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내와 새끼들과 함께 손잡고 어디로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고 싶다.

그런데, 왜 그게 안되는 것일까? 왜 그걸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1. 어릴때를 돌아보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어딜 같이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다. 몇차례 있었다. 처음에 아버지만 서울에 와 계시고 그다음에 내가 왔는데, 아버지는 그 여름에 나를 데리고 창경원 구경을 시켜주셨다. 그때 그 옆에는 모르는 젊은 여자가 같이 있었는데, 아버지 회사 동료였는지, 아니면 애인쯤 되는 여자였는지 모르겠다.

하튼, 그리고 중학교 다닐때 언젠가도 인천의 작약도에 같이 놀러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 따라서 동생들과 같이 가서는 수영복도 없이 그냥 하얀 팬티만 입고 더러운 바닷물(70년대 초반에도 인천앞바다 물은 더러웠다.)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생각이 난다.

몇번 아버지를 따라서 놀러간 적은 있었지만, 중학교 이후에는 놀러 같이 간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버지 따라서 다니는 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근엄함에 눌려서 착한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고,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아들을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소개했지만, 그 당사자인 나는 정말 싫은 노릇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심지어 결혼해서도 아버지는 내게 '큰애야 같이 가자'하면 나는 아무소리 없이 따라 나섰는데, 이건 연로하신 친척들에게 인사가는 거라든지, 돌아가신 분들을 조문한다든지, 병원에 계신 어른들에게 문병간다든지, 아니면 친척들 제사에 간다든지.. 하튼 내가 하고 싶은 일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재미 없는 일이었다.

스무살 넘어서부터는 아버지가 허리 아프시다고 묘사에 안가시고 큰아들인 나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나는 내 부모가 아닌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소에 아들 대신에  손자로서 항상 묘사를 지내러 가고 있다.(할베, 할메는 좋아하실라나.... 장손하나 잘 뒀다고..)

그러니 애들이 부모를 따라 다녀서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을 듯하다.

 



2.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께 부모님을 보인다는 것은 왠지 챙피스럽게 느껴졌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슨 도둑질을 하신 것도 아니고, 고생스럽게 우리들 공부시키느라고 일하셨지만, 왠지 다른 돈많은 부모님들보다 못난 거 같고, 또 벼슬 높은 친구들 부모님보다 못난 거 같고, 그래서 부모님이 학교나 친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싫었다. 챙피했다.

특히 중학교 때 제법 산다는 친구들 집 몇군데 가 보고서는 그게 부럽기도 하고, 부모님이 친구들이나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심해졌다.

나이 들어서도 마찬가지 였다. 항상 '중심부'에 있지 못하고, '주변부'에서만 맴돌아 왔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뭔가 꿀리는 듯하고, 뭔가 나는 모자라는 듯하고, 그래서 주눅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을, 형제를, 가족을 남들에게 드러내 놓는 것은 더 쪽팔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학교에서 배우거나, 심지어 책으로 나오는 부모님들의 얘기를 보면 우리 부모님은 그 10분의 1도 쫓아가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책으로 자기네 어머니 자랑이나 해 대는 건 다른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잘난 어머니들이나 내 어머니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하면서  '훌륭한 부분'만 멋지게 표현하면 되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내 부모님들도 훌륭한 부모님이라는걸 알고 느끼게 된 건 정말 나이가 들어도 한참 들어서 였다. 어디서나 우리 부모님도 떳떳한 삶을 사셨고, 다른 누구의 부모님에 모자라지 않는다고, 아니 더 나은 분이라고 말할수 있게 된 것은, 내 새끼들이 한참 커 가면서 속을 썩이기 시작 하니까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3. 결혼하고서 처음 몇 해 동안은 아내와 애들과 함께 어디든 가려고 노력했다. 난지 얼마 안되는 큰놈을 들쳐 업고서 놀러 가기도 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지 함께 다녔다. 언젠가 과기노조 창립 기념 등반대회에 두 놈을 다 데려 가서는 작은놈은 걷지도 못하는 놈을 주위 사람들에게 업히고 무동태워서 가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시켰는지..

그리고 회사사람들 놀러 가는데 춘천으로 함께 놀러 가다가 기차에서 통로로 담배피러 간다고 작은 놈 손잡고 통로로 나서다가 작은 놈 손이 기차 문에 끼여서 애 손을 못쓰게 만들뻔 했던 적도 있었다. 중간에 청평에서 내려서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청평에서 도시락 까먹고 따로 놀다 온적도 있었다.

안양에 살았을때 애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데, 그때도 산에 다니는게 좋아서 관악산으로 항상 갔는데, 두 놈 손을 잡고 관악산에 올랐다. 초등학교 1, 2학년인 큰 놈은 그 먼 길을 불평없이 잘 걸었고, 길이 없는 곳을 걸어서 내가 힘들어 하는데도 그 놈은 싫은 내색 하지 않아서 얼마나 기특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여름철에는 아파트 뒷산에서 잠자리 잡기며, 공차기며, 공던지기, 배드민턴이며, 애들이 원하는 것은 안해준 것이 없을 만큼 열심히 놀아 주었다.

그리고 애들은 정말 귀엽기도 하고, 새끼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 즈음에도 산오리는 노동조합 일에 빠져서 맨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수련회다 집회다 해서 집을 비운 적이 많지만, 그런 와중에도 열심히 놀아 주려 했고, 애들도 여기에 맞춰서 잘 놀아 주었다. 그게 10살 즈음 까지다.

 

4. 어느 순간부터 애들이 함께 놀러 가는 것을 싫어 했다. 전철과 버스를 타지 않고 승용차에 태워서 편하게 가는데도 한 30분만 지나면,

"아빠, 아직 멀었어?"

"거기 꼭 가야 돼?"

"뭐 재미 있는 일이 있어?"

하면서 귀찮아 하고, 아예 차를 타지 않으려 하고, 차만 타면 그저 잠들었다.

또 어딜 가서도 내내 얼굴에 똥 씹은 얼굴로 싫은 표시를 하고 다니고, 조금만 지나면

"아빠, 빨리 집에 가자" "언제 집에 가?" 하면서 보채기 시작했다.

친구들 모임이든, 친척들 모임이든, 어디로 놀러가든, 마찬가지였다.

집에는 게임기가 생겼고, 또 주위의 친구들 집으로 가든지, 아니면 친구들을 불러서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걸 못하게 두드려 패 가면서 아빠가 가는 곳에, 엄마가 가는 곳에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냥 냅두면 난장판을 만들지라도  엄마 아빠 찾지 않고 잘도 놀았으니까..

그리고 먹는 것도 스스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든가 가게에 가서 뭔가 사먹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4 학년 정도면 이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정도가 된다.

 

5.컴퓨터가 나오고 인터넷이 되고, 더 재밋는 게임과, 채팅이 생겼다. 당연히 애들은 자기들의 세상에 빠져 들었고, 그 세상에 부모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그리고그 곳에 부모들은 끼어들어서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세계에서 놀고 싶은데, 부모들이 그걸 방해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부모의 과잉간섭이리라...

중고등학생이 되었기에, 이제는  저들 나름대로의 생각도 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어딜 가든 말든,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고, 심지어는 일년에 서너번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가는 것도 가라 말라 강요하지 않았다. 가고 싶으면 갈 것이고 싫으면 말겠지...

그게 어쩌면 큰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애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몸집만 커졌지 생각은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마음은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해야 할 일 등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편한대로, 자기 이기대로 표현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태에는 엄마가 상당히, 거의 대부분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그가 다른곳을 빠지는데, 어쨌든, 이래서 애들은 완전히, 확실하게 아빠와 엄마를 따라 나서지 않게 되었다. 따라 나서는 경우가 있긴 한데, 지난 일요일 엄마는 동명이와 같이 오후에 나가서 쇼핑하고 저녁먹고 들어왔다는데, 생일선물로 신발과 가방을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게 생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일에 나설리가 없다는 것이다.

 

6. 아내와도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초창기에는 아내와 어디든 같이 가고 싶어 했고, 짧은 기간은 그렇게 하기도 했다. 아내가 좋기도 하고, 같이 다니면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항상 부부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시댁에 가면 시댁식구들 문제로 집에 들어와서는 싸움이 붙게 되고, 남편 친구들 부부 모임이 있어서 같이 가면 다른 부부들 하는 꼴에 눈꼴이 시거나, 다른 아내가 내놓는 남편과 자식 자랑 등 잘난체를 듣고 있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또 아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 내가 갔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디가서나 말하고 행동하듯이 별로 스스럼 없이 말한다. 또 아내자랑이나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남사스럽게 자랑하지는 못하고, 그냥 우스개소리를 하거나 집안얘기를 하면 그런 얘기를 왜 남들에게 하느냐고 또 짜증을 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부가 함께 어딜 가는 것은 줄어들었고, 이젠 같이 가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같이 움직이는 건 명절과 제사, 또는 부모님 생신때 부모님 집으로 가는 일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싸움과 투쟁이 있었다. 그 투쟁의 결과와 17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적당한 선에서 암암리에 타협한 결과가 오늘의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현재의 상태에 서로 만족한다고 말하고, 아내는 진심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산오리는 만족한다.

 

혹시 친구들의 모임에서 부부동반 모임을 제안하면 산오리는 그런다. "그럼 산오리는 안나올 것이다" 부부는 함께 해야 할 공간이 집이라는 곳과 가족이 있다. 그리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아내나 남편, 또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서 만나는 모임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 모임이 애당초에 부부와 자식들이 함께 만날 것을 전제로 모인 것이라면(예를 들어서 가족들이 함께 하는 나들이 모임 이라든지...) 당연히 가족이 함께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모임이나 외출에서는 당연히 부부와 자식들은 서로가 개별적으로 취급받아야 할 자유가 있고,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자식, 이런 식으로 취급되거나 불리워 지는 것은 적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서 이런 자유로운 관계가 또 어떻게 재설정될지는 산오리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부부는 서로 밖에 나가서는 같이 다니지 않는 것에 거의 불만이 없다. 물론 새끼들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긴 하지만, 얘들은 아직 청소년이라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흐이그... 너무 길게 썼나?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날때마다 대충대충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그러다 보니 일관성도 없는 글이 되고 말았네... 더 생각나면 다시 추가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6 23:48 2005/04/26 23:48
Tag //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sanori/trackback/197

  1. kanjang_gongjang 2005/04/27 00:5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랑이라 함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보았는데 현실은 다르다는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군요.
    늘 그렇지만 동질성이라는 말로 집단을 전체를 하나로 묶는 것도 문제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핵가족화 시대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고심하게 되는 글이네요.
    가족이라는 개별이 우리로 묶기는 것은 문제이지만,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볼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라는게... 무겁게 만드네요.
    고민해보지만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 같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2. hongsili 2005/04/27 04:2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 서로가 개별적으로 취급받아야 할 자유가 있고..." 오홋. 바로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썰렁했던 옛날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단란한 가족" 개념 또한 미국사회을 벤치마킹한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일부가 아닐까.. 이런 거창한 의심까지... ㅡ.ㅡ

  3. 개울 2005/04/27 14: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 살아오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글이네요.
    가족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가장 가깝지만, 그만큼 멀 수도 있는 사람들이지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유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강요당하는 면도 있고... 뭔가 복잡한 감정이 얽혀서 정리하기가 어렵네요.

  4. 바다소녀 2005/04/27 17: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삶이네..

  5. rivermi 2005/04/27 22: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결혼은 어려워..암암..
    근데 뭐든 다 어려운걸..쩝..

  6. sanori 2005/05/01 20:5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kanjang_gongjang / 고민할 거 없구요. 한번 경험해 보시면 모든걸 뼛속 깊이 느끼게 됩니다.
    hongsili / 공감해요, 밖으로 향하는 관심을 자꾸 가족으로 향하도록 묶어 두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의심해볼만하죠..

  7. sanori 2005/05/01 20: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개울 / 가족간에는 그리 복잡한 감정은 없어요. 오히려 단순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라 변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거지요.
    바다소녀 / 아직 살아 있다는?
    rivermi / 별로 어렵지 않은데,.. 열심히 투쟁만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