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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8/11/01

[한겨레 우리 사회 지식논쟁]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 ‘철학계 괴물’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 ‘철학계 괴물’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한겨레 안수찬 기자
 
 
»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 ‘철학계 괴물’. 사진 도서출판 b제공.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① 이유있는 열풍

 

철학에도 유행이 있다면, 오늘날 세계 철학계의 최신 유행은 슬라보예 지젝이다. 모든 첨단 유행이 그러하듯이 지젝 또한 시대의 상식을 파괴한다. 마르크스, 헤겔, 라캉을 접붙인 그는 독일 고전 철학에 바탕을 두고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뒤, 이를 디딤돌 삼아 다시 현대 철학의 새로운 사유를 개척하고 있다. 그는 ‘급진적인 정치 실천적 철학자’의 전형이기도 한데, 고국 슬로베니아에서 1990년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국내에서도 지젝 열풍은 심상찮다. 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는데, 2000년대 들어 그가 직접 쓴 책만 10권 이상 번역·출판됐다.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겨레>는 이번주부터 이 ‘지젝 신드롬’의 속살을 파고들려 한다. 그의 사유에는 과연 새로운 영감으로 삼을 만한 자양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난해함 빼고는 건질 게 없는 서구적 언어 유희에 불과한 것일까? 지젝의 저작을 국내에 번역·소개하고 관련 논의를 이끌었던 학자들이 그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가 첫 번째 글을 썼다. 그는 지젝의 사유로부터 우리 시대의 이념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레닌의 혁명 전략마저 넘어서는 전복의 기운이 지젝에게 있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괴물입니다”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다. 자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책을 경탄과 함께 읽어본 독자라면 ‘당신도 인간인가?’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라고도 하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아예 그의 이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잡지가 나올 정도로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엠티브이(MTV) 철학자’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을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그리고 아마도 가장 많은 책을 써낸 철학자, 그가 지젝이다. 그래서 열광하는 독자들까지도 그의 책을 다 따라 읽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매년 두어 권씩 번역돼 나오는 ‘한국어 지젝’에만 한정하더라도 그렇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한 비판자의 표현을 빌리면, ‘지젝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젝은 흔히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거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어떤 저자를 읽기 위해서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대중문화에 ‘정통’해야 한다면 보통은 다른 저자를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지젝은 매혹적이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매혹은 동시에 그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정신분열적으로 분열돼 있다는 비판은 그의 이런 작업방식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 옆에는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빠지지 않는다. 독창성도 진정성도 없는 ‘철학적 재담꾼’ 정도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세기적인 ‘재담꾼’을 갖는다는 게 과연 불행한 일인지? 가령, 급진적 철학자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에 관한 재담은 어떠한가?

 

헤겔과 라캉 자유자재로 다루며
마르크스·대중문화 이론적 틀까지
매혹과 혐오의 시선 동시에 받는
21세기 세계철학계의 이단아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기는 너무도 쉽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패러독스라고 지적하면서, 지젝은 그럼에도 우리가 유토피아를 발명해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긴급한 요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유토피아, 곧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와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지젝이 자주 드는 것은 1917년의 레닌이다.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곧 정치적 ‘활동’이 아닌 ‘행위’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이다. 러시아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불가능을 돌파한 레닌의 바로 그러한 ‘광기’였다. 하지만 레닌도 혁명 이후에는 대중의 창조적 역량에 대해 불신하면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을 강조했고, 그것은 곧 스탈린주의로의 길을 예비하지 않았던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젝은 이 지점에서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프로그램을 우리 시대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와이드웹을 갖다놓아 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신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와이드웹에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는 국가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회주의=전력화+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인터넷은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중앙은행 사회주의’에 대한 레닌의 전망을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월드와이드웹에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재담’이다.

 

시대 넘나드는 철학적 재담으로
오늘날 이념적 지형·돌파구 찾아
‘독창성·진정성 없다’ 비판 불구
열정과 광기에 아낌없는 지지를

 

물론 그의 재담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젝은 또한 ‘소유의 종말’이 예견되는 디지털시대의 ‘탈소유 사회’에 대한 첫 번째 모형을 바로 스탈린시대 소련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다시피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서열관계도 없는 평등한 사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스탈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는, 무계급 사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서열’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와 기술관료, 군대 등의 순으로 정확하게 서열화된 사회였다. 거기서 지배계급은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통제수단, 물질적·사회적 특권에 직접 접근이 가능한가라는 ‘접속 가능성’으로 결정되었다. 바로 오늘날 현 단계 자본주의에서도 특권이 직접적인 소유가 아니라 뒤에서 조정하고 교육과 경영·정보 등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것에서 확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하게 된 선택지는 사적 소유(사유재산)와 사적 소유의 사회화(국유화) 사이의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위계적인 탈소유 사회’와 ‘평등한 탈소유 사회’ 사이의 선택이다. 여기서 선택은 물론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지젝은 다시 레닌적 제스처를 끌어온다. 그가 보기에 레닌주의의 핵심적 교훈은, 당이라는 조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정치는 ‘정치 없는 정치’, 말로만 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판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 것과 다름없는 ‘신사회운동’에도 가해진다. 과연 폴리페서(정치교수)들처럼 체제에 편승하거나 페미니즘에서부터 생태주의와 반인종주의에 이르는 신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사회적 개입’의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일까? 지젝이 보기에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보편성이 결여된 ‘단일 이슈 운동’이라는 데 있다. 곧 사회적 총체성과 연관돼 있지 않다는 것이며, 중도좌파와 좌파 자유주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백포도주냐 적포도주냐 하는 선택은 ‘근본적인’ 선택이 아니다.


 
» 이현우 씨
 
지젝이 “레닌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반복이 뜻하는 것은 레닌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이 한갓 ‘혁명을 연기하는 배우’의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레닌을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괴물’의 광기와 열정을 지지한다. 이현우/서울대 강사

 


이현우 씨는 1968년생이며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 논문에서 ‘푸시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을 다뤘습니다. 현재 서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전공 외에도 현대 철학과 영화 이론에 두루 관심이 깊고, 최근에는 새로운 인문학의 변형을 학문적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에게는 ‘로쟈’라는 필명의 인터넷 서평꾼으로 더욱 친근할 것입니다.


 
기사등록 : 2008-05-23 오후 08:57

 

지식사회 ‘사상 논쟁’ 말문을 트다
결산
 
 
한겨레 안수찬 기자
 
 
» 지식사회 ‘사상 논쟁’ 말문을 트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지난해 9월1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연재했던 ‘우리 시대 지식논쟁’이 이번 호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우리시대 지식논쟁은 지식·담론·시사를 버무려 지상 논쟁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노력이었다. 지금까지 37차례에 걸쳐 여러 지식인들의 글을 실었다. 모두 아홉 가지의 주제를 다뤘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1~3회),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4~6회),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 (7~9회),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10~16회),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17~21회), ‘코뮨주의 대안 맞나’ (22~25회), ‘이명박 정부의 성격’ (26~28회), ‘고종 어떻게 볼까’ (29~34회),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35~37회) 등이 우리 시대 지식논쟁의 화두로 다뤄졌다. 그 논쟁의 주요 장면을 톺아본다.

 

신자유주의… 민족주의…
9개 주제 37차례 걸쳐 실어

 

 

최첨단 서구 이론으로 지식논쟁의 첫 장을 열었다.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주창한 개념인 ‘제국’을 둘러싼 논쟁을 다뤘다. “권력의 중심이 사라지고 경제적·문화적 교환들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상태를 일컫는 ‘제국’ 개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이해하는 첨단의 이론틀이다. 국민국가 중심의 기존 이론틀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이기도 한 이 주장을 놓고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 정성진 경상대 교수,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등이 논쟁을 펼쳤다.




제국 논쟁이 다분히 이론적인 논구의 성격이 강했다면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는 구체적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벌인 논쟁이었다. 반미 노선과 기간산업 국유화로 이름 높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실험이 ‘반신자유주의’ 진영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을지를 두고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행 서울대 교수 등이 논쟁했다.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실험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는 조금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 올렸다. 근대문학이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제기를 바탕에 두고 ‘리얼리즘’의 가치와 근대문학의 현재적 의미에 관한 논란의 자리를 만들었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교수,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 등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을 지지 또는 비판했다.

 

우리 시대 지식논쟁이 주목한 가장 큰 화두는 민족주의 문제였다.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는 무려 일곱차례에 걸쳐 논쟁이 진행됐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제 지배, 분단, 산업화, 민주화 등을 가로지르는 핵심 쟁점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민족사학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새로운 보수 이념을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기존 진보학계 내부에서도 관성적인 민족주의를 성찰하려는 흐름이 생겨났는데, 이후 민족주의 논쟁은 복잡한 결을 가진 예민한 문제가 됐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권혁범 대전대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등이 치열한 논전을 펼쳤다. 안병욱 교수 등이 저항적 민족주의로부터 초국적 자본을 견제할 동력을 찾은 반면, 박노자 교수 등은 계급 모순을 호도하는 민족주의의 맹점을 비판했다.

 

지식·담론·시사 버무려
지지-비판 열띤 논쟁 벌여

 

다섯차례에 걸쳐 진행된 ‘고종 어떻게 볼까’ 논쟁도 민족주의 담론과 떼놓을 수 없다. 고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조선의 자주적 발전 가능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일제 강점 시기에야 타율적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것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이는 다시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오늘에 이르러 민주화와 산업화의 흐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 하원호 동국대 교수, 강상규 박사,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김도형 연세대 교수 등이 고종을 평가했다.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재해석을 둘러싼 개념들도 우리 시대 지식논쟁에서 자주 다뤄졌다. 다섯차례에 걸쳐 다룬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는 새로운 저항의 이념을 찾으려는 지식인들의 노력을 드러낸 논쟁이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창한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사유 방식이 과연 저항 또는 변혁의 기획에 어울리는 것인지를 두고 홍윤기 동국대 교수,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김진석 인하대 교수, 이광래 강원대 교수 등이 논쟁했다.

 

논쟁의 핵심은 노마디즘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영감을 던지는 실천적 기획인지, 아니면 급진적 언어를 빌린 상념의 소산인지에 있었다. ‘코뮨주의 대안 맞나’,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등도 비슷한 맥락의 논쟁이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주창으로 국내에서도 하나의 대안 이념으로 자리잡은 ‘코뮨주의’와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급진주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사유를 각각 논했는데, 그때마다 이들 새로운 개념과 이념이 구체적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두고 쟁점이 형성됐다. 고병권 ‘수유+너머’ 대표,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 이현우 박사, 박정수 수유+너머 연구원, 이성민 도서출판 b 기획위원 등이 글을 썼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정부 출범 2주 뒤부터 세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박정희식 개발독재와의 차별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성격 규정이 달라지는데,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 홍성민 동아대 교수, 고세훈 고려대 교수 등이 글을 썼다. 신보수라는 규정성을 수용하는 논자도 있었고, 구보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이도 있었다. 신보수냐 구보수냐를 넘어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선명히 규정해야 한다는 필자도 있었다. 당시 논쟁은 한국 보수세력의 정치적 기원을 궁구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조희연 교수는 글에서 “극단적 친미주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 전혀 고려가 없는 천민자본주의적 지향, 탈도덕적 경제주의 등이 한국적 보수의 특성”이라고 썼는데, 그 정의는 촛불집회 길에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이명박 정부의 오늘에 이르러 더욱 새롭다. <한겨레>는 앞으로도 주요 쟁점이 떠오를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우리 시대 지식논쟁’과 비슷한 기획을 지면에 실을 계획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관련기사]
 
 
 
 


 
기사등록 : 2008-06-13 오후 07:56:21 기사수정 : 2008-06-16 오전 11: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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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레프트 리뷰’ 한국판 나온다

 

 

뉴 레프트 리뷰’ 한국판 나온다
진보 지성의 내비게이션
 
 
한겨레  
 
 
» 사진 탁기형 기자
 
블랙번·바디우…‘1급 필진’
서브프라임 사태 분석 등
창간호에 18편 논문 실어

 

영국에서 발행되는 진보 학술지 <뉴 레프트 리뷰>(<리뷰>) 한국어판이 올해 말 출간된다. 1960년 페리 앤더슨 등 런던의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창간한 <리뷰>는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1949년 창간한 미국의 <먼슬리 리뷰>,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자매지로 탄생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세계 3대 진보저널’로 꼽히지만, 지적 권위와 담론의 깊이, 지식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다른 두 저널을 앞선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어판 편집위원장을 맡은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22일 “다소 늦어진 감은 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리뷰>의 역할은 여전하다”며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진보담론의 폭이 확장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실천적 고민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편집위원회에는 백 교수를 포함해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격월간인 <리뷰> 영문판과 달리 한국어판은 1년에 한 번 발간된다. 영국 국내정치에서 제3세계 지역문제를 아우르는 영문판의 모든 내용이 한국 독자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했다. 창간호에는 2002년 3·4월호(재창간 14호)부터 올해 3·4월호(50호) 사이에 실린 18편의 논문이 게재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대한 로빈 블랙번의 분석과 사르코지 집권 뒤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분석한 알랭 바디유의 글,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떠오른 두바이에 대한 마이크 데이비스의 논문 등 시의성이 높고 <리뷰>의 편집 방향을 잘 드러내는 글을 엄선했다.

 
» 로빈 블랙번 / 마이크 데이비스 / 페리 앤더슨
 
출판을 담당하는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기획실장은 “현재 번역을 마치고 교정·감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12월 말쯤 550쪽 분량으로 1500~2000부 정도 찍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사 쪽이 예상하는 독자층은 서구 진보이론과 국제 정세에 관심 있는 대학 고학년생과 대학원생,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다. 애초엔 국내 연구자의 글을 한국판에 함께 싣는 방안을 타진했지만, 현지 편집위원회가 “전례가 없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뷰>는 창간 초기부터 국제주의적·이론적 지향이 뚜렷했고, 보수화된 사민주의 정당이나 스탈린주의의 자장 안에 있던 공산당 모두에 냉소적이었다. 이런 연유로 초창기에는 그람시·루카치·코르쉬·알튀세르 등 ‘정통 마르크스주의’ 대열에서 비껴서 있던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일에 주력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에서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는 필자 목록은 최근 50년의 세계 지성사를 압축한 ‘지식인 지도’로도 손색이 없다. 에릭 홉스봄, 테리 이글턴, 위르겐 하버마스, 프레드릭 제임슨, 이매뉴얼 월러스틴,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 등 하나 같이 각 분야의 ‘1급’ 학자로 공인받은 거물들이다. 현재 편집위원은 페리 앤더슨과 로빈 블랙번, 마이크 데이비스 등이 맡고 있다.




2000년 ‘재창간’을 계기로 지적 관심을 세계 경제와 반체제 운동, 문학과 영화, 예술 영역으로 확장했다. 발행부수는 1만부, 온라인 구독자는 전 세계에 걸쳐 25만여 명에 이른다. <리뷰>는 현재 영문판 외에 스페인어·이탈리아어·그리스어·터키어판이 발간되고 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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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유인촌, 전여옥식 재테크’ 언급 ‘화제’

 

 

미네르바의 ‘유인촌, 전여옥식 재테크’ 언급 ‘화제’
 
잠정적 절필 선언하면서 올린 글...양면성의 사례로 들어
 
입력 :2008-11-01 11:01:00   박성원 기자
 
 
[데일리서프 박성원 기자] 인터넷포털 다음의 토론광장 아고라에서 날카로운 경제분석으로 인기를 얻었던 아이디 '미네르바'가 31일 밤 잠정적인 '절필'을 선언하면서 올린 글에서 거론한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재테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미네르바는 우선 "이 나라는 극도의 양면성을 가진 나라로 겉과 속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 일본인들 보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그런 가식적인 면을 보자면 우리도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절대 다르지가 않다는걸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100% 거짓말이지"라고 전제를 달았다.

이어 그는 "그건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이 나라 정책 입안자들이나 정치인들은 말로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집을 사라고 하지만, 실제로 개인들은 개인 포트 폴리오라는 이름 하에 자산 포지션을 바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전여옥 의원을 들었다. 미네르바의 표현에 따르면 "이 아줌마의 경우는 올 클리어...주식→예금으로 갈아 탄 건 이제 새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눈치 깐 애들은 거의 다 조정 했다"면서 "심지어는 대통령 본인이 주식 사라고 펀드를 들 것이라고 하면서 주식 한 주 안 산 나라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양면성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면 추세 분석상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주식에서 현금으로 갈아 타는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오히려 칭찬을 해 줘야 할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그 사람들의 신분이 지금 무엇이느냐가 문제다. 바로 정책 조정자와 정치인, 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핸들링 하는 장본인들"이라고 꼬집었다.

미네르바는 "직간접적인 고급 정보 소스들을 이용해서,혹은 활용해서 빠져 나가는 애들이 한 둘이 아면서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정반대의 것을 강요한다"면서 "이건 뭔가 웃기는 것 아니냐. 비난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양면적인, 두 얼굴의 나라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중립적이고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개인적 시각이란 걸 가지는 게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선동에 휩싸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거론했다. 미네르바는 "더 위험한 건 경제적인 양떼몰이"라고 전제한 뒤 "알면서도 애국한다고 손해볼 미친 X은 없다. 심지어는 유인촌 장관님도 '엔화 투기'로 단 1주일만에 30억 이상 버는 나라가 이 나라다"고 지적했다.

유 장관이 재산신고시 일본국채에 투자했던 것으로 신고했던 32억여원을 겨냥한 발언인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장관이 일본국채에 투자했던 것은 2005년4월27일부터 2007년 7월19일까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채를 매각한 뒤 엔화를 계속 보유했다면 원화 대비 엔화 폭등으로 막대한 환차익을 봤을 수도 있다.

미네르바는 "이런 상황에서 경제 논리와 애국주의를 믹싱시켜서 정부 정책 기조에 반대 되는 행동은 곧 매국노라는 걸로 확대 재생산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서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보느냐"고 반문했다.

미네르바의 결론은 따라서 "깨닫고 배워야 산다"는 것이었다. 각성과 학습이 동반돼야만 이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충고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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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부양’ 10년전 잘못 되풀이

 

 

 

부동산 부양’ 10년전 잘못 되풀이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1.01 00:13

50대 남성, 경기지역 인기기사 자세히보기


ㆍ환란때 잇단 활성화 대책… 집값 폭등 부작용

ㆍ이명박정부도 규제풀기 주력 '거품'조장 우려

이명박 정부가 경기진작을 위해 잇달아 내놓고 있는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이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가 시행했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는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의 빗장을 모두 풀었지만 3년 만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상 최악의 부동산 버블(거품)로 이어졌다.

31일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5월 분양가 자율화, 양도소득세 한시 면제, 토지거래 허가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주택경기활성화대책'을 발표한 이후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잇달아 내놨다. 이듬해인 99년에는 아파트 분양권 전매허용, 아파트 재당첨 제한폐지 조치를 내놨고, 2001년에는 전용면적 85㎡ 이하 신규 주택 구입시 취·등록세 25% 감면, 부동산 투자회사의 부동산 취득시 취·등록세 감면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의 정부가 98년부터 2001년 5월까지 3년6개월간 내놓은 부동산 경기 부양대책은 모두 10차례로 평균 4개월에 한 번꼴이었다.

당시 건설업계는 "주택투기의 우려가 없는 만큼 규제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민의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의 정부는 또 경기부양을 위해 2001년 한해 동안 콜 금리(현재 기준금리)를 4차례나 내려 사상최저치인 연 4%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2002년 집값이 16%나 폭등하자 정부는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 조치를 시작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규제 완화의 후유증으로 부동산 시장 불안이 지속되자 정권이 참여정부로 바뀐 2003년에도 정부는 분양권 전매제 부활, 수도권 투기과열지역 지정,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2005년에도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주택 종부세 과세기준을 6억원 초과로 강화하는 등의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지 못했다.

경기대 엄길청 교수는 "10년 전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로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내수가 부진하자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서 집값 폭등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출범이후부터 부동산 규제를 푸는 데 주력했다. 지난 6월 지방 아파트 미분양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8월에는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고, 9월에는 종부세를 대폭 완화키로 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한시 폐지,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건축 규제 완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속도는 국민의 정부 때보다 빠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10년 전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켰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조장했다가 집값 폭등만을 부른 과거 정권의 실패사례를 답습하려 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 박병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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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부양’ 10년전 잘못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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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1.0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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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환란때 잇단 활성화 대책… 집값 폭등 부작용

ㆍ이명박정부도 규제풀기 주력 '거품'조장 우려

이명박 정부가 경기진작을 위해 잇달아 내놓고 있는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이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가 시행했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는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의 빗장을 모두 풀었지만 3년 만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상 최악의 부동산 버블(거품)로 이어졌다.

31일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5월 분양가 자율화, 양도소득세 한시 면제, 토지거래 허가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주택경기활성화대책'을 발표한 이후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잇달아 내놨다. 이듬해인 99년에는 아파트 분양권 전매허용, 아파트 재당첨 제한폐지 조치를 내놨고, 2001년에는 전용면적 85㎡ 이하 신규 주택 구입시 취·등록세 25% 감면, 부동산 투자회사의 부동산 취득시 취·등록세 감면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의 정부가 98년부터 2001년 5월까지 3년6개월간 내놓은 부동산 경기 부양대책은 모두 10차례로 평균 4개월에 한 번꼴이었다.

당시 건설업계는 "주택투기의 우려가 없는 만큼 규제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민의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의 정부는 또 경기부양을 위해 2001년 한해 동안 콜 금리(현재 기준금리)를 4차례나 내려 사상최저치인 연 4%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2002년 집값이 16%나 폭등하자 정부는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 조치를 시작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규제 완화의 후유증으로 부동산 시장 불안이 지속되자 정권이 참여정부로 바뀐 2003년에도 정부는 분양권 전매제 부활, 수도권 투기과열지역 지정,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2005년에도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주택 종부세 과세기준을 6억원 초과로 강화하는 등의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지 못했다.

경기대 엄길청 교수는 "10년 전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로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내수가 부진하자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서 집값 폭등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출범이후부터 부동산 규제를 푸는 데 주력했다. 지난 6월 지방 아파트 미분양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8월에는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고, 9월에는 종부세를 대폭 완화키로 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한시 폐지,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건축 규제 완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속도는 국민의 정부 때보다 빠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10년 전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켰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조장했다가 집값 폭등만을 부른 과거 정권의 실패사례를 답습하려 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 박병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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