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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100인 “우리의 아들·딸 위해 여성부 꼭 필요”

 

 

남성 100인 “우리의 아들·딸 위해 여성부 꼭 필요”
 
국회 기자회견서 “남여 행복할 수 있는 정책 힘 있게 추진돼야”
 
입력 :2008-02-14 10:52:00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일성 기자] 학계·종교계·법조계·시민사회방송계·의료계·문화예술계 100인 남성은 14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행복하려면 여성가족부는 꼭 필요하다”면서 통폐합 강력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따른 가족의 위기와 변화, 이로 인한 돌봄 노동의 공백, 여성의 비정규직화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고용과 근로환경 등에서 성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성인지적 감수성이 일상의 습관에 녹아내려 남성과 여성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이 힘 있게 추진돼야 한다”면서 여성가족부의 존치를 촉구했다.

또한 이들은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며 자라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면서 “여성가족부가 저출산·가족변화, 아동양육 등의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들은 “성평등 정책 실현은 한국사회가 추진해야 할 최우선적 과제이며 국가적 책무”임을 강조하며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100인 남성’에는 강지원 변효사, 탤런트 권해효씨, 개그맨 노정렬씨,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장, 윤민석 작곡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으며 이날부터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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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두바이 하는데 내가 갈챠줄께…

 

 

두바이 두바이 하는데 내가 갈챠줄께…
 
번호 210513  글쓴이 북학인 (sayforme)  조회 4659  누리 1063 (1063/0)  등록일 2008-2-12 15:00 대문 47 톡톡
 
 
 


지난번 대문에 오른 글 "두바이가 운하를 만드는 이유를 아느뇨?"는 홧김에 간단히 적은 글이었습니다. 좀 격한 표현이 오히려 많은 누리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

2MB 당선 후 두바이 벤치마킹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두바이를 정확히 알고 우리와 다른 점들을 알려서 어설픈 무당이 사고 못 치게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난번 적지 못한 것 위주로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1. 두바이가 투자국으로 각광받는 핵심적인 이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외투자의 첫 번째 검토대상은 국가위험(Country Risk) 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투자하는 동남아나 중국의 경우 사업성을 떠나서 사업이익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회수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현지화를 위해서 투자한 기업이야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경우는 사업에 성공하고도 외환반출이 어려워서 고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국가제도가 없거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믿고 사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바이의 경우는 모든 외환의 반·출입에 제한이 없습니다. 물론 국제 블랙머니에 대한 심사는 엄격히 합니다만…

정상적인 상거래를 위한 외환의 반·출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죠. 두바이에는 세계 각국의 자본이 아주 골고루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오일머니는 물론이고 유럽, 미국계 자본, 심지어는 알카에다 돈도 두바이에 있습니다. 저희 첫 번째 사무실도 알카에다 보유 건물이었습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두바이에는 테러를 못하게 하는 것이며, 정치적으로도 어느 쪽에 유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그들의 방책이었습니다.

심지어 한 개의 공사장에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 30%를 못 넘기게 합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를 생각한 것입니다. 두바이 거주인구의 80% 이상이 외국인입니다. 관광객을 합치면 두바이 시내에 다니는 사람의 90% 이상이 외국인입니다. 그리고 두바이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입니다. 많은 건설 현장에 일하는 노무자들은 100% 외국인입니다. 가난한 국가의 남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 중동에서 오일머니 벌어올 때처럼 몸 팔러 와 있는 겁니다. 이들을 보면 예전에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일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와 비교해보죠…

대한민국의 국가위험. 북핵문제로 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가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으로 많이 제거된 상태입니다만 2MB의 정신상태로 볼 때 악화될 가능성 매우 높습니다. 북한의 정일이 아저씨가 앙심 품고 있다면 안전한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바이 벤치마킹하려면 김정일이 쌈짓돈도 투자받아야 합니다. ㅎㅎㅎ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두바이처럼 외국인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국가소유의 토지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원… 끝내주지 않습니까? 게다가 환경단체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또한, 국유지라 할지라도 아주 좋은 조건(헐값)에 내놓아야 합니다. 두바이처럼 하려면 모든 인허가를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주고 법인세, 개인소득세 면제, 모든 외환의 반·출입 자유화, 부동산 취득 외국인에게 영주권 부여, 대부분의 관세 폐지, 등등등…

유일하게 가능한 땅이 있다고 한다면 새만금 정도 되겠죠?

그런데 이 새만금을 그렇게 사용해도 되는 건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2. 두바이 개발의 자본

두바이가 돈이 많아서 세계 최고층 빌딩 짓고 칠성호텔 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바이는 세계의 자본을 유치해서 남의 돈으로 자기 땅에 신세계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많은 자본이 들어와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편승해서 돈 버는 사람 중에 한 명이고요… 두바이에 돌아다니는 부자들은 두바이 사람이 아니라 두바이에 투자한 외국인이라는 겁니다. 두바이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투자받아야 할 곳이 아니라 우리가 투자해서 돈을 벌어와야 할 곳입니다.


3. 두바이의 지리적 입지

두바이는 오랜 옛날부터 중계무역의 1번지였습니다.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물류의 중심지였다는 것이죠. 두바이 공항에서 세계 어느 도시도 직항이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은 칠성호텔과 세계최고층빌딩 때문에 오히려 더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곳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를 두바이처럼 개발한다고 갑자기 자본이 밀려오고 세계물류의 중심이 될까요?

이것이 되려면 우선은 남북문제의 해결과 주변 열강의 협조 없이는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물류의 중심지가 되기는 지리적인 여건상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4. 두바이를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개발한다면

우선 경제정의 문제가 생길 겁니다. 자국인 역차별의 문제가 되겠죠? 두바이 정도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대한민국 모든 기업이 부동산 개발에 모두 뛰어들 겁니다. 한국기업만 못하게 한다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겠죠?

2MB 당선되면 취직될 줄 알고 찍어줬던 우리나라의 그 잘난 백수들이 저임금에 하루 10시간씩 노가다 뛸 수 있겠습니까? 엄청난 외국인 노무자들이 몰려와야 합니다. 이들로 인한 사회적인 인권의 문제가 생기겠죠? 건설회사들은 성업을 하겠지만 이때 뽑아 놓은 사람들 공사 끝나면 다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실업자 안 만들려면 끊임없이 더 많이 부수고 파헤쳐야겠죠…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2MB 아저씨가 그렇게 내세우는 건설회사에 2MB 아저씨의 기념사 들으며 입사해서 2MB 아저씨 덕택에 회사가 거덜나는 바람에 말리는 동료를 뿌리치고 자진 명퇴하여 외국계 기업에서 월급쟁이 하다가 독립한 사람입니다.

H 건설사에서 많이 배운 덕택으로 밥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 없고 그 유명한 강남 D동 TP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MB (Be a MBtious의 MB 아님)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의 유일한 노사모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행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일 때문에도 아주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잘 산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곧 망한다고 나발 부는 인간들은 연휴만 되면 골프백 매고 해외로 나갑니다.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정하지만 그런 나발은 불지 말란 거죠…

두바이 두바이 하는데 벤치마킹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미리 경고합니다. 한 가지만 벤치마킹 하면 됩니다. 생각 좀 하면서 개발하라!!! 바로 이 한 가지…

영어 이야기 좀 하죠…

저 역시 일 때문에 영어를 합니다만 몰입교육 안 받았어도 사업하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필요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됩니다. 해외 근무 시에 영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하나도 문제없습니다. 두바이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잘합니다. 영어를 잘해서 두바이가 성공한 것이 아니라 90%나 되는 외국인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확한 이유입니다.

두바이에서 사업하지만 두바이에 정착하고픈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살아본 곳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개념 탑재하지 않고 사는 인간들 보면 두바이에서 살고픈 생각도 들긴 합니다.

앞으로 5년간은 주로 나가 살아야 할까 봅니다.

또 생각나는 대로 글 올리겠습니다. 

 

ⓒ 북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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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제안하면 그게 무슨 국민모금인가

대통령이 제안하면 그게 무슨 국민모금인가

[[오마이뉴스 고태진 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등 인수위 위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숭례문 화재현장을 방문해 정정기 서울소방재난본부장으로 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대책 등을 지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을 위한 국민모금운동을 제안했다. "정부 예산보다는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하는 성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국민들에게도 위안이 되고 의미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푼 두푼 모아 우리 국보1호를 복원한다는 것은, '태안의 기적'에서 보듯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인이 이러한 국민모금운동을 제안한 순간, 이러한 아름다움은 이제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것은 이명박 당선인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모금운동 의미 실종시키는 대통령 당선인의 부적절한 제안

일단 대통령 당선인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자. 국민모금운동이라는 것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부나 대통령이 제안하는 운동은 이미 국민모금운동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인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이 당선인은 앞으로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직도 국정을 책임질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10여일 후면 대통령으로서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될 사람이 제안하는 국민모금운동이 과연 순수하게 국민들의 자발적 모금운동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관이 나서서 주도하고, '친박신문'들의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이 운동이 전개되지 않을까? 흡사 '제2의 금강산댐 모금운동'이 될 것이다. 이미 이명박 당선인의 입에서 국민모금운동이라는 말이 떨어진 순간 국민모금운동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은 이번 숭례문 화재 사건이 발생하자. 예의 그 '노무현 탓'을 하고야 말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권이 그 동안 안전 업무에 관해 얼마나 허술했는지 엉뚱한데 신경을 쓴 결과가 결국 이런 비극으로까지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면 모든 정치권력을 가지게 되는 한나라당은 누구 탓을 하게 될 지 궁금하다.

물론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에 있어 현 정부의 책임도 적지는 않겠으나, 현재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숭례문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 이명박 당선인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 검거된 숭례문 방화용의자는 숭례문을 방화 대상으로 정한 이유를 "숭례문이 종묘 등 다른 문화재에 비해 경비시스템이 느슨하고, 접근이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밤에 일반인이 몰래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허술한 안전대책이 결국 이런 일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숭례문을 개방할 당시, 좀더 숭례문에 대한 안전 대책을 철저히 강구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대통령에 곧 취임할 사람이지만 과거의 잘못과 책임에 대해서는 먼저 반성부터 하고 볼 일이다.

그런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제안하는 국민모금운동이라니? 이것은 정부 예산을 줄이는 동시에, 국민모금이라는 감동적 사건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림으로써 과거의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희한한 실용주의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이 무슨 '봉'인가?

삼성중공업이 국민들에게 기름제거 자원봉사를 제안한다면?

또한 이것은 비유하자면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선이 원유유출사고를 내고는 국민들에게 자원봉사를 제안하면서 "우리가 돈 들여 할 수도 있지만, 서해안에 가서 자발적으로 기름 좀 닦으면 위안도 되고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국민이 무슨 '바보'인가?

이명박 당선인은 이제 자신의 지위와 책임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정부나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모금운동이나 자원봉사를 제안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민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이미 이 당선인은 국민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모금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또한 이 당선인이나 한나라당은 이제 남 탓이나 하고 비판에만 몰두하는 그 간의 관성을 버리고 스스로의 책임과 의무를 무겁게 생각하는 사고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취임 이후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것은 국민모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아니고,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예방 대책과 구체적 시스템의 재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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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업은 반민주, 반자본주의이다&quot;

 

 

친기업은 반민주, 반자본주의이다"
  [기고] 이명박 당선인의 친기업 행보를 바라보며
 
  2008-02-12 오전 12:33:47
 
   
 
 
  '실용'에 이어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친기업'(pro-business)이다. 듣기에 그럴싸하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가 낮은 수준의 구호에 머무르면서 무분별한 개발 정책의 추진, 각종 사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배제하는 '초단기 실적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아니다 다를까, 대운하 건설, 통신비 인하, 영어 교육 등 차기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 과제에서 벌써 그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럼 친기업은? 이명박 당선인은 스스로 친기업 대통령임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단체와 조·중·동 같은 신문들은 쌍수를 들어 친기업 이명박 정부를 환영하고 있다. 정부가 고용과 가치 창출 같은 경제의 핵심 역할을 하는 기업과 친한 게 문제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경제만 살리면 무엇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쓰나미 같은 여론이 있는 판에 친기업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함직도 하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친기업은 반민주주의적이며 반자본주의적 생각이다.
  
  친기업은 왜 반민주주의적인가? 정치적 불평등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기업 집단은 보유하고 있는 자원, 사회적 위상, 법적 특전 등의 측면에서 개개 시민들보다, 또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업/기업 집단보다 훨씬 큰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더 많은 부는 곧 더 많은 권력과 이어지기 때문에 친기업은 정치적 불평등의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권력과 부의 불평등은 일정하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공평한 조정자이며 따라서 강력한 힘을 소유한 사적 집단에 대한 제어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친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기업/기업 집단이나 부유한 계급 일반에 편향된 정책을 편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와 정부에 대한 공공적 신뢰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친기업은 왜 반자본주의적인가? 경쟁과 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공평한 심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자유시장주의자는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 수단를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왜곡된 형태의 보호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기업은 경제 성장, 고용 창출 등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상호 밀접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대체로 특정 기업/기업 집단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통로로 왜곡되기 십상이다. 한편 정부는 경제를 제대로 이끌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이나 역량에서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뒤쳐지기 때문에 기업의 논리에 포획되기 쉽다. 따라서 정부의 결정은 특정 기업 또는 기업 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요소들은 공정한 경쟁과 선택의 자유를 해치는 반자본주의적 결과를 낳는 것이다.
  
  친기업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친시장'(pro-market)이 그 답이다.
  
  친시장은 무엇인가? 친시장의 근본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다. 자유주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경제는 권력에는 한계가 있고 남용되는 권력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견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 폐지, 강한 반독점 정책, 기업의 로비에 단호한 정치, 기업과 관료들의 부패에 대한 엄격한 법적 조치, 조세정의의 실현 등등이 친시장 정책의 핵심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개혁적인 주장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지난 2003년 6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는, 국제적 권위와 신뢰를 인정받는 <이코노미스트>가 창간 160주년을 맞아 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특집기사의 핵심내용이다. 그 기사는 친기업적 사고와 정책이 불러일으키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짚어보는 취지의 특집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조ㆍ중ㆍ동 등이 친기업 찬가를 부를 때 시중에는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절망적인 농담이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친기업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기대가 나라를 뒤엎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더 확대되는 형태의 극히 왜곡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런 것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정부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도 종래에는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족 하나. "기업이 자본의 힘을 이용해 일종의 특권 체제를 만들어 정부와 법, 즉 국가에 도전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분쇄되어야 한다." 이미 200여 년 전쯤에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이 기업의 사회적 지배력 확대를 우려하며 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그것도 대기업의 특권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 애쓰고 있다.
   
 
  김평호/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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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도올고함(孤喊)]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중앙일보 김용옥.임진권] 예부터 회록지재(回祿之災)라는 말이 있다. “받은 녹(祿)을 되돌리는 재난”이라는 뜻인데, 재난 중에 최악의 재난이라 하겠다. 천지자연으로부터 받은 녹을 천지자연으로 되돌리는 재난이니 문명을 향유하려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재난일 수밖에 없다. 도둑맞은 물건은 어딘가 뒹굴고 있어 되찾을 수도 있다. 회록지재란 예부터 화재(火災)를 일컫는 아언(雅言)이었다.

 


어젯밤 TV 뉴스 속보를 볼 때만 해도 연기만 뿌옇게 올라온다 했고, 그다지 큰 불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다리차를 탄 소방관들이 물을 뿜어대고 있어 그슬리는 차원에서 끝나버리면 그래도 상량(上樑)의 묵서(墨書)라도 보존되어 복원의 명분이라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국보 1호 숭례문 전소.”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었다.

11일 아침 나는 숭례문으로 달려가 보았다. 너무도 참담한 모습이었다. 불세출의 서성(書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도 과천에서 내왕할 때면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우뚝 선 채 황홀하게 쳐다보았다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현판 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에겐 그것이 일차적 관심이었다. 현판이라도 우선 떼어냈어야 했거늘… 쳐다보니 현판이 보이지 않아 우선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탐문해 보니 그것조차 떼어내는 과정에서 떨어뜨려 손상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개판이다.

국보 1호라는 하중감 때문에 소방관들의 대처가 본격적이지 못했고, 또 문화재청의 안일한 상황 판단이 결국 전소라는 수치스러운 참사를 지어낸 것이다. 국민들이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진화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50여 대의 소방차가 출동해 있으면서도 그냥 훨훨 태워버린 것이다. 오호라!

“기분이 나빠요.” 친구에게 전화 거는 어느 어린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리 기분이 나쁜가?

나를 쳐다보더니 재빨리 휴대전화를 접고 정중하게 답변한다.

“어찌 되었든 국보 1호잖아요. 그런데 저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꼴로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모습이 뭔가 불길한 국운을 상징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국민 누구든 가슴이 아플 거예요. 아니, 부끄럽겠죠.” 중앙대학교 약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란다. 이름은 신동호.

―국운? 좀 거창한 얘기지만 일리가 있군. 저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꼴이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모습일까, 이명박 정권의 시작하는 모습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덮어씌우겠죠.”

젊은이들의 지나치는 이 한마디가 오늘날 우리나라 세태의 전부를 말해준다.

“부끄럽다”는 그 한마디에 더 첨삭할 언어가 어디 있겠느뇨?

맹자의 혁명사상을 접한 신진유생 삼봉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고루한 친원파들과 대결, 나주 소재동 등지로 귀양을 다니면서도 동북면 도지휘사 이성계와 결탁해 혁명을 모의하고 결국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한다. 1392년 7월 17일 신왕조를 개창하고 태조 3년(1394) 10월 25일에는 한양 천도를 감행한다. 개성의 지세가 쇠하였다고는 하나 개성 문벌 귀족의 틈바구니 속에서는 도저히 새로운 국가,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궁궐을 조성할 때도 하륜(河崙)은 무악을 주산으로 삼자 했고, 무학대사는 인왕을 주산으로 삼자 했지만, 오늘날의 백악현무(白岳玄武), 인왕백호(仁王白虎), 낙산청룡(駱山靑龍)의 모습으로 궁궐과 도성의 모습을 결정한 것은 삼봉 정도전이었다. 삼봉이 꿈꾼 것은 불교라는 고려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불식할 수 있는 새로운 유교이념! 그 유교이념을 형이상학으로서가 아니라 형이하학으로서 도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태조 4년(1395) 삼봉은 새 궁궐의 전각 이름을 지었고, 5년에는 도성 8대문의 이름을 지었는데 『시경』과 『서경』에서 그 아름다운 뜻을 취하였다. 특히 4대문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오행(五行)에 배정시켜 그 이름을 결정하였다. 인(仁)은 동방(東方)이므로 동대문에 배속되고, 의(義)는 서방(西方)이므로 서대문에 배속되고, 예(禮)는 남방(南方)이므로 남대문에 배속되고, 지(智)는 북방(北方)이므로 북대문에 배속된다. 이렇게 해서 동대문의 이름이 흥인지문(興仁之門)이 되고,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이 되고, 북대문은 소지문(炤智門)이 되었다. 그리고 오행 중 중앙에 해당하는 신(信)은 종로 중앙의 보신각(普信閣)의 이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 중 유독 동대문만 갈 지(之) 자가 들어갔는데 그것은 그 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낮고 지세가 꺼져 있어 땅 기운을 돋우어 주자는 의도로 갈 지를 더하여 넉 자 현액을 걸어주었다 한다. 그런데 숭례문 현액이 특이한 점은 타 현액이 모두 횡으로 쓰여 있는데, 이 숭례문 현액만 위에서 아래로 써 있는 종액(縱額)이라는 것이다. 일설에는 서울 도성의 정문인 남대문은 귀한 백성이 드나들게 되므로 서서 맞이함이 예절에 합당하다 하여 세워 달았다 한다. 타설에는 남방 화(火)에 해당되는 글씨인 까닭에 불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세워 달았는데, 그것은 한강 건너 남쪽 조산(朝山)인 관악산의 불길을 불로 막아, 그 관악의 화기가 서울 도성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숭례문은 자신이 불길에 휩싸임이 없이 기적적으로, 600여 년의 성상을 견디었다. 서울에 남아 있는 건물로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화려한 다포(多包)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목조였다. 나머지는 모두 임란 이후에 재건된 것이다.

1962년 남대문을 중수(重修)할 때 3개의 대들보가 발견되어 그 정확한 건축연도를 알 수 있는데, 남대문은 도성의 제2차 공사를 완료한 후 12일 뒤인 태조 5년 10월 6일에 상량하고, 그 2년 후인 1398년 2월 8일에 준공하였다. 그러나 남대문 자체가 도성의 연속된 성로(城路) 위에 지은 것인데 이 도성을 짓기 위하여 지반을 돋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가라앉으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세종조에 영의정 황희(黃喜) 이하 여러 대신이 건의하여 근본적으로 남대문을 신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세종 30년(1448) 3월 17일 상량하였고 5월에 준공하였다. 그 뒤 성종 10년(1478)에 한 번 더 개축한 사실이 대들보로 확인된다.

남대문은 이상하게도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화를 면했다. 경복궁이 임란으로 송두리째 잿더미로 화하여 대원군이 재건하기까지 273년 동안을 인왕산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공궐(空闕)로 남아 있었던 사실에 비한다면 숭례문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를 기억하고 있는 혼이요 얼굴이었다. 지금 우리는 서울이 다 터져 있어 도성팔문의 의미를 망각했지만, 과거에는 저녁 10시경 인정(人定)에 8문을 다 닫고 새벽 4시경 파루(罷漏)에 일제히 여는 통금 제도가 정확히 유지된 성곽 도시, 한성(漢城)이었기 때문에 남대문의 의미는 막중한 것이었다. 여기를 통과치 않고서는 한성 진입이 불가능했다.

1905년 일본이 을사늑약을 강요한 후, 1906년 황태자(훗날 大正天皇)가 한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 남대문을 통해 들어올 수 없다고 강짜를 부리며 남대문을 대포로 분쇄해 버리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민중의 여론이 들끓자 그들은 융희 원년(1907) 남대문에 연결된 북쪽 성벽을 헐어 길을 내었고 이듬해에 남쪽으로 연결된 성벽을 헐어 달랑 남대문만 남겨놓았던 것이다.

왜놈들이 헤이그밀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을 때도 우리 민족은 이 남대문 주변으로 치열한 항쟁을 벌였다. 일본군은 남대문 성벽에 대포와 기관총을 설치하고 마구 쏘아댔다. 상인, 노동자, 남녀 학생, 부녀자들까지 용감무쌍하게 항전을 계속했으나 결국 피를 흘리며 압제의 굴레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 통에도 광화문은 무참히 파손되었지만 남대문만은 그 원형이 훼손되지 않았다. 억센 운명을 타고난 우리 민족의 600년 유물, 국보 1호, 그 숭례문이 덧없이 하룻밤 사이의 회록지재로 사라진 것이다.

웬 일일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방화를 의심하거나 문화재 관리소홀을 탓하여 부질없는 경비 예산이나 늘리는 호들갑일랑 이제 되풀이하지 말자! 근원적으로 문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죄악의 반성이요, 우리 사회의 신뢰의 부족이요, 이 민족 혼백의 타락이다.

세종대왕은 이 민족의 구원한 미래를 위해 우리 민족의 독창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2년 후에 남대문을 신축하여 오가는 백성들에게 위용과 믿음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 새 정권은 기껏 생각한다 하는 것이 “영어몰입교육”이요, 회록지재보다 더 무서운 재앙인 대운하 강행에 혈안이 되고 있다. 정부 기구 통폐합 운운도 어떤 합리적 원칙이나 철학이 엿보이지 않는다. 대선 전의 민생 공약은 실종되어만 가고 있다. 과연 남대문의 무너진 흉측한 모습을 과연 우발적 사건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떠나가는 그 젊은이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여보게! 부끄러워 말게. 문화재는 이제 자네 머릿속에서 솟아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들이 컸을 때 삼봉이 구상한 코스모스보다 더 위대한 작품들로 이 땅을 수놓기 바라네.”

5시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해 완전히 무너져 내릴 때까지 걸린 시간. 불은 10일 오후 8시40~50분쯤 났다. 10일 자정쯤 건물 천장에서 화염이 치솟았고, 11일 오전 1시쯤 2층 누각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불이 난 지 5시간 뒤인 오전 1시50분부터 석반을 제외한 2층 누각 전체와 1층 누각 대부분이 무너졌다.

글=도올 김용옥 기자, 사진=임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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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가 한달에 120만원?’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 논란

건강보험료가 한달에 120만원?’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 논란

일부 영리 목적을 가진 병원과 보험회사 등 이익단체의 수익창출만 생각해

 

이도원 기자, dig@dailyseop.com

등록일: 2007-12-24 오전 8: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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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관한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이 네티즌과 일반 국민들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왜 그토록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본지에서는 당연지정제에 관한 기획연재로 <‘건강보험료가 한달에 120만원?’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 논란>, <다큐멘터리 영화 ‘Sicko(식코)’로 본 민간의료보험 위험성>, <외국의 건강보험정책 ‘미국은 최악 아닌 극악’ >, <관련 업계에서 바라보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는 곧 공공의료정책 붕괴>등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이하 이 당선자)의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와 ‘건강보험 민영화 찬성’ 선거 공약이 인터넷 누리꾼의 도마위에 올랐다.

국내에서 시행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은 국민들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전 국민이 동일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기본의료보험으로 부자든 가난한 자든 동일하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보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개발도상국의 우수 사례가 될 정도로 높게 평가되었으며, 특히 ‘소득에 따른 보험료 측정’, ‘타 국가에 비해 낮은 보험료’, ‘전 국민의 기초의료 보장’ 등으로 <효과적 건강보험제도>로 인정받았다.

‘건강보험당연지정제’는 이러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통제하고 민간보험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 제도로 국민건강보험 가입자가 국내 모든 의료기관에서 안정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러한 제도로 국민건강보험제도와 동일한 혜택을 가진 민간보험이 국내 의료기관에서 지정될 수 없게 만들어 자칫 발생될 수 있는 ‘특정 보험 가입자의 특별 혜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 다음(Daum) 토론 게시판에 이 당선자의 보건정책은 잘못이라며 많은 누리꾼들이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선자가 선거 공약으로 이러한 ‘건강보험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건강보험 민영화’를 찬성할거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누리꾼들로부터 “미국처럼 전 국민 기본 공공의료혜택을 축소하여, 일부 영리 목적을 가진 병원과 보험회사 등 이익단체의 수익창출만 생각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 당선자가 어떤 보건정책을 가지고 있고, 어떤 제도로 국민건강보험을 보안할 지는 정확히 알려진바 없지만, 만약 일부 누리꾼들의 걱정대로 미국식 의료보험제도를 채택할 시 많은 시민단체와 복지단체 등이 거세게 반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초의료보장제도가 없고, 국민의 70% 이상이 민간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높은 보험료와 낮은 혜택으로 OECD국가 중 건강수준 순위가 23위로 최하위 권에 해당한다. 오히려 한국은 5위권이다. 또한, 미국은 전 국민의 약 16%인 4천 7백만 명이 의료보장에서 제외되었으며, 매년 2백만 명 이상이 의료비로 파산한다고 알려졌다.

다음(Daum)의 한 누리꾼(Id : 이글플라이)은 “의료보험제도 제일 최악인 나라인 미국에 있었다”며, “미국은 의사 얼굴 한번 보고 10만원이며, 4인가족 미국 보험패키지가 30만원씩 총 120만원 이다”고 밝혔다. 또 다른 누리꾼(id : *Cool~韓Guy*)은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입원했는데 총 병원비 6백만 원에 넘었지만, 국가에서 530만원을 의료보험으로 지급해줘 약 70만 원 정도 냈다. 이거 폐지하면 안 된다”며 이 당선자의 보건정책에 답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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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핀란드, 외국인도 무상교육?

요즘 뜨는 핀란드, 외국인도 무상교육?
[해외리포트] 핀란드 유학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이보영 (radahh)
 
 
  
헬싱키 대학 본부 건물.
ⓒ 이보영
헬싱키 대학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는? 정답은 의외로 핀란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올 6월 개통되는 핀란드-한국 직항 소요시간이 불과 9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 그제야 많은 사람은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일본만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핀란드도 지금까지 우리에겐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일본과의 거리가 감정적인 면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핀란드와는 상호 정보 부족에서 비롯한 거리감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야 핀란드가 여러 면에서 한국에서 이전보다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내가 핀란드로 떠났던 10년 전, 주위 분들에게 핀란드에 간다고 하면 필리핀에 가느냐고 잘못 알아듣는 분들도 있었다.

 

가깝지만 먼 나라 핀란드,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 또한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핀란드에 살게 된 지라 살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말로만 듣던 백야현상도 직접 겪으니 놀라웠고 어둡고 침침한 겨울도 놀라웠지만 모든 교육이 무상이라는 것, 그리고 자국 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 유학생까지 모두 무상으로 교육시켜준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웠다.

 

이 사실을 알고 처음 든 생각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었다.

 

20대 중반, 젊음과 꿈을 자산으로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예상했듯(?)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 하나는 '저당잡히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hock'을 찾아서 외운 다음, 결국은 그 단어를 실전에 써먹었던 일이다.

 

요즘은 유학생활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려고 해도 등록금만 천만 원에 육박하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학비 없는 핀란드 유학은 실력 있는 한국 학생들에게 대안적 교육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어 핀란드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다.

 

  
대학 합창단에서 활동했던 전환길씨가 성탄절 콘서트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 전환길씨 블로그
핀란드 유학

<장미의 이름> 계기로 '산타의 나라' 찾은 한국 청년

 

전환길씨(30)는 현재 투르크 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올 6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전씨는 특이하게도 군 제대 후 맞이한 가치관의 혼란기에 읽게 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때문에 결국 핀란드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도입부에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가 사건의 중심이 되는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서 석양이 지는 계곡을 보면서 동료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수많은 다른 다양한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아름다움을 정의하던 바로 그 대사가 한 청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씨는 이후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두게 되었고, 사회학자가 쓴 여러 관련 서적을 읽으며 사회적 다양성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다루고 소외받는 자를 아우르는 비영리단체들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래 목표도 '비영리단체 경영'으로 세우게 되었는데 그 당시 믿게 된 종교(가톨릭)도 그의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전씨는 '비영리 단체 경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봤다. 그렇지만 원하던 대학의 학과에 진학할 경우 어마어마한 비용(2년 공부를 마치는 데 드는 비용이 모두 2억 원)이 들어 미국 유학의 꿈을 접을 즈음, 우연히 대학교의 홈페이지에 뜬 핀란드 관련 정보를 클릭하게 되었고 그 곳을 통해서 핀란드 유학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찰칵!
ⓒ 전환길씨 블로그
핀란드 유학

유학생이 전하는 핀란드 생활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다음은 전씨가 전하는 핀란드 유학의 장점과 단점이다.

 

▲ 장점

 

1. 공기 좋고 물 맑다

공기가 아주 맑아서 별도 참 밝게 빛난다. 수돗물, 그냥 마셔도 상관없다. 세계에서 가장 수질이 깨끗한 나라가 바로 핀란드이다.

 

2. 안전하고 도둑도 없다

지진·태풍 등의 천재지변이 거의 없으며 테러가 발생하는 경우도 지금까지 없었다. 저녁 늦게, 자정이 넘어선 시간에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 특히나 여자들에게 발생하는 혐오스런 범죄도 거의 없다. 단지 취객만 조심하면 된다.

 

3. 학비가 없다

몇년 전 외국 학생들에게 학비를 징수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즉 외국 학생들에게도 학비는 전혀 없다. 단지 매년 학기 초 100유로 정도의 학생회비가 청구될 뿐이다.

 

4. 학생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시설좋은 학생 아파트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월 200~300유로 이내면 사용 가능하다.  방은 개인 혼자 사용하고 부엌·거실 등은 공동 시설이다. 기차·시외버스·유스호스텔을 이용할 때 절반 가격으로 할인된다. 학생 식당에서도 절반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시내버스도 학생 버스카드를 쓸 경우 절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학생의 경우 콘서트 관람을 비롯해 문화생활을 누릴 때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6. 생활비 이외에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도서구입비나 기타 문서 출력비 같은 것, 전혀 들지 않는다. 의지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다.

 

  
핀란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각국 유학생들 모습.
ⓒ www.utu.fi
핀란드 유학

7. 생각 외로 외국 학생이 많다

유럽에서도 가장 구석에 박혀 있어서 국제교류가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핀란드에는 유럽 각국에서 많은 학생이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단 자신이 먼저 다가서는 자신감과 용기, 즐거운 맘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진심어린 태도는 기본이다.

 

8. 사람들이 착하다

핀란드 사람들, 남 속일 줄 모른다. 간혹 나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길거리에 떨어진 지갑도 잘 집어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볼펜·안경, 이런 거 그냥 도서관에 잊어버리고 놔두고 가도 그 다음날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정직과 신용이 이들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9. 여름 날씨는 환상적이다

죽여준다. 평균기온 20℃ 정도로 온화한 날씨이다. 햇살도 아주 맑다.

 

10. 음식 솜씨가 저절로 좋아진다

음식점도 별로 없고 한국 음식도 구하기 어려워 먹고살려면 자기가 해먹어야 한다. 살림 솜씨가 저절로 나아진다. 나중에 마누라한테 사랑 받을 것 같다.

 

11. 고요하다

참 조용하다. 가끔 '이 나라 사람들 어디에 박혀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12. 인종 차별이 거의 없다

가끔 취객들이 기분나쁜 행동을 하는데, 그건 여기 일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인종 차별로 보기는 어렵다.

 

13. 교수님 눈치 볼 일 없다

학문적으로만 관계를 맺으면 된다. 가끔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한국과 같은 상하 수직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14. 졸업생들이 국내에서 (현재까지) 취직이 잘 된다.

아직 많은 유학생을 배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유학생 취업 현황을 살펴보면 비교적 국내 대기업 핵심부서에 취업하고 있는 편이다.

 

  
헬싱키 예술 디자인 대학 내부 모습.
ⓒ 위키피디아
핀란드 유학

▲ 단점

 

1. 겨울이 길고 추우며 어둡다

 

2. 많이 심심하다

심심할 때가 잦다. 그렇다고 딱히 막상 할 것도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3.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

그렇기에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 유학과정 중 우울증 한 번씩 다 겪는 것 같다. 또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4. 핀란드 친구 사귀기 꽤 어렵다

맘 잘 열어주질 않는다. 이 사람들의 사람 사귀는 방식이므로 그냥 이해해야 할 듯 하다. 아무튼 시간 오래 걸리고 사귀어도 허물없이 지내기에는 어렵다.

 

6. 도서관 이용이 불편하다

미국과 비교하면 일반 장서량에서 밀린다. 논문 준비 중 도서 검색하면 없는 게 많았다. 타 대학교에서 빌려보는 것도 가능하므로 이를 활용할 수는 있다. 또한 일찍 문 닫는 것도 문제다.

 

  
헬싱키 공과 대학 수업 광경.
ⓒ 위키피디아
헬싱키 공과 대학

7. 영어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

외국 학생들이 많긴 하지만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를 찾아보는 것은 꽤 어렵다. 미국에서 영어 공부하는 것보다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물론 일단은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므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8. 핀란드어 습득에 대한 매력이 없으나, 영어만 하고 살기에는 2% 부족하다

전 세계에서 600만 명 정도만 핀란드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핀란드 지역전문가나 장기거주 이외의 체류라면 핀란드어에 대한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학교 수업 역시 영어로 대부분 이루어진다. 단 기초 과목이 핀란드어로 운영될 수 있지만 교수와 상의 후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핀란드어를 모르면 불편한 일이 자주 생긴다. 슈퍼마켓이나 상점에서 영어가 완벽히 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핀란드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거나 핀란드인 단체에 가입하고 싶으면 어느 정도의 핀란드어 지식은 필수적이다.

 

9. 물가가 비싸다

북유럽 물가, 널리 알려진 대로 비싸긴 하다. 하지만 각종 학생 할인 혜택으로 방 월세 포함해서 500유로(한화 70만~80만원)면 그럭저럭 한 달 생활이 가능하다.

 

  
헬싱키 공과 대학 전경.
ⓒ 위키피디아
헬싱키 공과 대학

10. 한국 식품 조달이 쉽지 않다

헬싱키 최초 한국 식당이 2005년 여름에 개업했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이 매일 식당에서 사먹기는 어렵다. 식재료의 경우 라면·고추장· 된장처럼 간단한 것은 헬싱키 아시아 음식 상점에서 구입 가능하지만 보통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많다. 요즘은 독일 등의 한국 음식재료 도매상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가 있어서 사정이 훨씬 좋아지기는 했다.

 

11. 학위 취득 기간이 자칫 늘어나기 십상이다

자율성이 많이 주어져서 자신이 잘 조절하지 못하면 공부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전환길씨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핀란드 한국 유학생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이 내용에 공감하는 다른 유학생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 때 달린 재미있는 댓글을 몇 가지를 소개한다.

 

"A : 좋은 글이네요^^.

B : 중앙일간지에 내도 되겄다. 장점에 바퀴벌레나 쥐 없다고 하나 추가해도 되겠다.  

C : [원츄] 이런 글은 한국의 각 대학들을 돌며 게시판에 좀 뿌려주도록.  

D : 죽인당!! 잘 썼어. 공감 가는 내용 많은데, 저두. 장점에 집은 특히 천장이 높아서 넘 좋다 추가해주셔요. 또 전철에 사람이 깔려, 하이힐에 발등 찍혀 피 질질 흘리지 않아도 된다도."

 

대학교육 경쟁력 평가에서 수위를 다투는 핀란드

 

  
유럽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 음악원.
ⓒ 이보영
시벨리우스 음악원

여기에 마지막으로 기자가 생각하는 장점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핀란드 대학은 세계경제포럼(WEF) 세계경쟁력 보고서와 스위스경영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중 대학교육 경쟁력 부분에서 몇 년째 계속 1~2위를 다툴 정도로 수준이 높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앞으로는 전공 분야가 훨씬 다양해지겠지만) 현재까지 한국 유학생이 주로 유학 오는 분야는 경영경제학, 공대, 제지학, 그리고 디자인 계통이었다.

 

경영경제학과와 공대는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로 영어로 개설된 강좌가 상대적으로 많아 유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디자인의 경우는 '헬싱키 예술디자인 대학'이 세계에서 앞서가는 디자인 전문대학이어서 디자인을 전공한 한국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고, 제지학의 경우는 핀란드가 세계 제1의 제지기술을 자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진기술 습득을 위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핀란드로 유학을 오는 것이 정석인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 핀란드 유학 관련 사이트 소개>

http://www.suomikorea.com/new/kosafi/index.shtml
(핀란드 한국 유학생회 홈페이지)
http://www.studyinfinland.fi/
(핀란드 유학 관련 전반적인 정보)
http://finland.cimo.fi/studying/international_study_programmes.html
(핀란드 대학, 대학원에 영어로 개설된 전공이나 강좌 검색 가능)
https://www.admissions.fi/
(핀란드 내 모든 폴리테크닉 대학을 온라인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 현재 2008년 가을학기 지원을 온라인에서 받고 있다. 마감은 2월 15일이다.)

2008.02.0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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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아니라 큰 희망입니다&quot;

 

 

 

재앙이 아니라 큰 희망입니다"
[기고] 좌파가 '붉은 파시스트'들과 동거를 끝낸 건 잘된 일
 
 
 

이 글의 필자 Daniel Courant(필명)은 3년 전부터 한국에 거주해온 프랑스 68세대로, 그는 최근 민주노동당 '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그는 이 글에서 현재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좌파 정당에게는 일종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붉은 파시스트'와의 결별을 뜻하난 탈당 행렬은 좌파정당을 위해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절망과 분노로 탈당하거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진보정당'이라는 미래까지 버리지 말라고 호소한다.

유럽 좌파의 눈에 비친 민주노동당 또는 한국 진보정당의 현재의 모습은 당연한 분화이며 희망을 주는 좋은 기회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한 유럽인의 시선을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유럽 좌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동의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격한 반발도 예상된다. 결국 독자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반응은 큰 편차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을 관심과 호의를 가지고 지켜 보아온, 그리고 자신의 애정을 '기고'를 통해서 실천한 그의 말은 충분히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받아만 준다면 기꺼이 새롭게 건설될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다는 유쾌하고 급진적인 '생활 좌파'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숙주삼아 기생해온 무리들이 급기야 당을 삼켜버린 재난 때문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완전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게시판은 그들의 탈당을 전하는 당원들의 글로 가득 차 있다. '주사파'들의 완벽한 아성이 되어버린 당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매우 걱정스러운 점은 많은 동지들이 한국과 전 세계를 둘러싼 암울한 정치적 미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이라는 미래마저 져버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이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다. 정말이다. 의아해 할 것 없다, 동지여. 화내지 말고 끝까지 읽으시길. 잘 알다시피, 놀라운 역사의 배반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이번엔 역사가 또 한 번의 가혹한 시련을 예비해 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물을 준비해준 듯하다.

I

물론 우리가 느끼는 절망은 자연스럽고 충분히 이해되는 현상이다. 수 년, 수십 년 간의 헌신과 열정, 인내를 쏟아 부은 진보정당의 건설이 몇 달 만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를 이러한 절망감에 침몰되도록 놔두고, 이 절망이 우리로 하여금 이 사회의 변혁을 위한 노력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게 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좌파의 강력한 두 적대 세력이 완전하고 결정적으로 승리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된다.  

그 두 가지 세력은 역사적으로 여기저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도 사실상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전형적이고 ‘적나라한’ 우파 반동세력이고, 또 하나는 혁명주의자들로 위장한 ‘붉은’ 파시스트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좌파운동을 좀 먹어왔던 각양각색의 교조적 스탈린주의자들이 그들이며, 한국엔 주사파가 그 역할을 해왔다.

우파 반동과 붉은 파시스트

역사적 정황은 분명하다. 10월 러시아 혁명 이전에, 모든 해방을 향한 운동을 억압해온 주체가 전자인 우파 반동세력이었다면, 러시아혁명 이후로는 정치적, 사회적 반역의 상당 부분을 후자가 나누어 담당해 왔다.

그러므로, 방금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이 같은 반역이 얼마나 자주 실현되어 왔는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절망으로 두 팔을 다 내려놓음으로써, 이 뻐꾸기(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놓고, 다른 새들이 자신의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다른 새의 새끼들을 둥지 바깥으로 내모는)들의 승리를 완성해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물론 당에 뻐꾸기들이 침투하게 한 그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1~2분 정도만. 그리곤 전진!). 그리고 이 파괴자들의 끊임없는 침투를 어떻게 차단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민주노동당 후보로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서울 지역 위원장들과 예비후보들. 전국 곳곳에서 탈당의 봇물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점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앞서 말했던 그 ‘선물’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이 재앙을 완벽한 긍정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역설이 존재한다. 한국사회는 절망적인 다른 사회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 감히 말하건대, 한국 좌파의 현 상황은 비할 수 없이 선명하고, 환하게 열려 있다.

II

다른 사회는 더 심각한가?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절망할 필요는 없는가, 완전히 다시 시작할 조건들이 갖춰졌단 말인가? 물론! 농담인가? 전혀….

대부분의 다른 사회에서 진정한 좌파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세력을 강건하게 구축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 미국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똑 같은 두 개의 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이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며, 단 한 번도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결코 민주주의가 되고자 한 적도 없다. 잔인한 과두정치 체제일 뿐이다.

그토록 강성했던 좌파를 가졌던 유럽,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야만적 자본주의가 승리의 찬가를 외치게 된 이후의 유럽은 또 어떤가? 전통 좌파는 이제 그 허울만 남아 있을 뿐이고,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열망에 호출된 새로운 좌파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전통 좌파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유럽의 세 가지 전통 좌파

첫 번째는 노골적으로 정체성을 배반하고 우경화한 집단이다. 이들은 사회연대의 파괴와 자본가들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능동적으로 기여하며 자족하는 집단이다. 프랑스와 유럽 전체의 사회당들,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와 독일의 녹색당 등이 그것이다. ‘사회주의자’는 이제 그 이름 뿐이고, ‘좌파’는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 한때 유럽 최대 정당이었던 이태리 공산당.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마저 사라져버렸다.
 

두 번째 그룹은 여전히 약간은 좌파의 냄새를 풍기나, 종종 우파와 연합하고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로 아직도 스탈린주의의 정신과 습성을 버리지 못한 공산당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완전히 정치적 신망을 잃었고, 당원들은 거의 떠났으며, 그들에게는 가상의 존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제1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에는 완전히 그 이름을 바꿔 버리고, 자본주의를 위해 역동적으로 활약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유럽은 미친 걸까? 아니, 미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세계 전체다.

한국에는 이처럼 거추장스러운 좌파의 유산이 없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잠깐만, 동지. 이제 곧 이야기할 테니.

유럽의 전통좌파에서 세 번째 그룹이 남아 있다. 공산당 밖의 전통적인 극좌그룹이 있다. 68이 잠시 그들에게 젊음을 불어 넣기도 했으나, 이들은 두 세계대전 사이의 상황의 계승자 (러시아혁명 이후 스탈린과 트로츠키 등으로 분화된 노선 투쟁)로 여전히 머물러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무관한 이론투쟁에 파묻혀 있고, 대중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하물며 지금의 새로운 세대와 현상에 걸맞는 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하기에는 더욱 역부족인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사용자의 파트너로 전락한 노조들

노조들도 배반과 타협의 길로 나섰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눈부시게 급진적이며 공산당의 교조주의에 치를 떨던 활동가들로 조직되었으나, 지금은 사용자들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로, 완벽한 어용으로 전락한 프랑스 최대노조 CFDT를 들 수 있다.

나머지 노조들은 대체로 말랑말랑하고, 은밀한 타협에 현혹되어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건강한 운동의 흐름을 차단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전체적으로 운동을 마비시키는 이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새로 조직되는 노조들이 새로운 연대조직(예를 들면 노조연대체인 SUD)을 꾸리게 할 만큼 상황은 숨막힌다.

많은 활동가들, 좌파적 성향의 시민들, 유권자들은 이 모든 조직들을 피하고, 이들을 우울한 가면극처럼 바라보며, 좌파의 모든 역량을 모아 새로운 정치적 형태를 구축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행해진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세력의 구축은 여전히 가시권에 들어와 있지 못하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전통 좌파들이 남겨놓은 삼중의 유산인 배반, 동맥경화, 분열은 현재로선 너무 큰 걸림돌이다.

III

그럼, 왜 한국의 상황은 덜 절망적인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역사적 유산은 매우 다르며, 따라서 전망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좌파는 한국사회에 가해져 왔던 네 가지의 주된 억압에 의해 ‘강력하게’ 성장할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일본으로부터의 적대적인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식민지화, 곧 이은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종교적 경제적 문화적 식민지화, 남한 정부의 자본주의 독재, 해방 직후 북한에서 뿐 아니라, 남한사회에서도 좌파 활동가들과 지도자들을 말살시키는 데, 주된 역할을 맡았던 김일성의 붉은 파시즘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커다란 공백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어쩌면 이 거대한 공백의 덕에, 너무 많은 좌파의 흔적들을 가진 유럽의 경우와 정반대로 (PD와 NL이 한 지붕 아래 사는-편집자)민주노동당이라는 공개적인 좌파의 단일한 연합체는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합적이며 동시에 개방적인 정신 덕에, 민주노동당은 대중들에게 그토록 큰 희망과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한국에선는 이런 개방성이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질 수 있었지만, 좌파의 흔적이 많은 유럽에서라면 전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기억하시는지, 2004년 원내진출 직후, 22%에 달하는 지지율을 기록했었음을. 좌파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이처럼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이 같은 역사적 이변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정말로 놀랍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 좌파의 정치적 풍경이 지니는 선명함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아마도 당시 정파 연합 속에 담고 있는 위험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방되어 있는 좌파연합이란, 유럽인의 눈에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거기엔 좌파로 가장한 지독히 반동적인 세력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실, 굳이 ‘가장’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들은 단지 명칭을 좌파로 차용할 뿐, 그들의 사상이나 반동적 사고는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상적 불량배들과의 동거가 끝났다

한국에는 붉은 주사 파시스트들이 있었고, 민주노동당은 어리석게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 의해 침범당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가장 크게 위협한다고 여기는 것을 파괴하는 일에 특히 능한 자들이다. 이들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좌파이다.

왜 민주노동당을 침탈한 자들의 승리가 우리를 절망시키기보다는 고무시키는 사건이어야 하는가? 사상적 불량배들과 함께 했던 우리의 오염되고 위험한 동거의 모순이 이제는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주사파가 없는, 주사파에 적대적인, 모두의 눈에 투명하고 진정한 좌파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주사파들은 자연스럽게 썩은 과일처럼 역사의 쓰레기통 속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반면, 우리는 이제 모든 층이 창조적인 생각과 실천으로 가득한, 넓고 건강한 집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일찍이 구축할 수 없었던 이 새로운 상황의 선명함, 그것을 갖지 못했기에 22%에서 3%로까지 굴러 떨어졌고, 결국은 우리를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으나, 그것을 갖게 된 지금을 역사적인 기회로 간주할 수 있으며, 간주해야 한다.

오늘이 좀 더 일찍 다가왔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다. 우리는 치료 불가능한 악성 종기를 앓고 있었고, 가능한 한 빨리 그 종기가 곪아 터지는 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린 이 역사적 기회를 얻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주 비싼. 과거의 유령들과 족쇄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내부의 걸림돌들을 모두 제거한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진정한 좌파정당을 만들기에 이토록 호의적이고 분명한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린 드디어, 우리의 내부를 갉아먹던, 모두가 보았지만 금기로 존재하던 암 덩어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 재앙은 우리 앞에 탁 트인 새로운 풍경을 열어준다. 이는 우울한 이야기의 슬픈 마지막 에피소드가 아니며, 우리가 앞으로 써갈 매우 근사한 이야기의 활기에 넘치는 전주곡이다. 우리가 약간만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 엄청난 희망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지금 잘 보시다시피 주사파는 신도 없는 사이비 종교일 뿐. 몇 달 뒤 그들은 무(無)의 세계에 침몰할 것이며,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2008년 02월 06일 (수) 10:00:47 Daniel Co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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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민노당 자주파, 정상적인 사람들 아니다”

 

 

진중권 “민노당 자주파, 정상적인 사람들 아니다”
 
“평등파는 열정이 부족하고 단결이 잘 안 된다” 일침
 
입력 :2008-02-05 10:24:00  
 
 
   
 
  ▲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자료사진) ⓒ 데일리서프라이즈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재훈 기자] 대표적 진보논객으로 손꼽히는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가 5일 민주노동당의 분당원인이 당내 자주파의 독선적 행보에 있음에 무게를 실었다.

이날 진 교수는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와의 인터뷰를 통해 특유의 직선적인 화법으로 민노당 내 자주파를 도마 위에 올려 맹공을 퍼부었다.

진 교수는 우선 “(민노당원으로 있다가) 2003년경에 탈당을 했다. 그 사람들(자주파)이 집단으로 당에 들어오고 있을 무렵”이라며 “그것을 항의하기 위해 탈당한 것”이라고 민노당원이었던 자신이 당을 떠난 배경을 설명했다.

뒤이어 진 교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주파에 대한 전반적인 모순점에 대해 열거 “이 사람들(자주파)은 절대 토론 같은 것을 안 한다. 논리가 안 통하는 사람들”이라며 “오직 (인원)수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가족, 조그만 애들까지도 당원으로 가입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Paper 당원’을 확보, 수적우위를 통해 전체 당 조직을 장악해 나간다는 것.

이어 진 교수는 자주파의 종북주의 성향의 강도를 묻는 질문에 “완전히 북한을 상전으로 모시는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고 북한이 자주적이라는 것이이 자주파의 생각이다. 북한을 중심으로 자주적이지 못한 남한을 해방시킨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 교수는 “그러다 보니까 민주노동당은 북조선 노동당의 지도를 받아 움직이는 일종의 통일전선체로 보는 게 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진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민노당이 참패를 한 원인에 대해 “자주파 입장에서 심상정이나 노회찬은 평등파이지만 권영길 씨는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권영길 씨)에게 조직적으로, 집단적으로 몰표를 던져서 뽑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등파인 심상정, 노회찬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으로써 권영길을 선택했다는 진 교수의 설명.

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된 원인에 대해 “자주파에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 쪽(자주파)에서는 내세울 만한 정책을 내거나 비전을 내거나 대중적인 무슨 능력이 있거나 이런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와 함께 그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다시 하나가 되기는 힘들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진보진영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핵무기를 정당하다고 얘기하고 또 조선노동당을 비판하면 그것은 북한 민족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동성애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의 퇴폐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아울러 진 교수는 평등파를 중심으로한 새로운 진보정당에 동참의사를 분명히 한 뒤 “옛날에 정말 힘들게 (민노당을) 건설했다. 그러니까 이제 (창당) 엄두가 안 난다는 측면이 있다”며 “그래도 진보는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에 (민노당을 창당)했던 대로 또 다시 시작을 해야 할 것”이라고 신당 건설의지를 분명히 했다.

진 교수는 평등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열거 “종교집단 같은 성격이 강한 자주파에 비해 열정이 부족하고 단결이 안 된다. 대중성도 떨어진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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