 화장실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1. 교토역

 

교토역 바로 앞의 길을 건너면 교토타워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탑만드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혹은, 가져왔다)는 사실을 일본에 와서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탑은 여러가지 상징과 기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권력, 위계 그리고 감시.

 

2. 교토타워

 

교토타워앞에서 버스를 타고 기요미즈테라(청수사)로 향한 시간이 7시 15분경이었습니다. 7시 30분경에 기요미즈테라에 도착해 그 때부터 오후 3시까지 중간에 우동 한그릇 먹는 시간을 빼고 계속 걸었습니다. 아래가 기요미즈테라입니다. 테라는 절을 뜻하는 일본말입니다. 사람들 모두 교토를 대표하는 명소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일본 건축의 정교함을 느꼈습니다.

 

3. 기요미즈테라

 

일본 사람들은 교토사람들을 기다오레(京は着倒れ) 오사카사람을 구이다오레(大阪は食い倒れ)라합니다. 매우 유명한 별칭인데요, 교토사람들은 입는것(옷)에, 오사카 사람들은 먹는일에 목숨을 건다는 말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교토에는 골목골목에 '패션'을 파는 조그만 미세(가게방)들이 무수합니다.

 

4. 교토의 골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이 남편을 위해 지었다는 고우다이지(저녁에 일본인 학자와 술을 먹는데 거기에 갔었다고 했더니 거친 영어표현으로 '니네 에너미 아니었어?'하는 바람에 술맛 확 가셨습니다. '상관없어 우리가 이겼으니까' 대답을 해 놓고 보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면 머하나...), 그리고 헤이안진구를 들러 테츠가쿠노미치(철학의길)이라는 곳에 닿았습니다. 

 

5. 테츠가쿠노미치(철학의길)

 

꽤 긴 산책로입니다. 철학자 같아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고 저를 비롯한 외국의 관관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산책길이었습니다. 옆에 보이는 물 안에살고 있는 조그마한 물고기들과 수초에는 때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중간에 긴가쿠지라는 또 하나의 절에 들러 물 한모금 하고 교토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6. 교토대학교

 

교토대학은 일본 진보 사상의 요람입니다. 20세기 초반의 유명한 마르크시스트들의 학문적 아지트 구실을 하며 일본적 맑시즘의 뼈와 피를 생산했었습니다. 사진의 우측 하단에 있는 넓은 판자위에 쓰여진 글씨들은 '혁명'(이거는 보이죠)...'적군파' 등의 단어들입니다. 음 여전합니다 그려.

 

7. 교토대학은 지금 몇시일까?

 

교토대학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오전 내내 걸은 곳 그러니까 기요미즈테라에서 교토대학까지는 교토시내의 동쪽 윙이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버스를 타고 좀 먼 곳으로 갔습니다. 버스로 30여분 떨어져 있는 서북쪽의 킨가쿠지(금각사)라는 절입니다.

 

8. 킨가쿠지(금각사)

 

금각이 보이시죠? 눈 요기나 해 두십시오. 사진에 절이 두개째이던가요. 실은 예닐곱개의 절과 진자를 들렀는데 다 빼버렸습니다. 킨가쿠지를 돌아 내려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굴복시키고 그 증거물로 지었다는 니조조(이조성)를 들러 본격적으로 시내를 돌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아래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9. 일본공산당교토부위원회

 

역사를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거미줄 같은 전선들 사이로 보이는 '아카하타(적기: 공산당기관신문)'의 붉은 광고판이 역사의 물을 먹은 탓에 선명함을 잃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해 보입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10. 붉은 벽돌의 일본공산당 건물과 '아카하타'

 

 

사진에 설명을 좀 더 붙여야 하는건데 여력이 없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조금씩 살을 얹도록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교토는 일본의 역사와 현재에서 매우 흥미로운 동네입니다. 메이지유신기 전까지 힘은 없어도 일본의 정신적 구심 구실을 한 왕의 거주지였으며, 지금도 교토교우엔(경도어원)내에 황궁이 있어 왕가의 사람들이 가끔씩 와서 자고가는 모양입니다. 아울러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지방)로 행정의 중심을 이전하기 전까지, 즉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치하던 전국시기 오사카와 함께 일본의 정치, 상업 그리고 권력의 중심이었죠. 지금도 그 역사의 나머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히노마루(일본국기)와 군주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쿄의 황궁을 교토로 이전해 역사적 상징으로 남기던가 아니면 없애버리자 주장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오사카편은 다음 기회에...

 

sabotage,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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