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담그기...

from 나홀로 가족 2005/11/09 16:33

지난 금욜 동문회 오라고 문자는 계속 오는데,

무시하고 집으로 가서 좀 늘어졌다.

그러다가 일찍부터 잠들었는데,

문득 잠결에

마루에서 아내와 동네 아줌마의 말소리가 들린다.

'이 아줌마들은 왜 이밤에 와서 웬 수다야?'

그렇게 생각하고는 또 잠들었다.



토욜 아침에 화장실엘 갔는데,

욕조에 가득 배추가 소금물에 절여져 있다.

밤에 수다를 떤것이 아니라 배추를 절이느라 그랬나 보다.

아내는 갑자기 회사에서 배추가 생겨서 김장을 담그기로 했다면서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한다.

남편 집에 있으니까 할일 있으면 시키라고 했더니,

세가지를 지시하고선 아내는 출근했다.

'무우를 썰어서 채 썰어 놓고, 10시쯤에 절인배추 한번 뒤집고, 마루에 청소기 한번 돌릴것.' 

느긋하게 무우 씻어서 채를 썰기 시작했는데,

채칼이 덧대는 게 하나 있어서 채의 굵기가 다르게 나왔다.

'굵은 채로 썰어? 얇은 채로 썰어?'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면서 젓가락 굵기만큼 나오게 하란다.

덧대는걸 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덧대는걸 대고도 썰어보고, 빼고도 썰어보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덧대는 걸 빼고 굵은 채로 썰기로 했다.(그게 빨리 끝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오후에 돌아온 아내는 기어이 한마디 했다.

"당신은 그 정도의 눈썰미도 없냐? 이렇게 채가 굵어서 어떻게 하라구..?"

같이 김장 담그러 온 동네 아줌마들이 그나마 산오리 역성을 들어준다.

"동희 엄마, 김장 무우채는 굵어도 괜찮아..."

 

시키는 대로 무우채도 썰고, 청소기도 한번 돌리고 났더니

동희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밥 챙겨서 먹었다.

그랬더니 전화가 왔다.

절인 배추 뒤집었냐고 해서 그랬다고 했더니,

그 배추 좀 씻어 놓으란다.

몇번을 씻어야 하냐고 했더니, 세번을 씻으란다.

 

사실 산오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김장담그는데 한 역할은

김장독 묻기 위해 땅 파거나, 배추 나르거나, 끝나고 나서 시레기 정리 하거나...

그런정도였다. 그래서 김장하는 날을 잡으면 항상 아내는,

" 며칠날 김장 하니까 당신은 집을 좀 나가 있어줘." 했다.

아줌마들 모여서 김장하는데, 남자 하나 있어서 불편하다는 거였다.

 

배추를 씻는 건 또 어떻게 씻어야 하나? 그냥 물에 휘휘 저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수돗물을 배추 속속들이 뿌리면서 씻어야 하나?

대충 한번 휘휘 젓고 두번째는 제법 속을 뒤집어 가면서 씻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 한 사람이 왔다.

아는 아줌마이긴 하지만, 서먹서먹....

"아줌마! 씻고 있던 배추 좀 씻어 주시죠, 저는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할게요."

"예 그러세요" 

배추 씻는거 동네 아줌마에게 떠넘기고 설거지 후다닥 해치우고..

그러고 났더니, 동네 아줌마 더 오고, 아내도 배추 절여서 씻은걸

두어 포대기 더 가지고 나타났다. 회사에서 준 배추는 그기서 절여 씻었다고.

 

양념감으로 사온 대파, 쪽파, 갓 등을 씻었다. 그것도 세번씩..

아줌마들 마루에서 양념 다듬고 만들었고..

다 씻고 나서는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양념 만들어서 배추속에 넣는 건 아줌마들의 몫이었으니까...

 

사라진다고 하고 목욕탕에 가서는 늘어지게 있다가 집에 갔더니.

집이 깨끗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한참 지나서 아내는 왔는데 다른 집 아줌마 김장 하는데 도와 주러 갔다왔단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로 '시레기 엮어서 계단에라도 걸어야 하는데..." 한다.

그건 원래 내 몫이기는 한데 그냥 귀찮아서 가만 있었더니,

한참을 지나니까 아내가 뒷베란다에서 시레기를 두줄 엮어서는 들고 나온다.

그리고는 하는 말.

 

"우리 집에는 남자가 필요 없다니깐... "

 

평소보다 진일보한 김장담그기 도우미 노릇을 했건만,....

그렇게 30포기의 김장 담그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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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9 16:33 2005/11/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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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프 2005/11/09 17: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와~~~ 정말 김장 도우미 역할 '톡톡히'하셨네요.
    그렇게만 도와줘도 김장하기는 한결 수월한뎅..
    저도 딱 고만큼만 시키거든요..^^
    (근데, '도와준다'와 '시킨다'는 말은 역시 수동적이군요.
    김치를 나혼자 먹자고 담그는것도 아닌뎅...)

  2. 이재유 2005/11/10 16: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산오리님계서 그 정도 하셨으면 김장 김치 너무 많있겠어요. 나중에 한포기 젓선 좀 해 주세요*^^*... 근데 저도 같이 살 사람이 생기면 산오리님처럼 잘 할 수 있으려나 몰라...ㅠㅠ... *^^*...

  3. 연하 2005/11/10 17:4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장가 잘가셨네...
    요즘 김장하는 부인네들이 어디 있다고....
    평소에 산에만 가지말고 도와주시고......
    있을때 잘하셔...

  4. sanori 2005/11/10 20: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머프/능동적으로 뭔가를 해 놓으면,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는 잔소리가 대부분 따라 오니까, 시키는 것만 하게 되는 거죠.
    이재유/김치 필요하시면 얘기하세요, 한포기 드릴게요...ㅎㅎ
    연하/산에 가는 것도 도와주는 것의 한가지라는 생각이..

  5. 야옹이 2005/11/11 14: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회사에서 배추도 주다니..좋은 회사군요..ㅎㅎ

  6. 슈아 2005/11/11 15:3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머프, 산오리/ 그러니까 열심히 칭찬이 필요해요. 칭찬..

  7. 바람꽃 2005/11/12 18: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하하 재밋네요^^

  8. tomoon 2005/11/13 19: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벌써 김장...아! 내가 멀리 살기는 한가봐요. 아줌마들과 수다 떨며 김장을 담고,돼지고기 삶아서 김장과 먹는 맛은 그만인데..그러나 힘든 시간인데 그립네요.산오리님의 부인 음식 솜씨는 익히 알고 있지요.특히 마늘 장아찌는 지기는데....안부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