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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7/16
    주부의 증거
    너나나나
  2. 2006/07/16
    밥 맛 없는 날
    너나나나
  3. 2006/07/16
    1502호 목장
    너나나나
  4. 2006/07/16
    변화 혹은 발전 2
    너나나나
  5. 2006/07/16
    변화 혹은 발전
    너나나나
  6. 2006/07/16
    추억을 되살리며
    너나나나
  7. 2006/07/16
    격조있는 음식
    너나나나
  8. 2006/07/16
    혼잣말
    너나나나
  9. 2006/07/16
    '삐뽀삐뽀 119'의 인생
    너나나나
  10. 2006/07/16
    애기 재우는 법 연구 2
    너나나나

주부의 증거

아침에 미루가 자는 틈을 타서

교양있게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어~강서방인가? 나네.."

 

장인어른이셨습니다.

 

"아, 네 아버님, 웬일이세요?"

 

"오늘 애 보고 싶어서 갈 건데, 괜찮지?"

 

"네, 오세요..."

 

"오전 중에 일찍 가볼려고"

 

"네, 그러십시오"

 

오전이 다 갈 때쯤 전화가 다시 오셨습니다.

 

"거기 가서 점심 먹어도 되지?"

 

"...아, 네....저기, 지금 현숙이가 자고 있어서 저희들은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 알았어"

 

"그래서 지금 저희들은 밥 먹을 건데, 지금 출발하시면 1시간 쯤 걸리시잖아요, 그럼 저희들하고 식사 하시기가.."

 

"괜찮아, 그래도 거기 가서 먹지, 뭐"

 

 

아, 진짜...밀려오는 그 괴로움을 알만한 사람은 알겠죠?

 

 

아침에 반찬 없어서 조기 두마리 구워놓고, 콩나물 무침 해놓은 게 다였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두 분이 오시면 뭐라도 드실 걸 더 해놔야 하는데, 아, 정말...

 

이 때 마침 주선생님

충분히 주무셔서 만족스럽게 부은 얼굴로 나오십니다.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어쩌고, 저쩌고~투덜 투덜 투덜~~

그냥 식사하시고 오시면 안되나? 드시고 오시면 좋을텐데..

지난 번에 우리 고모는 저녁 먹고 왔잖아. 얼마나 좋아.."

 

주선생님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우하하하하~"

 

"왜 웃어~~??"

 

"너, 인제 주부가 다 됐구나. 그런 거 여자들이 고민하는 건데...히히히"

 

...

 

다행히 두 분은 오실 때 닭을 한 마리 사 오셨고,

계시는 동안 미루도 봐주셔서

제가 좀 편했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장인'어른'이시자 가끔은 장인'양반'으로도 불리는 분은 편히 쉬다 가셨고

장모'님'은 오셔서 계속 일만 하다 가셨습니다.

제가 편했던 건 이 분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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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맛 없는 날

"이거 중국산이다"

 

아침에 시장 가서 오징어 젓갈을 사왔었습니다.

 

밑반찬도 떨어지고, 반찬할 시간은 없고 해서

'하나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주는 반찬 없나..'생각 하다가

새빨갛게 잘 담궈진 오징어 젓갈을 사왔었습니다.

 

이 젓갈을 맛 보더니

주선생님께서 딱 한마디 하신 겁니다.

 

"어떻게 알어?"

"여기 들어간 고추가루, 이거 첫 맛이 톡 쏘잖아...?"

"응" "

"그러면 중국산이야~"

 

아...갑자기 확 열받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 내가 즐겨 사먹던 시장의 반찬들..

그거 상당수가 중국산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옛날에 중국산 고춧가루 빨갛게 만들려고

먹으면 죽는다는 공업용 색소 넣은 일이 있었는데

이게 또 시간 맞춰서 제 머릿 속에 떠오릅니다.

 

안 그래도 베란다에다 심혈을 기울여서 키우던 고추가

벌레 먹어서 다 죽게 생겨가지고 우울해 하던 참인데..

 

 

갑자기 미루가 학교 다닐 때쯤엔 학교 급식이 좀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상급식, 직영급식, 좋은 우리 농산물...이게 아마 학교급식 고치자는 뜻있는 사람들의 요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중에 직영급식 하나만 이번에 법 통과 됐죠.

 

그 동안

 

3일 전쯤이면 맛있게 먹었을만한 각종 재료로 음식 만들어서

학교 급식으로 내놓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얘기를 학교에 있는 친구들한테서 들었습니다.

 

가끔씩은 철사와 바퀴벌레 같은 것으로 맛의 포인트를 살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이것 말고도 재료는 다양했겠죠.  

 

철사 같은 것은 주로 차력사들이 드시는 건데

애들한테 먹이는 걸 보면

정부가 애들을 아주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반면에 반찬이랑 밥하고 같이 나오는 국은

대부분 가을하늘 보다도 맑은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 때 식당에서 설렁탕에다 우유 붓는 장면을 목격했었는데

요즘 학교에서는 그런 짓도 안 했나 봅니다.

 

애들 먹는 국이 하늘 보다는 맑아야지...

 

암튼, 여러모로 밥 맛 없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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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호 목장

저희 집은 아파트 1402호이고 바로 위층은 1502호입니다. 그 위층은 옥상입니다.

 

1502호는 목장입니다.

평소 우리집 천장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말 목장입니다.

 

최근에 밤 9시면 미루를 재우는 데 성공하는 우리를 위해

1502호는 이런 소리를 들려줍니다.

 

"쿵! 쿠쿠쿠쿠쿠쿠쿵쿵쿵쿵!!!"

 

"두두두두둥...쿵쿵쿵쿵쿵~!!"

 

"쿵쿵쿵..쿵쾅쿵쾅..쿵쿵쿵"

 

 

말들이 넓은 목장을 뛰어다니는 소리입니다.

얘네들은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걷고 평소에는 뜁니다.

 

언젠가 한번 찾아갔습니다.

얼굴은 알고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1502호 문이 열리자.

 

자기 들이 더 애처로운 얼굴을 한 엄마, 아빠가 현관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는,

"당신들의 고통을 충분히 알아요. 하지만~"이라고 써있었습니다.

 

그 엄마, 아빠 사이를

말 한마리가 화다다닥 비집고 나와서는

 

"아저씨~!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습니다.

 

"푸~!푸~! 히힝~히히힝" 이렇게 들렸습니다.

 

눈망울은 천진난만한 말의 눈망울 그대로였습니다.

 

"11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잘까요?"

저는 아무 실효성 없는 요구를 하고 내려왔었습니다.

 

 

아까 주선생님과 의논했습니다.

말들 때문에 요새 점점 더 예민의 강도를 더해가고 계신 주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너무하지 않어? 쟤네들 어떻게 할까?"

 

"그러게...애들인데 어떡해..."

 

"그래도 대책을 세워야지..."

 

"뭐, 좋은 수라도 있어?"

 

 

이 말에 주선생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도 옥상 가서 뛸까?"

 

.

.

.

 

언제나 제 상상 밖에서 노시는 주선생님이십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작전입니다. 깔끔합니다.

 

혼자 옥상 올라가서는 외로울테고

둘이 올라가야 할텐데

 

미루는 집에 두고 가야할 지가 고민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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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혹은 발전 2

나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선생님도 발전하고 계십니다.

 

"인제 발톱도 깎을 수 있어~!!"

 

오늘 주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임신 하고 배가 한참 불렀을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기 발톱을 자기가 못 깎는다는 것이었는데

인제 그게 됩니다. 발전입니다.

 

조금씩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주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아..그리고

생각난 김에 저의 발전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써야겠습니다.

 

 

1. 밥 짓는 양

 

-아주 어릴 때: 내가 밥 안 지었다

 

-초딩 때: 역시 나는 밥을 안 지었다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집에 가면 언제나 밥이 있었다

 

-대학  때 잠시: 밥을 지었다. 한 달에 두 번 쯤

 

-30살  넘어서: 다시 아예 밥을 안 지었다. 나가서 사 먹으니까

 

-결혼 후: 밥을 지었다. 한 번에 며칠씩 먹을 수 있는 양을.

밥 지어진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표시하는 우리집 밥통은 '99'까지 표시되는데 가끔씩 다시 '1'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둘다 너무 바빴다

 

-임신 후: 임산부한테 오래된 밥 먹일 수 없어서 한 이삼일 먹을 분량만 지었다

 

-요새: 새 밥이 좋아서 한번 할 때 많이 안 한다

 

 

 

2. 밥 먹는 곳

 

-아주 어릴 때: 이 나이에 집에서 안 먹을 수 없다

 

-초딩 때: '아주 어릴 때'나 똑같다. 학교에선 도시락을 먹었다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집 밥 아니면 도시락

 

-대학  때: 학교에서 사 먹고, 밖에서 사 먹었다. 하숙할 때는 물론 하숙집에서 먹기도 했었다. 

 

-30살  넘어서: 사무실 근처 식당 중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다녔다

 

-결혼 후: 집에서 하는 밥이 깔끔하고 맛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임신 후: 한 푼이라도 아낄려면 웬만하면 집에서 밥 해 먹어야 한다

 

-요새: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외식하는 게 소원이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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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혹은 발전

어젯밤엔 미루가 유난히 많이 보챘습니다.

재우는 데 좀 고생했죠

 

며칠간의 훈련으로 재우는 데 이제 좀 자신이 붙었었는데

자신감 100%에서 70%쯤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미루는, 간밤에 과음한 아저씨 폼으로 널부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어젯밤엔 보챈 게 아니라 꼬장을 부린거였습니다.

 

어쨌거나 애를 재우는 우리의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것 말고 제 개인적으로 발전하고 있는게 꽤 됩니다.

 

남들은 그냥 변한 거라고 할 지도 모르겠는데

저한테는 발전입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봤습니다.

 

 

1. 반찬 먹는 기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주는 반찬

 

-초딩 때: 새 반찬, 맛있는 반찬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반찬

 

-대학 때 잠시: 그런 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30살 넘어서: 몸에 좋아 보이는 반찬,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음식점에서 주는 반찬

 

-요새: 남으면 귀찮은 반찬, 상에 몇번 올라와서 빨리 해치워야 하는 반찬

 

 

 

2. 밥 먹는 양

 

-아주 어릴 때: 주는 대로 받아 먹었다

 

-초딩 때: 어른이 더 먹으라면 더 먹었다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실컷 닥치는 대로 먹다

 

-대학  때 잠시: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볼 요량으로 소식이 몸에 좋다고 해서 조금씩 먹기도 했다

 

-30살  넘어서: 먹는 게 밥 밖에 없어서 끼니 때만 되면 열심히 먹다

 

-그 후 한동안: 다시 소식을 하다. 오래 산다고 해서.

 

-요새: 남은 밥 처리하기 귀찮으니까 다 먹는다. 밥통에 남은 밥이 다음 끼니에 두 사람 먹을 양이 안되면 다 꺼내서 먹는다. 혹은 저번 끼니에 남겨놓은 찬밥도 있으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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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살리며

집안 일 중에 가장 정이 가는 일 중 하나는

쓰레기 치우는 일입니다.

 

미루가 쏟아내는 기저귀 때문에

매일 매일 쓰레기 봉투 10리터 짜리가 하나씩 나갑니다.

 

이왕이면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꽉꽉 채워서 내놓으려고

저는 아주 드물게 제 두꺼운 다리의 덕을 봅니다.

 

쓰레기를 다리로 꽉꽉 누르면

방 하나 가득 늘어놓아도 남을 기저귀가 그 작은 봉투에 다 들어갑니다.

 

요즘엔 봉투에 쓰레기를 좀 더 담아볼까 하는 욕심에

쓰레기 봉투 중 빈곳에 쓰레기를 몰아넣는 정교한 작업은

비닐 장갑을 끼고 손으로 합니다.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구로구청 청소과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생활을 대신하던

그 가슴시리던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이른바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몰래 숨어 있다가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느닷없이 나타나서 목에 힘주고 잡아내는 그런 게 아니라

 

규격봉투에 안 넣고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찾아내서

과태료를 물리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규격봉투에 안 넣고 버린 쓰레기는 대부분

골목 구석에 검은 비닐 봉지에 싸인 채 버려져 있었고

우리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바로 그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고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주소, 이름 같은 게 적힌 편지 봉투, 각종 고지서 같은 걸 찾아내기 위해서였죠.

 

혹시 지금도 길 가다가

짙은 초록색의 제복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기 뒤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쓰레기 공익'입니다.

 

옷도 꼭 소방관 아저씨들 옷하고 똑같아서

한번은 역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기 뒤지는 데

길가던 꼬마애가 엄마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걸 들었었습니다.

 

"엄마, 왜 소방관 아저씨가 쓰레기를 뒤져?"

"응, 재네들은 공익이야.."

 

그때 같이 있던 동료 공익들 모두 한데 부둥켜 안고 울뻔 했습니다.

 

엄마가 '너는 저렇게 되면 안된다'는 식으로

애한테 말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당해본 사람은 압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구로구 일대의 쓰레기를 뒤지면서 다녔습니다.

 

때로는 서초구 쓰레기 공익은 월급이 18만원인데

우리는 가난해서 10만원이라더라는 소식을 듣고

더 비참해하면서

 

때로는 우리를 주차단속 공익으로 오해하고

불법주차했던 아저씨들이 급히 차를 빼면

 

그 옆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그 때 맡았던 쓰레기 냄새는

특이하게도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치우는 일이 집안 일 중에서도

특히 정이 갑니다. 기분은 찝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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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있는 음식

재료는 이것 저것 있는데,

뭔가 딱히 할 음식이 생각 안 나서 

샐러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감자 삶아 놓은 것

고구마 쪄놓은 것을 으깨었습니다...사실은 짓뭉갰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오이를 좀 길게 네모나게 잘라서 올려놓았다가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뭉갠 감자, 고구마와 마구 섞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자랑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옆에 소스를 가져다 놨습니다.

 

식사가 시작되고, 별 말없이 샐러드를 드시던 주선생님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습니다.

 

"감자, 고구마를 으깼는데 그 안에다 오이를 이런 식으로 짤라 넣으면 보기가 안 좋잖아."

 

"왠지 좀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애, 그러니까 감자, 고구마를 한 웅큼씩 떼어서 손으로 둥글게 만들고 그 옆에 오이를 적당하게 얹어 놓은 다음 소스를 뿌려 놓으면 좀 더 격조 높은 음식이 되지 않을까?"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지, 쫌'

 

그리고, 이 생각은 곧바로 제 입을 통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응, 알았어"

 

그 이후로 저는 두부조림을 해도,

그냥 접시에 마구잡이로 안 올려놓고 원을 그려가며 놓습니다.

 

샐러드를 만들어도 양배추에는 방울토마토를 올려놔야 뭔가 완성도가 높다면서 집착합니다.

 

먹으면 어차피 배 속에서 섞이긴 마찬가지고

 

단백질은 단백질대로, 탄수화물은 탄수화물대로 그리고 지방은 지방대로

각자 알아서 소화흡수될텐데 아무튼 이런 것에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하긴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름, 형식, 겉모습..이런 게 중요하기도 합니다.

 

몇 달 전에 프랑스 정부가

26살 미만인 사람들은 2년 내에서 마음대로 자를 수 있도록 하는

최초고용계약법안을 만들겠다고 하자

 

학생들이랑 노동자들이

'크리넥스 법안 반대'를 외치면서 싸워

철회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법은 자신들을

한번 쓰고 버리는 크리넥스로 취급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한국 정부하고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상정해서 계류 중인 비정규보호법안은

26살 미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2년 내에 맘대로 자르는 내용도 있고

또 다른 내용도 포함해서 어쨌든 비정규직 양산하는 건데,

 

이름이 '보호법안'이라

사람들이 왜 빨리 처리 안 하나 궁금해 하고

이거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단체사람들을 도리어 욕합니다.

 

아..뭐든 쉬운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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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사람에겐 확실히 철학이 중요하고, 또 습관이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다 처지가 따르고

그래서 똑같은 일에도 반응은 제각각 입니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일에 대해서 옛날이 다르고 지금이 다릅니다.

 

며칠전

햇볕이 아주 좋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장마철이라 습도도 높고 눅눅해서

매일매일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었는데

오랜 만에 볕이 쬐니까 기분이 꽤 좋아졌었습니다.

 

옛날에 햇볕이 좋은 날이면

저는 항상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이야, 오늘 같은 날 소풍 가면 딱 좋겠다"

 

물론, 제가 항상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훨씬 전에

한참 열혈 청년이었을 시절에는

날씨 같은 것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역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너무 창대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햇볕 좋은 날

두부 사러 가면서 저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 햇볕 좋네..빨리 가서 빨래 널어야지.."

 

2-3일쯤 비가 와서 빨래감은 넘치는데

빨아서 널어봐야 마르지도 않을 거고

 

벌써 며칠째 건조대에 그대로 걸려 있는 빨래도 많아서

골치가 아플려고 하는 참이어서

 

쫘..악 내려쬐는 햇볕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점점 주부가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대충대충 하는 것 보다는 이러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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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삐뽀 119'의 인생

요즘 젊은 엄마아빠들이면 다 산다는 삐뽀삐뽀 119

저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뿌듯한 일입니다. 

 

이 책을 선물 받고 처음에는 참 열심히 봤습니다.

 

이 책을 밑거름 삼아

애를 아무 탈 없이 잘 키우겠다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요새 이 책이 약간 찬밥입니다.

쇼파 옆에 고이 모셔졌던 책이

이제 여기저기 막 뒹굴어 다닙니다.

 

모유수유할 때 엄마의 자세를 완성시키는

발받침으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한참 무관심한 후엔

재활용쓰레기 모아놓는 곳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두꺼운 책은 예로부터 다양한 용도로 쓰여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대표적인 '두꺼운 책'이었던 '전과'는 학습참고서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걸 친구 머리 위에 올려놓고 때리면,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 친구 머리에 가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뭔가 심오한 물리학적 진실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이상 뭘 더 생각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쉬는 시간 마다

한손으로는 전과를 들고

또 한손은 불의의 공격을 막기 위해 머리 위에 얹고

친구를 쫓아 마구 뛰어다녔었습니다.

 

암튼, 삐뽀삐뽀119의 인생은

옛날 '전과'하고 조금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제 인생하고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애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어느새 제 손에는 그 책이 들려 있습니다.  

 

미루 땀띠가 좀 심해졌거나, 얼굴이 푸루둥둥 해졌거나, 똥 색깔이 예사롭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그 책을 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책을 봐도 잘 모르겠다면서 담주에 병원 가면 물어보자고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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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재우는 법 연구 2

애기 재우는 법을 부단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 단계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에 있는대로 하는데 잘 안됩니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방법을 찾아보자는 심정에서

인터넷을 검색해봤습니다.

 

'애기&재우는 법'

이렇게 검색했습니다.

 

여러가지 정보가 떴습니다.

 

애기 재우는 법하고 관계 없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술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 재우는 법'도 있었습니다.

 

애기 재우는 법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은

그냥 울리라는 것 보다는 울면 안아주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대신 3개월까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3개월까지지?'

 

뒤에서 제가 갸우뚱하는 모습을 본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3개월까진 줄 알아?"

무서운 독심술이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모..몰라.."

 

3개월 이후 아이들의 심리에

특정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저는 직감했습니다.

 

따라서 안아주는 것 보다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유아교육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또한 했습니다.

 

저는 차분하게 주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로 맘먹었습니다.

 

 

"3개월 지나면 무거워서 못 안아줘~!"

 

.

.

.

 

저는 뭔가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의 상태와 함께 키우는 사람의 상황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 산 책에도,

 

산모는 아이에게 휘둘려서는 안되며 자기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그 동안 애만 신경썼지 산모 신경을 많이 못썼습니다.

앞으로 주선생님한테도 좀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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