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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1/20

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

 

 

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
[기고]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 인권위 'NAP 권고안' 왜 반대하는가
텍스트만보기   오마이뉴스(news)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NAP)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자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사회현장에서 인권증진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가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의 논리를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 경제5단체 회장단을 대표해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고용 억제 등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한 것과 관련, 경제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한마디로 황당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이하 NAP) 권고안을 발표하자, 보수적인 언론과 재계가 똘똘 뭉쳤다.

이들은 '현 국가인권위원회 해체', 'NAP 권고안 전면 재검토', '국가인권위는 무국적 집단이며 교과서만 외우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단', '헌법 파괴적 발상', '인권위 구성은 시민단체 출신이 장악'이라는 말들로 현란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NAP 권고안을 비판했다. 일부 언론들은 아예 NAP권고안을 발표하기도 전에 논란거리를 정리하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권단체(?)를 찾기에 바빴다.

또 행정부를 책임지는 국무총리가 한 재계 단체 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권고안 내용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이행계획에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재계는 전면적인 국가인권위 흔들기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재계와 일부 언론의 반응이 여전히 당황스럽다. NAP 권고안은 한마디로 국가정책 전반을 인권으로 바로 잡아 나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일부 언론들은 '그러니까 NAP가 교과서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NAP는 유엔이 회원국에 대해서 인권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이행계획을 제출할 의무가 있다. 인권정책 이행계획을 수립할 주체인 정부에 대해서 인권전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NAP 권고안을 마련하는데 인권 이상의 잣대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국가가 가입·비준·동의한 국제인권규약 내용이 중심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처음에는 이런 상식이 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비판의 핵심은 ‘인권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NAP권고안의 주요 정책에 대한 내용을 곁들이며, 기득권을 누려오고 지금도 사회적인 힘의 우위에 있는 천민적인 재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격렬한 비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권중재 사업장의 파업권 유보 조치를 해소하고 약 84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라는 내용이 재계를 분노(?)케 한 것이다.

재계 주장은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주장

▲ 경제 5단체장은 지난해 4월 22일 낮 서울 롯데호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의견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 원안대로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용구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재철 무협협회장, 이수영 경총회장, 박용성 대한상의회장,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기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이상이자 국제적인 합의인 인권을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나라 재계의 저질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재계는 차라리 "인권에 대한 관심도 없고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고 오로지 경제현실론자(?)임을 고백하든지, "노태우 정권 때 가입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8조를 유보시켜 사실상의 노예노동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또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정당한 보수를 받아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6조와 제8조를 이참에 유보하라고 주장했어야 한다.

유엔은 2000년부터 초국적인 기업과 기업시민단체와 더불어 '지구협약'(글로벌 컴팩트, global compact)을 본격 추진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의 10대 원칙에 합의, 전세계 기업 활동에서 이 원칙을 주된 지향으로 삼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공공성이 강한 한국전력과 토지공사만이 작년에 가입했을 뿐이다. 이는 프랑스 374개, 브라질 121개, 캐나다 27개, 영국 59개, 독일 47개, 미국 80개, 인도 101개, 멕시코 19개, 중국 49개, 태국 18개, 러시아 19개, 일본 6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여 인권과 노동 분야의 국제기준 및 국제규약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자율적인 준수를 약속하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이미 101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고 있는 이 때, 경쟁력 운운하며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재계가 과연 현재의 추세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청년실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협박과 매수 그리고 노동자 파업 때마다 위장폐업 및 업무방해 명목의 고발과 소송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생존권을 짓밟았던 재계가 오히려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

70년대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기업들이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잘 지켰다면 생리휴가나 출산휴가 내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인권단체들이 이렇게 분노했을까!

재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해체하고 이른바 덕망있는 인사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가 말하는 덕망있는 인사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답해 봐라. 공개 검증을 해 보자! 선동도 이런 선동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호민관으로서 어떠한 외압에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서 법에도 국가인권위원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사퇴하지 않는다고 명문화 되어 있다.

재계의 주장은 기초적인 상식도 없고 그저 주장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노사관계'에 관여한다고 비판하고, 정치적인 공민으로서 공무원과 교사의 지위를 회복할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권고내용을 30년 전과 똑같은 이유인 안보와 질서를 이유로 반대했다.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발상이다. 이것은 '소수의 인권' 또는 '진보세력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어서 '다수의 인권'과 '보수세력의 주장'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퇴행적 기득권 지키고자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대해 이견을 표시하는 회견을 열었다. 정강자 상임위원(왼쪽)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인권에는 다수와 소수가 있지 않다.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있다면 '사회적 소수자'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소수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는데 힘이 적거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집단이나 개인이다. 힘으로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일부 기득권층이 인권을 주장할 때 이것은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권은 인권의 반대편에 있는 논리이다.

말하고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계와 일부 언론들이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기득권만을 주장하는 것이지 국민을 위한 것 혹은 국가발전과는 무관한 것이다.

퇴행적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재계와 일부 언론들의 정치연합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차라리 "우리는 인권을 모른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잘라 말하라. 제발 인권을 갖고 편가르기 하지 마라. 인권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고 보장할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어떠한 선진국을 지향할지, 즉 국가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고 인간으로서 존중되느냐 하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시기다. NAP 권고안은 그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2011년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아직도 천민적 발상으로 경영하겠다는 기업은 퇴출 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더 엄밀하게 말해서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자신들의 공헌을 선전하고 비난을 모면하려는 꼼수 경영은 이제 없다. 인권이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인 21세기에 기업은 분명하게 인권에 답해야 한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 28일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 한센병력자들을 상대로 인권실태 조사에 나섰다.
ⓒ 고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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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의 희한한 주장 “독일, 프랑스는 시장경제가 아니다?”

최경환의 희한한 주장 “독일, 프랑스는 시장경제가 아니다?”
CBS 라디오서 “좌파정권이 집권했었기에 OECD서 제외”
입력 :2006-01-20 14:22   김유정 (actionyj@dailyseop.com)기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최경환 의원이 19일 “노동당, 사민당 등 좌파정부가 집권한 경험이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국가가 아니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최 의원은 19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과 비교하면서 우리 조세부담률이 낮다고 주장했는데, 좌파정부가 집권한 경험이 있는 서유럽 국가는 시장경제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OECD 평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한 적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가 아니니 제외하는 대신 미국, 멕시코 등과 우리의 조세부담률을 비교하는 게 옳다”고 강조해 독일, 프랑스 등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바 있는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은 최 의원의 이러한 발언과 관련, 그의 의견이 ‘궤변’이라고 지적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했다.

김상조 한성대 경영학과 교수는 “너무나 황당한 발언”이라며 “OECD에 시장경제 아닌 나라가 있나”라고 질문했다.

김 교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도 기본 메커니즘을 시장에 둔 자본주의 국가고 다만 정부의 역할을 어느정도 달리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는 것 뿐”이라며 “모든 경제금융 관련 통계를 작성할 때 OECD에서 유럽 대륙 국가를 제외해 작성하는 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유럽 국가 역시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펴 왔고 더구나 지금 좌파 정당이 집권한 나라도 아닌, 과거 좌파 정당의 집권 경험이 있는 나라를 모두 시장경제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것이 최경환 의원의 지식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자본주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정말 큰 문제”라며 “노동시장 유연성이나 조세부담률에 있어서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주장하고 막상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있어서는 유럽의 사회적 자본주의 모델을 주장하는, 전혀 일관성 없는 논리이며 궤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최 의원이 비교대상으로 미국과 멕시코를 언급한 것에 대해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양극화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만을 우리가 따라야 할 체제로 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시장주의를 지나치게 좁게 보는 정치적 해석에 불과하며, 최경환 의원의 이런 시각은 경제학계에서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희한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고 CBS는 보도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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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2)  
 
기다렸다.
2006-01-20 오후 3:50:00
(199.74.65.*)
  딴나라당은 지금이라도 당장 구라파 선진국 불란서, 영국, 독일, 스웨덴 등과 수교 끝기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왜? 빨갱이 국가들이니까. 이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딴나라당은 오직 공화당 집권 미국만이 한국과 수교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당장 수교 단절이다.
 
 
 
아울러
2006-01-20 오후 3:54:00
(199.74.65.*)
  딴나라당은 대한민국의 UN 탈퇴를 강력히 촉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인권위 설립도 애당초 UN 가입 당시 권고에 의한 것이었으며 국가 인권 계획 수립 또한 UN의 권고 사항이다. UN은 빨갱이. 딴나라당은 대한민국의 빨갱이 UN 탈퇴 투쟁을 강력하게 벌여야 한다. 원희룡이 말대로 나와 코드가 다르면 다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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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제계의 인권위 공격은 헌법에 대한 도전

희대의 명문이로다

 

 

특별기고] 경제계의 인권위 공격은 헌법에 대한 도전
입력 :2006-01-19 21:45   최재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왜 인권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색칠하는가?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헌재 1996.2.29. 93헌마186)” 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경제계는 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마저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립된 국가 기구의 근본적 목적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있다. 이 점은 인권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는 이렇게 정한다.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 헌법질서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인권위원회 법의 내용이 이러할진대 기본 계획 권고안 발표가 어떻게 해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은 참으로 단호하다. “인권위는 헌법 위의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번 발표를 두고 “국가기관 스스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현상마저도 이념적 영역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모든 현상을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그것도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고질적 병폐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 현상을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켰다는 경제5단체장의 비판을 그대로 경제계에 돌려주고 싶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은 인권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

인권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다. 지위도 독립적이고 업무도 독립적이다. 다른 나라의 인권위도 대부분 그렇다. 도리어 우리나라의 인권위의 독립성이 다른 나라의 인권위보다 취약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경제5단체장은 이렇게도 주장했다.

“인권위의 독선적 결정을 막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기본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차기 인권위 위원의 재구성시에는 균형된 시각과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라고도 했다.

그러면 인권위가 무슨 일을 하기를 바라는가? 툭하면 일부 진영에서는 인권위 폐지론이나 기능 재정립론을 물고 늘어진다. 국가보안법 폐지권고 때도 그랬고, 사형제 폐지권고 때도 그랬고, 대체복무제 도입권고 때도 그랬다. 기본적 인권 수준의 향상을 기본 임무로 삼고 있는 인권위가 그러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헌법질서에 충실한 일일까?

툭하면 위원 구성도 문제 삼는다. 인권위 위원은 국회가 선출하는 4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다.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헌법이 특별히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게만 인정한 위원구성방식을 인권위원회에도 인정한 것이다. 더구나 국회가 선출한 위원 중에는 한나라당의 몫도 2인이나 포함되어 있다. 김호준 위원과 신혜수 위원이 바로 그 분들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인권위 구성이 좌파적이라고 비난한다. 이것이야말로 좌우에 대한 기본개념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고 밖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오해

“우리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의 성격을 띠고 있다.(헌재 1996.4.25. 92헌바47, 1998. 5. 28. 96헌가 4등, 헌재2001.6.28. 2001 헌마132)”

또 다른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결국 우리헌법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2002.11.28. 2001헌바50 등 다수)”

늘 느끼는 일이지만 경제계는 우리 헌재의 결정 중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강조하는 부분만 애써 인용한다. 헌재 결정의 뒷부분,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부분이나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결정부분은 철저히 무시한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이 도리어 헌재의 결정에 반하고 우리 헌정질서에 반하는 주장일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인권위는 다른 기관보다도 더더욱 그 목적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간혹 경제5단체장은 시장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염려스러울 때가 있다. 시장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선택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 이것은 곧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계의 주장도 다양성의 한 형태로 존중될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폄하하는 것은 결코 시장경제주의자들의 태도가 아니다. 일정 사안에 대해 재계의 주장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는 언론이나 인권의 자유시장에서 평가되고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 의해 선택될 일이다.

그런데 왜 내 주장은 헌정질서에 부합하고 인권위의 발표는 헌정질서에 반한다고 비평하는 것일까?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추구에 있는 것처럼 인권위의 존재 이유는 인권의 보호와 수준 증진에 있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자체를 긍정해야 하는 것처럼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시장에 대한 오해도 문제이지만 극단적인 시장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이다. 시장의 개념을 사회 전반에 확대시키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 인권의 영역까지 극단적인 시장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시장논리의 과잉일수 있다.

프랑스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 후보 리오넬 조스팽은 “시장경제는 좋지만, 시장사회는 거부한다”는 입장이었다. 경제계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에서 ‘성장이냐 인권이냐’ 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경제계

무엇보다도 성명 중 불행한 일은 경제5단체장의 사고가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성명에 깔린 기본 생각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인권의 유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성장의 가치만을 앞세운 개발 우선 또는 경제 우선의 논리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을 위한 인권제한이라는 견해는 경제성장과 인권보장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채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독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서구의 선진사회 경험은 인권신장과 경제성장이 양자택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속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에 공고한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을 신장하면서도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양가치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성명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문제는 인권으로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고 양극화도 인권신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계의 획일적인 흑백논리가 여기에도 드러난 것이다. 경제계는 지금까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흑백논리로 사물을 재단해 왔다. 이번에는 성장이냐 인권이냐 하는 논리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기본계획 발표 자체가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시장에만 세계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 세계화도 더더욱 중요하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정부가 발언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인권의 보편적 기준을 근거 삼는다. 왜 그 기준을 우리의 인권에는 들이대지 못하는가?

더구나 인권위가 우리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기본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제적 인권 규범과 우리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왜냐하면, 먼저 헌법 제6조를 보자.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2001년 5월 UN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에 대해 2006년 6월까지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그 권고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권고의 근거는 우리가 가입되어 있는, 헌법에 따라 1990년 7월 국회의 동의까지 마친 ‘UN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이다. 이런 식으로 비판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UN인권규약에 가입하지 말라고, 그리고 비준하지 말라고 주장했어야지 지키지도 못할 국제 법규를 왜 받아들이도록 허용했을까?

국제인권법은 우리가 지켜야할 당연한 규범중의 하나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기본 계획은 UN총회에 근거해 178개국이 참석하여 만장일치로 동의한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권고사항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미 기본 계획을 발표했거나 실행중이다. 늘 그렇듯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념적 잣대로 모든 사안을 단순화시켜버리고 마치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그리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문제로 울타리 치는 관성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한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2)  
 
천민
2006-01-19 오후 11:45:00
(61.253.138.*)
  천민자본주와 그 앞잡이 월급쟁이들의 지랄병인디 그냥 내비두는 게 국익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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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보여주세요” 항의 40대시민, 아홉달 홀로소송 이겼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항의 40대시민, 아홉달 홀로소송 이겼다
[한겨레 2006-01-19 20:09]    

[한겨레]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지난해 4월13일 밤, 집으로 돌아가던 윤종원(41·회사원)씨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앞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았다. “저는 현행범도 아니고 수배자도 아닌데, 왜 보여드려야 합니까?” 곧 다른 경찰관들도 윤씨를 에워쌌다. 그리고 다시금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신분증 제시 의무가 나와 있습니다. 보여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이면 신분증을 보여줘야죠.” “수배자도 아닌데, 왜 검문에 블응합니까?”

20분쯤 실랑이가 이어졌고, 윤씨는 결국 면허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생각할수록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경찰의 말과 달리 불심검문 규정을 담고 있는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시민이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없었다.

화도 난 윤씨는 이틀 동안 혼자 소장을 작성해 법원을 찾아갔다. 한 번도 소송을 해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할지도 몰랐지만,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인권단체에 도움을 구하고, 다른 민원인들에게 물어가며 소송을 진행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둔 현장 장면도 증거자료로 냈다.

우연히 본 기사가 윤씨가 이렇게 소송까지 하게 된 계기가 됐다. 1997년 시위 현장에서 소지품 검사를 거부한 장아무개씨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는 기사였다. 그 뒤로 윤씨는 불심검문을 거부해 왔다. 원하지 않는데 신분증을 보여주거나,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가 여태껏 이유 없이 불심검문 당한 것만 100번은 넘는 것 같아요. 그때마다 내가 범죄형처럼 생겼나 싶어서 기분이 나쁘더군요. 검문을 하려면 최소한 흉기를 갖고 있다거나, 수배자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등의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구잡이식 불심검문은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큰 인권 침해입니다.”

19일 서울 남부지법 민사제34단독 왕종옥 판사는 윤씨가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강압적으로 요구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봤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청구 금액 4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보통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송까지 가봤자 지면 자기 손해라는 생각에 체념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홀로 소송해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홉 달에 걸친 법정싸움에서 이긴 윤씨의 말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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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웅녀는 자궁 빌려준 대리모?

 

 

 

단군신화’ 웅녀는 자궁 빌려준 대리모?
신화 자투리·전설·민담 모으고 상상력 보태
상식 깨는 신화 원형 재구성
전설속 마고할미에서 남녀 우위 뒤바뀜 보고
‘바리데기’ ‘제석본풀이’ 등 무가 통해
모계사회·수렵시대의 흔적 끄집어내
한겨레 임종업 기자
▲ 우리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3000원
아득한 시절, 하늘-땅, 해-달-별이 만들어지던 때. 하늘이 땅으로부터 멀지 않고 때로 큰 물 져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던 시절. 두메 사이 골짝과 물과 물 사이 벌판에 움집을 튼 이들은 조상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대를 이었다. 깬돌부족은 간돌부족에게, 간돌부족은 청동부족에게, 청동부족은 쇠부족에게 복속하면서 부족은 부침하였고 이에 따라 조상신 이야기들은 운명에 따라 명멸하지 않았겠는가. 그 많던 신화는 어디로 갔을까?

단군의 어미 곰인가 호랑이인가

<우리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 펴냄)는 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한다. 티벳, 몽골, 만주, 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 조현설은 동아시아 신화를 섭렵하고, 신화 자체는 물론 전설과 민담에서 화석으로 남은 신화의 조각을 모아 잃어버린 신화의 원형을 재구한다.

흩어진 시공의 범위가 광대한 신화들은 연구자로 하여금 시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때로는 논리의 비약을 감행케 하지만 깁고 메워 제시되는 ‘물건들’은 으레 그런 줄 알아온 사람들, 특히 교과서로만 신화를 배워온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단군신화의 완고한 틀을 깨면서 첫머리부터 독자의 시각교정을 요구한다. 단군신화의 웅녀는 자궁을 빌려준 대리모에 지나지 않는다! 판이한 에벤키족 신화와 곰나루 전설. 웅녀가 고조선에 편입되어 정체성을 잃었거나 고조선 해체 뒤 잔류집단이 북방으로 간, 혹은 남하한 족속의 시조모라고 추정한다. 나아가 설암(1651~1706)이 지은 <묘향산지>에서 단군의 어미가 곰이 아닌 백호일 가능성까지 연다. 중국 쓰촨, 윈난에 사는 이족의 신화, 손진태 <조선민담집>의 남매혼 홍수신화 변이형, 왕건의 6대조 호경 이야기, 아크스카라족 호랑이 시조신화가 뒷받침 자료로 동원된다.

또다른 단군신화를 전하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주목한다. 즉,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부루다.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사통하여 주몽을 낳았다니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고려인의 삼한통일 의식이 부루를 고조선, 고구려, 부여의 매개자로 만들었음을 추론한다. 나아가 부루를 오랜 조공관계의 표상으로 삼은 조선 초의 사대의식과 갑오개혁 이후의 변주를 통해 역사 속에서 신화가 살아 움직임을 내세운다.


이렇게 상식을 깬 지은이는 신화 자투리나, 전설과 민담에서 캐낸 화석신화로써 우리를 역사의 아득한 곳으로 인도한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백조처녀를 신화로 하는 집단이 한반도에 들어와 융화된 잃어버린 역사를 말하고, 달래고개(또는 달래강) 전설에는 ‘대홍수 뒤 살아남은 오누이’라는 창조신화의 지문이 찍혀 있다. 그 뿐인가. 전설속 마고할미는 남녀의 우위가 뒤바뀌면서 창조신의 지위를 남신에게 넘겨주고 산신으로 추락한 여신의 화석이며, 미륵이 창조한 세상에 석가 나타나 꼼수로 내기를 이긴다는 얘기는 어쩔수 없이 불교를 포용하게 된 샤머니즘의 불교에 대한 적대감이 숨겨져 있다.

역사속에서 살아 움직인 신화

▲ 인간을 괴롭히는 해를 화살로 쏘아 맞혀 한개만 남기는 신화는 일종의 창조신화. 제주도 소별왕·대별왕, 경기도 선문이·후문이 설화에 잔존하며 신라 경덕왕 19년 월명사가 도솔가를 불러 해의 괴변을 물리친 이야기로 변형돼 있다. 그림은 <산해경>에 보이는 명사수 ‘예’.
제주도 선문대할망, 충청도 갱구할머니의 제옷 만들기 실패, 명월각시의 남편을 위한 구슬옷 만들기 얘기에서 여신의 주변화를, 다섯덩이로 흩어져 장사 지낸 혁거세 이야기의 말미에서 혁거세를 농경신으로 섬기고 싶어하는 신라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어낸다. 석탈해한테 집을 뺏긴 인물, 김알지의 발견자로 등장하는 호공은 박·석·김보다 앞선 남방계 선주민이 훗날 읽어주기를 바랐던 자신들의 자취다. 해모수와 통정한 뒤 햇빛이 몸을 따라 움직여 임신하고 금와왕의 여자가 된 유화의 아들 주몽. 이중임신에 아버지가 셋인 주몽 설화는 고구려가 여러 종속의 연합체 국가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난생화소 역시 남방계의 흔적이다.

가장 풍부한 ‘신화의 바다’는 아무래도 무가다. 지은이는 이 책의 반 가까이의 분량에서 무가 깊숙히 가라앉은 부계사회 이전의 모계사회, 농경사회 이전 수렵사회의 아릿한 흔적을 인양한다.

버린 딸로서 불치병의 아비를 고치고 무당신이 된 <바리데기>가 그런 흔적의 백미. 고구려 유리왕의 어미와 달리, 생부의 존재를 알려주기 꺼리는 <제석본풀이>의 당금애기와 <이공본풀이>의 원강암이는 잃어버린 모계사회의 목소리를 낸다. <성주풀이>에는 이동에서 정주로, 수렵에서 농경으로, 남성중심 문화로의 변모라는 문화사적 내력이 점철돼 있다. <송당본풀이> <궤눼깃당본풀이> 등 당신신화 역시 사냥족 소천국과 농경족 백주또의 혼인 이야기를 통해 농경과 수렵이 교체하던 때의 모습을 전한다.

신화는 수수께끼 내기를 건다

<세경본풀이>에서 게으름뱅이자 대식가로 나와 천하일색 자청비를 괴롭히는 정수남은 부정적으로 변모한 수렵신적 존재로 추정한다. <칠성본풀이> 속의 뱀 이야기는 ‘구렁덩덩신선비’와 달리 뱀-여성-농경문화를 하나의 고리로 연결해준다.

지은이는 제주도의 <삼공본풀이>를 통해 신화는 계속된다고 말한다. <삼공본풀이>는 제주도 심방들이 평강공주, 서동과 선화공주, 심청전 등의 화소를 짜깁기해 만든 운명신 이야기. ‘누구 덕에 먹고 사느냐’는 부모의 물음에 “내 배꼽 밑에 선 그믓 덕에 먹고 입고 삽니다”라고 답하는 가문장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부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일궈가려는 강인한 제주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먼길을 돌아와 다시 던지는 질문, 신화란 무엇인가. <에다>의 신 오딘이 던진 ‘땅과 저 위의 하늘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겠는가. 예컨대, 창조신이 하늘을 밀어올려 천지를 만들고 죽은 후 몸의 각 부분이 만물로 변형되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답. “신화는 언제나 한판 수수께끼 내기를 하자고 저 푸른 안개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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