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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자유주의 종언…'오바마노믹스' 뜬다

 

 

新자유주의 종언…'오바마노믹스' 뜬다

세계일보 | 기사입력 2008.11.05 20:37



'오바마노믹스'의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가를 지배해왔던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고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성싶다. 오바마노믹스는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며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경기부양과 저소득층을 지원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시장의 자율과 개방화, 감세에 치중해왔던 신자유주의와는 배치된다.

무엇보다 오바마 당선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경제와 국제금융흐름의 큰 변곡점에 서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당장 위기에 처한 미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1930년대 대공황 때의 뉴딜정책에 버금가는 경기부양책을 마련해야 하고 허물어진 금융 재건작업에도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향후 5년간 국제금융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발등의 불, 경제살리기=경기불황과 금융위기는 오바마 당선자에게 떨어진 가장 화급한 과제다. 경기불황은 차기 대통령이 직면한 가장 큰 경제적 도전이며 당선자가 취임 전이라도 주요 경제정책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4일 보도했다.

재계와 의회 내에서는 차기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계획을 조기에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 상원 은행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통령 당선자가 곧바로 재무장관을 내정하고 그를 중심으로 경제팀을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당선자가 취임 때까지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 정권교체가 초고속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 측은 이미 1932년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뉴딜정책 내용과 타이밍까지 면밀히 연구하며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금융 분야에서는 파생상품 규제가 한층 까다로워지고 금융 감독과 감시도 대폭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넘어야 할 산 많아=그러나 경제·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바마 당선자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오바마노믹스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고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경기부양에 나서고 보호무역주의도 대폭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보호무역 강화로 미국 제조업체가 활기를 되찾으면 세금도 늘어 재정수지가 좋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금융위기 여파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마당에 현실적으로 막대한 경기부양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불황 속에서 부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기가 쉽지 않는 데다 적자 국채 발행도 자칫 금리 급등 등 금융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노믹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주춘렬 기자 clj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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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종부세에 '사형 선고' 내릴 셈인가&quot;

 

헌재, 종부세에 '사형 선고' 내릴 셈인가"
  [기고]종부세 세대별 합산은 합헌이다
 
  2008-11-03 오전 11:20:23
 
   
 
 
  종합부동산세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11월 중에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종부세 고지서 발송일이 이달 25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헌재가 그 이전에 특별선고기일을 잡아 종부세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선고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번에 내려질 헌재의 결정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세대별 합산과세 방식에 대해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가 과세기준 상향, 세율인하 등을 통해 종부세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마당에 세대별 합산 과세 방식이 위헌결정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게 되면 종부세는 이름만 남고 깨끗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는 주장의 근거들
  
  세대합산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우리 헌법상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헌법 제10조),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토록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36조 제1항)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더 나아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하며, 모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법률로 제한할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헌법 제37조)한 과잉금지의 규정도 근거로 들고 있다.
  
  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 시 부부의 이자소득을 합산해 (누진세율의 고율로) 과세한 것이 2002년 8월 29일, 헌법 제36조 제1항(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을 위배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것을 감안하면 자산인 부동산을 세대 합산할 경우 위헌이라는 취지다. 즉, 종부세는 세대합산으로 인해 그렇지 않다면 과세대상이 아니었을 세대원 소유의 부동산이 종부세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세율 역시 누진구조로 인해 더 높아지기 때문에 혼인과 가족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했다는 것이다. 또한 세대합산을 하는 이유가 세대원간 자산의 분산소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이는 별도의 증여세 등으로 세금을 부담시킬 일이지 합산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라는 점도 덧붙인다.
  
  세대별 합산이 합헌인 이유
  
  세대합산이 합헌이라는 주장은 먼저 종합부동산세의 목적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종합부동산세는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여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은 헌법 제119조 제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경제 조항을 직접적인 근거 규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부동산세의 세대합산 규정은 단순히 혼인 여부에 따라 불평등이 발생했는가 아닌가, 혹은 세대 간의 공동생활에 따른 과세 금액의 차액이 발생했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해야 한다는 헌법의 명령에 충실한 것인가 하는 점이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경제 조항의 경우 입법부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된다. 왜냐하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위를 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합부동산세의 세대합산 규정은 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정의 보호 규정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헌법 제119조 2항의 규정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합헌적인 규정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세법은 그 특성상 전문성과 기술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즉, 과세대상의 바탕인 경제현상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거래 금액이나 소득 금액 및 물량의 포착에 있어 복잡하고 기술화되어 갈 뿐 아니라 경제현상의 발전과 더불어 날로 지능화하는 조세회피행위에 대한 대처를 고려해야 한다. 또 세법은 재정수요의 충족 외에 경제의 안정과 성장 등 경제정책적 기능도 고려한다. 즉 다른 법률에 비해 세법은 더 많은 입법의 재량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도 종합부동산세는 그 목적에 비추어 다른 법률에 비해 광범위한 입법의 재량권을 가지고 있고 혼인과 가정의 보호 규정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세법 자체로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세대합산이 합헌이라는 주장은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종부세 세대별 합산규정이 비록 차별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119조 2항의 규정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정당한 차별이기 때문에 헌법 11조 1항 및 36조 1항을 위반하지 않았고 따라서 합헌이라는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술하자면 대한민국 헌법은 합리적인 이유에 의한 차별을 허용하고 있는데 합리적인 이유에 의한 차별인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첫째, 차별취급을 하는 목적이 정당한지(목적의 정당성), 둘째, 방법이 적절한지(방법의 적정성), 셋째, 차별취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익이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에 비해 더 우월한지(협의의 비례원칙) 등을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은 합리적인 차별의 기준이라 할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협의의 비례원칙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합헌이다.
  
  ① 목적의 정당성
  
  먼저 세대별 합산이 목적의 정당성을 어떻게 충족하는지 살펴보자. 만약 종부세를 인별 과세로 전환할 경우 종부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자들이 속출할 뿐 아니라 부부공동명의 및 세대원 명의로 광범위하게 명의이전이 일어나 사실상 종부세가 형해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여 부동산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종부세법 제1조)라는 종부세의 입법취지를 근저에서부터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쉽게 말해 세대별 합산 과세는 단순히 조세회피 방지 등의 과세기술 혹은 행정기술상의 관점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고 종부세의 입법목적달성을 위한 핵심 요소라는 관점으로 접근함이 옳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는 목적의 정당성을 충족시킨다.
  
  참고로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주택분 종부세 납부자는 모두 37만9000명이었다. 이 중 세대별 합산 방식으로 공시가격 6억~12억 원 주택을 보유한 세대는 30만5000세대였다. 만약 종부세를 현행 세대별 합산에서 인별 합산으로 바꿀 경우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격감하게 된다. 여러 명의 세대 구성원 명의로 된 주택은 합산되지 않는 데다, 부부 공동 명의로 된 고가 주택 보유자들은 공시가격 12억 원 이하면 남편과 아내가 각각 6억 원 미만의 주택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종부세 납부 대상에서 자동으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와 한나라당이 발표한대로 주택분 종부세 과세기준을 9억 원(공시가격)으로 올리게 되면 18억 원 이하 주택을 공동으로 소유한 남편과 아내는 각각 9억 원 미만의 주택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종부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단독 명의로 고가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부부 공동 명의 혹은 세대원 공동 명의로 바꾸면 손쉽게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배우자 증여 방식으로 명의를 변경하는 경우 6억 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기 때문에 명의 변경에 대한 부담도 전혀 없다.
  
  한편 공시가격 기준 12억 원이 넘는 주택을 보유한 세대조차 부부 공동 명의로 변경할 경우 종부세 부담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게 되고 3명 이상의 세대원 명의로 변경할 경우는 아예 종부세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 지난해 공시가격 기준 12억 원이 넘는 주택은 7만4000세대였다. 결국 종부세 부과 방식을 세대별 합산에서 인별 합산으로 바꾸면 부동산 투기 억제의 중핵이라 할 종부세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효과를 낳게 되는 셈이다.
  
  ② 방법의 적정성
  
  다음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이 방법의 적정성을 충족하는지 살펴보자. 일각에서는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 분산과 같은 가장행위 등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증여의제·증여추정 등을 통하여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증여세는 취득과세이고, 종합부동산세는 보유과세로서 과세의 근거와 취지를 달리하고 있다. 또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과세의 실효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부부간, 세대 간 합산과세의 현실적인 필요성이 존재하는 점, 부부간 증여의 경우 6억 원이라는 공제가 인정되고 증여세가 단계별 누진세율을 채택해 과세표준이 5억 원 이하인 경우 세율이 20%(지난 9월 1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따라 현재 과세표준별로 10~50%인 세율이 내년에는 7~34%로, 내후년에는 다시 6~33%로 인하된다.
  
  한편 현행 과표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인 세율을 5억 원 이하의 경우 일률적으로 6%(2010년)를 적용함으로써 과표가 5억 원인 경우 세금 부담이 9,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무려 67%나 줄어들게 된다)에 불과해 장기간의 높은 종합부동산세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증여세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감안할 때 증여세 등 기존의 제도로는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 분산과 같은 가장행위 등을 막을 수 없다.
  
  부부간 혹은 가족구성원 간에 조세회피를 위해 이루어지는 부동산의 분산소유행위는 증여세의 부과를 통해 방지할 수 있는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4조 1항에 의한 부부간 또는 직계존비속 간의 증여행위에 대해서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규정으로, 종합부동산세 등 최근 강화되는 보유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부부나 직계존비속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명의신탁 또는 분산소유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법률상 구성 요건으로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에게 양도한 재산"이라고 규정되어 있어서 기존에 소유하던 부동산의 명의를 부부 상대방이나 가족구성원으로 바꾸는 행위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지만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이 분산 소유를 목적으로 부동산을 신규로 취득하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부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 분산과 같은 가장행위 등은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자소득·배당소득·부동산임대소득과 같은 자산소득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부나 직계존비속 간에 부동산을 분산 소유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특히 부부 상호 간에는 명의신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현행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8조는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명의신탁행위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이 규정은 부부간의 명의신탁행위를 통해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오랜 관행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조세포탈이나 강행법규의 회피 등의 목적이 없다면 부부간의 명의신탁행위를 적법한 것으로 보고 그에 따르는 법적 효과를 부여하겠다는 취지를 갖는다. 그런데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은,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명의신탁의 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있으나, 이를 과세관청이 입증하기가 어려운 아니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즉,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가지고는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분산과 같은 가장행위 등을 방지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점들을 감안하면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은 방법의 적정성도 확보한 셈이다.
  
  ③ 협의의 비례원칙
  
  마지막으로 세대별 합산이 협의의 비례 원칙을 만족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부동산의 소유 편중 현상이 극심하다. 2006년 10월 정부에서 발표한 "2005년 토지소유 현황 통계"를 보면 2005년 말 기준 우리나라 땅 부자 가운데 상위 10%(약 500만 명)가 차지하고 있는 토지 면적은 전체 개인 소유 토지의 98.3%이며, 상위 1%(50만 명) 소유의 땅은 5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 현재 주택보급률은 105.9%로 집이 남아도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자가 보유율은 간신히 60%를 넘고 있다. 또한 전체 가구의 1.7%인 29만 세대가 집을 5~20채씩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 중 다주택자의 분포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면 부동산 소유 편중도의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종부세 대상자 중 '다주택 보유자'는 23만2000세대로서, 개인 주택분 37만9000세대의 61.3%이며, 세액 점유율은 71.6%에 해당한다. 또한 다주택자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수는 97만8000호로, 전체 종부세 과세대상 주택 112만5000호의 86.9%에 이른다.
  
  한편 종부세는 극소수의 부동산 과다 보유자들만 납부한다. 2007년 행자부 통계를 보면 종합부동산세의 납부 인원(그동안은 신고납부였으므로, 정확히는 신고대상 인원)은 2007년 기준으로 48만6000명이며, 주택분은 38만3000명이다. 주택분에서 법인을 제외하면 세대로는 37만9000세대로 주민등록상 전체세대의 2.0%('06년은 1.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를 다시 주택을 소유한 세대와 비교하면 3.9%('06년은 2.4%) 수준이다. 또한 이들이 부담하는 보유세도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2007년 통계 기준으로 보면 공시가격이 6억 원일 경우 실효세율(부동산 가격 대비 보유세)은 0.26%, 7억은 0.34%, 10억은 0.52%, 25억은 1%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종부세는 공공재산적 성격이 강한 부동산을 과다보유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설령 세대별 합산으로 인한 차별취급이 발생한다 해도 이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공공복리,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통한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 등―이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이 협의의 비례원칙을 충족시킨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헌재.대법원, 경제생활의 관점에서 부부나 가족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
  
  한편 경제 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부부나 가족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해야 한다는 생각은 세법의 여러 곳에 드러난다. 이 생각은 소득세법상의 각종 인적공제에 드러나듯 입법부의 생각일 뿐 아니라 우리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득세법은 배우자가 있는 거주자와 배우자가 없는 거주자를 차별해 전자의 경우에만 배우자분 소득공제 등 여러 가지로 세금부담을 경감한다(소득세법 제50조, 제51조, 제52조). 또 상속세 및 증여세법 역시 배우자에 대한 증여나 상속은 다른 사람에 대한 증여와 상속과는 달리 배우자를 우대한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9조, 제20조, 제53조).
  
  경제생활의 관점에서 부부 또는 가족구성원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해야 한다는 견해는 헌재의 다른 결정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헌재는 지난 1997년 이혼에 따르는 재산분할에 관해 일정한 한도를 넘는 부분에 대해 이를 남편이 부인에게 증여한 것으로 의제해 증여세를 부과하던 구 상속세법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면서 "이혼 시의 재산분할제도는 본질적으로 혼인 중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공동재산의 청산"이며, "자신의 실질적 공유재산을 청산 받는 것"이라고 결정했다(헌재결 1997.1.30. 96헌바14). 우리의 경험상 혼인 중 형성되는 재산의 상당부분은 부부 쌍방의 협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소유 명의가 어느 일방에 귀속되어 있는 경우 재산분할은 이러한 실질적 공유재산을 청산함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역시 부부 중 일방이 상속받은 재산이거나 이미 처분한 상속재산을 기초로 형성된 부동산은 이를 취득하고 유지함에 있어서 상대방의 가사노동 등이 직·간접으로 기여한 것이라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대판 1998.4.10. 96므1434).
  
  부부일방의 특유재산일지라도 다른 일방이 적극적으로 그 특유재산의 유지에 협력해 그 감소를 방지했거나 그 증식에 협력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대판 1998.2.13. 97므1486). 더 나아가 대법원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 남편 소유의 부동산 중 대지가 남편소유의 주택을 매각한 대금을 기초로 구입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그 대지가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임을 인정함에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고, 가사 그것을 남편의 특유재산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결혼 이후 남편이 이를 취득하고 유지함에 있어서 처가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가사노동과 가사비용의 조달로 직접·간접으로 기여하여 특유재산의 감소를 방지한 이상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대판 1994.12.13. 94므598).
  
  이상과 같은 헌재의 결정례와 대법원의 판례를 종합해 보면 부부간에 이룩한 재산은, 비록 그것이 부동산의 경우에도 부부라는 일종의 생활공동체로부터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간에 부동산을 대상으로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명의신탁 등을 고려할 때 종합부동산세의 과세단위를 부부 또는 세대별로 합산하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으로서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경제생활의 현실을 볼 때, ① 부동산의 경우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얻는 데 비해, 이자소득 등 자산소득은 원칙적으로 그 명의자에게 귀속되므로 다시 배우자나 가족에게 분배되는지 여부가 불명확하고 ② 부동산은 세대의 거의 유일하고 가장 큰 재산으로서 대부분 부부가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공동으로 형성해 온 재산이며 사실상 세대 사이에 공유의식이 있는 데 비해, 이자소득 등 자산 소득은 가장 큰 재산이거나 유일한 재산이 아니고 부부가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형성한 재산이라는 관념이 없어 사실상 공유의식이 높지 않다는 점 ③ 이에 따라 판례도 오랜 기간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라는 점을 들어 특히 부동산에 대해 재산분할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부동산에 대해 세대합산을 통한 과세를 하는 것에 합리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협의의 비례원칙을 모두 충족시키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정당한 차별이라 할 수 있으며, 세법과 헌재의 결정례 및 대법원 판결을 종합해 볼 때 경제생활의 관점에서 부부 및 가족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하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확립된 원칙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방식의 위헌성은 기각된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부부 자산소득합산과세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기 때문에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과세방식에 대해서도 위헌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토지는 예금이나 주식과는 다른 성격의 재화로서 생산이나 대체가 불가능하며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모든 국민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으로서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강하게 관철되어야 한다는 점, 주택 역시 토지의 공급제약 및 효율적인 도시계획 등의 제한을 받으므로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토지 및 주택에 있어 수요공급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인해 토지 및 주택가격의 상승과 투기현상이 예금이나 주식 등 다른 재산권에 비해 현저하다는 점, 대한민국 헌법이 토지재산권에 대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 소득세에 있어서 부부 자산소득합산과세의 입법취지는 인위적인 소득분산에 의한 조세회피방지행위를 방지하는데 있다. 반면, 종부세 세대별 합산과세의 취지는 단순히 조세회피방지라는 기술적, 행정적 목적이 아니라 투기목적의 주택보유를 막고 실거주 목적의 주택보유를 유도·형성하기 위한 정책유도적 목적에 주목적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목적은 일련의 헌법규정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런 예상은 옳지 않다.
  
  헌재는 역사에 죄 짓지 말길
  
  위에서 조목조목 살핀 것처럼 종부세 세대별 합산은 대한민국 헌법에 정확히 부합한다. 만약 세대별 합산과세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는다면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및 투기억제의 핵심장치라 할 종부세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는 셈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종부세 세대별 합산이 합헌임을 결정해 경제문제에 관한 한 지극히 보수적이었다는 그간의 오명을 씻길 바란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종부세법의 입법취지에는 동의하면서 세대별 합산이라는 과세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종부세를 형해화시킨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임과 동시에 헌법재판소가 2%의 '강부자'들만을 위한 헌법기관임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행위라는 점을 헌법재판관들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부동산 신화는 없다>(후마니타스 2008)와 민변의 "종부세 위헌 심판에 대한 의견서"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태경/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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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일본처럼? MB정부의 위험한 도박

 

 

90년대 일본처럼? MB정부의 위험한 도박
  [기고] "건설족 경제관료들의 무지와 독선, 위기극복 장애물"
 
  2008-11-03 오전 10:43:36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31일 "아파트가 아닌 지방 SOC 사업같은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사업을 할 것"이라며 토목공사 확대를 예고했다. 그는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프레시안>, 10월 31일)
  
  무지와 독선.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위의 두 단어들을 추천하겠다. 도무지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 벽창호들. 이번 글에서는 박병원 수석의 31일 발언이 담고 있는 '무지와 독선'의 실체를 해부해 보기로 한다. (☞관련 기사: 박병원 "경기유발, 내수진작엔 건설이 최고")
  
  산업연구원 "건설 투자의 소득창출 효과는 사회보장 지출에 크게 못 미쳐"
  
  박병원 수석은 오래 전부터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건설사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해 온 대표적인 건설족 경제관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이런 주장들은 일고의 가치도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 주장인지 알아보려면 진보진영의 연구보고서까지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국책연구소 중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만 들여다 보아도 그의 주장의 허구성은 드러난다.
  
  산업연구원은 2003년 6월, <재정지출 확대정책과 산업별 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재정지출이 산업별로 어느 정도의 소득을 창출하는지 그 효과를 추정한 바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표는 그 보고서 내용 중의 일부분이다.
  

  위의 표를 보면 공공행정 및 사회보장 분야 등에 대한 정부 지출 1조 원은 최소 2475억 원에서 최대 3276억 원에 이르는 소득을 창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건설업에 대한 정부지출 1조원의 소득창출효과는 최소 1883억 원에서 최대 2023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산업연구원의 2003년 보고서는 박병원 수석을 포함한 건설족 경제관료들의 반복되는 주장과 달리 건설업의 대한 정부지출의 경기활성화효과는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복지지출에 비하여 매우 작은 편이라는 것을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박병원 수석, 건설투자의 특수성을 모른다"
  
  박병원 수석의 오류와 독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국민계정에서 말하는 건설투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건설투자는 설비투자와 달리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설비투자의 경우, 경제주체들이 2007년에 80조 원을 투자했다고 하면 그것은 곧 경제주체들이 80조 원에 달하는 기계류나 운수 장비 등을 사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건설투자의 경우, 경제주체들이 2007년에 160조 원을 투자했다고 하여 그것이 곧 160조 원에 달하는 건축물이나 토목물을 사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건설투자액이란 경제주체들이 건설사로부터 구입한 건축물이나 토목물 매입액 총액 중에서 토지매입가격분을 제외한 액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경제주체들이 건설사로부터 구입한 건축물이나 토목물 매입 총액이 250조 원인데, 그 중 토지매입가격이 90조 원이고 나머지가 160조 원이라면,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건설투자액 총액은 250조 원이 아니라 160조 원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2005년 그들이 발간한 <우리나라의 국민계정체계>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고정자본형성(=투자)의 대상이 되는 자산은 비금융자산 중 생산과정을 통해 생산된 자산에 한정하므로 생산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 자체는 생산되지 않은 토지 등의 취득 또는 처분은 고정자본의 형성에서 제외된다."(227쪽)
  
  이 문장이 뜻하는 바는 경제주체들이 건설사로부터 건축물이나 토목물을 구입하는 매입액 총액 중에서 토지가격분에 해당하는 액수는 건설투자로 집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원배분의 효율성을 추정할 때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박병원 수석과 같은 무식한 발언을 반복하며 엉터리 정책을 남발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산업연구원 보고서를 해석할 때도 정부의 건설재정지출 1조 원은 국민소득을 평균적으로 1953만 원 증가시킨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건설부문에 1조 원을 투입했다 하더라도 이 중에서 7000억 원(토지가격비중이 30%일 때)만이 건설투자로 집계되므로 1조 원의 정부건설지출이 가져오는 소득창출효과는 1953만 원이 아니라 7000억 원의 19.53%인 1367만 원 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1조 원의 사회보장비 지출 효과 2876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1990년대 일본, 건설족 경제관료 때문에 국가부채 수렁에 빠졌다
  
  1990년대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박병원 수석과 유사한 성향을 지닌 건설족 경제관료들로 인하여 심각한 부채의 수렁에 빠졌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의 표를 보면 1990년대 일본정부의 낭비성 건설투자로 인하여 GDP 대비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이 EU에 비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정부 또한 1990년대의 낭비성 SOC건설투자 등으로 일본의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하여, 2000년 이후부터는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정부의 낭비성 SOC건설투자 등은 일본의 재정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아래 표를 보면 그것의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6년 현재 일본정부는 세입의 30.7%를 국공채 발행에 의존하고 있고 세출의 23.5%를 국채비(국채 원리금 상환 비용)로 지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현재 일본정부가 재정위기에 몰려 카드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국의 재정상황이 이렇게 되면 정부는 과다한 경직성 비용 때문에 국가의 성장잠재력 확충에 필요한 요긴한 정책들을 펼 수도 없다.
  
  최광, 이한구도 무분별한 토목공사에는 비판적
  
  물론 박병원 수석과 같은 건설족 경제관료들은 이것을 단순히 진보진영의 딴지걸기로 치부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재정학자인 최광 교수도 일본의 낭비적인 건설투자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자료는 최광 교수가 2002년에 내놓은 연구보고서, <일본의 경제정책과 재정정책>의 일부분이다.
  
  "일본의 경우 사회간접자본의 정비를 빌미로 추진된 공공사업의 상당부분이 낭비되고 비효율적이라는 징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근래 어느 마을에서나 음악당,박물관,민예관,체육관 등 다수의 훌륭한 건물이 생기게 되었는데 재정상황이 매우 나쁜 상태에서 과연 개개 마을마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깊은 산 속에도 훌륭한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도 건설성에서 나오는 도로포장율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높아지지 않는다. 또한 전국 각지에 엄청나게 많은 심포니 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그만한 수의 악단은 일본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 또한 지난 30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위기에서 재정사업을 하면 무조건 경기가 좋아진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예전엔 곡괭이로 다 공사를 하니까 인력투입이 컸고 건설업을 키우면 일자리 창출이 돼서 경기가 회복된 것이다. 건설사업 자체로 회복된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로 회복됐다. 그런데 지금은 일자리 창출과 별 관련이 없다. 돈만 있으면 일자리 만들데는 오히려 딴 곳에 많다. 서비스업 같은 분야말이다.
  
  토목공사할 바에야 공공근로가 낫다. 이건 어차피 계획도 있던 것이지만, 하천이나 해안에 인력 투입해 쓰레기 치우는 것 만해도 몇 조원이 들어간다. 환경도 좋아지고, 관광사업 좋아지고, 물 깨끗해지고 얼마나 생산적인가? 차도 안 다니는데다가 쓸데없이 도로를 만들면 일 끝난 후에도 돈이 들어간다."
  
  어쭙잖은 비유법으로 자신들의 독선을 합리화해서는 곤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경제도 살리면서 결국 그것이 국가경쟁력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며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의 대규모 SOC사업을 앞당겨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머니투데이> 10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생각들은 무지가 낳은 오판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병원 경제수석을 비롯한 건설족 경제관료들은 이번의 경제위기가 1997~1998년 위기 때처럼 1~2년 안에 회복되리라 기대하며 금융부문과 건설부문에 일시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불이 났을 때는 한꺼번에 일시에 물을 퍼부어 불을 진압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착각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의 실체를 거의 다 아는 것처럼 우기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불의 실체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느 동네에 불이 났다. 앞으로 어느 집에서 불이 터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무능한 정부가 그것을 조기에 일시에 진압해야 한다며 처음에 불이 난 한두 집에 소방수(消防水)를 모두 다 허비해 버렸다 하자. 나중에 다른 집에서 또 불이 일어날 경우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가서 부랴부랴 이웃동네 정부에 소방수 구걸이나 하러 다닐 셈인가.
  
  지금은 정부가 어쭙잖은 비유법으로 자신들의 무능과 독선을 합리화할 때가 아니다. 1990년대 스웨덴처럼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금융업과 비금융업체, 건설업과 비건설업체 모두에게 형평성 있게 지원하며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정부가 허겁지겁 좌충우돌하여 먼저 쓰러지는 기업부터 살리자고 우기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알짜기업들이 쓰러질 때 정부가 재정고갈로 이들을 지원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홍헌호/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 기사 마음에 든다! 프레시안 마음에 든다!
  ARS 후원금 1,000원 휴대폰 후원금 1,000원 (부가세 포함)
   
  프레시안 제3의 주인 '프레시앙'을 찾습니다.  
  단 한번의 참여가 프레시안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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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k5300

 

 

 

※ K5300 

1.프린터 판낼의 "전원" 버튼을 눌러줍니다.

 

2. "전원" 버튼은 계속 눌러준 상태에서

    "X (취소)" 버튼을 1번 눌러준 후 "급지" 버튼을 3번 연속으로 눌러 줍니다.

 

3. 잠시 후 노즐 테스트 페이지가 나오게 되면, 바로 "X (취소)" 버튼을 눌러 취소해 줍니다.

   ※ 취소를 눌러주지 않으면 테스트 페이지가 계속 인쇄되어 나오게 됩니다.

*K5300 사용되는 잉크 카트리지
HP 18(C4936A) - 검정 잉크 카트리지
HP 18(C4937A) - 파랑 잉크 카트리지
HP 18(C4938A) - 빨강 잉크 카트리지
HP 18(C4939A) - 노랑 잉크 카트리지


*사용되는 프린터 헤드
HP 88(C9381A) - 검정,노랑 프린트헤드
HP 88(C9382A) - 빨강,파랑 프린트헤드

*자체 테스트 페이지를 인쇄하는 방법
(급지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프린터가 동작하는 소리가 들릴때 (급지 버튼)을 놓습니다.

*인쇄 품질 진단 페이지를 인쇄하는 방법
(전원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X(취소 버튼)을 7번 누르고 (급지 버튼)을 2번 누르고 (전원 버튼)을 놓습니다.

*프린트헤드를 청소하는 방법
(전원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X(취소 버튼)을 2번 누르고 (급지 버튼)을 1번 누르고 (전원 버튼)을 놓습니다.

 

*프린트헤드를 고급청소하는 방법
(전원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X(취소 버튼)을 2번 누르고 (급지 버튼)을 2번 누르고 (전원 버튼)을 놓습니다.
 이 헤드청소방식은 잉크를 펌핑을 이용한 강제적인 압력으로 밀어넣어 청소하는 방식입니다

 

*라인피드 교정하는 방법
전원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X(취소 버튼)을 14번 누르고 (급지 버튼)을 6번 누르고 (전원 버튼)을 놓습니다.

*프린트헤드를 정렬하는 방법
(전원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급지 버튼)을 3번 누른 다음 (전원 버튼)을 놓습니다.

*노즐헤드를 왼쪽으로 이동시키기
프린터 덮게를 열고 (급지 버튼)을 3~4초 정도 눌러준다..

*K5400 네트워크 재설정 방법
렌선을 프린터 본체어서 분리한다.
ㅁ_ㅁ(네트워크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ㅂ(급지 버튼)을 3번 누르고 (네트워크 버튼)을 놓습니다.
전원 표시등이 몇 초간 깜박입니다.
전원 표시등이 켜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네트워크 버튼)을 눌러 네트워크 구성 페이지를 인쇄를 한다.
네트워크 설정이 재설정 되었는지 확인합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깜박임 꺼짐 꺼짐 깜박임 꺼짐 꺼짐
그림 1: 전원 표시등과 다시 시작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장치 용지가 프린터에 걸렸습니다.

해결 방법

출력 용지함에서 용지를 모두 꺼냅니다. 걸린 용지를 찾고 제거합니다.

문제

장치 캐리지가 지연됩니다.

해결 방법

  • 위쪽 덮개를 열고 걸린 용지와 같은 장애물을 제거합니다.
  • 다시 시작 버튼을 눌러 인쇄를 계속합니다.
  • 오류가 계속 발생하면 장치를 껐다 다시 켭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켜짐 꺼짐 꺼짐 깜박임 꺼짐 꺼짐
그림 2: 전원 표시등이 켜져 있고 다시 시작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프린터에 용지가 없습니다.

해결 방법

용지를 넣고 다시 시작 버튼을 누릅니다.

문제

장치가 수동 양면 인쇄 모드에 있습니다. 잉크가 마른 후 페이지를 뒤집어 다시 로드하는 동안 기다리는 중입니다.

해결 방법

장치에 용지를 다시 로드하고 다시 시작 버튼을 누릅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켜짐 꺼짐 꺼짐 켜짐 꺼짐 꺼짐
그림 3: 전원 표시등과 다시 시작 표시등이 켜져 있습니다.
문제

덮개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거나 후면 액세스 패널 또는 양면 인쇄 장치가 없거나 제대로 삽입되지 않았습니다.

해결 방법

  1. 모든 덮개는 완전히 닫혀져야 합니다.
  2. 후면 액세스 패널 또는 양면 인쇄 장치가 프린터 뒷면에 제대로 삽입되었는지 확인합니다. 이 기능은 일부 모델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깜박임 꺼짐 꺼짐 꺼짐 꺼짐 꺼짐
그림 4: 전원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장치가 켜지거나 꺼지는 중이거나 인쇄 작업을 처리하는 중입니다.

해결 방법

조치가 필요 없습니다.

잉크가 마르는 동안 프린터가 일시 정지된 것입니다. 잉크가 마르는 동안 기다립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켜짐 꺼짐 꺼짐 꺼짐 깜박임 꺼짐
그림 5: 전원 표시등이 켜져 있거나 하나 이상의 프린트 헤드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하나 이상의 프린트 헤드가 부족합니다.

해결 방법

  1. 해당 프린트 헤드를 설치한 다음 인쇄해 봅니다.
  2. 해당 프린트 헤드를 설치한 후에도 오류가 계속 발생하면 다음 작업을 수행합니다.
    • 프린트 헤드 걸쇠를 확인합니다.
    • 프린트 헤드를 확인합니다.
    • 프린트 헤드를 청소합니다.
    • 프린트 헤드를 제거한 다음 프린터를 끕니다.
    • 프린터를 다시 시작하고 프린트 헤드를 다시 끼웁니다.
  3. 그래도 오류가 계속 발생하면 해당 프린트 헤드를 교체합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깜박임 꺼짐 꺼짐 꺼짐 깜박임 꺼짐
그림 6: 전원 표시등과 하나 이상의 프린트 헤드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하나 이상의 프린트 헤드 표시등에 결함이 있거나 이상이 있습니다.

해결 방법

  1. 해당 프린트 헤드가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확인한 다음 인쇄해 봅니다.
  2. 필요한 경우 프린트 헤드를 제거하고 다시 끼웁니다.
  3. 그래도 오류가 계속 발생하면 해당 프린트 헤드를 교체합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켜짐 꺼짐 꺼짐 꺼짐 꺼짐 깜박임
그림 7: 전원 표시등이 켜져 있거나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가 없습니다.

해결 방법

  1. 해당 잉크 카트리지를 설치한 다음 인쇄해 봅니다. 필요한 경우 여러 번 잉크 카트리지를 제거하고 다시 끼웁니다.
  2. 그래도 오류가 계속 발생하면 해당 잉크 카트리지를 교체합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깜박임 꺼짐 꺼짐 꺼짐 꺼짐 깜박임
그림 8: 전원 표시등과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이 깜박입니다.
문제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에 결함이 있거나 이상이 있습니다.

해결 방법

  1. 해당 잉크 카트리지가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확인한 다음 인쇄해 봅니다. 필요한 경우 여러 번 잉크 카트리지를 제거하고 다시 끼웁니다.
  2. 그래도 오류가 계속 발생하면 해당 잉크 카트리지를 교체합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켜짐 꺼짐 꺼짐 꺼짐 꺼짐 켜짐
그림 9: 전원 표시등이 켜져 있거나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이 켜져 있습니다.
문제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에 잉크가 부족합니다.

해결 방법

잉크가 없는 경우 기존 잉크 카트리지를 새 잉크 카트리지로 교체합니다.
전원 표시등 구성 페이지 버튼/표시등 취소 버튼 다시 시작 표시등 프린트 헤드 표시등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
깜박임 켜짐 꺼짐 꺼짐 꺼짐 켜짐
그림 10: 전원 표시등이 깜박이거나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 표시등이 켜져 있습니다.
문제

잉크 카트리지에 잉크가 부족합니다.

해결 방법

해당 잉크 카트리지를 교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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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짐 켜짐 켜짐 켜짐 켜짐 켜짐
그림 11: 모든 표시등이 켜져 있습니다.
문제

복구할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해결 방법 모든 케이블(예: 전원 코드, 네트워크 케이블 및 USB 케이블)을 뽑고 20초 정도 기다린 다음 케이블을 다시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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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하나 이상의 잉크 카트리지가 만료되었습니다.

해결 방법

  1. 해당 잉크 카트리지를 교체합니다.
  2. 만료된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전원 버튼을 누른 채 다시 시작 버튼을 세 번 누릅니다. 전원 표시등 이외의 모든 표시등이 꺼집니다. 이러한 카트리지를 사용하여 프린터가 손상되는 경우에는 무상 보증 수리를 받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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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수신하거나 전송하지 않습니다. 장치가 켜져 있으나 유휴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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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 사회 지식논쟁]

 
 
지식사회 ‘사상 논쟁’ 말문을 트다
결산
 
 
한겨레 안수찬 기자
 
 
» 지식사회 ‘사상 논쟁’ 말문을 트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지난해 9월1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연재했던 ‘우리 시대 지식논쟁’이 이번 호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우리시대 지식논쟁은 지식·담론·시사를 버무려 지상 논쟁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노력이었다. 지금까지 37차례에 걸쳐 여러 지식인들의 글을 실었다. 모두 아홉 가지의 주제를 다뤘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1~3회),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4~6회),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 (7~9회),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10~16회),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17~21회), ‘코뮨주의 대안 맞나’ (22~25회), ‘이명박 정부의 성격’ (26~28회), ‘고종 어떻게 볼까’ (29~34회),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35~37회) 등이 우리 시대 지식논쟁의 화두로 다뤄졌다. 그 논쟁의 주요 장면을 톺아본다.

 

신자유주의… 민족주의…
9개 주제 37차례 걸쳐 실어

 

 

최첨단 서구 이론으로 지식논쟁의 첫 장을 열었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주창한 개념인 ‘제국’을 둘러싼 논쟁을 다뤘다. “권력의 중심이 사라지고 경제적·문화적 교환들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상태를 일컫는 ‘제국’ 개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이해하는 첨단의 이론틀이다. 국민국가 중심의 기존 이론틀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이기도 한 이 주장을 놓고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 정성진 경상대 교수,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등이 논쟁을 펼쳤다.


제국 논쟁이 다분히 이론적인 논구의 성격이 강했다면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는 구체적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벌인 논쟁이었다. 반미 노선과 기간산업 국유화로 이름 높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실험이 ‘반신자유주의’ 진영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을지를 두고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행 서울대 교수 등이 논쟁했다.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실험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는 조금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 올렸다. 근대문학이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제기를 바탕에 두고 ‘리얼리즘’의 가치와 근대문학의 현재적 의미에 관한 논란의 자리를 만들었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교수,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 등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을 지지 또는 비판했다.

 

우리 시대 지식논쟁이 주목한 가장 큰 화두는 민족주의 문제였다.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는 무려 일곱차례에 걸쳐 논쟁이 진행됐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제 지배, 분단, 산업화, 민주화 등을 가로지르는 핵심 쟁점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민족사학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새로운 보수 이념을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기존 진보학계 내부에서도 관성적인 민족주의를 성찰하려는 흐름이 생겨났는데, 이후 민족주의 논쟁은 복잡한 결을 가진 예민한 문제가 됐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권혁범 대전대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등이 치열한 논전을 펼쳤다. 안병욱 교수 등이 저항적 민족주의로부터 초국적 자본을 견제할 동력을 찾은 반면, 박노자 교수 등은 계급 모순을 호도하는 민족주의의 맹점을 비판했다.

 

지식·담론·시사 버무려
지지-비판 열띤 논쟁 벌여

 

다섯차례에 걸쳐 진행된 ‘고종 어떻게 볼까’ 논쟁도 민족주의 담론과 떼놓을 수 없다. 고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조선의 자주적 발전 가능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일제 강점 시기에야 타율적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것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이는 다시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오늘에 이르러 민주화와 산업화의 흐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 하원호 동국대 교수, 강상규 박사,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김도형 연세대 교수 등이 고종을 평가했다.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재해석을 둘러싼 개념들도 우리 시대 지식논쟁에서 자주 다뤄졌다. 다섯차례에 걸쳐 다룬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는 새로운 저항의 이념을 찾으려는 지식인들의 노력을 드러낸 논쟁이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창한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사유 방식이 과연 저항 또는 변혁의 기획에 어울리는 것인지를 두고 홍윤기 동국대 교수,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김진석 인하대 교수, 이광래 강원대 교수 등이 논쟁했다.

 

논쟁의 핵심은 노마디즘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영감을 던지는 실천적 기획인지, 아니면 급진적 언어를 빌린 상념의 소산인지에 있었다. ‘코뮨주의 대안 맞나’,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등도 비슷한 맥락의 논쟁이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주창으로 국내에서도 하나의 대안 이념으로 자리잡은 ‘코뮨주의’와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급진주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사유를 각각 논했는데, 그때마다 이들 새로운 개념과 이념이 구체적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두고 쟁점이 형성됐다. 고병권 ‘수유+너머’ 대표,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 이현우 박사, 박정수 수유+너머 연구원, 이성민 도서출판 b 기획위원 등이 글을 썼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정부 출범 2주 뒤부터 세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박정희식 개발독재와의 차별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성격 규정이 달라지는데,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 홍성민 동아대 교수, 고세훈 고려대 교수 등이 글을 썼다. 신보수라는 규정성을 수용하는 논자도 있었고, 구보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이도 있었다. 신보수냐 구보수냐를 넘어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선명히 규정해야 한다는 필자도 있었다. 당시 논쟁은 한국 보수세력의 정치적 기원을 궁구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조희연 교수는 글에서 “극단적 친미주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 전혀 고려가 없는 천민자본주의적 지향, 탈도덕적 경제주의 등이 한국적 보수의 특성”이라고 썼는데, 그 정의는 촛불집회 길에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이명박 정부의 오늘에 이르러 더욱 새롭다. <한겨레>는 앞으로도 주요 쟁점이 떠오를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우리 시대 지식논쟁’과 비슷한 기획을 지면에 실을 계획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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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제국주의는 죽었다, 21세기는 지구제국 시대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한겨레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 ① 왜 제국인가

 

이번주부터 매주 한차례씩 학계의 주요 쟁점을 보는 전문 연구자들의 각기 다른 시각을 엮어 내보낸다.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시사성 있는 쟁점에 대해 그 논리의 틀거리와 각기 다른 논지의 차이를 세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풍부한 논리 소개로 해당 주제에 대한 독자 이해도를 높이고자 원칙적으로 매주 한 꼭지의 글로 한 면을 채우기로 했다. 시리즈의 첫번째 쟁점은 ‘제국이냐 제국주의냐’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책 〈제국〉이 지난 2000년 출간된 이후, 이 주제는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다. 지은이들은 현재의 전지구적 권력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국’을 내세운다. “경제적 문화적 교환들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고 권력의 중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국민국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제국주의론’은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제국주의론’에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이들은 전지구적 주권질서의 등장으로 미국 등 어떤 국민국가도 오늘날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제국’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오늘의 세계는 미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이며, 이른바 세계화란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지배의 확장 과정일 뿐”이라고 논박한다. 제국론의 지지자인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의 글에 이어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제국주의론의 견해에서 반론을 펼치며, 이후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가 제3의 시각을 제시한다.

 

지구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제국’
미국은 한·일·유럽 등 거느리고
일개의 국가 넘어 주권질서 구축
탈레반의 한국인 인질도 이 때문

 

왜 미국은 양귀비가 주요 산품일 뿐인 농업국 아프가니스탄에 수천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붓고 있는가?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이나 독일인이 어째서 탈레반의 인질로 이용될 수 있는가?

‘전지구적 주권질서’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국가주권의 확장메커니즘을 설명했던 ‘제국주의론’은 20세기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긴요한 것이었지만 탈식민화가 전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적실성을 잃기 시작했다.




신제국주의론,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탈식민주의론 등은 그것의 부적실함을 메우고자 만든 이론들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세계는 더는 제국주의라는 개념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물론 제국주의 현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국익’을 위하여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작은 나라들을 침략·점령한 뒤 석유·가스와 같은 자원을 약탈하거나 그 수송로를 매설하고 무기를 비롯한 상품을 팔고 자본을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을 제치고 소련 제국주의와의 냉전에서 승리한 뒤 점점 더 거대한 제국주의 초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일면적이다. 그것이 감추는 다른 면들이 있다. 예컨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한 전비는 점령을 통한 자원 확보나 상품 수출을 통해 볼 수 있는 이익을 훨씬 초과한다. 게다가 전후 ‘국가건설’ 프로젝트에 거대한 자금이 원조로 제공되어야 한다. 저항이 끝나지 않음으로써 전쟁은 항구화하고 전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행동은 미국 자신을 연간 7000억 달러의 무역적자와 연간 40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평균 매일 20억 달러를 차입해야 하고 또 매일 50억 달러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빚더미 국가’로 만들어 놓는다. 제국주의론이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국주의론의 좀더 발전된 판본은 미국을 단일하게 행동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이해하기보다 여러 종속국 혹은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제국’으로 설명한다. 그 종속국의 범위는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독일과 같은 이전의 적대국, 그리고 프랑스·영국과 같은 옛 제국주의 맹주국들도 포함할 만큼 넓다. 동맹국들을 거느리는 데 드는 높은 비용 때문에 미국의 부채는 부단히 증가한다. 그래서 빌 보너의 〈부채의 제국〉, 에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 차머스 존슨의 〈제국의 슬픔〉 등은 미 제국의 불가피한 몰락을 예언한다. 전지구적 주권질서의 등장을 보지 못하고 국민국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이상의 이론들은 미국의 군사적 강대화와 경제적 취약화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실천적으로 제국주의론은 민족해방을 아직도 유효한 투쟁전략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미국에 맞섰던 사담 후세인을 군사적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탈레반을 민족해방운동의 전위대로 지지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테러와 납치도 민족해방운동의 부득이한 전술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도 반제국주의 보루로 보일 것이다. 반면 미 제국론은 미국의 붕괴를 예상하면서 미국을 대체할 대안제국(가령 유럽이나 중국)을 상상하는 데 머무른다. 이러한 정치학이 가져올 퇴행적 결과를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듯 이들이 국가행동에 정치의 초점을 맞추는 한에서 자본에 대항하는 다중들의 국경을 넘는 전지구적 연합운동의 중요성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구제국 최상층에 미국의 무력
그 아래 G8·나토·WHO 등 복무
기타 국가·엔지오들이 맨밑 민주층
정리해고 등 ‘다중과 전쟁’ 일상화

 

사태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이해하자면 오늘날 주권이 일국적 수준을 넘어 전지구적 수준에서 구축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은 주권의 이러한 전지구적 구성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제공한다. 각 층에 각 3단의 작은 계단을 가진 3층 피라미드의 주권 구성체 그림에서 미국은 피라미드적 주권 질서의 최상층, 최상단에서 전지구적 무력사용에 대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미국은 강대한 용병국가로서 지구에 산재한 미군들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군대들을 지구제국을 지키는 용병으로 결합함(이른바 ‘연합군’)으로써 군사적 헤게모니를 행사한다. 한국의 파병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미국 대통령은 이런 의미에서 전지구적 용병대의 우두머리다.

 
» 제국주의는 죽었다, 21세기는 지구제국 시대
 
그 아래로 전지구적 통화수단을 통제하면서 국제거래를 조절하는 일단의 국가들의 연합체(주요8국, 파리클럽과 런던클럽, 세계경제포럼 등). 그 아래 단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처럼 군사적 혹은 재정적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국제단체들이 놓인다. 이상이 제국을 ‘통합’하는 군주층이다. 그 아래의 귀족층은 초국적 기업들 및 시장을 조직하는 세력들(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들)과 국지적으로 영토화된 국민국가들(유럽연합 등)에 의해 ‘절합’되어 있다. 이것이 귀족층이다. 그 아래의 민주층에 전지구적 권력배치에서 민중의 이해를 ‘대의’하는 집단들이 놓인다. 유엔을 통해 다중을 대의하는 국민국가들, 미디어들, 그리고 비정부기구(NGO)들 등이 그것이다.

등장하고 있는 전지구적 주권질서에 대한 이 그림은, 수많은 크고 작은 권력체들이 위계질서화된 그물 속에 마디들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물 주권기계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중이야말로 오늘날 지구적 삶의 생산자라는 사실의 인식에 근거해야 한다. 전지구적 주권기계의 기능은 다중의 삶활력을 권력흐름으로 뒤바꾸는 것이다. 민주층의 대의회로를 거친 그 힘들을 귀족층에서 마디마디 절합하면 군주층이 통합하여 단일한 세계명령(보편공리)으로 만든다. 예컨대 신자유주의는 자본 착취의 무제한 자유를, 테러에 대한 영구전쟁은 다중의 삶자유에 대한 무한한 억압을 공리화한다. 이 명령기제를 통해 다중의 생산적 활력은 제국주권의 동력으로 포획된다.

요컨대 제국의 재생산은 다중으로 하여금 창조적으로 살되 공포와 예속 속에서 살게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와 같은 사회적 갈등들은 물론이고 외형상 국가간 전쟁형태를 띠는 갈등조차 실제로는 다중에 대한 제국의 전쟁, 곧 전지구적 내전이다. 21세기의 전쟁들은 자본의 이러한 필요에 따라 각층 각단의 주권마디들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 지지 아래 일상적·보편적·항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구제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대는 지구상 어느 오지라도 파견된다. 그런데 그에 수반되는 전비는 누가 치르는가? 미국은 동맹국들로부터 전비를 거두는데 이것은 해당국 다중들의 세금에서 나온다. 미국 자신의 전비는 부채(국채판매)로 충당하는데 미국의 국채를 구입하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 같은 여러 나라이며, 그 주요 자금은 국민들의 연금·기금·보험료·저축 등이다. 결국 전세계의 다중들이 다중 자신을 공격하는 제국의 전쟁에 전비를 치르는 셈이다.

미국의 부채는 미국이 붕괴되지 않는 한에서만, 아니 전쟁 강국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만 다른 부채를 통해 상환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결국 전지구적 전쟁질서로 말미암아 미국은 부단히 ‘제국주의적’ 행동을 일삼게 되고 그것은 다중의 건강과 노년, 다시 말해 생존과 안전을 볼모로 잡는다.

이 착종되고 역설적인 상황을 깨뜨릴 대안은 무엇인가? 그 답은 오늘날의 전지구적 주권질서 자체가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다중 자신이 다양한 수준에서 벌이고 있는 투쟁들을 지구적 수준에서 연결함으로써 제국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길이다. 투쟁하는 다중의 지구적 네트워크의 길을 열어감에서 전지구적 주권질서의 실재성을 보지 못하는 제국주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조정환/다중네트워크센터 공동대표

 

 
» 조정환/다중네트워크센터 공동대표
 
*조정환씨는 1956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자율평론’ 상임만사(만드는 사람), 다중네트워크센터 공동대표, 성공회대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 등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탈근대적 사회운동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분야와 관련해 <제국기계 비판>(갈무리, 2005)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 등의 저서를 펴냈습니다.

 


 

지구제국’은 허상이다, 제국주의 되레 격화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지난 6월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 ② 왜 제국주의인가

 

 

조정환 성공회대 강사는 지난주 이 지면에서 오늘날 주권은 일국적 수준을 넘어 전지구적 수준에서 구축되고 있다면서 제국주의론은 제국론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국주의론으로는 미국이 아프간 전쟁으로 빚더미에 몰리게 된 역설을 설명할 수 없다면서 미국을 단일하게 행동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이해하기보다 여러 종속국 혹은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제국’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강대한 용병국가로서 지구에 산재한 미군들뿐만 아니라 동맹국 군대들을 지구제국을 지키는 용병으로 결합함(이른바 ‘연합군’)으로써 군사적 헤게모니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씨는 제국의 시대에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해방운동은 더는 유효한 투쟁전략이 아니며, 자본에 대항하는 다중들의 투쟁을 전지구적 수준으로 연결하는 연합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논지에 대해 이번주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반론을 펼친다. 정 교수는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나 국민주권이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핵심적 구성 주체라고 본다. 다수 자본들 사이의 경쟁이 국민국가를 매개로 지정학적·군사적 경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을 침공한 것도 유럽과 러시아, 중국 등 경쟁국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국의 패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다음주에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가 제3의 시각을 펼칠 예정이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하는 논쟁은 언뜻 보기에 매우 현학적인 논쟁인 것처럼 보인다. ‘주의’라는 말이 있거나 없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다르다는 말인가? 하지만 ‘제국’과 ‘제국주의’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한다면 이 논쟁은 오늘날 세계체제의 구조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선, ‘제국’(Empire)은 대문자로 시작되는 단수 고유명사인 데 반해, ‘제국주의’는 복수의 보통명사인 제국주의들(imperialisms)을 함축하기도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제국주의론은 그동안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는 미국·유럽연합·일본·러시아·중국 등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그러한 강대국과 약소국의 지배-예속 관계가 주된 특징이라고 본다. 따라서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모순은 각 국민국가 내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제국주의 국가와 피억압 민족의 첨예한 대립이 중층적 구조를 이룬다.

 

세계화 불구 국민국가·국민주권이
여전히 자본주의체제 핵심주체
전지구적 주권 출현은 불가능
자본들간의 경쟁이 다극화했을 뿐…

 

반면, 네그리와 하트, 조정환 등 제국론자들은 오늘날 세계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같은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세계제국, 곧 일종의 세계국가 시대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제국론으로 보면, 사회의 모순 구조는 세계제국 혹은 ‘전지구적 주권’과 세계 ‘다중’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된다. 물론 제국론은 이런 단순화된 대립 구도를 이른바 ‘왕정-귀족정-민주정’의 3층 구조의 비유로 보완하려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전체 구도를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이른바 ‘전지구적 주권’이며, 국민국가나 국민주권은 존재한다 하더라도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다.

 

제국론과는 반대로, 제국주의론은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나 국민주권이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핵심적 구성 주체라고 본다. 국민국가와 국민주권의 소멸과 이른바 ‘전지구적 주권’의 출현은 제국론자들의 관념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구상이며,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경쟁의 변증법’ 때문에 현실화할 수 없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경쟁의 변증법’이 뜻하는 바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다수 자본들 간의 경쟁이 자본의 국제화와 경제적 차원의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국가(‘자본의 국가화’)를 매개로 지정학적·군사적 경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체제의 위계적 구조와 불균등성은 더 강화된다.

 

제국주의론의 이런 기본 인식은 지난 세기에는 물론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세계대전이라는 형태로 폭발했던 제국주의 국가 간의 격렬한 경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라는 형태로 지속됐고, 1989~91년 옛 소련 블록 붕괴 이후에는 좀더 다극화한 제국주의들 간의 경쟁으로 격화하고 있다. 최근의 사례가 다름 아닌 2001년 9·11을 기화로 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및 점령과 이를 둘러싼 서유럽·러시아·중국 등과의 갈등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부시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점령한 진정한 목적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석유가 매장돼 있는 이라크에 미국의 경쟁자인 유럽과 러시아, 중국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또,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 은닉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운 것도 실은 옛 소련 블록 붕괴 이후 중동 지역과 함께 전략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른 중앙아시아·서아시아 지역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 등 경쟁국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조정환은 미국의 이러한 행동을 제국주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비용이 석유 확보 등에서 기대했던 경제적 이득을 초과하고, 이 때문에 미국의 재정적자가 악화돼, 미국이 경제적으로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가 드는 이유이다. 조정환이 보기에 미국 군대는 ‘지구제국을 지키기’ 위해 ‘전세계 다중들의 세금’으로 고용된 ‘전지구적 용병대’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제국주의의 두 논리, 곧 경제적 경쟁의 논리와 지정학적 경쟁의 논리(영국 역사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권력의 영토적 논리’라고 부른 것)가 서로 상대적 독자성을 지닌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후자를 전자로 환원한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아프간 침공은
서유럽·러시아·중국과의 갈등 탓
제 3세계 구별 사라진다는 주장도
세계적 불균등·양극화 현상과 모순

 

조정환의 주장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점령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인정하는 마이클 하트 같은 원조 제국론자의 인식과도 상충된다. 하트는 2001년 이후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적 행동은 9·11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말미암아, 지난 세기 말 이후, 특히 클린턴 정권 때부터 진행된 제국으로의 이행 궤도로부터 일시적으로 일탈한 것이고, 곧 제 궤도로 복귀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본다.

 

그러나, 9·11 이후 부시 정권에서 노골화된 제국주의적 거대 세계 전략은, 1992년 국방부의 〈국방계획지침〉과 1997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이미 9·11 이전부터 준비되었으며, 일방주의적 제국주의보다 다자주의적 제국에 가깝다는 이유로 제국론자들이 선호하는 클린턴 정권에 의해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실행에 옮겨졌다. 제국론자들은 이와 같은 엄연한 사실을 외면한다.

 

제국론은 ‘제3세계’라는 개념은 시대착오라고 주장한다. 제국의 시대에는 제1세계/제2세계/제3세계 같은 구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3세계는 제1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중심에 게토와 슬럼으로 자리 잡았고, 제1세계는 제3세계에 이전되어 주식시장, 은행, 마천루 같은 형태로 되어, 이제 중심과 주변, 남과 북은 서로 가까이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북 분할이 소멸되고 있다는 제국론의 주장은 수많은 실증 연구들에서 확인되는 세계적 불균등 발전, 세계적 양극화라는 오늘날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제국론은 오늘날 세계에서는 국민국가 자체가 의미를 상실했다고 본다. 그래서, 독립적 국민국가를 수립하거나 유지하려는 민족주의는 아무런 진보적 의의도 없으며, 제국의 경향을 거스르는 역사적 반동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점령에 대항하는 이라크인들과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 문제가 여전히 현재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투쟁은 제국주의적 억압에 맞서 민족자결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므로 테러와 같은 잘못된 전술과 잘못된 정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투쟁을 제국주의 반대자들은 지지해야 한다.

 

제국주의, 미국 제국주의 또는 줄여 말해 ‘미제’라는 말은 1970년대만 하더라도 ‘빨갱이’의 ‘삐라’에서나 볼 수 있는 불온한 용어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늘날은 미국의 지배계급 중 핵심 집단인 네오콘 자신이 스스로 제국주의자임을 내놓고 자랑스럽게 자임한다. 자신이 제국주의라고 ‘커밍아웃’한 21세기 ‘벌거벗은 자본주의’에 다시 제국이라는 포스트모던한 옷을 입혀 주고, 이것이 제국주의에 비해 더 낫다며 변호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제국론은 진보의 담론으로서 자격을 상실한다.

정성진/경상대 교수


 
» 정성진/경상대 교수
 
* 정성진 교수는 1957년생이며 현재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방법에 의거한 현대 한국경제 분석과 대안적 사회주의 경제 모델 구상 및 대안사회운동론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마르크스와 한국경제>(책갈피, 2005),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 2006) 등이 있습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제국주의는 과거형, 지구제국은 미래형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이진경 교수는 유럽연합의 출현과 남미의 좌파 정권 연대 시도 등을 들며 현 세계 체제는 ‘지구 제국’이 아니라 복수의 국가적 연합이 경쟁·적대하거나 때로는 협조하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③ 제3의 시각 ‘과잉제국주의’

논쟁의 첫 주제에 대해 조정환 성공회대 강사와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지난 두 주 상반된 논지를 펼쳤다. 조 강사는 미국이 농업국 아프간에 수천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붓고 있는 ‘역설’을 들며 국가주권의 확장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제국주의론으로는 21세기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지구제국’이 국민국가를 넘어 전지구적으로 주권질서를 구축하고 있다고 그는 본다. 반면 정 교수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유럽과 러시아, 중국 등 경쟁국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국 패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또 제국론은 세계적 불균등 발전과 양극화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세계화 시대에도 국민국가와 국민주권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주체임을 지적했다.

제3의 논자인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이번 글에서 자본운동의 전지구화가 아직 국민국가의 전지구화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제국론과는 다른 시각이다. 그는 유럽연합이나 남미 좌파 집권 국가들의 연대 시도 등을 들며 현 세계 체제를 복수의 국가적 연합들이 경쟁·적대 혹은 협조하는 구조로 파악한다. 그는 이 체제를 ‘과잉제국주의(overimperialism)’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복수의 국가들이 하나의 제국주의적 연합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이는 훨씬 확장된 규모의 제국주의 사이의 관계 체계라는 것이다. 지식논쟁의 다음 주제는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론’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국가 단위의 제국주의 지났지만 미국 정점으로 한 제국은 시기상조
현 단계는 유럽연합·소련·중국과 협조-적대 공존하는 ‘과잉제국주의’

 

 

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국민국가 단위의 제국주의 체제와 다른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다는 네그리와 하트의 주장을 인정한다. 자본이 국민국가적 경계를 넘어 생산하고 축적하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다는 주장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하나의 중심에 의해 통합되고, 주요8개국(G8)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들에 의해 구성되는 ‘귀족정’을 통해 경제적으로 관리되는 하나의 단일한 ‘제국’을 형성했다는 말은 인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제적 약화가 군사적 지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약해진 경제적 능력이 언제까지 군사적 지배력을 떠받쳐줄 것인지도 의문이다. 사회주의와의 대결구도가 일국적 권력을 넘어서는 ‘제국적’ 권력을 촉발했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사회주의 붕괴는 그러한 통합요인의 소멸 내지 약화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특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별로 먹히지 않았던 것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력이 단일한 중심이라는 말을 믿기 어렵게 한다. 반면 국가연합으로서 유럽연합의 출현은 아메리카연합(미국)의 지배로부터 이탈하여 독자적 중심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리고 이란이나 베네수엘라에서 달러 아닌 유로로 결제되는 석유시장의 출현 조짐은, 유럽연합의 경제력이 약해진 미국 경제력과 보완 관계가 아니라 대체·경쟁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로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제국이 전 지구적 권력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제국의 권력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고, 따라서 제국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더더욱 인정하기 어렵다. 반대로 제국의 권력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디든 그것이 작동하지 않은 구멍들, 외부들이 광범하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외부가 없다면, 네그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다중이나 저항적 대중의 형성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역으로 그 모든 저항의 지점들, 저항이 발생하는 모든 지점들이 제국적 권력의 외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제국 안에서 국민국가를 저항의 거점으로 삼는 것이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고 하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 권력의 장악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혁명의 핵심고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령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의 존재가 제국 체제 안에서 제국과 대결하는 데 별 다른 의미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중국이나 쿠바 같은 사회주의 국가나, 이란 같은 반미국가의 존재 또한, 제국적 체제 안에서 의미 없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국주의와 다른 단계의 현 세계체제를 일단 네그리처럼 ‘제국적 체제’라고 본다고 해도, 그 체제는 미국과 그 ‘귀족’들과는 다른, 쉽게 통제되지 않고 종종 적대적이기도 한 국가들, 그리고 러시아나 중국처럼 많은 경우 협조자로 행동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닌 국가들이 공존하는 체제다. 그 국가들은 제국적 국가들과는 다른 특이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이들 국가는 제국적 체제 안에 포함되는 경우에도 제국의 ‘내부’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혁명을 통해서든 선거를 통해서든 제국적 체제 안에 제국적 국가와 다른 종류의 특이점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제국적 체제를 약화시키거나 교란시키고 그것에 대한 저항의 전선을 형성하는 데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인터넷 발달로 자본은 전지구화
국민국가는 여전히 국민관리 주체
초국민적 정치·경제연합 가능성 커
언젠가는 지구제국 시대 올 수도

확실히 일국적 국가 간의 경쟁이나 적대로 세계체제에서 국가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순 없다. 이전의 세계체제가 제국주의적 ‘탈영토화’조차 국민국가적 영토성의 확장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국민국가적 영토성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영토화가 국민국가로부터 ‘탈영토화되는’(벗어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내적으로는 자본의 이윤율 저하가 일국 내에서는 극복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 외적으로는 이를 이런저런 식민주의적 방식으로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러한 한계지점을 넘어서기 위해서 자본은 국민적 영토성을 넘어선 새로운 생산 및 착취 형태를 창안한다. 거기서 일차적인 기초가 되었던 것은 컴퓨터와 디지털화,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전지구적 소통수단의 창안이었다. 인터넷과 통신수단의 발전은 대중들의 활동범위는 물론이고 자본의 활동범위를 전지구적 스케일로 확대했다. 하나의 독립적 네트워크로서 존재하는 자본은 이제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탈국민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삼성이 한국 자본이고, 도요타는 일본 자본이라는 관념은 이러한 변화의 실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물론 초국적 자본도 국적을 갖는다. 그러나 증식에 유리한 국적을 갖는다. 따라서 자본은 많은 국적을 갖는다. 자본에게는 원래 국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경우는 이와 나란히 가기 어렵다. 자본은 이윤을 일차적 관리대상으로 하지만, 국민국가는 ‘국민’이란 범위의 ‘인구/주민’을 관리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탈국민화되는 만큼 노동력의 이동도 커졌지만, 그것은 여전히 국가장치에 의해 절단되고 국적을 이용해 과잉착취된다. 이주자란 국경을 이용해 과잉착취되는 노동자들의 이름이다. 또한 국민의 ‘생존’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 역시 국민국가가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항목이다. 예컨대 ‘생존’의 문제를 경제적 발전의 문제로 이해하기에, 경제성장을 위해 자본을 끌어들이는 게 국가로선 주민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아, 일부 주민(가령 농민)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투자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 곧 여전히 국민국가는 전략적 판단의 주체로 존속하고 있다. 주민의 관리, 주권의 관리 문제는 국민국가의 독자성에 더 강하게 연루되어 있다.

요컨대 국민국가는 자본의 탈국민화와 나란히 탈국민화되지 않으며, 자본의 운동과 리듬을 맞추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움직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본 운동의 전 지구화가 국민국가의 전 지구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자본 또한 국가적 경계를 이용하여 착취하며, 필요에 따라 국가들을 선택한다. 따라서 국민적 경계로부터 탈영토화된 경제적·정치적 권력-네트워크가 전 지구적 통합체로 나아간다는 것은 성급한 추상적 추론이다. 그렇지만 복수의 국가들 간에 새로운 통합이나 연합, 연결의 필요성이 증대한 것은 분명하다. 곧 초국민적 연합의 정치·경제적 형태가 출현할 가능성은 매우 커졌음이 분명하다. 유럽연합의 출현이 지닌 의미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성공 가능성은 아주 미약하지만, 남미의 몇몇 좌익적 성향의 국가들에서 제기되고 있는 연대의 제안들 또한 미국과 거리를 둔 국가적 연합의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미국이 중국의 성장에 대해 경계를 높이며 견제하려는 것 역시 자국의 지배로부터 이탈하는 또 하나의 거점의 가능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복수의 국가적 연합들이 경쟁하기도 하고 적대하기도 하며 때로는 협조하기도 하는 체제. 이를 일단 ‘과잉제국주의(overimperialism)’라고 부르자. 무엇보다, 이질적인 위상을 지닌 복수의 국가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제국주의적 연합체로 응축되어 성립되는 체제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이전보다 훨씬 확장된 스케일의 제국주의 간의 관계체계일 것이고, 제국주의를 넘어선 단계의 제국주의 체제일 것이다. 이진경/서울산업대 교수

 

 


이진경 교수는 1963년생이며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 전반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코뮨주의’란 화두를 들고 공부하고 있으며, 생명의 경제·정치학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미-래의 맑스주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노마디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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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신자유주의 넘어선 21C 사회주의가 뜬다
우리시대 지식 논쟁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① 왜 대안인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실험은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가 ‘우리시대 지식논쟁’의 두 번째 주제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반미노선과 기간산업 국유화, 석유판매 대금의 극빈층 지원 등 차베스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지향과 판이하다는 점에서 대안 모델의 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63%의 지지율로 재선된 차베스는 이런 높은 국민적 인기를 기반 삼아, 그가 명명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 정책들을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

높은 주목도만큼이나 평가의 진폭도 넓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있다는 적극적인 긍정론에서부터 재분배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가 연임제한 규정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의구심을 사는 한 요인이다.

이번 논쟁에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다. 김 센터장은 대다수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민중참여 권력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제도’의 심화 확산, ‘협동조합적 기업’을 통한 15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을 들며 베네수엘라 사회가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경로를 통해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모델을 한국 사회 대안으로 검토하던 진보학계에서도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직접 베네수엘라를 찾는 학계 인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베네수엘라의 무엇이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를 생생한 현실 속에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고통이 10년쯤 될 무렵인 1998년, 56.2% 지지율로 처음 대통령에 오른 우고 차베스는 이듬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을 제정하면서 새 세기의 문을 열고 헌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그 후 지금까지,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의 쿠데타, 2002년 12월 석 달에 걸친 자본 파업, 2004년 8월 대통령 소환투표로 이어지는 반혁명 세력의 도전을 극복한다. 지난해 12월 63%의 지지율로 다시 재선된 차베스는 주요 기간산업 국유화, 새로운 정당 건설, 국가권력 재편과 헌법 개정 추진을 비롯한 강도 높은 개혁프로그램을 현재 실시하고 있다.

 

 

 

혁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른 2005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지향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처음으로 밝힌다. 20세기 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21세기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재창조하자고 주장했다. 역사의 무덤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남미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실험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혁명이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대안모델로 선뜻 수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은 차베스가 ‘연임제한 철폐’를 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차베스는 지난 8월에 헌법조항 총 350조 가운데 33개 주요 조항을 수정하는 개헌안을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현재의 연임제한 조항 철폐를 제안한 대목이 분명히 들어 있다. 차베스도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의문은 당연히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개헌안에는 다음의 조항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70조에서 “민중들이 직접 통치권을 행사하는 경험, 공직 선출, 국민투표, 민중협의, 대통령을 포함한 중앙선출직 관료의 국민소환, 국민발안, 그리고 공개집회를 통해 민중들의 참여와 주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차베스의 제안이 그것이다. “주권은 민중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자본가들의 반발 맞서 초강수 개혁
빈곤의 늪 지나 4년째 두자릿수 성장
대통령 연임 따른 독재 우려도
직선·소환제 등 민중 참여로 근거 잃어

물론 이를 연임제한 철폐를 무마하기 위한 장식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아닌 베네수엘라의 실제를 보자. 현재 2700만 베네수엘라 국민의 대다수를 포괄하는 2만여 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아래로부터 민중참여 권력으로 창설되어 작동되고 있다. 2004년 소환투표가 이미 실행된 사례를 볼 때 대통령소환 역시 한갓 장식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대통령 견제수단이다. 유신독재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민투표를 악용해서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사실 자체가 아니라, 유신헌법에서 또 하나의 국민적 투표라고 할 수 있는 직선제를 폐기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치한 데 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대통령 직선은 물론이고 지금의 우리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국민소환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연임제한을 민주주의의 절대 조건으로 각인시키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기제가 아니다. 연임제한 철폐를 문제 삼지 않는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이 “프랑스나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영국 같은 나라들도 제한 없는 재선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도 독재국가인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도 절실한 것은 국민의 실질적 참여와 정치기제에 대한 국민의 직접적 통제이다. 참여정부 아래에서 민주주의의 유린은 어디서 벌어졌는가. 다수 국민의 참여 과정도 없고, 국민의 의사와도 다르게 강행된 국회의 일방적 대통령 탄핵,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민주주의는 사실상 유린되었다. 이런 면에서, 지금 베네수엘라는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실험에서, 아래로부터의 새 정당 건설 실험에서, 기업의 노동자 공동경영 제도에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이 지점이다.

정치와 함께 베네수엘라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분야는 바로 경제 시스템이다. 2007년 한국 대선도 경제대통령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절박한 양극화나 비정규직화를 구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성 있는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사회 양극화 현상을 능가하는 빈곤과 침체의 경제를 물려받은 이가 차베스였다. 그는 쿠데타와 자본파업이라는 시련을 극복한 2003년 이후, 빈곤층과 실업률을 꾸준히 줄이면서도, 고성장의 중국에 견줄 10% 수준의 경제성장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기업 내부도 주목할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 참여하는 경영 확산되고
수년간 일자리 150만개 창출
도그마 아닌 생생한 현실 속 변화
미국식 경제만 좇는 한국에 교훈

 

기업경영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 제도’가 실험·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3만 개 벤처기업 육성을 고창하는 사이, 비록 첨단 벤처는 아니지만 다양한 생산적 산업분야에서 ‘협동조합적 기업’이 베네수엘라에서 수년 간 18만 개 이상 만들어지고 있다. 15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음은 물론이다. 자영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대략 30만 개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이번 개헌안에는 하루 법정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조처가 포함되어 있다. “정규적이고 생산적인 고용을 늘리고 비공식 무문 경제와 실업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개정 목적이다.

물론 이런 실험이 고전적 사회주의의 국유화라는 잣대로 보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제도는 ‘사적 소유를 포함해서 다양한 독립적인 경제단위가 공존하는 일종의 혼합경제 시스템’이다. 과거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현실적 경로를 통해서 경제구조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차베스 정부가 전혀 미국과의 교역량을 줄이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는 실제가 아닌 레토릭(수사)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개혁을 착실히 수행하면서도 세계경제와의 교류를 폭력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있는 지점은 거꾸로 높게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반신자유주의가 실제가 아닌 레토릭으로 그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집단과 진보학계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실제적인 국민 삶을 한발자국씩 전진시키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대안은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다.

 
»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2006년 세계사회포럼에서 차베스는, “우리는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따라 모델을 복사하는 것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큰 잘못 중에 하나였다. 자주성과 다양성, 모든 공동체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통해 21세기에 새로운 경로를 여행할 사회주의 배너를 다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는 미국식 모델을 복사해온 과정이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미국식 모델에 더욱 가깝게 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경험이 진정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김병권씨는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1964년생이며 대안사회의 주체 형성과 중소기업 역할 재규정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저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가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 혁명’일 뿐
우리시대 지식 논쟁
 
 
한겨레 강성만 기자
 
 
» 베네수엘라 학생과 반정부 세력들이 지난해 4월 수도 카라카스의 한 도로에 누워 차베스 정부의 치안력 부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평화’라는 단어가 한 시위자의 손바닥에 쓰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② 왜 대안이 아닌가

지난주 이 지면에서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론을 옹호하면서 역사의 무덤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새로운 모습으로 남미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다수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민중참여 권력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제도’의 심화 확산, ‘협동조합적 기업’을 통한 150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을 들며 베네수엘라 사회가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경로를 통해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21세기 사회주의는 없다고 단언했다. 반미와 민중주의 경향이 합쳐진 차베스주의는 마르크시즘의 기본 원칙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국제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반미는 민족해방투쟁의 다른 형태에 불과하며, 차베스 집권 이후 실업과 보건, 빈곤 문제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차베스 혁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오 교수는 주장했다. 때문에 그에게 차베스주의는 “사회주의의 탈을 쓴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의 민족 부르주아지 분파의 생존전술일 뿐이다.”

다음 주에는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차베스 혁명의 미래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요지의 제3의 시각을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베네수엘라 수년간 물가 치솟고
GNP 증가도 국민 착취 결과
고질적 빈곤·범죄문제도 해결 못해
주변부 자본주의 위기 고스란히

지금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인류 문명을 야만의 시대로 이끄는 쇠퇴의 끝으로 향하고 있다. 그 체제는 전세계 프롤레타리아를 처참한 빈곤과 참혹한 전쟁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수년 동안 밑에서부터 솟아오른 계급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 투쟁의 주체는 전통적 의미의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공격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연금생활자와 예비 노동자(청년·학생)였다. 2006년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법’ 반대 투쟁이나 브라질과 칠레에서 학생들의 투쟁은 “미래가 없는” 사회, 곧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안한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2007년 5월 말에 베네수엘라에서 대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세계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주변부 자본주의 사회가 처한 위기를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었다.” 그저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 아니다. 차베스 집권 동안 베네수엘라 사회가 앓고 있는 오랜 병인 실업과 범죄와 보건과 빈곤문제가 조금도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베스 집권 동안 ‘혁명’ 엘리트는 강화되었고, ‘미션’(차베스의 정책 과제)을 통한 공공지출이 늘어났지만, 사회의 빈곤화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아 지난 3년 동안 평균 17%를 기록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그것은 순전히 식품과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인상 때문이다. 국민총생산도 늘었지만, 그것도 착취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며 특히 협동체와 ‘미션’으로 그럴듯하게 꾸민 비공식 부문의 고용 때문이다. 2006년에 1700명의 빈곤층 청소년 등이 범죄로 죽었으며 말라리아, 뎅기열 등 보건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앞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새로운 혁명 세대인 그들은 한편으로는 실업과 범죄, 버려진 어린이와 어머니, 빈곤에 대한 반대를,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말, 부도덕, 불관용, 비인간성에 대한 반대를 뚜렷이 밝히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의 탈을 쓴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착취’ 없는 사회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라고 하는 “베네수엘라 혁명”이 지닌 뜻은 무엇인가. 2004년 차베스 정권 사회경제 고문을 지낸 좌파연구자 레보위츠는 자신이 쓴 책 〈지금 건설하자, 21세기 사회주의를〉에서 차베스가 메자로스의 〈자본을 넘어〉에 영향을 받았고 2005년 세계사회포럼 연설에서 사회주의의 새로운 유형으로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본주의적 사회주의’가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논리적 연속성을 띠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개념을 공동체, 연대, 사회주의 도덕으로 정리하면서 사회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 잠재성의 충만한 발전의 과정인 체 게바라의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다.

‘공상적’이고 ‘인본주의적’ 수식어가 붙는다 하더라도, 차베스와 차베스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딱 잘라 비판받아야 한다. ‘21세기 사회주의는 없다.’ 마치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대립물이 “스탈린주의”를 극복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칙인 국제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혁명”도 차베스가 계승하고자 하는 볼리바르 혁명, 곧 집합생산자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과 미제국주의 반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과 관련 없는 민주혁명, 부르주아 혁명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주의의 원칙을 벗어난 어떠한 민족주의 운동도 앞으로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과 양립할 수 없음을 역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는 제3세계주의와 민족해방 신화의 전성기였다. 좌파와 자유주의자는 베트남 전쟁을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베트남 인민의 영웅적 투쟁으로, 체 게바라, 카스트로, 벤 벨라(프랑스에 대항한 알제리 독립전쟁 지도자) 등에 대한 숭배로 나아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황금시대’ 자본주의가 위기에 부닥치자, 이러한 신화는 더는 이어지지 않고 빛바랬다. 경쟁하는 민족국가와 제국주의 블록으로 나누어진 부르주아지는 세계전쟁으로 내몰리고 사회적 부의 생산자인 노동계급은 자신의 생활수준을 방어하는 투쟁, 곧 전쟁을 향한 움직임을 막고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간다.

반미·반세계화 결합한 차베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는
마르크스주의 기본원칙마저 벗어나
민족 부르주아 분파 생존전술일 뿐

세계자본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독자적 자본주의도 나타날 수 없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이 지난 뒤에도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환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두 가지 다른 형태로 이탈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반세계화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주의의 복원을 통한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이다. 그런데 반세계화운동은 “자본주의를 오직 하나의 가능한 체제이고 그 개혁이 하나뿐인 대안이다”와 같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선전을 밑바탕으로 삼고 있다.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은 반미라고 하는 민족주의 정서와 빈곤화되는 농민과 도시빈민과 노동자의 사회 불만을 밑거름으로 삼은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주의 경향이다. 바로 이러한 두 흐름의 결합이 이른바 “차베스주의”이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말한 레보위츠도 베네수엘라의 국가발전계획(2001~2007)을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모델로 여기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동아시아(일본·한국)의 발전전략과 시장을 결합한 라틴아메리카식의 신구조주의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그는 1999년 제정된 헌법에 나온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조항을 보기로 들면서 베네수엘라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추구한다고도 말한다.

 
»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주변, 곧 주변부 자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라는 빈민층(비공식부문 노동자)이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고 석유자원 하나에만 의존해 경제를 끌고 나가고 있는 특수한 사회이다. 이 나라의 민족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석유 자본을 밑천으로 삼아 다른 제국주의 국가(미국·영국·중국 등)의 부르주아지와 손을 잡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인민이 처한 빈곤조차 풀지 못한 무능함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이 주변부 자본주의의 반미 민족주의 세력은 몇몇 좌파 지식인과 혁명가의 도움을 받아 전세계에 베네수엘라를 ‘21세기 혁명의 상징’으로 추어올리면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그 탓에 그들은 또다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투쟁과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잘못 이끌고 있다. 똑똑히 밝히지만, 차베스주의야말로 사회주의의 탈을 쓴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의 민족 부르주아지 분파의 생존 전술일 뿐이다.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1943년생으로 산업노동학회장, 사회이론학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사회실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사(특히 유럽)와 세계의 계급투쟁과 혁명전략이 주요 관심 연구 영역입니다. 대표 저서로 <맑스주의, 조직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사회변혁>(현상과인식, 1993) <사회주의와 노동자정치>(박종철출판사, 2004) 등이 있습니다.

 

21세기 사회주의’ 향한 발걸음 뗐을 뿐
우리시대 지식 논쟁
 
 
한겨레 강성만 기자
 
 
» 베네수엘라의 달동네 주민 한 명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자치위원회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김수행 교수 제공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③ 판단은 아직 이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정책을 사회주의 대안으로 볼 수 있는지를 놓고 지난 두 주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논쟁을 벌였다.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민중참여 권력의 토대라고 할 만한 주민자치위원회와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제도의 심화·확산 등을 예로 들며 이 나라 사회가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오 교수는 반미와 민중주의 경향이 합쳐진 차베스주의는 마르크시즘의 기본 원칙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국제주의와 무관하다면서 차베스주의는 “사회주의의 탈을 쓴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의 민족 부르주아지 분파의 생존전술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주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 교수는 차베스 정부가 자국의 자본주의 사회를 새로운 사회, 곧 ‘21세기형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들을 혁명의 주체로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차베스가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나 자주관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를 지지하는 노동조합단체조차 그의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동계급을 혁명 주체로 끌어들이고 미국 정부의 간섭을 저지할 국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느냐가 새 사회로의 이행의 관건이라고 김 교수는 봤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지식논쟁의 주제는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는가’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 이 나라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악명 높다. 빈민의 다수는 ‘바리오’로 불리는 달동네에 산다. 김수행 교수 제공
 
자본주의서 새로운 사회로 전환 위해
전체인구 60~80% 달하는 “빈민 대변”
전폭 지원 통해 정치·경제 참여시켜
기득권층과의 계급투쟁 예비




차베스 정부는 현재의 베네수엘라 자본주의 사회를 새로운 사회, 곧 ‘21세기형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소수의 기득권층(국내외의 독점자본, 국내외의 친자본적 정치세력과 각종 언론 매체들, 친자본적 지식인과 중산층, 어용노동조합,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 대중을 탄압하는 경찰과 군인 등)의 특권이 사라지고, 개인들이 자기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공동체가 모든 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의해 사회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기나긴 이행과정은 기득권층의 권력을 제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계급투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차베스 정부는 이 이행과정에 첫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데, 계급투쟁과정에서 혁명이 왜곡될 수도 있고 좌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행과정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참여민주주의’다. 민주행동당(AD)와 기독교민주당(COPEI)이라는 보수 양당이 1958년 푼토 피호(Punto Fijo) 협정을 맺어 베네수엘라를 계속 통치했다. 4년마다 대통령, 국회의원, 주지사, 시장 등을 선거로 뽑지만 빈민은 계속 인구의 60~80%를 차지하고 있었다. 석유산업과 석유수익으로 건설한 국영산업들의 이익을 기득권층이 나누어 먹으면서 빈민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하기만 하면 민주주의다’는 주장의 잘못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러다가 1989년 2월 민주행동당의 페레스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의 긴축정책을 받아들여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버스와 전철 요금을 2배 올린 것에 항의해 빈민들이 봉기했고, 군인들이 달동네 주민들을 무차별 총살함으로써 카라카스에서만 2천 명 이상이 죽는 사건(‘카라카소 Caracazo’)이 발생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은 정치에 무관심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투표의 기권률이 60%나 달하면서 ‘구세주’를 기다리는 현상이 두드려지게 되었다.

차베스가 1998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빈민을 대변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카라카소에 대해 군인으로서 용서를 비는 것뿐 아니라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을 정치에 참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지금 차베스 정부는 빈민들을 위한 교육, 건강, 취업, 문화 프로젝트에 엄청난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특히 달동네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자기 동네의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내어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어 정부에 제안하면, 정부가 전문가를 보내어 주민자치위원회와 상의한 뒤 프로젝트를 승인하고 필요한 자금을 제공한다. 이처럼 빈민들이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기들의 능력을 놀랄 만큼 향상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물론 차베스의 가장 믿을 만한 지지 세력은 이 빈민들이다.

 
» 부자 동네는 담장 위에 전기철조망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김수행 교수 제공
 
다른 하나는 차베스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베네수엘라에는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가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2002년 12월~2003년 3월에 일어난 자본파업에서 조금 수정된다. 최대의 국영석유회사(페데베사)의 자본파업에 경영진은 물론이고 1936년에 창설된 어용 노동조합연맹(CTV) 소속의 노동자들도 많이 참가했다. 차베스 이전의 정부가 공약한 민영화를 통해 큰 이익을 얻으려 한 경영진과 노동조합이 오히려 국유화를 강화하는 차베스 정부를 몰아내기 위해 생산중단 등을 단행한 것이다. 공장을 계속 가동시키면서 생산을 유지하는 작업에 일반노동자들과 퇴직노동자들이 크게 공헌했다. 이 자본파업을 계기로 차베스는 공장을 노동조합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과, 공장을 경영자가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맡기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 다. 이 두 가지 생각에 의거해 차베스는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나 자주관리를 꺼려하면서 공장 소재지의 공동체가 공장을 관리하는 것을 새로운 헌법개정안(2007년 12월 2일 국민투표 예정)에서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파업 계기로 어용노조 불신 커져
경영참가 배제과정서 적대관계 형성
노동계급 혁명 주체로 끌어들이고
미 정부 간섭 저지할 국제연대 맺어야

어용 노동조합연맹(CTV)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이고 노동자 이기주의에 빠져 비공식부문(행상이나 소규모의 개인서비스업)의 노동자나 비정규직 등 노동계급 전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공장 경영에 이해당사자들(주주 대표, 노동자 대표, 소비자 대표, 공동체 대표 등)이 모두 참가해야 한다고 차베스는 주장해 왔다. 새로운 헌법개정안에 따르면, 주민자치위원회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선거위원회, 감사위원회 등과 나란히 하나의 독립권력으로 격상되고 몇 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코뮌(Commune)을 형성해 이 코뮌이 지역사회를 총괄하면서 그 지역의 공장들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너무나 획기적인 것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지금 무어라 논평할 처지는 못 되지만 ‘노동자에 의한 자주관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노동조합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2003년 창설한 새로운 노동조합연맹(UNT)의 최대 정파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마르크스가 새로운 사회를 묘사한 것)을 내세우면서 차베스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셋째, 미국의 전통적인 세력권인 남아메리카에서 차베스 혁명이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인가가 매우 우려된다. 차베스 혁명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이행기에서 왜곡되거나 좌절될 수 있는 가능성은 미국의 태도에 크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정부가 이라크 전쟁으로 정신이 없고, 차베스 정부가 모든 정책을 헌법과 법률에 의해 수립·실시하며,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석유 수입량의 15%를 공급하고,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및 니카라과에서 차베스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대통령이 탄생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칠레의 아옌데 정부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게릴라 정부를 타도하듯 쉽게 차베스 정부를 타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 기득권층이 사회를 계속 지배하면서 차베스의 암살까지 소리 높여 외칠 정도로 계급투쟁의 열기가 치솟고 있다.

 
» 김수행 서울대 교수
 
결론적으로 말해, 차베스 혁명의 진행 방향과 성공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차베스가 용감하게 ‘21세기형 사회주의’를 목표로 혁명을 개시한 것인데, 지금까지는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을 하나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인간으로 각성시키면서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동참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다. 그러나 앞으로 노동계급을 혁명의 ‘다른 하나의 주체’로 등장시키는 과제와,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간섭을 저지할 국제 연대를 형성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물론 1999년 2월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석유 1배럴의 가격이 7달러였는데 2007년 9월에는 70달러로 올랐기 때문에, 석유로부터 얻는 정부의 세입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 차베스의 활동 여지를 넓혀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수행 교수는 1942년생으로 영국 런던대에서 1982년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과 자본주의 불황이 주요 관심 영역입니다. <자본론>(비봉출판사)을 완역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서울대 출판부)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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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은 맞는가

 

이젠 ‘그들만의 문학’…근대문학은 끝났다
근대문학의 종언은 맞는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이젠 ‘그들만의 문학’…근대문학은 끝났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1. 왜 맞는가
이번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근대문학’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일본의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1941~)은 2005년 출간된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 b)에서 근대문학 곧 소설이 네이션(국민국가)의 기반이 되었다고 했다. 이전까지 감성적 오락을 위한 단순한 읽을거리였던 소설은 18세기, “감성에 대한 학문인 미학이 등장하면서 지위상승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감성과 감정이 지적·도덕적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으면서 상상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이는 상상력에 기반한 문학이 공감의 공동체 곧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국민국가)의 토대가 되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가라타니는 영화와 텔레비전·비디오 등 시각매체의 등장으로 근대소설의 특징인 ‘리얼리즘’의 가치가 제거되면서 근대문학의 특별한 의미가 이젠 끝났다고 선언한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상징으로 그는 1990년대 자신이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들이 모두 문학에서 손을 떼었음을 상기시켰다. 가라타니의 이런 해석에 우리 문단 안팎에서 다양한 견해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주 가라타니의 견해를 적극 받아들이는 조영일씨 글에 이어 최원식 인하대 교수가 비판적 견해를,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가 제3의 시각을 보여준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에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부함에의 저항’에 의해 해소된다. 아무리 절실한 문제제기라 할지라도, 정작 그것을 낳은 현실 쪽에서 보면 왠지 조급하고 점잖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위기감’이란 항상 현실을 앞서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은 괜찮다”라는 현실감각은 종종 본질적인 것으로까지 격상되곤 한다. 현실원리란 이처럼 위기의식을 ‘진부한 것’으로 배제하고, 자기보존적인 상식들을 ‘새로운 것’으로 삼아 자가발전하는 현상 유지 시스템을 의미한다.

사실 이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에도 해당된다. 너무나 많이 인구에 회자된 나머지, 이제 ‘종언’이라는 말만 나와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가 대다수다. 그러나 그런 ‘질림(물림)’이 그저 ‘진부함에의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그 테제가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현실원리에 기대어 ‘손님’을 쫓아내는 푸닥거리를 한다고 해서 냉수가 생명수로 바뀔 리는 만무하다는 말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비판하기 위해 나선 무당들은 대략 세 부류이다. 1) ‘근대문학’이 쇠퇴하고 있다는 일반론에는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문학’이 가진 본래적인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에서 가능성을 찾자는 이들, 2) 한국문학은 제대로 된 근대문학조차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언’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이들, 3) ‘근대문학의 종언’은 남의 집 이야기이며 한국문학은 오히려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가라타니의 테제가 어떤 새로운 ‘주장’이라기보다는, 자명한 것 뒤에 숨겨져 있는 역사성을 환기시키는 ‘물음’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논리적·실증적 찬반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그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또는 지나친 무관심)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모든 문제(질문)의 진실성은 그 문제 자체보다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과민(잉여)’반응을 통해 나타난다고 할 때, ‘근대문학의 종언’이 강 건너 불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가라타니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근대문학 이후에 포스트모던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니라고 전제한 후, 다만 문학(소설)이 근대에 들어서 부여받은 ‘특별한 중요성과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곧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문학에 부여된 이와 같은 ‘중요성(가치)’이지 ‘종말론’이나 ‘묵시론’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애써 이를 ‘묵시론’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믿음(선택)’의 문제로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상상력 통해 ‘공감 공동체’ 형성한
근대문학의 역할·중요성 사라져
문단-출판계-대학-신문들
문학시스템 붕괴될라 ‘위기’ 눈감아

 

 

그럼 문학에 부여된 ‘중요성(가치)’이란 무엇일까? 가라타니는 그것을 ‘미학(감성론)’의 등장이나 ‘근대국가’의 성립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곧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어온 감정이 지적·도덕적 능력(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라는 사고가 생겨나는데(이전까지 ‘상상력’은 ‘공상’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만 갖고 있었다), 그러자 ‘공상적인 것=오락적인 것’으로만 취급받던 소설이 ‘공감’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국민)을 형성케 하는 매체로서 격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런 중요성이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라타니의 지적처럼 이상한(특수한) 쪽은 오히려 근대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저발전의 증거로서 거부되고, 특수한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옹호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도착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문단-출판계-대학-신문’이라는 문학시스템이 그와 같은 관념을 꾸준히 생산·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문학이 그와 같은 특별한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그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학시스템 역시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그 시스템에 의지하여 사는 이들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한 원로작가는 일본문학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한국문학은 그렇지 않다며 도리어 ‘태평천하’(또는 부흥기)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한국출판계는 일본문학의 공습으로 초토화되고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현해탄을 건너온 유령들(이미 ‘종언’을 맞이한 문학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굿이라도 한판 벌여 ‘문학쿼터제’ 정도는 얻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이제 창작지원금 정도로는 약발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그 전에 ‘손님’들이 ‘주인’인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그럼 그 차이라는 게 양국의 문학인을 호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창과 출신으로 넘쳐나는 한국문단
작가적 경험보다 제도적 문학성에 획일화
가라타니 ‘종언’ 증거와도 맞아떨어져
“오히려 중흥기” 주장은 안일한 태도

 

한국 소설가로는 박민규, 정이현, 천운영, 편혜영, 전성태, 하성란, 조경란, 강영숙, 윤성희, 이기호, 백가흠, 김종광, 백민석, 이신조, 김애란 등을 들 수 있겠고, 일본소설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가네시로 가즈키,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 미야베 미유키, 와타야 리사, 유미리, 가네하라 히토미, 야마다 에이미, 이시다 이라, 쓰지 히토나리, 다구치 란디, 교고쿠 나쓰히코, 히라노 게이치로, 기리노 나쓰오, 온다 리쿠 등을 입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그룹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한국 쪽 구성원이 모두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일본 쪽은 단 한 명의 문예창작과 출신도 없다는 것이다. 실로 기묘한 결과다. 왜냐하면 가라타니가 ‘종언’의 증거로 든 예가 바로 일본에서 증가하고 있는 ‘문예창작과’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학이 작가적 경험이나 통찰이 아닌 창작코스에서 생산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라타니의 우려와 달리 일본에서 문창과 출신이 성공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 문창과는커녕 국문과 출신조차도 매우 적으며, 하나같이 매우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따라서 가라타니의 지적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확히 한국문학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의 이런 특징은 비단 문학(창작)만의 일이 아니다. 비평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거의 대부분이 국문과 출신으로 구성되고 있다. 그럼 이와 같은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의 한국문학이 문학시스템에 맞게 ‘그들만의 문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사회·역사적 변화를 통해 다양화되기보다는 제도가 만들어놓은 ‘문학성’에 의해 획일화되어버린 것이다. 확실히 이런 완벽한 공간에서 ‘근대문학의 종언’은 그저 손님(마마)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손님은 오로지 무당의 눈에만 보인다고 할 때, 한국문학은 알게 모르게 이미 무병(巫病)을 앓은 셈이다. 그런 한국문학이 ‘손님’을 발견·추방시킴으로서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그때 발견되는 ‘손님’이란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유령’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조영일 / 문학평론가

 



 
» 조영일씨
 

조영일씨는 1973년생으로 지난해 <문예중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첫발을 떼었습니다.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한국근대소설의 형성·전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와 비극> <근대문학의 종언> <세계공화국으로> 등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작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현재 가라타니의 <역사와 반복>을 번역하면서 가라타니에 대한 책을 준비 중입니다.

 

근대문학 종언론은 상상 혹은 소동일 뿐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
 
 
한겨레 강성만 기자
 
 
» 근대문학 종언론은 상상 혹은 소동일 뿐
 
우리시대 지식 논쟁 /

2. 끝나지 않았다

 

지난 주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근대문학의 특수한 성격을 부각하면서, 이 시대에 그 특수성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풀어 말하자면, 가라타니 고진(일본 비평가, 1941~)은 근대문학은 ‘공감’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국민국가)을 형성케 하는 매체라고 했는데, 현재 한국사회의 문학은 그런 특별한 중요성이나 가치를 담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작가적 경험·통찰이 아니라 ‘문예창작과’라는 창작코스를 통해 문학이 생산되고 있는 점이나 비평의 경우 거의 대부분 국문과 출신으로 구성되고 있는 점 등을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보기로 들었다.

그는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의 문학시스템은 근대문학의 특수성을 일반적인 것으로 옹호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시스템 역시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붙였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이런 주장을 ‘신판 해소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가라타니가 근대문학종언론을 확정한 ‘한국문학의 종언’은 일종의 상상에 가깝다고 했다. 가라타니는 1990년대 만났던 한국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했으나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씨를 제외하곤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고진이 나아가고 있는 문학 바깥의 실천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근대문학이 정말로 끝났다면 진정한 의미의 저항도 끝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한국 문학계의 논란이 좀체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이 기이한 열(熱)이 과연 우리 몸으로부터 내발한 것인지 의심스런 구석도 없지 않은데, 이처럼 지속될 때는 그저 상상에 의한 헛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겠다. 상상이 곧잘 현실로 전화하기도 하매, 우선 이 소동의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원래 “2003년 10월, 긴키대학 국제인문과학연구소 부속 오사카 칼리지에서 행한 연속강연의 기록에 기초하고 있다.”(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6, 86쪽) 강연원고를 “전면 수정”하여 이듬해 <와세다문학>(2004년 5월호)에 발표하고, 이를 다시 <근대문학의 종언>(2005)에 수록했던 것이다. 가라타니는 요즘 한국에서 바로바로 소개되곤 하는데 이 글도 ‘근대문학의 종말’이란 제목으로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에 역재(譯載)된 이후, 논란의 덕택인지 책도 2006년에 번역되었다. 다시 확인하건대, 이 글의 모태는 일본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록이다. 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말의 자의성, 더구나 학생 대상 강연이 지니게 마련인 어떤 직정성(直情性)을 염두에 두더라도 일본에서는 잠잠한 근대문학종언론이 왜 한국에서는 이처럼 ‘소문난 잔치판’이 되었는지 난감한 바 없지 않다.

곳곳에 빛나는 통찰들이 박혀 있긴 하지만 이 글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진지한 독서를 요구하는 일류의 평론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진지한 학구 뒤, 그 휴식의 시간에 놀리는 경쾌한 두뇌회전에 가까운 탓인지, 강연의 어조도 시종일관 반어적이다. 이는 통념에 물든 학생들의 의식에 충격을 가해 그 사유를 자유로이 풀어놓으려는 가라타니식 수사학의 발로일 터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과 달리
문학 떠난 한국 문예비평가들 없어
잘못된 풍문만이 사실로 부풀려진 것
징후는 있지만 ‘종언’ 단정은 일러

 

우선 그의 주장을 한번 따라가 보자.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로 대변되는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것”(44쪽), 다시 말하면 혁명정치의 보수화에 대항하여 “영구혁명을 담당했”(45쪽)던 근대문학이 이제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 이 글의 골자다. 더 쉽게 풀면, “네이션 형성의 기반”(62쪽)인 동시에 ‘네이션 이후’를 치열하게 모색한 근대문학이 조건의 변화 속에서 그 도덕적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이제 “그저 오락이 되”(53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징후를 1960년대의 프랑스, ‘에크리튀르’(글쓰기)의 대두에서 읽어낸다. “그들은 사르트르처럼 소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을 부정하고 그 대신에 사르트르가 ‘문학’으로 서술했던 것을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으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46쪽) 재미있는 지적이다. “대중문화가 좀 더 빨리 발전”(47쪽)한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이 현상이 진행되었는데, “작가가 대학의 창작 코스에서 나오”(47쪽)는 것이 중요한 징표라는 주장이다. 드디어 그 바이러스는 일본에 도착한다. 그리하여 하루키의 횡행 속에 일본 “근대문학은 1980년대에 끝났다”(46쪽)고 선고한다.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문학의 위의(威儀·위엄있는 모양)가 현저하게 쇠퇴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상에서 펼친 그의 파악이 크게 새삼스런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종언론은 감전(感電)된다. “그러나 내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정말 실감한 것은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충격이었습니다.”(48쪽) 이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1990년대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문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일본 문학은 죽었어도 한국 문학은 살아 있다’고 한국문학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 바 있는데, “1990년대 말경부터 문학의 쇠퇴가 급속하게 전개되었다”(49쪽)는 소식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 중요한 제보자가 김종철(영남대 교수·<녹생평론> 발행인)이다. 문학을 떠나 생태운동에 투신한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49쪽)려서 그만두었다는 대답에 가라타니는 “동감을 표시”한다. 김종철이 전해준 이 소식은 다른 소문으로 확정된다.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는 것입니다.”(49쪽) “나는 한국에서 그와 같은 사태가 이렇게 빨리 진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문학의 종언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50쪽)

 

대학 강연록으로 출발한 종언론
일본선 잠잠한데 한국선 들썩들썩
민족문학 해체 부추기는
이름만 바꾼 ‘신판 프로문학 해소론’

 

근대문학종언론을 확정한 ‘한국문학의 종언’이 풍문에서 부풀려진 일종의 상상에 가깝다는 점이야말로 놀랍다. 우선 그가 교유한 한국의 평론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는 지적은 아무리 수사학이라도 왜곡에 가깝다. 아마 그중에는 동아시아론에 참석해 온 나도 포함된 듯싶은데, 비평활동을 게을리한 것을 탓하면 할말이 없지만 내 자신 문학에서 아주 손을 뗀 적은 없다. 이는 내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터인데, 내가 알기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 가라타니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 문학사정에 대해서 그것도 그저 소문에 의지해서 어떻게 이처럼 단정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닌가? 문학의 현장, 일본을 이탈한 가라타니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한국을 동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이런 대세에 대한 투항을 고무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해도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자본주의와 국가의 운동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한복판에서 대항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에 관해 나는 더는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86쪽) 문학에 대한 자본의 포섭이 날로 강화되는 현실에서 문학 바깥에서 저항을 조직할 수밖에 없는 그의 곤경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근대문학이 정말로 끝났다면 진정한 의미의 저항도 끝났기 때문이다. 근대문학 종언 이후의 저항, 그것도 텍스트 바깥의 저항이란 비관주의자의 자기위안으로 떨어지기 십상이 아닐까?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풍문을 통해 완성된 신판 해소론이 다시 한국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이한 형국이 가엾다. 요컨대 종언론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그 후신 민족문학작가회의, 그리고 창비가 주도한 한국의 민족문학운동 또는 민중문학운동의 해체를 촉진하는 나팔로 활용되고 있으니, 종언론을 둘러싼 저간의 소동이란 가라타니를 빙자한 신판 해소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요즘 한국문학이 종언론을 싱싱하게 배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확실히 한국 문학은 종언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그곳으로 가는 통로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근대문학’으로부터 ‘가비얍게’ 이탈하는 경향이 처처에 출몰한다.

일본의 변혁 가능성에 대한 절망 또는 체념에 기초한 그의 근대문학종언론이란 의상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난 프로문학해소론이다.

이 사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탈을 축복하면

 
» 최원식 교수
 
서 또는 저주하면서 문학의 집에서 가출하는 것이 능사인가? 그 쇠퇴의 원인을 궁구하고 극복을 위해 함께 토의하는 것이 현대라는 노예선에 동승한 문학인의 자세일 것이다. 더구나 세계사적 모순의 결절점인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경이 목하 진행되는 이 역사적 고비에서임에랴.

최원식 인하대 교수 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최원식 교수는 1949년생으로 한국 근·현대 소설사 연구를 주로 해왔습니다. 현재는 동아시아 맥락속의 한국학 연구 방법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표 저서로 <문학의 귀환>(2001) <한국 계몽주의 문학사론>(2002)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1997) 등이 있습니다.

 

종언 ‘위기’를 근대문학의 ‘기회’로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종언 ‘위기’를 근대문학의 ‘기회’로
 
우리시대 지식논쟁 /

 

3. 찬반 구도 벗어나야

 

지난 두 주 문학평론가 조영일씨와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가라타니 고진이 제기한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가라타니는 근대문학은 ‘공감’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네이션’(국민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문학은 시각매체의 등장으로 ‘리얼리즘’의 가치가 제거되면서 그 특별한 의미가 끝났다는 게 그의 견해다. 특히 한국의 문예비평가들이 줄줄이 문학판을 떠나고 있다는 그의 진단은 ‘종언론’의 유력한 근거가 되었다.

조씨는 한국의 작가나 비평가들이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라는 정형화된 코스를 통해 배출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 땅에서 문학이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시기는 끝났다고 했다. 반면, 최 교수는 종언론을 일종의 상상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문예비평가들이 문학계를 떠나지도 않았고, 근대문학이 정말로 끝났다면 진정한 의미의 저항도 끝났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권성우 교수는 가라타니 주장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전제한 뒤, ‘종언론’은 “체제와 시스템을 뒤흔드는 비판적 문학의 근본적 위기쯤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가라타니의 명제는 시대와 시스템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본격 문학이 산출되지 않고 있는 우리 문학 현실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다음 논쟁 주제는 ‘진보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대개의 논쟁이 그러하듯이,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논의 역시 단순한 찬반의 구도로만 접근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늘 각자의 문학적·정치적 입장에 연루되고 주관적으로 투사된 ‘근대문학의 종언’ 담론을 접할 뿐이다. 이 글이 찬반 구도를 탈피하여, 그렇다면 우리 문학과 비평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집중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우선, 가라타니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문학적·역사적 맥락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그것이 우리 문학과는 실제로 어떠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말해보자.

일단 가라타니의 주장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령, 종언 담론에는 세부적인 면에서 한국문학이나 비평계의 현황에 대한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되며, 분단과 민족문제 등 이 시대 한국문학이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근대적 과제 및 중대한 독립적 변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또한 ‘종언’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수사적 어법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일부에서 마치 한국문학 전반이 끝났다는 식으로 극단화되어 수용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이리라. 가라타니가 주장한 정확한 문맥과 전후맥락이 거세된 채, 죽음, 종언 등의 자극적인 표현 위주로 수용되고 있는 논의는 우리 문학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한 과도한 회의주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근대문학의 종언’ 명제와 그 논의에 대한 문단 일부의 신경질적 반응은 오히려 우리 문학의 현황에 대한 합리적인 성찰을 방해하고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가라타니의 주장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제기된 주장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라타니의 명제는 지금 이 시대 한국문학에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채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 일반의 종언이 아니라, 체제와 시스템을 뒤흔드는 비판적 문학의 근본적 위기쯤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한 사회와 문화권 내에서 문학이 특별하게 중요한 역할을 행사하던 시대가 마감되었다는 것이 가라타니 주장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주장에는 우리 문학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실상 지금 이 시대 문학에서, 시대정신 그 자체였으며, 비판적 지성의 전위 역할을 했던 지난 연대 문학의 영광과 역할을 기대하기란 난망하다. 문학의 위상과 역할은 끊임없이 변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학의 위기’라는 풍문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문학은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게 양산되고 있으며, 엽기에서 우주적 상상력에 이르는 온갖 현란한 소재가 넘쳐난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에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과 현실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문제제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이러한 물음들이 가능하겠다.

 

이 시대 범람하는 온갖 소재·장르 문학
거대언론 등 문학시스템에 대한 비판없어
얌전히 활용되거나 소비되고 있을 뿐
작품에 대한 치열한 논쟁·비판도 실종

 

지금 우리 사회를 실제로 움직이고 여론의 프레임을 형성하며, 문학유통과 홍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거대언론의 문제점과 행태에 대해 제대로 형상화한 소설이 단 한 편이라도 존재하는가? 이 시대의 어떤 시나 소설보다도 우리 사회의 현실에 밀도 깊게 대응하면서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감동적으로 환기시킨 서경식의 탁월한 산문(<시대를 건너는 법> <디아스포라 기행>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 등등)에 대한 본격비평을 본 적이 있는가?

여전히 황석영, 조정래, 김원일, 방현석, 안재성, 정도상, 공선옥, 정지아, 오수연, 전성태 등의 작가들이 분단 문제를 비롯하여 이 시대의 다양한 현실과 대결하면서 분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글쓰기가 이전처럼 전사회적인 관심사가 되거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란시키고 시스템을 뒤흔드는 차원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객관적이며 구조적인 현실이다. 그들의 진정한 의도와 관계없이, 그들의 문학 역시 문단시스템과 출판자본, 문학기사, 문학소비제도와 문학교육의 현장에서 얌전히 활용되며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웃 나라 비평가의 한가한 객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몇몇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가라타니의 종언 테제를 수동적으로 추인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 던져져야 한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가라타니의 주장이 지닌 유효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러한 관점이 그대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현실적 추인과 포개질 필요는 없다. 가라타니의 명제는 오히려 이 시대 문단시스템과 문학장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 문단시스템, 예컨대 문창과와 국문과 일색의 문인 양성제도, 텍스트 해설에만 골몰하는 비평시스템 등이 가라타니가 말한바 근대문학, 곧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해 성찰케 만드는 비판적 문학의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냉엄한 인식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비판은 사라졌으며,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권력집단의 눈치도 보지 않던, 자유의 상징 그 자체이던 문인들도 거대언론 문화부의 네트워크와 주류 문단시스템 속에서 편하게 안주하고 있다. 문학에 어떤 금기도 없다지만, 지금 이 시대 문단에서 실제로 문학판을 좌지우지하는 거대언론과 주류 문학집단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문학적 미래를 위해 끝끝내 유보해야 할 금기와 다름없다. 그런가 하면, 지난 연대의 민족문학과 비판적 지성(글쓰기)의 성과는 지나치게 안이한 방식으로 매도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대와 시스템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본격적인 문학이 산출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가라타니 주장엔 몇가지 한계 있지만
한국문단에도 적용 가능한 설득력 지녀
극단적 수용-신경질적 반응 벗어나
문학 현주소 근본적인 성찰 계기로

 

그렇다면 가라타니의 주장 이전에, 우리 문학이 지닌 근대문학의 가능성과 잠재력, 탄탄한 미학을 동반하면서도 지배 이데올로기를 뒤흔드는 비판적 문학의 위의(威儀)를 지금 이 시대의 문학과 비평이 충분히 현실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을 뼈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 부정적이라면, 가라타니의 주장과 관계없이, 우리는 그러한 문학을 충분히 현실화시키지 못한 지금 이 시대의 문학시스템에 대해 해부하고 탐문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현실적인 방책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는 우리 문학의 실상과 허상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문단시스템에 깊게 연루되어 있을수록 가라타니의 주장에 생래적 반감을 보이며, 현존하는 문학제도에 대해 비판적이며 독립적일수록 종언 테제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역설적인 맥락에서 늘 자명성에 대한

 
» 권성우 교수
 
회의를 강조하는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 명제는 실상 우리에게 스스로가 속하거나 편승하고 있는 문단시스템과 거대언론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어로 발표된 재일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아름다운 번역산문을 본격비평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그들만의 문학제도도 포함해서 말이다. 권성우/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는 1963년생으로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비평공동체 ‘크리티카’의 동인이며 기행문·산문·평전 등의 기존에 주목하지 않았던 글쓰기에 학문적·비평적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평의 매혹> <비평의 희망> <논쟁과 상처>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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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유효한가

초국적 자본 견제할 힘 저항적 ‘민족의식’에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초국적 자본 견제할 힘 저항적 ‘민족의식’에 있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1. 유효하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원어인 영어 단어는 내셔널리즘(nationlism) 하나이다. 근대 민족국가가 형성되면서 이른바 민족 혹은 국가 관념이 태동되었다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우리도 조선시대만 해도 ‘소중화’ 의식이 뚜렷했을 뿐이다. 중국인들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주자학을 섬긴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근대 이후 민족주의는 우리 사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이념이었다. 일제하 독립운동이나 분단 이후 통일운동까지 이 모든 투쟁의 배후에는 ‘민족’이 있었다. 친일파와 반공 지배세력도 민족이라는 외피로 국가주의적 성향을 가렸다.

독재에 맞선 저항적 민족주의의 주요 명분은 분단모순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이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현재 상황은 많이 변했다. 국가와 기업가의 통일에 대한 열정이 기층 민중의 그것보다 더 못하다고 하기 어렵게 되었다. 급증하는 다문화 가족도 민족 관념의 정당성에 대해 되묻게 한다. 탈민족 담론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탈민족론자들은 민족이 함의하는 배타성은 민주적 개방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사회의 다른 갈등이 정당하게 자리잡지 못하도록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지지하는 안병욱 교수는 이 글에서 공동체적 유대관계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민족주의적 가치관만이 무소불위 초국적 자본의 폭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각각 비판적 시각과 제3의 시각을 밝힐 계획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고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따라서 민족주의 논쟁은 매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을 한국 사회처럼 친숙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국 사회를 논할 때 민족문제는 빠지지 않는다. 현실을 논하건, 역사를 설명하건 민족 내지 민족주의 문제는 중요하게 거론된다. 역사적으로 어느 때건 주어진 나름의 과제가 있었다. 이 과제들은 한반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외면하기 어려운 공통적인 사항이었기 때문에 민족공동체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대처해 왔다. 곧 민족주의적인 인식인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요인은 오랜 기간 역사공동체를 공유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천여 년 이상 하나의 국가로 운영되면서 불교·유교·기독교 등 다양한 문화를 공통적으로 향유해 왔다. 그 과정에서 원초적 공동체 의식을 공유해 온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유럽 근대사를 배경으로 형성된 민족주의 개념을 원론적으로 적용하여 한국 사회에서의 민족주의 문제를 비판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지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20세기 들어 식민주의의 지배를 겪으면서 민중의 자율적인 의지는 탄압받고 식민주의에 편승한 소수만이 민족과 분리된 채로 특권을 향유하였다. 이를 두고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치하에서 성장의 과실이 조선인에게도 돌아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또 “많은 경우 종군 위안부들을 고통과 희생으로 내몬 원초적 요인들은 가정 내 가부장적 권력의 구타와 학대였다. 위안부의 비극은 민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성적, 사회적 차별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식민지배의 후과는 극복되지 않았으며 외세는 기득권층을 숙주로 하여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에 이어 남한 사회는 반공주의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다. 반공주의는 이념에 의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파괴하고 민주적 발전을 차단하였다. 남북 분단은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했지만 안으로 지배층과 민중 사이의 민족주의적 인식차와 무관하지 않았다. 남북이 각기 외세를 내세워 분단을 초래하였고 급기야 전쟁으로까지 비화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것은 여전히 민족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으며 불온한 사상으로 탄압을 받았다. 또 반공주의 아래서 한반도는 일종의 게토가 되어 그 안에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었다. 지난 20세기 후반 내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게토를 파괴하고 밖으로 세계사와 소통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1960년 4월항쟁을 비롯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진 민주화 운동은 민중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유대 관계와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하였다.

 

‘민족공동체의식’ 역사적 공유한 한국
서구 ‘민족주의’ 곧장 적용해선 안돼
식민·분단·독재에 맞선 ‘저항적 담론’

 

20세기 한국 사회가 겪어야 했던 분단과 전쟁, 독재 등 파괴적 혼란은 그 가장 큰 원인이 외세와의 관련 속에 있었다. 오늘날 통일문제와 함께 민주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야기된 내적 갈등 문제들을 안고 있고 또 밖으로 세계화 조류에 조응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과제가 중첩되어 있다. 이런 역사를 성찰적으로 검토한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자연히 가장 친화적이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한국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민족주의 담론에 비판적 문제 제기가 행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탈민족을 내세우고 혹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주장에 분명 유용하고 긍정적인 내용이 많다. 그동안 민족주의 담론에 다소 관념적이고 맹목적인 표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탈민족주의를 위해 지적되고 있는 것들은 논쟁을 위해 억지로 제기된 측면이 강하다. 일부에서는 지배권력을 추수하면서 전개한 국수적이거나 파시즘적 사례를 끌어다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성에 붙여 함께 매도하고 있다. 곧 “민족주의 패러다임은 한국의 지적 삶을 너무나 깊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가능한 역사 해석 방식을 모두 어지럽히고 포섭하며 또는 실제로 말살시켰다”(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탈민족·탈근대 주장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찾을 수가 없고 오히려 한국 사회운동의 구심점을 해체함으로써 허무와 공허함을 조장하려는 듯이 보인다. 민족주의는 현대 한국사회를 인식하기 위한 그리고 역사에 참여하기 위한 의식화의 매개체인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시장만능을 내세우며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하의 초국적 자본은 세계화 추세 속에서 지구촌 곳곳으로 무소불위의 팽창과 전일적 지배를 관철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이라는 명분아래 자본과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차별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자본은 국경을 거침없이 넘나들지만 농민·노동자들은 떠돌이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절박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같은 국가와 국경의 장벽은 이제 더는 장애가 되지 않아 보인다.

 

신자유주의 대안은 민중 주체적 행동
노동 계급 성장 미흡한 현실에서
민족적 유대 ·가치관은 유효한 ‘무기’

 

하지만 한국사회의 오랜 공동체적 유대관계와 민족의식, 관습, 언어 등이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민족주의라는 이름에 포괄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강한 공동체적 유대가 오랜 동안의 민주화 운동 경험과 결합됨으로써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칸쿤·시애틀·홍콩 등의 반세계화 시위의 중심에 한국 민중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이런 맥락과 닿아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 중심의 사회이고 이를 위해서는 민중의 주체적인 행동과 능동적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탈민족주의는 불균등한 세계체제에 대한 대응논리와는 거리가 있으며 지배권력에 의한 통제와 순응을 지지한다. 자본에 의해 모든 인간이 줄을 서야 할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책은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기반한 유대에서 찾아야 한다. 흔히 계급의식과 성정체성, 젠더문제를 거론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계급·젠더 문제 이전에 국가 간의 이해 대립이 초래한 모순에 의해 더 좌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의 가장 유용한 유대관계는 민족의식이며 이런 맥락을 설명해 주는 것이 민족주의이다.

진보는 상대적으로 약자 계급의 집합으로 추동된다. 이러한 진보운동을 담지할 노동계급의 성장이 한국 사회에서는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한국에서 노동 부분의 지체는 분단과 전쟁에 따른 반공주의적 억압에 기인한다. 역설적이게도 노동계급이 제 위상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여전히 민족이 중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 안병욱 국사학과 교수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줄곧 지배층의 인식을 대변하기 위해서 민족논리에 시비를 걸었다. 민중과 진보세력에게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다고 탓하면서 진보적인 논의를 억제하였다. 무소불위 초국적 자본의 폭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현재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아니고서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상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주장은 민족주의에 대한 대안 없는 반역에 지나지 않는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1948년생으로 조선후기 사회변동 문제와 민중운동·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청산과 학술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최근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를 엮어냈습니다.

 

민족 ‘신화’ 넘어 국경없는 ‘계급연대’로 가자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국내 최초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가 하나의 노조를 꾸린 대구 삼우정밀 노동자들(맨 오른쪽).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집회(가운데)와 이주 노동자 합법화 기자회견 때 잡힌 장면들(맨 왼쪽).
 
우리시대 지식논쟁 /

 

2. 유효하지 않다

 

지난 주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오랜 세월 유지해 온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런 유대관계는 민주화 운동 경험과 결합됨으로써 반세계화 시위의 중심에 한국 민중을 위치짓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 교수는 또 20세기 한국 사회가 겪어낸 파괴적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외세가 지금도 “기득권층을 숙주로 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계급이 제 위상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민족이 진보 진영에서 중심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에 대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조선 말기 한국 사회는 지역적 언어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등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이 강했다면서, 동질적인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교적 문약이 국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그 대체물로서 부강을 우선시하는 사회진화론적 민족주의가 수용됐다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주에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최근 학계나 진보 운동계 일각에서 ‘탈민족’의 조류가 감지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민족’만큼 신성화돼 있는 용어는 없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국민’/‘민족’ 담론에 호소하는 일이야 어디를 가나 흔하지만, 한국의 경우 보수와 진보 양쪽은 아직까지도 ‘민족’에 대한 일종의 충성 경쟁을 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예컨대 지난달 필자가 평소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은 개천절을 맞이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논평을 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으로 이 땅 위에 나라를 세운 지 반만 년의 세월이 흘렀다 (…) 하늘은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돌을 놓으시고 우리가 열어야 하는 하늘이다. 민주노동당은 인간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정신이 충만한 세상을 열어 나가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을 다짐한다.”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역사성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계급 모순을 부정하는 ‘홍익’과 같은 수사를 노동계급의 정당이 이용한다는 것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 현실 그대로다. 1993년부터 단군을 실재 인물로 선전함으로써 과학적 근대 사학 자체를 폐기했다 싶은 이북(북한)과 달리 적어도 이남(남한)의 학계에서는 민족주의적 신화와 역사를 구분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국사 교과서에서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배워야 할 만큼 ‘민족’의 신화는 여전히 사회 일반에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 발원지인 유럽에서 이미 우파의 구시대적 전유물로 전락해버린 ‘민족’ 담론이 한국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설명은 꼭 틀리지는 않지만 오늘과 같은 ‘민족’의 위력을 과거에 무비판적으로 투영시킴으로써 한국 역사가 마치 ‘민족’의 중심적 자리매김을 늘 그 전개 목적으로 삼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동시에 ‘민족’과 무관하거나 ‘민족’을 초월했던 부분들은 배제되고 만다.

‘민족’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한국에서의 ‘민족’의 불로불사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은 근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이미 고려·조선 왕조에 의해 천여 년 동안 통일된 중앙집권적 국가로 운영돼 왔다. 그만큼 어느 전근대 사회보다 국가의식과 내부 동일성이 높았다. 거기에다 일제에 의한 식민화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져 자기방어적·해방적 민족주의 담론은 사회의 통념이 됐다. 그리고 해방 이후 세계에서 동질성이 가장 높은 민족인 우리를 미·소 양국이 강제로 분단시켰으니 자연히 분단 극복 지향의 민족주의 담론이 진보적 사고의 중추로 굳어졌다.”

예컨대 조선말기에 팔도 기층민중의 문화나 언어는 전혀 ‘동질적’이지 않았다. 충남 천안 출신인 조병옥(1894~1960)이 1911년에 평양숭실학교로 유학 갔을 때 이북 지방의 언어를 거의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지역적 언어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등 전통시대 말기의 한국 사회는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강했다. 국가의식이 비교적 강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명한 의병장 이인영(1867~1909)이 일본군과의 전투 도중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의병 진영을 떠나 낙향했다는 것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질 만큼 가족 윤리는 국가윤리에 우선되기도 했다. 일제 식민화의 충격이 저항 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의 위치를 굳히게 했다는 것은 맞지만, 민족주의적 저항 운동 이외에도 민족 문제 해결과 계급적 혁명 노선을 병행하려 했던 국내 공산주의 운동 세력들이 식민지 시기 해방 전선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국내에서 ‘국제 노선’을 지켜온 공산주의 계열 투사들이 1946년부터 이남에서, 그리고 1953년부터 이북에서 각각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기에 우리가 지금처럼 저항 담론으로서 민족주의의 위치를 과장되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분단 극복이 1945년부터 지금까지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것도 맞지만, 과연 1990년까지는 옛 소련, 그 뒤에는 중국의 지원으로 경제를 꾸려온 이북의 지배계급이나, 금융·기술·수출·시장·문화자본 그리고 석유공급의 안정성 등의 차원에서 미국과 일본에 여전히 의존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남의 지배계급이 진정한 분단 극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계급 갈등이 해결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남북한 양쪽의 민중에게 유리한 통일 전망을 열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이다.

‘동질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이었는데, 조선 왕조의 멸망으로 성리학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유교적 ‘문약’(文弱)이 국망의 원인으로 지목돼 규탄 대상에 오르자 성리학의 대체물로서 ‘부강’(富强)을 우선시하는 사회진화론적 민족주의가 수용됐다. 민족주의가 성리학이 비워준 자리를 메운 것이 민족주의 위력의 근원이 됐다.

보통 탈민족주의적 입장에 서는 이들을 공격할 때에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그러면, 대안이 무엇이냐, 민족이 용도폐기되면 진보의 구심점이 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곤 한다. 필자로서는 그 답이 분명하다.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일차적 모순과 분단의 이차적 모순 극복에 가장 도움이 된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의 ‘커다란 착취공장’으로 떠오르는 광역의 동아시아·동남아시아는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들을 집중적으로 내포한다. 삼성이나 도요타의 중국·동남아 저임금 노동력 착취, 남한이나 중국에서 ‘정규직 노동’의 치명적 위기, 이민 노동자의 살인적 수탈, 황사처럼 국경을 모르는 환경 인재(人災)들…. 이 문제들의 해결에는 ‘민족’이 백해무익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 북-미 관계, 남-북 관계가 계속 개선돼 남한 등 외래 자본이 이북으로 대량으로 침투돼 저임금 노동력 착취를 한층 거대하게 벌인다면 ‘분단’과 ‘통일’ 사이의 모순이 결국 ‘남·북한의 피해 대중’과 ‘남·북한 지배자 연합’ 사이의 모순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15~20년 만에 현대와 삼성이 평양 주위에 공장을 세워 이북 노동자들에게 10만원 이하의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북한 권력자들의 대리인들이 남한에서 은행계좌를 열기도 하고 주식 투자를 하기도 하는 시대는 얼마든지 도래할 수도 있다. 남과 북의 착취자들이 하나가 되는 상황에 대비해서 남한 민중을 대변한다는 진보도 ‘남·북한 경협’에 대한 무비판적인 민족주의적 환희심을 버리고 북한 민중과의 연대, 공동의 계급 투쟁을 벌일 자세를 곧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를 두고 벌이는 논쟁 소리가 요란하지만, 해답은 이미 현장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2007년10월18일치 〈한겨레〉에서 ‘하나로 뭉치니 마음은 하나, 힘은 두배’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는가? 이 기사는 국내에서 최초로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이 함께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국내외 출신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라는 중요한 양보를 쟁취한 대구의 삼우정밀이라는 부품업체를 다룬다.

 
» 우리시대 지식논쟁 / 박노자교수
 
피부색과 온갖 편견들을 넘어선 자본 피해자들의 연대, 이것이야말로 모든 노동자가 평화롭게 같이 잘살 수 있게 해주는, 미래로 가는 길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박노자 교수는 가야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등 처음에는 주로 한국 고대사와 고대 중세 불교사를 연구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민족주의 형성사, 한국 사회진화론 사상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5세기말부터 562년까지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러시아어판·1998), 〈당신들의 대한민국〉 (2001), 〈우승열패의 신화〉 (2005) 등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자본의 강고한 네트워크 ‘민족’ 사유로 뚫지 못한다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자본의 강고한 네트워크 ‘민족’ 사유로 뚫지 못한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3. 현실·이론적 대안 아니다

 

이번 주제의 첫 필자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적극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오래 유지해온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노동계급이 제 위상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민족이 진보진영의 중심 구실을 해야 한다고 했다. 외세가 지금도 “기득권층을 숙주로 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관점도 이런 견해를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지난 주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탈민족 담론을 폈다. 그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는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질적인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주 임지현 교수도 탈민족적 관점을 보였다. 그는 지금의 세계를 ‘식민지 없는 식민주의’를 특색으로 하는 ‘3차 지구화’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서울과 뉴욕의 중심이 연합하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주의 네트워크를 표상한다면서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지배엘리트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설명했다. 다음 주에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지구화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류의 전지구적 분포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지구화의 산물이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론이나 18세기 동아시아의 경제 네트워크론은 말할 것도 없고, 고대 세계를 ‘아프로-유라시아’라는 하나의 역사공간으로 파악하려는 ‘세계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은 역사적 지구화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기원 후 1세기에 이미 아프리카와 유라시아가 상업과 교역의 단일한 네트워크로 묶여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연구들에 힘입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인도양이 중국과 유럽, 아프리카를 묶는 네트워크의 허브로 ‘아프로-유라시아’라는 역사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우리는 이를 1차 지구화라 부를 수 있다.

역사적 지구화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서구 문명 대 비서구 문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비판하는 바탕 위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아프로-유라시아’라는 역사공간은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명을 서구의 전사로 설정하고, 서구와 비서구를 아테네식 민주주의와 페르시아의 전제정, 인간중심적 세계관과 신중심적 세계관 등으로 나누는 기존의 역사 이해가 서구중심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지구화는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강력한 국민국가 체제를 먼저 정립한 서구가 비서구를 식민화하는 양상이 그것이다. 서구의 식민주의에 대해 비서구는 민족주의로 대항한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나는 16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 이후의 지구화를 우리는 2차 지구화라 부를 수 있다. 2차 지구화에서는 국민국가가 주요한 역사적 행위자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구화는 다국적기업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신자유주의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3차 지구화라 하겠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매트릭스는 그대로이나 식민주의는 ‘식민지 없는 식민주의’로 자태를 변환했다. 또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규모의 노동이민과 인간의 이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도 신자유주의와 결합하기도 하고 다문화주의의 옷을 입는 등 다양한 자태전환을 시도한다.

 

지금 세계는 ‘3차 지구화’ 시기
‘식민지 없는 식민주의’ 시대에
민족주의는 다양한 ‘외피’ 차용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외국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민족주의가 있는가 하면, ‘열린 민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국민통합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어느 편향이든 민족주의는 3차 지구화의 위기 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국체’를 지키는 데 열심이다. 그러나 어느 편향이든 21세기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3차 지구화의 새로운 현실을 뚫고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는 이론적·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오랜 공동체적 유대관계와 민족의식이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사회의 공동체적 전통이라는 것 자체가 날조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구의 민주주의를 개인주의적 민주주의라 비판하고 공동체적 전통에 기반한 한국적 민주주의가 유신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지배적 공동체 형태인 가족은 시민적 공동체와는 질을 달리한다. 시민사회나 공공영역 등의 서구적 역사개념으로 한국 사회를 읽자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공동체가 민족공동체로 등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오랫동안 단일한 정치체를 유지해왔다는 것이 민족 공동체의 역사적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신분제에 기초한 왕조국가의 공동체는 지배신분의 공동체일 뿐이다. 1910년 상주 양반의 일기는 이와 관련하여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한일합방 이후 그는 집밖으로 나가길 꺼려했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종묘사직을 잃었다거나 하는 식의 정치적 명분 때문이 아니라 상놈들이 양반인 자신한테 ‘호형호제’하는 꼴을 못 보기 때문이었다. 서발턴(하위 주체) 식으로 그의 일기를 뒤집어 읽으면, 양반한테 ‘호형호제’하는 상놈들에게 한일합방은 양반 세상이 끝나고 신분제적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다가온 측면도 있다. 의병운동에 참여한 포수들의 일부가 양반 의병장에게 고용된 용병이고, 더구나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관군 포수의 경력을 갖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반 만 년 가까이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다는 한국사의 신화를 사실로 친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민족주의가 자본 주도의 3차 지구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무기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다. 2차 지구화 단계에서 국민국가의 형성은 다른 국민국가에 대한 식민화뿐만 아니라 국내적 식민주의를 수반했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지방에 대한 중앙의, 농촌에 대한 도시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식민주의가 그것이다. 서울이 주변부·동양이고 뉴욕이 중심부·서양인 것이 아니라, 서울에도 중심과 주변이 있으며 뉴욕에도 서양과 동양이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서울 내부의 중심과 주변,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가리고, 국내 식민주의를 은폐한다. ‘식민지 없는 식민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3차 지구화단계에서 국내적 식민주의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민족주의는 국내적 식민주의를 은폐한다.

 

‘민족’은 중심과 주변의 차이 은폐
뉴욕-서울 지배엘리트 네트워크에
피지배계급 국제적 연대로 맞서야

 

넷째, 3차 지구화 단계에서 지배-피지배 관계의 축은 더는 선진국 대 후진국의 대당관계로 파악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서울의 중심과 뉴욕의 중심이 연합하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주의 네트워크를 표상한다. 문제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적 연대와 비교할 때,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가 극히 약하다는 점이다.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지배엘리트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 토빈세 논쟁이나 유럽의 노동운동 지도부의 헤지펀드에 대한 공동대응 움직임 등에서 보듯이, 자본 주도의 지구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효율적 무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연대인 것이다. 3차 지구화의 긍정적인 점은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향한 다양한 인프라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이다.

다섯째, 동북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한-미, 북-미, 미-일, 중-미관계 등 각개 격파된 동아시아 각국과 미국의 양국관계를 축으로 작동한다. 미국은 동아시아 각국의 첨예한 민족주의적 갈등을 제어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보장한다는 논리로 미군의 주둔을 정당화한다. 미국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당시 미 국무부 차관 아미티지의 2005년 4월 29일 발언은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야말로 동북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비결임을 다시 한번 입증해준다. 반미 민족주의가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역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임지현 교수
 
여섯째, ‘진보’의 고지를 선점한 ‘수구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한 기계적 이해와 자신들의 빈약한 상상력을 도덕주의로 방어한다. 적과 우군을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도덕주의적 의사소통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새로운 전망과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민족을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사유하는 본질주의적 사유방식의 폐해가 이미 자기 방어의 선을 넘어 수구화된 것이다. 임지현 교수/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유럽의 민족주의, 유럽 사회주의 사상사, 민족주의 역사서술 비교 등의 주제에 대해 8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대중독재 1~3>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의 책을 펴내거나 엮었습니다.

 

민족 배제한 사회변혁 ‘순진한 발상’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민족주의는 누구에 의해 어떤 국면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애국주의’와 ‘저항운동’의 상이한 면모를 보인다. 지난해 누리꾼들이 개최한 황우석 박사 지지 집회(왼쪽)와 지난 3월 열린 한미에프티에이 반대시위.(왼쪽).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4. ‘민족’은 대중의 생존기반

 

지난 3주 동안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민족과 탈민족의 관점에 서서 논쟁을 펼쳤다. 안병욱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래 유지해온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와 임 교수는 탈민족 담론을 펼쳤다. 박 교수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가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이 두드러졌다면서 민족 관념의 실체를 부인했다. 그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서울과 뉴욕의 중심이 연합하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주의 네트워크를 표상한다면서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지배엘리트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김동춘 교수는 이 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면서도,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했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병리적인 것 혹은 ‘특수한 것’으로만 간주하는 시각은 사태의 한 쪽 측면만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안병욱 교수가 그동안 제기된 탈민족 시각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다시 정리해 보여준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민족의 개념에는 종족적 동질성과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곧 민족에는 초역사적·자연적 성격이 언제나 전제되는 경향이 있지만, 시민권의 보유자라는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위는 전쟁 등 봉건질서의 해체와 근대 헌법과 시민권 형성 국면에서 만들어졌고, 자국이 제국주의 침략국으로 나서면서 훨씬 강화되었지만, 근대화·산업화에 실패한 주변부에서는 민족국가 실현의 이상 속에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민족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응집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유사종교인데, 그것이 민족의 자연적 성격을 강조할 경우에는 우익보수주의 혹은 극우 파시즘의 양상을 지닐 수 있고, 주권·시민권 확보의 내용을 강조하면 제국주의·시장주의에 의해 붕괴된 ‘공동체’ 복원이라는 이상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과거 식민지·종속국의 민족주의는 정치공동체 혹은 ‘사회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어떤 경우든 민족주의는 국가 혹은 사회 내에서 계급적·사회적 차별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파시즘의 쓰라린 기억을 가진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주로 부정적 현상을 지칭한다. 이 경우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는 애국주의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데, 어떤 경우든지 내부의 정치적 억압, 계급 간의 대립을 축소하고 대중을 국가에 복종시키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사회 내의 소수자나 소외된 자들을 억압·기만하기 위한 체제유지적 이데올로기만은 아닌데, 근대 민족국가 수립운동은 헌법적 질서, 시민권 확보, 사회의 공공성 유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권의 상실, 민족국가의 부재는 약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 일제 식민지,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체제가 누구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는가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대중들의 실천으로서 민족주의는 그들의 생존조건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양상을 지니기도 한다.

 

‘민족주의’눈 두개의 얼굴 지녀
국가 주도하면 ‘애국주의’ 양상
대중 실천하면 ‘저항운동’ 면모

 

그래서 민족주의는 누구에 의해, 어떤 정치경제 국면에서,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나오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성격을 지닌다. 과거의 저항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인권·자유의 가치를 내장했지만,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는 전쟁·폭력·차별과 결합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자본가적 국가주도하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는데, 중화민족주의는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더불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화민족주의는 외적으로는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과 미얀마의 인권탄압을 묵인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소수자나 노동자 탄압, 언론 통제를 수반한다. 그래서 반제국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국가주도의 성장주의의 내용을 갖는 중화민족주의는 동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의 우경화보다 더 위험한 정치적 힘이다.

그 동안 반식민지·반외세·분단극복의 내용을 갖고서 저항 이데올로기로 기능해 왔던 한국의 민족주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점차 보수 이데올로기로 변하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분단 통일 민족주의의 측면보다는 일종의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 민족주의의 보수화·우경화는 앞에서 시민권·주권 확보의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민족의 자연적 성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익과 자본의 이해를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번의 황우석 사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따라잡아서 1등 하기, 경제지상주의, 국가주의 등 민족주의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황우석 신드롬은 민족주의의 맹목적 성격과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한국이 자본의 수출국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가 이제 퇴영적 측면만 갖는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과거 식민지 시절의 저항 민족주의가 제국주의/경제주의에 의해 자유와 시민권이 억압되는 현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국민국가 곧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담고 있었듯이, 오늘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신자유주의 광풍에 맞서서 대중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 국가 재형성 혹은 사회 재형성의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반도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진보적 요소를 약간이나마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터인데, 어쨌든 분단극복과 통일국가건설의 지향이 인권·평화·민주주의· 공공성 확보와 같은 가치의 인도를 받는 한 그것은 진보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의 최대의 수혜자는 남북한의 민중들일 것이다.

 

최근 ‘국가주의’ 우경화 뚜렷하나
민족은 관념 아닌 구체·사회적 힘
통일민족주의 수혜자는 남북한 민중

 

 

물론 현재의 지구화 국면에서 설사 남북화해와 분단체제의 제한적 극복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자본의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크고, 그 후 만들어질 사회가 지역·세대·계층으로 극도로 차별화된 사회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의 지구화가 곧 지구적 대안 설정, 지구적 운동의 연대를 보장한다는 전제하에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세계경제, 지구화된 질서 속에서도 쉽게 이전되거나 사라지지 않으면서 대중의 정신적·물질적 생존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이 오늘날 민족(국가)의 실제 내용이다. 문화와 언어, 자연자원, 기술과 교육 인프라, 사회복지 시스템, 중소기업을 포함한 영세기업, 노동자와 농민 및 그들의 재생산 기반, 역사적 기억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정책·제도·정치의 기반이 되는 무시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다. 따라서 민족, 민족주의를 병리적인 것 혹은 ‘특수한 것’으로만 간주하는 자유주의와 탈국가주의 좌파 시각은 사태의 한 쪽 측면만 강조한다. 물론 이제 자본의 수출국이 되고 다인종 국가로 변해가고 있는 한국에게 과거식의 단일민족의 신화나 자민족중심주의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은 미국발 대자본의 이해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는 점, 과거 제국주의 논리의 현대판인 자유무역, 시장만능주의가 그것을 즐긴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와 일본의 우익민족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적 생존과 문화적 자존을 도모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반미 통일 민족주의가 대안인가, 아니면 동아시아 시민사회 수립, 노동자의 연대가 대안인가? 이에 대한 답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 민중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방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남북한 간 전쟁과 갈등을 막는 것, 우리가 원하지 않게 전쟁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째요, 한반도를 아우르는 헌법적 정치단위가 수립되어 경제적 약자들을 법이나 제도로 보호해 주는 것이 둘째요, 성장주의 독재의 뒤안길에서 소외된 중국·동아시아 인민들의 처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공동의 이상을 향해 연대를 하는 것이 셋째다.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김동춘 교수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을 주제로 하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과거사 정리 및 한국사회의 기업사회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근대의 그늘>(2000년) <전쟁과 사회>(2000) <미국의 엔진>(2004) <1987년 이후 한국사회 성찰>(2006) 등이 있습니다.

 

계급-민족, 만나야 강력해진다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 주변국 문제에 있어 한국사회는 중·일과 미국에 대한 ‘이중잣대’가 존재한다. 민족의식 ‘과잉’ 현실과 ‘숭미사대주의’가 공존하는 셈이다. 동북공정 중단 촉구 시위(왼쪽)와 독도 관련 시민단체의 반일 시위 현장(오른쪽). 〈한겨레〉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5. 현실적 역할 엄존한다.

 

지난 4주 동안 민족과 탈민족 혹은 중도적 관점의 논자 4명이 논쟁을 펼쳤다.

논점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근대 이전 민족 관념의 실체가 있었는냐의 문제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진단했다. 반면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는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강했으며 동질적인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불과했다는 시각을 보였다.

또 다른 논점은 민족주의가 피지배 계급 저항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안 교수는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 했고 임지현 한양대 교수도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했다.




두 관점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민족주의가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면서도 구체적인 사회적 힘인 민족을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의식이 계급연대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실사구시적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계급연대는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6회와 7회는 권혁범 대전대 교수와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각기 주장을 펼친다. 애초 5회로 연재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이 주제에 대해 학계 안팎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져 논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2회 늘리기로 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진보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논지를 펼쳐 달라고 청탁을 받기는 했지만 평소 필자가 민족주의와 관련된 논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그런 논쟁은 서양의 이론을 끌어다 한국사회 연구자들을 비판하는 식으로 전개되어 왔었다. 그런데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한국사회를 연구한 성과란 서양에 비해 크게 뒤진다. 아직도 기초적인 사실규명에 급급한 처지여서 연구성과에 바탕을 둔 이론적 체계화가 크게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런 형편에서 서양의 이론을 끌어다 전개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 논쟁이 실제적이고 균형 있게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민족주의적 가치를 두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이끌어 내보고 싶어 청탁에 응하여 기고했다. 무엇보다 이번 논의를 기해 한국사회에 대한 심화된 분석이 이루어지고 세계사적인 시야가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최근 4개 텔레비전 방송은 서로 앞다투어 가면서 고구려 시대를 소재로 한 연속사극을 방송해오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창작된 드라마일 뿐이지만 이른바 중국 동북공정 문제로 야기된 민족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올바른 역사 인식과 거리가 있는 우리 사회의 과장된 민족영웅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독도문제로 인해 거의 주기적으로 일본을 향한 비판적 공격이 촉발되곤 한다. 상대국들이 문제를 야기하고 빌미를 제공한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해 온 것이다. 때로는 그동안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쏟아내듯 맹목적으로 대응하곤 한다. 이런 모습들이 한국사회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세련되지 못한 낙후한 역사인식인 것이며 때로는 광풍에 가깝다고 할 만큼 과도한 점이 있다.

 

동북공정·독도 관련 맹목적 반응
민족인식 ‘과잉’ 측면 방증하지만
중·일 아닌 미 정부 비판은 불가능
‘숭미사대주의’ 해법 ‘민족’에 있어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적 인식이 과잉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민족 정서를 건들면서 파고들면 쉽게 흔들리곤 했다. 거기에는 대중의 정서를 악용해 온 정략적 의도, 상업주의, 기득권 세력의 책동들이 얽혀 있다. 그에 따라 때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불가능하게 되고 그런 정서를 악용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사회통제가 횡행해 왔다.

그와 같은 과잉된 현상이 두드러진 경우를 크게 세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중국과 관련되는 역사와 영토 문제 등에서 쉽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대외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민족주의적 대응이다. 그러나 다 같은 대외 문제이지만 미국과 관련해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현재 반세기가 넘게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어찌됐건 민족 내부문제 때문에 주둔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초국적 자본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일 미국 정부를 비난한다면 사회적으로 무사히 넘어가지 못한다. 예컨대 어떤 경우라도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함에도 강정구 교수는 한국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이 희생된 데 대한 맥아더의 책임을 논했다고 하여 2심 재판까지 진행된 현재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이다. 정치인들은 훨씬 제약이 심해 만일 발언 가운데 실수로라도 반미적 표현이 들어간다면 그런 경우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한국에 민족주의란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민족주의가 아니라 숭미사대주의라는 설명이 합당할지 모르겠다. 이는 19세기 서양에서 시민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형성되던 조건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인식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이주노동자 문제가 상징하는 것처럼 저성장국 사람들을 상대로 표출되는 흔히 졸부 근성이라고 비난받는 일부 한국인들의 행태이다. 참으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행태라고 봐야지 그것을 민족성 내지 민족주의 탓으로 환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일시적 부작용이며 한때 일본관광객들에게서 제기되었던 문제와 비슷한 현상이다. 개개인들의 성숙된 인식이야말로 공동체를 매개로 형성되는 자율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오히려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순기능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사회를 마치 시대착오적 민족주의가 전횡한다고 하는 획일적 시각으로 재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왜곡된 편향이다. 개인들의 일탈을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 인식하는 것은 지난날 일제침략을 위한 식민주의 사관과 다르지 않다.

 

 

이주노동자·저성장국 폄하 문화
‘민족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해야
“민족이 계급연대 저해” 주장보다
분단·차별 대응 방안 모색해야

 

셋째로 가장 맹목적 행태는 안으로 노동자 파업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목도하게 되는 우리 사회의 파시즘적 반응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본은 파시즘적 비호를 받으면서 무소불위의 횡포를 자행하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은 권력의 야만적 탄압으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마저 양보해야 한다. 자본을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여론 몰이에 혹세무민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삼성재벌과 같은 공룡이 탄생하고 나라는 삼성의 수중에서 농락당하는 형국이 되었다. 자본의 시장논리는 노동자의 파업권이 확보될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데도 삼성은 국가의 공권력을 이용해 그러한 최소한의 공리마저 무시해 오다가 초역사적인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자본과 노동계급관계의 차원을 넘는다. 또 계급연대만으로 해결되기도 어렵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노동계의 동향은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지난 199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을 때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당시 노동운동은 민족민중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곧 노동자의 계급연대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탈민족을 향해 나가는 세계사의 흐름을 부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의식이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한국적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에 대해 변명한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세계사의 흐름에 조응하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탈민족을 내세우면서 민족주의적 주장들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할 뿐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말하지는 않고 있다. 계급연대를 말하지만 이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설명은 부족하다.

때문에 그동안 민족의식을 매개로 지탱해온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기반과 역사성을 탈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허물어낸 틈새로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펼쳐지는 것은 아닌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민족의식이 계급연대를 저해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낡은 시대의식(민족주의)이 세계사적인 새로운 흐름(탈민족 계급연대)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모순된 인식을 주장하고 있다.


 
»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의 개념 정의나 이론도 아니고 또 민족의식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인 민족분단, 민중 차별과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존 조건,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야만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 점에서 여전히 진보적 민족주의의 할일은 남아 있는 것이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1948년생으로 조선후기 사회변동 문제와 민중운동·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청산과 학술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최근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 보고서를 엮어냈습니다.

 

신자유주의 못 막는 ‘민족’을 땅에 묻어라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 6. 용도폐기 할 때
 
우리시대 지식논쟁 /

 

6. 용도폐기 할 때

지난 5주 동안 네 명의 논자가 민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펼쳤다. ‘민족’ 진영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탈민족’ 진영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임지현 한양대 교수 그리고 중도적 견해를 가진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현 단계 민족 담론의 유효성과 한계를 주제로 비판과 반비판을 전개했다.

이번 논쟁의 큰 축은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는 안 교수의 입론을 따라 형성됐다. 그는 계급연대는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임 교수도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민족 현실론’을 폈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주의의 본질을 배제와 차별로 규정했다.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평등 등 보편 가치가 그 아래 종속되고 개체적 정체성과 ‘개인해방’은 사소한 것으로 전제된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부국강병주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권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근거는 민족이 아니라 개발독재가 파괴한 작은 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이제는 민족주의를 땅에 묻어야 할 때라고 단언했다. 이번 논쟁의 마지막 회가 될 다음 주에는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제3세계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제1세계의 민족주의를 뭉뚱그려서 한통속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자의 정당방위적인 성격과 후자의 공격적·제국주의적 성격을 구별하지 않는 위험을 갖기 때문이다. 사카이 나오키 등 제1세계 지식인들의 ‘탈민족주의론’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주변부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를 은폐하는 기능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의 유사성을 간과하는 진보적 민족주의론에도 큰 문제가 있다. 여전히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설정하는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은 동질적 집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상호 모순적인 성별 계급 등 간의 충돌과 이해관계를 무화시킨다. 계급의식은 몇몇 논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족공동체’에서 더 강력해지는 게 아니라 약화된다. 진보진영에서 자주파와 평등파의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다. ‘우리’의 강조는 ‘내부’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지배적 소수의 이익을 ‘우리 민족’이라는 언술적 가면으로 포장한다. 개인=사회=민족=국가=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것을 ‘삼성 민족주의’라고 부르면 과장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남’ 역시 동질적인 집단으로 타자화된다. ‘미국놈’ ‘미국사람’ ‘미국정부’ ‘미국 시민사회’가 똑같은 이해관계를 지닌 하나의 단위로 간주된다. 거기서 이삼성의 표현대로 ‘한국 내 냉전세력과 미국 내 군사주의 세력 간의 비대칭적 동맹’을 읽어내기란 어렵다.

민족주의는 민족 및 국가의 영원한 유지와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집단주의다. 따라서 생명·평등·인권·자유 등의 보편적 가치는 그것 아래 종속되며 개체적 정체성과 ‘개인해방’은 ‘사소한 것’으로 전제된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나 타민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자동적으로 생산한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행태’나 ‘일시적 부작용’이 아니다. 배제와 차별은 민족주의의 본질이다. ‘가장 유용한 유대관계는 민족의식’(안병욱)이라는 주장은 다양한 집단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위계질서화하는 기능을 한다. 민족이 최고고 그 다음은 계급이고, 성별이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계급·젠더 문제 이전에 국가 간의 이해 대립이 초래한 모순에 더 좌우되고 있다”(안병욱)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민족보다 젠더가 더 중요한 기준일 수가 있고 장애인에게는 장애여부가 계급이나 민족보다 우선하는 범주가 될 수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내 후배(장애인)는 결국 캐나다 이주를 택했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홍석천은 네덜란드로 떠나고 싶어했다. 국적을 넘어서는 월경적 주체를 지향하는 여성주의자에게도 민족은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탈민족적 주체들을 민족의 하위 단위로 포섭할 때 그것은 다중적인 주체의 형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만다. 민족 및 계급해방 다음에 여성해방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해방론’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구분
우리 안의 다양한 모순 무화시켜
오히려 계급의식 약화 불러오고
‘남’에 대한 억압과 차별 자동생산

 

고정적 우선순위를 두면 서열화와 억압이 발생한다. 가령 사회운동이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에 ‘앞서’ 국가보안법 철폐에 ‘집중’하자는 것은 현실을 단순하게 인식한 것이다. ‘진정한 진보’라는 말은 이래서 위험하다. 우선 순위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족을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그 기준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이성애-비장애인-남성 중심적인 진보적 민족주의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시도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민족주의로부터 나온다는 주장과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이 ‘미국발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지적(김동춘)은 어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전국적으로 일어난 ‘금 모으기 운동’과 ‘선진국 음모론’은 ‘내부’의 단결을 외치며 ‘외부’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되레 재벌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고 한국사회의 내부적 변혁을 오히려 가로 막는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이라는 코드를 통한 한국의 대자본과 한총련의 입장이 이렇게 유사한 때가 있었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닫힌’ 민족주의나 ‘열린’ 민족주의 간에 둘 다 낡은 부국강병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통적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진보적 구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발전주의를 뒷받침하며 그것이 유발하는 모순을 정당화한다. 후진국에 대한 착취나 생태계의 파괴를 ‘우리 민족’의 번영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앙집중적 산업문명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약탈, 환경 공공재 파괴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요즘 유행하는 ‘선진국’ 담론, 통일 담론에도 이런 점이 깊숙이 들어가 있다.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한민족의 경제력 증강’을 위한 것이다. 진보적 민족주의는 국내·국제의 불균등발전과 재분배에 주목하지만 생태적 재앙을 일으키는 ‘부의 확대재생산’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전통질서 깼지만 ‘부국강병’ 내포
후진국 착취·생태계 파괴 정당화
세계화 맞선 국제연대에도 힘못써
친생태적 마을공동체 복원이 대안

 

 

자본과 상품이 무차별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운동-노동·환경·여성·비정규직·이주자 운동이 민족이라는 코드에만 의존해 ‘국제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점점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일국적 관점과 운동으로는 불가능해지고 있다. 개인을 넘어서면서도 민족에 안주하지 않으며 민족국가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 시민사회 및 시민운동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개발독재가 파괴한 작은 공동체, 곧 친생태적 풀뿌리 ‘마을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세계화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삶의 구체적인 테두리’(김우창)를 없애나가는 민족주의로 퇴행하는 것을 막으려는 녹색의 정치학이다.

민족주의는 ‘구체적인 힘’이고 민족을 무시한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김동춘)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30년대의 파시즘도 현실적 힘이 아니었던가? 민족의식이 부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그것을 견제해야지 따라가야 할 것인가?


 
제3세계의 진보적 민족주의가 한때 가졌던 긍정적 역할과 힘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가졌던 반냉전주의 및 반제국주의적 성향은 정당하다. 하지만 후자가 결국 주변부 부르주아의 자본주의적 헤게모니에 흡수되고 말았던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21세기의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고민과 대안 모색에서 필요한 것은 탁석산이 인용한 지수걸의 말대로 민족주의에 대해 ‘겸허한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다.

권혁범/대전대 교수

 


권혁범 교수는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대(엠허스트)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요 관심분야는 민족주의·환경·페미니즘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2000), <국민으로부터의 탈퇴>(2004),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2006), <우리 안의 파시즘> (2000, 공저) 등이 있습니다.

 

핏줄의 민족’ 버리고 ‘주체적 우리’ 고민할 때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김진수 기자
 
 
»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가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함께 연 ‘이주노조 표적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 현장. 김상봉 교수는 ‘나’는 민족의 범주 속에서 참된 의미의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한다면서,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강조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우리시대 지식논쟁 /

 

7. ‘민족’ 해체는 절박한 과제

이번 주로 모두 일곱 차례에 걸친 ‘민족주의 논쟁’을 마무리한다. 1, 5회의 안병욱 교수를 비롯해 박노자·임지현·김동춘·권혁범·김상봉 교수 등 모두 여섯 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가운데 안병욱 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민족주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면서 계급연대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박노자·임지현·권혁범 교수는 탈민족주의 시각을 폈다. 박 교수는 민족주의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뒀다. 임 교수는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이나 평등 등 보편가치가 종속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중도 시각의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민족현실론’을 폈다.

마지막 논자인 김상봉 교수는 서양 이론에 기댄 소모적 논쟁보다는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족 해체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 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해가야 한다고 했다. 다음 주제는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민족주의가 ‘집단적 자기’에 대한 집착이라면,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것은 지금 한국에서 절박한 실천적 과제다. 아집이 어리석은 것은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집이란 자기동일성에 대한 집착인데, 살아 있는 어떤 것도 순수한 자기동일성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동일성이란 플라스틱처럼 죽은 사물의 특징인 것이다. 하물며 개인도 아닌 집단인 민족을 두고 고정된 동일성을 몽상하는 것은 계몽된 시대에 어울리는 자기인식이라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민족의 구분기준은 너무도 야만적이다. 현행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민족을 “씨족이나 종족, 부족 등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공통의 조상을 가진 한 핏줄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정의한 뒤에 너무 자연스럽게도 민족을 “하나의 큰 가족”이라고 이르고 있다.(도덕 II, 156) 민족을 가족과 같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맞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민족이 핏줄로 규정되는 나라에서 민족 구성원들에게는 맹목적 충성이 강요되는 반면, 조금이라도 핏줄이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세계화된 시대에 정말 심각한 질병이다.

한편에서는 차라리 감옥에 갈지언정 군대 가서 총을 들 수 없다는 젊은이들은 핏줄이 같다 해서 군대에 끌려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면서 이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다. 새로 결혼하는 일곱, 여덟 쌍 중의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는 나라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핏줄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이 사회의 주류에게 까닭 없이 배제되고 차별받은 소수자들의 좌절과 증오가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핏줄’ 로 규정되는 민족주의는 주체성 억압·타자와 소통 방해
“민족이 세계화의 대안” 주장은 질병으로 다른 질병 고치는 격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까닭은 민족주의 없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실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우리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조국은 언제나 민족을 팔아 충성을 강요한다. 그렇게 홀로주체로서 군림하는 조국과 민족 아래에서 개인은 주체성을 빼앗기고 전체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런즉 민족주의는 개인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타자와의 참된 만남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타파해야 할 이데올로기이다. 더러는 계급이 민족과 만나야 강해진다거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그나마 민족주의가 자기를 지키는 방파제가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질병을 다른 질병을 통해 고치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사회의 도를 넘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이제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로까지 타락한 상태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히 국가주의에 저항하고 민족주의를 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족주의를 비판할 뿐 그것의 존재 근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질병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 민족은 실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주체성은 자기인식에 존립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스스로 욕구할 줄 모르면서 주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꿈과 동경 속에서 이상적 자기를 욕구하는데, 안정된 자기인식은 기억 속의 자기와 동경 속의 자기가 조화를 이룰 때 형성된다.

이 기억과 동경의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자기인식은 필연성과 자유라는 두 계기 사이에서 생성된다. 필연성은 고정성으로서 이를 통해 나의 존재는 안정성을 얻는다. 반면 자유는 유동성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나는 노예 상태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자유로운 필연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긴장 속에서만 자기를 주체로서 인식하고 실현하게 된다. 고정되어 주어진 나의 존재로부터 자유롭게 나를 형성할 때 비로소 나는 자기를 온전한 주체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주체들의 공동체가 나라
민족이란 그런 나라 이루는 집단
국가 비판하며
능동적으로 형성할 ‘우리는 누구인가’ 묻고 모색해야

 

그런데 나의 주체성은 결코 고립된 홀로주체성일 수 없다. 나의 기억과 동경은 언제나 너의 기억 및 동경과 맞물려 있다. 그런즉 나는 오직 너와 더불어 우리가 될 때, 참된 주체가 된다. 이것이 서로주체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체성의 현실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연성과 자유가 같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가족은 필연적 공동체일 뿐 자유의 현실태는 아니다. 반면 정당이나 기업 같은 사회적 결사체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이지만 필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는 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가족 속에서는 자유의 결여 때문에, 그리고 계급 속에서는 필연성의 결여 때문에 참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필연성과 고정성을 가지면서도 자유의 현실태인 공동체가 바로 나라다. 나라는 내가 그 속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이미 주어진 나의 과거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의 현실태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나라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강렬하게 확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족이란 그런 나라를 이루는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 한에서 민족이란 인종처럼 생물학적인 범주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범주로서, 그 속에서 나는 참된 의미의 주체 곧 시민적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계급적 연대나 다른 탈민족적인 만남 속에서 해체하자는 제안은 세계시민적 주체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제안이지만, 민족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이런 제안은 온전한 나라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방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국가기구와 법률을 결국은 악한들의 손에 내맡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라를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 우리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김상봉 교수 / 전남대
 
하지만 그런 나라를 같이 만들어야 할 서로주체인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수백년 동안 이 땅에 살아왔지만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을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과 새로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과 이 땅에 살다가 다른 나라로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우리로 불러모을 수 있는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민족의 문제는 오직 이 물음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을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개방적으로 해석하는 박노자의 상상력과 고체화된 민족과 국가를 비판하는 권혁범의 이성과 온전한 나라를 형성하려는 김동춘의 열정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런즉 지금은 민족주의에 대한 서양 이론의 한 끄트머리씩을 붙잡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1958년생으로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들어 전 사회적인 반학벌 운동을 전개했으며 현재는 5·18에 대한 철학적 해석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 저서로는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덕교육의 파시즘> <학벌사회> <나르시스의 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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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실체 없는 ‘유목주의’ 이미지만 떠돈다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 노마디즘은 저항의 철학인가 침략의 철학인가? 홍윤기 교수는 노마디즘이 실체는 없이 이미지만 떠도는 실험 단계의 기획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보였다. 칭기즈 칸의 동상,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한국 국적 취득자들(왼쪽부터).〈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 논쟁 /

 

① 개념부터 확정해야

 

유목주의로 옮겨지는 노마디즘(nomadism)이 국내에 본격 알려진 시기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의 고원〉(1980) 해설서 〈노마디즘 1·2〉가 나온 2002년께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가 쓴 이 책에서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으로 규정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특히 그들의 저서에서 “국가로 상징되는 고착된 가치에 맞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도구”로 ‘전쟁기계’를 노마디즘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노마디즘은 지난해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씨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란 책을 내놓으면서 논쟁이 일었다. 천씨는 다리를 놓고 길을 내며 질주하는 유목의 세계에서 반생태성과 비지속성 그리고 ‘침략과 파괴의 역사’를 읽어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노마디즘은 칭기즈 칸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복고주의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외형상의 유목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배적 가치와 대결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안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홍윤기 교수는 이번 글에서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서 수많은 노마드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공존하고 있음을 우선 지적한다. 자크 아탈리류의 ‘시장 노마드’나 첨단기기로 사이버공간을 가로지르는 ‘고급소비자 노마드’라고 해서 진정한 노마드가 아니라고 배제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노마드들이 갖고 있는 의미가 특정 규정으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지 못하고 다감각의 ‘이미지’로 교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노마디즘은 ‘개념’과 실행’이 부족한 탈현실 기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노마디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의 응답부터 말하자면, 아직 ‘어떻게’ 봐야 할 ‘그 어떤’ 노마디즘 같은 것은 우리 생활 안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말을 써서 모종의 효과를 유발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은 우리 주변에 넘친다. 그리고 이 효과들은 상호 충돌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변화무쌍한 그 용어의 용례들부터 정리하고 나서야 가능할지 모른다.

1.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공저 〈천의 고원〉이 역사학을 제외한 인문학계와 일부 사회학자들, 그리고 학문적 유행에 민감한 언론계, 소비자 취향에 집중하는 사업계 등의 지도적 인사들로 하여금 노마디즘을 일상적으로 입에 달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1227년”이라는 암호 같은 연대를 앞세운 이 책 12장의 표제를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라고 붙이면서 “전쟁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진술로 그 장을 시작한다.(유목민의 최고 상징 격인 칭기즈 칸은 바로 이해 8월18일 서하(西夏) 정벌 중 병사했다.) 이때 “전쟁”을 무엇으로 이해했든 들뢰즈·가타리는 전쟁과 관련된 유목민의 역동성 같은 것이 “국가”의 영토성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탈국가적·탈경계적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했다.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다”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은 “불복종 행위, 봉기, 게릴라전 또는 행동으로서의 혁명이라는 반국가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전쟁기계가 부활하여 “새로운 유목적 잠재세력”이 출현한다는 일반명제를 제시했다.

 

탈국가 지향하는 제2의 칭기스칸
사이버 공간 활보하는 고급 소비자들
모든 문명 내던지는 원시 회귀 까지
수많은 노마드 주장들 대립·공존

 

2. 문제는 이들이 그렇게 타파하려는 국가가,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어떤 종류의 국가인지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그 자체로서 이미 어떤 형태이든 “포획 장치”이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작동시키고자 하는 전쟁기계의 목표가 반드시 전쟁은 아니라는 언명은 전쟁을 게임 속에서의 경쟁쯤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정도로 문제의 진지성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전쟁 기계의 가동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뿐만 아니라 노동·상품·자본 등 “포획”을 연상시키는 모든 제도 장치로부터의 탈주를 권장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전면적 탈경계 기획은 그 실천적 함의가 대단히 다양하다.

3. 이것을 문명의 모든 성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그것은 원시로의 회귀까지 각오한 급진적 생태주의가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때의 탈주는 역진적 퇴주가 되는 셈이다.

4. 만약 탈경계의 지향점을 문제삼지 않을 경우, 삶의 조건과 영역에 처진 경계들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왕래하거나 이동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와 생활양식은 모두 노마드적이다. 인간이란 “여행을 존재의 본질”로 한다고 하여 ‘호모 노마드’를 부각시킨 자크 아탈리는 세계화된 지구시장을 그 옛날 대상로가 거미줄처럼 얽혔던 실크로드로 간주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노마드로서 진화의 최종점에 도달하며, 이들이 전세계를 장악하기까지의 무질서 너머로 “모든 인생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땅”이 전개된다고 고무한다.

5. 당연히 아탈리류의 시장 노마드는 세계 자본 순환과 그것의 외양인 제국에 완전히 포획되어 그 안에서 이익에 혈안이 된 “여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여행자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다. 농촌자치 공동체를 꿈꾸는 농민 철학자 천규석 선생에게 이런 “유목주의는 침략주의이다.”

6. 그렇지만 자본과 제국의 포획 안에서 자신의 생활압박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출생하고 호주에서 성장하다가 프랑스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네덜란드에서 교수로 취업한 로저 브라이도티 같은 이에게 유목적 주체란 연속된 이주로 복잡화되고 다층화된 수많은 다양한 타자들 사이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7. 그러나 자본의 속도는 유목민의 다양화를 앞질러간다. 이미 시장에는 마셜 매클루언의 예언대로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피디에이(PDA), 디지털카메라, 엠피3(MP3)을 갖춘” 고급 소비자들이 노마드를 자칭하면서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무한 초원을 무대로 “공간의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법을 능동적으로 바꾸어가는 창조적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1세기판 유토피아 꿈꾸는 노마디즘
개념·실행 없는 ‘탈현실’ 실험일 뿐
찬반을 말하기엔 아직 일러
변화무쌍한 용례들부터 정리해야

 

 

자, 위의 노마드 또는 유목민의 사례들 가운데 자기만 빼고 다른 것은 진정한 노마드나 유목민이 아니라고 얘기할 권리가 있는 진정한 유목민은 몇 번인가? 그 의미가 어떠하든 노마디즘은 어떤 동기나 근거에서든 21세기 현재의 (지구)사회적 지형 위에서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을 대체하는 탈현실(post-reality) 기획이다. 그야말로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 수많은 노마드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면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하거나 공존한다. 이때 의미들(senses)은 특정 규정으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기보다 다(多)감각(multi-sense)의 ‘이미지’ 파문으로 교착한다.

다만 노마디즘 기획은 노마드를 바로 지금 이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탈경계의 이동이나 탈주를 하는 듯이 보이는 소수 엘리트층 또는 자기 땅에서 밀려나 탈국가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수많은 빈민이나 노동 이민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진경 교수의 말대로 이들은 “떠돌아다니지만 끊임없이 어딘가 멈출 곳을 찾는” ‘실질적 고착자들’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역시 이진경 교수의 구상을 빌려, 떠남/멈춤의 이동성을 신체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사상과 갈등을 자유자재로 읽고 사유하는 한층 정신적인 차원에서 유목성을 추구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목성이 국가·자본·시장과 같은 외적 준거점을 떠나 정신과정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그런 관념적 유목성이 들뢰즈·가타리가 “모델을 늘리지 않으면서”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매끈매끈한 판”을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홈 안으로 몸을 도사리는 것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단지 탈주의 기획을 말했을 뿐이다. 그것은 노마드에서 많은 것을 학습하는 과정, 곧 노마돌로지(유목론)적 탐색이긴 해도 노마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노마디즘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 홍윤기 교수
 
노마드나 노마디즘은 거기에 대한 찬반 의견을 말하기엔 그 자체의 ‘개념’과 ‘실행’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태부족한 실험기획이다. 더 중요한 것은 들뢰즈·가타리가 결국 인정했듯이 노마드 그 자체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다. 곧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의 매끈한 공간만으로 충분하다고는 절대 믿지 말라.”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홍윤기 교수는 1957년생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사회통합의 규범기반 모델, 그리고 문화적 가치의 철학적·사회과학적 실현 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변증법 비판과 변증법 구도> <헌법 다시 보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다른 삶을 위한 ‘차이 철학’이자 ‘혁명 정치학’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오스트리아제국 태생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왼쪽)와 〈자본론〉 저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오른쪽). 이진경 교수는 오래된 소설 형식을 혁파한 카프카나 “불모의 땅”에서 새 영토를 일구고 있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유목민의 보기로 들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② 충분히 숙성된 사유다

 

지난주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노마디즘(유목주의) 기획을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을 대체하는 탈현실 기획이며, ‘개념’과 ‘실행’이 태부족한 실험기획이라고 지적했다. 노마드들이 규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지 못하고 다감각의 ‘이미지’로 교착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 수많은 노마드들이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 노마드’나 ‘디지털 노마드’라고 해서 진정한 노마드가 아니라고 배제되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홍 교수는 또 제도장치로부터의 탈주라는 개념은 원시로의 회귀를 각오한 “역진적 퇴주”가 될 수 있음도 지적했다. 성격을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국가를 ‘포획’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였다.

2002년 들뢰즈와 가타리 공저 〈천의 고원〉(1980) 해설서인 〈노마디즘 1·2〉를 펴내면서 우리 사회에 노마디즘을 널리 알린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이 글에서 유목민은 주류적 척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식, 사유방식을 창안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자동차나 비행기로 돌아다니지만, 마음은 언제나 돈이나 자기 가족에 매여 있는 자는 유목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 노마드’ 등 여러 유사 노마드들은 자본이 게바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노마드의 상품화 전략’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또 노마디즘은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며 “그런 꿈을 통해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란 점에서 혁명의 정치학과 상통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주에는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에게 노마디즘이란 정착과 소유, 착취와 포획, 동일성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철학적 문제 설정이고, 우리의 신체와 삶을 사로잡고 있는 권력과 대결하며 새로운 창조적 삶을 창안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윤리학인 동시에 정치학이고, 삶의 방법인 동시에 사유의 방법이다. 흔히들 말하는 ‘차이의 철학’이나 ‘탈주의 철학’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지층 속에서 ‘숙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쓸모 있는 사유도 영향력을 얻게 되면, 그래서 심지어 ‘유행’의 물결을 타게 되면, 그것에 촉발되어 생성되는 ‘친구’들과 더불어, 거기에 편승하는 유사품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자본은 돈이 된다면 게바라나 혁명마저도 상품화해서 팔아먹지 않던가! 그러나 상품화되는 사태를 들어 게바라를 비난하고 혁명을 포기할 순 없는 일 아닐까? 거기서 중요한 것은 상업적 물결 속에서도 애초의 문제의식을 더욱 멀리 밀고 나가는 것일 게다. 그래서 삼성이 ‘디지털 노마드’를 광고 카피로 삼고, 자크 아탈리 같은 이가 “인간이란 본래 노마드였다”면서 재빨리 책을 내는 사태도, 역으로 적절한 근거 없이 ‘노마디즘은 침략주의’라고 비난하는 사태도 내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사태를 헤쳐나갈 수 없다면, 어떤 사상도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능력을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신체·정신적으로 주류적 척도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창안하는 자들이 노마드
새 정착지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거나
돈·가족에 얽매인 ‘이동’과 혼동 말아야

 

이동이 자본의 중요한 특징이 된 지금 노마디즘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유목’과 ‘이동’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정착민도 이동을 하며, 유목민도 멈춘다. 차이는 정착민의 이동이 어떤 목적지(멈춤)에 종속되어 있다면, 유목민에게 멈춤이란 이동의 궤적 안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란 점에서 이동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휴대폰, 노트북 컴퓨터 등을 갖고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고 자동차로 비행기로 돌아다니지만, 마음은 언제나 돈이나 자기 가족에 매여 있는 자를 유목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반면 여행도 잘 다니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사유로 자신이 구축한 영토마저 떠나는 사상가는 유목민이란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더구나 들뢰즈·가타리는 ‘이주민’과 ‘유목민’ 또한 구별한다. 이주민이란 어느 영토에 이주하여 그 영토를 이용하며 살지만 그 영토가 불모가 되면 버리고 떠나는 자들이다. 반면 유목민은 불모가 된 땅(초원이나 사막, 혹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같은…)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살아가는 법을 창안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나는 정착민이란 성공에 안주하는 자라면 유목민은 성공을 버릴 줄 아는 자고, 이주민이란 실패를 쉽게 떠나는 자라면 유목민이란 실패와 대결하며 새로이 길을 찾아내는 자들이라고 이해한다.

유목이나 정착, 이주는 ‘현실적인’ 영역에서도,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모두 나타난다. 어느 영역에서든 유목은, 홍윤기 교수 말대로 “국가나 자본, 시장 같은 준거를 떠날” 뿐 아니라 그것과 대결한다. 노마디즘이나 차이의 철학이 혁명의 정치학과 상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배적인 척도가 새겨 놓은 사유나 삶의 ‘홈 파인 공간’을, 그 깊은 홈들을 범람하여 매끄러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지금의 조건에서라면 어떤 것도 자본이나 국가, 시장과 대결하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관념적’이라는 나쁜 관형어를 덧붙인다고 해도, 이를 ‘홈 파인 공간’ 안으로 몸을 도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좌우를 못 가리는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마이너리티(minority)란 수가 적다는 의미의 ‘소수파’가 아니라 이처럼 주류적(major) 척도와 대결하는 자들이고, 그런 척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식, 사유방식을 창안하는 자들이다. 빈민이나 이민자, 혹은 여성이나 성적 소수자들조차 주어진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혹은 주류적 척도에서 벗어난 삶이나 사유의 방식을 구성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새 정착지를 찾을 뿐이라면, 홍 교수 지적대로 그들 또한 정착민이다. 물론 주어진 상태가 결코 안주하기 힘들기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나서게 할 거대한 잠재성을 갖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되지만.

 

유사 노마드·이념 상품화 현혹됨 없이
애초의 문제의식 더욱 밀고 나가야
비현실적 ‘유토피아’ 주장 틀렸음은
현대·역사 속 수많은 노마드들이 증거

 

이런 대결을 들뢰즈·가타리는 니체의 용어법을 따라 ‘전쟁’이라고 했다.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전쟁, 낡은 습속에 대한 전쟁. 그리고 이런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그들은 ‘전쟁기계’라고 일컬었다. 가령 오래된 소설의 형식을 혁파하고 관료제와 더불어 새로이 등장한 권력을, 그 권력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과 대결하는 카프카의 책들 또한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전쟁기계다. 따라서 이런 전쟁기계는 전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좋은 전쟁에서는 화약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국가장치나 지배적 가치와 충돌할 때, 그 전쟁 같은 충돌을 피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굳이 ‘전쟁’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나로선 ‘투쟁’, ‘투쟁기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기계나 탈주선, 매끄러운 공간 등 들뢰즈·가타리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들조차, 창조적 생성이 결여된 채 주어진 세계에 대한 분노와 혐오에 머문다면, 전쟁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파괴적 전쟁기계로 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매끄러운 공간으로 충분하다고 믿지 말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했던 것이며, ‘노마드 자체에서 벗어나라’는 홍 교수 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들뢰즈·가타리의 유목적 사유를 어떤 이념의 냄새를 확실하게 풍기는 ‘노마디즘’과 대비하여 ‘노마돌로지’라는 말로 그들을 구해주려는 시도가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사유의 명칭에 ‘이즘’이란 말을 넣거나 뺌으로써 무언가 크게 달라질 거라고 믿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의 책을 삶을 바꾸고 정치적으로 작동하는 ‘책-기계’로 사용해 달라고 책의 첫머리부터 주문했던 사람들이, ‘노마드적 삶에서 많은 것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떤 이념 같은 것이 되어선 안 되기에 ‘노마디즘’이란 말을 거부할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중요한 것은 변혁”이라고 했던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이념’이 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대신 ‘마르크스론’(Morxology)이란 말을 고집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어 보인다. 아니라면, 들뢰즈는 그저 ‘학자’일 뿐이라는 말일까? 마지막으로, 노마디즘은 ‘21세기 유토피아’인가? 유토피아라는 말이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고 그런 꿈을 통해 삶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 서울산업대 이진경 교수
 
반면에 흔히 말하듯 비현실적 공상이라면, ‘그렇지 않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스피노자를 모르고도 스피노자주의자가 될 수 있”듯이, 노마디즘을 모르고도 노마드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그리고 역사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진경 교수/서울산업대

 


이진경 교수는 1963년생이며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 전반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코뮨주의’란 화두를 들고 공부하고 있으며, 생명의 경제·정치학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미-래의 맑스주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등이 있습니다.

 

착한’ 노마드? 현실엔 ‘나쁜’ 노마드도 있다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왼쪽부터 보아, 삼성 본관, 배용준. 김진석 교수는 여러 노마드들이 현실 세계에서 뒤섞일 수밖에 없다면서, 문화산업과 결합한 ‘한류’나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동일시하는 ‘삼성’도 유목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3 한쪽만 보는 개념은 불완전

 

지난 두 주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노마디즘(유목주의)에 대해 엇갈린 견해를 드러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노마디즘(유목주의) 기획을 ‘개념’과 ‘실행’이 태부족한 실험기획이라고 비판했다. 노마드들이 규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지 못하고 다감각의 ‘이미지’로 교착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 심지어 ‘시장 노마드’나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수많은 노마드들이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대립·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반면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시장 노마드’ 등 여러 유사 노마드들은 자본이 게바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노마드의 상품화 전략’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했다. 유목민은 주류적 척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식, 사유방식을 창안하는 자들이기에, 마음이 언제나 돈이나 자기 가족에 매여 있는 경우 유목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노마디즘은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며 “그런 꿈을 통해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란 점에서 혁명의 정치학과 상통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석 교수는 이 글에서 이 교수의 논리를 ‘착한 노마드 이야기’일 뿐이라고 공박했다. 여러 노마드들이 현실 세계에서 뒤섞일 수밖에 없음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도 실천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그는 또 유목민도 ‘전쟁기계’의 복합체로 존재할 경우 폭력적 흐름을 탈 수밖에 없다면서 노마드는 그 자체로 착하며 언제나 권력과 폭력에서 자유롭다는 믿음도 공상이라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움직임에 덜컥 사로잡혔다. 한국을 유사 이래 최고 속도, 최대 규모로 세계로 나아가게 한 계기는 ‘디지털 노마디즘’. 그러나 세계로 나아갈수록 동시에 어떤 때보다도 유목주의적 기업과 제국들의 침입에 내맡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이 와중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점점 새로운 폭력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결국 한 생태주의자는 “유목주의가 국가주의보다 더 파국적인 시장제국주의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또 하나의 침략과 파괴주의”라고 고발하고 나섰다. 고발의 목소리는 비록 거칠고 일방적이었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쓴소리였다.




그런데 노마디즘을 이론적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은 그 비판을 쉽게 무시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면서, 이들이 ‘유목민’(nomad)·이주민·정착민을 개념적으로 엄격하게 구분했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론적 권위를 앞세운 이런 주장이야말로 왜곡에 가까운 오독을 낳는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엄격한 개념적 구별의 필요성을 강조한 건 맞다. 그러나 그들은 냉정했다. “그들의 개념적 구별이 실제로 그들이 뒤섞이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거꾸로 오히려 그들의 혼합을 필연적으로 만든다”(들뢰즈와 가타리 공저 〈천의 고원〉)고 인정했다.

이들 인용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마디즘과 관계된 어떤 더러운 현실적 문제들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이론은 자승자박에 이를 뿐이다. 현실의 더러움으로부터 뚝 떨어진 개념은 현실을 설명할 힘도 가지지 못할 터이니! 그런데 이진경씨는 개념적 구분에만 매달리면서 ‘노마디즘’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숙성한 사상이고 나쁜 자본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노마디즘이 침략적 성격을 띠는 것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마음 편하게 말한다.

 

개념의 구분·순수성 내세우며
현실적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주장
되레 유목주의에 대한 오독 부르고
실천적으로도 공허하게 만들어

 

 

그는 노마드뿐 아니라 ‘매끈한 공간’과 ‘외부성’이 그 자체로 순수하고 초월적인 혁명적 개념인 것처럼 말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는 여기서도 그것들을 개념적으로 구별하는 일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매끈한 공간과 외부성의 형식은 결코 그 자체로 불가항력적인 혁명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며, 거꾸로 어떠한 상호 작용의 장에 흡수되고 어떠한 구체적인 조건하에서 실행되고 성립되는가에 따라 극히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천의 고원〉)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순수한 개념이나 의미만이 아니라, 실천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을 아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노마드에 창조성을 부여했지만, 그것이 언제나 착한 정의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노마드를 말할 때에도 오히려 ‘전쟁기계’의 배치를 끝없이 강조했다.(“이 기계의 본질에 비추어보자면 비밀을 쥐고 있는 것은 유목민들이 아니다”)

‘노마디즘’은 현실 속의 나쁜 노마디즘과는 아무 관계도 책임도 없으며, 나쁜 자본주의 국가의 착한 외부에만 존재한다는 말은 ‘착한 노마드 이야기’일 뿐이다. 그건 들뢰즈와 가타리의 텍스트를 지적으로 배반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공허하기 십상이다.

‘전쟁기계’는 비록 전쟁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싸움을 무릅쓰는 어떤 것이며, 때로는 다시 국가제도에 포획되기도 하지만 다시 도망가며 싸우는 어떤 것이다. 그만큼 ‘노마디즘’처럼 지적·문화적으로 유행하기에는 복잡하고 까칠까칠한 주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진경씨는 ‘전쟁기계’가 부차적이고 적절하지도 않은 표현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들 책을 경전처럼 주석하면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는 단순화시키다니! ‘노마디즘’이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기계’의 무서운 까칠까칠함이 은폐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마드가 항상 국가 바깥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국가에 대한 투쟁을 말하지만, 그에게는 두 갈래 길밖에 없다. 곧 국가와 싸우는 일과 국가 바깥의 평화로운 공간으로 가는 길. 그러나 유목적 전쟁기계는 국가에 대해서만 싸우는, 국가 바깥의 ‘착한 노마드’는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에서 국가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고 떠도는 가지가지 패거리들이기도 하며, 국가 바깥에서 국가를 비웃는 다국적이고 세계적인 조직과 폭력이기도 하다. “국가 자체도 항상 바깥과 관계를 맺어 왔으며 따라서 이 관계를 빼고서는 국가를 생각할 수 없다. 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전부’ 아니면 ‘무’의 법칙, 곧 국가적인 사회냐 아니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냐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법칙이다.”(〈천의 고원〉)

 

노마드는 ‘착하다’는 믿음은 공상
한쪽 면만 극단적으로 과장 말고
전쟁기계의 폭력성 함께 인정할 때
문명 분석의 좋은 도구될 수도

 

국가를 위해 싸운 안중근은 바보일까? 또 기독교와 이슬람(그리고 유교)도 국가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유목적 전쟁기계로 작동할 수 있다. 노마드는 그 자체로 착하며 언제나 권력과 폭력에서 자유롭다는 믿음은 공상적이다. 그것은 전쟁기계와 떨어질 수 없고, “전쟁기계와 국가는 서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의 장 속에서 공존하고 경합한다.”(〈천의 고원〉)

더욱이 이진경씨는 ‘노마디즘’을 거의 부드러운 문화상품으로 만든 후에 결론으로 ‘코뮨주의’를 주장하는데, 이것도 ‘전쟁기계’를 간과하거나 은폐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폭력의 수많은 흐름에서 전적으로 벗어난 우정과 사랑의 공동체를 목적으로 삼는 일은 노마드를 줄 세우는 일이 아닐까. 우애에 근거한 공동체는 훌륭한 가치지만, 그걸 노마드의 선험적 목적으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전쟁기계’에게 전쟁이 목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노마디즘은 침략주의라고 공격한 생태주의자가 내세운 것도 모든 국가로부터(심지어 복지국가도) 완전히 벗어난 공동체주의이다.

그런데 거꾸로 노마디즘은 어떤 오류도 없다고 말하는 이진경씨도 비슷한 코뮨주의에 빠진다. 단순한 우연? 아니다. 이들은 노마드의 한쪽 면만 극단적으로 과장했기 때문이다. 소수자인 이주 노동자들은 우정으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그들도 더 좋은 일을 찾아 고향을 떠난 유목민이다. 더 나아가 이곳에서 정착을 원하는 사람도 많으니, 유목민/이주민/정착민의 배치는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기계’의 복합체로 존재하는 한, 유목민들은 ‘따로 또 같이’ 폭력적 흐름을 타고 있으며, 그 폭력적 끈의 긴장 속에서 문명적으로 생존한다.

문화산업과 결합한 ‘한류’도 거센 유목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있고,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동일시하는 ‘삼성’도 그렇다. 들뢰즈와 가타리도 “새로운 노마디즘은 세계적 규모의 전쟁기계를 수반하는데, 그 조직은 국가장치를 넘어서며, 다국적이고 에너지와 관계된 군산복합체 속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한국인은 ‘한류’와 ‘삼성’이 실현하는 유목적 공격성을 전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쉽게 동의하기도 힘든 소용돌이 속에서, 돌고 돈다. 때로는 자랑스럽지만 때로는 더럽다.


 
» 김진석 인하대 교수
 
노마드의 폭력성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 폭력성이 인정된 노마드 이야기는 문명 분석의 좋은 도구일 수 있다. 강자가 먹이를 다 삼키는 폭력적 시스템만 쫓는 노마디즘은 위악적이지만, 모든 폭력에서 벗어난 공동체를 꿈꾸기만 하는 노마디즘도 위선적이지 않을까. 이 사이에서, 기우뚱, 균형을 잡자.

김진석/인하대 교수

 


김진석 교수는 1958년생으로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미학과,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폭력의 다양한 얼굴과 맥락 등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서로 <초월에서 포월로 1, 2, 3>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 <소외에서 소내로> <포월과 소내의 미학> 등이 있습니다.

 

나쁜 노마드’ 구별해야 ‘진정한 노마드’ 찾아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 그는 1980년 가타리와 함께 펴낸 저서 <천의 고원>에서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라는 개념을 구체화했다. 국내에 노마디즘을 유행시킨 이진경 교수의 저서 <노마디즘 1·2>는 이 책의 해설서이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우리시대 지식논쟁/

 

 

④ 비판들에 대한 재반론

 

지난 3주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김진석 인하대 교수가 노마디즘(유목주의)에 대해 엇갈린 견해를 보였다. 이 교수가 노마디즘을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서 ‘혁명의 정치학’이란 수사를 통해 정극 옹호했다면 두 사람은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홍 교수는 ‘시장 노마드’나 ‘디지털 노마드’ 등 여러 노마드들이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대립·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노마드들이 ‘개념’으로 묶이지 못하고 ‘이미지’로만 교착되고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지난주 김 교수는 현실 속에서 여러 노마드들이 뒤섞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들뢰즈·가타리도 개념뿐 아니라 실천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이 교수의 ‘노마디즘’은 현실 속의 ‘나쁜 노마디즘’과는 아무 관계도 책임도 없는 ‘착한 노마드 이야기’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나쁜 노마드’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노마디즘을 버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단순화해서 ‘나쁜 노마디즘’과 ‘좋은 노마디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중요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초월적 외부에서 선과 악이 뒤섞여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서 올바른 삶을 위한 길찾기에 나선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제의 마지막 토론자인 이광래 강원대 교수가 다음주 견해를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비판을 서로 자신에 대한 오해라고 반박하며 진행되는 논쟁처럼 소모적인 것은 없지만, 오해나 곡해를 그냥 두고 토론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간단하게나마 몇 가지 오해나 곡해에 대해 지적하는 방식으로, 그런 지적에 기생하듯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첫째, 나는 어디서도 들뢰즈·가타리 책을 읽지 않았다면서 누구를 반박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노마디즘을 모르고도 노마드로 사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 많이 읽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처럼 누군가를, 그것도 저리 강하게 비판하려면, 비판하는 대상을,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읽거나 알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경우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해도, 쉽게 무시되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

둘째, 나는 “‘매끄러운 공간’이나 ‘외부성’이 그 자체로 초월적인 혁명적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 전쟁기계도 전쟁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게 되는 사태가 있을 수 있다고 썼다. 마찬가지로, “노마디즘은 현실 속의 나쁜 노마디즘과 아무 관계 없다”면서 “나쁜 자본주의 국가 외부에만 존재하는 착한 노마디즘”에 대해 말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다. 다만 홍윤기 교수가 제시한 여러 노마드들 가운데 어떤 걸 ‘진정한 노마드’라고 말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쁜 노마드나 문화상품화된 ‘노마드’들이 있다는 이유가 노마디즘을 버릴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답했을 뿐이다. 반복하건대, 김 교수 말처럼 ‘유목주의적 기업’이나 ‘침략적 노마드’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노마디즘을 버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치가 생태주의자였다는 게 생태주의를 버릴 이유는 되지 않는 것처럼. “노마디즘에 침략적 성격이 있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나는 이렇게 쓰지 않았지만)는 말이 이런 의미에서였음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려웠을까? 김 교수는 내가 노마디즘은 “더러운 현실과 무관한 이론”이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정말 믿고 있을까? “폐허가 된 마르크스주의, 그 불모의 땅에 달라붙어서, 실패에 달라붙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게 노마드”라고 썼는데도 불구하고.

 

현실 속 노마드 무시한 게 아니라
노마디즘을 버릴 이유 아니다 했을 뿐그럴수록 시비 가리고 개념 구분해야

 

셋째, 나는 전쟁기계 개념을 부차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적절한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있다(나는 경전을 주석하는 훈고학자가 아니기에,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며 나름의 답을 찾는다).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전쟁’의 개념이 일차적으로 지배적 가치에 대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조건에서 ‘전쟁’이란 말은 국가 간의 적대적 충돌이란 의미가 지배적이기에, 오해 없이 사용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는 생각에서다. ‘전쟁기계’ 대신에 ‘투쟁기계’라고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들뢰즈·가타리가 표현하려는 개념적 내용이 ‘투쟁’이란 말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실제로 가타리는 〈새로운 자유의 공간〉에서 그렇게 고쳐 쓴다). 그렇지만 그들이 ‘전쟁기계’란 개념을 오해를 무릅쓰고 사용했던 것은, 전쟁기계가 전쟁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부정적 사태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여 놓았다. 따라서 전쟁기계의 무서운 까칠함을 은폐하여 노마디즘을 부드러운 문화상품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넷째, 나는 어디서도 ‘착한 노마드’에 대해 쓴 적이 없다. “노마디즘에는 어떤 오류도 없다”니! 비난과는 반대로, 이주노동자들조차 주어진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안주할 곳을 찾는다면 노마드가 아니라 정착민이라고 썼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도 이주노동자-되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상품화나 유행에 편승하는 유사품과 대비하여 노마디즘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믿으며, 단순화해서 ‘나쁜 노마디즘’과 ‘좋은 노마디즘’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그런 단어를 사용한 것처럼 생각하게 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김 교수는 ‘착한 것’과 ‘폭력적인 것’, ‘선과 악’이 결코 단순하게 분리될 수 없다고 거듭 말한다.

맞다. 데리다 이후, 선과 악이 뒤섞이고 선과 악이 서로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건 일종의 철학적 상투구가 되지 않았던가! 그러니 ‘좋은 노마드’를 ‘나쁜 노마드’ 와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철학적 순진성으로 비난받기 딱 좋은 처지를 자초하는 것이다. 확실히 노마디즘이 작동하는 세계를 그 초월적 외부에서 바라보면서, “거기서 선악은 구별 불가능해”라고 해체하는 철학자들이라면, 그것의 복합성이나 결정불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적 삶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아니 어떠한 삶의 방식을 구성할 것인지, 지금 이 길로 가는 게 옳은 것인지를 고심하고 판단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그럴까? 거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하려는 것이 쉽게 말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가리는 것이고,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포착하는 것이다. 유목을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유목적인 것인지, 아니면 유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지, 애써 얻은 하나의 성공에 안주하면서 다시 정착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 구별불가능하고 서로 기대어 있는 ‘좋음/나쁨’을 떠나 초월적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체해대는 데리다 같은 철학자보다는, 오류를 범할지라도 “자, 다시 한 번!” 하면서 지금 조건에서 어떤 게 좋은 것인지를 그때그때 판단하며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려 애쓰는 나의 친구들을 더 믿는다.

 

지배적 가치와 싸우는 ‘전쟁기계’
오해 우려했을 뿐 은폐한 적 없어
코뮨-노마디즘 결부해 사유하는 게
전쟁기계 필연성 간과한 건 아니다

 

다섯째, 개념들을 엄밀하게 구별하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이 잘 섞이기 때문에, 잘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새 반대가 되는 사태가 빈발하기 때문에, 오류와 위험을 포착하고 구별할 개념들이 필요한 것이다. 가령 내가 “유목민과 이주민은 다르다”고 하며 개념적으로 구별하려 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코뮨주의에 대하여. 내가 코뮨주의를 노마디즘과 결부하여 사유하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거기서 전쟁기계적 성격을 간과·은폐한다는 의심은 부당하다. 왜냐하면 나는 코뮨주의가, 혹은 코뮨이 전쟁기계라고, 전쟁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개인주의, 전체주의, 가치법칙 등의 지배적인 가치들과 ‘전쟁’을 벌이지 않고서 코뮨이 가능하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가 만들어온 코뮨 안에서도 오랫동안 고성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자본주의나 근대적 삶의 습속에 너무도 길들어 있기에, 코뮨이 가능하려면 그런 나에 대한 투쟁, 그런 친구들의 습속에 대한 투쟁을 결코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진경 교수
 
굳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며 코뮨주의를 친숙함과 동질성에 안주하는 공동체주의와 구별하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코뮨주의는 노마드적 삶의 방식을 포함하며, 또한 그래야 한다. 그러나 코뮨주의가 노마디즘의 선험적 목적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른 노마드적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진경/서울산업대 교수

 


이진경 교수는 1963년생이며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 전반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코뮨주의’란 화두를 들고 공부하고 있으며, 생명의 경제·정치학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미-래의 맑스주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실제-가상 오가는 ‘유목적 생활인’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가 일상의 가장 친숙한 도구가 된지 오래다. 이 교수는 한국인이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자유자재로 유목하며 융합현실 속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노마디즘은 데자뷔(기시감) 현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⑤ 전혀 새롭지 않다

 

네 번에 걸쳐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김진석 인하대 교수가 노마디즘(유목주의)에 대해 비판과 반비판을 펼쳤다.

핵심 논점은 현실 속에서 여러 노마드들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였다. 김 교수는 이진경 교수가 ‘혁명의 정치학’이란 수사를 통해 적극 옹호하는 ‘노마디즘’은 현실 속의 ‘나쁜 노마디즘’과는 아무 관계도 책임도 없는 ‘착한 노마드 이야기’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홍 교수는 경쟁·대립·공존하고 있는 여러 노마드들이 ‘개념’으로 묶이지 못하고 ‘이미지’로만 교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나쁜 노마드’의 존재가 노마디즘을 버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반론을 펼쳤다. 중요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초월적 외부에서 선과 악이 뒤섞여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서 올바른 삶을 위한 길찾기에 나선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광래 교수는 이 글에서 우리가 이미 융합의 최전선에 있다면서 노마디즘은 새롭지 않다는 견해를 보였다. 한국인들이 이미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자유자재로 유목하며 융합현실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의 다양한 힘과 격투하는 사고’인 노마디즘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고 이 교수는 반문했다. 다음 주제는 ‘‘코뮨주의’ 대안인가’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해체는 비상이다

해체의 외징(外徵)은 비상이다. 해체주의는 비상의 철학사조이다. 그 비상한 외징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종말이다. 그것의 주인공들은 종말과 종결을 좋아한다. 우선 그들은 예외 없이 철학의 종말을 주장한다. 해체주의의 선조이자 아방가르드였던 니체를 비롯하여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데리다의 주장이 그렇다.

누구보다도 니체는 ‘빠삐용’이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철학적 전통을 탈출하여 이른바 ‘자유의 바다’에 비상착륙하고 싶어 했다. 기존 철학에 대한 답습이 그에게는 단순 노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가 철학노동자들을 혐오한 까닭도 마찬가지였다. 들뢰즈는 니체를 가리켜 ‘철학을 망치질하는 이’에 비유한다. 모리스 블랑쇼도 “니체의 철학을 성찰하는 것은 철학의 종말을 성찰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니체를 전위(前衛)로 숭상하는 이들에게 ‘종말에의 유혹’은 가장 뚜렷한 유전인자였다. 아직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임에도 우리를 위해 변증법과 인간학의 혼합된 약속들을 불태워버린 장본인이 바로 니체였다고 하여 푸코는 니체와의 유전성을 강조한다. 또한 푸코는 “아마도 인간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일 것”이라고 하여 근대적 주체로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데리다도 형이상학적 인간주의(휴머니즘)의 모든 가정 자체를 부인하고 ‘인간의 종말’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종말이란 ‘존재에 대한 사유’의 종말이다.” 이처럼 그 역시 형이상학의 해체와 그 이후의 철학을 위해 주체에 대한 단죄와 퇴출을 명령한다.

다음으로, 종말에 대한 교의주의자들의 비상한 외징은 그들 자신의 삶마저도 비상한 죽음으로 종결지은 것이었다. 언제나 ‘미래를 위해 글을 쓴다’는 니체가 56살 되던 1900년 매독으로 인한 정신이상(또는 뇌종양)으로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것이 그 전조였다. 종말과 해체의 교의가 크리스마스병이라는 혈우병처럼 열성 반성유전형질이 되어 격세유전되었듯이 죽음의 방식마저도 푸코와 들뢰즈에게 잠복유전되었기 때문이다. 1984년 58살의 푸코가 에이즈로 인한 패혈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것, 그리고 1995년 70살의 들뢰즈가 돌연히 투신자살한 것이 그러하다. 특히 이미지 철학자인 들뢰즈의 죽음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비상한 외징의 클라이맥스가 되었다.

이들의 죽음은 ‘외징 없이는 유사성도 있을 수 없다’는 푸코의 신념을 실천한 것일까? 어쨌든 푸코는 “하느님은 어떤 사물들을 숨겨놓았으면서도 특별한 형식의 외적이고 가시적인 기호들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게 하셨다”는 16세기 스위스의 의학자 파라셀수스의 말에 따라 죽음의 유사성조차도 종말과 해체의 외징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이들의 비상한 죽음은 또다른 종말의 예후(豫後)나 다름없다. 그것은 니체로부터 시작된 종말과 해체라는 비상한 교의의 종결 징후이기 때문이다. 20세기를 푸코의 세기이고 들뢰즈의 세기라고 서로 덕담하면서도 상속인이나 상속집단을 원하지 않는 프랑스 철학의 특징대로 그들의 죽음은 해체교의적 종말의 징표가 되고 있다.

 

비상해제와 후위게임

이처럼 철학의 종말, 그 비상(非常)은 이미 해제되고 있다. 외징들이 바뀐 것이다. 비상해제나 정상의 생성을 원하는 이들의 후위(後衛)게임, 곧 생성게임이 해체부정이나 통합과 융합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체의 여진이 남은 이 땅에서 요즘은 ‘플러스 울트라’(그 너머의 세상)를 외치며 통섭을 부르짖는 환원주의 망령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섭의 전도사로 위장한 환원주의자들이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데리다의 해체를 빌미삼아 재출현한 것이다. 특히 에드워드 윌슨은 니체의 후예들을 가리켜 ‘무정부주의자, 해적, 반역자, 무지한 심령치료사’라고 극언하며 그들의 해체주의를 융단폭격한다. 그는 해체주의가 모든 주제들을 ‘변화의 무자비한 원심분리기’ 속에 쑤셔 넣었다고 힐난한다.

그 대신 윌슨이 주장하는 것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관계의 망’이라는 사회생물학으로의 환원주의적 대통섭이다. 심지어 통섭이 미래의 의심할 수 없는 대안이라고까지 단언한다. 그러나 해체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윌슨의 팡글로스주의(통섭의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들 가운데 최선이라는)도 ‘생물학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그 내부의 적과의 후위게임 속에 휘말려 있다.

종말과 해체의 또다른 후위게임은 해체가 아닌 융합주의 거대이론으로의 회귀이다. 해체 이후의 에피스테메(인식소)는 융합(convergence)이다. 미래는 해체 그 너머의 세상, ‘플러스 플러스 울트라’의 융합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소생한다면 그는 국가장치가 아닌 실제와 가상의 융합장치, 자본주의 기계 대신 융합주의 기계, 그리고 전쟁기계가 아닌 인터페이스(이종공유) 기계의 상호 횡단적 교섭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그의 노마디즘은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의 다층구조적 프랙털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융합현실과의 게임이론으로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1979년 10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 찾아온 드레퓌스와 레비노를 보고 ‘나의 암살자들이 왔군!’ 하고 외치던 푸코도 융합현실에 소생한다면 초감도 센서로 된 인터페이스 안경을 통해 그들의 상세한 정보를 불러내며 ‘나의 후원자들이 왔군!’ 하며 반길 것이다.

 

우리에게 해체는?

이처럼 우리는 융합의 최전선(frontland)에 있다. 철학적 유목민이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유목적 생활인이 된 지 오래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유목을 체득하고 있는 한국인에게 노마디즘은 새롭지 않다. 새로운 리좀인 가상의 다리들(cyber-bridges)이 연결하는 동시편재적 융합현실에서 인터페이스를 만끽하고 있는 한국인에게 노마디즘은 데자뷔(기시감)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목민으로서의 한국인은 들뢰즈가 말하는 ‘탈코드화’나 ‘기관 없는 신체’, ‘국가장치’나 ‘전쟁기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가 ‘노마드적 사고란 외부의 다양한 힘과 격투하는 사고’라고 정의한들 이미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자유자재로 유목하며 융합현실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그게 무슨 의미일 수 있을까?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하지 못하듯이 ‘지금 여기에’ 가상현실로 열려 있는 우리의 유목현실도 들뢰즈의 노마디즘대로는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융합현실(융합사회체)에서는 이미 자본보다 정보가 들뢰즈가 말하는 ‘충실신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이광래 교수
 
그의 노마디즘이 우리를 더욱 데자뷔적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들뢰즈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어느 나라보다 유목적 삶에 익숙한 우리의 기술환경과 생활문화 때문일 것이다.

이광래 교수/강원대 철학과

 


이광래 교수는 1946년생으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연구자로서 초창기 20년 동안은 반철학과 해체주의 계열의 프랑스 철학에 연구의 초점을 맞췄고 그 이후 15년은 일본과 동아시아 사상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욕망 이동사> 저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셸 푸코-광기의 역사에서 성의 역사까지> <프랑스 철학사> <일본사상사 연구>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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